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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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함과 뻔뻔함 그 사이의 어딘가 82년생 김지영by. 조남주

 

다시 읽은 날 : 2024. 9. 17 (추석맞이 독서였다.)

 

2016년에 처음 출간돼 영화로도 만들어지고 관련 다큐멘터리까지 만들어진 이 책을, 한참 붐이 일 때 한번 슥 읽고 그냥 던져두었었다. 내용은 둘째치고, 그냥, 올드했다는 기억만 남아있다. 나는 개별성을 가지지 못하는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는다. 김지영이어도 이지영이어도 김지현이어도 되는 주인공을 가진 소설은 선동이 된다. 물론 누군가는 써야 하는 소설이고 누군가는 읽어야 하는 소설이라는 점에서는 동의한다. 나름의 가치도 있다. 다만. 다만. 나는 쫌. 인 거다.

 

그런이유로 애초 읽을 생각이 전혀 없던 이 소설을 읽은 건 방송국 다큐프로그램 때문이었다. SBS 였나. 80년대생의 진짜 지영씨 몇 명을 모아 그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소설의 이야기가 정말 보편성을 획득하는가, 우리 사회가 정말 그러한가에 대한 탐색을 하는 다큐였는데 거기서 몹시 신선한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같은 80년대생이고, 같은 여자고, 같은 지영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지만 가정 내 남녀차별이라는 것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살았다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진짜로 그런 경험을 한다고요?라고 눈이 동그래지는 그녀(그녀도 남자 형제가 있다)를 보며, , 이제 나도 한번 읽어볼 때가 되었어. 라며 처음 읽은 게 그때였다.

 

결혼 후 첫 명절이 설이었다. 두 번째 명절인 추석에는 첫애를 출산한 직후여서 명절을(정확히는 시댁 친정 양가 방문을) 패스했고, 세 번째 명절인 이듬해 설까지도 남편은 멀쩡히 나와 함께 시댁에 머물렀다. 그리고 네 번째 명절이었던 2007년의 추석이었다. 시댁에 도착한 저녁, 남편은 친구 잠깐 만나고 올게’, 라고 말하더니 휙 나가버렸다. 내가 뭐가 어찌된 일인지 파악할 새도 없었다. 그 잠깐이 밤 12시가 넘은 시간인지 몰랐지, 나는. 아마도 그 이전 두 번의 설은 새신부이거나 아직도 너무 어린 아이가 딸린 나를 나름대로는 배려했던 모양이었다.

훗날 알게 된 거지만 결혼 전 남편의 본가 방문 패턴은 늘 그런 식이었다. 명절 전날이든 전전날이든 내려가서 집에는 얼굴만 휙 비춘 뒤,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 밤새 놀고 새벽에 들어가서는 자고, 다음날 밥 먹고 서울로 돌아가기. 미혼이거나 마누라를 홀로 시댁에 음식 하러 보낸 친구의 집에 모여 카드치고 노는 거다. 미혼인 것들이 그렇게 노는 거야 내 상관할 바는 아니고, 지 마누라 지 조상 제사상 음식 만들라고 지 집에 보내고도 지는 안가고 앉아 고등학교 동창들이랑 카드나 치고 앉은 그놈도 내 상관할 바 아니지만, 내 서방이 나를 지부모집에 혼자 버려두고 친구랑 노는 것, 이건 내가 상관해야 할 일이다. 처음 당하는 일이라 어버버 이게 뭐지? 하고 있는데 남편은 자신이 잘못하고 있다는 인지가 전혀 없었고(마누라가 짜증이 날 수는 있겠지만 내가 잘못하는 건 아니다는 기적의 논리였더라고.), 시부모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아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전혀 없고, 따라서 며느리인 내가 화를 낸다거나 황당해한다거나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전혀 짐작도 못하고 있었다. 며느리는 시댁에서 애 보며 놀면되고, 아들은 간만에 내려와서 친구 만나서 놀면 되니 그분들 기준에서는 잘못된 일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결혼 후 네 번째 명절이 지나갔다. 새벽 두 시에 들어 온 남편은 본인이 나에게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굴었다. 그 해맑은 태도에 나 역시 말 없이 넘어갔다. 뭐 어쨌든 그 당시엔 처음 있는 일이었으니까, 설마 그게 반복될 일인 줄은 모르고 말이다.

 

다섯 번째 명절인 2008년의 설이었다. 여전히 남편의 패턴을 모르고 있던 나는 설마 이번에도 나갈까 했는데 역시 이번 명절에도 남편은 저녁을 먹고는 홀연히 일어섰다. 친구 만나고 올게. 그리고는 새벽 네 시에 돌아왔다. . 사람이 눈이 돌아간다는 게 이런 거구나 실감을 했다. 사람이 너무 비현실적인 일을 당하면 화가 나기에 앞서 이 일이 무슨 일인가, 대체 여기는 어디란 말인가 상황을 돌아보게 된다. 토끼굴에 빠진 앨리스가 된 기분이었다. 아니면 외눈박이 나라에 홀로 떨어진 두눈박이이거나. 그곳에선 남편의 행동이 너무나 당연해서 화를 낸들 나만 미친년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그제야 반쯤은 짐작을 했다. 이게 남편의 명절 패턴이었구나, 하는 걸.

 

여섯 번째 명절인 2008년의 추석이 되었다. 나는 둘째를 임신한 임신부였다. 내려가는 길에 남편에게 물었다. “너 이번에도 나갈 거니?” 남편은 글쎄.” 라며 대답을 미뤘다. 간다는 확답이 나오기 전에는 가네 마네로 싸울 일도 없으리라는 나름의 계산기를 두드린 대답이었다. 어차피 나갈 거 싸우고 나가기도 귀찮았을 거고, 남편이나 나나 싸움 앞에서 회피하는 성격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나도 여전히 여상한 어조로 말했다. “너 마고 나왔지. 나 마여고 나왔어. 내 친구도 여기 널리고 깔렸다. 너 친구 만나러 나가면 나도 친구 만나러 나갔다 올게.”

 

시댁에 도착했고, 점심을 먹었고, 쉬는데 남편이 또 친구 만나러 잠깐나갔다 올게. 했다. 그 썩을 놈의 잠깐. 나는 손을 내밀며 평온하게 말했다. “그래, 나갈 거면 차 키는 주고 나가라, 차는 내가 쓰게.” 남편은 내가 그만한 배짱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순순히 차 키를 내게 넘겼다. 그 차 키를 받고 잠깐 애를 돌보는 사이 남편은 시댁에서 종적을 감췄다. 시어머니에게 물었더니 친구 만나러 나갔단다. 그 길로 애를 안고 일어섰다. “어머님, 저도 친구 만나러 나갔다가 아범 들어올 때 같이 들어오겠습니다.”

 

그때 시댁에는 시부모님 두 분과 시아주버님 내외와 아직 어린 시조카가 있었다. 뜨악해진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손윗 동서만이 평소와 전혀 다름없는 얼굴로 잘 다녀와 동서. 했다.) 사람들을 뒤로 하고 그 길로 15분 거리의 친정으로 휙 가 버렸다. 친정 대문 앞에 차를 주차하고 있는데 남편에게서 문자가 왔다. 그때가 4시쯤이었는데, 6시까지 들어 갈테니 가지 말고 시댁 있으란다. 상큼하게 답문자 날려줬다. ‘엄마집 앞 주차 중이야. 같이 들어가야 하니 들어갈 때 문자 남겨.’

