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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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고등학교 1학년 때였나 중학교 때였나 <솔로몬의 딸>이라는 책을 읽었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로 제작되어 꽤 인기를 끌었던 작품으로 기억한다. 난 영화는 보지 않았고 소설만 읽었는데 20년도 더 옛날에 읽은 책이 아직도 선명히 기억날 정도면 꽤나 인상적이었던 모양이다. 


미국에서 이란인 남자 의사와 결혼해 살던 미국인 여성이 2주간의 방문으로 알고 남편의 고향인 이란에 간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방문이었는데 남편은 귀향이었던 것이 문제다. 미국에서는 20세기 말엽의 평범한 미국 남자처럼 행동하던 남편이 이란에 돌아가는 순간 전형적인(? 내가 아는 이슬람 남자들의 전형성이란 진짜 전형성 맞나. 그렇다면 좀 심한데.) 이란의 이슬람 남자가 된다. 미국인 아내의 외출을 금지하고 히잡을 강요한다. 주인공은 그것을 참고 견디다 어느날 딸을 데리고 이웃나라 터키의 미국 대사관으로 탈출한다. 그 탈주의 과정이 꽤나 스펙타클 했던 기억이 난다. 


그것이 문학으로 만나는(아라비안 나이트를 제외한다면) 이슬람과의 첫만남이었다. <솔로몬의 딸>에서 있었던 강제와 억압을 피해 탈주하는 여인의 이미지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2007년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변주되어 나타났다. 이번에는 이란이 아니라 아프가니스탄이다. 


라바니가 정권을 잡으면서 대법원은 이제 강경파 율법학자들로 채워졌다. 그들은 여자들에게 권한을 주었던 공산주의 시절의 법령을 폐지하고, 여자들에게 몸을 가리라고 명령하고 남자 친척 없이 여자들이 여행하는 걸 금지하고, 간통을 돌로 쳐 죽이는 엄격한 이슬람법에 기초한 법령을 통과시켰다. 

..........

"함시라, 당신은 여자가 달아나는 것이 범죄라는 것을 알고 있겠죠. 우리는 남편이 죽었다며 혼자 여행하는 여자들을 많이 봅니다. 사실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사실이 아니죠. 당신은 달아나는 것 때문에 감옥에 갇힐 수도 있어요. 그건 이해하겠죠?"



『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현대문학, 2007, p.350-359

나는 내 일생 중 5년을 이슬람 국가에서 산 적이 있다. 인구수로만 따진다면 최대의 이슬람 국가라는 인도네시아다. 그곳에서 이슬람의 이미지는 나쁘지 않았다. 아마도 그다지 이슬람이 강하지 않은 곳이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한국 음식 매니아를 자처하던 다인의 친구 엄마는 종종 돼지고기 요리를 주로 하던 한국 식당을 자신의 단골식당이라 말하기도 했으니까. 오히려 놀란 내가 어머, 거기 대부분 돼지고기인데? 라고 했더니 그녀는 짖궂게 윙크를 하며 킬킬 웃었다. 


재미있는 것은 가난한 사람(식모나 기사 말이다. 내가 접할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 봐야 그 정도지 뭐.)일수록 이슬람의 율령을 엄격하게 지키고 부유한 사람(주로 중국계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슬람교를 믿는. 인도네시안이지만 아이를 현지학교가 아닌 내 아이가 다니던 국제학교에 보내는 경제력을 가진)들은 대충, 헐렝하게 눙치고 들더라는 거. (사실 우리 식모 말고 거기서 사귄 내 친구 이슬람 여인들은 히잡도 쓰다 말다 했다. 식모만 기를 쓰고 쓰더라.)신기하고도 웃겼다. 그와는 별개로 가끔 마주치게 되는 부르카를 입은 여성들. 그녀들은 출입국 심사를 하는 곳에서도 여성이 하는 곳에서만 골라서 서고, 뒤집어 쓰고 있던 망토 같은 것으로 그 여성 심사원과 자신을 함께 가려 그 여성 외에는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볼 수 없게 만든 뒤에야 부르카를 열었다. 그런 장면, 여러번 봤다. 해외 여행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부유한 여성들도 아프가니스탄인이면 그렇게 사나 보더라고. 


