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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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현재대로 놓아두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사회

부와 가난의 극심한 모순 그 팽배한 불공정을 기반으로

타인의 노동력을 예속시켜 착취와 억압으로 축적한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사회

이미 인구의 90%에겐 사유 재산이 폐지되어 있는 사회

이 사회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상품과 용역의 과잉 생산과 인구 폭발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자

전쟁을 통해 잉여 상품을 소진시키고 생명을 파괴해 잉여 노동공급을 줄이는 계획적인 대량 학살과 파괴를 통찰하고 폭로했기에 추방당한 스콧 니어링

자본주의의 소득과 분배의 불공정을 고발하고

타인의 노동에 기생해 사는 나태한 지배계급을 맹렬히 규탄했기에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대학 강단에서도 쫓겨나고

어리석은 동시대인들로하여금 감금당하고 묶였으나 강연과 토론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하고 100년여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마감한 사람

 

그가 존경했던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빈민가 인구조사를 자원하면서 빈민들의 지독한 가난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귀족 친구들이 그 처참한 빈민가 거주자들의 집세로 살아간다는 사실과 자기가 속한 상류층의 혜택이란 하류층의 노동에 기댄 것임을 알게 되면서 혁명적 저항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니어링도 상류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부자의 천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을 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도덕적 성찰은 자신의 기득권을 단호히 내려놓게 했다. 대신 끊임없는 비난과 반대와 질시의 대상이 스스로 되었으나 그러한 반응들을 창조적 사고와 행위에 따르는 희열의 대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내 생에 탈선과 패배는 있었으나 후퇴는 없었다고.

 

이윤을 남기는 경제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노동시장과 생필품 시장과 국가에 맡기는 것으로 판단하여 그는 자급농 생활을 하며 시장과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이런 실천적인 삶은 자본과 탐욕과 약탈을 기반으로하는 문화로부터 우리도 벗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소유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존재를 바탕으로하는 충만한 삶을 살다 떠난 그는 진정한 성자였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그의 아내 헬렌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이미 존경의 마음을 품었으나 이번 글을 통해 소박한 개인의 면모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사회에 날카로운 영향력을 발휘했던 선생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 그의 음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커다란 감동과 전률을 느꼈으며, 내가  따라야 할 좌표가 바로 이 지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며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난 이제야 존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진정 분별있고 확고하며 균형잡힌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거듭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 시대를 충실하게 살겠습니다. 당신께서 그러했던 것 처럼.

니어링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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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지 마라
곤도 마코토 지음, 장경환 옮김 / 나남출판 / 201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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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립학교가 80%를 점유하는 고등교육시장과 고액의 저질 교육을 강매하는 대학교육.평준화와 국립화라는 해법을 외면하는 교육 상황에 순응해야하는 것이 억울했다.

흙의 침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나 무경운 농법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지 않고 무분별한 화학비료 사용으로 흙의 힘을 뺐는 농업이 무한 지속되는 것이 두려웠다.

동물이 식품과 동의어가 되는 육류시장과 동물 사육과정에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등의 약품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살아있을 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하기조차 싫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빈부격차가 극대화되고,식량이 무기가 되고,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이것들보다 의학 산업. 이제 이것이 가장 끔찍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만큼 쉬운 것이 있을까.

 

암은 수백 년 전부터 인간의 몸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망한 후 해부해 보면 종종 발견되곤 했던 잠복암은 생전에는 아무런 증상을 발현시키지 않으며, 전립선의 경우는 40%,갑상선암의 경우는 10%의 빈도로 발견된다.