 

엄마는 남편도 없이 혼자, 임신한 몸으로 큰애까지 달고, 예상보다 하루 일찍 도착한 나를 보고 놀랐지만, 이러저러해서 왔다고 설명하니 잘했다.’ 딱 한 마디 하셨다.

 

엄마한테 맛있는 거 얻어먹으며 애랑 친정에 뒹구는 해피한 시간은 금방 갔다. ! 하고 시계를 보니 7. 폰을 들어보니 남편은 645분에 시댁에 들어간다는 문자를 남겨놓은 상태였다. 부랴부랴 시댁으로 복귀했더니 다들 앉아서 저녁을 먹고 있더라고. 아 진짜 치사하기 이를 데 없지만 나한테 밥 차려내라 안 한 거니 됐지 뭐. 게다가 난 친정에서 이미 거하게 먹고 온 상태라. 해사하게 웃어주며 말했다. “저는 밥을 먹고 와서요. 방에서 쉴게요.”

 

평온을 가장하고 있던 나의 속내는 그거였다. 내가 이혼을 했으면 했지 매번의 명절마다 이 꼴 보고는 안 산다고.

 

그날 저녁, 다음날 아침까지 손윗동서를 제외한 시댁의 모든 사람들은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시어머니가 사과를 깎아 나한테(임신한 나한테!) 먹어보라 말도 안 하고 아들에게(그 명절마다 기어나가던-이건 그냥 나가는 거 아니고 기어나가는 거 맞음- 아들에게!)만 갖다 바치는 걸 본 덕에 지금도 나는 사과를 볼 때마다 그 유치한 왕따놀이가 떠올라 웃는다. 뭐 그러거나 말거나 나야 아쉬울 거 없어서 애 보고 동서랑 수다 떨다 점심을 먹고 일어섰다. 친정을 가자고 했더니 남편도 시모도 기가 질린 얼굴을 했다. 아니 그럼 내가 뭔 잘못을 했다고(잘못을 했어도 그렇지) 친정도 못가고 시댁에서 이 왕따를 당하며 벌을 서야 하느냐고. 남편은 시모의 눈치를 보더니 대뜸 나에게 다짐을 두듯 말했다. 내일 일찍 올라갈 거라고(그해 추석이 아마 뒤로 연휴가 길었던가 그랬다.) 그러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친정으로 넘어가는 차 안에서 우리 부부는 결혼 이후 처음으로 싸웠다. 남편은 자기가 뭘 그리 잘못한 거냐는 말로 시작했다. 그래서 여전히 산뜻하게 대답을 해 줬다.

니가 잘못한 게 없으면 나도 잘못한 게 없지. 근데 넌 왜 차를 세우고 이러고 있지?”

 

남편의 말은 구구절절 이어졌다. 고등학교 졸업 후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과 지방에 남은 친구들이 만날 수 있는 때가 명절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내가 아는 친구(그러니까 서울로 올라가 서울에 자리잡은 친구들 말이다.)들도 다 그렇게 한단다. 내게 익숙한 이름들이 줄줄이 쏟아졌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전날 했던 말을 또 했다. “니가 마고 나왔지. 내가 마여고 나왔어. 나도 여기 친구 많아, 여보.”

 

남편은 캄캄한 얼굴을 했다. 그러더니 다시, 처가에 가면 자길 처가에 버려두고 친구를 만나러 나가라는 타협안을 제시했다. 자긴 절대 불평하지 않겠다나.

 

일 년에 며칠이나 엄마 얼굴 본다고 그 시간까지 잘라 친구 만나러 나가니. 아무 때나 만날 수 있는 친구를 왜 굳이 명절에 봐. 니 엄마는 왜 넌 안 봐도 되고 나는 봐야하는 지 잘 모르겠지만, 우리 엄마는 나 좋지 너 안좋아. 나 보고 싶지 너 안보고 싶다고. 널 혼자 처가에 버려두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 우리 엄마에게.”

 

남편은 다시 한번 주저리주저리 어제 뿐 아니라 지난 명절에도 지지난 명절에도 5년 전 명절에도 10년 전 명절에도, 20살 이후의 모든 명절에 동일한 시간을 보냈음을 말했다. 자기만이 아니라 자기 친구들도 다 그런다고. 그저 한숨이 나왔다. 지가 뭘 잘못했는 지도 모르고 지 마누라 마음이 어땠을지도 모르고 아니 이건 뭐 다수가 범죄를 저지르다보면 그게 범죄인지도 모르게 된다더니, 너도 나도 하다보니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는 딱, 그짝이었다.

 

조용히 말했다. 사실 싸울 의지도 생기지 않았다.

 

내가 결혼을 말할 때 너한테 말했지. 난 못된 놈 하고는 살아도 멍청한 놈하고는 안 산다고.”

 

남편은 대꾸가 없었다. 여전히 조분조분 말했다.

 

사람이 못되게 굴 수도 있지. 사람이니까, 사람은 원래 이기적인 거니까 잘못을 할 수도 있어. 그럼 얘기를 거기서부터 시작해야지. 잘못했으니까 그 대가로, 보상으로. 그렇게 나와야 대화가 되는 거지. 이게 잘못이다 아니다에 대한 합의부터 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나는 못 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와. 이게 왜 잘못된 일인지를 내가 너에게 설명해야 해? 니가 잘못한 게 아니면 나도 잘못한 게 없어. 그럼 우린 더 말할 게 없지. 도대체 뭐가 잘못되었길래 처가 가는 길에 멈춰서 나 친정도 못 가게 이러고 있니?”

 

그 뒤 남편은 두 번 다시 명절에 나와 아이들을 놔두고 친구들을 만나러 가지 않았다. 20년 결혼생활 동안 뒤집어보고 곱씹어봐도 내가 가장 잘 한 일은 그날 큰애를 들쳐 안고 친정으로 휙 가버린 일이다. 그리고 남편은 더 이상 멍청함을 가장한 뻔뻔한 짓을 길게하지는 않았다. 물론, 가끔은 한다. 그럴 때 나는 피식, 웃었다. 너 멍청하지 않은 거 알거든 하는 표정으로. 그럼 남편은 쪽 팔려서 그 뻔뻔한 짓을 더는 못했다. 내가 이 남자와 사는 가장 큰 이유는,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 일의 후폭풍은 어땠냐고? 시어머니는 똑똑한 사람이다. 본인의 아들이 그다지 잘한 행동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인지하는 만큼의 똑똑함은 가지고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며느리가 그렇게 시댁에서 휙 가버릴 정도의 잘못을 아들이 한 건 아니라고 굳게 믿으셨다. 그리고 독하게 구는 마누라랑 사는 아들이 불쌍해서 나한테 그 시모다운 레파토리 1남자들은 그럴 수 있지.”를 시전하셨다. 나는? , 시모와는 싸우지 않는다. 나와 동등한 수준의 교육을 받지 않은 분이니까. 인간평등, 남녀평등 사상은 놀랍게도 말이다, 교육의 산물이거든. 대학은커녕 고등학교도 안나온 시모가 남자는 운운 하는 걸 나는 용납한다. 그러나 대학 나온 놈이 남자는 운운, 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는다.

