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웨딩드레스]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웨딩드레스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다산책방 / 2012년 7월
평점 :
품절


하루가 멀다하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의 사회면이 크고 작은 살인사건으로 뒤덮혀 넌더리가 날 때쯤 이 소설을 읽었다. 저자의 책 [알렉스]를 먼저 읽었고 살인사건에 대한 내성이 생긴 덕분인지 이 책에서 보는 살인은 조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범인으로 짐작되는 소피의 상태가 매우 불안정하고 겁에 질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은 사람은 늘 그녀가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발견된다. 그녀의 의식에는 살인을 기억하는 단 한나의 실마리조차 남아있지 않다. 소피가 잠에서 깨어보면 피해자의 죽음에 증거가 될만한 자신의 소지품이 나오고 죽음에 결정적으로 기인한 무기가 들려있는 식이다. 그녀는 자신이 저질렀다고 추측되는 모든 살인으로부터 일단 도망치기 시작한다.

 

여섯살 아이 레오의 시신이 발견된 이후, 젊은 여성의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이 사건의 용의자 역시 그녀로 지목되었다. 프랑스내 1급 수배대상이 된 그녀의 도피생활은 8개월이 넘도록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치밀한 계획으로 자신의 신분을 위장했고 장소를 옮겼으며 근무지를 바꾸면서 도망자의 신분으로 살아간다. 그동안에도 그녀의 의식은 출렁이는 파도처럼 심한 기복과 불안의 징조들을 보이고 우울해했으며 피폐해져간다. 자신이 살인용의자가 되어 도망다니기전 그녀의 남편은 촉망받는 화학자였으며, 자신 역시 경매회사에 중요 언론담당관으로 근무했고 회사의 두터운 신임을 받으며 근무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것들이 조금씩 어긋나기 시작했음을 알게 되고 그로 인해 그녀의 회사생활도 엉망이 되어간다. 결정적으로 그녀를 괴롭게 했던건 남편 뱅상의 죽음이었다. 그녀로 인해 죽게 된 많은 이들은 매일 꿈에 나타나 그녀를 힘들게 한다.

 

오랜 도피생활에 지친 그녀는 자신의 신분이 탄로날 위기에 처하게 되고 그 순간, 프란츠를 만나게 된다. 기한이 짧은 가짜 신분증으로 그녀는 결혼을 서둘렀고 남편의 성으로 살며 자신의 신분을 감출 수 있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잠시동안 프란츠의 사랑으로 안정을 되찾는가 싶었던 소피는 프란츠의 소지품에서 놀라운 물건을 발견하게 된다. 그 후 이야기는 급물살을 타며 매우 흥미진진하게 흘러간다. 저자의 작품 중 먼저 읽은 [알렉스]보다 흡입력이 더 뛰어나다.

 

소름끼치는 광기와 잔인함, 확실한 반전의 묘미를 지닌 이 소설의 매력은 책을 펼친 순간 손에서 놓을 수 없을 만큼 강렬하다. 그리고 소설 전반을 휘감는 인물들의 각기 다른 광기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묵직하게 옥죄어 온다. [알렉스]처럼 사건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형사의 객관적인 시선으로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경우 대립하는 두 인물의 심리상태를 세밀하게 묘사하며 극의 긴장감을 높였기 때문에 몰입이 더 빨랐다. 불안과 우울의 광기, 집념의 광기, 복수의 광기 인간의 뒤틀린 광기와 욕망이 매우 잔인한 방법으로 그려지지만, 현대사회의 가학적인 인간의 모습을 보면 비단 소설속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제목인 그 남자의 웨딩드레스에 얽힌 비밀을 풀어가며 이야기에 집중하다보면 어느새 진실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긴장감으로 책을 읽는 순간 결말까지 읽어야 직성이 풀릴 정도로 빠져들게 된다. 현재 영화로도 제작중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그려질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굿바이 동물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굿바이 동물원 -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강태식 지음 / 한겨레출판 / 2012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먹고 산다는 것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마음속에 늘 품고 있는 말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삶은 죽음을 먹는 것이다" 라는, 살기 위해 살아있는 것을 죽여 먹는 것이 바로 밥이니, 밥벌이가 치열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삶은 하루 하루 죽음을 먹는 것이기 때문에 지루할 수 없고, 빚지지 않은 적이 없고, 치열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화학자 조셉 캠벨의 말이다. 나이가 들고 직장생활을 오래 하면서 회의가 들고 사직서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마다 난 이 말을 몇 번이나 곱씹으며 마음을 다잡는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기술이 고도화되고 심화되는 경기침체와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물가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고, 몇십년째 제자리인 급여로 인해 먹고 산다는 것은 모두에게 엄청난 스트레스가 되고 있다. 죽음을 먹고 살기 때문에 치열할 수 밖에 없지만 그 치열함에 사람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인간성을 포기하면서 버거워하고 있다.

