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인들이 사는 나라 책읽는 가족 16
신형건 지음, 김유대 그림 / 푸른책들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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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퀴 달린 모자>로 처음 만난 신형건 시인의 동시는 참 독특했다. 흔히 동시라고 하면 동화보다 더욱 "동심 천사주의" 일색이라는 선입견을 쉬이 뿌리칠 수 없었는데 그러한 편견을 조금이나마 누그러 뜨렸나고나 할까. 동시 하나 하나에 실린 아이다운 상상력은 유쾌하고 유연해, 동시집을 읽는 내내 하늘로 붕~ 떠오르는 듯한 즐거움을 맛보았다. 조잘거리는 아이마냥 자유분방하고 약간은 수다스럽다고 할 만한 시들이 참 재미있었다.

이번에 처음 접한 <거인들이 사는 나라>는 <바퀴 달린 모자>에서 미처 몰랐던 시인의 작품 세계를 좀 더 포괄적으로 알게 해주었다. 특히 1부에 실린 시들의 따뜻함과 서정성에 깜짝 놀랐다. '친구'에 대한 마음으로 표현 되어있지만 시인이 느꼈던 연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이렇듯 동시로, 친구 사이의 일로 치환해 놓은 것이구나 하고 생각했다. 시집 마지막에 시인이 직접 정리한 자신의 시작 노트를 읽으니 역시 그랬단다.(나도 연애할 때 이렇게 시를 남겨 등단했어야 하는 건데... 하며 뼈저리게 후회했다^^;)

시인이 직접 쓴 시작 노트는 시집 한 권을 읽고서 느낀 작품 세계 전반을 명쾌하게 정리하도록 도와주어서 작품에 대해서는 더이상 덧불일 말이 없다. 다만 6부의 뒷 부분에 실린 작품들은 아무래도 초기작인 것 같은데 전체적인 시집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지는 느낌이 들어 굳이 수록하지 않아도 좋을 듯 하고 편집의 묘미상 시집을 마무리하는 작품들로도 적절하지 않은 듯 싶다.

삽화의 훌륭함에 대해서는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동시집의 삽화는 시라는 특성상 그 이미지를 그리기가 힘든 일일 것이어서 그런지 유치하거나 무의미한 것이 많았다. 그런데 이 책에 실린 김유대 작가의 그림들은 지금까지 삽화들과는 달리 허투르지 않았다. 물론 신형건 시인의 작품 특성상 다른 시들보다는 이미지화 하기가 쉬운 부분도 있겠지만 그림이 시의 이미지를 더욱 드러내는 좋은 그림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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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2-17 20:2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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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자 들어간 벌레들아 - 생태 동시 그림책, 동물편 푸른책들 동시그림책 1
박혜선 외 지음, 김재홍 그림, 신형건 엮음 / 푸른책들 / 200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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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보니 일단 제목이 좋다. 책을 읽고 알았지만 시의 제목이다. 역시.


제목 위에는 작은 글씨로 '생태 동시 그림책-동물편'이라 적혀있다. 동네 도서관 서가에는 '생태 동화' '생태 동시'라는 주제 분류가 따로 있는데 그걸 볼 때마다 궁금했다. '생태'라는 말로 분류되는 작품은 어떠한 기준에서 그런 건지, 또 왜 굳이 분류하는지, 그 의미는 뭔지. 사실 난 잘 모르겠다.


그 궁금증은 이 책에도 해당된다. 왜 굳이 '생태 동시'라 이름 붙였을까?

흔히 '생태'라는 단어가 뜻하는 바, 자연 보존, 자연 회귀, 문명 반성 등의 메시지를 담아야 하는가? 그 기준은 이 책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여기 실린 동시 대부분은 그저 자연을 노래할 뿐이니까.


하지만 이 책을 읽다 보면 '생태 동시 그림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것에 별다른 이의가 느껴지지 않는다. 이의는커녕 이름을 아주 잘 붙였다 싶다. 왜 그럴까? 그저 자연의 아름다움을 어린이의 감수성으로 표현하고는 있지만 잘 그린 그림 한 장과 어우러져 생태적인 감성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가짐을 느끼게 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풀냄새가, 자연의 내음이 난다.


