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차가운 손
한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항은 무모한 것이라는 끔찍한 깨달음을 얻은 나약한 어린시절. 더 끔찍한 것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몸에 불러 들였던 살들. 거구의 몸뚱에서 강제 추방당한 살덩이들은 완전 연소되지 않고 자신의 숙주에게 회귀하고자 집요한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살과 함께 괴멸할 것 같은 L.  

모든 외적 조건을 완벽하게 설계하는 E. 그녀가 의도된 쥔 주먹 속에 숨기고자한 결백한 원죄. 아름다움으로 방어하지만 견고한 껍데기 속에서 진짜 자아의 소멸을 자각하기에 흔들리고 불안정한 그녀 E. 

H...열띤 신체적 몰입을 필요로 하는 그 예민한 작업을 나는 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나는 내가 빚어내는 삼차원의 견고하고 육체적인 형태들을 통해서만 간신히 이 세상과 연결되어 나가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어쩌면 나에게 조각이란 해독할 수 없는 생의 비밀들을 두 손으로 빚어 냄으로써 마치 그것들을 체득한 것처럼 느끼게 하는 일종의 최면요법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p88 

H의 통찰과 몰입은 L과 E의 어느 지점이었을까... 

세 주인공들의 아픔과 상처가 그간 산만했던 나의 머릿속을 싹 비워 주었다. 이번 글을 통해 예민하고 긴장된 일상에서 한발짝 놓여날 수 있었으며, 긴장을 완화하고 조절할 수 있는 새로운 통로를 발견한 것 같아 무척 반가운 독서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나를 부르는 숲 - 미국 애팔래치아 산길 2,100마일에서 만난 우정과 대자연, 최신개정판
빌 브라이슨 지음, 홍은택 옮김 / 동아일보사 / 2008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대학시절 이삼십 키로그램의 배낭을 메고 지리산을 올랐던 경험이 에팔레치아를 트래킹하는 작가의 고군분투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벽돌이 되어가는 단단한 배낭을 지고 끝도 없이 올라 갔던, 45도는 거뜬해 보이던 돌계단에서의 후들후들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지금까지 난 그날의 배낭보다 무거운 뭔가를 만나지 못했다.   

미국 애팔래치아 3360킬로미터에 달하는 트래킹. 그 안에서 시간의 의미는 멈추었다. 어두워지면 자고 밝아지면 일어난다. 그 중간은 그냥 중간일 뿐이다. ..당신에게 요구되는 것은 그저 걸으려는 의지뿐이다....서두를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아주 오래,또 아주아주 멀리 걸었어도 당신은 항상 같은 시간과 장소에 놓은 존재일 뿐이다. 숲이다! 어제도 거기에 있었고,내일도 거기에 있다. 그야말로 광대무변한 하나의 단일성!  p118

국립공원 관리국의 실정에 대한 비판도 반복해서 지적하고 개탄하고 있다. 자연을 복원하기 보다는 주차장이나 캠핑카의 야영지를 만드는 등 자연에 문명을 덧칠하는 데 예산을 쓰고 있는 정책과 그동안 자연에 불필요하게 개입해 자연을 망쳐놓더니 이제 개입이 필요한 시점에서는 더이상 개입하지 않겠다고 하는 그들의 태도에 작가는 그들을 경이로운 존재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 같다.  

