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에게 갔었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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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신경숙은 여전하구나.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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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점 일기 - 세상 끝 서점을 비추는 365가지 그림자
숀 비텔 지음, 김마림 옮김 / 여름언덕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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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많은 애서가(愛書家)는 장서가(藏書家)와 독서가(讀書家)로 나뉜다. 보통은 독서가로 시작해 장서가로 진화해 가는 것 같다. 독서가가 장서가로 진화, 또는 변신하는 순간 그에게 책은 내용만큼이나 형식도 중요해진다. 같은 내용의 책을 판본, 또는 출판사별로 소유하거나, 초판에 집착하게 된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읽지 않을 것을 알면서 소유에 대한 욕망으로 사들이기도 한다. 이때부터 책은 독서의 대상이 아니라 콜렉팅의 대상이 된다.

 

콜렉팅의 대상이 된 책들이 꽂힌 책장을 보며 뿌듯해하는 장서가의 자아 뒤 저 깊은 곳에 숨은 독서가의 자아는 은근히 죄책감에 시달린다. 독서가에게 읽지 않은 책이란 해결하지 못한 숙제니까. 하지 않은 숙제가 저렇게 많이 쌓여있다니. 아아. 2017년 소설가 김영하는 이런, 잘못된 방향으로 진화한 애서가들을 위한 명쾌한 답을 내려 주었다.

 

책은요, 읽을 책을 사는 게 아니라 산 책 중에 읽는 거예요.”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지식사전시즌 1, 1화 통영편, 2017.6

 

아하, 이렇게 마음이 편해질 수가. 그치. 일단 사야 읽을 수 있으니 책을 산다는 행위는 산다가 아니라 읽다에 방점이 찍혀야 마땅하다. 소유하지 않은 책은 읽을 수도 없는 법, 결국 독서의 90%는 책을 사는 행위가 채우고 있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럼 그럼. 결국 책을 산다는 것은 장서가로서의 자아도 독서가로서의 자아도 모두 만족시키는 아주 훌륭한 행위니까 앞으로도 가열차게 책을 사기로 한다.

 

독서가로 가는 길을 딱 한걸음 남겨둔 장서가들이 특별히 애호하는 장르가 있다. 이것은 아마 대부분의 장서가가 동일한 취향을 가졌음이 분명한바, 20여년 전 앤 패디먼 여사 역시 고백한 바가 있다.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안 사고는 못 배기는 성미다.

 

앤 패디먼서재 결혼 시키기정영목 역지호, 2001, p.191

 

이건 말이다. 옷 만들기를 한때의 취미로 가졌던 내가 패턴북과 각종 사진집(예를 들자면 스콧 슈만의 사토리얼리스트같은)을 닥치는 대로 사들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 패턴북에 있는 옷들을 모두 만들었느냐 하면, 아니요, 절대로요, 제가 그렇게 부지런할 리가요. 그 사진집의 패션을 응용해 옷을 만들었느냐 하면, 아니요, 절대로요, 제게 그럴 능력이 있을리가요. 그럼 왜 샀니 묻는다면, 아니 등반가 조지 말로리 경도 그랬잖습니까. “Because it’s there.” 그냥 있으니까 사는 겁니다, 제 취미니까요. 차와 산야초를 취미로 하는 언니의 집에 가면 차와 산야초 관련 책이 있는 것처럼, 책이 취미인 저희 집에 책에 대한 책이 있는 것이 이상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네네. 그럼요. 책에 관한 책은 누군가에게는 실용서가 될 수도 있습니다. 패턴북이 누군가에게는 소장에만 의미 있는 책이 될 수 있듯이요. 실용과 비실용의 경계는 때때로 모호합니다.

 

나는 여전히 확신하거니와, 장서가를 자처하는 사람의 서가 한 코너는, 앤 패디먼의 표현대로라면 자투리 책꽂이와 같을 그 장소에 분명 책에 관한 책이 잔뜩 꽂혀 있을 거다. 우리집 역시 책에 관한 책만 모아둔 서가 코너가 있다. 책을 이용한 인테리어에 관한 책, 북까페 운영에 관한 책, 작가들의 서재를 탐방한 책, 작가들이 좋아하는 책을 소개한 글을 모아둔 책, 내게 있어 아직까지 이 분야 최고의 책은 앤 패디먼의 서재 결혼 시키기이다. 책 이라는 소재를 제껴 두고라도 이 책은 무척 재미있는 책이므로, 읽지 않으신 분이 있다면 꼭 읽으시라.

