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의 기술 - 나 홀로 여행을 꿈꾸는 여행자들이 알아야 할 솔로여행의 모든 것
베스 휘트먼 지음, 강분석 옮김 / 푸르메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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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를 솔깃하게 만든는 제목만으로도 끌리지 않는가? 나는 그랬다. 사람들은 '여자 혼자'라는 말이 붙으면 일단 얕잡아보거나 걱정과 비난이 담긴 목소리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다른 것도 아닌 '여자 혼자' 여행이라면 출발하기 전부터 우려섞인 충고를 해댄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를 비롯해 경험담을 들려주는 여자여행자들의 여행담은 그런 걱정을 일축시킨다. 낯선 환경에서 더욱 침착하게 대응하고 융통성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하는 그녀들을 보며 여행에 앞서 준비한 계획과 준비물보다 더 중요한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저하지 않고 떠날 수 있는 결단력으로 인생에 큰 변화와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우리의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이 재충전과 휴식이다. 이 두가지를 가져다주는 것이 바로 여행이다.   -p.30


저자는 모든 것을 내팽개치고 떠나라며 등을 떠밀진 않는다. 차근히 여행자금을 준비하고 일을 하며 맞게 되는 출장과 사업상 여행도 즐기라고 말한다. 또한 자신이 오랜 여행경험을 통해 얻은 노하우와 지식이 가득하다.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해외에서 여행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비롯해 현지인들과 친해질 수 있는 비법, 여러 여행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위기대처법, 숙소정하기와 여행전 꼭 준비해야할 것, 예약과 짐꾸리기부터 여러 경로와 실제 도움이 되는 인터넷 사이트를 자세히 소개하고 있어 실제 혼자서 해외여행을 계획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보고 떠나도 좋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 여행지식이 대부분 경험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에 더 도움이 될 것 같다. 


여행중독자들이 대부분 그렇듯 저자 역시 여행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역설하는 부분이 주효하다. 그녀를 비롯한 여행자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당장이라도 가깝지만 낯선 곳이라도 떠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속한 세상이 아니라 전혀 다른 세상에서 극적인 경험을 통한 완전한 기쁨을 맛보기 위해서 여행을 떠나라는 말이다. 나 역시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 굳이 먼 곳으로 떠나는 여행이 아니라 일상을 벗어나 새로운 곳을 걷고 새로운 사람들과 풍경을 보는 시간을 주기적으로 가지면서 삶의 활력을 얻는다. 그리고 무언가 크게 변화하지 않더라도 그런 경험을 통해 내적으로 성숙해져가는 걸 느끼게 된다. 흔히들 여행을 재충전의 기회라고 하는데 정말 그렇다. 우리는 지나친 업무와 스트레스로 인해 과방전상태에 빠져 무기력해져 간다. 사람들마다 재충전할 수 있는 방법은 여행말고도 다양하다. 하지만 여행만큼 새로운 자극과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일은 없다. 

 
안전지대를 벗어나는 것, 그것이야말로 여행의 전부이다.
여행은 전혀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문화, 환경, 화폐, 언어, 음식, 잠자리, 관습, 일정, 모험, 교통수단, 환경 등등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진다.
그것이 여행의 아름다움이다.   -p.65


