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으로의 출장. 빡빡한 일정이었다. 기내에서 2박을 포함한 2박 4일의 일정.

사이판은 휴양지다. 마음을 풀어놓고 시간을 잊으며 지낼 수 있는 곳.

가이드의 말이 마음을 흔들었다.

한국사람들이 오면 빨리빨리 가자고 자꾸 요구하는데요, 이해가 안가요. 이 조그마한 섬에서 빨리가면 뭘 하려고 그러는지... 도대체 무슨 할일이 있다고 빨리 가자는 건지 말이죠.

그런데 난 이곳에서 왜 이리 허겁지겁 난리법석인가.

바다에 나가 2시간 동안 고기를 잡고 돌아와 친구들과 술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며 한가롭게 지내는 어부에게 한 도시인이 물었다. 조금만 더 고기잡이에 나서면 고기를 내다 팔 수 있을테고 돈을 모을 수 있을텐데요.

돈을 모아서 뭘 하게요.

그러면 배를 한척 더 사서 더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고, 그러다보면 고기를 가공해서 팔 수 있는 공장도 지을 수 있죠.

공장을 지으면 뭐가 좋은데요.

훨씬 더 돈을 잘 모을 수 있죠. 그러면 노후에 돈 걱정없이 친구들과 술 마시며 이야기도 나누고, 한가롭게 지낼 수 있을테니까요.

전 지금 그렇게 살고 있는데요.

 

지금까지 제일 부러워했던 사람은 열정을 지닌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조금씩 균열이 가기 시작하더니 이번 사이판에서 그 틈새가 꽤 벌어졌다. 열정, 정열은 정말 최고의 미덕으로 삼을만한가?

살아가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본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그래서 내 삶도 갈팡질팡이다. 언제까지 내 인생이  흔들거릴지 걱정이다. 그런 마음마저 내버려둬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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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S에서 <다큐 인> 이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발레리나, 한국무용에 빠지다>라는 타이틀로 방송된 2부작이었다.

한국 최고의 프리마 발레리나 김주원 (31세. 現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이 정동극장의 2007 ‘아트 프론티어’ 2번째 주자로 선정된 다음,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그녀의 무대에 동참하는 사람 중의 하나는 동갑내기 한국무용가 이정윤. 국립무용단 수석무용수인 정윤은 이번 공연에 안무가이자 무용가로 참여해 색다른 무대를 준비중이다. 다큐 인은 이 두명의 무용수들이 무대에 서기까지의 과정을 담아내고 있다.

발레와 한국무용이라는 것은 선이 달랐다. 끊김과 이어짐의 모습도 천지차이다. 그 느낌도 다르다. 이런 차이를 서로가 극복해가는 과정이 잔잔한 감동을 주는 다큐였다. 특히 1차 최종연습이 끝나는 부분이 나오는 2부 첫 장면은 가슴이 뭉클했다. 둘의 갈등이 최고조로 달한 부분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정윤의 까다로운 요구와 비평은 주원의 눈에 눈물을 맺게 했다. 그 눈물을 보는 순간 왠지모를 슬픔이 밀려왔다. 난 눈물을 보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른다. 드라마든 영화든 다큐든 눈물을 보게 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래서 왠만하면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 나오는 프로그램은 보지 않으려 한다. 현실 속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 내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 도대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몰라 굳어버린다. 위로? 과연 위로가 가능하던가. 내가 눈물을 흘릴 때 누군가 옆에서 위로를 해주면 더 나았던가. 말없이 어깨를 두드려준다. 글쎄, 이것도 허물없는 사이였을 때나 가능하지 않겠는가. 그냥 옆에 있어준다. 아~ 이건 또 얼마나 무안한 일이던가. 그래서 눈물은 참 어렵다. 흘리는 일도, 흘려지는 것을 보는 일도. 그래도 실컷 울면 나아진다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그래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에겐 오직 해줄 수 있는 것은 실컷 울도록 그냥 놔두는 일이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이지만 그래도 참 당혹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주원의 눈물이 그친 후, 정윤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발바닥이 보여졌다. 쩍하니 갈라진 발바닥. 난 그 고통을 안다. 그렇게 깊게 찢어진 피부를 간직했던 적이 여러번 있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정윤의 발바닥은 그래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아물면 다시 찢어지고, 또 아물면 찢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들. 찢어질 것을 알면서도 다시 그 행동을 해야만 하는 열정.

