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아시마의 라이브러리 (아시마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shima</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자화자찬, 책임전가, 아전인수</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13 Jul 2026 03:11:00 +0900</lastBuildDate><image><title>아시마</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t_7389191835710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shima</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아시마</description></image><item><author>아시마</author><category>야옹씨책</category><title>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먼저 온 미래』 by 장강명 - [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shima/17362417</link><pubDate>Mon, 29 Jun 2026 17: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shima/1736241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736241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off/896262660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2626608&TPaperId=1736241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먼저 온 미래 - AI 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a><br/>장강명 지음 / 동아시아 / 2025년 06월<br/></td></tr></table><br/>세상은 또 어떻게 바뀔 것인가 『먼저 온 미래』 by 장강명  &nbsp;  읽은 날 : 2026.6.29.  &nbsp;  리뷰를 쓰려고 날자를 보니, 어라 오늘이 대한민국에 대통령 직선제를 돌려주던 그 ‘6.29 선언’의 그날이다. 당시 민정당(민주정의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태우가 TV에 나와 대통령 직선제를 하겠다고 선언하는 생방송을 실시간으로 봤다. 1987년의 일이고 나는 초등학생, 당시의 대통령은 전두환이었다. 직선제 선언을 왜 대통령이 아닌 일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했는지를 궁금해했던 기억이 난다.(음, 이건 지금도 궁금하다. 고작 일개 정당의 대통령 후보 따위가, 지가 뭐라고.)   &nbsp;  요즘 올림픽 공원에서 시위 중인 사람들의 슬로건 중에, “전두환도 전라도 사람이 투표하게는 해 줬다”는 말이 있다는데, 음. 대한민국 역사교육이 얼마나 망가졌는가를 보여주는 척도라기 보다는 ‘무식한 사람이 신념을 가지면 얼마나 위험한가(또는 우스꽝스러운가)’의 척도가 되어준다. 음음, 전두환은 국민투표로 대통령이 된 적이 없다. 박정희조차 국민투표로 당선된 적이 있는데. 전한길이 저 꼬라지가 났지만 그래도 아직은, 대한민국 근현대사 역사교육의 탓을 하기보다는 개인의 무식 탓을 하고 싶다.   &nbsp;  하여튼, 역사는 이렇게 크고 작은 마디와 매듭을 전환점 삼아 발전하고 진화한다. 그게 한 개인의 역사이든 한 국가의 역사이든, 인류 전체의 역사이든. 전환점은 전제나 존재한다. 그 당시에는 그게 전환점인지 아무도 깨닫지 못할지라도. 불가역적 변화가 일어나는 지점이 분명 있다.   &nbsp;  인공지능의 전환점은 2016년 4월. 알파고였다(고 나는 알고 있고, 믿고 있다).  &nbsp;  유추(類推, analogy)라는 개념은 대한민국 국립국어원의 설명대로라면 “두 대상의 유사성을 근거로, 한 대상에서 알려진 성질을 다른 대상에도 적용해 미루어 짐작하는 추리 방식”이다. 말하자면 ‘이미 아는 사실에 근거하여 모르는 사실을 추측해 미루어 짐작하는’ 수법이다. 