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이재익, 크리에이터 - 소설.영화.방송 삼단합체 크리에이터 이재익의 거의 모든 크리에이티브 이야기
이재익 지음 / 시공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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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난감…. 가끔씩 이럴 때가 있다. 책을 읽고 뭐라고 쓸 말이 없을 때…. 느끼는 게 아무 것도 없을 때…. 내가 왜 이 책을 읽고 있지? 자문하게 될 때….
그러면서도 꿋꿋하게 끝까지 읽어나간다. 그러고선 다시 묻는다. 내가 왜, 뭐한다고 이 책을 다 읽었지?
이 책 《나 이재익, 크리에이터》가 그런 책이다. 그냥 Free~ 하게 자신이 하고픈 말을 그대로 풀어낸 글, 그냥 자신의 글, 그들만의 리그에서 통할 수도 있는 뒷담화 같은 글, 지인들이 예의상 읽어줘야 하는 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책을 느껴졌다. 굳이 좋게 평가하자면 다양한 직종, 직군에 대한 눈요기를 잘 했달까.


그럼 건질게 없는 책이냐? 그건 아니다. 있다. 이 책에서 내가 공감한 내용은 에필로그에 있다. 저자의 아홉 살 아들과의 대화 내용이 참 와 닿았다. 크리에이터라 자칭(타칭일수도 있겠구나)하는 저자가 말하고자하는, 크리에이티브를 적확하게 설명하는 핵심처럼 느껴졌다. 대화의 내용을 한번 보자.
"아빠 그럼 우주는 얼마나 넓어? 몇 미터야?
"우주는 끝도 없이 넓어. 무한해."
"그럼 우주는 어떻게 잴 수 있어? 세상에서 우주가 제일 커?"
"우주보다 더 큰 게 딱 하나 있어. 그건 상상이야. 우주가 아무리 넓어도 넌 그것보다 더 넓은 크기를 상상하면 되잖아."
캬~ 저자의 답변이 정말 재기 있고 멋있다. 크리에이티브 하다. 훌륭하고 좋은 아버지 같다.


솔직히 본문에서는 그냥 고만고만 하였고 특별하거나 별다르게 느껴지는게 없었다.
아니, 하나 있다. "방송국 합격을 위한 청담동 이선생의 몇 가지 팁"으로 신문 기사보다 <씨네21>같은 영화잡지, <에스콰이어>나 같은 남성패션잡지에 실리는 에디터 노트를 흉내내어보면 좋은 효과가 있을 거란 것. 이거 시도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다. 좋게 말하면 솔직담백하게 자신의 과거와 생각을 풀어놓은 거지만, 쪼끔만 꼬아보면 음…. 그냥 말을 아끼자.


방송 및 작가로서 이재익 씨가 얼마나 유명한지 나는 잘 모른다. 그래서 이렇게 시니컬한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근무시간대인 두 시에 SBS 라디오「두시탈출 컬투쇼」를 들을 일은 0.01%도 안 된다. 영화를 잘 안보니「원더풀 라디오」를 못 봤다. 책은 좀 읽지만 이재익 씨의 책과는 인연이 별로 없다. 최근의 <싱크홀> 이건 서점에서 주르륵 훑어봤는데 내 취향은 아니었다.


나는 정말 내가 왜 이렇게 시니컬한지 모르는가? 아니다. 안다. 난 무르익지 않는 사람들의 에세이를 많이 싫어하는 편이다. 그런 분들의 글은 깊이가 없고 자기 자랑을 은근히 섞어 자연스러운 듯 글을 꾸며 나가는 경향이 있는데, 나는 이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저자가 꼭 그렇다는건 아니다. 이 책을 읽어보니 저자는 발전단계에 있다고 본다. 적어도 한 단계는 더 업그레이드 된 저자의 글이었으면 좋았을걸. 이렇게 나는 생각했다. 사람마다 판단기준과 느낌은 다른 법. 뭐~ 나는 그렇다고 생각을 한 가벼운 책이다.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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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 -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 Wisdom Classic 7
김경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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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학부 때 읽었는데, 젊은 혈기 때문이었겠지만 읽다가 분노가 일어 정말로 책을 던져버린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 당시 군부독재 통치자가 행하는 모든 압박의 이론적 근거가 그 책에 그대로 다들어 있었다. 군주론의 핵심은 권력을 획득하고 유지하고 확대하는 일이라면 모든 종교적, 윤리 도덕적, 논리적 가치 이런 거 신경 쓰지 말고 악해져야 한다는 거다. 한마디로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 가리지 말고 밀어붙이라는 건데, 이게 무슨 망발이란 말인가. 물론 혼잡한 당대 이탈리아의 시대 상황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이 분명 타당성을 가질지 몰라도, 이런 비민주적인 책이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은 이해도 안될 뿐만 아니라 인류의 수치라 생각 했다. 민주와 인권은 오간 데 없고 폭압적 정치행위가 무슨 사상이란 말인가. 어쨌거나 이런 통치의 지침은 우리 시대의 독재자에게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생각했다. 아래의 두 문장을 보면 이 무슨 조폭의 발상인지 그 저급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 인간들이란 다정하게 안아주거나 아니면 아주 짓밟아 뭉개버려야 한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인간이란 사소한 피해에 대해서는 보복하려고 들지만 엄청난 피해에 대해서는 감히 복수할 엄두도 못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려면 복수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아예 크게 입혀야 한다. (군주론 3장)
○ 완벽한 선을 추구하지 말고 악해지는 법도 배워야 한다. 모든 면에서 완벽한 선을 추구하는 사람은 악한 사람들 속에서 파멸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자신을 지키려는 군주는 악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군주론 15장)