 

그리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새 책을 파는 서점보다 더 탐닉하게 될 곳이 있으리니 그게 중고서점이다. 이 중고서점의 매력은 독서가에서 장서가로의 진화가 진행될수록 점점더 높아진다.

 

종종 알라딘에서 책 구경을 한다. 친구가 의류 쇼핑몰 구경을 하듯, 딸이 빅히트 샵 구경을 하듯. 근데 언젠가부터 신간 소개보단 중고페이지를 더 많이 들어다보는 나를 발견한다. 중고책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가장 뒤쪽에 놓이는 게 가격이다. (그리고 요즘 알라딘 중고책은 그다지 싸지 않다.)

 

중고책은 여하한 이유로든 한번은 선택된 책이다. 그리고 나로서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그 사람의 서가에서 퇴출 된 책이다. 중고책의 목록을 보는 재미는 그런데 있다. 이 책은 무슨 이유로 간택되었고 무슨 이유로 퇴출 되었을까를 상상해 보는 재미. 뭔가 사연있는 냉궁의 후궁마마님 같지 않은가? , 나온 줄도 몰랐던 책을 발견하는 재미도 있다. 대단한 베스트셀러가 아닌 다음에야 신간 안내코너를 매일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아닌데 당연히 내가 아는 책보다 모르는 책이 훨씬 많다. 새로운 책이 출간되어 판매되다 잊히는 주기는 생각보다 매우 짧다. 그 짧은 찰나에 간택되었다가 퇴출되어 나온 책이 모이는 곳이 중고서점. 중고 목록을 들여다보다 어라 이런 책도 나왔었군, 이런 작가도 있었군 하는 발견을 종종 하게 된다. 나라면 절대로 사지 않았을 책이 누군가의 간택을 받았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운 매력을 장착하고 나오는 셈이다.

 

아직 초판을 찾는 수준의 장서가에는 도달하지 못하였으나, 나이를 먹어 그런가 새로운 책을 읽기 보다는 과거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다시 읽고 싶을 때가 종종있다. 이건 책만 그런게 아니라 드라마도 그렇다. 새로운 드라마를 시작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예전에 봤던 드라마를 3-4번 이상 반복해 돌려본 게 몇 편이나 된다. 이게 나이를 먹으면 인지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하던데, 아직 그럴 나이는 아닌데 싶어 슬프기도 하고. 하여튼, 이런 복고의 취향에도 중고서점은 딱 맞다. 이미 절판되어 버린, 과거에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찾아서 읽는 재미. 굳이 어떤 책을 정해두고 중고 목록을 훑는 게 아니라 그냥 중고 목록을 훑다가, 과거 돈 없고 공간 없던 시절, 누군가에게 빌려서 읽었던 책을 발견하게 되면 얼른 장바구니에 담는다. 이미 읽었던 책을 소유에 대한 욕망만으로 사는 거라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건 마치 헬렌 한프의 편지 한 대목을 떠올리게 하지 않는가.

 

읽어보지 않은 책을 사는 것은 제 원칙에 위배 되는 일이에요.

 

헬렌 한프채링크로스 84번지이민아 역궁리, 2004, p. 73

 

이 중고책과 중고서점 분야 관련 지금까지 나에게최고의 책은 헬렌 한프의 이 근사한 서간체 소설이다. , 실제로 주고받은 편지 모음이니 소설이라고 하면 안되겠다마는. 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9년부터 1969년까지 20년간 미국 뉴욕시에 사는 가난한 무명작가 헬렌 한프와 영국 런던의 채링크로스가 84번지에 있는 중고서점인 <마크스서점>의 주인 및 직원과 그들의 가족이 주고 받은 편지를 모아놓은 이 책은 얇고 짧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정말 재미있다. 특히 세계대전 직후 완전히 황폐해진 영국 런던의 서점 직원과 그들의 가족에게, 본인은 가난하나 풍요한 미국에 사는 무명의 작가가 크리스마스며 부활절 선물로 보내는 음식물 소포에 관한 이야기는 꽤 맘을 울린다. 1951년 영국 런던에 도착한 음식물, 특히 고기!로 가득한 소포란 어떤 의미였을까. 당시 영국은 식량을 배급하고 있던 시기였다. 거 봐,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라니까.

