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일 수 있는 여행을 다녀왔다. 곧 출국할 지인들. 다섯 가족 20명. 출발 일주일 전부터 추운 날씨 예보때문에 동행 여부 앞에 갈팡질팡 했었다. 그런 날 끌고 가려고 두 사람이 적극적인 공세를 폈더랬다. 맘은 물론 그들과 구속없는 시간을 부담없이 보내고 싶다 쪽이었지만, 5도 안팎의 흐린 날씨가 발목을 잡았었다. 그러나 결국 토요일 근무 마치고 하루 늦게 합류.
서 너 시간 빗속을 밟고 딩동 ~ 역시나 추워서 밖에 나갈 엄두를 못내고 16명이 집안에 감금되어, 식탁에 둘러 앉아 시간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우리 가족이 도착하고 비가 조금씩 멎으면서 일행 중 일부가 낚시를 나갔는데, 남편의, 팔뚝만한 송어를 낚아 오는 돌발 행보 덕분에 저녁식탁은 횟감과 낚시꾼 붕붕 띄워주는 말 말 말들로 풍성했다. 남편의 선전은 다음날에도 계속 되었는데, 다음날은 돔을 건져 올렸던 것. 두 번의 연거픈 수확으로 남편의 닉네임 강태공으로 만장일치. 참고로 남편의 성은 강. 실적은 저조하나 낚시 여행을 예사로 다녔던 한 동료에게 기세등등한 톤으로 남편이 하는 말. 낚싯줄 따라 살기를 느끼면 물고기가 접근하지 않거든요. 허허허. 묵묵히 사시미날로 회를 뜬 인물은 낚시에 열의 가득한 그 동료. 곧 자신의 수확물을 도마에 올려 놓은 날이 오겠죠.
10명의 아이들을 빼곡히 채워 보육원화된 식탁은 한 차례 설거지로 다시 셋팅. 엄마들도 식사 전이었건만 그 사실을 몰랐던 배가 몹시 고픈 아저씨들이 대강 식탁을 훑어주시고, 뒤늦게 회를 떠서 된장국과 스테이크로 채워진 세 번째 식탁에서 와인과 맥주도 올려 어른 모두가 저녁을 함께, 다시 맞았다. 이미 전 날 한 잔 돌렸으니,첫날밤의 피로와 한낮의 들랑 날랑,무료함에 지쳤는지 아저씨들은 배정된 방으로 유순하게 사라졌다. 방배정 당시 우리 식구에게 방 한개를 준다는 발표를 듣고 아저씨들의 폭발적인 불만의 함성이 있었다. 스위치를 누른 듯 동시에 나오는 항의의 목소리들. 이런 의외의 행동들 또한 낯선 공동의 공간에서 부벼 지내는 시간 속에서나 건져 올릴 수 있는 컷이 아닐까. 빙그르르...
엄마들과 와인과 맥주만 새벽 5시까지 남았다. 알콜 에너지가 많은 말을 끌어 내었는데, 에너지가 알콜인 만큼 횡설수설의 경계를 넘지 못했으니 지금 남아 있는 말은 '개별성의 훼손'이라는 두 어절뿐. 그리고 동료와의 포옹과 토닥임. 다 똑같아. 남의 떡이야.라는 그녀의 반복 재생되는 메세지. 마지막이란 이렇듯 실체 이상의 옷을 입혀준다. 언제 다시 이런 시간을 쓸 수 있겠는가. 미국에서 내가 가져가는 선물은 빌레로이가 아니라 바로 이런 유대인 것 같다.
부지런한 그녀가 8시경 아침을 열었고 덕분에 일찌감치 대식구의 아침과 체크아웃을 마치고 본격적인 여행의 명분을 찾아 출발. 차가운 날씨와 낚시,돔,게,뜨끈한 라면.
드문 드문 듣던 빗방울은 여행자의 등을 서둘러 떠밀었다. 날카로운 서쪽 햇살 속에 오스틴은 우릴 맞았고 우린 각자의 자리로 들어왔다.
2년여간의 미국 생활동안 가장 명랑한 페이지가 아닌가 싶다. 나를 객관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니,밖을 향한 시선에 생크림 한 숟가락 휘휘 저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