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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님이 "학교에서 아보가드로의 법칙 안배웠어요? 멍 하네요." 하셨다. 
(쯧쯧, 맹꽁이들)이라는 환청이 따라 붙었다. 종종 경험한 패턴이었다.
그런데  스님이 농담을 잘하셔서 재밌었다는 어느 도반의 나누기를 듣고, 
내가 느낀 무안을 주는 스님은 농담 잘하는 스님으로 바뀌는 마법을 경험했다. 
아마도 내가 평소 배우고 싶어 했던 성정을 지닌 그 도반을 향한 호의가 주요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극적인 관점의 전환을 이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다. 단독 주택에 살 때인데, 
정원에 고라니도 오고 다람쥐도 오는 곳이었다. 
어느날  집 안에 새끼 손가락만한 작은 도마뱀이 들어와 깜짝 놀라 엄마야 호들갑을 떨었다.
그런데 갑자기 작은 아이가 허리를 굽혀 도마뱀에게 얼굴을 가까이 기울이더니 
"할로우" 라고 하는 거다. 
그 순간 징그럽고 무서운 도마뱀은 귀여운 생명체로 바뀌었다.
이렇듯 재밌는 스님과 할로우라는, 도처에 존재하는 마법의 언어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으로 무의식 중 조건화된 감정들을 분리시킨다는 생각이 든다,
관습적 사고를 해체해 지금을 정직하게 경험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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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일 죽는다 하더라도 나는 오늘 이 일을 할 것인가 '
이런 질문 하나 품고 살면 생이 얼마나 경이로울지, 하루가 얼마나 충만할 지.
특별한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한다는 것이 일상의 위대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 책을 주문하면서 마음을 나누고 있는 지인의 것도 셈에 넣었다.
전달의 순간, 그 연결의 감각만이 대가의 전부다.
고맙다는 반응의 기다림이 나누는 기쁨을 훼손한다는 경험이 쌓이다보니
나누는 그 행위 자체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가르침이 전제된 후의 깨달음이 아니라, 긴 체험을 통해 도달했기에 이러한 이치는 완전히 내 것이다.
비교적 이 영역에 한해 난 자유롭다.
그녀가 갖고 싶어하는 것이 책이라서 , 내 선택의 고민까지 덜어주는 그녀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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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하면 다 될 것 같은 그녀의 에너지를 발견하였고, 
카페에서 떡을 나누며 그들을 해석할 이해의 선을 여럿 그었고, 
필요로했던 오고 감이 있었던 M4403으로 순식간에 서초 투어를 마무리지었다
지금까지의 소통이 가상 공간에서의 일이 아니었건만 온라인에서의 그들을 확인하는 건 
새로운 차원으로의 진입처럼 설레였고 안도감을 줬다. 
특히 오래 그리다 마주잡은 4층 엘레베이터 앞 핑크의 주인공과의 감격이 가장 현실적인 기쁨이었다. 
그간 시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았던 온라인 수업의 편리함이 좋았고 고마웠다. 
그러나 오프 체험을 해 보니 온라인의 한계를 바로 알 수 있었다. 
우리가 나누는 것이 이론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온라인 방식은 더욱 불완전해 보인다. 
또, 대면 상황이 전제된 후 이루어진 온라인 접속에 비해, 
출발부터가 온라인일 경우는 우리가 상대에게 얻는 정보가 정서적 감도는 물론 사실의 정확도까지 떨어뜨릴 수 있겠다 싶었다. 
오늘의 확인은 지금까지 내가 마치 억양이 빠진 음성만 전달되는 것처럼 빈곤한 소통을 했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그래서 지난 학기의 나눔이 아깝고, 섣불렀던 판단은 부끄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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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여. 하룻밤 전.후 달라지는 반말과 존대말등 불필요한 권력관계나 서열을 드러내는 영화 번역자들의 편협된 가치관. 순전히 손쉬운 통제만을 위해 존재하는 청소년 제약. 내가 그렇게 살 필요는 없지만 다른 형태의 사랑이 존재함을 최소한, 이해는 해야 한다는 동성애 관련 시각. 악을 손쉽게 보여주기위해 선택하는 영화 속 악인들에게 설정되는 장애 등. 개별성 훼손이 일상화되어 있는 환경과 이를 읽지 못하는 무뎌진 우리의 인권 감수성은 심각하게, 각성이 필요하다.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황금률인 이러한 다양성 존중은 풍요로운 생태계를 위해 요구되는 유전자의 다양성과 꼭 닮아 있다.

오랜 세월 특별히 알을 잘 낳는 닭들을 가려내는 인위선택 과정을 거치는 동안, 비록 유전자 복제 기술에 의해 만들어지지는 않았지만 거의 복제닭 수준이어서 일단, 조류 인풀루엔자 바이러스가 닭장안으로 진입하기만 하면 모든 닭은 전멸된다. 반면 야생 조류 개체군은 유전적으로 다양한 개체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한두 마리가 감염되어도 전체로 번지지 않고 그 바이러스에대한 면역력이 부족한 개체들 일부만 사라질 뿐 대부분의 개체는 살아 남는다. 이것이 건강한 진화의 방향인데 현재 인간은 인간의 이익에 부합하는 유전자만 교배,비육한다. 