졸업을 하고 세월이 흐르자 군주론을 조금 달리 보게 되는 일들이 생겼다. IMF 구제금융을 받지 않으면 안되는 인고의 시대가 도래하자 통치자의 행위와 경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권위주의 시대에 이룩한 경제 발전은 노동자의 착취와 세계 최고의 외화채무에 의한 빛 좋은 개살구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직장인들이 거리로 쫓겨나는 현실에서 군사독재시대의 경제적 성과에 대한 나의 잣대가 편향되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혹자들은 누적된 빚잔치의 결과라고 하지만 그 시대에 경제도약과 무역흑자, 그리고 역대 최고의 경제성장률을 이룩했다는 사실을 허상이었다고 애써 외면할 이유가 없다는 거다. 게다가 군부독재가 종식된 후 자유와 인권의 급격한 신장에 끼어든 '방종(放縱)'은 곳곳에서 역겨운 사회적 부조화 현상을 일으키니 처처에서 '과거가 좋았다'는 말까지 들리고 있는 판이다. 노예근성 몸에 배였다고 매도만 할 것이 아니라 정의롭고 강한 나라를 바라는 서민의 마음으로 봐줘야 하지 않을까. 게다가 오늘의 리더십 부재는 묘하게도 과거의 압제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셈이니 우리가 군주론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비난하였던 게 아닌지 모르겠다. 아래의 문장을 보면 꼭 누구의 변명 같지 않은가.


○ 악덕을 행사하지 않으면 나라를 유지하기 힘든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오명 따위는 생각하지 말고 행사하는 것이 좋다. 왜냐하면 미덕처럼 보이는 것도 실행했을 때는 파멸로 이어질 수 있고 반면에 악덕처럼 보이더라도 행하면 안전과 번영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군주론 15장)
○ 현명한 군주란 단순히 눈앞에 보이는 일만이 아니고 먼 장래에 있을 분쟁까지도 배려해야 하며, 모든 노력을 기울여 이에 대처해야 한다. 위험이란 미리 알면 쉽게 대책을 세울 수 있지만 코앞에 닥쳐올 때까지 그냥 보고만 있으면 그 병은 악화되어 불치병이 된다. (군주론 3장)


이야기가 군주론으로 흘러가 버렸는데, 이번에 읽은 책은 <군주론>이 아니라 김경준씨의 <지금 마흔이라면 군주론>이란 책이다. 저자는 불혹의 나이에 군주론에서 개인과 조직의 생존 및 번영을 위한 보편적 진리를 찾은 모양이다. 마키아벨리의 현실적 리더십을 중시하여 군주론을 "시대를 뛰어넘는 '세상과 인간'에 대한 통찰"로 치켜세우고 있는데, 그대로 수용하기엔 조금 불편하나 '이상이 아니라 냉정한 현실에서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을 말하고자 하는 저자의 메시지는 대체로 알아보겠다. 저자의 핵심은 선과 악의 피상적인 개념을 초월하여 변화를 주도하고 번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는 리더십이 군주론에 있다는 것 아니겠는가. 비록 마키아벨리즘이 비열한 권모술수의 대명사가 되기도 하였지만, 관점을 달리하여 까놓고 보면 정말 감추고 싶은 '불편한 진실'을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의 국경 없는 경쟁이나 복잡하게 얽히는 외교·국방의 영역에 들어서면 의외로 군주론의 내용에 많이 공감하게 되니 말이다.