 

여기 직장에서 정리해고된 후 어둡고 긴 터널의 실직생활에 빠진 남자가 있다. 그의 아내는 적금통장을 깼고 자기 대신 동네 마트에 취직을 했다. 그는 돼지엄마라는 사람을 통해 마늘까기 부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울고 싶은 날이면 마늘을 깐다는 그는 인형눈알 붙이기, 바비인형 속눈썹붙이기, 학과 공룡알 만들기등 다양한 부업을 하게 된다. 그 사이에 인형눈알을 붙이다 본드를 흡입하게 된 그는 환각에 빠지며 헤어나올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돼지엄마를 통해 준공무원에 해당한다는 동물원 취업 제안을 받고서 한 달동안 체력단련에 매진한다. 생각보다 낮은 경쟁률로 바로 합격하여 출근하게 된 그는 자신이 동물원의 동물로 일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한순간 자괴감에 빠진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모여 동물탈을 쓰고 동물흉내를 내며 일하는 그 곳에서 때때로 괴롭지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을 통해 진한 동료애로 울고 웃으며 인간성을 회복해나간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보았을 때 정말 기발한 상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이야기의 전개를 머리속으로 그리자 그렇게 슬프고 비통할 수가 없었다. 주인공과 함께 고릴라사에서 일하는 만딩고나 앤, 조풍년의 과거사를 통해 그려지는 현실의 단면이 애처로웠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 남을 배신하고 짓밟아야하고 아등바등 하루를 살았지만, 결국 동물이 되어서야 인간답게 살게 된 그들을 보며 먹고 산다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르게 보였다. 늘 힘들게 일하는 사람들보다 쉽게 일하는 사람들만 비교하며 내 인생은 왜 이렇게 고단할까 한숨지은 날이 많았다. 그러나 이 세상에 쉽게 돈버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사회는 사람들에게 돈을 쥐어주며 그 돈보다 높은 효율과 가치를 기대하며 숫자로 모든 것을 재단해왔다. 사람들은 사회가 기준한 대열에서 낙오되었고 대열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잔인하고 독해졌다. 독해진 그들은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쳐야했고 모든 가치의 잣대가 돈으로 환산되었다. 

 

모든 게 돈으로 해결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이 시대의 비참함을 저자는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리고 있다. 때론 아픈 곳을 살짝씩 건드리기도 하고 비틀기도 하고 진지한 날카로움으로 폐부를 후벼파기도 한다. 그러나 이 글을 보며 나는 위로받을 수 있었다. 내가 사는 방식이 맞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소설을 보며 나 자신을 버리며 일했다고 억울해했던 시간과 보상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하루들이 먹고 사는 것의 위대함보다 앞설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먹고 살기 위해서 고릴라탈을 써야 한다는 건 아니다. 적어도 고릴라탈을 쓰고 일하면서도 인간성을 버리지 않는다면 인간이기를 포기하지 않는다면, 더럽고 치사한 직장생활도 하루에 열두번도 더 써내려간 사직서도 견딜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열심히 일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는 생활고때문에 오는 상실감과 허탈함은 그들을 좌절의 늪에 빠뜨리고 소설의 말미에 동물원의 동물들은 아프리카 원시림의 동물이 되는 길을 택하게 되는데 사람으로 살 때보다 행복하다고 말한다. 먹고 산다는 것 이상으로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가혹한 현실속에 '세렝게티 동물원'은 어디에도 없지만 나는 동물원에 갈 때마다 치열하게 사는 그들을 마주하게 될 것 같다. 

 

동물원에 있으면 사람답게 살 수 있어.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 구실 같은 건 안해도 돼. 솔직히 이 나라에서 사람 구실 하면서 

사람답게 사는 인간이 몇이나 되겠냐고. 난 거의 없다고 봐. 하지만 동물원은 달라. 사람 구실은 못하지만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곳이 동물원이야. 웃기지? 내가 그랬잖아. 사는 게 코미디라고.    -p.21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언제 그랬냐는 듯 뜨거웠던 여름이 온순하게 식어감을 느끼는 9월이네요. 이렇게 선한 바람이 불어주는 가을이라 식었던 독서열기도 활활 불타오를 것만 같습니다. 가을을 기다렸다는 듯 쏟아진 9월의 신작들에서는 꼭 읽히고야 말겠다는 어떤 결의마저 느껴집니다.  이제 독서할 자세를 가다듬고 눈여겨본 9월의 신작소설을 추천합니다.