 

남녀의 문제는, 대부분은 멍청함을 가장한 뻔뻔함에서 발생한다. 흔히 쓰는 말, 역지사지(易地思之). 쉽게들 하는 말이지만 이게 사실은 요즘으로 말하면 메타인지의 영역이고, 상상력의 영역이다. 나를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상상해 보는 일, 쉬운 일 같지만 의외로 꽤 높은 사고수준을 요하는 일이다. 사고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은 역지사지를 하지 못한다. 진짜로, 진심으로 지능지수가 떨어져서 역지사지가 안 되는 사람들도 있다. 의외로 꽤 많다. (전체 인구의 15%가 경계성 지능인이라는 통계는 이미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다.) 아이가 아니고, 경계성 지능인이 아닌 다음에는 역지사지를 못한다면, 그건 못하는 게 아니라 하는 거다.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맹자 사상의 핵심이다. 인간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 돌아보고 옳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거다. 인간은 이러한 수오지심을 타고 태어난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좋은 사람이라고 믿고 싶어하고, 남들이 좋은 사람으로 봐 주기를 바란다. 인간이란 본디 이기적인 존재여서, 나에게 좋은 일을 하고 싶은데 때로 그건 옳기 만한 일은 아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발생한다. 옳고 그름은 분별하는데, 내가 옳지 못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남들은 몰랐으면 좋겠고, 한걸음 더 나아가 나도 속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수오지심 때문에 말이지. 그래서 뻔뻔해진다.

 

법률은 최소한의 도덕이다. 법률로 정해놓은 일은 내가 우기고 싶어도 이미 사회적 합의를 통해 그건 잘못이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이 말을 뒤집어서 말을 하자면, 법률로 정해져 있지 않은 일에 대해서는 은근슬쩍 도덕의 잣대를 뭉개고 우기고 싶어진다. 내가 뭘 잘못했어? 그럴 수 있지. 라고. 이 책, 지영씨의 시아버지가 그러는 것처럼.

 

대현이랑 수현이랑 우리 가족 다 같이 얼굴 보는 게 1년에 몇 번이나 된다고.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 게 그렇게 불만이냐? 그랬어?

(p. 18)

 

선은 단순하고 악은 복잡하다. 선과 악은 언제나 명징하다. 시집 간 내 딸이 친정에 왔으면, 시집 온 내 며느리도 이미 친정에 가 있거나 친정에 가는 길에 올랐어야 마땅하다. 그 어떤 경우라도 결혼한 시누이와 올케가 명절에 시댁(친정)에서 만나는 일은 비정상적인 일이다. 우리는 비정상적인 일을 옳지 않은 일, 악이라고 규정한다. 옳고 그름이 언제나 명징하게 나뉘어지지는 않는다는 말은 옳지 않은 일()을 옳은 일처럼 보이기 위해 온갖 잡다한 설명이 붙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본질(내 딸은 친정왔는데 며느리는 친정 못간)은 외면한 채 명절에 가족들하고 시간 보내는이라는 잡다한 이야기를 들이미는 정대현의 아버지는 이미 수오지심이 발동해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런데 잘못을 인정하기는 싫으니 뻔뻔함을 들고 나오는 것이다. 뻔뻔해지기 시작한 인간과는 대화하고 싶지가 않다. 본질은 절대 건드리지 않거든.

 

남편의 친구들에게(그리고 그 아내들에게도) 나는 한동안 꽤 화제의 인물이었다. 이런 저런 모임에서 만나게 되는 남편의 친구 아내들은 나에게 잘했다는 박수를 쳐 주는 것과 더불어, 남편의 친구들은 그래도 명절에 친구도 못만나게 하는 건 좀 그렇지 않냐는 반응을 보였다. 나는 상큼하게 웃으며 말했다. 친구 만나지 못하게 한 적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떨떠름한 얼굴을 한다. 지들도 그 상황에서 며느리는 시부모랑 짝짝꿍하며 놀아주고 있어라, 라고 말하기는 쪽팔리거든. (참고로 말하자면, 내 남편이 빠졌지만 그 명절 모임은 여전히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 이 아이히만스러운 악의 평범성이라니. 한나 아렌트가 한국에 왔으면 참 할 말이 많을텐데.)

 

우리 법률은 시댁과 며느리의 관계를 선명하게 규정하고 있다. 남편이 죽으면 며느리는 시부모 부양의 책임이 없다. 애초에 며느리에게는 시부모 유산 상속권도 없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가족관계증명서에 등재도 되지 않는다. 선은 단순하고 악은 복잡하다니까. 아들이 부모와 놀아주지 않는다면 며느리가 시부모와 놀아줄 의무는 없는 거다.

 

나는 남의 딸이 내가 낳은 아들보다 더 반가운 그런 것을 믿지 않는다. 핏줄이라는 건 무시무시한 인력과 척력을 가진 거거든. 나는 시부모님이 나보다 남편을 더 사랑하는 것을 인정하고 긍정한다. 울 엄마도 남편보다 나를 더 사랑하고 나 역시도 시어머니보다 울 엄마가 더 좋거든. 가끔 남편에게 말해준다. “니가 울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이 내가 니 엄마를 생각하는 마음과 한치도 다르지 않아.” 처음 내가 그 말을 했을 때 남편은 지금 싸우자는 거냐.” 고 물었다. 하하하. 모든 억지스런 짓거리는 동티가 나는 법이다. 아닌 건 아닌 거고 맞는 건 맞는 거다. 똘똘한 이 남자, 지금은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안다.

 

문제는, 여자는 사해동포의 인류애를 처음부터 남자 두 배의 용량으로 가지고 태어났을 거라고 믿는, 또는 그래야한다고 강요하는 남성위주의 사고에서 발생한다. 여자니까, 라는 말은 그들에게 언제나 유효하다. 어떠한 의무와 붙어있는 남자니까 라는 말에는 길길이 날뛰는 남자일수록 그러한 불합리한 사고는 더욱 강력하다. 그러나 3000년 전 맹자가 말한 그 수오지심 말이다, 수오지심. 사실은 알거든. 3000년전에도 이미 알고 있었거든. 그때부터 계속계속, 알고 있거든. 잘못한다는 거. 그런데 멍청한 척하는 가면을 쓰고 뻔뻔해지는 거다.

 

, 참 갈 길이 멀다. 나는 멍청한 인간을 혐오한다.