한 장씩 책을 넘긴다. 차례에만 작가 이름이 있고 본문에는 없는 것이 내심 궁금하고 답답하면서도 오히려 선입견 없이 시와 그림에만 몰두하게 되어 좋다.


덕분에 눈이 맑아졌다 싶어 주저없이 고른 두 시는 우연히도(?) 같은 시인(전병호)의 시다. 그중에서도 '풀무치'의 간결함과 여운, 깊이는 두고두고 시를 외우면서 느끼고 싶을 정도다. 참 좋은 시 한 편을 만나 기뻤다.


'겨울 까치집'의 시상 역시 탁월했다. 정말 이것이야말로 동시구나, 성인시와 구분되는 지점이구나 하는 것을 무릎을 탁 치며 느꼈다. 시인의 눈은 겨울 미루나무의 까치집을 미루나무의 가슴(마음, 심장)으로 본다. 미루나무는 여름도 좋지만 까치집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겨울 미루나무도 참 좋아해서 마음 속 풍경으로 늘 남아있는데 이 시를 읽고 나니 이제 겨울 미루나무는 늘 그렇게 바라보게 될 것 같다.


'오목눈이'의 귀여운 동심과 '지렁이'의 문학적 유려함도 돋보였다.


동시에서, 그리고 자연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아이들에게 이 생태 동시 그림책 한 권은 문학과 자연의 푸른 내음과 기운을 훅, 하고 불어 넣어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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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자꾸 초인종이 울리네 I LOVE 그림책
팻 허친스 지음, 신형건 옮김 / 보물창고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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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두 아이를 위해 열 두 개의 과자를 구웠다. 그런데 자꾸만 초인종이 울리고 아이들이 밀려온다. 아이들이 결국 열 두 명이나 식탁에 앉아 이제 겨우 단 하나씩의 과자를 먹으려는 찰나, 또다시 초인종이 울린다다. 나도 아이들의 식탁에 함께 앉은 것마냥 초조한데 과연 마지막 초인종을 울리고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정답은 할머니가 과자를 아주 많이 구워와서 모두 배부르게 먹게 되는 것이다. "할머니만큼 과자를 맛있게 만드는 사람은 없단다"하고 엄마가 계속 말하는 것이 복선이었다. 

그림책은 첫 장부터 마지막 장까지 줄곧 부엌의 풍경이다. 똑같은 씬(이라는 말을 써도 된다면^^;)이니까 점점 달라지는 디테일에 집중해야 하다. 미묘한 변화를 꼼꼼히 살피다보면 즐겁고 사랑스러운 마음을 가득 느낄 수 있다. 과자가 줄어들 때마다 시무룩해지는 아이들의 표정, 점점 많아지는 발자국들, 쌓여가는 아이들의 장난감과 옷가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고양이, 찬장에서 하나둘씩 꺼내진 개인 접시 등등...(열심히 봤지만 '옥에 티' 하나 없다!!!^^)


그중에서도 아이들의 표정 변화가 너무나도 귀여우면서 절절하다. 여섯 명의 아이들이 식탁에 앉았을 때 먼저 앉은 네 아이는 시무룩하고 나중에 초대받은 두 아이는 활짝 웃고 있는 장면, 열 두 명의 아이가 모두 둘러 앉았을 때 초인종이 울리자 일제히 현관문을 쳐다보는 장면, 그리고 물끄러미 자기 접시를 쳐다보는 장면 등등..이제 과자가 하나밖에 남지 않아 엄마는 과자를 어서 먹으라고 하는데 문 밖으로 달려가는 샘의 표정은 또 얼마나 사랑스러운가.


'나눔'을 주제로 한 이야기라면 단연 <단추수프>의 감동과 아름다움이 압권이지만 이 그림책이 일깨우는 나눔은 또 그만의 독특한 아기자기함이 넘친다. 수학 그림책으로 보든 나눔의 의미를 일깨우는 교훈적인 책으로 보든 상관없이 참 귀여운 책이다.


