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늦은 밤 책을 보다가 허리도 뻣뻣해서 TV를 틀었다. BBC에서 만든 <빅뱅이전에는 무엇이 있었나?> 라는 다큐멘터리가 나왔다. 요즘 관심을 갖고 있는 틈틈히 보는 분야가 -교양 수준의- 수학, 물리학, 우주과학 등이어서 '어라'하면서 보게 되었다.  

질문은 프로그램 타이틀 처럼 당연하며 또 간단하다. 우주 탄생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빅뱅' 그 이전에 무엇이 있었나? 만약 우주가 '무'에서 나왔다면 도대체 어떻게 '무'에서 무엇이 만들어질 수 있는가?  <평행우주>의 저자 미치오 카쿠 교수가 던지는 질문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무'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답변이 달라질 수 있다고 한다. NASA는 우주상태에 준하는 실험실을 만들지만 완전한 '무'의 우주와는 다른다. 시간과 공간 같은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 '무'이다. 하지만 NASA의 실험실이 만든 '무'는 한계가 있다. 3차원 속의 '무'이기 때문이다. 뒤에 가서 그는 '무'를 '완전한 무'와 '전제된 무'- '물질이 없는 상태의 무' 로 나누어 정의한다. 이곳은 완전한 진공상태로 오로지 에너지만 존재한다.(더 이상 에너지의 성질에 대한 설명은 없으나 인간이 알고 있는 우주의 4가지 에너지로 추정된다.) 그리고 작은 충돌들의 결합. 그러다가 '빅뱅'이라는 대폭발을 맞는다. 어쨋거나 우주는 완전한 무에서 출발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두가지 '무'를 설정하는 방식으로 이를 돌파하는데 철학적 해결책으로는 가능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증명하는지는 다큐멘터리에 나와 있지 않다. 

 

  이후 설명되는 것이 가장 유명한 빅뱅 이론의 모순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나온 인플레이션 이론이다. 편평성과 지평선 모순의 해결이라는 것이다. 다큐멘터리 후반부로 가면서 '빅뱅의 반복 '같은 일종의 영원회귀하는 순환론적 우주 가설등도 등장한다.    

 

  다큐멘터리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제작되었지만 좀 더 공부 해보면 사실 쉽지 않은 개념들이다. 이론적 적합성의 수식까지야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교양 수준에서는 좀 더 알고 싶어서 과학책들을 많이 본다. 상대성 이론은 단단히 마음 먹고 꼼꼼이 보고 있다.  매우 흥미롭고 재미있다. 초등학교 때 부터 자연과 우주의 신비보다 사회와 인간의 구조가 궁금했던 나로서는 더더욱... 하지만 다년간 다져진 세속적 경향으로 인해 결코 우주론적 초월로는 가지 않을테니 염려마시라. 종교적 초월론과 함께 질색인 것 중에 하나가 그런 논리 철학이나 과학론적 초월론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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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전 10시 40분 오랜 기간 정들었던 자동차를 폐차장으로 실어 보냈다. 잠시후면 해체를 위해 폐차장 수술대에 오를 것이다. 

 지난 주는 폐차문제로 정신이 사나왔다. 화요일 자동차를 타고 창원에 갔다. 목적지를 앞에 두고 시동이 꺼졌다. 몇 년전에도 이와 유사한 일이 있었다.저속에서 rpm이 떨어지고 시동이 꺼지는 현상이다. 당시 문제는 엔진 분사과정에 있었다. 인젝터라는 부분을 손보고 괜찮아졌다. 일단 부산으로 와야했기에 속도를 가급적 떨어뜨리지 않고 창원에서 일을 마친 후 부산까지 왔다.(따지고 보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다. 안전불감증이란 이런 거) 고속도로에서야 가속폐달을 쓰기때문에 별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문제는 도심에 들어와서 신호대기로 정차하면 신호가 꺼지는 것이다. 시동이 꺼지면 사이드브레이크를 쓰고 가속페달을 밟아 rpm을 유지하며서 겨우 겨우 단골 정비소까지 왔다. 간단한 문제인 줄 알았는데 엔진 실린더의 헤드가 나갔다고 한다. 그러면서 대략 70-80만원 정도의 수리비를 요구했다. 