 

2024. 9. 1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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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24-09-19 22: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하하하!!! 이글 보면서 막 웃었습니다. 남편이 명절날 친구 만나러 나가는 그 상황 저도 똑같았거든요. 저 역시 몇 번 당하다가 이혼장 내밀면서 나는 이런 최소한의 예의도 없는 사람과 살고 싶지 않다라는 협박으로 마무리 되었구요. 나에 대한 예의보다 친구에 대한 예의를 더 중시하는 사람과 내가 왜 살아야 하냐 뭐 이랬던듯합니다. ㅎㅎ

아시마 2024-09-19 22:51   좋아요 2 | URL
뭐, 위에선 대화를 정제해서 썼지만, 사실 남편과 나의 대화도 ㅎ 구질구질 지리멸렬했어요. 저는 뭐, 고현정이 예전에 아직 유부녀였던 시절 남편과의 사이 이야기를 하면서 ˝저는 싸우지 않아요, 야단을 치죠.˝ 라는 말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던 나머지, 남편과 싸우지 않습니다. 조곤조곤 논리로 쥐어패죠. 싸우는 거 귀찮고 에너지 소모가 너무 커요. 저는 진짜 최강 회피형이라. 이건 내가 참을 수 있겠다 싶으면 참고, 이건 납득 불가다 하면 뭐, 줘패보고 말 안통하면 관두는 거죠 뭐. 아마 제 이런 포스가 남편에게 이건 안되는 거구나 알게 했을 거예요. ㅎㅎㅎㅎㅎㅎㅎㅎ 아마 저때 저 문제 해결 안됐으면 저는 안살았을 거예요, 진짜로. 너무 멍청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자기 엄만 괜찮대요, 명절에 자기가 친구 만나러 나가도 상관없다 그런대요. 그래서 그랬죠, 우리 엄만 나 혼내, 명절엔 부모 얼굴봐야 한다고 늘 그러셔. 그래서 울 엄마는 나 나가는 꼴 안봐. 니 엄마는 친구 만나러 나가도 된다며, 그런데 나한테 왜 사과도 안주고 그러니? 이러면서 ㅋㅋㅋㅋ 지리멸렬 유치찬란 조곤조곤 줘팼어요.

반유행열반인 2024-09-21 14:3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우와...글 잘 읽었습니다. 글 날짜가 미래에서 온 걸로 되어 있어요 ㅋㅋㅋ 가족이란 뭘까 친인척이란 뭘까 그런데 아시마님 슬기롭게 잘 쥐어패신다 그치 안 살 거 아님 또 적당히 힘 조절해서 패야지.... 끄덕끄덕하다 아니 왜 명절에 힘 조절까지 하게 만드냐 인간들아 하면서 잘 보고 갑니다.

아시마 2024-09-27 12:29   좋아요 2 | URL
글 날짜가 미래에서 온 걸로 되어있다는 말이 뭔가 하고 한참 봤어요. ㅎㅎㅎㅎ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정했어요.

힘조절이라기보단, 제 전투력이 딱 저만큼이라. ㅎㅎㅎㅎㅎㅎㅎ

다락방 2024-09-27 08: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제가 며칠전에 이 글 읽고 지금까지도 내내 계속 생각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그건 아시마 님의 동등한 교육을 받지 않은 시모와는 싸우지 않는다는 문장 때문입니다.
그 문장 때문에 계속 괴로웠어요. 저는 아빠랑 계속 싸우는데, 저희 아빠 역시 저랑 동등한 교육을 받은 분이 아니시거든요. 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건가.. 너무나 괴롭더라고요. 아마 아시마님의 저 문장은 저에게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저는 참.. 발전이 없는 인간이네요.
아니 에르노 글 읽을 때도 나의 아버지에 대한 태도가 잘못됐다는 걸 인지했었는데 아시마 님 글 읽으면서 또 제가 잘못된 걸 깨닫네요. 왜이렇게 저는 잘못만 하고 사나요..

아시마 2024-09-27 13:13   좋아요 2 | URL
음... 다락방님, 그건 아마 아버지와 시어머니의 차이에서 오는 걸 거예요. 남과 남이 아닌 사람은 다른 거죠. 상대에게 품고 있는 애정이 전혀 다르거든요. 싸울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인 거지요. 다락방님이 괴로워하실 일이 아닙니다.

사실 제 남편은 ˝멍청해˝라는 제 말에 치를 떨거든요. 제가 멍청하다라고 내뱉을 때 그 말의 바탕에 무엇이 있건 가장 중요한 건 단절이에요. 예전에 진중권이 그랬죠.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니 이길 자신이 없다.˝ 라고요. 제가 ‘멍청해‘ 라고 말하는 순간을 진중권은 이렇게 풀어내더군요. 이 말이 내포하는 그 뉘앙스를 누군들 못알아 들을까요. 싸우지 않고 비난하지 않는다는 건 그냥 영원한 단절인 거예요. 너는 그렇게 살든가 말든가, 내 엄마도 아니고. 이거인 거죠.

교육의 문제라고 썼지만, 인간은 학교에서만 교육을 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학습과 진보라는 것이 학교를 졸업하는 24~27살에 종료되는 것도 아니니까요. 보세요, 다락방님, 우리 대학 졸업한 이후에 정신이 거기에 멈춰있나요? 아니잖아요. 인간은 언제나 새로운 사상을 배우고 학습하고 진보해 나갈 수 있는 존재예요. 그 과정의 지난함이 서로서로 다를 뿐이죠. 내 엄마가 아니니까 내버려둘 수 있는 거고, 내 아버지니까 싸우는 겁니다. ‘싸움‘ 그 자체로만 이야기하면 그래요. 다만 ‘태도‘의 문제라면, 저는 다락방님의 태도가 어떠했는지 모르니까요. ^^

시어머니와 싸우지 않는 건 제가 선량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울 엄마가 아닌 시어머니이기 때문일 뿐입니다. ^^
 
전국축제자랑 - 이상한데 진심인 K-축제 탐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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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이런 글 너무 좋아! 전국축제자랑by. 김혼비, 박태하

 

읽은 날 : 2024. 9. 16

 

김혼비 작가의 이름은 자주 들어보았지만 읽어볼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난 작가에 낯가림이 심하다니까. 게다가 월드컵은 좋아하지만 축구는 좋아하지 않고(정확히는 A매치라는 국가대항전은 보지만 K-리그는 아예 안 보는. 아마도 축구 그 자체보다는 A매치가 가지고 있는 비장미와 호전성을 좋아하는 거다. 누가 그랬지? 현대국가에서 축구 A매치는 전쟁을 대신하는 거라고. 아 이거 되게 유명한 작가가 한 말인데.) 그 중에서도 여자 축구는 더더욱 더 관심이 없기에(나에게 김혼비는 우아하고 호쾌한 여자축구의 작가였다.) 젖혀 놓은 작가였다, 김혼비. 다만 혼비라는 이름이 하도 특이해서, 대체 무슨 뜻인가, 이 작가의 부모님은 무슨 의미를 담아 이 이름을 아이에게 지어줬을까, 한자는 뭘 썼나. 하는 궁금증을 혼자 머릿속으로 이리저리 궁리해보게 했다. 혼비가 작가가 지은 필명이고,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영국작가 닉 혼비(축덕으로 유명한)의 이름을 그대로 차용해 쓴 거라는 걸 알았을 때의 허무함이란. 호기심이 해결된 것은 다행이었고 한편으로 이 친구, 축구에 진짜로 진심이구나 싶었다.

