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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식 룰렛
은희경 지음 / 창비 / 2016년 6월
평점 :
신작 출간과 함께 <비밀독서단>과 팟캐스트 <창비 라디오 책다방>에 은희경 작가께서 출연하셔서 더욱 관심이 증가된 책이었습니다. 은희경 작가의 이름은 많이 들어서 약간 익숙하지만 아직까지 읽어본 적은 없지만 <중국식 룰렛>이라는 제목 자체도 무척 호기심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방송에서 접한 은희경 작가의 모습은 아직까지 소녀의 분위기를 가지고 있고 약간은 푼수끼(?)가 있는 분이었는데, 팟 캐스트에서 언급된 작가님의 모습은 빈틈없는 비관주의자이고, 작품의 분위기가 무척 서늘하다는 느낌이라는 상반된 이미지를 가지고 계셔서 작가와 작품에 대한 궁금증이 무척 커지고 이 작품을 꼭 읽어보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읽어보고 나니 왜 제가 이 작가의 작품을 아직까지 읽어보지 못한 것이 억울할 정도로 작품들이 무척 마음에 들었습니다. 팟캐스트에 따르면 이 작품집에서는 그래도 세상을 살만한 곳이라는 느낌이 있어서 이전 작품에 비해 따뜻해졌단고 하니, 기존 작품이 더욱 궁금해졌습니다.
여류작가의 글인데, 여성의 느낌을 거의 받지 못할 정도로 분위기가 드라이하고 내용이 범죄를 다루지는 않았지만 하드보일드, 느와르 분위기가 느껴지는, 글자 그대로 차도남 (차가운 도시 남자)들의 이야기가 접할 수 있었습니다. 작품 중에서 <중국식 룰렛>은 운이 지배하는 듯한 인생의 모습, 하지만 인생은 그리 행운이나 불운이 전적으로 지배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는데, 그보다는 저에겐 작품의 소재에서 나오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대해 관심이 더욱 갔습니다.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입안에 머금자마자 향기를 내뿜으며 온몸으로 우아하게 펴져나간다는 싱글몰트 위스키에 한번 취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용품>과 <별의 동굴>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은 제 자신과 닮아 있어서 묘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등짝이 서늘한 느낌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소설들을 읽는다는 것이 제 자신을 학대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도 어쩐지 개운해지는 느낌도 드는 묘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이게 카타르시스인가 ?)
이 책을 읽다가 멋진 표현을 발견하기도 하였는데, 전에는 별로 느껴보지 못하던 것을 새롭게 경험한 것 같습니다. 몇 문장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어릴 때는 삼십대면 굉장히 늙은 줄 알았어. 이렇게 모르는게 많고 가진게 없을 줄은 몰랐지.
- 자신의 가방을 찾은 사람들은 짝짓기에 성공한 커플처럼 하나둘 그 자리를 떠난다.
- 습도가 높은 날씨는 유기물을 탐욕스럽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