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시인의 시중에 <날마다 상여도 없이>라는 것이 있다.

전략

날마다 부고도 없이 떠나는 꽃들

날마다 상여도 없이 떠나는 꽃들

 

벚꽃이 만발하다.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꽃잎이 너무 아름답다. 아름다움이란 이내 이렇게 사라지기에 더더욱 애타게 다가오는가 보다. 천년 만년을 버텨온 아름다움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미륵을 찾는 것은 그가 우리가 사는 현세에 지금 당장 찾아올 것이 아님을 알기에 찾는 것이요, 사랑을 부르는 것은 그것이 쉽게 우리를 떠나버릴 것임을 알기에, 또 그냥 우리 곁을 알게모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임을 알기에 부르고 또 부르는 것이리라.

삶은 이렇게 한시적이고 한낱 꿈과 같은 것임에도 우리는 무엇을 위해 이렇게도 악다구박치게 살고 있단 말인가? 꽃처럼 아름답지도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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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 21세기 교양강좌를 듣다 너무나 억울한 느낌이 들어 글을 써봅니다.

휴대폰 세계 최대 생산업체는 핀란드의 노키아라는 곳입니다. (참고로 삼성이 3위, LG가 4위라고 하는군요) 이 노키아의 부회장은 취미가 오토바이 모는 것인데요, 한번은 50km 규정속도에서 75km로 달리다 과속으로 걸렸다는군요.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사람이 물어야 할 벌금이 무려 1억원이 넘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과속 한번 했다고 범칙금이 1억이라니요? 우리나라야 재벌회장이 과속을 하든 배추장사를 하기 위해 트럭을 모는 상인이 과속을 하든 똑같이 6만원(? 맞나요)이니 얼마나 평등한 사회입니까? 하지만 핀란드는 그 사람의 수입이나 경제적 상황에 따라 벌금의 정도가 달라진다는군요? 과연 어떤 곳이 상식이 통하는 사회입니까?

법률 중에서 사회법이라는 것은 불공펑한 적용을 통해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그 목적이 있다고 합니다. 반면 시민법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이 되죠. 우리는 정규교육을 통해 시민법만을 배우고 자라왔습니다. 사회법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이 무엇을 위해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를 전혀 모르고 자라난 것입니다. 아마 그래서 노키아의 부회장이 내는 벌금에 대해서도 혹시나 너무하다고 생각할련지도 모르겠습니다. 노동법의 경우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회법의 하나인 노동법은 노동자의 권익을 지켜내기 위한 법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노동법을 통한 정당한 파업행위로 말미암아 발생되는 공익의 손해를 감내하지 못합니다. 물론 이것은 정부나 기업, 언론의 홍보가 한몫 하고 있지만 말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관용을 베풀어야 하지 않을까요? (관용이라는 말을 써서는 안될줄로 압니다. 하지만 아직 우리 정서로서는 이해를 넘어 관용까지 필요할듯 싶습니다)바로 우리와 똑같은 노동자들에게 말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항공사가 파업을 해도 트럭운전사가 파업을 해도 국민들이 모두 응원을 합니다. 2시간 거리를 10시간이 넘게 자동차를 운전하더라도 말이죠.

상식이 상식으로 통하지 않는 것은 정보의 차단과도 연관이 있습니다. OECD 국가에 들어가기 위해 우리는 노동법을 바꾸겠다는 약속을 해야했습니다. 어떤 부분을 바꾸어야 했는지 알고 계십니까? 그리고 공무원은 노동자가 아닌 나라는 몇개국이나 될까요?

