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유유정 옮김 / 문학사상사 / 200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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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십대 전후는 어떠했던가. 이 소설의 주인공 와타나베와 닮았던가. 고개 절래절래. 더구나 소설상의 배경인 1968년 전후라는 시기를 떠올리면 절래절래에 더욱 가속도가 붙는다. 

이십대 전후의 혼란의 시기를 통과하는 이들의 정체성이 주된 내용이다. 따뜻한 사랑보단 우울한 망설임 쪽이다. 주인공 와타나베, 기즈키와 그의 여자친구 나오코. 이 세 명에서 시작하여 선배 나가사와 그의 여자친구 하쓰미. 곧 미도리,레이코 등이 주인공 와타나베와 인연을 맺는 이들이다. 앞에 열거된 인물들 중 절반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데,주로 와타나베의 관찰자 시점으로 쓰여져서  그들이 떠난 이유는 전혀 설명 듣지 못한다. 짐작만 한다. 이유 없음이 당연한지도 모를 시기라고도 우겨본다.

처음엔 나가사와 때문에 와타나베가 혼탁한 길을 선택한건 아닌가 생각했었으나 와타나베는 나가사와와의 만남이 아니었더라도 충분히 자유롭게,책임과 무책임 중간정도에서 어중간하게 헤맸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게 남의 **을 왜 먹었냐고 물어보면 마침 내가 **이 먹고 싶었는데 거기 있어서 먹었다 뭐가 잘못된 거라도??? 이기심인듯하나 절박함은 있다. 허나 박탈에 대한 죄책감은 그다지 없다.

초반부엔 간직하고 싶은 표현들도 속속 나와서 뿌듯하게 읽어내려 갔으나 300페이지 정도부턴 아무 메모도 못했다. 더불어 글의 방향이 본격적으로 육체 해소 방향으로 잡혀 민망했는데,얼마전 자신있게 무라야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읽기 시작했다고 말하던 옆집 새댁의 얼굴이 떠올라 더욱 쑥스러워졌다. 누가 이 책을 빌려달라고 하면 뭐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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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오식당
이명랑 지음 / 시공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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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등포역 시장통. 그 곳에 판자때기 하나 세우는 것으로 경계 시늉만 해놓고 식구처럼,웬수처럼 살아내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네들의 턱 밑에 녹음기를 대 놓은 후 그대로 지면으로 옮겨 놓은듯 팔팔 살아 뛰는 현장 언어가 그득하다.

남의 일이라고 생각없이 먼저 뱉어 놓고 보는 상처말.이 입 저 입 떠돌아 다니다가 몇 켜씩 때를 입은 부푼말.가끔 들어 맞는 덕분에 점점 의기양양해지는 미신말. 자기 뱃속 채우려는 속 구태여 숨기려고도 않는 뻔뻔한 말. 언젠가 내 엄마에게서 들었던 말..너무 너무 지겨워 귀를 틀어 막고 싶은 쓸데 없는 참견말.

죽었다 깨어나도 흉내낼 수 없는 비굴함을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때나 들이대던 (p133) 이들,대부분 막무가내,배째,나 잘났어~ 를 삶의 무기로 살아가는 이들이 이 시장통에 빼곡히 모여 산다.

대체로 긴 문장이 많다.그리고 있어야 할 자리에 쉼표가 없어서 어떤 말을 수식하는지 가끔 되짚어 읽어야 하는 번거로움은 있었으나, 역시 말맛을 지대로 볼 수 있었던 글이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내 능력으론 찾을 수 없는,아귀가 딱맞는 감정들을 끌어 올릴수 있는 글은 역시 '우리글이야' 라는 아하!가 두둥실 떠오른다. 다만,그들의 내면에 대한 자세한 귀뜸없이 열거되는 얘기, 들리는 얘기들로 주로 이루어져서 좀 아쉽기도 했으나,시장통에 떠도는 이야기라는 것이 다 그렇거니 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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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스 이블 블랙 캣(Black Cat) 5
미네트 월터스 지음, 권성환 옮김 / 영림카디널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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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은 종잇장 뒤에 숨고 싶지 않다는 자존심에 기대어 오로지 침묵만으로 뇌사 직전의 명예에 호흡을 불어 넣으려던 제임스 로키어 폭스 대령. 그는 사랑하는 아내 에일사를 보내고 외로움과 상실감 비참함에 절어 자신을 삭이고 그 침묵과 함께 스러져 가고 있었다. 이 글은 에일사의 죽음을 풀어 간다.

진실이란 늘 그렇듯 떠벌이 허울 앞에서 몸을 움추려드는 소심한 녀석이라 그 주인을 찾아가기 까지 애를 어지간히 먹인다. '두꺼운 양털 달린 폴로 넥 점퍼에 묵직한 부츠 속으로 집어넣은 건빵바지가 모두 검은색이었다.' 그녀가 바로 키 크고 짧게 깎은 검은 머리와 갈색 눈동자를 지닌 영국 공병대 소속 장교 낸시 스미스 대위로 제임스 대령에게 에너지를 수혈해 줄 뉴 페이스. 제임스의 변호사 마크와 함께 시커먼 욕망의 정체를 밝혀 간다.

듣고 싶은 것만 들리고,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고 ...이런 것들을 단순히 자기 방어 기제로 해석해야 할까. 스트레스 넘치는 세상살이를 하자면 이런 필터 하나 갖고 살면 덜 피곤하겠으나 만약 범행 목격자의 증언이 이런 필터를 거쳤다면 멀쩡한 사람 여럿 잡고도 남을 것이다.