인간은 이 유추라는 방법을 통하여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조금씩 더듬어 확인해 나간다.   &nbsp;  이 책은 바둑계라는 한 분야에서 인공지능이 미친 영향을 근거로, 이후 인간생활의 제반분야에 인공지능이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인가를 ‘유추’의 방법으로 탐색한다.   &nbsp;  2016년 4월, 우리 앞에 처음 등장하여 바둑계를 파죽지세의 기세로 무참하게 박살내 버린 인공지능 ‘알파고 리’…… 희한하지, 왜 데미스 허사비스를 비롯한 알파고의 개발자가 아니라, 최소한 그들이 설립한 회사 딥마인드 또는 그 딥마인드가 속해있는 구글-회사는 어쨌든 법인法人, 실재하는 인격체는 아니어도 어쨌든 권리와 책임을 가진 인간과 유사한 어떤 존재로 법률이 인정하고 있다-이 아니라 그들이 만들어 낸 한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가 파죽지세의 기세를 가지고 바둑계를 박살 내었다고 인지하게 되는가. 우리는, 아니 최소한 나는 이미 인공지능에 일종의 개별성과 객체성을 부여하고 있다. 이유가 뭘까.   &nbsp;  하여튼. 알파고는 그렇게 바둑계를 바닥에서부터 크게 휘저어 분탕질을 쳐 놓고는 유유히 바둑계를 떠나 뜬금없이 화학계로 넘어가 버렸다.   &nbsp;  “구글 딥마인드의 알파고는 2015년과 2016년에 인간 바둑 최고수들을 꺾었다. 같은 회사의 알파폴드는 2018년 칸쿤에서 일련 ‘단백질 구조 예측 능력평가’에서 인간과학자들을 압도하는 성과를 내보이며 1위를 차지했다. 알파폴드를 사용한 딥마인드 팀은 가장 어려운 표적 43개 중 25개의 단백질 구조를 예측했다. 2위를 차지한 인간 과학자팀은 세 개만 예측했다. 2년에 한번 열리던 이 대회는 알파폴드 등장 이후 아예 폐지됐다. 후에 딥마인드 CEO인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 공로로 노벨 화학상을 받는다.”(p.111-112)  &nbsp;  너무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알파고(AlphaGo)’의 고(Go)는 바둑의 영어 이름이다. ‘알파폴드(AlphaFold)’에서 폴드(Fold)는 생물학의 '단백질 접힘(Protein Folding)' 현상에서 따온 말로 인공지능을 통해 단백질이 어떻게 접히고 결합하는지를 분석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노벨상 위원회는 그나마 아직(?) 제정신이어서 노벨 화학상을 알파폴드가 아닌 그 개발자 데미스 허사비스에게 수여하고 있지만(2024년의 일이다.) 내가 체감하는 건 ‘아이고 이 문무겸전의 천재 알파X님이 무려 노벨상을 받으셨네.’ 다. 이 알파X님, 저야 바둑계에서 놀 거 다 놀았고 더는 재미 볼 것도 없을 것 같아 새로운 재미(와 돈벌이)를 찾아 화학계와 신약 개발 사업 분야로 떠나셨으나 정말 회복불가 수준으로 쳐맞아 엉망진창이 된 바둑계의 남아 있는 ‘사람’은 어쩌나 싶다.   &nbsp;  그리고 다시 한 번, 그 ‘유추’의 방법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건대, 바둑계가 아닌 다른 분야라고 딱히 다를까 싶다. 이 책에서 작가 장강명은 소설계(또는 문학계)를 주로 이야기 하고 있고 나 역시 가장 관심두는 분야가 거기이긴 한데, 인공지능이 휩쓸고 간 뒤의 바둑계처럼 초토화 된 문학계는 상상하기가 무섭다. ‘어렵다’가 아니라 ‘무섭다’다. 인간계 최고 고수인 이세돌이 은퇴를 선언하듯 문학계 최고 고수 누군가(문학계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바둑계처럼 명확한 랭킹이 매겨지지 않는다만)가 은퇴를 선언하고, 커제처럼 화장실에서 울고 인플루언서 활동을 시작하고…… 나는 누구의 작품을 기다려야 하나.   &nbsp;  이 리뷰를 쓰면서, 문득 2016년 알파고 등장 직후에 쏟아졌던 인간계 ‘문과’ 석학들의 헛발질이 기억난다. 알파고가 무엇인지(또는 누구인지) 전혀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자신이 모른다는 것 조차 인지하지 못했던 그분들의 애처로운 헛발질은 신문의 메인 기사 제목을 차지하고 있었다. 비아냥이나 비웃음이 아니다. 지금 나도 그러고 있지 않나. 2018년 한창 블록체인의 암호화폐 기술이 화두가 되었을 때, JTBC에서 편성했던 긴급 토론에서 유시민과 정재승의 토론은 겉으로는 유시민의 승리로 보였으나(토론이란 승패가 있어야 하니까) 그때도 지금도, 둘 다 서로가 서로를 답답해 하기만 했었다. 