 

이처럼, 나 역시 책에 관한 책은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이고, 서가의 한 코너를 책에 관한 책으로 가득 채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책들 중 내가 정말로 재미있다고 생각하는 책은 별로 없다. 좋아하는 것이기에 더 엄격해 지는 현상일 게다. 책에 관한 책이기에 소재빨로 무조건 중박(... ....)은 치지만 소재 때문이 아니라면 갖다 내버리고 싶은 책도 한 둘이 아니고, 실제로 몇 권은 알라딘을 통해 퇴출하기도 했다. 그래서 이 책 서점일기도 별 기대 없이 집어 들었다.

 

그런데 이 책, 오호라, 의외로 재밌다. 기대치가 낮아서 그랬을까 더 재미있었다. 사실 세상 끝 서점을 소재로 한 책이나 책마을에 관한 책은 소설로도 논픽션으로도 너무 많이 나와있다. 그리고 감히 장담하건대, 그중 절반은 넘게 내가 읽었다. 이 책 너무 좋아, 권하고 싶은 책은 음. ..... ........... 너 책 좋아하니까 이 책 읽어보려면 읽어보든가. 수준의 책이 대부분이었다. 근데 이 책, 별로 기대도 없이 집어 들었고, 심지어 내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기체 형식을 택하고 있는,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에서 나로서는 꽤 난해하다고 느껴지는 영국식 유머를 여기저기 끼얹어 놓은 이 책이 뜻밖에 재미있다. 놀라울만큼. 믿으시라, 나 책에 관한 책에 꽤 까다로운 장서가니까.

 

가끔 책방이란 곳은 무엇보다 디지털적인 삶을 강요하는 혹독하고 고된 현대의 일상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평화롭고 조용한 휴양림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그래서 나는 초대도 하지 않았는데 친구와 가족들이 예고도 없이이곳이 내 직장이란 사실도 개의치 않고 내 일을 방해하면서까지 쉬러 오는 게 아닐까.

 

손 비텔서점일기김마림 역여름언덕, 2021, p. 73

 

2001년 당시로는 유일하게 북타운으로 인정받은 위그타운에서 꽤 큰 규모의 중고 책방을 하고 있는 중고 책방 주인 숀 비텔의 20142월부터 20152월까지의 일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이 일기를 읽어보면 중고 서점의 주인이 하는 일, 중고 책을 사 들이는 데 어떻게 어떤 사람에게 사 들이는지, 그 중고책을 팔 땐 누구에게 어떤 방법으로 파는지를 알게 된다. 뭐 내가 이걸 알고 싶었는지 묻는다면, , 약간은 알고 싶었다고 답하겠다. 북 페스티벌을 기획하고 진행하고, 그 와중에 연애도 하고 친구와 낚시도 다니고 자전거도 타고, 그야말로 인생을 즐기며 살고 있다. 직원 니키와의 관계도 관계지만, 처음에는 약간 강박증 환자가 아니었을까 싶었던, 알고보니 굉장한 엘리트였던 디콘씨와의 관계나, 마지막에 밝혀지는 디콘씨의 병 등, 단순한 한 책방 주인의 일기가 은근히 다채롭고 재미있다.