이런 암을 저자는 가짜암이라고 부르는데 암의 가장 확실한 특징인 전이능력이 없고 증상도 없어 정기 검진등으로 우연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기암 진단을 받고 방치하였는데 10년 후 재검진하니 여전히 조기암이더라는 사례도 있다.암 수술후 완치하여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이들은 그냥 두어도 상관없는 가짜암을 제거한 경우로 현재 의학에서 암 완치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단,항암제가 유효한 암도 있다.전체 암의 10%에 해당하는 급성 백혈병.악성림프종.고환종양,자궁융모종양,소아암등)

 

이런 가짜암들이 조기검진이나 정기검진을 통해 발각되어 수술- 항암제 -부작용 -사망의 수순을 밟게함으로서 두려운 존재로 바뀐다. 이는 오로지 발견해낼 수 있을만큼 의학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으로 현재는 1-2cm 크기의  암을 발견해 낼 수 있지만 앞으로 거침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작은 크기의 병소도 색출해낼 것이다. 그러면 암환자 예비군의 수도 증가할 것이고 조기암 발견률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암이란 일정 크기로 자란 후에 전이된다고 알고 있지만 저자의 추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이 능력이 있는 진짜암이라면 0.1mm에도 1000개의 암세포를 포함하고 있으며 원발병소가 생긴 후 혈관을 타고 바로 다른 장기로 전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 발견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짜암이라면 이미 전이될대로 전이된 상태이므로.

(자궁경부암은 1~4기 모두 방사선 치료 대상이며 전립선암은 진행도와 상관 없이 수술이 필요없다고 한다.)

 

조기발견률은 높아지지만 사망률에는 변화가 없다? 이건 무슨의미일까.

수술이나 항암제치료가 무효하다는 뜻이다. 의미없는 조기발견으로인해 남은 생을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통받다가 사망.이것이 현재 암치료의 기본 써클이다.

하지만 저자를 믿고 항암치료나 수술을 거부한 150여 명의 환자들은 마지막날까지 명료한 정신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했고, 임종 직전에 가서야 기력이 쇠하여 마른 나무에 나뭇잎 떨어지듯 자연스럽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는 학교의학이 제시하는 표준 암치료방법만을 집요하게 강요받았으나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알았다. 선택은 의사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머리로 해야할 것이다. 암치료 시장은 글로벌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암예방과 암연구에대한 정보 공유는 없다. 후자가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지만 전자에만 돈을 쏟아 붓는 근거는 명백하다. 반인간적인 자본의 논리. 

내가 좀더 일찍 이 책을 봤다면 내 아버지를 항암제 부작용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을텐데... 원통하고 원통하다.

 

'건강의 배신'이라는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의료 방사선 피폭의 위험성을 알게 된후 병원에 가게 됐다. 난 의사의 얼굴도 못본 상태인데 일단 X 레이부터 찍자는 말에 뒷목이 쭈삣했다. (지금 도망쳐야 되나? ) 거부의사를 표시했더니 이젠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기 같은 걸로 (아마도 방사선 기기로 짐작됨) 또 찍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더니 의사왈 여기 직원들 하루에 몇장씩 찍어도 아무 문제 없지만 못믿겠다면 할수 없지..라는 무식한 말을 한다. 헐~ 그뒤의 행태가 더 가관이다. 내가 내 병력을 얘기하려고 했더니 '다른 의사들이 말한 것 다 필요없고' 딱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와야 한다는 소통을 거부하는 의사들. 난 일어서서 그 병원을 나왔다. 정말 끔찍하고 아찔한 경험이었다. 용기가 없었으면 거금을 들이고 그 의사에게 처치를 받았을 것이다. 다음엔 이번보다 당당하게 거부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리라.

 

저자는 40년 경력의 의사로, 1980년대 중반, 당시 구미에선 15년전에 폐기처분된 할스테드수술법(유방절제술로 유방을 도려내는 방법)이 일본에선 일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 경악하고 의학계에서 매장 당할 것을 각오하고 정보를 공개했다. 의학계의 질시와 사회적 파장은 컸지만  유방온존요법의 보급으로 여성의 가슴을 지킬 수 있었다. 그후로도 의료정보 공개에 앞장서고 있으며 암치료에 관한 정보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 기쿠치칸상을 수상했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이란 책은 의료 전반에대한 경각심을 주는 반면 암과 싸우지 마라 이론적인 설명이 충분해서 더욱 설득력있었다.