 

 

 

 

 [새들은 페루에 가서 죽다]와 [자기앞의 생]으로 깊이 각인된 작가, 로맹가리의 신작이 나왔다. 인종갈등, 부부갈등, 이념갈등등 뭔가 묵직한 내용을 담고 있지만 그의 책이라면 무조건 읽어보고 싶다.

그의 강인하고 유머러스한 필치가 기대되기도 하고, 국내 초역이라 한 번도 국내에 소개되지 않았기에 읽었을 때 그 가치는 배가될 것 같다. 인종차별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깊은 통찰력으로 풀어냈을 이 작품, 9월의 강력추천 신간이다.

 

 

 

 

 

 

 

 

바쁜 일상과 쫓기듯 허덕이는 시간에 여유를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무엇에서든 위로받길 원한다. 그 중에 음식은 만국공통어라해도 좋을만큼 상처받고 위로받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위안이 되어왔다. 정성스레 준비한 따뜻한 음식을 먹으며 배고픔을 달래고 있노라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이 되기도 한다. 여기 음식을 통해 위안을 찾은 사람들의 따뜻한 이야기가 준비되어 있다. 따뜻함을 준비했다는 노골적인 제목으로 나를 유혹하는 9월의 신간, 읽어보고 싶다.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어둡고 긴 터널을 인생에 누구나 한번은 경험하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괴롭고 숨이 막혔으나 뒤돌아보면 그 시간은 모두 지나가기 마련이고 어느새 과거가 되어있다. 미군부대에서 레스토랑을 하는 아빠와 살고 있는 열두살 소녀 선희는 소설 속에 그런 시간을 살고 있는 듯하다. 이 아이가 지나온 시간이 궁금하다. 모든 것이 반짝거리지만은 않는 유년의 기억과 아픔, 무척이나 읽고 싶어지는9월의 신간.

 

 

 

 

 

 

 

스티븐 킹, 닉혼비 20명이나 되는 저자들 사이에 내가 들어본 작가는 고작 2명이다. 그래도 이 책, 도대체 왜 이들이 모여서 한 권의 책을 냈는지 너무도 알고 싶다. 그리고 읽고 싶다는 간절한 생각이 든다. 나 역시도 단편소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작가들에게는 단편소설에 대한 로망이 있는 모양이다. 장편에서 보여주지 못한 실험적이고 깜짝 놀랄만한 발상의 상상력을 발휘한 이야기를 단편에서 보여주고자하는 듯하다. 독서의 계절 가을, 대미를 장식할 9월의 추천신간으로 뽑아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N을 위하여]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N을 위하여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난주 옮김 / 재인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랑만큼 어려운 감정이 없다. 그리고 사랑만큼 기쁘고 행복한 감정도 없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에 사랑이란 영원한 수수께끼이다. 한 사람의 인생을 뒤바꾸는 건 물론이요, 순수함을 일깨우며 한 사람의 근본을 뿌리째 흔들어놓기도 한다. 궁극적인 사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시작된 이야기는 어느 살인사건을 둘러싼 등장인물들의 고백을 통해 새롭게 정의된다. 각자는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사건의 진실을 은폐했다. 그리고 10년 뒤 그들은 그 때의 사건을 떠올리며 진실은 무엇이었나 고민한다.

 

도쿄의 초고층 고급맨션에서 대기업의 간부인 노구치와 그의 부인 나오코가 살해됐다. 현장에 있던 네 명의 젊은이(스기시타 노조미, 안도 노조미,니시자키 마사토, 나루세 신지)는 니시자키 마사토가 범인임을 증언하고 그는 체포되어 10년형을 언도받는다. 그러나 10년 뒤 6개월의 시한부인생을 선고받은 스기시타 노조미에 의해 살인사건의 진실이 하나 둘 밝혀지고, 그들의 이야기는 서로가 서로를 모르던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등장인물들이 말하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라면 도대체 그들이 이야기하고픈 진실은 무엇이었나, 책장을 넘길수록 그것이 몹시 궁금해 끝까지 책을 놓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모조리 읽었다. 하지만 이건 마치 사건의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만들기 위한 허술한 트릭처럼 그들 개개인의 현재와 과거까지 억지스럽게 꾸며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개연성이 없다고 해야할까. 어차피 이야기는 소설이지만 억지스런 과거나 고백때문에 -혹은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될수록- 그들이 말하고자하는 궁극적인 사랑은 설들력을 잃어갔다.