 

나는 책에 대한 책은 사지 않고는 못 배기는 성미지만(이 말 이 페이퍼 안에서 벌써 세 번째 하고 있음을 내가 안다), 그리고 책에 관한 책은 어지간하면 그 소재빨 때문에 기본 점수를 따고 들어가지만, 진짜로 재미있어서 소개하고 싶은 책은 몇 권 되지 않는다. 그 드문 책들 안에 이 책이 있다. 헬렌 한프의 책을 재미있게 읽으셨다면, 읽으시라. 헬렌 한프의 책을 아직 읽지 않으셨다고? 그럼 헬렌 한프도 읽고 이 책도 읽으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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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 박완서 작가 10주기 에세이 결정판
박완서 지음 / 세계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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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 사망 10주기다. 돌아가셨다 했을 때도 참 황망했는데, 벌써 10주기라니. 흐르는 줄도 몰랐던 시간에 이렇게 마디를 지어주는 것들이 있을 땐 문득 달력을 보고, 손가락을 꼽아보게 된다. 어언 10년이 흘렀구나. 어느새 10년이.

 

10주기에 맞추어 박완서 선생님 관련한 책들이 출간되고 있다. 아니, 10주기에 맞추어가 아니다. 박완서 선생님이 작고 하시고도 10년 내내, 저자 박완서의 이름을 단 신간은 거의 매년 나왔고, 또 팔렸다. 전집에 선집에 개정판에 대담집에 후배들의 추모글 모음. 달리는 이름이 참 다양하기도 하지. 한때 시집의 초판본들이 초기 형태 그대로 출간되는 것이 유행했듯, 나중엔 박완서 초판본까지 나오겠구나야. 구매력 있는 계층을 주 타겟으로 하는 작가란 출판사의 입장에서 얼마나 축복받은 존재인지 알 법 하다. 한때 무협지 팔아 돈을 벌어 안 팔리는 학술 서적을 출간해 준다는 출판사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우리 교수님도 그 출판사에서 절대 팔리지 않을 평론집을 내셨으니까. 그래. 팔리는 책을 찍어서 돈을 벌어야 팔리지 않더라도 출간할 가치가 있는 책들을 펴낼 여력이 생기는 거지. 간만에 오프라인 서점에서 책을 사며 세계사, 돈 많이 버세요. 어떤 책 찍어내나 내 지켜 볼 겁니다. 중얼거렸다.

 

그냥 딱 그만큼, 거기까지. 비아냥과 냉소가 섞인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완서는 참 좋구나. 읽고 또 읽어도 새롭디 새로운 이 글의 힘은 어디서 오는 건가. 감탄하면서. 가볍게 읽고 넘겼는데.

 

며칠 전 내가 자주 가는 아줌마들의 커뮤니티에 박완서에 관한 글이 올라왔다. 소설에 대한 개인의 감상에 딱히 토를 달 생각은 없음에도 그 글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박완서에 대한 몰이해, 비평은커녕 비판도 못 되는 매도. 그 글을 쓴 사람은 자신이 박완서의 책으로는 세 권째 읽고 있음을 밝히며 비난과 차마 글로 옮기기 힘든 혹평을 이어나갔다. 이런 건 참을 수가 없지, 커뮤니티의 개싸움이라도 참전을 해 볼까, 하기도 전에 이미 댓글은 100여개를 넘어서며 비난과 비평, 호평과 악평이 줄줄이 달리고 있었다. 그 중 나의 시선을 사로잡은 글들은 이런 거다. 이제 단편집 한 권 읽었는데 좋더라, 라는 글. 박완서 이름만 들었지 아직 읽지 않았는데 이런 논쟁적인(?) 작가였군요, 하는 감탄, 그 와중에 박완서 책 좀 추천해 주시라 이제 읽어 보려 한다는 댓글.

 

그러니까 말이다.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하고 돌아가신 지 이미 10년이라 신간, 그러니까 새책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에 대한 기대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작가지만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진행형인 상황이었다. 그리고 문학이 생명을 유지하려면 바로 그 새로운 독자의 끊임없는 유입이 있어야 하고 그 독자의 유입을 가능하게 해 주는 것이 끊이지 않는 신간의 출간이다.

 

이번에 박완서 산문집이 전집으로 묶여 나왔는데, 그 산문집만 무려 9권이다. 단편집은 문학동네에서 여섯 권으로 묶여 나온 지 한참 되었고, 장편 소설은 세계사에서 20여권이 넘게 묶여 나오고 있다. 박완서를 처음 만나는 독자의 입장이라면 질릴법하다. 무엇을 읽어도 다 좋습니다. 박완서는 다 좋아요! 라고 외치지만 그야 내 입장이고, 박완서, 유명하다던데, 이제 한번 읽어보려구요. 하는 사람에게 수십 권의 책을 들이대고 아무거나 읽으세요! 하면. 나라도 문을 열었다가 다시 닫겠다.