 

1990년대 MMR(홍역 볼거리 풍진)접종이 자폐증의 위험도를 상승시킨다는 결과로 신문사설에서도 토론이 벌어졌고,당시 예방접종에 비판적이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부인이 막내 아이의 예방접종을 거부하자 의학계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으며, 또한 독일에서는 수두에 대한 의무접종이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개발도상 국가에서는 WHO가 수은을 여전히 방부제로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질병예찬>도 매우 흥미롭다. 질병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속하며 질병은 평형을 이루려는 육체의 시도라는 접근이다.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의료행태도 언급된다. 번역이 좀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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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에 갔다.

학기 초, 숨소리도 허락치 않았다던 그 수.업. 참관하고 싶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독보적인 권위 위에 서있다. 담당 학과목에 관한한 명쾌한 교수 능력, 아이들과의 화끈한 교감은 그녀에게 힘를 부여했고, 아이들은 빠르게 안정 되었다. 얼마전, 아침에 있었던 월드컵 중계는,응원도구를 든 그녀와 그녀의 교실을 열광시켰다고 한다. 난,그녀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그녀가 여러해 동안 체벌을 지속해 왔으며, 체벌 지속에 대한 당당한 선언도 했음을 전해 들었다. 놀랐으나,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규율과 규제에 묶여 생활하는 당사자들 눈앞에서 당당하기까지한 규율 위반, 체벌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이 은연중에 학습되고 있었다. 이는 학생들의 교정 교화를 위한 궁리가 배제된 나태의 자인 아닌가!? 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그녀가 가진 수업 능력과 교실 장악력이 오히려 체벌의 의미를 왜곡 전달하는 강력한 조건이 되고 있었다.

체벌 근절을 선언하는 학교. 체벌 사용을 공언하는 교사.

아이들은 그 간극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그 모순이 읽히지 않는가. 준법과 배려만이 아니라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하는 것 역시 윤리의 영역이라 했다. 어떻게 이 간극을 설명할 것인가. 합리화하고 말 것인가.

 

학교에 양성적인 통로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에 의해 끊임없는 분석당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노르웨이 교수들. (이는 공개적인 비판으로 인해 교수의 학점 보복 걱정따윈 없는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수요자에의 요구에 맞추어, 수요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수요자에게 편리한 형태로 공급한다는 노르웨이 대학의 분위기 만큼은 아니라도, 학년 말에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교사평가 외에 학기중 수시로 수업 현장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위의 박노자님의 글 속엔 - 자가용 없이 갈 수 있는 곳에 자가용 이용은 윤리 위반으로 취급되어 동료나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 있으며, 줄일 수 있는데도 안줄이는 소비는 부끄러운 낭비라는 관념등을 비롯해 노르웨이 사회의 가치가 다양하게로 조명되고 있다. 이런 사회 윤리들은 소비 중독과 과시 소비가 일상인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는 미덕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누리는 안락과 행복의 대가가 어느 약소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뒷받침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천시하고 약자를 괄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민중의 정치 세력화와 생활의식 개혁을 통해 기필코 근절해야 한다등등등 우리 사회와 세계의 오염된 흐름에 정의로운 제동을 걸어 준다. 최근 <박노자의 만감일기>,<거꾸로 보는 고대사>,<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등 박노자님의 책을 봤는데, 이 분의 해박함에 경기를 일으킬 것 같다. 시대와 공간의 칸막이를 해체하는 종횡무진적 사고는 진정 폭발적이다.)

 

최근,체육 수행 평가 결과에 대해 교사는 평가 근거 제시 없이 "그냥 넌 A. 넌 B 야" 라고만 반응했다고 한다.  A를 받은 당사자도 내가 왜 A 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난 니(수업중 가장 뛰어났던 친구)가 왜 B인지 모르겠다하는 평가. 존재하지 않는 평가 기준과 납득할 수 없는 평가결과.  이게 지금 내 아이들의 교실 현장이다.

수행평가는 수능시험이 아니지 않은가. 시험 당일 결과만이 유일한 측정 척도가 아니다. 수업 과정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으며 순도 높은 평가 근거는 이 관찰을 통해 수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고로움과 저항의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학생들의 진짜 능력을 평가하려는 열정있는 교사를 ,우리는 드물게 갖고 있다.

