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화가 내게 묻다 - 당신의 삶에 명화가 건네는 23가지 물음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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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팔 궁리를 하다보니 어떤 책이 팔리는지 유심히 보게 된다. 표지를 넘기면 책 제작 정보가 나오는 페이지에서 1쇄를 찍은 지 20일만에 2쇄를 찍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저널리스트 출신의 저자가 유럽에 3년간 머문 후 쓴 그림책 에세이다. 자신의 경험과 일상에서 나오는 적절한 성찰과 통찰로 구성되어 있다. 참신한 기획은 영화나 책이 아닌 그림을 매개로 각 꼭지가 시작하기 전에 질문을 던지면서 시작한다. 글과 그림의 연관성이 많기 보다는 그림이 자신에게 던진 질문을 매개로 에세이를 풀어나간다. 그림은 그 자체만으로 위안을 주는 면이 있고 글을 설렁설렁 읽어도 그림을 보고 또 보는 재미가 있다. 이 책에서 만나는 그림은 게다가 흔한 그림들이 아니고 여자의 초상화 중심이다. 저자의 관심을 끈 게 여자를 그린 그림들이라고. 서문에서 저자는 밝힌다.

"미술관에서 얻고 싶은 것은 '교양'이 아니라 '관계'이고, 하고 싶은 것은 '감상'이 아니라 '대화'"라고.

이 지점이 바로 이 책의 매력이다. 단순한 그림 분석이 아니라 누군가는 책을 보고, 또 누군가는 영화를 보고 많은 상념에 잠긴다면 저자는 그림을 보고 상념에 잠긴다. 그림과 상념, 그리고 그 상념을 풀어내는 글이 구매를 이끄는 힘이다.

편집 역시 그림과 질문 한 페이지만 읽어도 무방하게 했다. 뒷 페이지에 이어지는 글은 읽어도 좋고 그냥 넘어가도 좋다. 읽다보면 이따금씩 마음을 끄는 글도 만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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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적 연애와 그 후의 일상
알랭 드 보통 지음, 김한영 옮김 / 은행나무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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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보통의 책.

오늘 오후 더빙판인 줄 모르고 예매한 <코코>를 보고 동네 카페에 들러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이 책을 펼치고 밑줄긋기한 부분을 열심히 노트에 옮겨적고 있었다. 토요일 저녁이라 그런지 그냥 저녁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카페에 들어오는 손님들은 모두 연인들. 빙수전문점에서 빙수가 아니라 커피를 시키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연애 후의 일상, 즉 결혼의 일상에 대해 낱낱이 파헤치는 이성적 책을 뒤적이고 있는 늙수그레한 나. 옆 테이블에 있는 연인은 빙수가 나오기 전에 마주 앉았지만 앉아있는 거리를 좁히기 위해 한껏 몸을 서로의 방향으로 향해있고, 빙수가 나오자 몇 숟가락 안 먹고 숟가락을 놓은 애인을 위해 남자는 빙수를 떠서 연인의 입에 계속 넣어준다. 순간 나는 왜 이런 책을 뒤적이고 있나, 하는 자괴감이.

주변에 있는 지인들은 결혼의 미덕보다는 부덕을 외치는 이들로 넘쳐난다. 남편이 있어서 10년 째 우울하다는 친구, 남편의 도움이 정말 필요할 때 정작 남편은 남의 편이 된다고 말하는 지인, 결혼생활은 자신이랑 안 맞는거 같다고 말하는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후배. 평생 한 사람과 사는 건 옳지 않다는 지인, 주말이어도 남편은 취미활동으로 바쁘고 아이와 남겨진 지인은 인생 외롭다고...이렇게 쏟아져 나오는 남편 혹은 결혼에 대한 부덕을 듣다보면 이들이 한때 서로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말은 결코 총체적이지 못하고 단편적이다. 그래서 복잡한 감정을 전달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하고 부적절한 수단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이렇게 배우자에 대해 불만을 쏟아내는 말만 늘 듣다보니 나는 배우자란 없는 게 낫구나(?)를 학습하게 된다. 하지만 이게 올바른 학습인가, 하는 의문이 들때가 종종 있다.