주원의 눈물과 정윤의 발바닥은 프로가 무엇인지를 깨우쳐준다. 아니, 프로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열정이라고 말하는 것이 낫겠다. 열정이란 그런 것이다. 내가 뜨거운 사람이라고 굳이 말하지 않아도 온 몸으로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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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와 중국 사이에 끼여 있는 부탄. 경제지수는 세계 199위. 하지만 행복지수는 아시아 1위.

왕이 다스리는 왕국. 왕 앞에서 행진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니 군대가 떠오르더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사람들 얼굴에 미소가 가득하다는 것과 발을 제대로 맞추지 않는다는 것. 규율 속에 흐트러진 모습이 공유하고 있는 이 행진의 모습이 부탄을 대변하는 것 같았습니다.

물질적 풍요가 행복과 비례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부탄의 삶은 충격입니다. 무엇인가 더 가져야만 행복해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지만 행복은 그것과 비례하지는 않습니다. 차마 무관하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배고픈 사람들이 마음만 비우면 행복하다고 말하는 것과 같을테니까요.

누군가는 국가의 소득이 만달러에서 만오천달러 사이까지는 행복지수가 증가하다가 그 이상이 되면 오히려 감소한다고 하더군요. 무슨 지수라고 하던데 잊어버렸습니다. 아마도 만달러 정도가 배고픔을 해결할 수 있는 소득 수준인가 봅니다.

그런데 이 과학적(?) 통계가 부탄에 적용되지는 않잖아요. 물론 부탄이 기아에 허덕이는 나라는 아니니까 가능한 일이겠지만...

논과 밭에서 사슴들이 먹이를 찾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라거나, 두루미를 신성시하는 장면에서 평온함을 엿봅니다. 특히 두루미는 칠천미터가 넘는 히말라야를 넘어온다고 하더군요. 부단한 날개짓으로 오르는 것이 아니라 히말라야를 넘어가는 바람을 타고서 말입니다.

바람도 안개도 물도 사슴도 두루미도 모두 소중한 곳. 타인을 짓누르지 않고도 나를 나이게 하는 곳. 그래서 행복하지 않을까요, 부탄은.

나는 정녕 행복한지 묻습니다. 그리고 행복하려고 무엇을 하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행복조차 잊고 살았던 것은 아니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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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7-01-12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셨군요.전, 이 스페셜 보면서 부탄에 가서 살고 싶어집니다.
몸도 마음도 다 열고 하늘과 땅에 스스럼없이 기대어 살고 싶어요.
살 수 없다면 그 해맑은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작은 마을을 한 번이라도 방문하든가.
우리나라는 정말 너무 많이 잘못 되어가고 있어요.
부탄을 가려면 어떻게 가야 하는지, 언어는 어떻게 해결하는지..경비는 비쌀까...
별 생각을 다 하면서 잠을 잤답니다. 내가 나로 순수하게 살 수 있는 땅.
그곳에 가고 싶어요.

하루살이 2007-01-14 2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곳에 가고 싶어요.
그런데 우리가 꼭 가야만 할까요. 우리 땅에서 그런 마을을 만들 순 없을까요.
제 꿈은 그런 마을 하나 만들어(?) 보는 겁니다.
마음 맞는 사람끼리 모여 살면 혹시 가능하지 않을까요.
아무튼 만년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들의 자연환경은 너무 부러웠어요.

icaru 2007-01-18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탄은 가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라도 있었네..!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서 졸린 눈 비비적거리며, 나는 행복한가 생각해보곤 하는데... 행복한 거야! 그럼 더 생각하지 말자구 함서 다독이죠~

하루살이 2007-01-21 20: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ㅋ. 그래서 청소년 중에 행복해보고싶다고 가스를 들이키는건가?(농담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행복이라는 단어조차 알지못할지도...
또는 행복의 종류는 백팔가지가 있는데 하며 장황한 설명을 해 줄지도 모르는 일이죠.
어쨋든 한바탕 신나게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도시의 불빛은 아름답다. 밤을 밝히는 그 노란 빨간 하얀 불빛들이, 특히 한강 다리의 초록 보라 등의 불빛들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어둠이 없는 도시. 아니, 어둠을 물리쳐낸 도시의 불야성은 그 노고만큼 아름답게 보이는지 모른다.

하지만, 하동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버스 차창 밖. 시골의 논두렁이 환하다. 비닐하우스 속에서 몇만촉의 빛을 발하고 있다. 이 빛은 전혀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는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농한기라는 겨울에도 작물을 키워야 하는 농부의 마음이 오죽할지 짐작이 안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둠은 때론 휴식이다. 세상을 잊게 만든다. 감시의 눈초리로부터 도망치도록 도와준다. 망각으로 인도함으로써 내일의 빛 속에서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준다. 어둠은 철저히 어두워야 제맛이다. 시골에서 바라보는 달빛과 별빛이 아름다운 것은 어둠 덕분이다. 이 어둠이 시골에서도 사라졌다.

