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안인희 옮김 / 푸른숲 / 199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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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문은 항상 흥미로우면서도 전기 작가의 시선을 통해 인물을 보기에 어떤 부분에서는 매력이 급격히 감소하는 점이 있는데 츠바이크의 명성 그대로 끝까지 흥미진진하다. 발자크 인생 자체가 파란만장하다. "인생은 건설한 대상이 아니라 연소할 대상"이란 까뮈의 말처럼 발자크는 철처하게 인생을 연소하면서 살다간 게 아닌가. 우리는 인생을 주로 건설만하다 어쩡쩡하게 건설도 못하고 불사르지도 못한 아주 찝찌름한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누군가가 인생에는 "지랄 총량의 법칙"이 있다고 했다. 일생에서 주어진 발광의 양을 채우기 마련인데, 츠바이크가 묘사한 발자크의 삶은 그 자체가 발광(發狂/發光)이다.

 

발자크는 어머무시한 몽상가이다. 머릿속에 어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발자크는 벌써 실행까지 나아간다! "내 생애의 모든 시기에 걸쳐서 나는 언제나 용기가 내 불행보다 더 큰 것을 보았다."(156) 그에게 좌절이란 우스운 것이다. 실패하고 일어나서 또 계획하고 실행하고 실패한다. 그러기 위해서 그는 글을 썼다. 소설을 쓰는 일은 그에게 아주 현실적 수단이었다. 원고료를 미리 계산해서 일을 저지르고 탕진한 후 남아있는 건 땡겨쓴 원고료를 갚기 위해 글을 써내는 거 였다. 무모한 계획에 대한 끊임 없이 도전하고 실패 후 재정 악화를 만회할 방법은 글을 쓰는 일 밖에는 없었다. 작가는, 발자크 한테 일종의 직업이었고 엄청난 재정적 파산 상태는 그가 끊임없이 글을 쓰는 추진력을 제공했다. 당시에도 엄청난 인세를 받고 인기를 누렸는데 그는 평생 빚에 허덕이며 살았다. 하루에 16페이씩 쓰는 일이 가뿐했다고 하니. 열심히 일했고, 열심히 실패하고. 안정 따위와는 천성적으로 거리가 멀다. 돈에 대한 그의 관점은 이렇다. "빚이 전혀 없거나 아주 조금일 경우에는 아끼지만 엄청난 빚은 사람을 오히려 낭비하도록 만든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162) 궤변같지만 일리가 있다.

 

"상상력과 정신력의 흥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은 싸구려 모험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발자크는 자기 내면에 충분히 긴장을 가지고 있어서 다른 긴장을 찾을 필요가 없었다."(202) 전체 삶의 궤적 자체가 그 어떤 소설보다 소설적이다. 예로, 오랫동안 구애를 한 러시아 귀족 부인이 있다. 그 부인을 사랑하기 보다는 그 부인이 가져다 줄 명예와 재산에 더 관심이 있었던 발자크는 그 여자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으면 사랑이 샘 솟는다. 하지만 그녀 역시 발자크의 기질을 알았던 터라 발자크의 구애를 질질 끈다. 하지만 발자크는 그녀의 거절로 불행하지 않다. 오랜 기간동안 이런 식으로 관계가 이어진다. 발자크 기질의 단면을 알 수 있다.

 

"발자크의 운명의 법칙은 자신의 꿈을 오직 책에서만 만들어낼 수 있을 뿐 현실에서는 절대로 이룰 수 없다"(657)츠바이크는 발자크의 운명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불행하면서도 행복하게, 여한 없이 살다 간 사람이 아닐까. 행복과 불행의 기준은 주관적이긴 하지만.

 

 

덧. 빵 터진 말이 있다. "마흔 살의 여자는 당신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할 것이다. 스무 살 여자는 아무 일도 안 한다."(127) 발자크는 어릴 때도 연상 여인만을 뒤쫒아다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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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속에 배여있는 고통
나의 사적인 도시 - 뉴욕 걸어본다 3
박상미 지음 / 난다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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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미 저자를 기억하는 건, 마크 스트랜드가 쓴 <빈방의 빛>이란 역자로서 였다. 호퍼 그림을 잔잔하게 읽어주는 책인데 그림도 좋고 글도 호퍼 그림처럼 수다스럽거나 과하지 않아서 좋았다.  <빈방의 빛>을 읽은 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마크 스트랜드의 글이 아니라, 특이하게도 역자 후기였다. 이 책을 읽고 <빈방의 빛>을 다시 꺼내서 역자 후기를 읽었는데 역시나 좋다. 그러니까, 박상미 씨의 글을, 글을 낳은 감성을 잊을 수 없다. 호퍼에 흠뻑 빠져서 쓴 역자 후기, 그리고 정신차리고 나서 자신의 글을 바라보면서 호퍼가 아닌 마크 스트랜드의 글을 번역한 걸 인지한 후기, 두 편이 실려있다. 호퍼에 홀딱 빠져있을 때 쓴 글을 읽노라면 스탕달리즘이 오롯이 전해지면서 호퍼를 안 좋아하던 사람도 호퍼 팬으로 만들 정도로 매력적으로 주관적이다. 손택이 말했듯이, 예술 감상에는 해석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라 열정을 필요로 하니까.

