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 만병의 황제의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지음, 이한음 옮김 / 까치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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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깨 결린 환자에겐 파스 한 장 처방으로 증상만 없애주면 된다는 현대의학의 대증요법. 의료계의 이러한 윤리위반이  파스 처방을 다시 받기 위해 병원을 방문하도록 유도하는 올가미이며,  병원 재정을  이끄는 비열한 동력이 되고 있다.  생명에 관해 올바른 자세를 갖춘 의료인이라면 어깨 결린 환자에게 그 원인이 혈행장애라는 설명과 적당한 운동 처방으로 환자가 자신의 몸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을 안내할 수 있어야 한다. 환자가 원하는 것은 약에 의존하지 않는 치료에 관한 정보의 제공이다.  암이라는 질병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건만 암 발생 원인은 의도적으로 소거된 듯 암세포 제거에만 집중되어있는 암치료의 역사는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고 물을 닦아내는 듯한 이해불가한 처신으로 가득하다.  암만 없애면 된다는 결과 집중적 논리가 독점한 20세기의 암치료. 맹독에 의한 약살을 고가의 의료비를 지불하면서 무기력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재앙의 이 시대. 자연 치유력을 신뢰하고 자기만의 치유 방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의사와 대결하지 않으면 안되는 시대다.

 

책은 항암제, 그 독극물의 서양 역사.라 할 만하다.

화학약품들, 항암제 그 독물의 시작은 식민주의와 그 주요 약탈품! 면화에서 시작된다.

1850년대 인도와 이집트에서 대량의 면화가 영국으로 들어오자  방직 산업은 영국에서 호황을 누리게 되고 염료산업에서도 시간과 비용면에서 비효율적인 천연염료를 대신할 화학물질, 직물 염료가 등장했고, 이 화학 염료가 1878년 파울 에를리히의 동물 조직 염색에 사용되면서 의료분야에,인체에, 화학물질은 침습을 시작한다. 1차 대전시엔 에를리히에게 치료용 화학 물질을 공급했던 염료 공장들이 살인가스의 전구물질을 생산하는 대규모 화학공장으로 바뀐다.  호흡기 합병증, 피부 화상, 물집, 시력 상실등 단기적인 급성효과를 가진 머스터드 가스는 골수를 표적으로 삼아  특정 세포 집단을 몰살시키는 화학병기였는데,  전쟁후 남아돌던  이 가스가  DNA를 손상시켜 유전자 복제를 막아 분열하지 못하게한다는 특성이 발각되자  20세기의 항암제로 용도변경되기에 이른다.

 

대개의 항암제의 원리는 모두 같다. 암세포를 죽이는 독이다. 6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되어 있는 인간의 신체. 하나의 세포가 분열을 거듭하여 상보적으로 구조를 구축한 생명체. 거기에는 긴밀한 상호관계가 있으며 분리해 낼 수 있는 파트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의학은 생명에 경박한 권위를 행사하여 원인에 대한 이해없는 편협으로 매년 수십만 명의 암환자들을 암에의한 사망이 아닌 항암제로 사망케한다. 극단의 고통과 함께.

 

거대한 의약품 이권의 현대판 731부대.

현재의 항암제 치료는 근본부터 재검토하고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훗날 되돌아 보았을 때

나치의 학살보다 몇백 배라는 무서운 현실에 모두 전율하지 않겠습니까 

 

시타라빈.항암제  '환자에게는 링거나 주사등으로 주입한다'

첨부문서 취급상 주의사항 : ' 이 약은 세포 독성이 있으므로 조정시에는 장갑을 착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피부에 약품이 부착되었을 경우에는 곧 바로 다량의 흐르는 물로 씻어내야 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발견되었다.

                                                                                           

                                                                                             <항암제로 살해 당하다> p291 후네세 슌스케

 

이 책엔 암 치유에 관한 언급은 없다. 그렇다면 암 치유 사례는 없었던 걸까

100년 전,천연두나 말라리아 따위에 걸려  고열에 시달리던 암환자가 자연치유된 사례를 미국 외과의사가 학계에 보고했으며, 암은 열이 나면 낫는다 1960년대 논문들,  암은 빈번하게 자연치유되고 있다는 보고들,  여명 3개월 선고 받은 환자가 인플루엔자에 걸려  39도 발열이 1주일 지속되자 전신에 전이된 암이 사라졌다는 사례 등등 여러 증례들은 암환자를 진찰해 온 의사들에게는 일찍부터 알려져 있었다고 한다**  이 처럼 발열로 암이 치유되었던 사례를 바탕으로 치료법도 등장했었다.  마치 외부에서 이물질인 병균이 인체에 침입한 것처럼 꾸며서 인공적으로 면역계를 활성화 시켜 암을 치유하는 방법이다.

