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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vin Degraw - Gavin Degraw
게빈 디그로 (Gavin DeGraw) 노래 / 소니뮤직(SonyMusic)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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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음반을 집어 들면 앨범 자켓에 새겨진 그의 듬직한 얼굴이 눈을 끈다. 뉴욕에서 태어난 뉴욕커이긴 하지만 뉴욕스러운 이미지보단 보스턴 구장에서 살 듯한 투박한 야구광스러운 면모가 풍긴다. 그런 그의 우직한 외모와 자신의 이름이기도 한 gavin degraw란 앨범명이 당당하게 뒤섞이니 듣기도 전에 그의 음악에 대한 왠지 모를 믿음이 생긴다.

  그의 음반을 듣고 든 첫 인상은 대단하진 않지만 앨범 자켓에서 그가 입고 있는 푸른 셔츠와 같은 시원한 느낌이 강하다는 것이다. 12곡의 곡들에서 이 곡이다!할만한 인상을 받진 못하지만 큰 차이 없이 고른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고, 음악사를 뒤흔들 듯 소름끼치거나 tom waits나 한대수처럼 듣는 이를 압도하는 기운은 느낄 수 없지만, 심플하고 시원한 느낌만은 출중하다고 본다. 그 시원함은 마치 원 테두리만 뿜어져 나오는 분수의 가운데에서 물에 싸여져 느끼는 안락한 시원함이랄까.

  앞서 말한 듯 12곡 모두 고른 완성도를 지니고 음악의 색깔 자체도 서로 많이 맞물려 있어서 앨범이 한바퀴 돌고 나면 12곡을 들었다기보단 한곡을 들은 인상을 받는다. 12곡의 곡들이 고른 완성도를 보이고 귀에 익숙하다고 하여 평균적이고 흔하다는 느낌이 아닌 귀에 잘 박히는 cf배경음 같은 느낌이 있다.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힘이 강하고, 귀에 쉽게 다가오면서도, 흘러가는 가요와는 다른 애틋함을 갖게 만드는, 인기를 끈 cf배경음 같은 느낌이 12곡 전반에서 느껴진다. 그런 특징으로 인해 드라이브를 하며 기분을 낼 때나 설거지를 할 때 극강의 파괴력을 지니리라 생각된다. 특히 설거지를 하며 들을 경우 촉감에서 직접적으로 느껴지는 물, 더러운 식기들이 닦이며 생기는 시각의 청명함, 흘러나오는 음악의 상쾌함에 자극되는 청각들이 뒤섞이며 지루하지만 꼭해야만 하는 일의 괴로운 시간을 대폭 축소 소멸시키는 신비한 효과를 발휘한다. 설거지에 환상적으로 들어맞는다고 무시하긴 쉬울지 몰라도 설거지에 맞는 음악들을 찾기란 상당히 힘든 일일 것이다. 너무 극강의 완성도라면 감상하는데 나를 내던져야만 하고, 다소 밍밍한 완성도라면 가뜩이나 지루한 나의 설거지를 더욱 늘리고 말 것이니 그리 쉽게 판단해선 아니 될 일이다.

  심플한 완성도를 띤 12곡 중 취향의 문제일지도 모르지만 gavin degraw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드는 곡들이 있다. 2번 트랙의 초반 기타 선율, 4번 트랙의 있는대로 솟구친 절정 이후 원숙하게 조절하는 감정, 5번 트랙의 물 흐르는 듯 거부감 없는 변주, 아마도 가장 야심찬 것 같은 12번 트랙의 기타 선율 묵직함 등에서 보이는 징후들은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되고 앨범명에도 떡하니 적힌 gavin degraw란 이름을 각인 시키게 만든다.

  오늘따라 설거지가 꽤 쌓여있지만, 난 서두르지 않고 오디오의 전원을 켠 후 cd를 넣고 볼륨을 빵빵하게 올린다. 이제 지루함이 경쾌함과 흥으로 뒤바뀌는 경험을 하기위해 싱크대로 다가간다. 그리고 역시,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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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에단 코엔 외 감독, 조쉬 브롤린 외 출연 / 파라마운트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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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제목에 빠지는 건 함정일지 모른다. 허나 이 영화의 제목을 염두하고 본다면, 그러니까 이 영화를 극중 노인을 중심으로 본다면 어떨까?