혼자서, 그것도 여자 혼자서 떠나는 여행은 더 많은 위험과 부담을 떠안을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설렘으로 두려움을 극복하고 책에서 말해주는대로 확실히 계획을 세워 실천하게 되면, 오히려 함께 여행을 나선 동반자를 배려하거나 인내할 필요없이 더 자유로운 여행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물론 숙소예약시 혼자임에도 2인객실 요금을 내야할 때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금전적 지출보다 더 값비싼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걸 강조한다. 저자가 여자이기 때문에 더 꼼꼼하고 세심하게 체크하고 넘어가야할 부분을 요목조목 짚어주는 부분이 좋았다. 나는 당분간 해외여행보다 국내여행을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당장 와닿는 부분이 없는 건 사실이었지만, 여행자들의 경험담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여행의 기술과 요령, 느낌을 그대로 전달받을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큰 도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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렛미인 1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0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 지음, 최세희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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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렛미인 헐리우드판 영화가 개봉했다. 그리고 3년전 동명의 스웨덴판 영화와 원작이 먼저 국내에 소개돼 마니아층의 열렬한 지지와 무한애정, 호평으로 오랫동안 회자됐었다. 그 때까지도 영화나 책에 대한 관심은 크지 않았다. 그런데 첫 영화가 개봉된지 몇 해 되지 않았음에도 굳이 상업성과 자신들의 색을 입혀 영화를 만든 헐리우드의의도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분명 그 이야기에는 어떤 마력이 있을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책을 덮고난 지금에서야 느끼는거지만 역시 "렛미인"에는 몰입할 수 밖에 없는 묘한 끌림과 절제된 슬픔, 잔인한 전율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자를 끌어당기는 힘, 그건 무엇보다도 깊은 내면의 외로움을 너무도 처절하게 표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주인공 오스카르와 엘리를 비롯해 각각의 캐릭터를 통해서도 드러나는 음울하고 비극적인 분위기는 책을 읽을수록 점점 더 고조된다. 상황이 빚어내는 분위기가 아닌 상처와 고독, 지독한 외로움이라는 무형의 슬픔을 껴안은 캐릭터들로 인해 형성된 어둠은 극의 모든 것을 좌우한다. 사실 뱀파이어라면 트와일라잇 시리즈 이후 신비감이나 공포는 옅어졌고, 오히려 우리나라의 처녀귀신처럼 오랫동안 가공된 이미지와 뻔한 설정에 식상해질 정도였다. 하지만 렛미인에서 가져온 뱀파이어라는 설정은 인간 내면에 잠재해있는 거대한 고독의 실체를 보여주기에 매우 현실감있는 존재로 다가온다.  


그리고 학교폭력과 왕따에 불안한 학교생활로 속내를 터놓을 친구하나 없는 편모슬하의 오스카르와 새아버지, 이복형제와 살고 있으며 오스카르를 위협하는 욘니, 아동성추행 전력으로 학교에서 쫓겨난 호칸, 이제 곧 새아버지를 맞게 될 반항아 톰미, 알콜에 의지해 하루를 살아가는 라케와 엘리로 인해 뱀파이어가 되면서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비르기니아등 소설 속 등장인물 중 어느 하나 온전한 가정환경과 친구를 가진 이가 없다. 가족에게 거부당하고 친구에게 밀려났고 사회의 중심에서 비껴난 그들의 모습은 조금씩 어긋나고 뒤틀려 보인다. 그렇기에 그들은 서로를 더욱 끌어당긴다. 

 

또한 소설에서 어둠을 극대화하는 부분은 바로 불안이다. 12살이 가져다주는 사춘기적 불안, 부모나 가족의 부재, 마이너 인생의 비참함, 친구들이나 사람들과의 철저한 고립은 사회나 가족, 인간관계가 빚어낸 불안에 천착한다. 그를 통해 드러난 잔인함은 공포가 아닌 표면적으로 드러난 불안을 의미하기에 두렵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감당하기 버거울 정도로 독자를 짓누르는 외로움의 무게 또한 소설의 어둠을 한층 무겁게 한다. 등장인물들의 사연은 각기 다른 외로움의 전형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늘 오스카르에게 들어와도 되내고 묻고 허락을 구하는 엘리의 대사는 의미심장하면서 찡한 여운을 남긴다.