 

<나의 사적인 도시>는 아주 매력적 제목이다. 누가 제목을 지었는지 모르겠지만 사적인 도시라니. <뉴요커>란 책을 냈다는데 이 책은 안 땡긴다.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서 그러나. 아무튼. 저자는 뉴요커다. 뉴욕에 관한 이야기가 맞긴 하지만 그렇다고 뉴욕의 일반적 이야기가 아니다. 한 공간은 아주 많은 것들로 기억되기 마련인데 박상미 씨의 뉴욕은, 일상적이면서도 그 일상이 화가나 작가에 대한 사색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블로그의 글을 모았다고 했는데 좀 억울했다. 왜 나는 그의 블로그를 모른 채 지냈는지. 불행히도 내 검색 실력 부족인지 검색을 해 봐도 그의 블로그는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그의 책이 있다. 절제되면서도 지적인 일상적 기록 속에서 공감을 얻기도 하고 새로운 관점을 얻기도 한다. 블로그가 갖는 단편적이고 신변잡기적 실수를 극복한 책이다. 때때로 호퍼 책을 번역하고 있을 당시의 기록도 담겨있어서 마치 저자와 아는 사이 같기도 하는 착각이.ㅋ아쉬운 건 언급된 작품 사진이 없을 때가 많은데 <빈방의 빛> 후기를 읽다보니 아마도 저작권 문제 탓인 듯하다. 가끔씩 저작권법에 화가 치민다.

 

일상이 되는 공간에 애정을 갖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크림치즈 베이글과 커피로 된 아침식사가 일상이 되면 낭만이 아니라 구역질이 나면서 된장찌게와 밥을 그리워하게 된다. 로망이 실재화되면 일상이란 이름으로 권태가 찾아오는데 저자의 시각은 늘 여행자처럼 새롭고 뉴욕을 낭만적 공간으로 만드는 힘이 있다. 그의 사적인 도시에 날아가고픈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에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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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탄트 메시지 - 그 곳에선 나 혼자만 이상한 사람이었다
말로 모간 지음, 류시화 옮김 / 정신세계사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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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친구가 최근에 까뮈의 책을 다시 읽고 감명을 받았단다. 사실, 많은 고전이라고 분류되는 책들은 어릴때는 이해할 수 없다. "젊은 날에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때는 사랑인 줄 모른다"는 노랫말처럼 젊음은 많은 것을 놓치고 젊음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살다보면 계획은 틀어지기 마련이고 무수한 우연은 필연을 낳고 필연 속에는 개인의 의지가 들어있다는 걸 서서히 깨닫게 된다. 인생은 결코 뜻대로 흘러가는 게 아니라 흘러가는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걸 어렴풋이 깨달을 때쯤, 모든 고전은 유의미하게 된다고 믿는다. 친구가 까뮈의 부조리를 깊이 깨닫고 추천한 책이다. 그런데 받고 보니 정신세계사 책이고, 류시화 번역이다. 이 두 가지 사항만으로 유추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다.

 

나는 차라리 돌베개나 울력에서 나온 책을 선호하는 편이라, 책 자체는 좋은 말로 가득차 있는데도 내게는 울림보다는 약간 교조적으로 다가온다. "좌뇌 사회"에 살고 있고 좌뇌 사회를 떠날 수 없는 이한테 호주원주민 참부족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동화처럼 보인다. 우뇌에 호소하는 시적 감수성에 기반한 지혜를 풀어놓는다. 다 옳은 말이다. 신은 인간이 필요해서 만든 것이며 공동체 멤버와 물질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공유하는 아주아주 이상적 공동체를 말한다. 그런데 너무 이상적이면 그럴듯함이 사라진다. 호주 아웃백을 맨발로 걷고 자연이 주는 식량을 먹고 밤이면 별로 가득한 하늘을 이불삼아 자연과 하나가 되는 시간은 저자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구경하는 심정으로 읽게 된다. 즉 이 책이 가진 장점이 저자의 과도한 의욕으로 저자의 경험 자체를 타자화하게 만든다. 이 지점에서 공감이 사라지고 이야기만 남는 아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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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네 마당 Vol.3 2015.Spring
언니네 마당 편집부 엮음 / 언니네마당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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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에는 다른 사람한테 관심이 없었다는, 편집장. 어쩌면 당연한 말인지도 모른다. 20대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황금기이다. 비극은 황금기라는 걸 20대가 지나서가 알게 되는 거고. 20대가 타인의 삶을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서른, 마흔을 넘으면 자신의 삶이 비루해보이기 시작하고 다른 이들은 어떤 다른 삶을 사나, 하는 궁금증이 든다. 주류잡지에는 육아, 미용, 웰빙 먹거리, 이벤트성 휴가 이야기고 일상에서 벗어나 멀리 있는 이들의 이야기들이 아득하게 쓰여있다. 인생의 주인공은 자기 자신이라고 여기저기서 말하지만 실제로 접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인생의 엑스트라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칠 때가 종종 있다. 이런 점을 지양하고 평범한 언니들한테 주인공이라고 일깨워주는 책이다. 한 면만 보고 살아왔는데 잊고 있던 내면을 마주하게 하는 일에 주력하는 기획의도에 힘껏 응원하고 싶다.