이 영화의 중요한 노인인 벨은 극 중에서 지극히 관찰자의 자리에 머문다. 벨은 항상 사건 밖으로 밀려 나있을 뿐이다. 모스와 쉬거가 지나간 자리를 조용히 뒤따라 갈 뿐이고 또 직접적으로 사건에 개입하려 모스를 찾아가지만 벨이 도착하기 바로 전 모스는 사망하고 그의 시체만이 벨을 반긴다.

영화의 마지막, 벨은 자신이 꾼 두가지 꿈을 아내에게 말을 한다. 두 번째 꿈은 벨의 눈가를 적시고 영화는 페이드아웃 된다. 벨이 꿈을 얘기하기 전 이 시퀸스의 처음 벨의 표정. 난 그 표정이 정말 이상했다. 그 표정은 무언가를 회상하는 듯 미묘한 뉘앙스를 풍기고 있었다. 또 이 시퀸스의 바로 앞 쉬거가 교통사고 후 말 없이 떠나는 모습의 장면과 벨이 미묘한 표정을 들어내고 있는 장면이 잠시 겹친다. 이는 꼭 벨이 쉬거의 그 장면을 회상하는 듯 보인다. 그러니까 영화가 벨의 회상이라면?

 

영화는 철저히 순서대로 진행 된다. 그리고 순서대로 나열된 서사에 가끔 에피소드(택사코의 상점주인이나 벨에게 살해당한 닭을 싫은 트럭주인 등)들이 첨가 된다. 간혹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은 쉬거라는 살인마가 연결고리로 작용하여 중심을 이루는 서사와 연결된다. 이 에피소드를 연결하고 있는 인물인 쉬거는 가늠할 수 없는 존재다. 그가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서는 그라고 짐작할 수 있는 무언가는 하나도 남지 않고 국적도 불분명하며 사람의 목숨을 결정할 때 쓰는 동전던지기처럼 지극히 우연적으로 다가와 죽음으로 몰고간다. 그러니까 쉬거란 인물은 직접 보지 않고 만져 보지 않은, 특히 그의 흔적을 뒤 쫓아 갈뿐인 인물에게는 인간으로 비칠 단서를 하나도 찾아 볼 수 없는 유령같은 존재이거나 서부의 사막에서 불어되는 바람같은 존재이거나 가늠할 수 없는 폭력 그 자체가 된다. 그러니까 쉬거는 벨이 모스를 추적하며 일어난 많은 사건들의 얼굴없는 살인마의 총합. 규정할 수 없는 폭력이다.


영화를 벨의 회상으로 보면 모스를 중심으로 흘러가는 이야기를 제외한 에피소드들에 쉬거가 등장하는 까닭은 그 개별의 사건들의 일률적인 잔혹함 - 그 개연성 없는 사건들 모두가 극도의 잔혹함에서 이루어져 쉬거가 그 사건에 존재해도 이상하지가 않기 때문이다. 매혹적인 서부의 ‘사막’에서 벌어지는 극악의 폭력의 사태들은 단지 심증으로 형성된 가상의 인물을 통해 매듭을 맺는다. 그 극악의 인물은 만져 본적도 말해 본적도 멀리서라도 본 경험도 없는 단지 추적을 통해 짐작하고 있는 인물이다. 그 흐릿한 인물로 인해 그 인물이 벌여 놓았을 거라 짐작하는 사건들마저 흐릿하게 느껴진다. 사건들이 개연성이 없을지 모르나 쉬거 - 잔혹성이란 고리로 서로를 잇는다.

 



 