대체 뭐지, 이슬람이라는 이 종교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아프가니스탄 연작소설은 무척 재미있지만(천 개의 찬란한 태양, 연을 쫓는 아이, 그리고 산이 울렸다) 재미와는 별개로, 으아. 이슬람이란 종교는 대체 뭐지. 인간을 집단적으로 미치게 만드는 건가. 싶었다. 결국 국가의 발전과정에서 제정일치의 사회가 제정분리로 가는 것은 이성적이고 올바른 길이라고 다시한번 느끼게 만들기도 했고. 종교 원리주의라는 게 이렇게 무서운 건가 싶고. 아,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 카불에서 태어났지만 미국에 망명한 뒤에야 이 소설들을 썼다. 


나는 종교의 본령을 마음의 평화라고 생각하는 쪽이어서. 이런식의 집단 광기는 굉장히 불편하다. 물론 이유야 있겠지. 여성 할례를 하고(슈퍼모델 와리스 디리의 책『사막의 꽃』에서 이 여성할례가 아주 자세히 묘사된다.) 눈조차 망사로 덮어버리는 부르카를 강요하는 이유가 분명 있을거다. 인도네시안 친구에게 물으니 그것은 여성의 순결함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머리카락은 남편에게만 보일 수 있고 블라블라 설명하기는 했는데, 아니 머리카락과 순결이 무슨 관련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이번에도 그녀는 짖궂게 눈을 찡긋하며 전통이야! 했을 뿐. 그녀 스스로도 웃기다는 듯.(실제로 그녀는 잘 쓰고 다니지 않았다. 그리고 인도네시아는 부르카가 아니라 머리카락만 가리는 히잡을 쓴다. 이슬람의 여성 얼굴 가리는 정도는 히잡:머리카락만 가림-니캅:눈만 내 놓음-부르카:눈 부위도 검은색 망사로 가림 순으로 심해지고, 여성의 의상에 대한 강제는 그 나라의 이슬람 원리주의의 척도로 보면 된다) 아니 왜 이런 짓을 하냐고. 대체. 


타 문화에 대한 존중은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인권에 대한 압박과 연관되는 문화라면 과연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자꾸만 든다. 


이 책, 아홉살에 아버지의 강요로 인해 서른이 넘은 남자와 결혼을 하고, 열살도 되기 전에 성폭행에 노출되어야 했던 이 열살 이혼녀 누주드의 결혼도 아홉살 여인과 결혼한 마호메드에 의해 합리화 된다. 

"너무 어리다고? 예언자 무함마드가 아이샤와 결혼할 적에, 아이샤는 아홉 살밖에 되지 않았었다."

p. 61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와 결혼을 하면, 행복한 결혼 생활은 보장되는 것이다." 부족에 전해 내려오는 얘기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p. 85

설마. 진짜? 그 종교는 그렇게 가르친다고.


조혼의 풍습은 이슬람만의 것은 아니다. 몇백년전의 조선에도 있었고, 중국에도 있었다. 아직까지도 미개한(음, 어감이 별로군. 덜 개화한?) 중국의 어느 지역에서는 조혼풍습이 문제가 된다. 그럼에도 이슬람의 조혼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종교의 경전을 들이대고 있기 때문이다. 마호멧(무함마드)이 아홉살짜리랑 결혼했으니. 라고. 음. 만약에 내가 이슬람 종교지도자라면 말이다. 그런 말을 하며 조혼을 정당화 하는 자의 입을 돌로 칠텐데. 종교를 이유로 부끄러운 짓을 정당화 하다니. 


나라 전체가 코로나19 방역으로 난리다. 이 와중에 돌올하게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가 있다. 아주 시끄럽고 지겨워 죽겠다. 그야말로 "예수가 그러라고 시키드나." 묻고 싶어지게 만드는. 기독교인들 대체 왜 그러니. 라고 물으면 벌떼같이 댓글이 달린다. 일부 교인의 문제를 전체 종교로 치부하지 마세요. 라고. 아니 그 일부가 너무 많잖아. 기독교 왜 그러니 라는 말을 듣기 싫으면 그냥 내부에서 그러지 못하도록 말리면 된다. 예수님의 이름을 걸고 그런 더러운 짓거리 하지 마세요, 라고 이야기 하면 된다. 일부라고 외치지 말고. 그리고 일부라기엔 너무 많다. 


몇몇 이슬람의 이름을 내세워 저질러지는 악행들에 대해 일부 이슬람만 그렇습니다, 이슬람은 평화로운 종교입니다. 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냥 안하게 말리면 된다. 이슬람 내부에서 자체 정화를 하려는 노력 없이 그들의 행위를 그냥 두면서, 일부 이슬람만 그렇습니다, 이슬람은 평화로운 종교입니다 라는 말은 좀, 음, 많이 웃긴다. 일부라기엔 너무 많은 자들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지 않나. 