 

(용혈성 연쇄구균이라는) 세균 감염에 의한 전신 발열로  면역능력 높아져 암세포가 사멸하는 사례를 관찰하고, 그 용혈성 연쇄구균을 처리해 세력이 약한 균을 만들어 그것을 암치료에 이용하는 방법. OK-432을 개발했다. 1960년대에 훌륭한 약이 등장했는데 항암제라는 화학적 치료법의 진전만이 주목되고 OK-432처럼 자연의 힘을 이용하려는 방법은 소극적이라 간주되어 도외시 되었던 것이다.   <체온 면역력> 아보 도오루 p101

 

우리의 표층, 손톱이나 피부, 모발이 끊임없이 생성되면서 옛것을 밀어내는 것처럼 이런 현상은 신체의 모든 부위, 장기나 조직에서 뿐만 아니라 언뜻 보기에는 고정적인 구조인 것처럼 보이는 뼈나 치아에서조차, 그 내부에선 끊임없이 분해와 합성이 반복되고 있다. 시스템 내부에 불가피하게 축적되는 엔트로피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선수를 쳐 앞의 것을 파괴하고 배출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루돌프 쇤 하이머는 이를 생명의 동적평형상태라 밝혔다***  우리 몸은 끊임없이 부수고 만들고, 고장나기 전에 부수고 다시 만든다. 이런 무한 반복 작업에서 오류는 필연적인다. 돌연변이들, 즉 암. 이렇듯 암은 우리 성장에 내재한 결함이다.  그러나 39억 년에 걸쳐  최적화된 생명체인 인간의 몸은, 두 번의 독립된 돌연변이가 일어나야 불활성화 시킬 수 있는(즉 발암이 가능해지는) 종양억제유전자와  매일 생기는 3000 - 4000 개의 암세포를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림프구를 그 대비책으로 마련해 두었다.

암세포란 결코 강한 세포가 아니다. 자기힘으로 깨끗하게 고칠 수 있다.  암세포가 견딜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준다면.말이다. '암세포는 미토콘드리아의 수가 적고 해당계 중심의 대사를 하는 세포이다. 저체온과 저산소 환경에서, 살아 남고자 암세포가 된 것이다. 따라서 암세포가 살기 힘든 환경을 조성하려면 체온을 상승시켜 미토콘드리아의 기능을 부활시키면 된다.'<신면역혁명>아보 도오루.  우리 몸은 끊임없이 자극을 받지만 끊임 없이 평형을 이루고자 한다.  현대의학은 암을 없앨 수 있는 약물을 갖고 있지 않다. 오직,인간의 신체만이 암세포를 퇴축시킬 수 있다.

 

미래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화학물질을 두려워해야 한다.1950년대 마치 비타민 처방처럼 임산부에게 권장 투여했던 DES 호르몬은  임신시 이 호르몬에 노출되었던 태아들의 생식기 계통에 이상을 일으켰고(불임 등), 키를 키우고자 성장호르몬(사체의 뇌하수체에서 뽑아 냈다)을 투여받은 아이들은 잠복기가 20년에 이르는 진행성 뇌질환인 크로이펠츠 야콥병(소에게 발병하는 광우병)으로 사망했으며, 최근 폐경기 여성들에게 유행처럼 번지던 호르몬치료는 유방암, 자궁암 발병률을 높인다는 임상결과들을  쏟아 내며 슬그머니 사라지고 있다. 그런데 인체에 저지른 경박한 개입에 대한 책임은 누가 졌는가

호르몬은 강력한 위력을 갖고 있는 물질이다. 만약에 우리 세포가 호르몬에 민감한 만큼 우리의 미뢰가 맛에 민감하다면 우리는 수영장 물에 설탕 한 알을 풀어 놓은 것까지도 탐지해 낼 수 있다고 한다. 실험실에서 만들어진 어떤 화학물질도 안전한 것은 없으며, 의도한 한 가지 표적에만 작동할 수도 없다.  인간은 한 개의 세포에서 분열하여 상보적으로 구축된 구조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화학물질의 위험성을 뻔히 배제시킨 의료계는 의료주권을 내맡긴 개인을 대상으로 탐욕스런 도발을 지속하고 있으며, 최근엔 조숙증에 호르몬을 투여하는 테러를 저지르고 있다.  조숙증은 성장호르몬, 항생제 범벅인 육류, 유제품 섭취와의 그 인과 관계가 명확한데도 자본과 유착된 거대한 의약산업,축산업은 언론과 의료계를 침묵시킨다. 유제품 섭취만 제한해도 증상이 바로 완화된다고 충고하는 의사는 있으나  보다 손쉽게 건강하고자 하는 이들은 그리고 이미 약물 의존성을 체득한 신체는 반사적으로 약물을 선택한다.

 

상처를 낫게하는 최고물질. 세포성장인자인 생리활성물질이 상처에서 분비되고 있음을 안다면 조직 장애성이 있어 소독을 해도 상처를 통한 감염을 막을 수 없으며 오히려 상처 치유에 장애가 되는 소독약 사용을 중지할 수 있다.  세안 후 피부가 당기는 이유가 화장품 성분이 증발된 후 결국 피부세포에 결정상태로 남아 오히려 피부를 건조시키기 때문이며, 리프팅 효과가 있다는 화장품이 물과 피부 표면의 단백질을 응고시켜 피부를 조이기에 일시적으로 팽팽한 느낌을 주는 눈속임일 뿐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자본이 제공하는 서비스를 아무런 질문 없이 받아들일 경우 인간은 생명체가 아니라 그저 소비자일 뿐임을 쉬 간파할 수 있다.  의학의 타락과 침묵의 공모. 이 난폭한 시대에 우리는, 배우고 또 배워야만 생명의 흐름을 거스르지 않고 우리의 진짜 필요를 충족시켜 줄 대안을 모색할 수 있다.