 

그렇게 넘겼던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건 이상한데 진심인이란 부제 때문이었다. ‘이상한데, 진심인이란 말인가 이상한 데 진심인이란 말인가. 띄어쓰기 하나로 뜻이 달라지는 우리말의 언어유희. 물론 부제는 이상한데라고 붙여 부사어로 썼다. 근데 이상한 데라고 띄어 써 관형어와 의존명사로 써도 뜻이 다르면서 또 같은 듯한 재기발랄한 언어구사다.

 

그리고 책을 읽으면서 내내 폭소했다. , 이 작가 진짜 유머러스하게 언어를 잘 가지고 노는 작가구나. 박민규급인데, 이쯤이면. 내가 읽으며 하도 큭큭대며 웃어서 남편도 아이도 물을 정도였다. 결국 남편은 다음 독서목록에 이 책을 추가했고.

 

이 책에서 소개(자랑)하고 있는 12개의 전국 축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의 우리와 갈 데까지 가 보자는 축제의 한마음 큰잔치”(p.103)로 요약될 수 있다. 여기에 일관되게 일관성이 없으면 일관성이 생긴다는 점’(p.104)도 배울 수 있고 “‘어쩌라고어쩌려고를 넘어 어쩌자고하는 기분”(p.106)이 뭔지도 알게 된다. 이렇게 교훈적!(K스러운)인 책인 거다, 이 책이.

 

여기까지 읽다가 문득, 성석제의 음식 에세이에서 읽었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냉면인 성석제에게는 같은 냉면인 친구가 여럿 있는데 그 중 L은 오륙년 전부터 지방 소도시 농촌마을에 살게 된다. 그는 인구 삼사만의 읍에 최소한 하나쯤은 제대로 된 냉면집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며 탐색에 탐색을 거듭한 끝에 그럴싸한 식당을 하나 발견했다. 1)가정집을 개조한 곳으로 2)재래시장의 뒷골목에 있었고 3)아주 낡았으며 4)대머리인데다 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도는 주인 등의 요인이 그가 이 식당을 제대로 된 냉면집으로 판단한 계기다. 결정적으로 그 가게는 냉면 전문이라는 깃발을 꽂고 있었다. 자신이 진짜 제대로 된 냉면집을 발견했다고 확신한 L은 그 냉면집에 들어가 평양식 물냉면을 주문한다. 그리고 화장실을 가느라 식당 뒤편 주방을 지나게 되며 그 장면을 보게 되는 것이다.

 

냄비에는 물이 끓고 있었고 그 물에 주인이 막 집어넣은 면이 삶기고 있었다. 나 혼자만을 위해서 특별한 도구를 쓰는구나 하는 감동에서 그가 빠져나오기도 전에 주인은 면을 꺼냈던 비닐봉지를 머리 높이의 선반에 턱 얹어 놓았다. 그리고 그 봉지에서 꺼낸 또다른 자그마한 봉지-우리가 라면을 끓일 때 함께 첨부된 자그마한 봉지와 비슷한 크기의 봉지를 토끼를 연상케하는 큰 앞니로 찢었다. 이어 냉면 그릇에 수돗물을 따르고 봉지 안의 가루를 넣고는 굵직한 손가락으로 휘젓기 시작했다. 한손을 허리에 얹고 도닦는 사람처럼 지그시 먼산을 보며 손가락을 휘젓는 그 모습을 말로 표현하자면 내 입에 들어갈 거 아니니까라고 한다. 그는 선반 위의 비닐봉지에 적힌 글자까지 보고 말았는데 그건 그가 가끔 집에서 해 먹던 ㅊㅅ냉면이었다.

성석제, 소풍, 창비, 2006, p.152-153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L그래도 그 상표가 면에서 메밀 함량이 기중 높은 기라.”는 변명을 해 주고, 여기에 성석제가 그래도 함량이 십 퍼센트 미만이라는 걸 우리는 알고 있다. 그 메밀이 중국산이라는 것도라는 해석을 달아주는 데까지가 이 이야기의 완성이다.

 

이 장면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한손을 허리에 얹고 도닦는 사람처럼 지그시 먼산을 보며 손가락을 휘젓는 그 모습이다. 김혼비 박태하 부부가 찾아다닌 전국 축제의 모습이 거기에 덧씌워진다. 무려 냉면전문의 깃발을 건 식당에서 시판 냉면을 끓여 팔면서 도닦는사람처럼 먼산을 지그시 바라보는 늘 얼굴에 웃음기가 감도는 대머리 주인장의 모습. 박태하가 요약한 무맥락-탈미학-테크니컬-키치’(p.104)가 뭔지를 한방에 보여주는 장면이어서 바로 연상되었던 거다. “‘있어 보이는말들을 때려 넣었을 뿐인 실로 정성스러운 아무말’”(p.98)과도 그 궤를 같이 한다. 거기에 끝내 메밀함량을 따져 변명을 해 주고 싶어하는 L의 발언까지.

 

다시, 이 책의 이야기로 돌아가면, 김혼비와 박태하의 책을 찾아 읽어보고 싶을만큼 유머러스한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다. 지방축제가 뭔지를 알면서(나는 어린 시절 거의 해마다 진해군항제를 몸소 구경하셨다. 에헴) 이 책을 읽고는 그 축제들에 가 보고 싶었다. 축제를 보러 가는 게 아니라 진짜 이런다고?를 확인하고 싶어서. “‘그지 떼별 그지 같은 것들이 그득그득 들어차”(p.129)있다잖아.

 

첫 꼭지를 읽은 뒤엔 모든 글이 다 어떤 종류의 끈적끈적함과 어떤 종류의 매끈함이 세련되지 못하게 결합한 K스러움’(p.7)에 대한 비아냥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잠깐 했는데 김혼비 박태하 부부의 사랑스러움은 그래도 그 상표가 면에서 메밀 함량이 기중 높은 기라.”는 변명을 굳이 해 주던 L과 닮아있다. 친구들은 홍대와 이태원에서 불타는 핼러윈을 보낼 이 시간에 자기는 의좋은 형제공원에서 핑크퐁의 상어가족EDM에 맞춰 리듬을 타고 있는 것을 핼러윈의 거대한 장난처럼 느낄 줄도 알고 내 인생 최고의 핼러윈이야!” 라고도 생각할 수 있는 그 사랑스러움. 이 책을 읽는 내내 눈길 닿는 어느 하나 심란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있을 법했지만 어색하고, 어색할 법했지만 그러려니 하게 되는 어떤 비현실. 이럴거 같았고 그래서 왔지만 또 이렇게까지 이럴 줄은 몰랐던 광경’(p.87-88)을 앞에두고도 그들은 이 사랑스러움을 잃지 않는다. 그래서 내내 폭소를 하면서도 미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어떤 세계에서는 여전히 절실하고 또 많은 이들의 생계나 자부심을 떠받치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p.280) 비웃는 건 너무 미안하잖아. 그런데 글을 쓰는 작가가 그것들에 대한 경의를 잃지 않았기에 그 유머러스한 단어와 아이러니, 패러독스, 키치, 등등의 단어를 아무러나 다 갖다 써도 될 것 같은 장면들에 끊임없이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거리낌이 생기지 않았다는 것이 이 글의 가장 큰 장점이다. 아마도 이 글을 쓰는 작가가 처음부터 몰라도 일상생활에 하등 지장 없고 그래서 알 필요 없는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해 두고 싶어서이 글을 썼기 때문일지도.