그냥 좀, 답답해서 주저리 주저리 써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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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누주드, 열살 이혼녀
누주드 무함마드 알리.델핀 미누이 지음, 문은실 옮김 / 바다출판사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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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등 뒤에서 무슨 얘기를 할 것인지는 생각하지 않으렵니다. 나, 누주드, 열 살, 나는 한 가지 질문에 답하기로 선택했습니다. 다른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을 것입니다. - P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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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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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아주 고요하면 예민해지는 게 아니라 둔한 방심 상태가 된다.
그런 방심 상태가 되면 평소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띈다. ‘존재‘ 만 하던 것들이 슬며시 자기를 드러낸다. - P93

배역이 다를 뿐 모든 사람의 욕망과 상처는 본질적으로 같다.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무게의삶을 산다.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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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서녀명란전 1~8 세트 - 전8권
관심즉란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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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7년 제2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수상한 전혜성의 소설 『마요네즈』는 36세의 전기대필작가(한마디로 자서전 대필작가다)와 그녀의 어머니와의 이야기다. 소설의 제목을 제공하는 주인공의 어머니(36세의 딸을 둔 노인이 머릿결을 위해 머리에 마요네즈를 뒤집어 쓰고 있다가 기절했던가...)가 바라는 것은 딱 하나, 박경리 선생이 『토지』를 완결짓지 않고 영원히 써 주는 것이라고 했던가. (그러나 실제로 대하소설 토지는 이 소설이 나오기 3년 전인 1994년 8월에 완결된다.)


아주 오래전의 이야기이지만, <퇴마록> 시리즈의 작가 이우혁은 (퇴마록은 인터넷이 활성화 되기 전, 하이텔에 연재된다) 퇴마록이 인기를 얻은 초기에 여러번 그런 제의를 받았다고 한다. 각 등장인물의 성격이나 설정을 그대로 가져다가 자기가 이야기를 (일종의 오마주인가? 팬픽인가?) 써도 되느냐고. 물론 이우혁은 매번 그 제의를 거절했다고 한다. 온라인 연재소설의 가치를 형편없이 매기던 시절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약간의 시사점은 있다. 


소설을 영어로 novel이라고 하는데, 최초의 novel은 1740년 사무엘 리처드슨Samuel Richardson이 쓴 <파멜라Pamela>로 본다. 그럼 그 이전까지는 소설이 없었나 하면 그건 아니고, 파멜라는 이야기가 로망스(낭만적인 이야기)에서 노벨로 넘어가는 분기점으로 보면 된다. 로망스와 노벨의 공통점과 차이점에 대해서는 대학시절 열심히 배웠던 거 같은데 지금 기억나는 건 로망스는 인물, 주인공 중심적인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리고 주인공이 매우 high 하다. 귀족이거나, 공주, 왕자, 최소한 기사가 주인공이 되면 그건 로망스고 주인공의 신분이 점점 비천해지면(파멜라는 하녀다) 그건 노벨이다. 중세 기사도 문학이 모두 로망스다. 그리고 이 로망스의 전통은 노벨이 등장하면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대까지도 로맨스 장르로 이어진다. (요즘 리젠시 물의 대표작인 넷플릭스의 브리저튼을 열심히 보고 있는데, 이 드라마역시 줄리아 퀸의 로맨스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물론 20세기의 작품이고.)


새로운 장르가 등장했음에도 여전히 그 명맥을 이어나가고 있는 로맨스(로망스)의 힘은 주인공에 있다. 고귀한 신분에 하나같이 재자가인인 로맨스의 주인공들은 쉽게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독자들은 그들의 이야기가 끝이나지 않기를 바란다. 환갑이 지난 나이에도 머리에 마요네즈를 뒤집어쓰는 철없는 엄마마냥. (참고로, 박경리 선생님의 소설 토지를 누가 감히 로맨스라고 할까마는, 몇몇 평론가들에 의해 박경리의 인물들이 지나치게 빼어난 외모와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노벨적이지 않고 로망스적이라는 비판을 받은바 있다. 실제 토지의 주인공은 모두 돌올할 정도로 뛰어난 미모의 소유자들이다. 남녀 불문.)