사실 지난해 요맘때 명절을 쇠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집 앞에서 차가 퍼져서 80만원 정도를 주고 수리했다. 그 때도 긴급출동한 정비사가 새차 교체를 고려해 보라고 요구했으나 2년 정도 더 탈 계획으로 눈물을 머금고 수리했다. 차는 97년형이었고 내 계획은 15년은 타는 것이었다. 올해로 14년째가 된 셈이다. 

그런 기억이 있었으니 다시 또 80만원의 수리비라는 말에 '이제 끝이구나' 라는 생각이 번뜩 스쳤다. 고액을 들여 수리한다고 해도 다른 쪽에서 문제가 생기지 말라는 법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폐차 쪽으로 방향을 잡고 긴급서비스를 통해 일단 집까지 견인했다. 당장 폐차에 대한 방법이나 절차,보상금 같은 것을 알아야 했기 때문이었다.(폐차라는 과정을 통해 폐차장과 폐차대행사가 영업이익을 얻는 방식을 나름 알게되었다. 대행사가 그렇게 많은 것도 폐차라는 과정에 꽤 괜찮은 부가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또한 차 안에서 개인적으로 필요한 것을을 옮겨놓아야 했다. 

주차장에 옮겨 놓은 자동차는 자신의 운명이 다했다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묵묵. 늘 대던 주차장에 서 있는 자동차인데도 아직 수명이 남아 있는 자동차들 사이에서 흑백 사진 처럼 보여졌다. 폐차를 위해 주차장에서 대기 중인 내 차는 그렇게 하루 사이에 '과거'의 시간 속을 달리고 있었다.  

이 차는 내가 돈 벌어서 처음 산 자동차였다. 다른 주인 밑에서 7년을 있었고 또 내 곁에서 7년을 있었다. 차를 처음 샀던 해 남도 여행을 했다. 해남 들녘으로 해지는 모습도 함께 보았으며 김제 평야에서 소나기를 몰고가는 먹구름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기도 했다. 이른 새벽 진통을 하는 아내를 싣고 조산원으로 달렸던 것도, 태어난 두 아이를 안전하게 지금 살고 있는 집까지 옮겨 주었던 것도 이 차였다. 오디오질을 좌절당한 내게는 가끔 음악 감상실이 되어 주기도 했고 또 가끔은 실내등을 밝힌 독서실이 되어 주기도 했다.  

몇 번 장거리 운행을 마치고 길 중간에서 고장이 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대개는 목적지를 몇 백 미터 앞두고 멈추어섰다. 그래서 차에 대한 애정 어린 농담으로 "그래도 이 차가 자기 딴에는 최선을 다해서 우리를 지켜준다니까...힘이 딸릴 때까지 최대한 안전한 곳까지 와서 기절하잖아." 이렇게 말하곤 했다. 그리고 실제로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지난 주말, 또 다른 정비소에 가서 타이어와 오디오를 탈착했다. 타이어는 같은 아파트 사는 이웃에게 주었고 오디오와 스피커는 일단 보관했다. 주말이어서 견인을 할 수 없었던 관계로 일단은 그정비소에서 이틀 밤을 두었다. 그리고 오늘 오전에 폐차 견인업체와 인도약속을 잡았다.  

지난 한 주 동안 자동차를 의인화 하려는 '감상주의'때문에 무척 심란했었다. 물론 오늘까지도 나는 그 감상을 완전히 떨치지는 못했다.  톰 행크스의 영화<캐스트 어웨이>에서 주인공은 무인도 생활에 말벗이 되어준 배구공 '윌슨'(스포츠용품 브랜드이다)이 실수로 바다로 떠내려가자 위험을 무릅쓰고 건지려고 한다. 결국 망망대해로 떠나가는 '윌슨' 배구공을 보며 마치 친구를 남겨두고 온 듯 오열한다. 물론 내 차에 대한 감상은 정황상 무인도에서 대화 상대였던 톰 행크스의 '윌슨' 만큼 강하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폐차 결정 초기에 비해 일주일 가량이 지난 지금은 감기 치료에 필요한 시간만큼 감상을 치료하기에도 적당한 시간은 되었다. 처음에 폐차 결정을 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회고적 글을 쓰려고 했었다. 하지만 하지 않았다. 처음에 마음 속을 스치는 상념들을 글로 썼다면 마치 사춘기 소년이 밤에 쓰는 편지처럼 얼설픈 감상과 회고적 감정의 편린들이 춤을 추었을 것이다.(사춘기 여인들은 좋아할지 모르나 이건 내가 보기엔 가장 끔찍한 글이다.)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정들었던 사물에 대한 의인화의 감정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견인차를 기다리면서 매번 장거리 운행을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면 습관적으로 했듯이 운전석 앞 바디에 손을 대고 "수고했어"라며 인사했다. 견인차 기사를 기다리며 오늘은 평소보다 더 오래 손을 대고 있었다. "그동안 수고했고, 고마웠다. 덕분에 무사히 다닐 수 있었어."라고 말이다.