 

작가는 그 축제들을 보고 의병탑 앞에 들러 잠시 참배를 했다. 국가주의의 색채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상징물 앞에서는 실로 오랜만에.’(p.89) 하거나, ‘시간의 흐름과 사회의 거대한 변화 속에서 누구도 너무 멀리는 뒤떨어지지 않기를, 아무도 너무 갑자기는 외로워지지 않기를’(p.135) 빌기도 하고 축제장에서 가져온 여러 농장의 명함을 늘어놓고 하나씩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 이왕이면 인터넷 주문이 안 되는, 그러니까 상대적으로 판로가 더 좁은 생산자를 찾아 전화로 주문을’(p.284) 했다. , 이 착한 사람들.

 

착한 사람들의 악의 없이 빵빵 터지는 유머 덕에 읽는 내내 정말로 즐거웠다. 내년 12일엔 나도 산청곶감축제나 가 볼까.

 

2024. 9. 16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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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의 순례자 - 부암동 푸른 마당에서 누리는 고혹한 자유
서화숙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09년 10월
평점 :
절판


읽은 날 : 2024. 9. 8

 

요즘 나는 종종 정원에 나간다. 내 집의 정원이었으면 참 좋겠지만, 일터의 정원이다. 일터라고 해도 벌써 20년 넘게 30년 가까이 드나들던 곳이라 이제는 내 정원 같은 생각도 든다. 사무실에서 일을 하다 맘 내키면 나가서 잔디밭의 잡초를 눈에 띄는 대로 휙휙 뽑는다. 사무실에서 유리문 하나 열고 나가면 아주 근사한 잔디정원이 펼쳐지기에 누릴 수 있는 사치다. 잡초가 눈에 띄면 뽑고, 뽑다가 지겨워지면 말고. 사실 정원관리는 하는 분은 애초에 따로 있어서 맘 편히 내가 하고 싶은 만큼의 일만하고 손을 털 수 있으니 더 좋다. 정원일이 사람을 얼마나 즐겁게 하는지는 진짜로 그 일을 해 본 사람만이 안다. 그리고 거기에 취미가 있는 사람만이.

 

사무실에 나 말고도 직원이 둘 더 있는데 그들은 잠깐 몸을 움직이러 나가 한 10분 남짓 정원을 돌아다니며 아무데서나 내키는 대로 잡초를 한 움큼 뽑아 드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신기하단다. 종종 묻는다. 첨엔 풀을 왜 뽑니? 라고 물었다가 재미로 한다는 말에 정말 재미있니, 그게? 라고 질문이 바뀌었다.

 

나로서는 반문할 수밖에 없다. 그럼 이게 안 재밌니, 진짜?

 

내가 시골 살이를 꿈꾸는 이유는 정원을 가꾸고 싶어서가 가장 크다. 그러다 서화숙의 이 책을 봤을 때 내가 아는 동네 이야기가 나와서 반가웠다. 서울을 떠나지 않고도 정원을 가꾸는 삶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이 책을 열심히 탐독했다. 사실 딱히 서울에 천착하지도 않으면서 서울에서 정원을 가꾸는 삶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던 이유는 떠도는 삶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정착하고 싶은 어디도 없으면서(그렇다, 내 살던 고향동네도 이제 내가 정착하고 싶은 곳이 아니게 된지는 오래 되었다) 살고있는 이곳에서 떠나는 것만을 꿈꾸는 삶의 서글픔이란.

 

어쨌든, 마당에서 살구와 앵두를 따먹고 복분자와 딸기를 수확하는 삶이라니. 그럴 수 있는 곳 어디라도 나는 살 수 있다. 헌데 부암동, 나 알아. 친해 그 동네랑. 난 한때 평창동 주민이었거든. 내가 가꾸는 사무실 정원도 평창동이거든. 낯가림을 사람만이 아니라 지역에도 하는 나로서는 아는 곳에서 정원을 꾸밀 수 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책에 나오는 클럽 에스프레소와 슈퍼와 그 빌라, 다 내가 아는 곳이라고. 그런데 그 부암동에서 정원을 가꾸며 사는 사람의 이야기라니. 세상 부러운지고. 이 책을 읽고 내가 뭘 했게? 맞다. 부암동 단독주택 가격을 찾아봤지, 네이버 부동산에서. 헛웃음이 났다. 하하하하하하.

 

서화숙 기자를 안다. 한국일보의 기자라는 사실도, 꽤 오래 기자 생활을 한 사람이라는 것도. 김어준 덕에 안다. <다스뵈이다>를 비롯한 김어준의 정치 문화 토크쇼(라고 하는 게 맞나?)의 단골 게스트였거든.

 

평창동 1호 주민에 가까운 우리 선생님은 나처럼 정원 가꾸는 취미가 있으셔서(실은 나의 정원 취미도 이분에게 물려받은 것이긴 하다) 정말 근사한 잔디정원을 평생 평창동에 가꾸셨다. 한번은 이분이 정원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데 젊은 남자애가 지나가며 삐딱한 말로 그러더란다. 돈을 얼마나 벌어야 이런 집에 살수 있을까. 하고. 우리 선생님은 그 젊은 남자애를 불러들여 말해주었단다. 맞벌이 부부가 몇 십년을 열심히 벌어서 장만한 집이라고. (강인숙, 글로 지은 집, 열림원, 2024 참고)

 

서화숙 기자도 마찬가지다. 남편도 기자생활을 했고. 서화숙 기자보다 좀 일찍 때려치웠다만, 부암동 집을 마련할 무렵에는 두 사람은 어쨌든 맞벌이 부부였다. 세 명의 아이를 낳고,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열심히 한 기자생활로 마련한 집. 맞벌이를 하지 않은 나로서는 그저 손가락 입에 물고 부러워하는 것 외엔 달리 할 말이 없는 노력의 대가와 소산. 서울 시내(정확히는 터 잡고 계속 살아오던 지역, 도시)에 아파트 생활을 하던 사람이 정원이 있는 집을 꾸민다는 건 역시 어려운 일이구나 하는 깨달음.

 

이 책 직전에 읽은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라는 책의 저자 임지수는 무려 2만평짜리 정원(농장)을 가꾸고 살지만, 이 사람은 서울을 떠난 장수에서 꿈을 이루었다. 그녀가 서울에서 멀어진 거리만큼 부러움도 희석되었다. 이건 맞벌이하지 않은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거든. , 타샤 튜터의 집 같겠다,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중에 나도 시골살이를 하면 임지수처럼 살아야겠다. 습관처럼 중얼거린 말. 나중에.

 

나의 나중은 언제 올까. 나와 같은 고민을 했던 임지수는 답을 찾았다.

 

무언가를 더 이루고 더 많이 가져야 서울 생활을 완벽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고, 그 연후에야 새 삶을 시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정작 꿈꾸는 삶을 향해서는 한 걸음도 내딛지 못하고 있었다.

