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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약국
니나 게오르게 지음, 김인순 옮김 / 박하 / 2015년 11월
평점 :
스토리 자체는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인생에 대한 제 생각에 매우 큰 영향을 준 영화가 있습니다. 닉 니콜슨이 나온 <어바웃 슈미트>입니다. 몸 담았던 회사에서 퇴직한 슈미트는 은퇴하는 그 순간까지 자신은 인생을 열심히, 성공적으로 잘 살아왔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은퇴 후 한달 뒤 찾아간 회사에서는 걸리적 거리는 퇴물일 뿐이고, 갑자기 세상을 떠난 아내는 그 동안 바람을 피고 있었고, 자신의 자녀 등은 모두 인생 낙오자이었습니다. 이중 하나라도 자기 뜻에 맞게 바꿔 보려고 하지만, 다 실패하고 집에 돌아와서 발견한 자선기관을 통한 아프리카 어린이의 기부금에 감사하는 편지를 보고, 그것이 자기 인생에서 유일하게 보람된 일을 한 것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눈물을 흘리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저는 이 영화 이후로 이 영화속의 슈미트처럼 인생을 사는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발견하고는합니다. 자신은 직장을 위해,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국민이나, 국가의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일부 이익집단의 하인 노릇을 한 것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가치관도 소수집단의 이익이나 자신의 이기심을 교묘히 포장한 것에 불가한 것뿐인 인생을 사는 것을. 그런 인생을 사는 50대에 접어든 남자들의 모습을 볼 때마다, 훗날 그들이 누리던 조직에서 나오면서 그들이 느끼게 될 자신들의 가치관과 인생관의 붕괴를 생각하는 저는 비정상일까요?
위에서 언급한 슈미트씨처럼 모든 것을 망친 인생을 산 것은 아니지만, 이 소설의 주인공 페르뒤씨도 슈미트씨와 비슷한 (어쩌면 더한) 멘붕의 순간을 겪게 됩니다. 자신은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그의 여인 마농을 사랑했지만, 그녀는 갑자기 그를 떠나버리고, 그후 그는 <종이약국>이라는 선상 서점을 열어 책으로서 사람들의 상처를 달래는 생활을 하지만 정작 자신의 상처는 치유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흐른 후, 그는 그녀가 그를 떠날 시기 그녀는 죽을 병에 걸렸기 때문에 그에게 상처를 주지않기 위해 떠났어도, 세상을 떠나기 전 그를 만나기를 바래서 그에게 편지를 보냈지만, 그는 그녀의 편지를 20년동안 보지않아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내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사실을 알고 멘붕에 빠집니다.
아마도 그가 종이약국을 운영하면서 사람들의 상처를 책으로 치유할 떄 그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가 얼마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잘해주는 사람인데, 그녀는 왜 나를 버리고 갔을까'하며 20년간 그녀를 원망하며 그 세월을 보냅니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자신의 상처입은 자존심만 생각했을 뿐 그녀는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실상은 그가 그녀의 간절한 바람을 모른 척하며 그녀를 쓸쓸하게 세상을 떠나게 한 셈인데.
이 사실을 깨달은 페르뒤씨는 서점이 달린 배를 가동시키면서 자신이 숨어있던 종이약굿의 일상에서 나와 속죄의 여행을 떠납니다. 그 와중에 후속작을 내놓지 못해 고통받는 청년작가 조낭과, 20년간 자신의 여인을 찾아 해멘 쿠에노 등이 그 배에 함께 타고 자신들의 부서진 삶을 찾는 여행을 함께하게 됩니다. 초반부의 페르뒤씨가 받는 충격이 너무나도 강렬하여, 이들의 여행은 임펙트가 조금 약한 면이 조금은 있지만 '힐링'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줍니다. (저도 강신주같은 분이 싫어하는 이유 비슷하게 힐링 어쩌구하는 것을 그리 좋게 보지는 않았는데, 이 책에서 페르뒤씨가 체험하는 힐링하는 부분은 제 자신이 힐링되는 느낌을 받을 정도로 참 좋았습니다.)
하지만, 책의 마지막에 페르뒤씨가 마농이 남긴 편지를 읽고, 그녀가 남긴 모든 것을 발견하는 부분은 정말 아름답습니다.(직접 발견하시기를 바랍니다. ^^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가슴 속에 남아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끼게 해줍니다. 그와 함께 여행을 떠났던 조낭, 쿠에노 등이 계속해서 남은 인생을 함께 할 것이라는 결말도 흐뭇합니다. 역시 상투적인 표현이지만, 페르뒤씨와 함께 울고, 웃는 시간이 행복했던 책읽는 시간이었습니다.
<이 리뷰는 출판사나 작가와 전혀 상관없는 몽실서평단에서 지원받아 읽고 내맘대로 적은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