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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방
박완서 지음, 이철원 그림 / 열림원 / 2016년 7월
평점 :
박완서 작가의 천주교 서울주보에 실은 글을 모은 책인데, 주보에 실릴만한 믿음이 강한 신자의 글은 아닙니다. 오히려, 종교에 회의를 느끼지만, 어떤 이유로 그 종교를 버리지 못하는 지식인의 글이라고 생각됩니다. 글을 읽다보면 신앙심이 깊은 것이 아니라, 신앙자체에 회의를 느끼는 모습에서 어떻게 신앙을 가지게 되었는지도 궁금한 생각이 들 정도였는데, 민주화를 위한 정의구현사제단의 활동에 감명받고, 그 신부님들의 모습에서 정의, 또는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신앙을 가지게 되신 것을 알게되면서 작가의 마음을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즉, 작가가 매우 이성적인 사고에서 신앙을 선택하였기에, 오히려 신앙생활을 하면서 수없이 실망하게 되고, 신앙에 충실하지 못한 자신의 모습에 실망하기도 하는 모습이 글 속에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작가의 마음을 담은 글들을 보면,
"예수님을 닮은 어른은 참으로 드뭅니다. 있을 리가 없지요. 우리가 용의주도하게 죽였으니까요.",
"그 말씀만은 도저히 못 알아듣겠습니다.",
"주님도 편애를 하시나요",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이천 년 동안 어마어마하게 번성한 것은 바로 유다의 후손들이 아닐까요."
책의 후반부로 가면서 그런 과정 속에서 사람들이 아전인수하는 격으로 제 멋대로 해석한 신앙생활이 아닌, 진정한 예수님의 말씀을 발견하는 모습이 나타납니다.
"너희가 여기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주님은 늘 그러하셨듯이 여인의 딸도 주님의 권능으로가 아니라 에미의 믿음으로 고치게 하고 싶으셨던 거로군요.",
"내 친구는 그 일 못하는 파출부에 의해 처음으로 자기가 이 집안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걸 발견했다는 것이다.",
"세상을 구하려고 태어난 아기에게 효자노릇까지 강요하지 않음이 바로 마리아의 성모다움이었다."
어떤 설교에서 성도(신앙인?)와 종교인을 구분하던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박완서 작가는 신앙인이라기 보다는 종교인인 듯합니다. 삶을 살아가면서 그 사이에서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발견하는 모습이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었작가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작가님께서 세상에 남겨 놓으신 작품들을 찾아서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