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 때 뉴스를 보니 배는 침몰했지만 99% 이상 구조된 것 처럼 보였다.

 

안타깝긴 하지만 사망 2명이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금 전 뉴스를 보니 오보였다.

 

실종 293명 !!!

 

참 정신이 아득해진다. 

 

저 배에 타고 있었을 부모들의 심정을 감히 감히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부디...기적처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자꾸 집에 전화를 걸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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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04-16 1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엄마한테 전화했어요..

BRINY 2014-04-16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을 보니...오전의 그 오보는 뭔지...오보를 보고 안심하고 있던 사이에 그 수백명들이 얼마나 공포에 휩싸였을지...정말이지 참...

하늘바람 2014-04-17 02: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체 오보 뭔가요 어떻게 그런 불쌍한 애들 어떡하지요
 

   <예방접종>

 

 기본목적은 다 같다. 

 아이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원한다.

 

 예방접종의 이유

 

1)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요구한다. ('푸코' 까지 가야 한다)

 

2) 남들도 다 한다. (남들이 당신 아이의 인생을 살아주진 않잖아.) 

 

3) 해서 해될 것 없다. (파스칼이 종교를 믿어야 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지. 그런데 '해서  해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는 가정은 왜 안할까? 그리고 그게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4) 의사가 어련이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당신 정말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 나같은 나쁜 남자들은 그런 걸 'X밥' 이라고 하고, 조금 덜 나쁜 사람들은 그런 걸 '호구'라고 한다.)

 

5) 나도 예방접종 다 하고 잘 먹고 잘사는데 (잘 먹고 잘 사는지는 모르지만 당신 아이들이 당신처럼 잘먹고 잘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

 

 *** 그리고 이게 가장 중요하다. 앞에건 다 썰이다.

 

사실 당신은 예방접종을 모른다.

의사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 

그냥 다 하는 것이라니까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7만원짜리 맞을 실래요, 4만원 짜리 맞으 실래요?" 만 묻는다. 그래서 "뭔 차이가 있는데요."라고 물으면 "별 차이는 없어요. 부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의학적으로 0.001 정도의 안전성 정도"

 

"네 7만원짜리요." 로 간다.

 

의학적으로 0.0001의 안전성이 무얼 뜻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뭐 이런거 바쁜 의사선생님들이 설명해줄리가 만무하다.

 

어떤 병원가면, 동시에 두 개의 주사를 맞으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한다. 물론 괜찮을 수 있다. 보편적으로 말이다.

 

어떤 사람들은 폭탄주를 10잔 먹어도 끄덕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1잔에 얼굴 벌개진다.

 

그러니까 당신 아이한테 10잔 먹을 수 있는 주량인지 아니면 1잔 먹고 쓰러지는지

한 번 예의상 물어보고

맞혀라. 그러면 된다.

 

그리고 당신의 아이가 건강한, 말하자면 그 보편적인 상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이런거다. 불임부부-죄송한 말씀이지만- 어떤 사람도 자기가 또는 상대가 불임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 처녀, 총각때 다들 그거 알고 결혼하나?  예를 들어, 내 정자의 활동성을 내가 측정해 봤냐?

 

그런데 어떻게 당신의 아이가 바람직하게도 아주 건강할 뿐만 아니라, 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단정할 수 있을까?  밥 잘 먹고, 똥 잘싸고, 잘 논다는 것이 증거가 되진 않을것 같다. 그건 현상적인 문제일 뿐 화학적 약물에 어떤 반응을 할 지 난 잘 모르겠다.

 

나도 지금 밥 잘먹고, 똥 잘 싸고, 잘 놀지만...정자 수가 지난 1년사이 108개가 줄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구?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잠시 삼천포 갔다 왔는데...

 

문제는 예방 접종에 대해 충분히 알고, 고민하고, 맞히라는 것이다.

맞히지 말라는게 아니니까 미루어 짐작하여 난리브루스 추지도 말고.

 너네 집은 어떤데라고 물어보지도 말고.

 

알고 선택하면 된다. 정답은 없다. 아는거 귀찮으면 그냥 전문가의 손에 넘기구.

 

아이들 이유식과 유모차 고민은 열라게 하는데 비해

예방접종이나 이런거는 너무나 국가와 전문가를

믿잖아.

그들은 고결한 순수의 결정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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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겨울,  오랜 만에 야구공 5개를 던졌다.

 

시속 100km이상 나오면 선물 준다는 이벤트에 현혹되고 만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야구에서 빠른 공으로 상대를 압도하던 소년 드팀전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파란 바구니에 담긴 타조알같은 야구공을 만지작 거렸다. '몸도 안풀고 던지면 분명 팔에 무리가 갈꺼야' 라는 울림이 마침표에 닿기도 전에 "아빠!! 화이팅! 우리 아빠는 100 넘긴다. 아빠 쌔잖아." 라는 아들의 목소리가 세방고리관을 때렸다. 아이들 옆에 있던 아내 역시 씨익하고 웃는다. '뭐람 저 웃음은?!' 

 

속으로는 '이거 쌔게 던지면 1주일은 고생할텐데'라는 말이 둥둥둥 거리고 있었고, 발은 이미 투구를 하는 위치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그래 파스 하나 붙이고 좀 뻐근하고 말겠지' 하는 20대나 생각하는 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 가짐으로 첫 구를 젓먹던 힘까지 다 해서 쏴-아 하고 던졌다.

몸 속에 있는 모든 혈액이 팔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아...욱"

 

88km...댕댕댕

 

바구니 속에는 아직 4개의 타조알들이 포크 댄스를 하듯 줄 맟춰 대기 중이었다.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는 심정으로 나머지 3개를 마저 던졌다.