이 이야기는 결코 뱀파이어 공포나 스릴러가 아니다. 인간내면에 철저하게 웅크리고 있는 고독이며 불안이다. 메마르고 황량한 곳에서 오스카르가 찾아낸 희망은 매혹적이지만 결국 또다른 비극과 소외, 외로움의 연장을 의미한다. 이 소설을 보며 짓누르는 어둠의 중압감은 바로 그런 희망조차 비극적일 수 밖에 없다는 것때문에 한층 더 가슴을 파고드는 것이다. 반쪽과 반쪽이 만났지만 온전하게 하나가 되지 못하기에 나는 그 미완의 아름다움에 미혹되고 말았다. 새벽녘 음침하게 숲을 뒤덮은 안개처럼 모호하지만 형태가 없는 공포에 현실감을 상실하는 것처럼 이야기는 빠져들수록 현실감각을 마비시킨다. 때때로 책을 읽으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 것도 그런 실체없는 공포에 현실감을 잊었기 때문인 것 같다. 많은 사람들 속에서도 간혹 극렬하게 몰아치는 외로움에 몸서리치며 사는 현대인들이라면 렛미인의 세계에 쉽게 빠져들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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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지음, 김소연 옮김 / 은행나무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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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렇게 멋없고 딱딱한 이야기를 논리정연하면서도 알기 쉽게 설명한 과학서도 드물 것 같다. 제목만으로는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는 묘한 전개가 기대되기도 했다. 그러나 제목그대로 인간을 구성하는 30억개의 세포, 그 세포의 발견과 역활을 찾아가는 21세기전 과학자들의 발자취를 따라간다. 그 과정이 꽤나 흥미진진하게 전개된다. 무엇보다 저자가 가장 원초적으로 던진 질문인 '생물과 무생물을 구분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한 과정을 매우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 실제 생물학자이기도 한 자신의 연구과정을 회상하며 더듬어가는 과거와 지금은 선구자가 되어 널리 알려진 생물과학자들의 연구과정에서 일어난 헤프닝등 다양한 연구실 뒷이야기들도 재미를 더한다. 
 

특별한 구성이나 분리없이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이 책은 크게 장을 나누자면 세 장 정도로 나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 단순히 4개의 문자열로 구성되어 있으며 유전정보를 책임지고 있는 DNA의 발견과 DNA의 이중나선구조에 관한 해석이 그것이고, 둘째는 DNA를 구성하는 단백질과 세포분열의 과정, 그리고 셋째는 생명의 본질에 접근할수록 난관에 부딪히는 실험과 연구를 통해 무엇보다 완벽하게 만들어진 생물의 신비에 접근하는 것이다. 저자의 이야기에서 개인의 생각과 과학자들의 이야기를 빼면 완벽한 생물과학서다. 도저히 무슨 말인가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저자는 생물의 신비를 일반인에게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할 줄 아는 방법을 알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 모양이 다르면 절대 끼워지지 않는 지그소 퍼즐과 쉴 새 없이 새모래를 가지고 같은 형태를 유지하는 바다의 모래성을 예로 들어 세포의 분열과정을 설명하는 부분은 이해가 참 쉬웠다. 과학서라기보다 소설이나 에세이라 할만큼 재미있게 설명된 생물학입문서라고 해도 좋을 듯 하다. 마지막 저자의 에필로그처럼 어릴 적 동네 개울가에서 개구리알을 가져와 직접 키워보거나 애벌래가 변태하는 모습을 한번쯤 보고 자라온 사람들이라면, 분명 생명의 신비라는 거대한 문 앞에서 경외심을 마음속에 품어본 적은 있을 것이다. 이 책에 나온 과학자들 역시 DNA와 세포를 둘러싼 판도라의 상자를 열기 위해 몇날 몇일을 밤새워가며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끝내 그들도 밝힐 수 없는 생명의 신비는 아직도 많은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다. 물론 예전보다 훨씬 좋아진 연구기계나 전자현미경으로 말이다. 