보통 역시 <왜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를 썼을 때의 젊은이가 더 이상 아니고, 내가 늙어감에 따라 보통도 늙어간다. 책은 커플이 만나서 낭만적 환상으로 결혼을 하고 그 결혼이 어떠한 것인지 보통 특유의 분석적 시선으로 말한다. 내 친구들이 하던 이야기를 조금 더 고급지게 이야기하는 게 다를 뿐 아하, 하는 순간이 없는 건 보통의 문제인가, 내 문제인가. 둘 다의 문제일 수도 있는데 보통도 늙고 나도 늙었는데 세월은 경험치를 올려놓고 그래서 누군가의 경험 에세이를 읽을 때 격한 공감이 있으려면 코드가 일치해야한다. 보통의 에세이는 이제 내 코드에서 살짝 빗겨나있다. 한때 열광했던 작가인데 이제 데면데면하다니 이 책의 원제 "The Course of Love"처럼 연인이 아니라 작가에 대한 애정도 절정을 지나 하향기로 향하는 인생의 슬픈 이치를 이해하고 있어 슬픈 날.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이성적일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익혀두어야할 것은 우리가 한두 가지 면에서 다소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쾌히 인정할 줄 아는 간헐적인 능력이다."(116)

이런 말마저도 이성적으로 할 수 있는 보통이 이제 매력이 없어보이는 건 내가 변해서일까?

"자신의 부족함을 덜 부끄러워하게 되고 아픈 경험을 공유하면서 더 가까워지게 된다."(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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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자
임경선 지음 / 예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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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생활로 혹은 오랜 연인사이로 관계가 권태롭고 연애감정을 느끼고 싶을때 읽으면 좋을 책. 이래서들 드라마를 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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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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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완전히 모순이다. 고독이 어떻게 시끄러운가. 하지만 책을 읽으면 시끄러운 고독이 존재할 수 있는 걸 엿볼 수 있다. 화자는 삼십오 년째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고 있다. 화자 '나'의 정체성은 특별하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쨰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하지만 이 일을, 신께서 축복하신 이 작업을 완수할 힘을 얻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맥주를 마셨다. 그렇게 나는 뜻하지 않게 현자가 되었고, 이제는 내 뇌가 압축기가 만들어 놓은 수많은 사고로 형성돼 있다는 걸 깨닫는다. 머리털이 모두 빠져버린 내 머리는 알라바바의 동굴이다. 모든 사고가 오로지 인간의 기억 속에만 각인되어 있던 시절은 지금보다 훨씬 근사했을 것이다. "(10쪽)


이 부분이 바로 화자의 정체성이다.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는 중에 노동의 즐거움(?) 이라면 손짓하면 부르는 책이고, 또 책이 주는 종이의 촉감에서 얻는 쾌락이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정신을 지배하는 것은 사실이다. 일이란 반복적이고 권태롭다. 이 권태에서 벗어나려면 자신이 하는 일에서 어떤 장점을 발견해야하는데, 발견자로 역할을 하는 것은 개인의 몫으로 던져지는 경우가 흔하다. 화자는 버려진 책들에서 지식을 습득하게 되고 나아가 책과 그 책의 저자들과 교감하게 된다. 하지만 책이란 매체는 고리타분하다. 변화하는 트랜드에 대치되면서 고독이라는 영역으로 들어간다. 그는 하루 2톤의 종이를 압축하고 좋은 책을 골라내느라 8년 간 9센티미터나 키가 줄어든 걸 발견한다. 노화로 칼슘이 배출되면서 줄어든 키지만 역설적으로 원치않게 현자가 되었어도 눈에 보이는 건 오히려 초라함일 뿐이다.

화자가 사용했던 종이압축기는 구식이 돼어버리고 (아마도) 정권이 바뀐 정부에서 새로운 기구와 젊은이를 파견해서 종이를 압축하기 시작한다. 화자가 사용하는 방식보다 몇 배는 더 능률적인 기계와 그 기계를 대하는 젊은이들의 방식. 그는 하루 2톤의 폐지를 압축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맥주를 마셨다! 아-멘. 하지만 새로운 압축기를 사용하는 젊은이들은 우유와 콜라를 마시고 휴가를 계획한다. 폐지, 즉 버려진 책들에 대한 경건함은 무참히 짓밟히고 폐지를 압축하는 일은 컨베이어벨트를 돌리는 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얻게 되는 여가시간. 오후에 뭘 하면서 보낼지가 대화의 주제가 된다.