 

모든 병은 낫도록 되어 있다. 이것이 38억 년에 걸쳐 진화한 인간의 능력이다.

늘어나는 항생제 수만큼 세균의 능력은 업로드 되고, 인간은 그만큼 쇠약해지고 있으나 현대 의학은 더욱 극성스럽게 약물을 투약하여 인간 고유의 치유능력을 짓눌러 생명체의 위엄을 훼손하고 있다. 앎의 독점을 해체하고 의료주권을 확보해야만 생기있는 삶을 영위할 수 있고, 자연스런 죽음을 맞을 수 있다.  부기, 열, 통증이 치유에 수반되는 필수적인 과정임을 자각하고 약물의 즉각적인 효과와 궁극적인 결과를 가려볼 줄 알고, 내 몸의 고유한 능력인 회복력을 믿으며, 생물학적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위해 또 자신을 지탱할수 있는 용기를 얻기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참고한 책들입니다 <친절한 생물학><생물과 무생물 사이> 후쿠오카 신이치, <체온 면역력>아보 도오루,<질병의 종말>데이비드 B 아구스. <나는 현대 의학을 믿지 않는다>로버트 멘델존,<상처 절대 소독하지 마라>나쓰이 마코토,<화장품이피부를 망친다>우츠기 류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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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식, 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 1
존 로빈스 / 아름드리미디어 / 200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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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이가 며칠 전 학교에서 기아 진행하는 기아 체험에 참여했다. 물통 운반하기,아동 노동 착취 재현 등 기아의 고통을 느껴보자는 취지의 프로그램이 진행된 듯하다. 배고픔의 고통을 함께 느끼자면서 그 고통이 왜 발생하는지에 대해 학교는 침묵한다. 21세기 처럼 물자를 대량 생산, 대량 소비하는 시기는 없었을 것이다. 이런 풍요로운 세기에 왜 기아가 이토록 만성화되었는가. 이상하지 않은가?

 

기아는 식량이 충분치 않아서 발생한다고 생각하지만 프란시스 무르라페와 반기아조직인 푸드퍼스트가 밝혀냈듯이 기아의 진짜 원인은 정의가 부족해서이지 식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기아를 해결할 만큼의 많은 곡물이 두 조각의 빵과 함께 사람들에게 고기로 제공될 미국의 가축을 사육하는데 매일 낭비되고 있는 것이다. 기아는 식량을 불공정하고 낭비적인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에 발생한다..... 오늘날의 미국 가축은 미국 인구 전체를 넉넉히 먹혀 살릴 수 있는 양의 5배나 되는 곡물과 콩을 소비하고 있다....미국인들이 육류 소비를 10%만 줄여도 1천2백만 톤의 곡물을 해마다 인류를 위해 사용할 수 있다. 이 정도 양이면 해마다 이 행성에서 굶어 죽어가는 6천만 명을 먹이기에 충분한 양이다. p248

 

소에게 열량이 높은 곡물을 대량으로 먹여 비육시키는 사업은 1880년대 영국인들의 고기 취향에 의해 시작되었다. 영국 소비자들은 지방이 촘촘히 박힌 소고기를 원했고 이들의 입맛을 위해 소 생산과 때마침 남아돌던 옥수수와의 결합이 시도된 것이다. 식량 곡물에서 사료 곡물로 전환된 것이다. 

1880년대 영국으로 수입되는 소고기의 90%가 미국산 소고기였으며, 영국인들은 막대한 양의 소고기를 소비하고 있었다.  당시,미국 서부 목축업자들이 영국 은행가들과 결탁하여 유럽-미국 축산단지의 창출을 위해 미국 토지의 40%를 식민지화 했으며, 오늘날 서부 방목지의 축산업자들과 축산회사들이 수백만 에에커의 공유지를 마음대로 이용하고 있으며, 그들이 사실상 미국인 납세자들의 보조금을 지급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미국인들은 거의 없다. 잔디,세차 등 용수 사용 금지 조치가 소와 가축들의 사료 재배를 위한 용수 공급때문이라는 사실도.