○ 군주는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른 나라를 공격하기 위해 자신보다 강한 나라와 손잡는 일은 피해야 한다. 그것은 승리를 거두어도 그 자의 포로가 되기 때문이다. 군주는 될 수 있는 한 남의 뜻대로 되는 일은 피해야 한다. (군주론 21장)

○ 전쟁에서 어느 쪽이 승리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때는 군주가 한 나라를 지지하는 데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렇게 한 쪽을 돕는 것이 현명하다고 판단하면 구할 수도 있는 반대쪽을 멸망시키기 때문이다. 지원을 받은 편이 적국을 물리쳤다고 하더라도 도움 없이는 승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군주를 따르게 된다. (군주론 21장)


사실 직장의 간부가 되어보니 민주적인 방법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이 있음을 알겠더라. 당장 눈앞의 성과달성을 위해서는 단합된 팀웍으로 일사불란하게 나아가야 하는데, 항상 부정적인 발언으로 김을 빼는 직원이 있다. 좋은 결과를 위해 몇 번이나 '썩은 사과'를 제거해야 한다고 생각했는지 모른다. 결국 내가 택한 것은... "군주가 사랑을 받는 것과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 중 어느 쪽이 좋은가 하는 점이다. 누구나 양쪽을 갖추기를 원하겠지만, 이는 어려운 일이다. 만일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사랑받는 것보다는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훨씬 안전하다 (군주론 17장)". 이런 점에서 보면 군주론은 썩은 조직을 활성화 시키는데 일종의 지침이 되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수단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일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군주 또한 모양새 좋게 챙길 것은 챙겨야 할 건데 이 점에 관한 군주론의 조언을 한번 보자. 어째 작금의 리더를 떠올리게 하는 뭔가가 있어 보인다.

 

○ 미움을 받는 일은 타인에게 떠넘기고 인기를 얻는 일은 자신이 친히 해야 한다. 군주는 귀족을 존중하는 한편 대중들의 미움도 받지 않도록 해야 한다. (군주론 19장)

○ 타인에 의존하는 경우는 항상 실패한다. 자력으로 추진할 때에는 별다른 어려움을 겪지 않는다. 그래서 무장한 예언자는 승리할 수 있으나, 말뿐인 예언자는 멸망하게 마련이다. (군주론 6장)


이 책이 군주론을 바탕으로 동·서양의 여러 사례를 적절하게 소개하여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군주론을 지금 시대의 패러다임에 끼워 맞출 수 있다는 생각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합종연횡과 전략적 제휴의 본질은 우정이 아니라 이익이다', '경쟁과 변화는 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자기 운명은 자기가 지배하지 않으면 남이 지배한다.', '강한 자에게는 운명도 고개를 숙인다.', '멀리 내다보고 깊이 생각하라'는 제목만 봐도 군주론을 재해석하는 저자의 생각 깊이를 알 수 있으나, 당장의 이익을 위해 부정을 저지르고 정도에서 벗어난다면 얻는 것보다 더한 상실과 파괴를 가져온다는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곧 대선으로 새로운 지도자를 우리는 맞이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대선 후보군에서 군주론이 어울릴만한 분은 없어 보인다. 모두 민주적이며 자기 몸을 희생해 구국의 결단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군주론에 의거하여 건질만한 조언들은 몇몇이 있다. 서구의 속담에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고 했던가. 복지 포퓰리즘에 무너지고 있는 유럽의 몇몇 나라를 보면 약자의 권리를 보호한다는 선의(善意)가 정말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이 되고 말았다. 표심을 잡기 위해 남발하는 대중영합주의 공약은 공동체 전체를 회복불능으로 만들 수 있다. 책 속에 나오는 내용 두 가지만 인용하면서 마무리를 해야겠다.

