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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1
존 로빈스 / 아름드리미디어 / 2000년 7월
평점 :
절판
아이가 며칠 전 학교에서 기아 진행하는 기아 체험에 참여했다. 물통 운반하기,아동 노동 착취 재현 등 기아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된 듯하다. 배고픔의 고통을 함께 느끼자면서 그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학교는 침묵한다. 21세기 처럼 물자를 대량 생산, 대량 소비하는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풍요로운 세기에 왜 기아가 이토록 만성화되었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기아는 식량이 충분치 않아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란시스 무르라페와 반기아조직인 푸드퍼스트가 밝혀냈듯이 기아의 진짜 원인은 정의가 부족해서이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아를 해결할 만큼의 많은 곡물이 두 조각의 빵과 함께 사람들에게 고기로 제공될 미국의 가축을 사육하는데 매일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기아는 식량을 불공정하고 낭비적인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날의 미국 가축은 미국 인구 전체를 넉넉히 먹혀 살릴 수 있는 양의 5배나 되는 곡물과 콩을 소비하고 있다....미국인들이 육류 소비를 10%만 줄여도 1천2백만 톤의 곡물을 해마다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 양이면 해마다 이 행성에서 굶어 죽어가는 6천만 명을 먹이기에 충분한 양이다. p248
소에게 열량이 높은 곡물을 대량으로 먹여 비육시키는 사업은 1880년대 영국인들의 고기 취향에 의해 시작되었다. 영국 소비자들은 지방이 촘촘히 박힌 소고기를 원했고 이들의 입맛을 위해 소 생산과 때마침 남아돌던 옥수수와의 결합이 시도된 것이다.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 전환된 것이다.
1880년대 영국으로 수입되는 소고기의 90%가 미국산 소고기였으며, 영국인들은 막대한 양의 소고기를 소비하고 있었다. 당시,미국 서부 목축업자들이 영국 은행가들과 결탁하여 유럽-미국 축산단지의 창출을 위해 미국 토지의 40%를 식민지화 했으며, 오늘날 서부 방목지의 축산업자들과 축산회사들이 수백만 에에커의 공유지를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실상 미국인 납세자들의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잔디,세차 등 용수 사용 금지 조치가 소와 가축들의 사료 재배를 위한 용수 공급때문이라는 사실도.
인간의 식성이 어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우린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햄버거 하나에 작은 부엌 사이즈의 열대 우림이 들어있다고 연관지을 수 있는가. 진열대에 놓인 포장육을 보면서 그것이 한때 생명을 가졌던 소의 일부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가. 곡물로 키운 소의 고기는 방목지를 만들기위해 삼림을 불태우고, 사료를 위한 단일 작물 대량 생산으로 경작지를 황폐화.침식시키고, 사료 작물에 필요한 물 공급을 위해 지구가 수 억년간 품고있던 지하수를 지구 지층의 변화가 감지될 정도로 고갈시키고, 가축들의 분뇨와 오물로 수질을 오염시켜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수 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대가이다. 원인과 결과가 너무 멀어 우린 우리의 선택이 지닌 영향력을 가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의 사소해보이는 선택에 의해 작동되고있음이 드러난다면 자신의 영향력을 책임감있게 통제할 수 있는 개인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 책 <육식,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출간한지 5년만에 미국에서는 소고기 소비가 20%나 감소했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의 생명 윤리와 인간의 건강을 중심으로 변화의 필요를 논하고 있으나, 이보다는 지구를 혼수상태에 이를만큼의 부담을 주고 있는 육식 습관에 관한 피드백이 보다 강력한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 선택은 단순히 건강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지구 생명체 전체의 운명이 달린 문제임을, 육식이 식량 부족을 초래하고 불화를 일으켜 전쟁을 촉발시킨다는 통찰은 이미 소크라테스에게서도 있었다. 세계사 역시 육식 사회가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벌인 전쟁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 한다.