 

인간의 식성이 어떠한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 우린 명확하게 알지 못하고 있다. 햄버거 하나에 작은 부엌 사이즈의 열대 우림이 들어있다고 연관지을 수 있는가. 진열대에 놓인 포장육을 보면서 그것이 한때 생명을 가졌던 소의 일부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는가. 곡물로 키운 소의 고기는 방목지를 만들기위해 삼림을 불태우고, 사료를 위한 단일 작물 대량 생산으로 경작지를 황폐화.침식시키고, 사료 작물에  필요한 물 공급을 위해 지구가 수 억년간 품고있던 지하수를 지구 지층의 변화가 감지될 정도로 고갈시키고, 가축들의 분뇨와 오물로 수질을 오염시켜 해양 생태계를 교란시키고, 수 백만 톤의 이산화탄소, 이산화질소,메탄을 허공에 배출시킨 대가이다. 원인과 결과가 너무 멀어 우린 우리의 선택이 지닌 영향력을 가름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이 우리의 사소해보이는 선택에 의해 작동되고있음이 드러난다면 자신의 영향력을 책임감있게 통제할 수 있는 개인들은 분명 존재한다. 이 책 <육식,건강을 망치고 세상을 망친다>를 출간한지 5년만에 미국에서는 소고기 소비가 20%나 감소했다는 사실이 바로 문제 해결의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책은 동물의 생명 윤리와 인간의 건강을 중심으로 변화의 필요를 논하고 있으나, 이보다는 지구를 혼수상태에 이를만큼의 부담을 주고 있는 육식 습관에 관한 피드백이 보다 강력한 변화의 동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음식 선택은 단순히 건강차원의 문제가 아니며 지구 생명체 전체의 운명이 달린 문제임을, 육식이 식량 부족을 초래하고 불화를 일으켜 전쟁을 촉발시킨다는 통찰은 이미 소크라테스에게서도 있었다. 세계사 역시 육식 사회가 가축을 사육하기 위해 많은 땅을 필요로 했기 때문에 벌인 전쟁들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한 한다.

 

육식 선호 이외에도 기아의 근본적 원인은 구조적인 문제다. 아프리카 각국의 시장에선 이탈리아,프랑스,스페인 등지의 채소와 과일을 동질의 아프리카 농산물의 절반이나 1/3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유럽 연합국들은 농업 생산 및 수출 보조금으로 3490억 달러를 써 자국 농업을 보호하며, 그로인해 과잉 생산된 자국의 식량을 싼 가격에 수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프리카인들은 자신들이 필요로하는 농작물은 재배하지 못하고 유럽 기업이 필요로하는 유럽 시장에서 소비될 수 있는 작물을 경작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의 농업은 유럽 연합에 의해 체계적으로 파괴되고 있다. 아프리카 농장에선 온가족이 15시간씩 악착같이 일하지만 최저생계 수준에도 못미친다.  농부들이 자신들이 먹을 식량을 재배하는 것을 방해하는 부조리한 사회 구조. 기아의 주범이 살인적이고 불합리한 세계 경제 질서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 왜 세상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

 

관리 받고 통제 받아야할 이들은 못산다고 질시받는 국가들이 아니라 그들을 순환적 종속구조 속으로 떠민 선진국이라는 야만 국가들이다. 은밀하게 식민화하는 동시에 기아 구호활동의 아름다운 노출.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인위적으로 떼어놓고 인류의 판단을 짓눌러거가며 약자를 구족적 폭력으로 무력화시켜 지배력을 공고히하며 한편으론 기아구호로 면죄부를 사겠다는 것.  업혀 있으면서 업혀있는 것이 미안하니, 내리는 것만 빼고 이외의 모든 방법으로 돕고싶다는 톨스토이의 언급 그 행태다. 인도와 중국이 세계의 중심이었던 시대, 딱히 내세울 만한 수출품 하나 없이 별볼일 없던 유럽은 수 백 년동안 식민 제국주의로 침략,약탈 ,살육,노예 착취를 기반으로 지금의 세련된 자본주의와 사회인프라를 구축했으면서 수치스런 역사에대한 속죄도 없이 그 비열한 관성 그대로 현재도 아프리카나 저개발국가에 빨판을 댄 채, 마치 식량부족으로 인해 빈곤과 기아가 발생하는양 인류를 농락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선진국들은 자립성을 높이고 사회정의를 실현하려는 저개발 국가의 개혁정책을  저지하는데도 적극적이다. 칠레 아옌데 대통령,부르키나파소의 상카라 대위의 피살은 이윤극대화의 원칙하에서만 작동하는 자본주의의 더러운 생리가 적나라하게 드러난 사건이었다. 

 

누군가를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누군가를 가난뱅이로 만드는 방법과 정확하게 일하며, 내가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누군가가 제 몫을 덜 갖고 있다는 의미다. 부는 부끄러워해야함이 마땅하건만 부는 이 시대 모든 이들이 추종하는 유일한 좌표가 되어있다. 그래서 잘 사는 나라들에겐 저개발 국가의 부패,방만,의존,수탈,기생,만성적 기아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사람들이 도시로 몰려나 비참한 노동 착취 공장에서 하루 종일 일할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에 처하게 하려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농업을 파괴할 필요가 있다.'(<물건 이야기> p244)  저개발국가가 자급자족의 경제를 스스로의 힘으로 이룩한다는 것이 그들에겐 재앙이 되는 것이다. 기아의 유일한 해결책은 구호활동이 아닌 자급자족의 경제 뿐이기에 그래서 더욱 더 그 해법을 절대 넘겨줄 수 없는 것이고 해법에 다가서려는 기미가 보이면 즉각 처단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잘사는 나라들은 못사는 나라들에 기생하고 있다.