 

이 책의 뒤에는 친절한 문구가 실려있다. “한국 문학의 가장 크고 따듯한 이름, 박완서 그가 남긴 산문 660여 편 중 가장 글맛 나는 대표작 35”

 

누군지, 글 참 잘 고르셨다.

박완서 뉴비를 환영합니다~ 어서오세요. 박완서 월드 입장 티켓으로 손색없는 책 한 권을 소개해 드리니, 읽으세요. 읽으세요. 박완서 신장판, 결정판, 완전판을 넘어 무슨 이름을 달고라도 출간을 멈추지 말아주시길, 우리 문학사에 박완서 뉴비가 계속 나올 수 있게 해 주시길.

 

, 이래서 유명 밴드들이 다들 베스트 앨범을 내나보다. 이 뜬금없는 깨달음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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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21-02-18 16: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박완서 작가 비판하면 같이 막 싸우고 싶어져서 큰 일입니다. 어떤 글이 취향을 탈 수는 있지만 이미 고인이 된 사람의 인간성까지 운운하며 소설 속 주인공과 동일시하는 글 보고는 정말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루키도 그래요. 큰 일입니다. 그런데 너무 신기한 게 박완서 작가가 하루키 에세이를 읽은 산문을 읽은 기억이 나서 그걸 찾아 읽었던 기억이 나요. 참, 저 요새 아나운서들이 만든 박완서 작가 단편 다시 듣고 있는데 참 좋더라고요. 분명 다 읽었는데 다 처음 읽는 느낌이 막 들어요. 맞아요. 이 책 정말 너무 좋죠. 사고 또 사고 있는데 못 찾고 또 사고 이젠 오디오북까지...친정에 가보니 박완서 작가 에세이집 있어서 또 들고 와서 읽고...아시마님, 반가워서 댓글 달고 가요.

아시마 2021-02-19 09:42   좋아요 1 | URL
안티가 없으면 대스타가 아니다 라는 말을 영원한 오빠 나훈아 옹께서 하셨던 기억이 나는데. 하루키에 대해서는 그런가보다가 되는데 박완서에 대해서는 그게 안 되더라고요. 온라인 생활 오래되었고 커뮤니티도 오래 봐서 웬만한 논쟁에는 그런가 했던 제가 오래 잊고 있었던 감정을 떠올리게 하는 글이었어요. 그럼에도, 그 글을 통해 이런 선집의 가치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그건 또 그나름의 가치가 있었겠지요.

제가 요즘 작고한 작가들에 대한 아쉬움을 생각하는지라, 이 작가의 글을 더는 볼 수가 없구나 하는 아쉬움이 황당하게도 계속 출간되는 박완서 선생님의 책에(글에 대해서가 아닙니다!) 투사되던 중이었거든요. 활자화 된 <엄마의 말뚝>이 몇가지 버전으로 집에 있는지, 아무리 팔린대도 그렇지 재탕에 삼탕에 이게 뭔가 했었거든요. 그런데 그게 아니었더라구요. 형태를 바꾸고 옷을 갈아입고 자꾸자꾸 출간되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이구나 싶었어요.

누군가가 죽는 순간은 누구도 그를 기억하지 않을 때라고 한다던데, 이런 선집이 출간된다면 박완서는 죽어도 죽은게 아니죠. 여전히 동시대의 현역작가. 감사할 따름. 뜬금없지만, 96년도에 소설가 김동리 작고 기사였나 위독 기사를 보고 황당해했던 기억이 있어요. 아니 김동리가 아직 살아있단 말이야? 하면서. 그러고 봤더니 세상에 황순원 선생도, 심지어 서정주 선생도 그때까지 생존해 계셔서 아니 이 분들이 왜 아직도 살아있지??????(갓 스무살의 철없음을 기억해 주셔요~ ^^) 했더랬죠. 그때 기억이 떠 오르면서 실제 생몰과 상관없이 작가의 생명이란 무엇인가 다시 생각해 보는 계기도 되고.