도시의 빛은 그토록 아름다웠건만 새하얀 하우스의 불빛은 눈을 거스린다. 도로 위를 지나쳐가는 나그네의 심정으로 바라보기 때문일련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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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acina 2006-12-10 20: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엉뚱하지만 빛에 대한 말씀을 하시니, 사진전이 생각나요. 예술의 전당서 본 만레이전 만레이전 & 세계사진역사전 생각요.솔라리제이션기법처럼 세상과 또 다른 세계에 관해,주인장님께서 독특한 빛을 발하여 주시는 것 아시죠? 영혼이 황페할 때 늘 힘이 된답니다^^감사&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늘 건강하세요~

하루살이 2006-12-11 0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맙습니다^^ 제 황폐한 영혼도 따스해지네요. 님도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
 

최근 스포츠클라이밍 기초교육을 받았다. 월수금 일주일에 3일 2시간씩 한달간 진행된 교육은 결석이 4번 이상 되면 수료증을 받을 수 없다. 정확하게 3번 결석하고 수강을 끝낸 덕분에 다행히도 수료증을 받았다. 교육은 상당히 힘들어 다음날이면 으례 몸이 찌뿌등했다. 2시간 내내 암벽을 오른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15분 정도, 잘 하면 2번 15미터의 벽을 오르는 정도인데도 말이다.

옆길로 새고 말았는데 하고 싶은 말은 클라이밍이 힘들다는 것이 아니라, 죽는다는 것의 공포감에 대해서다. 벌써 3년 가까이 되는 교통사고의 기억은 죽음이라기 보다는 그저 잠깐의 망각 정도로 기억된다. 살아남았기 때문에 돌이켜보면 죽음의 그림자보다는 해프닝의 햇살만 보인다는 것이다.

클라이밍을 할 때는 자일을 허리에 걸고 오른다. 안정장비를 다 갖추고서 오른다는 말이다. 마지막주 월요일 수업때는 추락실습도 있는데 12미터 쯤에서 8미터가량을 떨어져 혼쭐났다. 하지만 죽음의 냄새보다는 그저 아찔하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렇다고 죽음에 대해 겁을 내지 않는 강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혹시나 매듭을 잘못 매서, 또는 확보자가 하강기를 실수로 다루어서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항상 갖고 벽을 오른다. 떨어지면 죽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난 적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암벽을 대할때면 이런 생각은 사라지고, 한번에 끝까지 올라서겠다는 의지만 불타오른다. 물론 팔에 힘이 떨어져 추락할때는 긴장하지만 말이다.

몇일 전 꿈을 꿨다. 소총을 든 사내들이 나를 트럭 뒤칸에 실으려한다. 나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트럭에 오른다. 가슴이 두근두근. 어느덧 널따란 평원에서 차는 멈추고 다들 트럭에서 내린다. 그런데 갑자기 나 혼자 줄에서 이탈해 다른 쪽으로 끌려간다. 그리고 찾아오는 죽음의 그림자. 총을 든 사내들이 거총을 한 것도 아닌데 끌려가는 내내 죽음에의 공포감이 밀려왔다. 이대로 죽는건가 라는 생각이 꼬리를 물자 온 몸이 떨려오기 시작했다. 꿈 속인데도 말이다. 너무 무서웠다. 살고싶었다. 이토록 내가 강렬하게 삶을 원했었나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떴다. 그래 이렇게 살아있구나. 난 이토록 살고싶었구나.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 <종말의 바보>가 생각났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악착같이 살아라. 삶은 이렇게도 고귀한 것이었음을 꿈을 통해 느낀다. 왜 이런 꿈을 꾸었을까 생각해보다 사는게 사는 것 답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으로 이불을 걷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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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6-10-03 0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고도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하루살이님, 정말 악몽이었지만 깨달음을 얻었네요 ^^ 스포츠클라이밍을 하시다니 대단하십니다..

하루살이 2006-10-03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도 영화 <우행시> 꼭 보고싶었는데...
클라이밍은 기초 교육만 받았어요. 제가 써 놓은 글 읽어보니 굉장히 어려운 것처럼 느껴지네요. 그런데 실제론 만만하답니다. 몸매 바르게 잡아주는데 최고일듯하니 혹 시간이 나신다면 도전해보세요. 안전장비만 유의한다면 정말 괜찮은 운동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