생명의 존엄성은 저자가 설명한 생물의 상보성과 동적평형상태라는 흐름으로 조금은 설명된다. 결코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는 완벽한 질서체계, 그리고 불가역적인 시간의 개념으로 움직이는 우리 한 사람 또는, 작은 생명은 존귀하다는 걸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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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복형제들
이명랑 지음 / 실천문학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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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랑의 글은 직설적이다 그리고 글에 이런 표현을 해도 된다면, 매우 차지다. <삼오식당>에서 맛본 차진 쫄깃함에 이끌려 그녀의 장편을 찾아봤다. 이 책은 삼오식당에서 조명받지 못한 이방인들의 섧고 지난한 시장생활의 이면을 고스란히 담았다. 연민이나 동정따위가 비집고 들어가지 못할만큼 처음엔 차갑고 쌀쌀맞게 표현하지만, 그들과 생활하며 심적동요를 일으키는 화자 영원이의 시선대로 그들을 향한 연민은 서서히 드러난다. <삼오식당>에서 시장상인들의 억척스러움과 고단한 뒷이야기를 담았다면, <나의 이복형제들>에서는 상인들에 의해 이용당하고 무책임한 폭력과 폭언에 노출된 이주노동자의 모습과 떠돌이 외지인, 불치병에 걸린 춘미언니의 일상을 통해 시장의 그늘을 가감없이 보여준다.


화자인 나(영원) 역시 성인이 되기 전에 시장에 흘러들어 자기 밑에 들어온 이상 가족이라 부르짖는 행복합시다 아저씨의 과일가게를 봐주고 담뱃값정도를 벌며 냉동창고에 잠자리를 제공받고 있다. 그러나 평생 벗어날 수 없는 과거때문에 알 수 없는 불안과 어둠에 대치하고 있는 그녀 역시 영등포시장에 뿌리내릴 수 없는 주변인이다. 저임금의 힘든 육체노동을 견디고 갖은 천대과 굴욕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인도 청년 깜뎅이, 포기할 수 없는 한국인 국적때문에 폭력적인 남편밑에서 다방일까지 하며 차곡 차곡 돈을 모으는 머저리, 곁을 따르는 개가 아니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난장이 왕눈이 아저씨, 불치병때문에 하반신에서 점점 상반신까지 마비되어가는 춘미언니의 눈물겨운 TV사수작전은 그저 무사히 하루를 보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하게 되는 사람들의 고된 삶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사람이 희망이라는 어느 유명한 문구처럼 이렇게 힘든 사람들의 인생도 저마다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분명 위안을 얻을 사람들조차 존재할 것이다. 시장에서 나고 자란만큼 시장의 생리를 꿰뚫고 있는 작가이기에 시장사람들을 통해 바라본 세상에 대한 비판은 신랄하고 그 이상의 애정 또한 남다르다. 화려한 것으로 치장하고 꾸며진 것에는 기쁨을 느낄 수 없고, 요란한 겉치레는 아름다움도 무색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것, 나는 그녀의 글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는 미적가치를 발견하게 된다. 다양한 시장의 풍경과 사람들, 결코 음흉한 속내를 가지고 비굴하게 웃는 인간들이 아니라, 돈에 대한 솔직한 욕망을 드러내는 사람들의 시선이 결코 밉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변인과 이방인을 경계하고 좀처럼 곁을 잘 내주지 않는 그들의 모습은 불편했다. 결국 어느 곳에나 약자는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체념도 든다. 


작가는 그들의 모습을 전기에 비유했다. 냉기와 온기의 간극을 쉽게 극복하고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어도 철저히 남이라는 구절은 책의 제목을 현실감있게 만들어준다. 이복형제, 피를 나누었지만 절대 너와 나는 돌아서면 남이라는 생리를 그대로 재현하는 곳이 시장바닥이라는, 처절하고 냉정한 평가, 그리고 정곡을 찌르는 표현이다. 하지만 그 곳이 단지 시장바닥의 이면일까. 그렇지 않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 또한 얼마든지 소설속 배경의 무대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자는 이 소설을 통해 그런 현실을 직시하고 있다. 