저는 아직 오디오북은 쉽게 접근이 안돼요. ㅎㅎㅎ 오디오북이 지금처럼 되기 전에, 거의 20년도 더 전에 말이죠. 미국에서 잠시 놀러온 친구가 스티븐 킹의 오디오북 이야기를 해서 와 참 신기한 독서형태일세, 감탄했었는데 얼마전에 운전을 하면서 아 나도 오디오북이라는 걸 사서 들어볼까, 하기는 했었어요. 아직은, 이라는 완결되지 않은 부정을 달아둡니다.

반가워요, 블랑카님~ ^^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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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추천하는 책들을 많이 읽게 된다. 이 책도 그렇게 걸려든 책이다. 신형철에, 무려 그리스인 조르바라니. 카잔차키스의 조르바도 워낙 좋아하는 작품이라, 오호. 신나게 주문해 놓고는 다른 책들의 홍수에 휩쓸려 묻어 두었다. 주문한 것도 잊었더랬다. 서가에 책을 꽂을 때, 나름의 규칙을 두고 꽂는 편인데-한국 문학과 해외 문학의 서가가 다르고, 보통은 작가별로 꽂아둔다- 이 책은 뜬금없이 박완서 서가에 꽂혀있었다. 새로 출간된 박완서의 책을 읽고 꽂아두려고 갔다가 이 책을 발견하고 뽑아들었다. . 그래, 나 이 책 주문했었지.

 

책 뒤의 소개 문구를 읽어본다. 저명한 작가인 20년간 집안일을 돌봐준 가정부 에메렌츠를 추억하는 이야기. 오호. 보통 이러면 작가인 가 괴팍해야 하는데 가정부가 괴팍하단다. 조르주 벨몽이 쓴 나의 프루스트 씨류의 책인가. 에메렌츠와 셀레스트 알바레는 어디가 닮고 어디가 다른가 보자.

 

책을 펼쳐서 작가 소개를 본다. 서보 머그더. 헝가리 작가란다. 어라. 헝가리. 헝가리는 동유럽에 위치한 국가로 2차 세계대전 초반에는 독일과 동맹을 맺은 이력이 있는 공산 국가다. 내가 아는 헝가리에 대한 정보는 그 정도. 익숙하지 않은 국가다. 잠깐은 체코와 헷갈렸을 정도로. 그런데 나, 이 헝가리 출신의 작가 중 아는 작가가 있다. 산도르 마라이크리스토프 아고타. 아는 정도가 아니라 꽤 좋아하는 작가다. 이 정도의 정보를 가지고, 신형철의 안내대로 천천히읽기 시작했다.

 

이야기의, 아니 책의 시작은 악몽과 살해에 대한 고백이다. , 가정부 에메렌츠를 죽였단다. 괴팍한 가정부라고 했으니 얼마나 괴팍했길래 살해까지. 이건 흥미진진한 스릴러인가. 에메렌츠는 댄버스 부인 류였던 건가. 살해의 고백으로 책을 시작한 화자는 곧 에메렌츠와의 첫 만남부터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자인 새 집에서 더 많은 가능성과 함께 책상에 더 오래 붙어 있고, 수도 없이 집을 비워야 하는 과외의 의무도 져야 하는 전업작가로 전향(p. 12)”하게 되었기에 집안일을 돌봐줄 누군가를 찾는다. 옛날 학교 친구가 소개해 준 에메렌츠는 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고, 남자관계도 없고, 사람들에게 선물 주기를 매우 즐긴다. 무엇보다 집안일의 대가로 지불하는 돈은 그녀에게 별반 중요하지 않으니 우리가 그녀의 마음에 드는 것이 중요(p.13)”하단다. 고용주와 고용인의 입장이 뒤바뀌는 거다. 에메렌츠는 며칠에 걸쳐 화자 부부에 대한 평판을 수집한 다음에야 일을 수락하는데, 급료와 근무시간 마저 자기가 정한다. 그러니까, 다른 일들-공동주택의 관리인-을 하는 중간 비어있는 시간에 와서 일을 할 건데, 변덕스러운 근무 시간은 놀랄 정도의 성과를 동반해 나를 놀라게 한다.