 

88km를 넘지는 못했다.

 

마지막 공은 버리는 듯 던졌다. 팔을 절단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만화같은 공포감이라고 해두자.

 

병원과 한의원을 오고 가고 있는데  양한방 공통으로 "인대에 무리가 왔다." 는 의사면허도 없는 나도 내릴 수 있는 어마무시한 진단을 하얀가운을 탈탈 털며 내려주셨다.

물리치료와 침으로 통증을 잡고 있다. 생활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지만 특정 동작에서 아직도 팔이 결린다.

 

오늘 어깨에 침을 꽂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지금 산 시간 만큼 내가 더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활발하게 삶을 영위하지는 못할 것이다.

 

인생을 절반 정도는 산 셈이다.

 

지금부터 중요하다.

인생의 절차탁마를 통해 찾게된 삶의 진실이니까...

 

1) 지금 인생에서 만나는 것들의 진정한 아름다움,

  그 아름다움의 일회성을 지금 자각하고 간직할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2) 까불면 다친다.

   최소한 시간 지나면 쪽팔린다.

 

40년 넘는 시간 동안 겨우 이거 알았다. 우둔하니 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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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버라이어티를 보면 '허세'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허세'라는 단어가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님에도 의외로 잘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TV프로그램에서 이 단어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니 오히려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졸라 멋지게끔 '개시한다'라고 해주까...)

 

하여간 '허세'라는 단어는 음악처럼 직접적이어서 자막에 "아...이 형 허세는..." 할 때 마다 자막이 딱딱한 막대기가 되어 가슴을 쿵쿵 건드린다. 그러니까 '허세'라는 버라이어티 자막을 보면서 자기윤리적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사람이란게 졸라 약삭 빨라서,  웃자고 만든 버라이어티의 자막이 던진 윤리의 몹쓸 덫에 걸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주변 인근 10리에서 그 단어의 저인망에 걸리는 사람들이나 과거 행동들을 스캔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의 무기로 내 드라이브는 빠른 검사로,  타인은 정밀검사로 시행하는 거다.

 

 

그 뭐시냐...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인문병신학의 특징이다. 물론 어려운게 모두 병신학은 아니다. 어떤 건 어렵지만 파다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 그 점을 노린다. 어려운 것 처럼 보이면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허세. 결국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깊은 인문학의 범선에 무임승차. 인문병신학의 승차권 확보. (아-으 동동다리...)

 

누가 뭐라 할 지면 "유 노 왓 아 민" 하면 그냥 남들은 대충 묻어갈 수 있다. 그러다가 태클 걸리면 "왓 더 퍽..." 하면 그만.   

 

 

아...따뜻한 봄 날. 

벚 꽃이 진다. 

못 놀아 지랄병이 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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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출판계가 번역 문제로 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에서도 종종 있는 번역비평이 이번에는 유명한 작품의 유명한 번역가를 상대로 스캔들을-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 만들었다.

 

자극적인 제목 "우리가 읽은 <이방인>은 카뮈의 <이방인>이 아니다." 노이즈 마케팅의 간판을 제대로 걸었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최소한 성공적이다 싶다.

당장 나 역시 까뮈의 <이방인> 새 번역본을 구매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허핑포스트 '알베르 카뮈 번역 논쟁' :

  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9/story_n_5053660.html?ir=Korea&utm_hp_ref=korea#

 

 

새움출판사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미 지난해 부터 카뮈 연재글을 통해 번역비평이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http://saeumbook.tistory.com/

 

 

 

 

 

  새로운 번역본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김화영 교수의 민음사 번역본이다.

 

문화권력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화영-민음사 조합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전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쟁은 규모의 싸움이 될 때가

많지만

전투는 꼭 그렇지 많은 않다.

그리고 작은 전투의 성패가 판세를 바꿀 수도 있고...

 

 

 

 

프랑스어 번역의 abc도 모르는 독자이기 때문에 번역의 옮고 그름을 판단할 계제는 아니다. 번역이라는 것 역시 다른 예술 창작 과정과 유사하게 일종의 취사 선택 과정과 해석 작업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안다. 단지 해석상의 문제라면 양해수준에서 봉합될 수도 있다. 하지만 '해석상의 차이'와 '오역' 이 갈라지는 지점은 미묘하며 또한 중요하다.

 

강건너 불구경 하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 누가 이기고는 관심의 동심원 밖의 일이다. 이런 논쟁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느 풍토가 번역가에게, 출판사에게 일종의 내적인 규제 원리로 영향을 미친다면 더 좋은 번역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독자다.

 

25년 전 쯤 , 집에 있던 70년대 초반에 나온 문고본  카뮈의 <이방인>을 읽었다. 오래전이었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다. 태양 빛 때문이었나. 이 참에 다시 집어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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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4-03-31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정면 승부는 좀 멋진 것도 같아요...^^ 저도 멸치볶음 밖엔...

드팀전 2014-04-01 08:58   좋아요 0 | URL
전 멸치볶음도...ㅜㅜ 외적으로 보자면, 권위에 대한 도전과 노이즈 마케팅이니 정치적 올바름의 측면에서 보자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지요.

비연 2014-03-3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상당히 놀라운 도전이네요. 카뮈하면 김화영이고 민음사인 게 오래된 일이었는데.
어쨌든 한번 사서 볼 마음이 확 생기긴 합니다..

드팀전 2014-04-01 08:59   좋아요 0 | URL
그렇죠.ㅎㅎ 출판사 입장에서는 판매에 덕을 볼 수 있는 건 확실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