그렇다. 나는, 전기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나의 둥지에는 전기로 냉기를 유지하는 냉동창고와 전기로 따뜻해지는 전기장판이 있다.
냉동창고와 전기장판, 이 두가지 제품만 놓고 봐도 전기가 가지는 주요한 특성을 알 수 있다.
전기는 냉기와 온기 사이의 간극을 쉽게 극복한다.
이곳 사람들은 전기의 이러한 특성을 아주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모두가 피를 나눈 형제이면서 동시에 철저히 남이다.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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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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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것들이 끝없이 변하는 한 우리의 희망도 사그라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살아 있으라. 마지막 한 모금의 숨이 남아 있는 그 순간까지
이 세계속에서 사랑하고 투쟁하고 분노하고 슬퍼하며 살아 있으라.   -p.291


외딴방 이 후 드문 드문 그녀의 여러 책을 잃으며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천착하는 모습에 신작읽기를 주저했었다.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자리걸음으로 같은 세대가 아닌 나로서는 공감되지 않는 이야기를 오랫동안 끌고 간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보려는 그녀의 모습만 눈여겨 봤기 때문일 것이다. 그녀가 독자들에게 보여주려는 모습은 결코 어두운 과거와 깊게 패인 골이 아니었던 것 같다. 이 소설에서 윤교수가 강력히 피력하는 살아있음으로 변화할 수 있다는 희망과 누구나 한 번쯤 거쳐가는 청춘의 아픔과 성장통을 생생히 체득하길 바라는 마음이지 않았을까. 누구보다 그녀는 살아있음으로 죽은 이들에 대해 죄책감을 덜고자 끊임없이 과거와 싸워왔다는 생각도 들었다. 
 

윤과 명서의 갈색노트로 번갈아 회자되는 이야기의 시대는 암울하다. 구체적인 시대가 언급되지 않았어도 명동성당에서 연일 이어지는 시위와 실종, 혹은 의문사로 많은 사람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그늘진 한 시대의 특정 시점을 떠올리기에 충분하다. 분명 작가가 겪은 아픈 과거의 흔적을 따라갔다는 것이 암시된다. 함께 해주지 못한 안타까움의 절규이다. 그러나 도대체 그들이 무엇때문에 그토록 죽음을 향해갔는지, 그리고 사라졌는지 그에 대한 실체는 자욱한 안개에 휩싸이듯 모호하기만 하다. 방황하거나 상실되고 혹은 투쟁하며 윤과 명서, 단이와 미루 네 명의 청춘은 빛을 잃고 스러져간다. 


그러나 이 소설을 통해 저자의 바램대로 지금 청춘을 맞이한 이들이 희망을 끌어내기란 쉽지 않다. 끊임없이 전화벨이 울리고 상대방은 간절히 나의 목소리를 듣기 원하지만, 자신이 껴안고 있는 묵직한 슬픔때문에 남을 돌아볼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이들이 지극히 이기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두들 위태롭게 하루 하루를 버텨내고 있지만, 정작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상처때문에 혹은 자신이 강을 건너는 크리스토프라고 생각했기에 등에 업힌 아이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 것은 아닌가하고 말이다. 스무살의 슬픔과 눈물에는 목적이 없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모든 것은 불완전하고 소멸될 것처럼 허무하고, 두려우면서도 다가가고 싶은 청춘의 망각에 깨달음이란 없다. 그저 작가가 오랫동안 껴안고 있듯 젊음이란 자신의 내면으로 깊이 스며드는 일인 것이다.
 

윤과 미루, 그리고 명서와 단이는 이 순간을 잊지 말자고 수없이 서로에게 다짐한다. 그렇지만 이들은 서로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의 강을 건너고 그로 인해 평생 잊을 수 없는 과거의 슬픔을 안겨준다. 젊음이란 죽음의 다른말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그들의 20대는 매우 고독하고 우울하다. 죽음과 상실을 통해 보편적인 청춘의 감성을 이끌어냈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이야기가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라고 느끼게 하는 것은 이 소설 역시 과거 어느 시점을 이야기하는 작가의 다른 시각이기 때문이다. 목적지에 닿지 못한 채 오랫동안 표류하는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눈물겨운 노력은 보이지만 치열함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고집스럽게 과거에 연연해 쉬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기 힘들어 보였던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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