 

두 사람은 천천히 친해진다. 첫 만남에서 화자의 남편(아마도 같은 작가이거나 최소한 학자일 법한)에게는 주인님이라는 칭호를 바로 사용하지만

 

에메렌츠에게는 내 남편에 대한 호칭만 있었을 뿐그녀에게 나는 여성작가도부인도 아니었다그녀의 삶에 마침내 내가 자리매김하기 전까지그녀의 관계망 속에서 내가 누구이며나에게 적합한 호칭은 어떤 것인지 그녀는 생각도 하지 않았을 그 기간 동안나에 대해서는 어떤 호칭도 없었다.

p. 19

 

그렇게 약 5년간, 화자 부부에게는 에메렌츠가 필요하지만, 에메렌츠에게는 굳이 가까이 둘 필요가 없었음에도 화자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함께 한다. 그러다 화자의 남편이 폐종양 수술을 받았고, 수술이 끝난 직후 기진맥진해 진 화자가 홀로 집에 들어갔을 때 에메렌츠는 화자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에서 제외되었음에도 지친 화자를 돌보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비밀을 열어 보인다. 그리고 남편이 수술에서 잘 회복되던 무렵의 크리스마스날, 화자는 강아지 비올라의 생명을 구하고 그것으로 에메렌츠에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던 것 같다. 비록 강아지 비올라에게 하는 말이었지만 화자를 주인마님이라고 칭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렇게 두 사람의 관계는 묘한 긴장을 가지고 이어진다.

 

그 어떤 중요한 업무를 수행하든그녀의 눈에 공구들을 돌리고 조이지 않는 남자들은 모두 기생하는 사람들이었다물론 질서를 다루는 그 총경은 제외하고각종 구호들로 연설하는 부인들도처음에는 나를 포함하여 빵을 축내는 사람들이었다.

(p. 149-150)

 

처음에는 만성적인 노동 기피자를 대하듯 우리들도 낮춰보았던 에메렌츠도 우리집의 문지방을 넘으면서는 반감이 약해졌는데, 우리가 두드리고 있는 것이 기계(타자기 말이다)이기는 하지만 그것도 우리가 밥벌이를 하는 데 작은 기여를 한다고 스스로를 확신시켰기 때문이다.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이렇게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p.154) 말하자면 에메렌츠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이고 화자 부부는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에 대한 에메렌츠의 반감과 경멸은 매우 두드러지지만 그것이 화자 부부에 와서는 약해진다.

 

왜 자신과 그렇게나 다른 내게 그녀가 집착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나의 어떤 면을 그녀가 좋아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그때는 내가 아직 젊었다고 이미 밝힌 바 있다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비논리적이고운명적으로 뒤엉켜 있으며예측불가능한 감정인지를 나는 철저히 분석할 수 없었다.

(p. 163)

 

화자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로 에메렌츠는 화자에게 애정을 가졌고, 그 애정은 에메렌츠 평생의 신념(빗자루질에 의한 구분)도 대충 뭉뚱그릴 수 있을 정도의 애정이었다. 이유가 없었기에 더욱 강력해 질 수 있는 것이 애정이다. 끝내 에메렌츠는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자신의 집, 닫힌 문 너머를 나에게 열어보인다.

 

당신에게 이것들을 맡긴 것당신을 여기 안으로 허락한 것이 이상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줄 수는 없네요.

(p. 231)

 

그것이 에메렌츠에게는 가장 강력하고 절실한 애정의 고백이었던 것이다. 끝내 에메렌츠는 나를 머그두슈카라고 부른다. 오직 부모님만 사용하던 호칭으로 나를 부른 거다. 에메렌츠는 엄마가 딸을 사랑하듯 화자를 사랑했다.

 

신형철은 이 소설을 천천히 세 번 읽었다고 소개한다. 여기까지 읽었더니 신형철이 왜 세 번이나 읽었는지 이해가 된다. 이야기가 전혀 다르게 다가오는 것이다. 앞에서 그저 넘겼던 서술들, 짧은 문장들이, 작가는 물론 알고서 그렇게 배치했겠으나 독자는 무심코 넘겼던 구절들이 갑자기 엄청난 의미를 가지고 덤벼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야말로 에메렌츠가 화자에게 끊임없이 다그쳤던 것처럼.