산속 오두막에서 아침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나보다 무엇을 더 가진 것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그날 기차 안에서 깨달았다. ‘그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행복해 질 수 있는데, 나는 그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고만 있었구나.’

 

임지수, 엄마도 꿈 꿀 권리가 있다, 터치아트, 2018, p.21

 

출장길의 기차 안에서 이 깨달음을 얻었던 임지수는 더 이상 나중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여기의 행복에 충실하기로 한 결과가 장수의 ‘farm 나무와 풀이다.

 

뜬금없는 소리같지만, 삶의 많은 부분은 결국 상상력의 문제라는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나는 욕실을 건식으로 쓰고 있는데, 그 말을 듣는 사람들 대부분은 놀라움으로 눈을 크게 뜨고 되묻는다. “그게 가능해?” 우리집을 방문한 사람 중엔 얼마나 가나 보자.”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새살림이라 야심차게 급조한 건식욕실이라고 생각한 모양이다. 딱히 인테리어를 이유로 건식을 쓰는 건 아니고 욕실화 특유의 그 축축한 느낌을 싫어하는데 건조하게 유지할만큼 바지런한 성격이 못되니 아예 욕실화를 없애버린 거다. 이유는 이게 전부다.

 

매번 건식 욕실에 대해 놀라워하는 한편 부러워하는 사람들에게, 내가 이 건식욕실을 어찌 유지하며 사는지를 상세히 설명해주지만 나와 동일한 주거조건(2개의 욕실과 분리된 세탁실)을 가진 사람들도 손사래를 친다. 내가 건식욕실을 강요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건식욕실이 부럽고 가지고 싶다면 그냥 해 보면 된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다. 막상 해 보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이렇게 쉬운일이었단 말인가 싶어) 쉬운 일을 시도조차 해 보지 않고 지레 겁먹어 손을 드는 걸 보면 답답하다.

 

답답하다라고 써 놓고 나라고해서 별 다를 게 있나 하는 생각을 한다. 시골살이를 하고 싶으면 그냥 하면 된다. 적당한 땅을 찾고, 매매하고, 거기 들어가서 살면 된다. 정원 있는 서울살이를 하고 싶으면 지금 사는 아파트를 팔고 정원이 있는 단독을 사면 된다. 나도 건식욕실에 손사래를 치는 사람들과 똑같다, 자신 없어. 자신이 없으면 어쩌겠어, 이대로 사는 거지 뭘. 그게 아니라면 그렇게 간절하지 않은 거든가. 내가 뭘 원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당신이 무언가 좋은 생각을 내야 한다면 산책이 좋다. 어슬렁어슬렁 걸으며 그 생각을 굴려보길 바란다. 당신이 잊어야할 것이 있다면 꽃을 돌보는 일이 좋다. 까다로운 식물을 돌봐야 하는 일에 신경을 집중하다 보면 잊을 것이 잊힐 것이다. 당신이 직면해야 하는 문제, 해법을 찾지 않으면 안 되는 문제가 있을 때는 잡초를 뽑으면 된다. 결국에는 당신의 두뇌를 속이는 것, 잠시 다른 길로 유도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문제를 직면해도 될 만큼 마음이 여물었을 때 그걸 열어보는 것, 그렇게 마음을 여물게 하는 명상을 나는 마당을 순례하면서 했다.

(p.282-284)

 

서화숙은 이렇게 마당을 순례하면서 혼자가 되더라도 자신이 옳다고 믿는 일을 해야 할 만큼 정신이 강건해 졌고, ‘내가 원하는 삶이 무엇인가를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시간을 가졌다.(p.286) 정원의 순기능이다. 내가 사무실에서 종종 뛰쳐나가 잡초를 뽑는 이유이기도 하다. 내가 진짜로 원하는 일이 뭔가를 내가 나에게 물어보는 시간. 내가 왜 시골살이를 꿈꾸는지를 물어보는 시간. ‘나중에라는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는 시간. 정말로 현재는 안되는 것인지 두려워서 미루는 것인지를 내가 나에게 진지하게 묻고 있는 중이다.

 

결국 모든 것은 상상력의 문제인 것을.

 

ps. 역시 딴소리 하나. 기자 출신 작가들의 글은 참 단정하다. 그래서 별 다섯개

 

2024. 9. 9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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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의 허기 - B급 주방장 박찬일 에세이
박찬일 지음 / 경향신문사 / 2016년 12월
평점 :
품절


읽은 날 : 2024. 9. 7

 

입맛은 보수적이다. 나는 19살에 하숙을 시작했는데, 3년간 살았던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강원도 분이셨다. 강원도는 척박한 기후 탓에 식재료가 다양하지 못해 음식문화가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다고 하는데, 그분의 손맛은 기가 막혔다. 특히 김치 종류를 정말 잘 담그셨다. 음식 솜씨가 그다지 좋지 못한 엄마 아래에서 자란 나는, 자연스럽게 그분의 음식에 길들여졌고 그분의 김치를 김치맛의 기준으로 받아들였다. 경상남도 쪽의 김치는 멸치 액젓을 많이 쓰고 간이 강하다. 날이 더우니 변질을 막기 위해 그렇게 된다. 김치는 위로 올라올수록 싱거워지고 물이 많이 생긴다. 경상도에서는 처음부터 국물김치를 담지 않고는 김치에 물기가 별로 없는데 서울식 김치는 아예 김치를 담고 국물을 만들어 붓기까지 한다. (김치명인 이하연의 명품김치, 웅진 리빙하우스, 2009, p.45 서울, 경기식 배추김치 레시피 중 거의 마지막 단계 생수에 소금을 녹인 다음 김치소를 넣고 남은 그릇에 부어 남은 양념을 헹궈 김치통에 자작하게 붓는다참조) 다만 하숙집 주인 아주머니는 그때 이미 서울 생활 30년이 다 되어가는 분이셨고 오랫동안 하숙으로 집안을 일으키신 분이라 그분의 음식이 강원도 음식이었을지는 잘 모르겠다. 아마도 평균적인 서울식 음식을 하지 않으셨을까.

 

하숙을 끝내고 자취의 생활이 이어졌다. 먹는 일에 그다지 살뜰하지 못했던 나와 집에서 이미 10명 가까운 대식구의 식생활을 책임지고 있던 엄마의 조합은 김치 공수를 아주 드문일로 만들었다. 그 즈음의 나는 김치를, 아니 집밥 자체를 거의 먹지 않았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라면 먹을 때 김치를 먹지 않는다. 별 이유는 없고 딱히 김치를 먹어야 할 이유를 몰라서.) 어쩌다 김치를 먹고 싶을 땐 사다 먹었다. 종가집 김치 만세. 그러다 스물 여섯 살 무렵, 여섯달 정도 서울 가정식 요리를 배우러 다니면서 내 요리 인생이 시작되었다. 그 뒤 해외로 떠돌던 시절, 나는 온갖 김치를 다 내 손으로 담아 먹었는데 김치 명인 이하연 여사의 책이 내 김치 바이블이었다. 귀국해서는 다시 종가집 김치를 찬양하는 중이다.