육식 선호 이외에도 기아의 근본적 원인은 구조적인 문제다. 아프리카 각국의 시장에선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등지의 채소와 과일을 동질의 아프리카 농산물의 절반이나 1/3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유럽 연합국들은 농업 생산 및 수출 보조금으로 3490억 달러를 써 자국 농업을 보호하며, 그로인해 과잉 생산된 자국의 식량을 싼 가격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필요로하는 농작물은 재배하지 못하고 유럽 기업이 필요로하는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농업은 유럽 연합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아프리카 농장에선 온가족이 15시간씩 악착같이 일하지만 최저생계 수준에도 못미친다. 농부들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재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조리한 사회 구조. 기아의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관리 받고 통제 받아야할 이들은 못산다고 질시받는 국가들이 아니라 그들을 순환적 종속구조 속으로 떠민 선진국이라는 야만 국가들이다. 은밀하게 식민화하는 동시에 기아 구호활동의 아름다운 노출.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인위적으로 떼어놓고 인류의 판단을 짓눌러거가며 약자를 구족적 폭력으로 무력화시켜 지배력을 공고히하며 한편으론 기아구호로 면죄부를 사겠다는 것. 업혀 있으면서 업혀있는 것이 미안하니, 내리는 것만 빼고 이외의 모든 방법으로 돕고싶다는 톨스토이의 언급 그 행태다. 인도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대, 딱히 내세울 만한 수출품 하나 없이 별볼일 없던 유럽은 수 백 년동안 식민 제국주의로 침략,약탈 ,살육,노예 착취를 기반으로 지금의 세련된 자본주의와 사회인프라를 구축했으면서 수치스런 역사에대한 속죄도 없이 그 비열한 관성 그대로 현재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에 빨판을 댄 채, 마치 식량부족으로 인해 빈곤과 기아가 발생하는양 인류를 농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자립성을 높이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저개발 국가의 개혁정책을 저지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칠레 아옌데 대통령,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대위의 피살은 이윤극대화의 원칙하에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생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누군가를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누군가를 가난뱅이로 만드는 방법과 정확하게 일하며, 내가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제 몫을 덜 갖고 있다는 의미다. 부는 부끄러워해야함이 마땅하건만 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이 추종하는 유일한 좌표가 되어있다. 그래서 잘 사는 나라들에겐 저개발 국가의 부패,방만,의존,수탈,기생,만성적 기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나 비참한 노동 착취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하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업을 파괴할 필요가 있다.'(<물건 이야기> p244) 저개발국가가 자급자족의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재앙이 되는 것이다. 기아의 유일한 해결책은 구호활동이 아닌 자급자족의 경제 뿐이기에 그래서 더욱 더 그 해법을 절대 넘겨줄 수 없는 것이고 해법에 다가서려는 기미가 보이면 즉각 처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들은 못사는 나라들에 기생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2초마다 죽어가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32번째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
음식에 쓰이는 동물들은 그냥 살해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자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 알게 되면서 나는 영원히 바뀌었다. p77
멸종과 기상이변 등 지구의 비명은 잦아지고 있다. 지구에 부담을 지우고,동물들의 극단적인 고통을 기반으로한 식습관이 지속된다면 지구가 제공했던 무상의 혜택은 전멸을 방불하는 파괴력으로 회수될 것이다. 물질주의를 기치로 구성원간 경쟁만을 유도하여 공존하는 생명에대한 관심을 제거해버린 21세기 자본주의. 그들이 여과시킨 정보는 배후를 지워버린 기아와 빈곤이라는 인류의 고통뿐이다. 그래서 기껏 할 수있는 게 고통을 함께 체험해보자는 일회성 행사뿐이다.
기아의 배후에대해 대중은 질문해야하며 그 질문만이 자본주의 신화아래 군림하는 이 사회의 야만적인 지배도덕을 재편하고 새로운 환경윤리를 모색하여 좀 더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의 선택을 도울 수 있다. 학교가 입을 열어 이러한 가학적인 자본주의 구조가 공개되고, 자신의 식품 선택이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 개인만이 자멸로 치닫고 있는 인류의 행보를 희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기아와 빈곤,지구 훼손에 일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다만 모르도록 통제되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올바름에대한 균형감각을 되찾고 생명에대한 고통을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자기 파괴적인 편리와 욕구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자발적인 구속을 선택하겠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의 행동뿐이다.
나는 이성을 책임감있게 사용할 것이며 내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