 견인차 기사에게 35만원의 고철값을 받고 차를 인도했다.  차가 사라져 가는 모습을 끝까지 지켜봤다. 비록 쇠로 만든 기계덩어리에 지나지 않지만 그리하는 것이 정든 사물에 대한 예의 아닌가 싶었다. 투박하게 견인차에 실려 자동차가 점점 멀어졌다. 켜 놓은 비상등이 마치 내게 마지막 인사를 하는 듯 깜빡였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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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조간 신문을 점심 식사 하면서 보게되었다. <소금꽃 나무>의 저자이기도 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결국 크레인에 올랐다.  고 김주익 위원장이 올랐던 그 곳이다. 85호 크레인. 몸에 익은 용접공의 기억을 되살려 용의주도하게 자물쇠를 녹이고 그녀가 또 고공에 올랐다.    

한겨레 신문 "8년전 비극의 크레인 올라.." www.hani.co.kr/arti/society/area/457677.html 

김진숙 위원의 편지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

"세벽 세 시 고공 크레인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이 세상에 겨우 겨우 매달려 있는 것 같은 기분으로 지난 하루를 버틴 분들, 제 목소리 들리세요."   

이미 고인이 된 정은임 아나운서가 김주익 위원장의 비보를 듣고 그날 방송의 오프닝에서 한 말이다. 반복되길 원하지 않지만 반복되는 비극이다.

 한진중공업은 부산 영도에 있다. 배를 만드는 곳이다. 며칠 전 나는 한진중공업 때문에 정신없이 바빠져 버렸다. 부산시청에 양해를 구해서 시청 광장에서 할 일이 하나 있었다. 3주전에 시청에 양해를 얻었다. 그리고 별 일 없이 일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전날 퇴근길에 한진중공업의 48시간 연좌집회가 그 곳에서 있다는 소식을 알게되었다. 경찰청에서 우리 쪽에서 하는 일을 모르고 집회 신고를 내준 것이다. 집회 허가는 경찰청 관할이니 시청 측 담당자가 그것까지 알 일은 없다. 공무원이라해도 서로 다른 성격의 기관이다 보니 이런 업무에서 연계될리 만무하다.  

 결국 우리가 먼저 잡은 장소였는데 민주노총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된 셈이다. 경찰청 담당자도 일이 그렇게 되었느냐며 하지만 지금으로선 어떻게 할 수 없으니 민주노총에 몇 시간이라도 양해를 구해보라고 했다. 처음부터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설령 가능하더라도 모양새가 말이 안된다. 결국 내가 장소를 바꿀 수 밖에 없었다. 누굴 탓할 수도 없는 일이다. 민주노총도 거기서 뭔 일이 있는지 알수 없었고 나 역시 그랬고 시청도 그렇고 경찰청도 그렇다. 광장 사용에 대해 시청-경찰청 연계만 잘 되어 있었어도 문제가 없었겠지 말이다.  내가 땅을 치면서 억울해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나야 자리를 바꾸면 좀 업무적으로 수습해야할 일도 늘고 불편한 일이었지만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은 400명이 실직할 판이다. 그에 따른 가족들까지 생각해보면 그 수는 더하다. 조금 더 가면 조선소 특성상 한진중공업은 하청업체가 많다. 하청업체의 연쇄적 도산과 그 가족들까지 생각하면...숫자가 가히 상상을 초월한다.  그리하여 나는 한진중공업때문에 피해를 본 축에 끼지만 조금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원망할 생각이 없다.   