내가 아는 것에 대한 지식은 있으나 내가 모르는 것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상태의 토론. 이제는 아는 것이 뭔가가 중요한 세상이 아니라 모르는 것이 무엇인가가 중요한 세상이 된 것 같기도 하다. 아. 어느 뛰어난 철학자(꼭 인간이 아니어도 된다.)가 튀어나와 마이클 폴라니Michael Polanyi가 195-60년대에 ‘암묵지tacit knowledge’라는 개념을 설파했듯 ‘암묵맹’의 개념과 그 대처방법을 설명하는 날이 올려나.  &nbsp;  소크라테스는 "너 자신을 알라(Gnothi Seauton)"는 말로 니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먼저 인정하라고 설파했지만, 아니, 모른다는 사실 자체를 모른다니까. 아. 지금 막 제미나이에게 질문하니 제미나이는 이렇게 답한다. “기술적으로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명확히 인지하는 것'(AI의 메타인지 및 할루시네이션 제어)은 현대 인공지능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 중 하나.” 헐, 거 봐. AI는 이미 인간보다 훨씬 앞에 있는 걸.   &nbsp;  과학기술은 후진하지 않는다. 이미 알게 된 것을 다시 무지의 상태로 돌려놓는 것은 치매나 뇌손상에 따른 기억상실등의 병적 영역외에는 불가능하다. AI 기술은 이렇게 앞으로 앞으로 달려나가고 있고 ‘알파X’씨들은 파죽지세의 기세로 인간의 영역을 초토화 시키고 있는데, 인류는 초토화 되는 외에는 이것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nbsp;  어떤 가치는 죽으며, 한번 죽고 나면 되살리지 못한다.(p.334)  &nbsp;  작가는 이러한 인공지능의 폭주에 가까운 질주에 대한 대처방법으로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이야기는 다시 도돌이표다. 그 ‘가치’란 무엇인가부터 인지해야 하고 모두의 공감을 끌어낼 수 있어야 하는데, 어떤 가치는 망가진 후에야 존재하고 있었음을 알게 된다. 바둑의 가치가 그랬다.   &nbsp;  과학기술이 후진하지 않듯, 인간의 어떤 영역도 불가역성을 가진 부분이 존재한다. 바둑계는 이제 이세돌이 귀환을 선언하고, 커제가 X나 웨이보를 자신의 폰에서 지운다고 해도 회복되지 않는다. 몇천년을 군림하던 인류의 가치 하나가 이렇게 망가져 버렸다. 이 망가짐은 불가역적이다.   &nbsp;  자, 그러면 다시 가치의 이야기로. 인류의 어떤 가치는 ‘암묵맹’의 영역 안에 있다. 망가지는 순간에서야 존재했음을 알게 되는 그 어떤 영역에. ‘가치가 기술을 이끌어야 한다’ 라는 말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nbsp;  2026.6.29. by ashima<br><br>p.s.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래도.&nbsp;‘김새섬 그믐 대표가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해주십시오’ 라고 조용히 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59/88/cover150/896262660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598823</link></image></item><item><author>아시마</author><category>야옹씨책</category><title>상실과 여전함에 관하여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by 스티븐 킹 -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세트 - 전2권]</title><link>https://blog.aladin.co.kr/ashima/17276581</link><pubDate>Thu, 14 May 2026 18: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shima/1727658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030814&TPaperId=1727658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92/55/coveroff/k35203081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52030814&TPaperId=1727658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세트 - 전2권</a><br/>스티븐 킹 지음, 이은선 옮김 / 황금가지 / 2025년 07월<br/></td></tr></table><br/>상실과 여전함에 관하여 『더 어두운 걸 좋아하십니까』 by 스티븐 킹  &nbsp;  읽은 날 : 2026.5.14.  &nbsp;  나는 전작주의자에 가깝다. 전작주의자라고 단정짓기 보다 그에 ‘가깝다’ 라고 표현하는 이유는 실제로 내가 읽기 시작한 모든 작가의 작품을 전작하지는 않기 때문이고 그럼에도 몇몇 작가의 작품은 완벽하게 전작하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한번 전작하려 마음먹은 작가에 대해서는 어느 작품에서 실망을 하더라도 버리는 일이 없다. 사실 실망이라고 해도 기대치 자체가 높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nbsp;  전작을 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그것이 안전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독자의 취향은 변할 수 있어도 작가의 스타일이 변하기는 어렵다. 한 작가의 작품 안에서 수준별 편차가 있을 수는 있으나 내가 처음 그 작가를 좋아하게 된 이유(그 작가 특유의 스타일)는 변하는 일이 거의 없다.   &nbsp;  이런 내가, 얼마전 어느 작가의 전작을 포기했다. 그렇다고 이전에 모아둔 그 작가의 책을 모두 처분한다거나 하는 일은 영영 없을거지만, 앞으로 그 작가의 신작을 읽는 일 또한 없을 것 같다. 이유를 묻는다면, 아아, 늙음은 슬픈 것이구나, 라고 답할 밖에. (어느 작가인지 묻지 마시라. 당신이 예상하는 그 작가 맞을 거다. 근데 우리, 입밖에 내어 이야기하지 말자.)  &nbsp;  소설가는 뜻밖에, 조로(早老)하는 존재, 아니, 소설가라는 직업은 뜻밖에 은퇴가 이른 직업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그 늙음을 이겨내는 작가는 흔하지 않다. 흔하지 않기에 특별한 존재가 된다. 그리고 스티븐 킹이 그렇다.   &nbsp;  무라카미 하루키의 주인공들은 왜 작가와 함께 나이 먹어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사실 하루키의 주인공들도 조금씩 나이를 먹고 있기는 하다. 최근작의 주인공은 40대였다.) 그 영원한 젊음이 감탄스럽고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하루키가 써 내는 노년의 이야기를 읽고 싶어질 때도 있다.(그게 좋을 거라는 보장은 못하겠다마는) 그 생각을 하던 중에 이 단편집을 읽었다.   &nbsp;  바로 전작 『페어리 테일』의 주인공은 10대 후반의 소년이었기에, 이 단편집이 뜻밖이었다. 뜻밖이었을 뿐, 싫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할 뿐. 이라는 그 고색창연한 경구가 이렇게도 완벽하게 어울리는 경우가 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1947년에 태어나 올해 만 77세가 된 이 할아버지의 소설은 《캐리》를 발표하던 26살의 그때와 동일하게 펄떡펄떡 싱싱하다. 주인공이 75세가 되어있어도 말이다. 75세의 주인공이 75세가 겪을 수 있는 노인병(고관절 관절염!)을 앓고 있는 이야기(&lt;방울뱀&gt;)는 그 초자연적인 공포(스티븐 킹이 가장 많이, 잘 다루는)를 이야기 하면서 동시에 상실과 슬픔에 관한 이야기 이기도 하다.   &nbsp;  75세의 필은 얼마전 두 번째 결혼한 아내 다나와 사별했다. 두 번의 결혼을 했지만 아내는 한명 뿐이었고, 다나와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태드가 너무나 불행한 사고로 4-5살 무렵 죽은 뒤 “나는 여전히 당신을 사랑하지만 미워서 미운 마음이 더 커지기 전에”(p.200) 헤어졌다. 그리고 몇십년의 세월을 지나 재회했고, 재결합 해 10년의 세월을 함께 살았다.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인 필과 죽음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 벨 부인의 차이는 뭘까.   &nbsp;  다나와 필 부부는 아이의 죽음에서 오는 공허함과 분노를 서로에게 투사할 수 있었다. 벨 부인은 그토록 비참하게 쌍둥이를 잃었지만, 남편 역시 닷새 뒤 심장마비로 별세한 탓에 그 분노를 소화해 낼 방법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끝내 놓지 못한 것이다. “잊어버리는 건 안되는 일이지만, 너무 꼭 붙잡고 있으면…… 그러면 괴물이 탄생된다”(p.207)는 것을 몰랐던 것일까. 아니, 몰랐던 게 아니지만 놓을 방법도 놓을 기회도 없었던 거다. 그래서 무섭다기보다는 슬펐다, 이 이야기가.   &nbsp;  70대 후반이라는 나이는 많은 이별을 경험하게 되는 나이일 것이다. 부모님과 이별하고, 친구와 이별하고, 때로는 자녀와의 이별도 경험하게 될지도 모른다. 나의 젊음과도 이별하겠지만 또한 나의 늙음과 조우하게 되는 나이이기도 하고, 나이를 먹어도 여전히 변하지 않는 것들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되는 나이이기도 할 것이다. 물론 스티븐 킹은 여전히 아내 태비사 킹과 해로하고 있으며, 세명의 자녀 역시 작가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지만. 사람이, 모든 일을 겪어야만 아는 것은 아니니까.   &nbsp;  작가 후기가 재미있다.   &nbsp;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이야기가 알맞은 도화선을 만나 온전한 형태로 떠오르는 것인데, 아주 끝내주는 경험이다. 세세한 부분이나 이야기의 결말까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적어도 내게는 그것을 발견해 나가는 과정이 창작이 주는 즐거움의 일부다. 이런 방식이 어떤 이유에서 또는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는 나도 전혀 알 수가 없다.”(하권, p.344)  &nbsp;  스티븐 킹의 왕성한 작품활동과 그 고르게 높은 작품 수준에 많은 사람들이 창작의 비법을 물었고, 스티븐 킹의 답은 너무도 유명하다. “창작의 뮤즈가 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언제 오면 되는지 알려 주라.”는. 그는 매우 성실하게 글을 쓰는 작가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작가 후기는 이번 단편집의 첫 번째 단편 &lt;재주 많은 두 녀석&gt;과 연결된다.   &nbsp;  유명작가 루스 크로퍼드의 아들 시점에서 쓴 이 단편에서, 작가는 이 뛰어난 작가의 창작 비법에 대해 슬쩍 흘리는 척을 한다. 그건 뜻밖에도 우주에서 날아온 특혜였다. 그런데 말이다, 이렇게 비법을 알려주는 척하며 마지막엔 묵직한 한방을 날린다.   &nbsp;  “없는 걸 줄 수 있는 건 없어요.”(상권, p.93 &lt;재주 많은 두 녀석&gt;)  &nbsp;  그러니까 엄청난 외부의 도움이 있더라도(그야말로 창작의 뮤즈가 네 옆에 붙어서 항상 노래를 불러주더라도) 기본적으로 네가 최소한의 재능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아픈 깨달음을 주는 소설이다. 있는 걸 크게 키울 수는 있지만 아예 없는 걸 만들 방법은 없으니까.  &nbsp;  소설의 화자는, 대부분의 소설가 지망생들이 그러하듯 체념한다.   &nbsp;  “가질 수 없는 걸 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걸 감수하며 살아가는 법을 배우면 된다.” 고.   &nbsp;  하하, 이 장난꾸러기 할배. 다음 작품도 기대하고 있어요!!! 오래오래 장수하세요!!!  &nbsp;  2026.5.14. by ashima]]></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892/55/cover150/k35203081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8925563</link></image></item><item><author>아시마</author><category>야옹씨책</category><title>아, 이건 좀. 