단순할 수 있는 소재를 조밀한 얼개로 몇 겹씩 가르고 묶어 정신을 쏙 빼놓는다. 또 중간 중간에 등장하는 지문인듯도 싶고 독백인 듯도 싶은 표현들이 찬라의 미소를 배시시 끌어 낸다. 가령 ' - 아이구 제임스 대령과 똑같군' ,  '-오 세상에' , '- 또 흑백 논리로군' 

544페이지.어지간한 사전만한 두께임에도 불구 한번에 말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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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밀밭의 파수꾼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3
J. D. 샐린저 지음, 이덕형 옮김 / 문예출판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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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차도 자기가 나오고 싶을 때만 나온다고 입이 댓발은 나오곤 하는 콜필드. 그럴만한 나이 열여섯을 까끌하게 지나고 있다. 그의 곁에 몇 안되는 천사 중 하나인 여동생도 말한다 "오빠가 싫어하는 것은 백만 가지는 될 거야.그냥 싫어 하고 있어"라고.

친구를 비롯한 주변인들에 대한 그의 신뢰도나 순응도는 거의 0%. 세상엔 맘에 안드는 것으로 둘둘 말려 있고,그 세상에 한 주먹 날려 쌍코피를 보고 싶은데 정작 코필드는 아직 너무나 초라한 열여섯일 뿐이다. 그가 뱉는 말이나 행동은 진행되는 그 순간만은 진정 진심이었는데,그 순간이 종료되면 바로 미친짓이라 치부되곤 한다. 그만큼 그가 걷는 시간이 혼동 속이라는 의미인가, 아예 처음부터 아무 의미 없는 행동들이었을까.

자기 자신조차도 바보 같은 짓인줄은 알고 있만 그가 진정 되고 싶은 것은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호밀밭같은 곳에서 위험에 처한 아이들에게 달려가서 얼른 도와주는 호밀밭의 파수꾼. 자신의 꿈에 대해 본격적으로 고민해 보지 않은 열여섯의 대답같다.

다시 한번 목표가 갖는 가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남이 정해준 목표가 아닌 자신이 설정한 목표만이 진정한 내적 동기유발을 가능하게 하고, 그러한 목표가 있을 때에만 방황을 간단히 거치고 자신의 방향을 잃지 않을 수 있음을...곧 목표를 발견해야 하는 아이의 어깨에 짐을 얹어 놓는 일은 없을 것이다. 적어도 다른 아이들은 다 하는데 내 아이도 해야하지 않을까 하여 휩쓸리는 일따위 말이다.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모든 선택권은 아이에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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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김훈 지음, 이강빈 사진 / 생각의나무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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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넘기면 드문드문 창이 열린다.그 창으로 본 자연엔 필터를 거치지 않아 날카로움을 그대로 간직한듯 한 햇살이 비어져 나온다.그 햇살 아래 가차 없이 드러나는 생명의 경이로움이 날 사무치게 흔들어 준다. 

내가 발 딛고 살고 있는 이 산하의 모든 자연이 내게 던지는 언어를 난 듣지 못하고 살고 있었구나 싶다.늙은 기자의 통역으로 난 자연의 편안한 순리를 퍼뜩 되새긴다.

봄에 언 땅을 뚫고 올라오는 파릇한 새싹의 생명력을 기특히 여겼건만,이런 막연한 생각 다른쪽에 진정 과학적이고 구체적인 해답을 흙이 쥐고 있었다.

....언 땅이 녹고 햇볕이 땅속으로 스며들어 흙의 관능은 노곤하게 풀리면서 열린다.봄에 땅이 녹아서 부푸는 과정들을 들여다 보는 일은 행복하다. 땅 위의 눈을 녹인 초봄의 햇살은 흙 표면의 얼음을 겨우 녹이고 흙 속으로 스민다. 흙 속에서는 얼음이 녹은 자리마다 개미집 같은 작은 구멍들이 열리고, 이 구멍마다 물기가 흐른다. 밤에는 기온이 떨어져서 이 물기는 다시 언다. 다음말 아침에 다시 햇살이 내리쬐어서 구멍마다 얼음은 녹는다. 물기는 얼고 녹기를 거듭하면서 흙 속의 작은 구멍들을 조금씩 넓혀 간다. 넓어진 구멍들을 통해 햇볕은 조금 더 깊이 흙 속으로 스민다. 그렇게 해서 봄의 흙은 헐거워지고, 헐거워진 흙은 부풀어 오른다. ......풀싹들은 헐거워진 봄 흙 속의 미로를 따라서 땅위로 올라온다.  흙이 비켜준 자리를 따라서 풀은 올라온다.

겨울을 밭에서 나는 보리는 이 초봄 흙들의 난만한 들뜸이 질색이다. 한창 자라날 무렵에 헐거워진 흙들이 뿌리를 꽉 껴안아 주지 않기 때문이다.그래서 흙을 이해하는농부는 봄볕이 두터워지면 식구들을 모두 보리밭으로 데리고 나와서 흙을 밟아 준다. 농부는 보리가 봄을 다 지낼 때까지 부풀어오르는 흙을 눌러 놓는다 p28-29

그의 자전거를 따라다닌 여행은 내게 우리의 숲과 강,길 등 내 옆에 없는 듯 있었던 순리를 경각시켜 주었다. 모두들 나름의 이유를 진리를 품고 그 자리에 있었던 것. 자연의 복원 능력앞에 인간은 제발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함을,인공이 얼마나 공포스런 퇴락을 가져오는지를 느끼며 고개를 숙이게 되었다. 제첩국 한 사발 속에도 작은 숲이 들어 앉아 있다고 말을 건네는 기자의 음성이 들린다. 그의 흔적을 따라 걷고 싶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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