 

**큰아이의 학습 능력이 질적 도약을 하는 듯 싶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종전과는 다른 대응 능력과 비판력, 다양한 어휘 구사등등 잠깐씩 반짝임을 경험하곤 했었다. (단어를 몰라)오~~미쓰 코리아라고 외치며 응원하다가 친구들에게 맥락없는 웃음을 주며 뭇매를 맞기도 하고, "아직  이런 (한글)단어도 몰라?"라는 어이없는 장면들이 삐져 나와 내 아이의 정체 파악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증명하지만... 점차  변화가 감지된다. 지구력이나 시간관리 능력도 향상되었고, 나보다 월등한 자기 통제력까지 보여준다. 국어과목에 겁먹고, 어휘 면에선 정말이지 갈 길이 멀~지만, 자신이 자신의 취약 지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한다.

이제, 귀국 4년. 우연일까. 미국 생활 기간과 거의 일치되는 지점이다.

 

친구들과, 경쟁보다는 앎의 공유에 포인트를 두니, 무엇보다 학교 공부가 즐겁고, 친구들과의 교류는 최고의 에너지원이 된다. 너 공부하는 것 보면 전교 일등 같아...라고  친구들이 놀렸다는데, 학습 저효율이 명백한 상태였으므로 안타까운 맹목이 한동안 거듭된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아이의 언어와 사고력이 바닥 다지기를 마무리했나 보다. 부디 값진 결실로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표본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누구든지 혼자 공부할 수 있고, 경쟁대신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린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시험이 아이에게 얼마의 점수를 줄지는 모르지만 난, 아이가 교과 내용을 통합 재구성할 수 있는 정도까지 숙지했다고 판단했다. 까다로운 평가자인 나로서도 이번엔 아이에게 최고점 이외의 점수는 없다.  어제는, 큰 아이가 암기한 내용을 말로 읊고, 작은 아이가 체크해 주었는데, 4장 정도의 프린트물 분량 서술이 완벽했나 보다. 작은 아이는 언니를 향한 감탄과 존경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고,득달같이 종이와 열필을 찾아 들더니 상장을 하나 만들어 준다. '위 어린이는 공부를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라고 쓰고 큼직한 사각 도장도 그려 넣었다. 노력은 감동을 준다.

 

고등학교 선택이 코 앞이다. 고등 3년 그 기간이 대학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소진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내신이 고려된 하향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고교 생활이,정서적인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새파란 자유로 구가되는 삶의 마디가 되길 소망한다.

 

참,작은 아이는 가끔 재밌는 표현들을 잘하는데,

한번은 내내 같은 책을 들고 드러눕다 잠들곤 하는 애들 아빠한데 내가 말했다

"당신 책은 덮었다 폈다만 하는 책이네 ㅎ~~"

이때 작은아이가 불쑥 낀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그 책이야. 들고만 서 있고 보지는 않는 책!"

우하하하하~~

에게 최고의 비유 상장을 주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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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작은 것을 기다리는 시간 - 한 시골교사의 희망을 읽어내는 불편한 진실
황주환 지음 / 생각의나무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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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정말 강렬한 책을 만났다.  

 

학부모들이 말하는 공교육 부실이란 단지 사교육과 경쟁지 못하는 비효율을 말할 뿐이다. 학교 교사들이 몰입교육,수준별 교육을 한다해도 사교육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학이 원하는 것은 학력이 니라 남보다 앞아선 석차이기 때문이다. 모두 잘하게 된 영어,수학은 의미가 없기에 순서에 앞서기 위해 또 학원을 찾게 되어 있다. 이처럼 대학입시가 중등 교육을 지배하는 상황에서는 그 어떤 사교육 대책도 실패 할 것이다. 오히려 열심히 가르치고 채찍질 할 수록 전체 상황은 더욱 악화 될  뿐이다. 이는 몇 개의 먹이를 놓고 다람쥐들을 채찍질하면 모두 그 먹이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쳇바퀴 속도만 빨라지는 것처럼 말이다. p35

 