 

어린 아이들이 굶주림으로 2초마다 죽어가고 있어요. 이런 상황에서 32번째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 저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세요? ......

음식에 쓰이는 동물들은 그냥 살해되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는 그 이상의 뭔가가 자행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게 뭔지 알게 되면서 나는 영원히 바뀌었다. p77

 

멸종과  기상이변 등 지구의 비명은 잦아지고 있다. 지구에 부담을 지우고,동물들의 극단적인 고통을 기반으로한 식습관이 지속된다면 지구가 제공했던 무상의 혜택은 전멸을 방불하는 파괴력으로 회수될 것이다. 물질주의를 기치로 구성원간 경쟁만을 유도하여 공존하는 생명에대한 관심을 제거해버린 21세기 자본주의. 그들이 여과시킨 정보는 배후를 지워버린 기아와 빈곤이라는 인류의 고통뿐이다. 그래서 기껏 할 수있는 게 고통을 함께 체험해보자는 일회성 행사뿐이다

  

기아의 배후에대해 대중은 질문해야하며 그 질문만이 자본주의 신화아래 군림하는 이 사회의 야만적인 지배도덕을 재편하고 새로운 환경윤리를 모색하여 좀 더 지속가능한 생활방식의 선택을 도울 수 있다. 학교가 입을 열어 이러한 가학적인 자본주의 구조가 공개되고, 자신의 식품 선택이 절대 사소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한 개인만이 자멸로 치닫고 있는 인류의 행보를 희망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다. 기아와 빈곤,지구 훼손에 일조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다만 모르도록 통제되고 있을 뿐이다. 인류가 올바름에대한 균형감각을 되찾고 생명에대한 고통을 공감하며 연대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나는 자기 파괴적인 편리와 욕구보다 지속 가능한 미래를 위한 자발적인 구속을 선택하겠다.

내가 변화시킬 수 있는 건 나의 행동뿐이다.

나는 이성을 책임감있게 사용할 것이며 내 뒤에 오는 사람에게 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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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콧 니어링 자서전 역사 인물 찾기 11
스콧 니어링 지음, 김라합 옮김 / 실천문학사 / 200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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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는 현재대로 놓아두고 부자는 더 부유하게 하는 것에 목적이 있는 사회

부와 가난의 극심한 모순 그 팽배한 불공정을 기반으로

타인의 노동력을 예속시켜 착취와 억압으로 축적한 부와 권력을 세습하는 사회

이미 인구의 90%에겐 사유 재산이 폐지되어 있는 사회

이 사회

자본주의

 

자본주의가 상품과 용역의 과잉 생산과 인구 폭발이라는 문제에 직면하자

전쟁을 통해 잉여 상품을 소진시키고 생명을 파괴해 잉여 노동공급을 줄이는 계획적인 대량 학살과 파괴를 통찰하고 폭로했기에 추방당한 스콧 니어링

자본주의의 소득과 분배의 불공정을 고발하고

타인의 노동에 기생해 사는 나태한 지배계급을 맹렬히 규탄했기에 위험인물로 낙인찍혀 대학 강단에서도 쫓겨나고

어리석은 동시대인들로하여금 감금당하고 묶였으나 강연과 토론으로 자신의 소명을 다 하고 100년여의 삶을 자신의 의지로 마감한 사람

 

그가 존경했던 톨스토이는 모스크바 빈민가 인구조사를 자원하면서 빈민들의 지독한 가난을 목격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자신의 귀족 친구들이 그 처참한 빈민가 거주자들의 집세로 살아간다는 사실과 자기가 속한 상류층의 혜택이란 하류층의 노동에 기댄 것임을 알게 되면서 혁명적 저항의 길을 걷게 되었다.

톨스토이와 마찬가지로 니어링도 상류층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많이 가지면 가질수록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에게 점점 더 많은 빚을 지는 느낌을 받았으며 부자의 천국은 가난한 사람들의 지옥을 딛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그의 도덕적 성찰은 자신의 기득권을 단호히 내려놓게 했다. 대신 끊임없는 비난과 반대와 질시의 대상이 스스로 되었으나 그러한 반응들을 창조적 사고와 행위에 따르는 희열의 대가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내 생에 탈선과 패배는 있었으나 후퇴는 없었다고.

 

이윤을 남기는 경제는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노동시장과 생필품 시장과 국가에 맡기는 것으로 판단하여 그는 자급농 생활을 하며 시장과 임금으로부터 자유로운 삶을 살았다. 그의 이런 실천적인 삶은 자본과 탐욕과 약탈을 기반으로하는 문화로부터 우리도 벗어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소유에 의존하는 삶이 아닌 존재를 바탕으로하는 충만한 삶을 살다 떠난 그는 진정한 성자였다.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그의 아내 헬렌의 목소리를 통해서도 이미 존경의 마음을 품었으나 이번 글을 통해 소박한 개인의 면모뿐 아니라,  20세기 초반 사회에 날카로운 영향력을 발휘했던 선생의 위대함을 알게 되었다 . 그의 음성이 그대로 전달되는 듯,커다란 감동과 전률을 느꼈으며, 내가  따라야 할 좌표가 바로 이 지점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삶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며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불행하게도 난 이제야 존경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진정 분별있고 확고하며 균형잡힌 성품을 지닌 사람으로 거듭나, 사회적 책무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이 시대를 충실하게 살겠습니다. 당신께서 그러했던 것 처럼.