책은 무의미한가? 어쩌면.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은 모두 끝장이었다."(91쪽)

그리스에 대한 화자의 견해와 지극히 실용적(?) 혹은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이들의 견해가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그들의 그리스 휴가 계획은 나를 송두리째 뒤흔들어 놓았다. 헤르더와 헤겔의 책은 나를 고대 그리스에 던져놓았고 프리드리히 니체는 디오니소스적인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가르쳐주었건만 내가 막상 휴가를 떠나본 적은 없었다. (...) 사르트르 양반과 까뮈 양반이, 특히 후자가 멋들어지게 글로 옮겨놓은 시시포스 콤플렉스는 지난 삼십오 년동안 내 일상의 몫이었다. 그러나 부브니의 사회주의 노동당원들은 일이 밀리는 법이 없었다. 고대 그리스의 미소년들처럼 볕에 그을린 젊은 남녀들이 작업을 재개하고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도, 괴테도, 불멸의 고대 그리스도 모르는 그들은 헬라스에서 여름을 보내는 일에도 그저 무덤덤하기만 했다. 불안에 곤두선 책장들을 무심한 눈길로 바라보며 그 안에 숨겨진 가치 따위는 전혀 아랑곳없이 냉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93쪽)

이 책은 바로 이런 세대교체에 대한 만감이기도 하다. 이 만감이 내 감성세포를 흔든다.

덧. 번역이 상당히 거칠다. 비문도 상당하다. 이런 투덜거림이 의미가 없고 번역자의 노고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만 비문이 주는 혼동과 거슬림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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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있는 나무 이야기
서울특별시 엮음 / 서울책방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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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 관한 책을 뒤지면 무궁무진하게 나온다. 그 많은 책 중에 역사를 담아 골목을 산책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을 보면 파리가 지닌 문화유산이 부럽고, 그 골목을 누비는 이의 시선이 탐나곤했다. 서울도 이런 관점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만했는데 심봤다!를 외치고 싶은 책이다.

멀리서 사는 친구가 동생책이라며 알려줘서 알게된 책. 근데 저자가 서울시여서 내용을 보지 않으면 읽기 쉽지 않은 책이다. 너무 좋은 책인데... 발행인만 서울시로 하고 저자를 실제 작가로 사용하면 홍보책자로서 더 가치가 있을텐데. 관리들의 마인드란..참.

서울시 홍보책자, 특히 서울에 있는 보호수에 관한 이야기와 그림이다. 사대문 안과 사대문 밖 두 카테고리로 나눠져있다. 사대문 안은 익숙한 공간인데 나무를 중심으로 시선을 옮기니까 아주 새롭고, 이 책을 들고 사대문 안을 걷고 싶다. 한 도시에 살면 특히 서울같은 거대 도시에 살면 행동반경이 비슷해서 늘 가는 곳만 가고 보는 것만 본다. 영화평론이나 리뷰가 관심없는 영화를 관심 속으로 가져오는 역할을 하는 기능이 있듯이, 이런 책 역시 서울을 잘 안다고 착각하는 환상을 깰 수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서울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는 거 같은 성찰을 하게 된다. 나무를 중심으로 역사 이야기, 개발 속에서 나무가 그 자리를 지키기까지의 우여곡절 등이 담겨있다. 무엇보다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작가의 시선이 돋보인다. 나무에 대한 깊은 애정어린 시선은 과하지 않아 거부감이 없으면서 차분히 나무 이야기를 읽고 나무 그림을 감상하게 이끈다.

나는 식물에 까막눈이라 자주 등장하는 회화나무가 읽는 내내 너무 궁금했다. 회화나무 보러 창덕궁에도 가보고. 더위가 힘을 잃어 선선한 바람에 자리를 내주면 이 책을 들고 사대문 안을 산책해봐야지, 하는 의지를 돋게 한다. 서울 다르게 보기에 안내서로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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