국립대학 통합 네트워크, 교장 선출 보직제, 패스 학점제 등 교육 현장에는 대안들이 많이 있다. 국립학교를 하나의 단일 학교로 묶어 입시 경쟁을 완화할 수 있으며, 일정 기간 근무한 평교사 중 교장을 선출하고, 교장은 임기후 다시 평교사로 돌아오게 하여, 교장을 승진 개념이 아니라 보직의 개념으로 바꿔 수평적 학교 문화를 만들 수도 있다. 또, 과열된 영어 교육의 경우도 일정 부분만 성취하면 더 이상의 점수가 필요 없는 학점제 실시로 진짜 필요한 이들만 사교육을 선택하도록 할 수 있다. 하지만 실행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 구조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이권과 자본은, 절대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합리적인 사회를 원치 않기 때문이다. 독점된 기득권이 지속되기 위해서 교육은 병리적인 상태로 유지되어야 한다. 조직의 근본이며  조직의 질적 변화를 일으켜 기존 체제를 위협할 수 있는 힘을 교육이 지녔기 때문이다.

국가는 지배계급의 대리자로 그들의 이익을 위해 교육을 지배한다...마르크스

 

사교육에의해 배설된 고득점자들을 모아 이른바 명문대로 배송하는 역할만 하는 특목고.  특목고의 위상은 학습효과라기 보다 선발효과로인한 허상일 뿐이며, 대학 또한 학문적 자립도 없고,국가 경쟁력도 없으면서 경쟁력있는 입시 선발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본격적으로 인재로 성장하며, 단련 할 수 있는 기회의 영역인 그 곳. 대학. 그 대학 교육의 부실에 대해 의문을 갖는 자, 어디있는가.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의 무한 증식. 형체 없는 시대악인 이들은 자본과 노동을 극단적으로 소외시켜 노동의 실체인 사회 구성원들에게 박탈과 무기력을 안긴다. 공정한 노동의 대가와 사회 공공성이 확보된다면 경쟁 교육 대신 각각의 직면 과업인 노동에 충실할 수 있다.

 

우리 교육의 문제는 가난과 노동임금 구조 개선 없이는 불가능하다. 경쟁과 공포가 기형적으로 증폭되어 한국사회의 교육문제 아니 입시문제는 부의 분배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노동의 대가와 임금차별과 권력독점을 외면한 그 어떤 교육 개혁도 말단 처방일 뿐이기에 교육은 이미 교육의 차원에서 개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교육은 정치의 영역이 된다. P62

 

소유와 증식만으로 향한 깊은 홈은 옆을 볼 수도,전체를 볼 수도 없게 만든다. 가난할 때는 돈을 벌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돈 버는 행위 자체가 자기에대한 존중감이자 타인에 대한 배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먹고 살만해진 다음에도 계속 부를 증식하고자 한다면 그건 바보거나 광인이다. 자연스럽지가 않기 때문이다. ...  물질적 풍요는 반드시 정신의 가치와 함께 가야 한다. 그래야 쉬임없이 만물을 낳을 수 있다. (나의 운명 사용 설명서. 고미숙 P47)  베푸는 것은 하느님과 같은 일이고, 쌓아두는 것은 지옥이라고 했다. 전체 맥락 속에서 문제를 해석하고 끊임없이 질문하고, 각성하며 성찰하고 선택하는 길만이 악의와 불의에 맥없이 복속하지 않는 방법이고 우리를 지키는 길이다.

 

***

 

일상은 끊임없는 선택을 요구한다. 필요에 의한 소비가 됐건 기호 소비가 됐건 물품의 선택에는 지나치게 신중하여 때론 피곤을 부르건만, 정작 중요한 가치 선택 앞에서는 기회의 존재 자체를 의식 못하는 듯하다. 경쟁적인구매만 있으며 그런 맹목에 참여하지 않는 이들을 희안하게 취급한다. 사교육. 그런 의미에서 내겐 희안하다.

물질이건 가치이건 대체할 무언가를 내가 이미 갖고 있다면 구태여 그것을 구매할 필요가 있는가. 서랍 속에 쓰던 연필이 많다면 연필은 살 필요 없고, 내가 떨어진 단추를 달 수 있다면 수선집의 도움은 받지 않아도 된다. 이것이 소비의 기본 원리 아니던가. 그런데 왜 교육면에서는 내부에서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색 없이 구매로 직행하여야 하는가 말이다.

