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휴대폰 보상판매니 어쩌니 하면서 말들이 많다. 그 덕에 나같은 사람이 나팔불었다. 휴대폰 기기를 공짜로 바꾸게 됐으니 말이다. 궂이 바꿀 필요까진 없었으나, 3년 이상 쓰면 자판이 말이 안듣는다느니 어쩌느니 하는 설명에 넘어가고 말았다. 게다가 카메라도 되고 MP3도 된다니, 이게 왠 떡이냐 했다.

하지만 참...  MP3 다운 받는다고 돈 들어가고, 게다가 그것도 컴퓨터가 에러가 나면서 제대로 받지도 못해, 도움을 요청해야하는 신세가 됐으니. 또 카메라 폰은 왠지 장식품이 되어버린듯하다. 남들은 구경났다 싶으면 휴대폰을 꺼내들고 카메라 찍는 태세를 취하는데, 난 활짝 핀 개나리꽃을 찍어보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혀 있으면서도 '길거리에서 이나이에' 라는 생각으로 머뭇거린다. 뭐가 그리 부끄럽다는 것인지 내 속내를 나도 잘 모르겠다. 그럼 도대체 왜 휴대폰을 바꾼게야? 라는 자조를 넘어선 자책까지 인다. 낭비를 한 것은 아닌지라는 후회말이다. 순환되지 못하는 물품에 대한 소비욕구말이다.

어쨌든 손에 들고 있으니 최대한 활용하는 것만이 남는 것. 나를 둘러싸고 있는 왠지 모를 겉치장을 한번 찢어보자. 새 휴대폰을 계기로 말이다. 참 내, 기기 하나 바꿨다고 이렇게 자그만 것에 흔들리는 내 모습이 너무 우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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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살이 2006-03-28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근데 근심 걱정도 하루만에 뚝딱 사라져야 하는데...
 

갑작스레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들어본 목소리. 반가움이 앞선다.

그런데 느닷없이 OO가 죽었단다. 몇달 전 골수암으로 1년 가까이 투병생활을 했다는 소식을 전해듣고, 병원비 모금에 몇 푼 안되지만 보탠지가 엊그제 같았는데. 그런데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리 슬프게 다가오지 않았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온 그림자였기 때문이었을까. 잊고 지냈던 주위 사람들의 안부를 전해들은 것처럼 담담했다. 그 친구는 나와 중학교 동창이면서, 대학 선후배 사이이기도 한 묘한 인연을 가지고 있었는데.

장례식장을 찾아갈 때까지도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주위에 젊은 나이에 저 세상으로 간 친구가 유독 많아여서일까? 담담하게 부조를 하고, 영정 앞에 섰을때, 잔잔하게 있던 내 감정의 물결이 파동을 일으켰다. 환해 웃고 있는 녀석의 사진. 너무 맑게 웃고 있었다. 최근에 본 것이 5, 6년 쯤 전으로 생각되는데도 불구하고, 그 모습 그대로 웃고 있었던게다. 영정을 튀어나오는 웃음 소리가 들릴듯이 활짝.

이제서야 그의 죽음이 느껴진다. 아니, 오히려 더 믿기지 않는다. 그토록 젊은 나이에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내다 이승의 사람들과 헤어져야 했던 그의 심정은 어땠을지. 그냥 자리를 빨리 뜨고 싶었다. 장례식장에서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과 어설픈 인사를 나누고 급히 병원을 나왔다.

그의 죽음이 나의 일상을 흩트려놓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잊혀질것 같지도 않다. 죽음이 그렇게 찾아온다면 산다는 것은 도대체 무어냐? 세상에 대한 집착의 끈을 과연 어디까지 놓아야만 하는가? 피지도 못한 꽃에 마음이 아프다. 난, 지금 제대로 살고 있는 것일까? 착잡한 마음에 해답없는 질문을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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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수요일, KBS <환경스페셜>에서 독수리를 보여줬다. 현재 세계에 만마리 정도 남아있는 보호종인 독수리는 최근 한국에서 자주 눈에 띤다.  주로 몽고의 여러 지역에 퍼져살고 있는 독수리는 강추위를 피해, 먹이를 얻기 위해, 한국 땅을 찾는 것이다. 철원지방에서 간혹 보였던 독수리들이 최근 광양까지 내려올 정도로 남하한 것은 순전히 먹이 부족때문이다. AI 영향으로 각 지자체들이 철새들에게 먹이를 주는 것을 금지함으로써 힘이 약한 것들이 밀려나게 된 영향인 것이다. 이것은 반대로 그 이전까지 각 지자체들이 무분별하게 먹이주기 행사를 관광자원으로 활약하면서 독수리들이 떼로 몰려들도록 유도한 데에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실은 개인적으로 독수리도 철새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게 됐다. 그저 맹금류, 특히 하늘을 나는 용맹한 새라고만 생각해왔는데 말이다. 아무튼 AI 의 전파체로서 독수리가 실제로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한 검증없이 관광의 미끼로 사용했다가 가차없이 저버리는 행정으로 말미암아 독수리는 배고픔과 싸워야만 하는 처지에 몰렸다는 것이 이내 슬프다. 또한 사람의 선입견이 얼마나 잔인한 짓을 저지르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있다. 나도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알게 된 것인데, 독수리는 사체만을 먹는다고 한다. 살아있는 것을 사냥해서 먹이를 취한다고 생각해온 것은 순전히 잘못된 편견일 뿐인 것이다. (세상에, 독수리가 하이에나였다니...) 그런데 이런 편견으로 말미암아 마을 주변까지 먹이를 찾아 날아온 독수리들을 오리 우리에 가둬버리고 굶기는 잔혹한 일도 생기고 있다. 반면, 광양의 흑염소 목장에선 도중에 죽어버린 염소들의 사체를 벌판에 뿌려줌으로써 독수리들이 깨끗하게 청소를 하고, 배부를 수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두기도 한다. 물론 이것도 함정은 있다. 그 사체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모른 상태에서 어떤 오염원이 있는지에 대한 검사없이 주어지는 것은 아무래도 위험한 일인 것이다.