아참 그러고 보니 또 서글픈 한 예가 생각나는군요. 미숙아가 태어나는 경우 아이는 인큐베이터에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아이가 한달만 이 곳에서 생활을 하게되면 병원비가 적어도 1천만원 이상이 나옵니다. 만일 몇개월 입원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될까요? 부모는 눈물을 머금고 의사에게 서약서를 쓰고 아이를 퇴원시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다음날 아이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지만 돈만 있다면 아이는 살아날 수 있었겠죠. 계급이 없어진 평등한 사회이지만 똑같이 인큐베이터에 갇혀 살아야만 하는 아이가 한 아이는 죽음을 또 한 아이는 새 생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의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고 치부해야 합니까? 가까운 일본의 경우만 하더라도 2년간 아이가 병원에서 치료하는 비용은 국가가 전부 책임진다고 하는군요. 고작 2년이지만 우리에겐 2년이나로 다가옵니다.

우리가 정말 함께 잘 살기 위해선 많이 알아야 하겠습니다. 수많은 정보들을 모아서 그것을 우리의 삶에 맞게 분류하고 해석할 수 있는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이 힘은 그다지 어려운 것이 아닐겁니다. 그저 상식대로 양심대로 행하기만 하면 될테니까요. 하지만 우리 사회가 얼마나 비상식적으로 비양심적으로 굴러가는지 한번 생각해보니 이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듯 싶네요. 그래도 저는 믿습니다. 우리가 밝은 빛을 향해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탄핵 찬성과 반대자의 집회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벌어졌어도 아무 충돌이 없는 모습을 보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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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노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얼토당토 않은 현실에 울분을 토하고 있을즈음 친구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대학 동창생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군요. 오늘 야근이지만 두말않고 조문을 가기로 했습니다. 밤차를 타고 포항이라는 먼 곳으로 말이죠.

동창생인 그녀는 저에게 절실한 친구는 아닙니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던 아이로 그녀의 형편을 조금 알고 있을뿐입니다. 그 조금 아는 사실이 저의 몸뚱아리를 그곳으로 끌고 갔습니다.

그녀의 부모님은 이혼을 한  상태이지요. 아버지는 일본에 가 계시고, 어머니는 경상도 상주에서도 산골 깊숙한 곳에서 혼자 목축을 하고 계셨죠. 10년전쯤 얘들끼리 모여 MT 비슷하게 그곳으로 놀러 간 기억이 뚜렷하게 떠오릅니다.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달려가시는 아주머니의 운전솜씨에 흠뻑 반하기도 했었습니다. 여장부 같았죠.

그녀에겐 오빠가 한명 있었습니다. 다운증후군인 오빠는 97년도에 돌아가셨죠. 아마 그녀의 어머니는 이때부터 조금씩 무너지지 않았을까 혼자 생각해보기도 합니다. 아주머니는 2001년 위암 판정을 받았습니다. 위암이라는 것이 그래도 생존률이 높은 편입니다. 저의 사무실에서도 위를 절개하고 살아계시는 분이 두분이나 있으니까요. 그런데 아주머니는 수술을 거부하셨습니다. 내가 수술을 하지않고 담배를 자유롭게 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당신의 고집으로 인해 병원에서 쫓겨나시고 나서 수술이 아닌 호스피스 개념의 치료를 행하시는 의사를 찾게 됐습니다. 환자의 편안함을 중시하는 그 의사를 신뢰하고 자신의 몸을 모두 맡기신거죠. 하지만 그런 의사는 아직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대접을 못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서울의 병원에서 좌천당해 포항으로 내려가게 됐지요. 아주머니는 그 의사를 따라 포항으로 내려오셨답니다. 당신과 의사는 단순히 의사와 환자의 관계가 아니라 친구 그 이상이었던 모양입니다.

아주머니는 어느날 딸에게 이런 말을 하더랩니다.

"얘야, 삶이 지겹다"

그 말을 내뱉은 어머니의 심정은 어떠했을까요? 그리고 그 말을 들은 딸의 심정은요?