『나에게 없는 것』 by 서미애 - [나에게 없는 것]</title><link>https://blog.aladin.co.kr/ashima/17276580</link><pubDate>Thu, 14 May 2026 18: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shima/172765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030990&TPaperId=172765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27/50/coveroff/k97203099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72030990&TPaperId=172765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나에게 없는 것</a><br/>서미애 지음 / 엘릭시르 / 2025년 07월<br/></td></tr></table><br/>아, 이건 좀. 『나에게 없는 것』 by 서미애  &nbsp;  읽은 날 : 2026.4.20.  &nbsp;  시리즈 물은 작가 입장에서도 독자 입장에서도 위험과 고수익이 동반되는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의 도박과 비슷하다. 작가 입장에서는 이전 시리즈에서 구축해 놓은 작중 인물의 설정을 가져옴과 동시에 그때 이미 확보해 놓은 팬층을 공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일단 먹고 들어가는 장사일 수 있고, 독자 입장에서도 이미 잘 알고 있는 사람의 다음 이야기를 읽는다는 점에서 편안한 독서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다.  &nbsp;  다른 말로 하면 이야기의 전개가 예측가능하다는 이야긴데(어차피 주동 인물의 성격이야 정해져 있으니까) 이건 작가의 입장에서는 치명적인 위협이다. 동일한, 이미 정해져버린 성격의 주인공을 데리고 독자가 예측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써 내야 작가로서의 승리를 확인받을 수 있다. 작가와 독자가 서로 머리싸움을 하는 스릴러 장르라면 더욱 그러하다.   &nbsp;  작가 서미애는 한국 문학에서는 드물게 매력적이라 할 수 있는 사이코패스 ‘하영’이라는 인물을 만들어 내는데 성공했다. 그 하영의 매력에 힘입어 시리즈의 2편도 성공을 거둔다. 그리고 꽤 기대하면 읽었던 3편은. 음. 너무 기대해서 그럴까.   &nbsp;  김훈의 소설 『남한산성』에서 청국 칸은 자신의 문한관(문서를 작성해 주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nbsp;  말을 접지 말라. 말을 구기지 말라. 말을 펴서 내질러라.김훈, 『남한산성』, 학고재, 2007, p.284  &nbsp;  서미애의 소설을 읽고 나서 뜬금없이 김훈의 저 일갈이 떠올랐다.   &nbsp;  작가는 시리즈물의 세 번째 권이자 완결편인 이 소설에서, 독자와 머리싸움을 하느라 이야기를 너무 여러번 접는다. 그렇다, 꼬는 것이 아니라 접는다. 시리즈 2편에서 써 먹은 반전이 꽤 매력있었던 건 인정할 수 있고, 그 반전으로 재미를 본 것인지 3편에서도 반전을 시도하기는 하는데, 음. 실패했다.   &nbsp;  시리즈 1편에서 재성의 인물됨을 어느 정도 그리고 있었던 것이 시리즈 2편의 반전에 가장 큰 키포인트가 되었던 것과 달리, 시리즈 3편의 등장인물들은 이전 편에서의 빌드업 과정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반전은 글쎄, 음. 사실 시리즈 2편의 반전 역시도 1편에서의 빌드업이 없었다면 그다지 신선하지 않을 반전이었다. 시리즈 물로써의 장점을 극대화 한 2편이었고, 인물을 그대로 가져다 쓴 이외 시리즈물로서의 장점을 전혀 살리지 못한 3편이었다 할 수 있다. 그 와중에 작가는 반전을 시도하느라 이야기를 접고, 또 접고, 또 접다보니 이야기가 여기저기 툭툭 튀어오른다. 이전편에서 가지고 있던 작가 특유의, 이야기와 장면을 끝의 끝까지 밀어붙이는 박력이 사라져 버리는 거다. 사실 밀어붙일 이야기가 없기도 했고.  &nbsp;  작가가 이 시리즈를 이즈음에서 완료하기로 마음먹었다는 것이(뭐 처음부터 그렇게 기획했다고 했지만) 뜬금없이 새삼, 다행이다, 싶다.   &nbsp;  2026.5.14. by ashima]]></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727/50/cover150/k97203099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7275049</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