먹이를 인위적으로 주어서 독수리의 개체를 늘리는 것이 과연 정당한 일인지에 대한 논란은, 독수리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있을 정도로 자연이 복원된다면 쉽게 풀릴 수 있는 문제다. 물론 그 복원이란 것이 너무 어려운 일이라는게 문제지만.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먹이를 한 입이라도 더 먹기 위해 서열마저 무너지고, 야성마저 사라져버린 독수리들의 치열한 몸싸움을 보자니 너무 가슴 아팠다. 아무리 비정한 생존경쟁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그토록 비열하게 만들어버린 것은 인간의 탓이다. 야성이 사라진 독수리가 상상이 가는가. 가축처럼 되어버린 독수리라니...

독수리가 다시 힘차게 날 수 있는 날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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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3-09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뵙겠습니다.
방명록에 인사를 드릴까 하다가
독수리 글 읽고 너무 동감하여 여기다 인사를 드립니다.
저는 알라딘의 말 많은 파란여웁니다. 꾸벅~
어제 이 방송 보면서 말문을 잊었습니다.
조만간 독수리 공부를 해 뵈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철창안에 갇힌 독수리와 농장 주인의 얼굴 두꺼운 거짓말..
인간의 위악성에 치가 떨립디다.

오대산 사진을 보면서 예전 산행이 떠오릅니다.
갖다와서 서투른 그림을 한 장 그린 것도 어딘가에 남아 있을테지요.
앞으로 종종 님의 서재에 꼬리를 감추고 들락날락해도 되겠습니까?

하루살이 2006-03-09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반갑네요. 파란 여우라니. 제가 여우보단 늑대를 좋아하지만 색깔 중엔 파란색을 제일 좋아한답니다.^^
방송을 보면서 치가 떨리던 기억이 다시 떠오르네요. 님은 독수리에 대해 공부까지 하겠다니... 훌륭하십니다. 그리고 그림이라... 왠지 파란여우와 무척 잘 어울리는것 같네요. 꼬리 감추지 마시고 자주 들러주세요. 저도 마실가겠습니다.
 

지난 토요일이었던가, 일요일이었던가. 카톨릭 신학대학교의 학과일정이 TV를 통해서 드러났다. 150년만에 처음으로 공개된 신학생들의 삶은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영원과 하루>라는 제목으로 KBS 스페셜로 방송됐는데, 삶의 경건함을 느끼게 만드는 힘을 지니고 있었다.

만 30세 이전의 학생들에게 입학이 허용되고, 같은 해에 입학하면 군대를 같이 가거나, 그 기간동안 봉사활동을 함으로써 전체가 함께 같은 일정을 가도록 짜여져 있는 그들의 모습이 한편으로 숨이 막힐듯하다. 하지만 이런 하나됨이 남다른 일체감을 주리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러나 또한 불필요한 생각일듯 싶지만, 이것이 카톨릭 조직이라는 곳에서 권력싸움의 밑바탕이 되지않을까 불손한 상상을 해본다.

가족과 친구들의 우려, 걱정 속에서 들어간 신학대학교의 삶이 그들이 무엇때문에 이 길을 택한 것인지를 끊임없이 묻게 만드는 것 같았다. 동년배들이 느끼는 생각, 욕구와 동떨어진 삶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은 그들에게 무슨 의미일지 차분히 보여주는 속에서, 나 또한 명상에 잠긴다. 특히 그들이 대답하기를 꺼려했던 이성과의 관계를 큰 의미의 사랑으로써 이해하는 것을 넘어, 과연 어떻게 그 유혹을 이겨냈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졌던 것은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중도 탈락한 학생들의 이야기였다. 프로그램 속에서도 탈락율이 35%에 이른다고 알려주고 있지만, 무엇이 이들에게 그토록 단단했던 신념을 깨뜨리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데는 다소 소홀한듯 싶다.