 

계간지로 호마다 주제를 가지고 수다를 풀어놓는데 봄호는 "처음이야"라는 주제로 물건에 관한 기억부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고 학부형이 되는 여러 경험에 대한 수다로 이어진다. 처음이란 주제로 풀 수 있는 여러 가지 타인의 경험을 통해 내 경험을 소환하는 소소한 즐거움.  여러 분야에서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 누구나 삶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이 녹아있다. 고민하는  주체는 곧 삶의 주인공 탓이란 시선을 찾아주려 노력하는 잡지로 오래오래 살아남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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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3-21 11:1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3-21 11: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5-03-21 13: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언니 !!
단어 하나가 주는 감성, 의 힘이 이렇게 컸나 라는 생각이 문뜩 들었어요.
지나치게 일상적인 단어라 지나쳤던 언니들! 의 이야기를 기대해봅니다.

넙치 언니의 싱그러운 이야기도 실려있으신 듯 ...음..참 좋네요.. 언니 ^^

2015-03-21 22:27   URL
비밀 댓글입니다.

서니데이 2015-03-22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찮다 소개하시니, 나중에 기회되면 한 번 읽어볼게요, 이 책은 계간지인가봐요, 제호 옆에 봄 호 라는 것을 보았거든요, 넙치님, 즐거운 주말되세요^^

넙치 2015-03-24 17:40   좋아요 1 | URL
네, 다른 잡지들하고는 좀 달라요. 서니데이님도 즐거운 한 주 보내시길요.^^
 
인간과 말 봄날의책 세계산문선
막스 피카르트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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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말, 언어에 관심이 많다. 말은 한 개인의 우주고 세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단지 소리를 내는 게 말이 아니라 사고를 드러내는 게 말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있다. 이 책은 제목도 끌리고 목차도 끌리고 번역자도 끌리고 출판이름도 끌리 책이다. 게다가 이 책은 내 로망, 무게가 가벼운 책. 출판사에 꾸벅 절하고 싶다.

 

읽다보니 말에 관한 예찬론이다. 저자에 대해서 전혀 모르지만 저자는 아마도 창조론을 절대적으로 믿는 사람인 듯 싶다. 이런 부분은 설득력이 전혀 없진 않는데 긍정을 할 수는 없다. 언어의 선험성에 대해서는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선험적 기원을 읽다보면 저자는 창조론쪽으로 기운다. 난 진화론자 입장이고.

 

책의 미덕은 저자가 지닌 감각의 과잉에서 나온다. 과잉이 생산적인 좋은 예시이다. 말을 지나치게 사랑한 나머지 말에 관해서만 산문시 한 권을 쓸 수 있는 능력. 읽으면서 감각의 과잉에 관해 생각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저자는 언어에 대한 지나친 감각이 통찰력까지 나아간다.

 

"말은 다른 존재로부터 앞서 주어진 것으로부터 인간에게 온다. 그리고 한 인간에게서 다시 다른 인간에게로 전달되려고 한다. 말이 있으면 이미 거기에는 다른 인간이 있는 것이다."(84)

 

말을 하면서 상대가 거기에 있다고 예상한다. 그런데 가끔 내 입을 떠난 말이 상대에게 전달되지 못한 채 말로만 남을 때 좌절과 후회가 있다. 이럴 때 말이 공허하다고 느낀다. 침묵도 말의 한 종류로 언어 이전에 침묵이 있었다고. 침묵의 가치에 대한 관점을 제시한다. 저자는 말 그자체 보다는 침묵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을 애정한다. 시인의 언어에 신의 언어과 같은 자격을 부여한다. 저자의 문장도 산문시를 읽는 느낌이다.

 

 

덧.

나 역시 지나치게 신체적 감각이 발달했지만 부정적 측면이다. 가령 유리문을 열때 손목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부어오른다. 앉을 때 손을 잘못 짚어 손가락이 조금 아프다 싶으면 다음날 손가락이 부어 오른다. 침 맞으러 한의원에 간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스마트폰을 터치하면 손끝이 찌릿찌릿해서 전기가 오는 거 같다. 바닥에 발뒤꿈치가 닿으면 아파서 잘 때 발도 배게를 해줘야한다. 물만 마셔도 물이 식도를 넘어서 위를 거쳐 십이지장, 대장까지 닿는 경로를 느낄 수 있다. 농담삼아 연약해서 살기 힘들다고 말한다. 쓸데 없는 감각이 지나치게 발달해서 통증이 삶의 일부를 이루는데 익숙해져있다. 무익한 감각을 유익한 감각으로 전환하는 방법은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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