니어링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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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과 싸우지 마라
곤도 마코토 지음, 장경환 옮김 / 나남출판 / 2013년 7월
평점 :
품절


 

 

사립학교가 80%를 점유하는 고등교육시장과 고액의 저질 교육을 강매하는 대학교육.평준화와 국립화라는 해법을 외면하는 교육 상황에 순응해야하는 것이 억울했다.

흙의 침식을 우려하는 목소리나 무경운 농법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지 않고 무분별한 화학비료 사용으로 흙의 힘을 뺐는 농업이 무한 지속되는 것이 두려웠다.

동물이 식품과 동의어가 되는 육류시장과 동물 사육과정에서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등의 약품이 일상적으로 사용되며 식탁에 오르는 고기가 살아있을 때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생각하기조차 싫은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 안타까웠다.

 

빈부격차가 극대화되고,식량이 무기가 되고, 생명의 존엄성이 훼손되고.

이것들보다 의학 산업. 이제 이것이 가장 끔찍하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만큼 쉬운 것이 있을까.

 

암은 수백 년 전부터 인간의 몸에 존재하고 있었다고 한다. 사망한 후 해부해 보면 종종 발견되곤 했던 잠복암은 생전에는 아무런 증상을 발현시키지 않으며, 전립선의 경우는 40%,갑상선암의 경우는 10%의 빈도로 발견된다.

이런 암을 저자는 가짜암이라고 부르는데 암의 가장 확실한 특징인 전이능력이 없고 증상도 없어 정기 검진등으로 우연히 발견되기 때문이다. 조기암 진단을 받고 방치하였는데 10년 후 재검진하니 여전히 조기암이더라는 사례도 있다.암 수술후 완치하여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이들은 그냥 두어도 상관없는 가짜암을 제거한 경우로 현재 의학에서 암 완치란 불가능하다고 한다. (단,항암제가 유효한 암도 있다.전체 암의 10%에 해당하는 급성 백혈병.악성림프종.고환종양,자궁융모종양,소아암등)

 

이런 가짜암들이 조기검진이나 정기검진을 통해 발각되어 수술- 항암제 -부작용 -사망의 수순을 밟게함으로서 두려운 존재로 바뀐다. 이는 오로지 발견해낼 수 있을만큼 의학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으로 현재는 1-2cm 크기의  암을 발견해 낼 수 있지만 앞으로 거침없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더 작은 크기의 병소도 색출해낼 것이다. 그러면 암환자 예비군의 수도 증가할 것이고 조기암 발견률도 늘어날 것이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암이란 일정 크기로 자란 후에 전이된다고 알고 있지만 저자의 추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전이 능력이 있는 진짜암이라면 0.1mm에도 1000개의 암세포를 포함하고 있으며 원발병소가 생긴 후 혈관을 타고 바로 다른 장기로 전이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조기 발견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진짜암이라면 이미 전이될대로 전이된 상태이므로.

(자궁경부암은 1~4기 모두 방사선 치료 대상이며 전립선암은 진행도와 상관 없이 수술이 필요없다고 한다.)

 

조기발견률은 높아지지만 사망률에는 변화가 없다? 이건 무슨의미일까.

수술이나 항암제치료가 무효하다는 뜻이다. 의미없는 조기발견으로인해 남은 생을 항암제 부작용으로 고통받다가 사망.이것이 현재 암치료의 기본 써클이다.

하지만 저자를 믿고 항암치료나 수술을 거부한 150여 명의 환자들은 마지막날까지 명료한 정신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했고, 임종 직전에 가서야 기력이 쇠하여 마른 나무에 나뭇잎 떨어지듯 자연스럽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했다고 한다.

 

우리는 학교의학이 제시하는 표준 암치료방법만을 집요하게 강요받았으나 이제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 글을 통해 알았다. 선택은 의사가 아니라 각자 자신의 머리로 해야할 것이다. 암치료 시장은 글로벌적으로 확대되고 있으나 암예방과 암연구에대한 정보 공유는 없다. 후자가 훨씬 경제적인 방법이지만 전자에만 돈을 쏟아 붓는 근거는 명백하다. 반인간적인 자본의 논리. 

내가 좀더 일찍 이 책을 봤다면 내 아버지를 항암제 부작용의 나락으로 떨어뜨리지는 않았을텐데... 원통하고 원통하다.