 

친정과 시댁은 같은 지역에 있고, 남편과 나는 학번이 네 개 차이난다. 남편이 4년 먼저 서울에 온 거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고등학교 졸업으로 떠나온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디아스포라의 세월을 살고 있다. 불쌍한지고. 그의 대학시절 하숙집 아줌마의 출신지역은 어딘지 모르겠으나 그도 나와 비슷한 지경의(사실은 울 엄마보다 시어머니의 음식 솜씨는 더욱... . 평생 돈을 버는 일로 바쁘셨으니 음식 따위 하실 일이 없으셨을 거다.) 엄마를 둔지라 자연스럽게 서울 음식을 음식의 기준으로 잡았다.

 

나도 이렇고 남편도 이러니 평생 경상도 김치를 그리워할 일은 없을 줄 알았다.

 

한데 2-3년 전부터 나는 명절에 친정에서 늘 김치를 한 통씩, 그것도 아주아주 큰 통으로 받아오고 있다. 처음에는 묵은지를 먹고 싶어서 얻어온 거였는데, 얻어온 친정김치(때로는 큰언니의 산청 시댁김치일 때도 있다)로 끓인 김치찌개는 눈물이 날 정도로 맛있었다. 돼지 목살을 듬뿍 넣고 푹 지져낸 김치찜의 걸쭉한 국물을 흰 쌀밥에 얹어 비빈 걸 한입 가득 넣었을 때, 오래 끓여 물러진 김치의 긴 줄기를 밥 위에 척 걸쳐 입에 가져갈 때, 남편과 둘이 동시에 아 이 김치찌개 진짜 맛있다, 찬양을 하던 그 순간에. 생각했다. 아 당신과 내가 늙었나 보다, 고향 음식이 맛있다니.

 

입맛은 보수적이다. 변한줄 알았으나 결국은 그 자리로 돌아간다. 내가 처음 먹었던 그 맛을 기억하고 그 최초의 기억으로. 또한 음식은 과거 회귀 본능을 가지고 있다. 과거에 맛있게 먹었던 음식을 먹으면 사람을 그 음식을 맛있게 먹던 그 순간으로 돌려놓는 놀라운 마법을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악착같이 음식에세이를 쓰고 읽는다. 음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식을 매개로 한 과거의 추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하고 싶어서.

 

박찬일의 글이 청승스럽다라고 이야기 했다. 아마도 박찬일이 자꾸만, 이제는 돌아올 수 없는 과거의 이야기들을 끄집어 내기에 청승스럽다고 느꼈던 것 같다. 출간순서로야 이 책보다 한참 뒤의 책 이지만, 내가 읽은 순서로야 이 책보다 먼저인 그의 책 밥 먹다가, 울컥에서 박찬일은 말하고 있다. “나는 결국 평생을 살아도, 옛날만 사는 것 같다.”(p.8).

 

이 책에서 박찬일은 끊임없이 자신을 과거로 돌려놓는 옛날을 살게 하는음식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니 허기질밖에. 옛날에 먹었던 그 음식들을 지금 되살려 먹을 방법은 거의 없으니 말이다. 그가 여전히 덤덤해서 더 청승이 느껴지는 어조로 과거에 먹었던 음식에 대한 추억담과 과거에 자주 갔던 식당에 대한 이야기와 어린시절 부모님의 이야기를 하는 것을 읽고 있다보면 때로는 마치 내가 그 자리에 가 앉은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나도, 초등학교 앞에 오던 해삼 멍게 리어카를 본 기억이 있고, 토마토를 썰어 넣은 냉면을 먹은 기억이 있거든. 토마토 냉면은 그렇다 쳐도 해삼 멍게 리어카라니, 이분과 나는 띠동갑쯤 되는데도 그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건 아마 내가 바닷가 출신이어서 그럴 거다.

 

다시 한번, 입맛은 보수적이다. 음식에 대한 추억은 사람을 그 시절로 끌고 간다. 젊어질 수는 없어도 젊을 때 먹었던 음식을 다시 먹을 수는 있다. 비록 그 음식을 먹고 도로 묵이라고 해라.” 했다던 선조와 같은 말을 하게 될지라도.

 

이 책에서 박찬일은 단순히 음식 이야기만을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요리사로서의 인생과 경험에 대한 이야기도 여기저기 자세하게 많이 풀어 놓는다. 다른 책에서는 별로 자신의 식당 경영 이야기나 음식 철학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편인데 이 책에서는 유독 현실비판적인 구석이 많다. 사라져가는 노포에 대한 아쉬움이라든가, 다량의 화석 에너지를 태워가며 해외에서 공수되는 식재료에 대한 비판. 거기에 이어 저 잘생기고 착하며, 더구나 요리 솜씨도 좋고 말도 잘하는 한국인 셰프들을 좁은 스튜디오에 몰아넣고 농담이나 나누는 존재”(p.249)로 만드는 현 세태에 대한 비판까지. 이 글을 읽다보면, 이 사람은 세상 사는 게 참 답답하겠다, 그러니 청승스러워질밖에.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한다. ‘두려워할 줄 아는 건 지혜의 진면목’(p.189)이라는 그의 말처럼 현실을 직시하는 지혜가 있기에 두려워지고 두렵다보니 이 두려움을 모르던, 또는 이 두려운 상황이 벌어지기 이전의 옛날을 자꾸만 이야기하게 되는 건지도. 그리고 일갈하게 되는 것이다. ‘식탁에도 도덕이 필요하다’(p.211) 라고. 비건이 될 자신은 정말 없지만(우울할 땐 고기 앞으로 가야하니까) 내 식탁의 도덕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엄마의 식탁이 그 없는 음식 솜씨에도 얼마나 도덕적인 식탁이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어쩌면 내 입맛의 보수성은 그 도덕성 덕분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말이다, 도덕은 가장 최고의 식도락을 즐길수 있게 하기도 한다. 비행기 타고 날아와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다를 것이 없는 푸아그라니 세계 3대 진미 중의 하나라는 송로버섯을 먹는 것만이 식도락이 아니다. 진짜 식도락은 제철 음식을 딱 그 계절에만, 아니 심지어 겨우 며칠동안에만 먹을 수 있는 그 음식을 그 자리에서 먹는 것일지도 모른다. 가죽나무 순을 날로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가죽나무 순을 따다 주신 분이 말씀하셨다. 이걸 따서 비닐에 넣어서 가져오는 동안 맛이 약간 변해버렸다고. 가죽나무 순이 열기에 데었다고 표현하셨다. 그렇다고 아이스박스에 넣어서 오면 맛이 더 변한단다. 그리고 심지어 가죽나무 순을 이렇게 날로 회처럼 초고추장에 찍어먹을 수 있는 건 한해 중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고 하셨다. 뭐 그 가죽나무 순 먹겠다고 또 화석연료 때어가며 그분이 사는 산골마을에 찾아가면 그 가죽나무 순도 농축된 석유를 먹는 것과 뭐가 다를까마는. 어쨌든 그런 진짜배기 미식에 대한 생각들을 했다.

 

다시한번, 박찬일의 에세이는 참 좋구나.

 

2024. 9. 8 by ashi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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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과 부동명왕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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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프고, 따뜻하고, 외롭고, 쓸쓸하고, 그러면서도 늘 재미있는, 미미 여사 다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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