정확하고 세밀한 지도의 중요성에 대해 말하는데,

뉴욕 뉴저지 트레일 곤퍼런스가 제작한 이 지도는 숲은 녹색,물은 파란색,트레일은 붉은색,표기는 검은색의 4도 인쇄가 되어 있었고,분류도 이해하기 쉬웠을 뿐 아니라 척도에 따라 제작되었으며,연결되는 길과 보조 트레일을 모두 포괄하고 있었다. 지도만 보면 항상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있는 걸 즐겨 보라는 뜻으로 제작한 것 같았다......그동안 주위에 대해 아무 생각없이 무신경했던 원인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었다는 데서 기인한 것임을 깨달았다. 이제 드디어 내 위치를 알고 내 미래를 알 수 있으며 변화무쌍하지만,그래도 항상 파악이 가능한 지형을 걷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p300   

이 문장을 읽으면서, 이탈했걸랑 비교적 즉각 귀환할 수 있는 지도 한 장 나도 있었으면 좋겠네하고 히죽 웃었다. 내가 걷는 길과 나의 위치를 바로 파악하고 싶은 욕심이다. 가끔 지도의 마지막까지 걸었던 미래의 나가 지금의 나를 바라보고 있다는 상상을 해 본다. 그녀는 내게 충고할 것 같다. 걸어 온 길보다 남아 있는 길이 짧음을 매순간 상기하고 오늘을 씩씩하게 살아야 하는 게 살아 있는 이들의 사명이라고. 

2011년 2월 중반이다.  

가화만사형통이 금년의 나의 글귀인데, 잔소리 접기 실천만으로 내 남자의 부가가치가 극대화되었음을 실감했다. 그리고 핸드폰 머리에 쓰인 전화위복은 작은 변화에  요동치지 않도록 날 늘 보호해 준다. 허나 아이들에게만은 좀 더 긍정적인 반사대상이 되도록 오백 만 메가바이트 정도의 인내심은 기본으로 깔아줘야 한다는 사실을 매일 아이를 통해 되새김 받는다. 오늘 아침엔 봄방학이라 늦게 일어나고 싶은 큰아이가 샤워 부스 안에 앉아서 소변을 보는 것을 목격했다. 기겁을 했다. 변기에 소변을 보면 소리가 나서 자신이 깨어난 것을 엄마가 알 것이고 그러면 더이상 늦잠을 자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그런 상상할 수 없는 행동을 했다는 것. 정말 믿을 수 없다. 소리가 나는 걸 피하려고 했으니 샤워부스에 남아 있는 소변은 재수 없는 누군가가 무심코 밟게 된다는 얘긴데 그 재수 없는 누군가는 내가 될 확률이 가장 높다. 더 뜨악한 것은 오늘의 사건이 재범의  가능성이 높다는 것. 나는 매일 매일 내 용량이 턱없이 달린다는 위태로운 내 위치를 파악하며 위기감을 느낀다. 아으~괴롭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아웃라이어 - 성공의 기회를 발견한 사람들
말콤 글래드웰 지음, 노정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09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태어난 달과 하키 선수의 기량 사이에 상관관계가 흥미로웠다. 어린 시절의 몇 달은 신체적인 차이 뿐 아니라 사고능력에도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로 인해 단순히 성적에만 편차가 생기는 것은 아닐 것이고. 초등학교 초반에 학업에 잘 적응하고 선생님께 긍정적인 반응을 받은 아이들과 학업에 부딪히며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 아이들의 자존감. 그 질적 차이가 아이 전생애에 걸친 자존감의 수준을 결정할지도 모를 일이다. 성취의 기회를 박탈당한는 다는 것. 비난이 뒤따르고 부정적인 자아개념이 생긴다는 것. 다음 달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작은 아이때문에 1월생 하키선수들의 예는 내게 날카롭게 다가 온 통계였다. 작은 아이는 아직 한국말이 서툴다. 본인도 그것을 알고 있다. 분발해야 겠다. 

1만 시간은 대략 하루 세 시간,일주일에 스무 시간씩 10년 간 연습하면 도달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천재로 알고 있는 모짜르트도 초기 작품은 다른 작가들의 작품을 재배열한 정도의 수준이었고 현재 걸작으로 평가받는 협주곡9번은 스물 한 살 때부터 만들어졌다고 한다. 협주곡을 만들기 시작한 지 10년이 흐른 시점이다. 빌 게이츠도 어린 시절부터 밤을 새서 프로그래밍을 했으며,혜성처럼 등장한 것 같았던 비틀즈도 그들이 처음으로 성공한 1964년 까지 모두 1200시간을 공연했다고 한다. 성공한 이들에겐 열정이 있었기에 오랜 시간 기꺼이 노고를 축적했다.  

