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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을 남기는 글쓰기 - 쐐기문자에서 컴퓨터 코드까지, 글쓰기의 진화
매슈 배틀스 지음, 송섬별 옮김 / 반비 / 2020년 8월
평점 :
책을 읽는 내내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이야기하였던 인류는 무형의 스토리를 믿는 성향을 가지면서 수천, 수만, 수억의 인원이 동질감을 가질 수 있는 초연결성을 가진 존재라는 이야기를 떠올리면서 읽었다. 사피엔스에도 인류가 자신의 기억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글을 발명했지만 그 결과 자신의 사고가 글(언어)에 지배받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이 책에서 글쓰기의 목적은 다른 사람의 사고를 지배하기 위한 권력자들의 의도에서 발생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꾸준히 나오는 것이 인상적이다.
글쓰기가 대중화되지 않았을 때는 글을 쓰고 읽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극히 제한적이므로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대의 글은 모두 권력자들의 의지를 남기는 수단이라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한다. 현재 남아있는 고대의 문헌 중 대표적인 것이 성경의 의도도 결국 권력자의 의지가 담긴 것이며, 이에 대비하여 예수나 소크라테스 등의 성현들은 스스로 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지적도 인상적이다. 즉, 성현의 이름을 빌어 권력자들이 자신의 의지를 남긴 것이라는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와 관련하여 요한복음 1장1절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라는 말도 이와 연관되는 것으로 느껴진다. 이것을 신의 의지나 자연현상 원리로 해석할 수도 있고 위에서 언급한 것 처럼 권력자의 의지로 해석할 수도 있는데, 여기서 '의지'라는 개념은 공통적으로 포함되는 것이 인상적이다.
이러한 문헌 이전에 한자나 알파벳의 기원 등에 대한 저자의 분석도 재미있는데, 학창시절에 비웠던 형성문자 등의 개념을 오랫만에 접하여 흥미로왔다. 알파벳 등은 각각의 문자들이 결합하여 의미를 만들지만 한자는 글자 하나하나가 의미나 그 글자가 만들어진 원리, 스토리를 모두 이야기한다는 해석이 동서양 사고방식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 같아 흥미로왔다.
권력자의 의지가 담긴 글에서 글쓰기가 대중화되면서 (문학화되면서) 각 개인의 감정이나 느낌 등에 주목하는 스토리로 진행된 것도 흥미로운데, 한명의 권력자의 의지에서 모든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소재로 글쓰기의 대상이 바뀐 일종의 민주화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생각했던 것보다는 어렵고 생소한 내용을 다뤄 조금은 힘든 독서였는데, 미래의 글쓰기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지에 대한 내용도 있었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