쉬거가 벨이 모스 사건을 추적하며 일어난 많은 사건에서 나온 폭력의 총합이면, 즉 ‘증거’없는 행적에서 폭력성이란 이름하에 결합되어 생성된 폭력의 화신이라면, 실존 인물이 아닌 벨의 추적에서 나온 상상의 결과물이라면, 쉬거는 당연 벨에서 기반 된 것이다. 서부의 범죄사건 전방에서 많은 것들을 보아온 보안관 벨이란 인물에서 추축된 절대악과 폭력의 집합체 쉬거는 벨이 보고 격은 일들에 - 벨에 기반을 둔 인물일 것이다. 쉬거가 모스의 트레일러에서 쇼파에 앉아 우유를 마시며 바라보는 TV에서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는 숏과 똑같은 벨의 숏. 쉬거가 오프닝에서 경찰서를 나와 경찰차를 타고 운전하며 앞의 차를 사이렌으로 멈추게 할때의 숏과 벨이 헐겁게 시체를 운반하는 차를 경찰차로 쫒아가 사이렌을 울려 멈추게하는 숏. 이 숏들은 항상 쉬거와 벨을 함께 연상하게 만든다. 쉬거의 근거는 벨에게서 기반한다. 쉬거란 인물이 지독히도 규칙에 매달리는 이유는 벨의 경험에서 나오는 결과물이다. 선 경험(보안관 생활)을 통한 정보는 값(범죄의 결과)을 도출 할 수 있다. 영화 속 범죄의 구렁텅이에서 쉬거의 규칙은 그 세계의 매커니즘인 것이다.

벨은 거의 강제적으로 관찰자의 자리에서 머물게 된다. 그 강제적으로 부여받은 자리에서 그는 세상의 폭력성과 마주하게 되고 삶과 자신의 직업의 허무함을 느끼게 된다. 맞이해야되는 시체가 하나 둘 늘어갈 때마다 그는 자신이 무엇을 보안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없게 되고 자신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게끔 급속히 망가져 가는 세상에 한탄을 한다. 허나 그 한탄 가득한 세상은 자신이 늙어 감에 따라 갑작스레 변한 것이 아님을 퇴직 보안관 엘리스는 말하고 있다. 세월을 막을 수 없고 또 전에도 잔혹한 범죄가 있었음을 엘리스는 말하고 있다.


벨이 젊었을 적부터 겪어왔던 많은 일들을 그는 시간과 함께 떠밀려 오며 그것을 막지 못함에 생기는 무기력감을 느낄 수 없었다. 허나 삶의 종반으로 밀려와 더 이상 밀리지 못하고 쏟아져 내려오는 것들을 온몸으로 받아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한 참혹함을 감당할 수 없다. 자신의 삶과 함께 떠밀려 오던 잔혹함들이 자신과 같이 멈추지 않고 전보단 조금 더 가시적으로 형성되어 쉬거란 인물로 창조 되었을때 또 그것을 막지 못하고 반강제적으로 흐름에서 밀려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하는 무기력감에 그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의 꿈에서 나타났던 아버지처럼 어둡고 추운 곳에서 뒤늦게 오는 이들에게 길을 제대로 찾게 불을 밝히는 일 밖에는 할 일이 없어 진 것이다.

벨이 본 쉬거와 벨이 느끼는 무기력감은 꼭 미국인들이 자주 접할 TV뉴스의 다른 나라의 이야기에서 기반한 느낌이 준다. 사막지대에서 검은 석유 속 돈을 둘러싼 아귀다툼에서 웃으며 떠나간 사람들은 시체로 돌아오지만 시체를 마주하고 있는 이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단지 소문으로 듣고 TV에서 걸러지거나 혹은 일부분만 보이는 결과에서 폭력을 총합으로 가늠 할 수 있을 뿐 TV속 카메라 앞에서 불어되는 사막의 모래바람을 막을 수 없다. 영화에서처럼 사막에서 일어난 일은 흐르고 흘러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에서 그 폭력성의 실체를 들어낼 것이다. 그 막을 수 없는 폭력성은 한탄을 부르지만 그들에게는 지금과 별반 다를 것 없을 과거들이 항상 자신들과 같이 했기에 그들은 함부로 한탄할 수 없다. 그들은 돌아온 시체를 보고 느낀 절망 속에서 고작 할 수 있는 건 사막의 바람이 만들어 낼 것이 무엇인지를, 그 사막 속 검은가방의 결과가 무엇이 될 지 뻔히 알면서도 망각한 자신들의 처지에 대한 무기력감 밖에는 없다. 그것은 예상못한 만남이라기 보단 예상못한 모습(쉬거의 우연성 혹은 동전)을 가장한 당연한 결과(쉬거의 규칙)일 뿐이다.

 

영화에서 계속 바람이 불듯 잔혹함은 항상 그들 주변에 있었다. 아무리 굳이 이럴 필요 없다고 하는 건 계속되는 망각일 뿐이다. 동전이 쉬거와 생각이 같듯 그 동전의 면을 결정해야 될 이들은 단지 망각하려 할뿐 그 결과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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