 

초등생을 가르친 엄마라면 중학생도 가능하다. 이는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임을  경험을 통해 깨닫는다. 나의 지식은 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해결 의지가 있다.  엄마가 과제에 접근하는 능동적인 태도를 목격하는 순간, 지식 이상의 것이 아이들에게 옮겨 간다.  몰랐던 것을 안다는 것이 참으로 기특한 경험임을 아이들이 깨닫는다. 학이시습지 불역열호아.가 논어의 첫 줄을 이끌고 있는 이유와  인간에게 배움 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동력을 지닌 에너지는 없다는 것도, 우린 차차 함께 깨달아 갈 것이다.

 

금성 출판사의 과학 교과서의 경우가 요네하라 마리가 말했던, 한번 펼치면 덮을 수 없었다던 바로 그 교과서였다. 책 자체가 너무 재미있어서 우린 홀딱 반했다. 그에 비해 사회 교과서는 터무니 없이 허약하다. 이 시점에서,각 학교의 교과서 출판사 선택 주체는 누구인가라는 의문이 생겼다. 담당 교과 교사마저도 무가치함을 공공연히 언급하는 선택을 과연 누가 하고 있는 걸까.

하여튼, 나는 사교육을 선택하지 않은 덕분에 중학교 시기를 다시 살고 있다. 딸아이와 함께  나는 가족이 공유할 수 있는 범위 이상의 것을 공유하는 동료가 되었다. 시험 당일엔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전우를 혼자만 전쟁터에 보내는 심정이다. 아이에게만 그 시간의 압박을 혼자 감당하라고 하는 건 불공평한거 아닌가 생각이 들고...

 

현재,아이의 성적이 아주 뛰어나지는 않다. 하지만 사교육으로 만든 점수에서는 있을 수 없는 긍지를 얻고 있으며, 본인이 자신을 신뢰하고, 본인의 잠재성을 확신한다.  나는 학습 결과보다는 과정과 태도에 의미를 두기 때문에 성적엔 다소 편안한 편이다. 그저 아이가 지나게 될 각각의 시점마다 존재의 충만을 경험하며 통과하길 바랄 뿐이다. 사회적 통념으로 우리 삶의 질을 논하고 싶지는 않다.

 

아이가 중 3이고 비평준화 지역이기에 고등학교 입학 문제로 고민이 많다. 아이가 영어권에서 생활한 덕분에 영어 성적이 좋았고, 영어 원서 읽기에 꾸준히 흥미가 있었다. 그러던 중 토론식 수업과 교과외 다양한 활동,영어로 수업 진행등 아이가 선호하는 교육과정을 갖춘 국제고를 염두해 두었는데 .....전원 기숙제다. 여태 난 특목고들이 대부분 기숙제인줄 몰랐다. 학부모로써 이런 무신경이 있는가.

 

궁금해졌다. 특수고에 아이를 보낸 부모들에게.

그 연령대 아이들이 부모와 나누어야 할 교감과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배워야 할 시대적 감성은, 갈등 없이 포기 할 수 있는 가치였느냐고.  또 부모가 생활 속에서 가르쳐야 할 것들이 가장 많은 시기인데, 특목고에 보낸 부모들은 기숙제라는 강제에 저항감이 없었느냐고. 이런 고민을 특목고 학부모에게 털어 놨더니 그런 고민하는 사람 내가 처음이란다. '....'

그러던 중 고민을 덜었다.