 최소한 노동자들의 파업때문에 길이 좀 막혔다고-미리 알아보지 않는 자기 잘못은 생각치도 않고- 또는 밥 먹고 들어오는 길에 1인 시위하는 자들 때문에 몇 발짝 더 돌아가야 한다고  울컥거리는 인간 따위는 되지 않는다. 책 좀 편히 사려는데 시끄러워 심란하다고 하는 것도 매한가지다. (안다. 그런 인간들 많은거. 내 입장에서 그거 한마디로 규정해 줄까?  나쁜 족속들이 인간되기란 참으로 힘들다.딱 그거다.) 

지난해 이맘때 쯤 조지오웰의 <위건부두로 가는 길>이란 책이 나와서 책 좀 읽고,생각 좀 있다는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2010년 나온 '올해의 책' 같은 목록에도 들어 있었다. ) 조지 오웰의 책을 보며 진짜 좋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이 시대의 위건부두 사람들은 어디있는가? 조지 오웰이 애정을 가지고 담아내려 했던 사람들은 어디에 있는가?   

조지 오웰의 '위건부두사람들'은 아껴지는데 이 시대의 '위건부두사람들'은 잘 눈에 안들어온다면 그게 바로 책이 만든 청맹과니가 아니고 무엇인가? 속이지 마라. 자기를 속이지 않는것이 글을 읽는 첫걸음이다.   

모든 싸움에서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이다. 고 김주익 위원장도 그리고 또 김진숙 위원도 모두 싸움에 익숙해온 사람들이다. 나같은 이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절박하고 또 그 절박함이 만든 강인함으로 무장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단단한 그들도 매번 새롭게 갱신되는 외로움이란 적과 마주쳐야 한다. 이런 걸 알려야 하는 지역의 언론이라고 하는 것들은 400명의 생존권이 달린 문제는 외면하고 각급 기관장들을 초대해서 안면찍기에나 정신이 팔려 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사실은 별로 없다. 대신 나는 외롭게 크레인에 오른 김진숙을 지지하고 한진중공업 노조의 투쟁을 지지한다. 단 1명의 몫만큼 더 친구가 되어주는게 자본과 언론에 고립되어 '무지몽매한 폭력주의자", "막무가내 노동자" 등으로 외로와져가는 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예의이며 작은 연대의 실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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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레히트는 그의 미완의 희곡 <이기주의자 요한 팟저의 몰락>에서 이렇게 일갈한다. 

"부당함을 가르키고 있는 너희들의 손가락은 썩었다." 

'썩은 손가락'에 대한 가장 평이한 해석은 '개인의 도덕적 자질론'으로 돌리는 것이다. 즉 부정의를 행하는 너희들은 더욱 더 도덕적이어야 한다. 이런 '도덕 자질론'은 여러가지 형태로 변주된다. 쉬운 예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의 설정 방식같은 것으로 말이다. 나는 이 곳에서 매우 투사적인 발언을 하고, 또 매우 진보적인 생각을 토로하는 이들을 만났다. 그들 역시 가끔 마음을 풀어놓는 글에서 '인간됨/사회적 실천'이라는 이항대립의 의제에 자신의 심사를 토로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거의 90% 이상은 전자, 즉 '인간됨'에 무게를 둔다. 이것은 매우 옳은 지적이지만 또한 진보를 매우 오랫동안 괘롭혀왔던 딜레마이기도 하다. 한국사회의 보수는 이미 사회적 윤리같은 것은 포기한지 오래다. 그런 그들은 자기들이 버린 아들 근처에서 기웃거리고 있는 진보세력을 매우 고까와 한다. 그래서 보수세력들은 그들의 상대를 '진정한 도덕집단'으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의 자격지심을 만회하기 위한 공격의 과녁으로 '도덕'을 이용한다.  

