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온 세상이 한 가지 말을 쓰고 있었다. 물론 낱말도 같았다. 2. 사람들은 동쪽에서 옮아 오다가 시날 지방 한 들판에 이르러 거기 자리를 잡고는 3. 의논하였다. "어서 벽돌을 빚어 불에 단단히 구워 내자." 이리하여 사람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흙 대신에 역청을 쓰게 되었다. 4. 또 사람들은 의논하였다. "어서 도시를 세우고 그 가운데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 탑을 쌓아 우리 이름을 날려 사방으로 흩어지지 않도록 하자." 5. 야훼께서 땅에 내려 오시어 사람들이 이렇게 세운 도시와 탑을 보시고 6. 생각하셨다. "사람들이 한 종족이라 말이 같아서 안 되겠구나. 이것은 사람들이 하려는 일의 시작에 지나지 않겠지. 앞으로 하려고만 하면 못할 일이 없겠구나. 7. 당장 땅에 내려 가서 사람들이 쓰는 발을 뒤섞어 놓아 서로 알아 듣지 못하게 해야겠다." 8. 야훼께서는 사람들을 거기에서 온 땅으로 흩으셨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도시를 세우던 일을 그만 두었다. 9. 야훼께서 온 세상의 말을 거기에서 뒤섞어 놓아 사람들은 온 땅을 흩으셨다고 해서 그 도시의 이름을 바벨이라고 불렀다. (성경 창세기 11장 1절부터 9절)
바벨탑과 두바이
성경 속 창세기에 나오는 야훼는 하나의 언어, 한 곳에서의 정착 즉 도시의 창조를 반대하고 인류를 흩어지게 만든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창세기 속 바벨탑은 하늘에 닿을만큼 높은 건물로서 이름을 날리고 사람을 모이게 하는 구심점 역할을 한다. 그런데 바벨탑과 같이 높은 건물에 대한 욕망은 현재도 진행형이다. 그 나라 또는 도시의 부, 기업의 세, 힘의 상징이자 랜드마크(도시의 이미지를 대표하는 특이성 있는 시설이나 건물을 말하며, 물리적, 가시적 특징이 시설물뿐만 아니라 개념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는 추상적 공간까지도 포함)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 또한 100층이 넘는 건물을 짓고 있는 중이다(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동북아트레이드타워로 65층에 305m에 달한다). 참고로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두바이에 있는 부르즈 할리파로 163층 828m에 이르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바벨탑이 있었던 자리로 추정되는 곳이 두바이와 가까운 현재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이다. 거의 평지에 가까운 사막 한가운데에 우뚝 서 있었던 바벨탑은 높이가 91.5m일 것이라 여겨진다. 높이 249m인 63빌딩의 절반에 조금 못미치는 높이지만 당시로서는 하늘에 닿을듯한 위용을 자랑했을 것이다. 이 탑은 바빌론의 네부카드데자르 2세가 아버지의 염원을 이어받아 완성했다. 그는 당시 강대국이던 바빌론의 위상을 이 탑을 통해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어했다. 바벨탑은 최소 3600만~7500만개의 벽돌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를 찍어내고 쌓기 위해선 엄청난 재원이 필요했다. 당시 재원을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전쟁이었다. 그는 지금의 시리아, 요르단, 이집트까지 정복했다. 하지만 이런 영광도 기원전 482년 페르시아 침공으로 끝이 난다. 전쟁 중 감시탑으로 쓰일 수 있다는 이유로 바벨탑은 철저하게 파괴된다. 마치 세계 최고 빌딩을 지닌 두바이가 부동산 거품이 꺼져 휘청거리듯이 말이다.
증오의 시선
기원전 597년엔 바빌론 유수가 있었다.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유대인들은 포로로 바빌론에 끌려갔다. 당시 바빌론은 15만명(로마 흥성기때 인구가 12만 정도였다)의 인구가 살고 있었던 최대 도시였다. 끌려간 유대인들은 도시를 지탱해주는 노예로 생활했을 것이다. 그들이 바라보는 바빌론과 바벨탑은 놀라움이자 증오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바벨탑은 지구라트로서 꼭대기에는 마르둑신을 모시고 있었다. 신 중의 신이며 생존하고 있다고 여겨진 신이었다. 유대인들 눈에는 얼마나 마땅찮은 일이었겠는가. 창세기에 나타난 바벨탑에 대한 이야기가 부정적으로 묘사되어진 것은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작용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본다.
그런 측면에서 우리가 한때 북한이나 일본을 바라보던 시선도 옛날 유대인의 시선과 닮아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지금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바벨탑을 바라보는 유대인과 닮아있는지 돌아볼 일이다. 설령 미워하더라도 진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용감한 눈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