 

'건강의 배신'이라는 저자의 다른 책을 통해 의료 방사선 피폭의 위험성을 알게 된후 병원에 가게 됐다. 난 의사의 얼굴도 못본 상태인데 일단 X 레이부터 찍자는 말에 뒷목이 쭈삣했다. (지금 도망쳐야 되나? ) 거부의사를 표시했더니 이젠 작은 폴라로이드 사진기 같은 걸로 (아마도 방사선 기기로 짐작됨) 또 찍으려고 하는 게 아닌가. 내가 깜짝 놀라 벌떡 일어섰더니 의사왈 여기 직원들 하루에 몇장씩 찍어도 아무 문제 없지만 못믿겠다면 할수 없지..라는 무식한 말을 한다. 헐~ 그뒤의 행태가 더 가관이다. 내가 내 병력을 얘기하려고 했더니 '다른 의사들이 말한 것 다 필요없고' 딱 이렇게 말했다. 저자가 뒤도 돌아보지 말고 나와야 한다는 소통을 거부하는 의사들. 난 일어서서 그 병원을 나왔다. 정말 끔찍하고 아찔한 경험이었다. 용기가 없었으면 거금을 들이고 그 의사에게 처치를 받았을 것이다. 다음엔 이번보다 당당하게 거부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리라.

 

저자는 40년 경력의 의사로, 1980년대 중반, 당시 구미에선 15년전에 폐기처분된 할스테드수술법(유방절제술로 유방을 도려내는 방법)이 일본에선 일차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현실에 경악하고 의학계에서 매장 당할 것을 각오하고 정보를 공개했다. 의학계의 질시와 사회적 파장은 컸지만  유방온존요법의 보급으로 여성의 가슴을 지킬 수 있었다. 그후로도 의료정보 공개에 앞장서고 있으며 암치료에 관한 정보를 일반인이 알기 쉽게 소개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2년에 기쿠치칸상을 수상했다. '의사에게 살해당하지 않는 47가지 방법'이란 책은 의료 전반에대한 경각심을 주는 반면 암과 싸우지 마라 이론적인 설명이 충분해서 더욱 설득력있었다.

 

1990년대 MMR(홍역 볼거리 풍진)접종이 자폐증의 위험도를 상승시킨다는 결과로 신문사설에서도 토론이 벌어졌고,당시 예방접종에 비판적이었던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부인이 막내 아이의 예방접종을 거부하자 의학계는 상당한 심리적 압박을 받았으며, 또한 독일에서는 수두에 대한 의무접종이 실행되지 않고 있으며 개발도상 국가에서는 WHO가 수은을 여전히 방부제로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질병예찬>도 매우 흥미롭다. 질병은 근본적으로 인간의 본질에 속하며 질병은 평형을 이루려는 육체의 시도라는 접근이다.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의료행태도 언급된다. 번역이 좀 아쉽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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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 수업에 갔다.

학기 초, 숨소리도 허락치 않았다던 그 수.업. 참관하고 싶었다. 3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는 독보적인 권위 위에 서있다. 담당 학과목에 관한한 명쾌한 교수 능력, 아이들과의 화끈한 교감은 그녀에게 힘를 부여했고, 아이들은 빠르게 안정 되었다. 얼마전, 아침에 있었던 월드컵 중계는,응원도구를 든 그녀와 그녀의 교실을 열광시켰다고 한다. 난,그녀의 열정을 응원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그녀가 여러해 동안 체벌을 지속해 왔으며, 체벌 지속에 대한 당당한 선언도 했음을 전해 들었다. 놀랐으나, 그럴 수도 있으려니 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생각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규율과 규제에 묶여 생활하는 당사자들 눈앞에서 당당하기까지한 규율 위반, 체벌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이 은연중에 학습되고 있었다. 이는 학생들의 교정 교화를 위한 궁리가 배제된 나태의 자인 아닌가!? 에까지 생각이 이르렀다. 그녀가 가진 수업 능력과 교실 장악력이 오히려 체벌의 의미를 왜곡 전달하는 강력한 조건이 되고 있었다.

체벌 근절을 선언하는 학교. 체벌 사용을 공언하는 교사.

아이들은 그 간극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는가. 그 모순이 읽히지 않는가. 준법과 배려만이 아니라 부조리와 억압에 저항하는 것 역시 윤리의 영역이라 했다. 어떻게 이 간극을 설명할 것인가. 합리화하고 말 것인가.

 

학교에 양성적인 통로가 마련되었으면 좋겠다. 학생들에 의해 끊임없는 분석당하고,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노르웨이 교수들. (이는 공개적인 비판으로 인해 교수의 학점 보복 걱정따윈 없는 평가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기에 가능하다.) 수요자에의 요구에 맞추어, 수요자에게 필요한 지식을, 수요자에게 편리한 형태로 공급한다는 노르웨이 대학의 분위기 만큼은 아니라도, 학년 말에 이루어지는 전반적인 교사평가 외에 학기중 수시로 수업 현장에 대한 피드백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위의 박노자님의 글 속엔 - 자가용 없이 갈 수 있는 곳에 자가용 이용은 윤리 위반으로 취급되어 동료나 사회에서 배척당할 수 있으며, 줄일 수 있는데도 안줄이는 소비는 부끄러운 낭비라는 관념등을 비롯해 노르웨이 사회의 가치가 다양하게로 조명되고 있다. 이런 사회 윤리들은 소비 중독과 과시 소비가 일상인 우리 사회가 필요로하는 미덕이 아닌가. 또한 우리가 누리는 안락과 행복의 대가가 어느 약소국의 저임금 노동자가 뒷받침하고 있음을 인식하고, 노동자와 서민을 천시하고 약자를 괄시하는 사회 분위기는 민중의 정치 세력화와 생활의식 개혁을 통해 기필코 근절해야 한다등등등 우리 사회와 세계의 오염된 흐름에 정의로운 제동을 걸어 준다. 최근 <박노자의 만감일기>,<거꾸로 보는 고대사>,<우리가 몰랐던 동아시아>등 박노자님의 책을 봤는데, 이 분의 해박함에 경기를 일으킬 것 같다. 시대와 공간의 칸막이를 해체하는 종횡무진적 사고는 진정 폭발적이다.)