이후에 나오는 위기에 빠진 천재들,랭건과 오펜하미머의 결정적 차이,조셈 플롬에게 배우는 세가지 교훈은 모두 환경적인 요인에 지배된다는 이미 일반화된 아이템들이었다. 켄터키주 할란의 미스터리,비행기 추락에 담긴 문화적 비밀등은 문화적인 차이를 언급했는데 이 문화적 차이 역시 큰 의미에선 환경적인 요인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 마리타에게 찾아온 놀라운 기회는 본인의 노력이 부각되는 내용이었다. 

성공을 위해선 타고난 재력,가정 환경,결정적인 순간마다 찾아와 주는 운, 시대적 조건이 딱 떨어져야 한다는 결론을 위해 다양한 근거와 통계를 불러 왔지만 후반으로 갈 수록 내겐 다소 운명론적으로 읽혔다.  이 글이 성공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동기부여나 격려가 될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호미 - 박완서 산문집
박완서 지음 / 열림원 / 2007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세상을 바라 보는 선생님의 시선이 너그럽다. 시선마다 배어나오는 감사와 애정의 온화함을 글읽는 이에게 고대로 전해 주신다. 선생님 글이 갖는 힘은 이런 진심들인 것 같다. 자연의 질서와 그 속에 깃듯 일상을 향한 감사와 애정. 결핍을 문제삼지 않으니 그 부족함을 메우려는 치열한 시도가 자연스레 접힌다. 더불어 결핍 대신 내가 쥐고 있는 것들에 시선을 돌리니 이젠 나도 나눠야할 의무감을 가질만큼 자랐다는 걸 깨닫는다. 

우연하게도 내가 막 이 책을 덮었을 때 선생님의 부고를 들었다. 마침 토요일 저녁이어서 아이들과 애들 아빠가 모두 함께 있었다. 뉴스를 통해 그 소식을 듣고 아이들 앞에서 엉엉 울었다. 작은 아이는 내게 달려 들며 아는 친구냐고 물으며 엄마를 따라 함께 울어 준다. 다음날 뉴스에서도 작은 아이와 난 또 울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세상이 정지된 듯. 마비된 듯. 했었는데...  

익은 과일이 떨어지듯이 혹은 누군가가 거두듯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죽고 싶다. p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EO 안철수,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안철수 지음 / 김영사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편안한 필체로 전달되는 논리. 사업가로서의 도덕성을 넘어 애국심 방향이다. 오래전 안철수란 이름을 알게 된 순간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안철수 연구소에서 백신을 다운 받는 남편을 향해 정말 공짜냐고 몇 번 반문하고 확인했던 순간. 나를 의아하게 만들었던 주인공이 십여년이 지난 지금 세계적인 인물이 되어 등장했다.

그는 철저한 원칙론자이다. 그는 말한다. 원칙이 원칙으로 힘을 얻는 것은 원칙을 지킬 경우 수반되는 불이익을 감수할 경우라고. 일시적인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고자  한국의 백신시장을 외국에 넘길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원칙이었고 도덕이었다. 그는 우리가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으나 실천을 주저하는 도리나 원칙 앞에 흔들림 없는 결단을 내렸고 그 원칙의 힘을 바탕으로 세계적으로 영향력있는 인물이 되었다.  