몸이 저릿해옵니다. 발인을 꼭 보고 화장한 아주머니의 유골이 상주집에 앉히는 것을 보고 오고 싶었지만 일요일 출근을 할 수밖에 없는 처지라 또 밤차를 타고 이렇게 서울로 올라와서 글을 써봅니다. (갑자기 콧등이 시큰해져 는군요)  저는 밤차 속에서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아직 교통사고의 후유증이라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펐지만 제 머릿속에는 '지겹다'라는 말이 계속 맴돌더군요. 그리고 갑자기 저의 20년 후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내 인생을 되돌아보며 삶을 지겨워할 것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차분하게 자신의 삶을 마무리 하신 아주머니를 떠올리며 숙연해집니다.

암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살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삶은 그렇게 애착이 가는 그 무엇일겝니다. 그런데 그 애착을 아무런 미련없이 끊어버린 삶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죽음 앞에서 그렇게 덤덤할 수 있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그녀는 굳건히 버티고 있습니다. 아마도 어머니의 피가 그녀에게 흐르는 모양입니다.

집착하진 않더라도 지겨워하지 않는 삶을 살고 싶어집니다. 죽음 앞에서 용기있더라도 친구처럼 대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아주머니처럼 자신의 삶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그런 힘을 갖고 싶습니다. 그런 힘을 갖고 있으면 절대 비굴하게 살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부디 편안히 가소서.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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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하는' 

'와' 함성이 울린다. 장막이 걷히고 모습을 드러낸 조용필은 다시 한번 '기도하는'을 외친다. 또다시 쏟아지는 함성소리. 작년 8월에 열렸던 콘서트의 서막이다. 직접 가서 본 것도 아니지만 그 순간의 감동이 거세게 밀려온다. 도대체 이 벅찬 감동의 정체는 무엇인가?

35년이라는 세월을 자신이 사랑한 일에 한결같이 헌신하는 삶이란 자랑스러워 할 만하다. 그리고 그것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그를 존경해도 된다. 아무도 욕하지 않을 것이다. 딴따라를 넘어서 예술의 경지로 대중음악을 이끈 작은 영웅은 아직도 노래를 부를땐 가슴이 심장이 들뜬다고 한다. 사랑하는 여인마저도 세월이 지나면 두근거림이 사라져갈 터인데 오직 노래를 부른다는 그 행위 하나만으로 아직도 가슴이 뛴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목석마냥 살아온 사람으로서 그의 정열은 하나의 열병이다. 그의 노래를 듣는 이순간 나의 몸은 뜨거워질테지만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듯 깨끗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열병의 기억은 뇌리속에 남아 또 다시 누군가의 심장소리를 듣는 순간 가차없이 발병할 것이다.

난 나의 심장소리를 듣고 그 열병이 도지길 바란다. 무엇인가에 쿵쾅쿵쾅 뛸 수 있는 심장을 가지고 있으니 기어코 언젠가는 그 심장을 신나게 뛰도록 만들리라. 무대위에서 열정적으로 자신을 불사르는 저 킬리만자로의 표범 조용필이 있지 않은가? 이미 50을 넘은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는 듯 그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그의 몸은 뜨겁다. 나도 뜨거워지길 바란다.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그 뜨거움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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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상에 누워있으면 한없이 약해진다. 그래서 조그만 친절에도 감사하는 마음이 샘솟는다.

날마다 아픈 사람을 보아야 하며 그들의 불평을 들어주어야 하는 간호사. 왠만해서는 짜증을 낼만도 하건만 무던히도 잘 참아낸다. 더군다나 형식적 친절이 아니라 웃음까지 안겨주며 쾌활하게 일하는 그네들을 보면 이건 감동이다. 속마음이야 알 수 없지만 아파도 웃게 만드는 힘을 준다는게 얼마나 고귀한가?

이네들을 보면 뭐 인생 별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웃으며 사는 거지 하며 말이다. 그래서 살아간다는 것은 어찌보면 명랑체육대회일지도 모르겠다. 끝까지 뛰어야하지만 말 그대로 명랑하게 갈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겠는가?

명랑극장, 명랑만화, 명랑소년, 그리고 명랑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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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4-02-20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게 사십시오! ^^

하루살이 2004-02-22 12: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씩씩하게]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는데...
힘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