 

 그리고 제목의 N이 등장인물 모두를 지목하고 있는 걸로 보아 N이란 자신이 사랑한 상대방일 수도 있으나, 나는 그보다 N은 바로 본인 자신들을 지칭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다. 자신이 사랑이라 주장하는 상대방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양방향이 아니다. 상대가 알지 못했던 일방적 감정이었고 그것은 교류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모두가 N을 위하여라고 말하고 있지만 그들의 사랑은 서로에게 진실조차 말하지 못한채 묻히고 만다. 결국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사랑을 지키려고 했던 니시자키 마사오의 감정 역시 상대에게 인정받지 못하면서 누구를 위한다는 말은 위선이 되었다. 그를 제외하고는 누구도 현실이 흔들리지 않았다. 그들의 삶은 견고했으며 나아가 서로를 몰랐던 것처럼 남이 되어 시간이 흘렀다. 그래서 이 책이 말하는 궁극적인 사랑이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별을 스치는 바람]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별을 스치는 바람 1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시를 읽고 가슴에 품어본게 언제였던가. 이 책장의 마지막을 덮으며 되짚어보았다. 너무도 까마득했다. 건드리기만해도 온 몸에 가시가 돋을 만큼 예민했고, 파란 하늘만 봐도 눈물이 핑 돌 정도로 이유없이 슬프고 쓸쓸했던 고등학생때였다. 그건 마치 오래전 앨범을 들여다보며 '아, 그 때 정말 이랬었지'라고 그리워할만큼 아련한 기억이었다. 비록 교과서에서만 읽었던 시였으나 지금도 선명하게 읊을 수 있는 시들... 그 시를 마음에 새기며 설레했었다. 책을 읽는 동안 오랜 사회생활에 피폐해지고 삭막해진 내게 윤동주의 시와 지고지순한 삶도 조금씩 걸어들어왔다. 그 때처럼 마음을 뒤흔들만큼 격렬하게 저항하고 싶다는 욕망이 솟구쳤다.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일이키는 무언가, 그건 바로 시의 내재된 힘이었다.

 

후쿠오카 형무소, 배치된지 얼마되지 않은 어린 일본인 간수 와타나베 유이치는 감옥안에서 일어난 잔혹한 살인사건을 목격하게 된다. 피해자는 자신과 같은 일본인 간수 스기야마 도잔. 형무소장은 그에게 스기야마의 살인사건을 전담해 맡으라는 명령을 내린다. 살해된 스기야마의 간수복 주머니에서 발견한 시 한 편의 단서, 그리고 스기야마의 삶을 추적하는동안 점점 감옥안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에 휘말리고 진실이 아니길 바랬던 거대한 음모의 진실에 다가가게 된다. 스기야마의 과거행적을 쫓다보니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한 인물. 유이치 역시 조선인만 수감된 제 3수용동의 시인 윤동주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내면의 변화를 일으키게 된다.

 

소설은 실제 윤동주가 독립운동으로 인해 2년형을 언도받고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된 28살에서 죽기 전 29살까지 1년간의 밝혀지지 않은 시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허구의 인물과 사건을 통해 윤동주라는 인물을 입체적으로 살려냈다. 윤동주가 형무소에서 보냈던 짧지만 고통스런 날들을 바탕으로 신비롭기만했던 한 시인의 생애를 생생하게 그려볼 수도 있다. 그러나 책을 읽는 나는 그의 숨겨진 시간을 읽는 기쁨만큼이나, 살아남아 비루하고 의미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슬픔 또한 배가되었다. 그는 시를 남겨 몇백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유효한 삶을 살고 있는데 나는 도대체 무엇을 하며 하루를 살고 있는가하는 자책도 생겼으며, 그를 죽게 만든 인간의 악랄함을 목도하고 유이치가 속죄했듯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비겁함에 치를 떨어야 했다. 

 

한편으론 책 속에 "문장은 영혼을 구한다"는 말처럼 그의 시를 읽고 내 영혼도 바로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희망을 품었다. 또한 이 책을 통해 윤동주가 교과서에서나 만날 수 있는 고리타분한 시인이 아닌, 인간의 아름다운 영혼을 믿고 끝까지 절망하지 않았던 위대한 시인이었다는 사실을 되새길 수 있었다. 마지막에는 읽기 힘들만큼 슬퍼서 휘청거리기도 했으나 끝내는 읽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를 읽은 기억만큼 거슬러 올라간 과거에 별을 바라보며 그의 시를 생각하던 때가 불현듯 스쳤다. 인간이 얼마만큼 잔인하고 얼마큼 아름다울수 있는가를 역설하는 이 책, 귀뚜라미가 가을의 시작을 알리는 이 밤에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