 

○ 마키아벨리는 리더가 관대한 정신을 가지는 것은 바람직하나, 물질을 베풀어 관대하다는 평판을 얻으려는 것은 파멸의 전주곡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의 인기를 끄는 것으로 충분한 연예인이과는 달리, 리더는 인색하다는 평가를 감수하더라도 공동체의 기초체력을 키우고 장기적 관점에서 발전시켜야 하는 책무가 있기 때문이다. 마키아벨리가 '리더는 진정으로 관대해지기 위해서는 인색하다는 악평을 감수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리더란 대중의 인기에 울고 웃는 연예인이 아니라 올바르게 인정받는 리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171쪽)

○ 마을에서 유부녀가 바람났을 때 모두가 아는데 단 한사람만 모르고 있다. 그 사람은 남편이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리더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정작 중요한 정보에서는 소외되는 경우가 많다. 지위가 높을수록 생생한 정보에서는 멀어지는 역설이 생겨난다. 리더는 물론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이 없으면 문제가 없는 것으로 착각한다. (19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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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 -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구본형 지음 / 와이즈베리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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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인류가 겪는 온갖 불행의 시작이며 한줄기 희망의 상징. 그리스·로마 신화는 어릴 적부터 두어 번 이상 보고 자라나는 시대인지라 판도라의 상자에 대해서는 기본적으로 알고 있다고 본다. 인간을 몹시 사랑한 프로메테우스는 헤파이스토스의 대장간에서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고, 이를 신성모독으로 여긴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바위산에 묶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 먹게 하는 형벌을 가한다. 그럭고도 화가 안 풀린 제우스는 불을 함부로 선물 받은 인간들에게도 벌을 내리기로 마음먹고, 비밀병기 '최초의 여인 판도라'를 탄생시켜 프로메테우스(미리 보는 자)의 동생 에피메테우스(나중에 알게 되는 자)에게 보낸다. 어찌어찌하여 판도라는 제우스가 보내온 상자를 호기심에 열자마자 상자 안에 있던 불행, 고통, 탐욕 등 나쁜 것들이 쏟아져 나온다. 제우스의 고단수 전략으로 인류에게 재앙이 주어진 것이다. 물론 희망이란 게 남아있기는 하지만…….

 

<구본형의 신화 읽는 시간>은 짜임이 참 신선하다. 나는 지금껏 판도라 상자에서 어떤 재앙이 어떤 순서로 튀어나왔는지 한 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는데, 저자는 오히려 이런 부분에 유의하여 그 하나하나의 저주를 나열하고 이를 신화 속의 주인공들과 연결시켜 글을 풀어나간다. 희망과 함께 상자 속에 들어있다가 세상으로 튀어나와 고통과 시련으로 만들었던 것, 이 세상에 남아 인간을 지배하는 것들, 그리고 인간에게 끊임없이 불행과 희망의 역사를 선물한 판도라 상자의 상징성에 주목하여 우리네 고단한 삶과 연결을 시도한다. 그래서 때로는 직설적으로 때로는 은유적으로 신화 속 영웅은 주어진 변화에 창조적으로 변신하는 데 성공한 인물임을 이야기 한다. 결국 저자는 신화에 기대어 자기경영의 해법, 즉 인간은 신화 속의 영웅처럼 '창조적 변화로서의 변신'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싶은 거다. 이제야 이 책의 부제가 눈에 들어온다. 신화에서 찾은 '다시 나를 찾는 힘'. 그렇다. 이 책은 이렇게 자기관리를 지향하는 책이다.

 

과연 판도라 상자 속에 들어있던 불행과 악들은 어떤 것이었을까? 어떤 순서로 튀어 나왔단 말인가? 사뭇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번 나열해 보자. 시간(인간이 시간을 알자 유한해졌다), 욕정(뿌리치기 어려운 유혹이다), 변화(변화는 예측할 수 없다), 자아에 대한 무지(누구나 정체성의 문제를 안고 있다), 자기애(자신을 사랑하느라 이웃을 사랑하지 않는다), 배고픔(인간은 결핍 속에서도 기쁨을 건져낸다), 분노(무모함에 발화하고 언제나 후회라는 재를 남긴다), 혐오(끊임없이 잘못을 찾고 결점을 들추어낸다), 희망 없는 일의 반복(이보다 더 무서운 형벌도 드물다), 아름다움이라는 유혹(제우스가 남자에게 준 가장 멋진 저주이다. 맞다.) 열한 번 째 부터는 그냥 타이틀만 적자. 허영, 거짓말, 탐욕, 집착, 과도함과 지나침, 오만, 비웃음, 골육상쟁, 잔혹함, 폭력, 운명, 불복종, 실타래(사람들은 희망만 상자 속에 남아있다고 생각하지만 이게 하나 더 있다. 오직 아는 자만이 안다), 사유의 불능, 이별, 탯줄(탯줄이 있어 인간은 의존하고 늙고 죽는다), 교활, 복수, 불균형……. 참 많기도 한 인간 슬픔의 존재들이다.