* 나중에 '우르르' 몰려오는 여섯 명의 아이들은 흑인이다. 흑인 친구들도  백인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함께 나누어야 할 존재라는 작가의 의도는 잘 알겠다. 열 두 명의 아이들이 흑인, 백인 골고루 섞여 나란히 식탁에 둘러앉게 그린 작가의 의식 또한 고맙다.

하지만 나누기 싫은 순간에, 나누기가 힘들어지는 순간에 들어와 마지막에 더 큰 나눔을 베풀어야 할 존재로 흑인이 그려지는 사실, 그러한 현실 자체가 한편으로는 가슴을 씁쓸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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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 그림책 보물창고 8
게리 D. 슈미트 지음, 이현숙 옮김, 빌 판스워스 그림, 나다니엘 호손 원작 / 보물창고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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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두고두고 읽으며 매번 새로운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책 한 권만 있어도 삶은 참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좋은 책은 그래서 오랜 기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다.

교과서에서 이 이야기를 처음 접한 지 10여년을 훌쩍 넘어 다시 그림책으로 읽는다. 예전에는 그저 "나도 큰 바위 얼굴같이 지혜롭고 현명하고 평화로운 사람이 되어야지"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도덕 교과서같은 교훈성에 약간의 반감도 가졌다.

10여년의 세월은 이야기의 깊이와 넓이를 더욱 알게 하고 웅숭한 울림을 전한다. 돈, 권력, 명예, 지식은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도 우리 삶의 본연도 아니라는 것을, 그저 각자 주어진 자리에서 성실하게 삶을 살아내는 것이야말로 가장 어렵고 존귀한 일이라는 진리를 느끼게 한다. 우리는 나이 서른만 되어도 어렴풋이 깨닫는다. 소위 일상인, 보통 사람의 삶의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 하는 사실을 말이다.

이 교훈은 더구나 사회적 성공이 그저 돈 잘 벌고 유명해지는 일 하나로 묘사되고 찬양되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에서 더욱 절실하게 요청되는 깨달음일 듯 싶다. 아이들 역시 어른들의 잘못된 가치 인식과 삶의 목표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까.

그림은 이야기의 감동을 배가시킨다. 잔잔히 밀려든 감동을 정리하며 채을 덮는 찰나, 그런데 하나의 문제가 고개를 든다. 굳이 머리로 생각한 건 아닌데 그저 드는 느낌이 이야기가 너무 남성적, 남자아이 중심이라는 것이다. 큰 바위 얼굴도, 어니스트도, 우화적인 이름으로 처리된 유사(!) 큰 바위 얼굴들도 모두 남자다. 200년 전에 씌여진 작품이니 만큼, 주홍글씨를 가슴에 박는 사회였으니 만큼 굳이 작품의 흠으로 삼고 싶지는 않다. 다만 여자아이판 '큰 바위 얼굴'의 이야기가, 더 나아가 남자아이, 여자아이 모두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라고 가슴 깊이 느끼게 할 '큰 바위 얼굴' 이야기가 이 시대에 다시 만들어져야 하겠다고 생각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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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진과 유진 푸른도서관 9
이금이 지음 / 푸른책들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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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를 건너는 법


유진과 유진. 제목부터 의미심장하다. 이야기 주인공의 이름을 제목으로 삼는 경우는 흔하지만 ‘로테와 루이제’처럼 둘은 다른 이름이었지, 이렇게 같은 이름인 경우는 보지 못했다. 책을 읽기 전 작가가 과연 이러한 설정을 통해 이야기하고자 한 바는 무엇이었을까 추측해본다. 동명이인인 두 아이가 주인공일 것이다, 그리고 이 둘 사이에는 이름으로 이어지는 보다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이다, 작가는 어쩌면 그저 두 주인공을 빌렸을 뿐 하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야기 속에서 큰 유진과 작은 유진으로 불리는 중학교 2학년 같은 반의 두 아이는 예전에 같은 유치원에서 성추행이라는 엄청난 일을 겪은 과거를 공유한 아이들이다. 하지만 두 아이가 상처를 받아들이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큰 유진이가 전적으로 부모의 품에 받아들여져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상처를 치유한 반면 작은 유진이는 상처받은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부모의 태도로 인해 상처와 관계된 기억을 완전히 잊고 살아간다.