 

최근,체육 수행 평가 결과에 대해 교사는 평가 근거 제시 없이 "그냥 넌 A. 넌 B 야" 라고만 반응했다고 한다.  A를 받은 당사자도 내가 왜 A 인지 모르겠다고 하고, 난 니(수업중 가장 뛰어났던 친구)가 왜 B인지 모르겠다하는 평가. 존재하지 않는 평가 기준과 납득할 수 없는 평가결과.  이게 지금 내 아이들의 교실 현장이다.

수행평가는 수능시험이 아니지 않은가. 시험 당일 결과만이 유일한 측정 척도가 아니다. 수업 과정이 있다. 교사는 학생을 충분히 관찰할 수 있으며 순도 높은 평가 근거는 이 관찰을 통해 수집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수고로움과 저항의 위험을 감내하면서까지 학생들의 진짜 능력을 평가하려는 열정있는 교사를 ,우리는 드물게 갖고 있다.

 

**큰아이의 학습 능력이 질적 도약을 하는 듯 싶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종전과는 다른 대응 능력과 비판력, 다양한 어휘 구사등등 잠깐씩 반짝임을 경험하곤 했었다. (단어를 몰라)오~~미쓰 코리아라고 외치며 응원하다가 친구들에게 맥락없는 웃음을 주며 뭇매를 맞기도 하고, "아직  이런 (한글)단어도 몰라?"라는 어이없는 장면들이 삐져 나와 내 아이의 정체 파악이 호락호락하지 않음을 증명하지만... 점차  변화가 감지된다. 지구력이나 시간관리 능력도 향상되었고, 나보다 월등한 자기 통제력까지 보여준다. 국어과목에 겁먹고, 어휘 면에선 정말이지 갈 길이 멀~지만, 자신이 자신의 취약 지점을 잘 파악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한다.

이제, 귀국 4년. 우연일까. 미국 생활 기간과 거의 일치되는 지점이다.

 

친구들과, 경쟁보다는 앎의 공유에 포인트를 두니, 무엇보다 학교 공부가 즐겁고, 친구들과의 교류는 최고의 에너지원이 된다. 너 공부하는 것 보면 전교 일등 같아...라고  친구들이 놀렸다는데, 학습 저효율이 명백한 상태였으므로 안타까운 맹목이 한동안 거듭된 것이다. 그러나 드디어 아이의 언어와 사고력이 바닥 다지기를 마무리했나 보다. 부디 값진 결실로 친구들에게 긍정적인 표본이 되어 주었으면 한다. 누구든지 혼자 공부할 수 있고, 경쟁대신 함께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우린 더 많이 배울 수 있다는.

시험이 아이에게 얼마의 점수를 줄지는 모르지만 난, 아이가 교과 내용을 통합 재구성할 수 있는 정도까지 숙지했다고 판단했다. 까다로운 평가자인 나로서도 이번엔 아이에게 최고점 이외의 점수는 없다.  어제는, 큰 아이가 암기한 내용을 말로 읊고, 작은 아이가 체크해 주었는데, 4장 정도의 프린트물 분량 서술이 완벽했나 보다. 작은 아이는 언니를 향한 감탄과 존경의 눈빛을 거두지 못했고,득달같이 종이와 열필을 찾아 들더니 상장을 하나 만들어 준다. '위 어린이는 공부를 최선을 다했기때문에 이 상장을 수여합니다' 라고 쓰고 큼직한 사각 도장도 그려 넣었다. 노력은 감동을 준다.

 

고등학교 선택이 코 앞이다. 고등 3년 그 기간이 대학을 위한 준비 기간으로 소진되는 걸 원치 않는다. 내신이 고려된 하향지원은 하지 않기로 했다. 아이의 고교 생활이,정서적인 공감대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들과 새파란 자유로 구가되는 삶의 마디가 되길 소망한다.

 

참,작은 아이는 가끔 재밌는 표현들을 잘하는데,

한번은 내내 같은 책을 들고 드러눕다 잠들곤 하는 애들 아빠한데 내가 말했다

"당신 책은 덮었다 폈다만 하는 책이네 ㅎ~~"

이때 작은아이가 불쑥 낀다.

"자유의 여신상이 들고 있는 그 책이야. 들고만 서 있고 보지는 않는 책!"

우하하하하~~

에게 최고의 비유 상장을 주고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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