 

어쨌거나 신화 속에 저자의 동서양 철학지식을 접목시켜 인간의 본성을 꿰뚫고, 거기에서 자신의 변화에너지를 찾으려는 시도가 상당히 독창적으로 느껴진다. 저자의 의도야 우리 안에 신이 있고, 신은 우리 안에 자신을 숨겨두었기에 인간은 영웅적인 내면 여정을 통해 갈등과 충돌을 대통합하여 위대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수 있다는 건데, 그리스로마 신화로 이렇게 체계적으로 자기관리 영역에 접근하는 책을 어디에서도 본 기억이 없다. 하지만 뭔가 설익었다는 느낌을 떨치지 못한다. 신화를 재해석하고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보는데 까지는 잘 엮어나가다가 자기경영, 자기관리의 경계에 이르면 매끄럽지가 않다. 꼭 시간에 쫓겨 원고지를 마감한 느낌, 바로 그 서걱거림이 뒷맛으로 남는다. 자신의 일상적 이야기와 정제된 해법이 혼재되어 판도라 상자가 펼쳐놓은 고해(苦海)에서 우리가 건져야 할 의미의 일관된 흐름을 놓치게 된다는 거다. 자신의 생각을 '인간 독법 바이블'로 승화시키기엔 보다 간결한 정리가 필요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미완의 보석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조금만 간결하게 다듬으면 아주 좋은 명품의 책이 될……. 흥미롭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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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비추는 경영학
시어도어 레빗 지음, 정준희 옮김 / 스마트비즈니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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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휴가 산행에 어떤 책을 가지고 갈 건지 고민을 한다. 배낭의 무게나 여유시간을 감안하니 두껍거나 사이즈가 큰 책은 곤란하다. 읽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책 중에서 적당한 걸 찾아본다. 읽어야지~ 읽어야지~ 하면서 미뤄온 참으로 적절한 책이 눈에 띈다. '세계화(globalization)'라는 용어를 최초로 사용한 하버드 MBA의 경영학 대가, 경영학도라면 한번은 뒤적거려 봤을 <Harvard Business Review : http://www.hbr.org >를 있게 한 시어도어 레빗(Theodore Levitt... Theodore를 어떻게 읽어야할 지 항상 헷갈린다. 데오도르? 시어도르? 데어도어? ) 교수의 <내일을 비추는 경영학>! 벗님에게서 받은 책인데 2006년에 타계한 교수의 책인지라 조금 시류에 뒤쳐지는 책이 아닐까 싶어 얼른 손이 가지 않았던 책이다.


어쨌거나 동료들의 동양화 연구시간(?)과 기타 여유시간을 이용해 2박3일 동안 책을 다읽었다. 그런데 책을 읽어나가다가 조금 이상한 느낌. 몇몇 중요하고 흥미로운 문장을 접하면서 언젠가 이 책을 꼭 읽어본 듯한 생각이 들었다. 원래 이러저러한 이유로 경영·경제 관련 서적은 많이 읽는 편이지만 이런 데자뷰는 뭐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나의 이런 의문의 근거를 찾기 시작한다. 찾았다. 2007년에 같은 출판사(스마트비즈니스)에서 출간했던 <경영에 관한 마지막 충고>였다. 전혀 다른 제목인지라 내용도 다른 책이라고 생각했던게 그 원인이다. 같은 저자, 같은 옮긴이의 이 책은 목차와 본문의 배열, 편집이 틀리지만 분명 같은 내용의 책이다. <Thinking about Management>란 원제를 보면 이 제목이나 저 제목이나 출판사의 기획의도가 내포되었음을 느끼게 된다.

 

 

 

내용은 마치 경영학 수업을 듣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된다. 세월이 흘러도 경영학의 기본은 변함없고 기교만 화려·복잡해졌구나~ 이런 생각을 하였다. "책머리에"의 첫 문장은 이 책의 가장 기본적 요약으로 시작한다. "유능한 관리자들은 많은 일을 하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꼭 해야 하는 4가지의 일이 있다. 바로 조직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혁신적으로 ‘생각’하고, ‘변화’를 장려하고, 조직과 구성원들이 제 역할을 다하도록 ‘경영’하는 일이다(4쪽)". 이런 이유로 이 책은 조직의 ‘관리 Management’, 경영자의 혁신적인 ‘생각 Thinking’, 조직의 ‘변화 Change’, 기업의 ‘경영 Operation’ 이렇게 네 파트로 나누어 각 분야를 다루고 있다.