관리자는 단순한 감시자나 감독자가 아니다. 관리자는 조직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인력과 자금등의 자원을 적절하게 분배하고 문제 해결이나 개선등을 통해서 조직의 부가가치 창출을 극대화하는 사람이다 p104  부모의 입장에서 난 아이의 부가가치 측면을 간과하고 성적에만 치우친 한 학기를 운영했다. 고득점이 아니라 한국식 학습 방법을 깨우치고,문제에 접근하는 방법을 익힐 수 있도록 느긋하게 아이의 변화를 확인시켜 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는데, 지난 학기엔 분명 순서가 뒤바뀌었고 그래서 결과도 참담했다. 성적이 아니라 아이의 변화와 성취를 부각시키는 일이 우선이었다는 늦은 뉘우침. 자주 한다. 요즘. 

그가 지적하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세계1위의 이면, 진실은 - 우리는 인터넷 망을 설치하고 운영하고 있을 뿐 외국 회사들에게 돈을 벌어주는 거대한 시장 노릇을 하고 있는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인프라를 구성하고 있는 장비들을 살펴보면 거의 대부분 외국산이며 국내기술로 대체할 수 있는 것도 거의 없다. 장비뿐만 아니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도 거의 대부분 외국산이다.  

인터넷 사용시간은 세계 최고수준이지만 내용면에서는 새로운 부가가치를 생성하기 보다는 소비적인 측면이 주류를 차지한다. 채팅,음란물,동영상 교환등 소비하고 즐기는 일이 인터넷 사용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정보 보호문제 정보보호 문제에대한 관심과 투자가 소홀한 우리나라는 주요 해킹 경유국가로 부상하게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p129 

그가 정부에 제시하는 바 - 지금은 지식 정보 산업에 대한 지원이나 육성책을 논할 때가 아니라 잘못되거나 비정상적인 환경을 정상적인 상태로 고치는 일이 더 절실한 시점이라는 인식을 해야한다고. 이 말은 또한 효율성 제고및 개선 측면에서 좋은 관리자는 새로운 프로세스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기존의 프로세스를 없애거나 줄여가는 사람이라는 사실과 통한다.    

감동적인 일화가 있다. 2003 이라크 전쟁 종군기자 강인선기자가 쓴 글이다. 귀국 여부를 놓고 갈등하는 강기자에게 부대총지위 대령이 한 말 "당신이 여기까지가 나의 한계다 라고 생각하고 돌아간다면 지금 그은 그 선이 평생 당신의 한계가 될 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옳다고 판단하는 일을 하십시오.도와드리겠습니다" 그녀는 '선택할 수 있어서 너무 괴롭다'고 생각했다.p246  원칙을 가지고 스스로 자기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힘들 수는 있지만 불행하지는 않다.p245 

책읽기에대한 언급도 있다. 인류가 쌓아 놓은 세상의 모든 지혜는 책 속에 있다고 믿으며,사람이 세상에 남기는 유일한 흔적이 책이라고 믿는다 p252   

모든 일이 이런 식이다보니 처음에 한 단계 올라서는 데 남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렸다.그러나 책을 통해서 기본원리를 정확히 익힌 덕분인지 얼마 안가서 가속도가 붙고 남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p253   

바둑,컴퓨터 의대공부 등 그가 익히고자 했던 것에 접근하는 방법은 오로지 책,책,이었다. 일단,많은 종류의 책을 읽고 내용을 알고 실전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방법. 안다는 것은 얕지만, 깨달음은 깊은 것이다.

책을 통해 이미 알고 있던 것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고,모르는 세상도 알 수 있고,책을 읽는 사람은 책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며 책읽기의 유익함과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조직원으로서 필요한 소양이 열거되는 기존의 자기개발서와는 달리 안철수님의 글이 내게 큰 각성과 숙고의 시간을 갖게 해 준 이유는, 그가 실천이 뒤따르는 보편타당한 원칙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긍정적인 자신감과 미소도. 책읽기를 마친 후에도 내게 오랜 시간 큰 파장을 준 즐겁고 긴장어린 책읽기 였다. 편리를 위해 원칙을 슬쩍,살짝 넘나드는 어른이 되지 않기로 다짐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