다만 졸업반, 성직자의 길을 택하기전 휴학한 학생의 입을 빌려 이야기해보면 그들의 갈등을 조금이나마 엿볼수 있을 것 같다. 과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희생함으로써 이루려고 하는것, 그것으로 가느 것에 일말에 후회가 없을 것인지에 대한 회의. 그것은 단지 신학도로서만의 문제는 아닐듯 싶다. 믿음이라는 것은 오직 종교적인 차원에서만 다루어질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내 꿈을 향해 걸어가는 길. 그것에 대한 믿음 역시 이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지금 내가 이토록 고민하고 있는 것도, 그 휴학생의 고민과 많이 닮아 있는 듯하여, 그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TV가 보여준 65%의 신학도들보다 35%의 탈락자들이 지금은 어느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 것인지 정말 궁금했다.

믿음, 그리고 흔들림, 선택, 그리고 후회.

삶은 어떤 것도 확실하지 않은 것 같다.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도 없다. 다만 한발 한발 내딛는 내 발자국만이, 비록 비틀거리고, 주춤댈지라도, 온화하기만을 바랄뿐이다. 질질 끌려가지않고, 더디더라도 힘차게 내 딛어지기만을 바랄뿐이다. 무지개를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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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NY 2005-12-2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셔요?
저도 이 프로그램 봤어요. 서류상 심정상 천주교 신자로서 35%에 든 사람들도, 65%에 들었으면서도 나중에 탈락해버리는 사람들도 보아왔지요. 점점 사제지망생이 줄어든다고 걱정하면서도, 역시 주위에서 한다고 하면 잘 생각해보라고 일단 말려보고 싶어요. 그래도 그 분들은 일생을 걸 무엇을 발견했다는 거겠지요. 그리고 그 프로그램에서 인터뷰한 어느 신학생이 '남들이 다 하는 일 못하기도 하지만, 남들이 못하는 일을 하는 기쁨'을 얘기하던 게 기억에 남아요. 그런 확신과 정열, 실천력이 있다는 게 부러웠고 존경스러웠답니다.

하루살이 2006-01-01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제 지망생이 줄어드는 걱정보다는 진정한 사제가 줄어들고 있지 않는가가 더 큰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신과 정열, 실천력을 죽는 날까지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정말 존경스러워할만한 일이겠죠. 님께서도 새해에는 그런 정열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지난달부터 한달에 하루는 굶어보자고 생각했다. 무슨 거창한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다. 하루 끼니를 굶은 돈으로 배곪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모금에 나서는 것도 아니요, 결식아들의 배고픔을 직접 체험해보자는 뜻도 아니다. 그저 순전히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 욕심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TV를 끄고 온종일을 보내다 보면 하루가 이렇게 풍성해질 수 있을까 놀라게 된다. 매일 TV를 끄고 살지 않지만 그래도 가끔은 TV나 라디오 없이 하루를 보내면서 행복해한다. 물론 처음엔 조금 불안하기도 하고, 초조하기도 하지만.

순전히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우리가 일주일에 한번 재충전을 위해 회사나 학교를 쉬는 것 마냥, 나의 몸뚱아리도 가끔은 쉬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말이다. 내 몸 속에 보이지 않는 내장들도 가끔은 쉬어주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괴상망측한 생각으로부터 하루 단식은 시작했다. 좀더 행복해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하루 단식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는 하루 반 정도다. 토요일과 일요일 저녁 전까지. 먹는 것은 차나 생수. 이런 날엔 TV도 보지 말아야 할 것을, 프로그램은 온통 음식 이야기다. 돌리는 채널마다 먹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배고픔은 그야말로 고통이다. 다이어트보다는 살을 찌워야 할 판에 내가 지금 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한번 작정했으니 끝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참아낸다. 머리 속에 계속 어른대는 음식들. 빨리 시간이 지나갔으면 하는 바람. 내가 얼마나 식욕이라는 탐욕 앞에서 무력한지를 실감하게된다. 그리고 굉장히 많은 시간을 먹는 것에 소비하고 있었다는 것도 알게된다. 음식을 준비하고, 밥상을 차리고 ,먹고, 설겆이 하고. 우리네 삶에 먹는 것만큼 소중한 것이 없으니, 하루의 많은 부분을 공들여 준비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다시 느끼는건대, 하루 단식을 끝내고 먹게되는 밥은 그야말로 꿀맛이다. 쌀 한톨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 내장도 푹 쉬워 행복해했을 테지만 혀와 뇌는 더욱 행복해진다. 물론 인내의 열매이긴 하지만.

끼니의 소중함, 참기 어려운 탐욕의 실체. 하루 단식은 의외로 많은 것을 가르쳐준다. 이제 두번 시도해봤지만 아무래도 익숙해지기는 힘들것 같다. 내가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할까 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실험을 해볼지 확신할 순 없지만 나태해진 나의 마음을 일깨우는 소중한 경험임에는 틀림없다. 가끔은 비워보자. 결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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