1교시: Everlasting Light ‘Management’ 의 첫 강(講)이 '무능함이 무능함을 부른다.'인데, "유능한 관리자들 곁에는 유능한 동료들이 있다. 유능한 동료들이 곁에 없다면 그 관리자는 유능한 관리자가 아니다(14쪽)"는 문장이 눈에 바로 띈다. 무능한 관리자등은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직원을 교체한다. 그들이 아무리 유능해도 상관에게 위협적이고 고통스런 존재라고 여겨지면 쫓아낼 구실과 방법만 찾는 관리자. 당연히 조직에는 무능한 직원들만 남게 된다는 말에 공감을 한다. 3강의 '경영 능력은 IQ의 문제가 아니다'에서 경영 능력과 경영 소질을 다르게 보고 있는 점에 유의해 본다. 둘 다 모두 경험과 교육을 통해 향상될 수 있으나 경영 소질 자체를 경험과 교육을 통해 획득할 수는 없다. 4강에서는 "성공을 거두려면 실질적으로 일을 해야 한다 단순히 바라기만 하고 번지르르하게 말만 늘어놓아서는 성공을 거둘 수 없다. 비즈니스 세계에 지름길은 없다."는 문장에 밑줄을 그어본다. 5강에서는 "유능한 관리자가 되기 위해서는 '참모의 보고서'라는 굴절 렌즈를 벗어던지고 직접 조사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는 말에서 참된 관리자의 모습을 엿보고, 6강에서 '건전한 탐욕'이란 용어로 미국적 자본주의의 속내를 들여다본다.


2교시 : Everlasting Light ‘Thinking’, 1강의 제목이 어렵다. 예리하게 날이 선 꽃처럼 생각하라? 내용에 비해 제목이 쉽게 와 닿지 않는다. 어쨌거나 '혁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는 장이었다. 성공한 기업들의 역사를 보면 는 한마디로 혁신의 역사라는데 동의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금과 고객에 대해 항상 생각하고, 끊임없이 마케팅을 재발견하려는 과정에 '혁신'이 있었다. 혁신은 익숙하고 낯익은 것들을 버리고 낯설고 새로운 것들을 익히라고 요구한다. 혁신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도. 자연적으로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자연스런 것은 익숙한 것, 그리고 편안한 것을 그대로 유지하려는 관성이다.
간혹 고통스럽고도 갑작스럽게 혁신이 이뤄진 경우도 있지만 혁신은 대부분 점진적이고 지속적으로, 심지어는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천천히 진행되어 왔다. 관리자의 중요한 임무로 조직과 구성원들을 창의적으로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행동하도록 독려("왜 안되는데?" "그 외에 다른 것은?" "그 밖에 다른 방법은?" "그 밖에 다른 사람은?")하는 것 또한 혁신의 다른 모습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3교시 : Everlasting Light ‘Change’, 변화! 변화에 맞설 것인가 적응할 것인가. 레빗 교수는 "사람들은 자신이 목격한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것, 그대로인 것에는 거의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람들이 변화라고 말하는 것들 가운데 상당수가 균형 잡힌 시각이 부족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즉, 그들이 목격한 것은 입증 가능한 변화가 아닌 단순한 '활동'일 뿐이다."고 통찰하고 있다. 이 복잡한 세계, 다양함을 인정하고 장려하는 기업은 번영을 누리게 될 것은 틀림없다.
말미에 다루는 '기업가 정신'은 시대가 변해도 언제나 강조되고 있는데, 교수는 과대 포장되고 있는 기업가 정신을 경계하고 있다. 결말이 너무 멋있는 문장이다. "기업가들은 한 차례 열렬한 박수갈채를 보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세탁을 해주고 일용할 양식을 제공하며, 매일 신선하고 기분 좋은 하루를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나머지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두 차례 이성적인 박수갈채를 보내야 할 것이다(169쪽)". 캬~ 철저한 자본 논리에 압도당해 인간대접 제대로 못받는 신자유주의 사상에서는 느낄수 없는 명문이다.


4교시 : Everlasting Light ‘Operation’, 경영! "설치 서비스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시스템을 응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서비스가 불확실하고, 부품 및 사후 서비스가 빈약하다면 설명서가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여도 구매자를 설득할 수 없다."는 말이 눈에 들어왔다. 과거 시대의 핵심 개념인지라 조금 식상한 느낌도 있지만 이런 대고객 비즈니스 패러다임의 변화는 항상 신경을 써야한다.
매출총이문(Gross Margin)과 매출총이익(Gross Profit)을 구분 짓는 부분도 흥미롭다. 일반적으로 매출총이익으로 번역하여 혼용해 쓰고 있지 않은가. 이문은 이익을 올리는데 쓴 비용 중에서 장부에 기입되어 있지 않은 비용을 감추는데 편리한 방법이라는데, '비용부담 회피' 즉, 비용 왜곡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노교수의 안목이 날카롭게 다가온다.