실제로 해방이후 한국사회의 민주화 그룹은 도덕이라는 측면을 투쟁의 무기로 사용해왔다. 그래서 '민주화세력=도덕적' 이라는 등식이 성립되었다. 독재정권의 폭압에 저항하기 위해 기댈 곳이 없던 민주화세력은 옳음에 대한 대중적 동의를 '도덕'의 이름으로 확보했다. 87년이 끝나고 자칭 민주화세력들이 정치의 중심에 들어섰을 때 이제 그 '도덕'은 하나의 덧이 되어 쓰레기만도 못한 수구보수 세력에게 이용당했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보고 컹컹 짓기 시작하는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가장 좋은 예는 91년 외대 사건이다. 일명 '정원식 총리 밀가루 투척'사건이다.  이 사건의 개요는 간단하다. 91년 봄은 매우 소란스러웠다. 그해 4월 명지대 강경대 학우의 사망사건으로 부터 시작된 '분신정국'이 있었다. 그리고 그해 6월 정원식은 노태우 내각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학원 강의를 하기 위해 외대를 방문한다. 신문,방송 기자들을 대동하고 말이다. 그 때 외대의 운동세력이 군부정권의 하수인이 되는 정원식 총리 서리에게 계란과 밀가루 투척을 했다. 다음 날 신문 1면은 밀가루를 허옇게 뒤집어 쓰고 계란으로 떡칠된 그가 소동을 피해 쫓기듯 길을 뚫는 사진이 대문짝 만하게 실렸다.    

1991.6.4 <동아일보1면>

  

또하나의 6월 항쟁이라던 91년 봄 투쟁을 한 방에 날려 버린 사건이었다. 안 그래도 대학마다 하계방학에 들어가는 시점이고 어떻게 91년의 열기를 이어갈까 고민하는 세력에게는 치명적인 사건이었다. 내 기억에 외대 총학생회는 이 사건으로 운동권 내부에서도 엄청난 비판을 받았다. 이 사건은  6월 말 있었던 내 전공수업의 시험 주제이기도 했다.  

거의 모든 신문은 '운동권의 비윤리성'을 한목소리로 드높였다. 흔히 '선생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전통적인 사제관을 들먹이면서 말이다. 학생들은 교사 정원식이 아니라 정치인 정원식에 대한 비판이라는 이성적인 대답을 내놓았지만 여론은 쫓겨가는 방송국ENG 카메라의 영상과 스틸사진의 이미지에 압도당했다.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언론은 기획기사와 논설등은 악의적 방식까지 동원해서 운동세력의 윤리성을 깨부수는데 달려들었다. 

그런데 외신보도는 이 문제에 대해 좀 다른 시각을 보였다. 그들에게는 유교적 의미의 '그림자도 피해가는' 스승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어젠더를 '스승과 제자'로 설정할 수 있는 틀이 없었고 왜 그래야하는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다. 학생들의 투쟁 수단 역시 그렇게 과격한 것도 아니었다. 외국에서는 계란투척이나 밀가루 투척은 매우 일반적인 정치항의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요즘도 정치인들이 계란맞고 도망가는 사진은 국제란에서도 쉽사리 볼 수 있다.) 한국 주재 외신 기자들은 대한민국 언론이 난리를 피우고 있는 이 사건에 대해 좀 더 객관적으로 그 원인과 이유를 말했다. 

   내게 '도덕'과 '정치'라는 매우 미묘한 문제에 대해 철학적 질문을 던진 건 아마 저 사건일게다. 나는 '도덕정치'의 위험에 대해 경험적으로 알게된셈이다. 그래서 '정치=도덕이다' 라는 식의 논리가 어느 정도 이해는 되지만, 매우 위험한, 그리하여 문자 그래도 수용되어서는 곤란한 명제라는 것을 알게된 셈이다.  

학생운동권세력을 포함해서  민주화세력 등에 대한 윤리적 기대가 높았던 국민들은 정치권에 유입되면서 하나 둘 수의를 입는 민주화 세력의 일부 엘리트들을 보면서 결국 정치적 냉소주의에 빠진다. 정치=도덕으로 보았기 때문에, 도덕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로 이어지는 것이다. 정치의 실패가 이어진 자리에는 냉소가 자라난다. " 그 놈이나 그 놈이나 똑같다."  (노무현 사후의 그에 대한 평가는 이런 도덕의 실패의 역에 해당한다는 생각이다. 노무현의 도덕성은 어느 정치인보다 뛰어났다. 그의 자살은 그런 면에서 도덕성의 표상이다. 그런데 그의 비극적 죽음 이후 같은 논리가 작동한다. 그의 정치적 실패는 도덕성의 이름으로 가려졌다. 생존에 노무현을 놈현이라고 평가하던 이들이 갑자기 '당신의 뜻을 오해했습니다'라며 사과문을 쓰더니 노무현! 노무현! 이렇게 된다.정치=도덕의 논리가 그대로 적용된 다른 예가 된다.)  