지난 중간고사 영어 성적이 훌륭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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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하룻밤 전.후 달라지는 반말과 존대말등 불필요한 권력관계나 서열을 드러내는 영화 번역자들의 편협된 가치관. 순전히 손쉬운 통제만을 위해 존재하는 청소년 제약.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한다는 동성애 관련 시각. 악을 손쉽게 보여주기위해 선택하는 영화 속 악인들에게 설정되는 장애 등. 개별성 훼손이 일상화되어 있는 환경과 이를 읽지 못하는 무뎌진 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심각하게, 각성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황금률인 이러한 다양성 존중은 풍요로운 생태계를 위해 요구되는 유전자의 다양성과 꼭 닮아 있다.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선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비록 유전자 복제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복제닭 수준이어서 일단, 조류 인풀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은 전멸된다. 반면 야생 조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전체로 번지지 않고 그 바이러스에대한 면역력이 부족한 개체들 일부만 사라질 뿐 대부분의 개체는 살아 남는다. 이것이 건강한 진화의 방향인데 현재 인간은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는 유전자만 교배,비육한다. 

이 참사가 닭장 안에만 국한될까. 과학은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치환을 시도할 터인데, 질병 위험을 미리 제거한 맞춤 정자.난자나 장수 유전자등을 인간은 과연 거부할 수 있겠는가. 유전자 치환으로 인해 개체는 탁월해지겠지만 개체군은 취약해진다. 무엇이 연상되는가.

유전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탁월한 개체군은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동안에는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다.그러나 환경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 남는 개체군은 유전적 변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진정 섞여야 건강하다. (다윈지능. 최재천. p41)

DNA수선을 명백한 유전적 결함의 치료에 국한할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고 건강한 형질을 향상시키는 데까지 넓힐 것인지에 관한 문제. 또 하나의 파우스트적인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인구증가와 경제 성장의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우리를 좀먹는 위험한 행동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새로운 환경 윤리를 탐색할 것인가...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발작적인 멸종행위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완화될 수 있다.(통섭.에드워드 윌슨.P475)

모든 가임 여성이 한 자녀만 낳을 경우,현재 65억 인구는 이번 세기 중반쯤 10억이 줄어든다고 한다.지금 그대로 살면 90억으로 늘어난다....2075년이 되면 인구가 거의 반으로 줄어 34억이 되고 2100년이면 16억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인간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법원.검철에 대한 불신은 누군가 불공정하게 재판에 개입하고 있다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 불안은 내 쪽에서도 뭔가 손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낳습니다. 공격적으로 자기 이익을 구하는 청탁이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도 청탁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p153

 

재판 받는사람들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의 공정성이나 충분한 의사소통을 중시하지만,재판하는 사람들은 결과의 공정성과 과정의 효율성을 중시하는,철저히 공급자 중심의 틀을 가지고 있다. 또한,시민들은 을 잘 지켜야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하지 못한다. 즉, 법은 통제의 역할만 할 뿐 보호의 수단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20대의 판사,30대의 검사,40-50대의 변호사 순의 우리 소송 구조는 역순으로 재배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륜이 준 풍부한 경험의 수혜자가 나서서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법대에 앉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말이다.

판검사들이 언젠가는 개업을 하는 우리 법조계 구조는, 전관 변호사와 검사가 법률적으로는 상하관계가 아님에도 법조계 선후배로, 상하관계이다. 그나마 권력에 타성이 붙지 않았을 신임들이 투입되더라도 이미 고착되어버린 기득권 대열에서 이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연대만이, 물리적으로 좁은 법조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임을 체득하는 순응이 이어진다. 등등 이외에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법조인들의 입장이 소상히 담겨있는데, 그 곤혹스러움. 이해는 하지만 그 연대가 약자인 국민 절대다수에게 정의 대신 혼탁을 지불한다면, 법조 인맥이 없는 한국의 85.8%는 그 난처한 연대에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억울한건 분명한데 현행법체계하에서는 어쩔수가 없다'는 흔한 말...원래 올바른 법률가의 태도는 그런말을 하는 게 아니라 없는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그런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국회에는 억울함을 만드는 법체계라면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는게 맞습니다.(욕망해도 괜찮아 p262)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처럼, 만년설에 한 발의 총성처럼, 책임있는 도발로 새로운 대열을 만들어 보심은 어떨런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를 향한 갈망은 그 임계점에 넉넉히 다달았으니 법조인의 아름다운 대열 이탈은, 법이 약자의 보호라는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높은 지위에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원칙이 그들 대열의 동력원으로 자리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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