원서가 발간(1990.12.30)된 지 20년이 넘었는데도 불구하고 의외로 괜찮다는 느낌은 여전했다. 경영학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한번쯤 휘리릭~ 읽어보면 경영의 근본 마인드를 축적할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표지의 카피처럼 정말 '아주 특별한 경영수업'을 네 강좌 수강한 느낌이 든다.
우리 산업계에 또다시 '구조조정'이란 단어가 뉴스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내외 경기 침체로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우면서 조선, 건설 및 자동차, 전기전자 등 업종을 가리지 않고 구조조정이 단행되면서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금융위기의 악몽마저 떠오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 장이 "슬립화를 위한 다이어트, ‘구조조정’"이다보니 '모든 것이 경쟁의 세계화와 관련이 있다'는 그의 혜안에서 배울게 많은 책이었다는 것을 실감한다.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었지만 한 시대를 풍미한 경영·경제학 구루의 정수를 느껴보는 좋은 책으로 기억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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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느리게 걷기 느리게 걷기 시리즈
이경원 지음 / 페이퍼북(Paperbook)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통영! 동양의 나폴리라 일컫는 한려수도의 항구도시. 세계3대 미항이라는 나폴리를 가본 적 없는 나로서는 비교가 불가하지만 그만큼 아름다운 곳이라는 뜻이리라. 사실 통영을 가보면 별로 볼게 없다는 분들도 있다. 그러면 난 이렇게 말한다. "통영? 하루 볼거리만 찾으면 별 것 없지. 하지만 적어도 보름 정도 있어보면 저절로 알게 돼". 통영은 그런 도시다. 수려한 다도해의 경관과 이순신 장군의 흔적을 간직한 곳, 자연과 역사 이상의 문화적 코드가 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곳이 통영이다. 몇 년 전인가 어떤 잡지에 "통영은 세계적으로 인구 대비 예술인을 가장 많이 배출한 도시"라고 소개된 적이 있다. 그렇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토지의 박경리, 청마 유치환과 동랑 유치진 형제, 초정 김상옥, 대여 김춘수, 전혁림 화백 등을 배출하였고, 이외에도 현재 수많은 문인과 음악인이 활동하고 있는 예향(藝鄕)이다. 체육인으로는 김호 감독, 고재욱 감독, 김호곤 감독 등등 한 시대를 풍미한 축구스타가 많은 도시이다. 풍수학에 의하면 주산(主山)인 여황산 보다 객산(客山)인 미륵산이 더 높아 그렇다고 하는데 이건 내가 알 수 없는 부분이고……. 여하간 통영이란 도시가 가지고 있는 뭔가가 예술적 소양의 토대가 되기에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통영을 여행하고자하는 분들은 무얼 얻고자 할까? 단순 관광? 그렇다면 한려수도의 풍광과 세병관·충렬사 등 이순신 장군의 유적, 통영 주변의 비진도·매물도·한산도·욕지도·연화도·사량도 등의 아름다운 섬, 그리고 통영이 가지고 있는 동피랑 벽화마을이나 남망산공원·이순신공원 등을 한 바퀴 돌면 될 일이다. 여기에 문화적 코드를 곁들이면 위에 언급한 예술인들의 생가나 문학관, 기념관 등을 방문하면 되고, 여기에 향토색 짙은 '충무 뚱보할매 김밥'이나 계절에 따라 시락국밥이나 멍게비빔밥, 굴영양밥, 졸복국, 빼때기죽, 생선회 등을 선택해 보양한다면 또 다른 여행의 한 갈래가 될 것이다. 이것이 전부일까? 아니다. 통영의 문화적 토대는 정말 다양하다. 통영나전칠기, 통영소목, 통영누비, 통영연(鳶), 통영오광대, 통영 승전무, 통영 동백화장품 등등 아기자기하면서도 기품 있는 공예품을 살펴봐야한다. 바닷가 특유의 활기를 느끼려면 새벽 어시장에도 가봐야 한다. 적어도 용화사·도솔암·미륵산(461m) 정도는 걸어올라가 다도해를 느껴봐야 왜 이 산이 100대 명산에 들어가는지 알 것이고, 그런 다음 효봉스님과 법정·구산스님, 그리고 고은 시인이 환속(還俗)하기 전 구도 정진의 길을 걷던 미래사(彌來寺)로 내려와 편백 숲 정도는 걸어 봐줘야 통영이 보인다.

