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수업에 갔다.
학기 초, 숨소리도 허락치 않았다던 그 수.업. 참관하고 싶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독보적인 권위 위에 서있다. 담당 학과목에 관한한 명쾌한 교수 능력, 아이들과의 화끈한 교감은 그녀에게 힘를 부여했고, 아이들은 빠르게 안정 되었다. 얼마전, 아침에 있었던 월드컵 중계는,응원도구를 든 그녀와 그녀의 교실을 열광시켰다고 한다. 난,그녀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그녀가 여러해 동안 체벌을 지속해 왔으며, 체벌 지속에 대한 당당한 선언도 했음을 전해 들었다. 놀랐으나,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규율과 규제에 묶여 생활하는 당사자들 눈앞에서 당당하기까지한 규율 위반, 체벌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이 은연중에 학습되고 있었다. 이는 학생들의 교정 교화를 위한 궁리가 배제된 나태의 자인 아닌가!? 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그녀가 가진 수업 능력과 교실 장악력이 오히려 체벌의 의미를 왜곡 전달하는 강력한 조건이 되고 있었다.
체벌 근절을 선언하는 학교. 체벌 사용을 공언하는 교사.
아이들은 그 간극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그 모순이 읽히지 않는가. 준법과 배려만이 아니라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하는 것 역시 윤리의 영역이라 했다. 어떻게 이 간극을 설명할 것인가. 합리화하고 말 것인가.
학교에 양성적인 통로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에 의해 끊임없는 분석당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노르웨이 교수들. (이는 공개적인 비판으로 인해 교수의 학점 보복 걱정따윈 없는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수요자에의 요구에 맞추어, 수요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수요자에게 편리한 형태로 공급한다는 노르웨이 대학의 분위기 만큼은 아니라도, 학년 말에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교사평가 외에 학기중 수시로 수업 현장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위의 박노자님의 글 속엔 - 자가용 없이 갈 수 있는 곳에 자가용 이용은 윤리 위반으로 취급되어 동료나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 있으며, 줄일 수 있는데도 안줄이는 소비는 부끄러운 낭비라는 관념등을 비롯해 노르웨이 사회의 가치가 다양하게로 조명되고 있다. 이런 사회 윤리들은 소비 중독과 과시 소비가 일상인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는 미덕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누리는 안락과 행복의 대가가 어느 약소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뒷받침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천시하고 약자를 괄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민중의 정치 세력화와 생활의식 개혁을 통해 기필코 근절해야 한다등등등 우리 사회와 세계의 오염된 흐름에 정의로운 제동을 걸어 준다. 최근 <박노자의 만감일기>,<거꾸로 보는 고대사>,<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등 박노자님의 책을 봤는데, 이 분의 해박함에 경기를 일으킬 것 같다. 시대와 공간의 칸막이를 해체하는 종횡무진적 사고는 진정 폭발적이다.)
최근,체육 수행 평가 결과에 대해 교사는 평가 근거 제시 없이 "그냥 넌 A. 넌 B 야" 라고만 반응했다고 한다. A를 받은 당사자도 내가 왜 A 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난 니(수업중 가장 뛰어났던 친구)가 왜 B인지 모르겠다하는 평가. 존재하지 않는 평가 기준과 납득할 수 없는 평가결과. 이게 지금 내 아이들의 교실 현장이다.
수행평가는 수능시험이 아니지 않은가. 시험 당일 결과만이 유일한 측정 척도가 아니다. 수업 과정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으며 순도 높은 평가 근거는 이 관찰을 통해 수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고로움과 저항의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학생들의 진짜 능력을 평가하려는 열정있는 교사를 ,우리는 드물게 갖고 있다.
**큰아이의 학습 능력이 질적 도약을 하는 듯 싶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종전과는 다른 대응 능력과 비판력, 다양한 어휘 구사등등 잠깐씩 반짝임을 경험하곤 했었다. (단어를 몰라)오~~미쓰 코리아라고 외치며 응원하다가 친구들에게 맥락없는 웃음을 주며 뭇매를 맞기도 하고, "아직 이런 (한글)단어도 몰라?"라는 어이없는 장면들이 삐져 나와 내 아이의 정체 파악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증명하지만... 점차 변화가 감지된다. 지구력이나 시간관리 능력도 향상되었고, 나보다 월등한 자기 통제력까지 보여준다. 국어과목에 겁먹고, 어휘 면에선 정말이지 갈 길이 멀~지만, 자신이 자신의 취약 지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한다.
이제, 귀국 4년. 우연일까. 미국 생활 기간과 거의 일치되는 지점이다.
친구들과, 경쟁보다는 앎의 공유에 포인트를 두니, 무엇보다 학교 공부가 즐겁고, 친구들과의 교류는 최고의 에너지원이 된다. 너 공부하는 것 보면 전교 일등 같아...라고 친구들이 놀렸다는데, 학습 저효율이 명백한 상태였으므로 안타까운 맹목이 한동안 거듭된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아이의 언어와 사고력이 바닥 다지기를 마무리했나 보다. 부디 값진 결실로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표본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누구든지 혼자 공부할 수 있고, 경쟁대신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린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시험이 아이에게 얼마의 점수를 줄지는 모르지만 난, 아이가 교과 내용을 통합 재구성할 수 있는 정도까지 숙지했다고 판단했다. 까다로운 평가자인 나로서도 이번엔 아이에게 최고점 이외의 점수는 없다. 어제는, 큰 아이가 암기한 내용을 말로 읊고, 작은 아이가 체크해 주었는데, 4장 정도의 프린트물 분량 서술이 완벽했나 보다. 작은 아이는 언니를 향한 감탄과 존경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고,득달같이 종이와 열필을 찾아 들더니 상장을 하나 만들어 준다. '위 어린이는 공부를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라고 쓰고 큼직한 사각 도장도 그려 넣었다. 노력은 감동을 준다.
고등학교 선택이 코 앞이다. 고등 3년 그 기간이 대학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소진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내신이 고려된 하향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고교 생활이,정서적인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새파란 자유로 구가되는 삶의 마디가 되길 소망한다.
참,작은 아이는 가끔 재밌는 표현들을 잘하는데,
한번은 내내 같은 책을 들고 드러눕다 잠들곤 하는 애들 아빠한데 내가 말했다
"당신 책은 덮었다 폈다만 하는 책이네 ㅎ~~"
이때 작은아이가 불쑥 낀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그 책이야. 들고만 서 있고 보지는 않는 책!"
우하하하하~~
너에게 최고의 비유 상장을 주고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