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맥박은 다시 정상범위 안으로 돌아왔다. 아내의 눈물은 그제서야 그쳤다. 그러나 그 눈물 자국이 채 마르기도 전에 수축이 찾아왔다. 수축이야 계속 있어왔지만 불규칙적이었을 뿐만 아니라 빈도도 적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사흘전 병원에 입원할 때처럼 진통이 시작된 것이다. 6~7분 마다 찾아오던 수축은 어느새 4분 마다 진행됐다. 수축 억제제도 더이상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양수나 태반 쪽에 감염이 있었는가 보다. 의사는 더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젠 하늘에 맡겨야 할 순간인가. 더이상 욕심을 부리는 건 아이에게도 아내에게도 도움이 되지 못한다.
조용히 아내의 손을 잡았다. 1~2 시간 이었지만 그만큼 더 버티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고작이라는 말 보다는 엄청이라는 말이 어울릴 시간이었을 것이다. "힘내"라는 말 밖에는 건넬 말이 없었다. 손을 잡아주는 것 말고는 사랑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실은 내게도 용기가 필요했다. 앞으로 어떤 상황들과 맞닥뜨려야 할지 두려웠다. 하지만 잠시 미래를 미리 생각하는건 접어두기로 했다. 그 모든 생각들은 기우로 그칠 것임을 알고 있기에. 아내의 손을 통해 나도 새로운 기운을 낸다.
아내는 수술실로 향했다. 수술은 그리 길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수술실 너머로 멀어져가는 아내의 침상을 바라보며 기도를 했다. "부디 굽어 살펴주소소. 지금 이순간 아내와 아이에게 사랑을 베풀어 주소소."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리며 같은 층에 있는 신생아 중환자실과 임산부 병실 앞을 서성거렸다.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다가가 확인했다. 이렇게 반복하기를 1시간이 조금 넘었을까. 작은 아기를 실은 인큐베이터가 나타나 쏜살같이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갔다. 정말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직감적으로 우리 아기임을 알아챘다. 2초 정도 스쳐지나간 아기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아른거렸다. 가슴이 아팠다. 그때 수술이 끝났다는 휴대폰 문자가 왔다. 하지만 마취가 풀릴 때까진 시간이 더 필요했다. 1초 1초가 너무 더디다. 요즘 나에게 있어 시간은 바이러스에 걸린 컴퓨터같다.
1시간을 더 넘게 기다린 끝에 아내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퉁퉁 부어 오른 얼굴을 보니 너무 안쓰럽다. 10여 년 전 어머니가 수술을 받은 후 마취가 잘 깨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다시는 이런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랐는데...
아내는 아이의 상태를 궁금해했다. 안아주기는 커녕 얼굴조차 보지 못하고 중환자실로 이동해 버린 아이. 아빠인 나로선 탯줄조차 끊어주지 못했다. 아이에게 미안했다. 인공 엄마 뱃속과 다름없는 인큐베이터와 친해져야 할 아이. 그 아이의 모습이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