이 참사가 닭장 안에만 국한될까. 과학은 가까운 미래에 유전자 치환을 시도할 터인데, 질병 위험을 미리 제거한 맞춤 정자.난자나 장수 유전자등을 인간은 과연 거부할 수 있겠는가. 유전자 치환으로 인해 개체는 탁월해지겠지만 개체군은 취약해진다. 무엇이 연상되는가.

유전적으로 단순한 그러나 탁월한 개체군은 환경이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동안에는 성공적으로 영역을 넓혀 갈 수 있다.그러나 환경은 늘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변해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살아 남는 개체군은 유전적 변이를 풍부하게 지니고 있는 것들이다. 진정 섞여야 건강하다. (다윈지능. 최재천. p41)

DNA수선을 명백한 유전적 결함의 치료에 국한할 것인지 아니면 정상적이고 건강한 형질을 향상시키는 데까지 넓힐 것인지에 관한 문제. 또 하나의 파우스트적인 선택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인구증가와 경제 성장의 어쩔 수 없는 대가로 우리를 좀먹는 위험한 행동을 계속 할 것인가 아니면 우리 자신을 평가하고 새로운 환경 윤리를 탐색할 것인가...현재 우리가 저지르고 있는 발작적인 멸종행위는 우리의 선택에 따라 완화될 수 있다.(통섭.에드워드 윌슨.P475)

모든 가임 여성이 한 자녀만 낳을 경우,현재 65억 인구는 이번 세기 중반쯤 10억이 줄어든다고 한다.지금 그대로 살면 90억으로 늘어난다....2075년이 되면 인구가 거의 반으로 줄어 34억이 되고 2100년이면 16억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한다. 19세기 수준으로 돌아가는 것이다.(인간없는 세상.앨런 와이즈먼)

 

 

 

 

 

 

 

 

 

 

 

 

 

 

 

법원.검철에 대한 불신은 누군가 불공정하게 재판에 개입하고 있다는 불안으로 이어지고 그 불안은 내 쪽에서도 뭔가 손을 써야 한다는 강박을 낳습니다. 공격적으로 자기 이익을 구하는 청탁이 아니라 최소한의 방어를 위해서도 청탁이 필요한 상황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p153

 

재판 받는사람들은 결과 못지않게 그 과정의 공정성이나 충분한 의사소통을 중시하지만,재판하는 사람들은 결과의 공정성과 과정의 효율성을 중시하는,철저히 공급자 중심의 틀을 가지고 있다. 또한,시민들은 을 잘 지켜야할 대상으로 인식할 뿐, 현실적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제도로 생각하지 못한다. 즉, 법은 통제의 역할만 할 뿐 보호의 수단이 되어주지는 못한다. 

20대의 판사,30대의 검사,40-50대의 변호사 순의 우리 소송 구조는 역순으로 재배치되어야 하지 않을까. 연륜이 준 풍부한 경험의 수혜자가 나서서 현명하고 정의로운 판결을 위해 법대에 앉는 것이 상식 아니겠는가 말이다.

판검사들이 언젠가는 개업을 하는 우리 법조계 구조는, 전관 변호사와 검사가 법률적으로는 상하관계가 아님에도 법조계 선후배로, 상하관계이다. 그나마 권력에 타성이 붙지 않았을 신임들이 투입되더라도 이미 고착되어버린 기득권 대열에서 이탈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하여 연대만이, 물리적으로 좁은 법조사회에서 생존할 수 있는 길임을 체득하는 순응이 이어진다. 등등 이외에도 잘 드러나지 않았던 법조인들의 입장이 소상히 담겨있는데, 그 곤혹스러움. 이해는 하지만 그 연대가 약자인 국민 절대다수에게 정의 대신 혼탁을 지불한다면, 법조 인맥이 없는 한국의 85.8%는 그 난처한 연대에 면죄부를 줄 수 있을까...

 

억울한건 분명한데 현행법체계하에서는 어쩔수가 없다'는 흔한 말...원래 올바른 법률가의 태도는 그런말을 하는 게 아니라 없는 법리를 만들어서라도 그런 분들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것입니다. 국회에는 억울함을 만드는 법체계라면 바꿔야 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들어가는게 맞습니다.(욕망해도 괜찮아 p262)

 

바다를 향해 뛰어드는 첫 번째 펭귄처럼, 만년설에 한 발의 총성처럼, 책임있는 도발로 새로운 대열을 만들어 보심은 어떨런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의, 정의를 향한 갈망은 그 임계점에 넉넉히 다달았으니 법조인의 아름다운 대열 이탈은, 법이 약자의 보호라는 제 기능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 또한 단축할 수 있지 않을까. 높은 지위에는 도덕적 의무가 따른다는 원칙이 그들 대열의 동력원으로 자리잡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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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 완두콩은 꼬투리에서 터져 바닥에 떨어진 개체만이 유전자를 후손에게 전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이 수확할 수 있었던 콩은 꼬투리가 터지지 않고 매달려있던 돌연변이 개체였다. 이처럼 인간이 재배하게 된 작물들은 편리에의해 무의식적으로 선택한 돌연변이들이라는 재밌는 사실. 현재 쓰고 있는 쿼티 자판배열이, 초기 타자기가 나왔을 당시, 빠른 속도로 타자할 경우 글쇠가 엉켰기에 타이핑 속도를 늦추기 위한 의도로 배치되었었다는 사실. 유럽의 분열과 중국의 통일이 가져온 예상치 못한 역사등 흥미로운 소재들이 풍부하다.