 

당신은 얼마나 바보 같은지요죽은 사람에게는 이미 모든 게 마찬가지예요망자는 제로예요영이에요어떻게 이런 생각을 못하는 거지요그 정도 나이면 충분한데도 말이에요

(p.314)

 

이 쯤 되면 책을 앞으로 허겁지겁 돌려보게 되는 것이다. 아아. 나는 얼마나 많은 구절들을 놓치고 있었던 것인가. 작가가 보물을 배치하듯, 책의 구석구석에 비치해 둔 그 많은 애정들을.

 

당신은 모든 것에 대해 나와는 다른 개념을 가지고 있어요천만가지그 모든 것에 대해 당신은 배웠겠지만 그런데도 무엇에 주목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요당신이 쓸데없이 눈을 부라린다고 해도완전히 나의 것이 아닌 사람은 나에게 필요 없다는 사실이 보이지 않으세요? ............ 그 사람을 남편으로 원했기에 내가 그를 친구로 삼지 않은 것인데마치 태어나지 않은 자식처럼 나에게 굴지 마세요. ............. 아무도 데려가지 않은 그곳에 당신을 허락한 것도 잊지 말아요내 안에 더 이상은 없으니 이 이상 더 줄 게 없어요.

(p. 235-236)

 

마지막 부분을 읽으며 영화 일 포스티노로 유명한 책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칠레 쿠데타가 일어나고, 집에 감금된 노벨문학상 수상자 네루다에게 쏟아지던 전보들. 우체부 마리오는 그 전보를 직접 전달할 수 없어 외어 와 읽어준다.

 

아옌데 대통령 죽음에 공분과 애도정부와 국민은 시인 파블로 네루다 씨에게 망명지 제공스웨덴.”

다음

네루다는 눈자위에 그림자들이 어리는 것을 느꼈다그 그림자들은 거센 물줄기나 질주하는 유령들처럼 유리창을 산산이 부수고모래사장 위에서 스멀스멀 몸을 일으키는 희미한 몸뚱어리들과 어우러지고 싶어 하는 듯했다.

멕시코 정부시인 네루다 씨와 가족에게 비행기 제공조속한 내왕 바람.”

마리오는 낭송은 했지만 이미 시인의 귀에는 들리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역민음사, 2004, p.156

 

죽음을 앞 둔 시인에게 전해진 무의미한 구조 신호. 안전에 대한 그 완벽하고 거대한 약속이 오히려 얼마나 무심하고 슬펐던가. 이 책의 마지막 부분도 그와 비슷하다. 병원에 누워있는 에메렌츠를 두고 문학상을 수상하고, 해외 문인 회의에 참여했던 나. 그 무의미함이라니.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다. 그 외 무엇도 아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면 이해가 된다. 4백쪽이 안되는 소설을 4천 쪽짜리 대하소설인 양 읽어야 했다는 신형철의 말이. 4천 쪽만큼의 감정이 4백 쪽에 응축되어있다는 그 말이.

 

전 세계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7700만에서 8천만을 헤아린다고 한다. 헝가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은 1300만명 정도다. 변방의 언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어 사용자의 약 1/6 수준이다. 변방 중의 변방이다. 그 적은 수의 사람만이 사용하는 헝가리어로, 1987년에 출간된 이 책이, 2015년에 뉴욕타임즈 올해의 책이 되고, 그로부터 또 4년이 지나 2019년 한국에 출간된 이유는 그 4천 쪽만큼의 감정 때문이다.

 

당신은 유다예요그녀를 배신한 거예요.

p.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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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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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몸통이없는 사자는 가짜가 아니고, 있을 것은 다 있는 그 강아지가 가짜인가요? 여기서 나에게 이랬다저랬다 무슨 거짓말을 하는 거예요! - P115

자신 앞에 음식이 놓여서 예배 후 먹을 준비만 한 채 집에 당도하는 사람은 얼마나쉽게 독실해질 수 있는지를 내가 깨우치라는 것이었다. - P1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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