이런 독자들의 애정은 한편의 소설을 한도끝도 없이 늘어지게 만든다. 그야말로 장편대하서사시가 되는 것이다. 독자가 그 소설을 잡고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주인공에 몰두했던 애정은 동심원이 번져나가듯 주인공 주변의 인물로 방울방울 번져나가 주인공이 낳은 자식들의 연애담에 스핀오프 형식의 주인공 부모의 연애담까지 작가가 써 내게 만든다. 이 애정이 넘쳐나면 세기말 이우혁이 받았던 제의까지를 하게 되는 사태가 오고, 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면 상플(상상플러스)이라고 해서 이미 끝난 드라마 주인공들의 후일담을 시청자들이 직접 글로 써서 온라인에 연재하는 상황까지 오게 된다. (은밀한 고백이지만, 나도 몹시 좋아하는 상플이 하나 있긴 하다.)


이 모든 것은, 배경이고 뭐고 다 필요없이 오직 인물, 인물, 인물에만 집중하게 되는 로맨스의 특성이 만들어 내는 결과다. 올해 넷플릭스를 뜨겁게 달구고 있는 드라마 브리저튼은 총 9권의 시리즈 물이다.(브리저튼 8남매가 각 권의 주인공들 되시겠다.)


이 소설 서녀명란전은 중국드라마 <녹비홍수>의 원작 소설이다. 한국에서야 <녹비홍수>가 인기 있으니 그 원작소설까지 가져다 번역한 것이지만, 본디 중국에서는 소설 <서녀명란전>이 인기를 얻자 드라마로 제작된 거다. 


내용은 별 거 없다. 중국 명나라(로 추정된다. 드라마에는 송대를 배경으로 잡았다)때 성씨 집안의 이야기다. 줄리아 퀸 의 브리저튼 시리즈의 중국 버전이려나. 주인공은 제목 그대로 성씨 집안의 서녀 명란이다. 위로 정실 소생의 큰오빠, 큰언니, 첩실 소생의 작은 오빠, 작은 언니, 다시 정실소생의 언니가 있고 명란이다. 여섯째라고 불리는 건 여섯번째로 태어난 아이여서 그렇다. 드라마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또 다른 첩실의 몸에서 난 일곱째 남동생도 있다. 소설은 명란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명란의 아버지 성굉, 할머니 성노老부인, 본처 왕씨와 총애받는 첩실 임이랑 등의 이야기가 잘 녹아 들어간다. 브리저튼 자녀 각자에게 한권씩의 분량을 준 줄리아퀸 과는 달리  서녀명란전은 제목이 <성씨이야기>가 아닌만큼 명란의 이야기로 8권의 책을 다 채우고 있기는 하지만 각 형제와의 친교와 알력이 곧 명란의 생활이 되느니만큼 형제들의 이야기도 다양하게 들어가 있다. 지루할 수도 있겠고, 중심이 되는 사건이라는 게 딱히 없느니만큼 산만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작가는 다양한 가정사 이야기와 현대 한국인의 눈으로 보기에는 꽤나 자극적이고도 엽기적일 수도 있는 사건들로 지루할 틈이 없이 채워나간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재.미.있.다.


드라마<녹비홍수>를 먼저 봐 버린 관계로 주인공 고정엽의 얼굴이 참으로 못생긴 중국 배우 풍소봉의 얼굴로 겹쳐보이는 것만 아니라면 더 재미있게 읽었을수도 있는데. (뜬금없지만, 난 내가 읽은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영화나 드라마는 웬만해서는 보지 않고,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나 드라마의 원작소설은 반드시 찾아본다. 그래서 난, 해리포터 영화 안봤다. 내 나름의 원칙에서 벗어난 유일한 작품은 반지의 제왕이다. 이건 피터 잭슨 만세 외치면서 봤다.)


그러면서 생각해 보는 것이다. 여덟권이라는 결코 짧지 않은 소설을, 중심 사건없이도 읽게 만드는 힘이란 뭘까 하고. 결국은 인물, 인물, 인물. 작가의 입장에서 공들여 만들어 낸 매력적인 인물을 버리기가 아까우니 계속해서 시리즈물이 나오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소설도, 영화, 드라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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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번째 집 두번째 대문 - 제1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임영태 지음 / 뿔(웅진)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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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없다는 것 하나로거대한 인공 구조물들은 비석처럼 음울해 보였다. 아스팔트에 저 혼자 살아 쏟아지는 햇빛은 찬란하다 못해 고고하게 번쩍거렸다. 그리고 그림자가 있었다. 사람이 사라지자 그림자가 거리의 주인이 되었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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