기술은 발명된 이후에 용도가 발견된다든가,문명에는 우열이 있으나 문화에는 우열이 없다든가...

 

'올가의 반어법'에 등장하는 요네하라 마리의 친구들과의  실제 만남을 보고한 프라하의 소녀시대. 요네하라 마리가 잠시나마 혜택을 누렸던,면밀하게 계획하여 수업을 예술작품처럼 진행하는 알렉산드로브나 선생님과 개인의 재능에 대해 시기,경쟁 아닌 모든이의 재산으로 여기는 러시아의 사고방식. 그녀의 글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되지만 여전히 인상적이다.

인도인을 노예처럼 혹사시켜 생산한 아편을 청나라에 밀매하여 청나라의 경제와 사회를 파탄에 빠뜨려가며 은을 긁어 모으자 이에 대항하여 청나라가 수출 금지 조치를 내리니 아편전쟁을 일으켰고 합법적으로 불평등 조약까지 맺으며 지금의 세련된 자본주의 나라가 된 영국,아직도 남태평양에 식민지를 거느리고 있고 거기서 태연하게 핵실험을 하면서 안전하고 무해하다고 떠벌리는 프랑스,원주민 살육과 흑인 노예 착취로 사회 인프라를 정비한 미국 등 선진국이라는 나라의 그림자를 들춰준다. 문화 다양성에 대한 그들의 무자비한 독선을 꺼리낌없는 그녀의 억양으로 서술한 마녀의 한 다스. 두 권 모두 가볍고 개운하게 읽었다.

 

 실명하면 시각적 자극을 처리하던 뇌의 부분인 시각피질이 그냥 멈추는 것이 아니라 즉각 청각처리를 위한 회로로 채워진다는 뇌의 신경 가소성. 뇌의 재정비 능력등 알면 알수록 신체는 절대 대체불능 신비의 총체인데, 이런 뇌의 잠재력을 버리고 기계에 의존하면서 인간은,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특성인 사고력을 퇴화시키고 있다. 사소한 정보에 갈급을 심화시키는 환경 이면에 숨겨진 경제논리, 산만해짐으로 인해 인간만의 고유한 특성인 공감,열정이 점차 침식당하고 독창적인 사고로 도전하기보다 관습적인 생각과 방법만을 쫓기에 우리는 누군가에게 쉽게 제어 당할 수 있는 세계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지식이 될 수 없는 정보만이 부유한다. 

외부적인 자극의 폭격을 받고 있지 않을 때 뇌는 실제로 휴식을 취하면서 집중력이 회복 되는데 자연과의 단순하고 짧은 교류만으로도 인지 통제에 대한 진전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단지 고요한 시골 풍경 사진 한 장이 집중력에 대한 강력한 통제능력을 부여해 준다니 자연 속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효과적인 인지 기능에 있어 필수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누구든 사색이라는 회복 마법을 경험해 볼 수 있다.

 

 

 윤구병 선생은 너무나 바쁘다.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농사일들. 농한기 농번기의 구분 없이 줄이은 일거리에 나도 숨이 막히건만 마지막엔 개꼬리처럼. 그래도 행복하다...는.완료 불능인듯한 소망형은 농촌생활의 평안과 고요는 부서뜨리고, 고단함만 한껏 던지니 내내 맘이 무겁다.

도시 사회는 자급자족할 수 있는 생산 공동체를 안고 있지 못하므로 끊임없이 외부에다 빨판을 대고 기생하는 삶을 도모할 수 밖에 없으니 나라안의 생산 공동체를 식민화하고 나아가 더 큰 식민지를 찾아 국외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이는 제국주의적 생존전략을 취하던 역사의 고통을 상기시킨다. 

<잡초는 없다>와 내용 중첩이 과하고,시간적으로도 정돈이 필요해 보였다.

야마오 산세이 그의 시간엔 진정 여유와 자연,느긋함이 느껴진다. 헬렌 니어링도 오후 시간은 개인 자유시간 확보를 원칙으로 하는 일상을 추구 했는데 이분도 오전 시간을 그러한 지적 작업의 시간으로 늘 보장해 놓는다.

15년에 걸쳐 자란 나무가 불과 서너 번의 목욕탕물 데우는 데 쓸 땔감이 되어 처마밑에 쌓이는 풍경에선 허망무상함을, 자유란 하늘과 땅 그 자체의 생물과 무생물을 통해 드러나는 섭리를 통찰하는 데서 찾아온다는, 곧 자유란 곧 필연의 통찰(프리드리히 엥겔스)이라는 이해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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