경북 문경을 지나치다 우연히 <박열 의사 기념관> 이정표를 봤다. 아니다. 아마 이 길을 아주 가끔 지나치면서 전에 한 두 번 봤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때는 박열이라는 인물이 누구인지 몰랐기에 기억에 남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금은 영화 [박열]을 통해 눈에 익은 이름이 됐지만 말이다. 아무튼 잠깐 시간이 있어 한 번 들러보기로 했다. 그러니 이렇게 들러보기로 한 것은 순전히 영화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내심 이 기념관이 영화 이후에 만들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했으니....
[박열]이라는 영화는 2017년에 상영됐다. 박열 의사 기념관은? 2012년에 개관되었다. 그러니까 영화가 만들어지기 5년 전에 기념관이 세워져 있던 것이다. 영화가 박열이라는 인물을 새롭게 조명하고, 이를 위해 숨겨진 자료들을 찾아가며 노력을 기울였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기념관을 둘러보니 잘못된 추측이었음을 알게 됐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관한 자료는 꽤나 많이 수집되어 있었다.
그래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기념관의 규모가 상당했기 때문이다. 멀리서도 우뚝 서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기념관에 들어가는 입구 또한 초라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입구 바로 옆에 생가를 복원해 놓았는데, 초가집 2채와 비교가 된다.
박열 의사 기념관에는 박열의 기록과 함께 일본에서 옥중결혼한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기록이 거의 반반씩 채워져 있다. 영화 [박열]에서도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기억이 강렬했던 것 만큼 기념관에서도 그녀의 자취는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녀의 묘 또한 기념관을 세우면서 이장해 왔다. 차후 통일이 되거나 남북간의 교류가 왕성해진다면 북에 묻혀있을 박열의 묘도 옆에 함께 들어설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2006년에 KBS에서 2부작 드라마 형식으로 방송된 바 있다. 2017년 영화에서는 그녀를 연기한 최희서가 실제 일본인이 아니었는지 화제가 될 정도로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이기도 했다.
박열 기념관에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영화에서 나오는 사진의 원본이다. 기념관 안내 표지판에도 이 사진의 장면을 사용한 영화 포스터를 활용하고 있기도 하다. 원본 사진이 주는 울림은 생각보다 크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기록을 둘러보며 느끼는 것은 아나키즘의 역사적 의미라 할 수 있다. 일제시대 당시 독립운동의 한 갈래로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관심을 가졌던 사상 중의 하나가 바로 아나키즘이다. 모든 권위에 대한 부정, 인간의 자율성에 대한 믿음을 큰 줄기로 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개인적으론 노자의 소국과민의 사상과 맞닿아 있다고 느끼지만,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기도 한다. 다만 법치주의라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법이 때로는 폭력처럼 사용되어진 역사를 지니고 있기에, 아나키즘의 정신은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을듯하다.
마지막으로 가네코 후미코가 법정에서 판사에게 했던 말을 남겨본다.
산다는 것은 단지 움직이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것을 의미한다.
즉 나의 의지를 막는 그 무엇도 용납할 수 없는 자세를 갖고 살아가는 것이 아나키스트일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