작가는 다소 작의적으로도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장치를 통해 청소년들이 각자 자기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고 성장해나가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가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한다. 무조건 상처를 덮어두기만 할 것인가, 괴롭더라도 상처를 응시하며 그 상처가 아물어 가는 모습을 지켜볼 것인가. 작가는 이 책에서 큰 유진이처럼 상처를 당당히 대면하는 방식을 택하며 작은 유진이의 기억을 이끌어 내고 상처와 맞닥뜨리게 한다. 작은 유진이를 감싸 안는 외할머니의 입을 빌어 이야기 되었듯 살면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처란 “다 알구, 그러구선 이겨내야”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무의 옹이는 몸에 난 생채기가 아문 흉터이듯이 누구나 자신의 옹이를 안고 기억하며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이라는 생각이다. 


두 유진이에게는 성추행이라는, 그리 쉽지 않은 고통이 이겨내어야 할 상처였지만 누구에게나 살면서 겪어야 할 상처와 아픔은 있는 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장소설이라 이름 붙여진 것처럼 또래 친구들보다 더 힘들게 상처를 이겨내야 했던 두 유진이의 이야기를 넘어 성장의 과정에 있는 우리의 아이들, 유진이 친구들 모두의 것이 된다.


그리고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끊임없이 상처받고 상처를 극복할 때만이 성장이 가능한 우리네 삶을 비추어 볼 때 청소년에게만 한정할 수 없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인지도 모른다. 물론 청소년 대상의 성장소설인 만큼 이 책은 오늘날 중학생들의 일상과 그들의 고민을 담고 있다. 학교와 교사에 대한 저항감, 이미 선택의 문제가 아니게 되어버린 사교육 현실, 이성친구에 대한 설렘과 만남, 여학생들간의 우정과 동류의식, 부모와의 갈등과 화해 등등... 하지만 비록 소소한 일상은 다를지 몰라도 그들의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은, 바로 어제의 나의 모습으로 느껴지는 까닭은 우리 역시 그러한 성장의 과정을, 성장통을 뼈아프게 겪었으며 지금도 끊임없이 상처를 딛고 성장하는 방법을 배워야 하기 때문은 아닐까.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는 것은 분명 외면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일이다. 작은 유진이가 그랬듯이 상처가 깊을수록 우리는 더욱 그저 없었던 일인 듯, 내게 중요하지 않았던 기억인 듯, 자신을 속이며 상처를 그저 덮어두고 잊고 싶어한다. 그리고 더러는 그 아픈 상처에서 허우적거리며 슬픔에 빠져있고자 할 때도 있다. 결국 우리 모두는 선택 앞에 놓여있다.  “살면서 받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을 자기 삶의 훈장으로 만드는가 누덕누덕 기운 자국으로 만드는가는 자신의 선택”이다.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이냐. 우리의 선택과 결단에 따라 우리는 큰 유진이가 될 수도 있고 혹은 과거의 작은 유진이로 머무를 수도 있다. 큰 유진이가 상처를 극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남자친구 건우와 헤어져야 하는 아픔을 또 한 번 겪어야했던 것처럼 상처를 드러내고 바라보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 과정을 통해 큰 유진이가 다시 한 번 성숙할 수 있었듯이 그 열매는 분명 아름답게 주어질 것이다. 진주조개가 몸 안의 돌멩이를 품어 자신의 분비물로 천 겹 이상을 둘러 찬란한 진주를 만들어내는 과정이 비록 아프기는 하지만 값진 것처럼. 진주를 만드는 것이 진주조개 본연의 일이듯 상처를 딛고 한 걸음씩 성장해가는 것이 어쩌면 우리 존재 본연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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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29 19:4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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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냐 2005-09-30 2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우 중요하지만, 어려운 주제를 잘 풀었다는 생각을 하면서도....아이들에게 선뜻 내밀기 어려울거 같슴다. -,.-

2005-10-06 23:1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