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알라딘 데이터에 이 책이 없어 페이페에 씁니다.
사드의 책은 지금 읽어도 충격적이다. 특히 이 책은 당신의 도덕성에 깊은 상처를 줄지도 모른다. 주인공 쥐스띤뜨는 사람들이 미덕이라 부르는 그것들을 어떤 시련이 닥치더라도 행한다. 강간을 당하고 폭행을 당하고 목숨을 위협받지만 그의 미덕은 굴할지 모른다. 만약 이것이 사드의 책이 아니라 어린이를 위한 동화나 또는 동시대의 다른 소설가들의 책이었다면 분명 큰 복을 받았을 것이다. 어려움을 견뎌내면 행복이 찾아온다는 따뜻한 얘기 말이다. 하지만 사드에게서 그것을 바라지 마라. 오히려 주인공 쥐스띤뜨를 괴롭히던 많은 사람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예사로 여기는 외과의, 성에 집착하는 성직자들, 사기를 일삼는 귀족들 등등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해 오히려 인생이 잘 풀려나간다. 보다 높은 직위에 오르거나 많은 연금 혜택을 받는등 죄값을 받아야 할 그들이 행복하다는 것은 도저히 용납되어질 수 없지만 그의 소설속에선 떳떳하게 자신의 행동을 설득한다.
악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미덕은 그저 불행을 자초할 뿐이라는 역설, 그리고 선과 악은 제로섬이기에 굳이 악을 탓할 필요는 없다는 것, 또한 선이라는 것은 정해진 법률이나 도덕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것이기에 그것이 다른 사회, 다른 문명에서도 명백한 선일수 있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선은 선이 아닐 수도 있다는 등등의 그들의 입을 통한 사드의 주장은 읽다보면 절로 수긍이 가게 만든다.
실제로 우리네 삶이 이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독립운동 유공자들은 가난을 대물림 받는 대신 일제 앞잡이로 나섰던 사람들과 그 후손들은 손에 금을 들고서 떵떵 거리고 산다. 사람을 죽이고 맘대로 칼과 총을 휘두르며 독재의 쾌락을 즐기던 사람들 또한 아직도 그 위세가 여전하며, 세상을 위해 사회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쳤던 사람들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져버리기도 한다. 사필귀정이라는 이름하에 우리에게 강요되었던 선행은 실상 그 선행을 실행함으로써 얻는 마음의 평화나 또는 그것을 행해야지만 한다고 생각되어진 강박관념의 충족 그 이상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는다.
하지만 아직도 미덕의 영향권 아래 놓여있는 나로서는 모두가 미덕을 버렸을때 사회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지 겁이 난다. 나를 가두고 있지만 때론 그것으로 인해 평안을 얻는다면 그것을 버릴 수 있을까? 물론 누군가가 그것을 악용해 자신의 이익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그렇게 이익을 챙기는 자들에게만큼은 미억을 발휘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 그렇다면 이익을 챙기는 자를 가르는 그 기준은 무엇일까?
선행도 악행도 그것이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이라면 도대체 난 무엇을 택해야 한단 말인가? 사드는 아무래도 무정부주의자로서 인간은 어떻게든 그 질서를 회복했으리라 믿었던 것일까? 지금과 같은 국민을 위한 정부나 사회가 아니라면 개개인 스스로가 서로의 질서를 새로 만들고 부수고 만드는 작업을 계속해가는 것도 어떻게 보면 더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선 악덕도 미덕도 새로이 쓰여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