 

<통영, 느리게 걷기>란 책이 나왔길래 얼른 손에 잡아보았다. 책이 배달되어오기까지 어떻게 통영을 풀어내었는지 너무나 궁금하고 기대에 차 있었다. 책을 받으니 의외로 얇은 두께(181쪽)에 얼핏 놀랬다. 빠르게 훑어본 후 다시 정독을 한다. 통영이 보여줄 수 있는 볼거리는 다 있는데 뭔가가 부족하다. 실망이 무더운 여름의 공기에 실려 부풀려진다. 적어도 <느리게 걷기>란 타이틀이 붙었으면 제주도 올레길 소개 책자 정도의 일정별, 취미별, 시간별 여행코스(그림지도 포함) 소개가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통영 이얏길'에 대한 언급도 없고 이건 그냥 인터넷 등에서 찾아볼 수 있는 정도의 나열에 불과하다. 즉,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는 턱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통영 사람들은 내 글을 읽으면서 순 엉터리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라고 했던 것일까? 물론 통영에 잘 모르는 외지인들에게는 이 정도의 책만으로도 통영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통영은 이 책의 3배 이상 쪽수로도 담기 어려운 역사, 문화, 예술의 향취가 스며있는 곳이다. 정말 느리게 걷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성향의 사람들인지, 왜 그들이 늦게 걷고자 하는지 이 책은 그 목적을 잃고 있다. 그냥 <통영 안내서>일뿐인지라 읽는 내가 난망하다.

 

통영! 해질녘, 남망산 공원 예능전수관 옆 벤치에 앉아 파도와 바람에 떠밀려온 공주섬 정도는 봐줘야하고 어둡지만 장좌섬쪽 방파제 정도는 걸어줘야 느리게 걷기가 아닐까. 통영음악제나 철인3종 경기는 매니아의 영역이라 할지라도, 충렬사나 세병관에서 북포루 까지 걷는 코스 정도는 소개해 줘야 하지 않을까. 경상대 통영캠퍼스까지 걸어가면서 운하교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코스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을까. 김약국의 딸들의 명정골 걷기 이런 문화콘텐츠는 없는 걸까. 사진만 해도 그렇다. 세병관 현판이 어쩌다~하면서 정작 사진은 지과문(止戈門)을 소개하고 있다. 세병관의 중요도가 지과문에 떨어지는 걸까? 비진도만 해도 그렇다. 비진도의 특징은 두개의 다른 바다를 감상하고 즐길 수 있다는 거다. 한쪽은 백사장이요, 반대쪽은 자갈마당의 바다……. 소개된 사진은 비진도의 장점을 살려내지 못하는 이상한 풍경이다. 전체적으로 관공서에서 발간하는 지역관광소개 책자의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에, 단순 관광객의 안내서가 아닌 <느리게 걷기>에 도전하는 순례자를 위한 책자를 기대했던 나에게는 턱없이 부족함으로 와닿는다.

 

사실 나의 불만은 저자의 잘못이 아니다. 이러한 문화 콘텐츠는 시의 역량과 관련된 문제이다. 단순 관광 중심의 관광객 유입은 이제 내리막일 수밖에 없다. 스쳐가는 통영이 아니라 머물고 거닐 수 있는 문화예술적 여유의 공간으로 통영은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통영이 대전통영 고속도로, 케이블카, 이순신 공원 등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발전된 인프라를 갖춘 것은 맞지만, 이제는 이들 인프라와 역사적 유산, 문화·예술적 자산을 아우르는 '통영 이얏길' 등 휠링 콘텐츠를 많이 개발하고 정형화하여 '슬로 시티(Slow City), 통영'이란 아이템으로 접근해야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통영! 바닷가 특유의 거친 성향도 있지만 그 속에 강직함과 순박함을 내포하고 있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이 정도의 책자를 발간하기까지 통영을 사랑하고 알리려는 저자의 노고야 말안해도 알겠지만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다음에 통영 관련 책을 발간하고자 하는 분은 제주 올레길이나 일본의 시코쿠 순례길,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 같이 머물고 싶고, 걷고 싶은 통영을 소개하였으면 한다. 통영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역사의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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