도덕정치의 현실적 모습을 바라본 사람들은 이제 사회윤리적 차원의 높은 수준을 생각하기 보단-어차피 그 놈이 그 놈인데- 실제 자본주의적 풍요를 조금 더 누리기 위한 몰역사화된 경제적 동물로 주체화한다. 특히 97년 IMF 라는 초유의 사건은 성장 일변도의 한국경제에 일침을 가하며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공포감을 조성한다. 연일 미디어를 통해 등장하는 노숙자와 도산 사업가의 자살 소식은 정신줄 놓으면 나도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이제 생존을 위한 변화와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이 시대의 화두가 되었다. 87년 투쟁이 만든 시민들의 연대의식은 이제 쓸쓸한 자화상이 되었고 개인들은 '아침형 인간'이라는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재탄생하기 위해 누구보다 착실한 자본주의의 시종이 되었다.  

오로지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파괴된 정치와 실용화된 도덕일 뿐이다.정치는 불구가 되었고 도덕은 오욕을 뒤집어 쓸 지언정 어떤 이름으로든 살아남았다.  

엄기호는 그의 책<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에서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진보 세력은 민주주의가 정치적 언어에서 한쪽에서는 냉소주의로 다른 한쪽에서는 속물들의 윤리적 언어로 전화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우리는 민주주의를 지나치게 절대적 가치로 고정해놓고 도덕적으로 사용하다가 정치가 도덕이 되어 버리는 바람에 '도덕'을 전면에 내세운 보수주의자들에게 역습을 당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대학생들의 탈정치화가 아니라 우리가 일조한 정치의 도덕화가 문제이다.' 

 우리사회에 과잉화된 '도덕 담론' 속에서  나는 '정치'와 '도덕'의 화용론적 결합이 과연 적절한 것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다. 그리고 그것이 과연 '정치인가?' 라는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내 답은 부정적이다. 근대 정치학에서 마키아벨르의 업적은 그가 '정치'를 '도덕'의 영역과 분리시키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정치를 신학정치에서 세속정치로 바꾼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신학정치의 영역과 세속정치의 영역 속에서 끊임없이 방황하고는 있지만 최소한 막연한 본질적 대상으로서의 도덕으로는 포퓰리즘과 그의 짝패(전체주의) 이외에는 얻을 것이 없다는 생각이다. 그러므로 내게 도덕적 유토피아는 가능성으로서의 유토피아일 뿐 큰 매력을 주지 못한다. 현대정치철학자들이 가능성이 없어진 시대에 그 '가능성을 창조하기' 찾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 일정 부분 공감도 하지만 말이다.  

밀레니엄의 10분의 1을 달려온 한국 사회. 나는 아직 이 땅에 정치적 역동성이 한 조각쯤은 남아 있다는-있을것이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물론 이것도 야금야금 그 동력을 잃어가고 있는 것은 분명 사실이다. 5년 또는 10년 사이에 어떤 전환적 출구를 만들고 시스템화하지 못한다면  퇴행적 순응으로 안착될 가능성은 매우 농후하다.(이 말이 민주당식의 대통합론 수준을 의미하진 않는다.그들은 전환적 출구를 만들 가능성이 거의 없다.) 정치사회의 역동성은 제로수준으로 가라앉는 식으로 말이다. 이미 사회 곳곳에서는 그런 징후들이 징후의단계를 넘어서 조건들로 자리잡고 있다. 

  97년 이후 시대의 흐름에 맞게 철저하게 개인화된 신자유주의적 주체로 태어난 이 시대의 사람들은 더 이상 정치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정치라는 것 역시 개인적 차원으로만 이해한다. 투표를 한다거나 정책 결정에 대해 툭툭 한번씩 말대꾸하는 정도로 말이다. 정치는 개인과 집단, 또는 집단과 집단의 관계와 관련된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집단의 것을 강조할 수 밖에 없다. 개인의 정치적 행위는 그것 자체로서 매우 의미있는 행동일 수는 있으나 그것은 정치를 위한 필요조건 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이런 사람들은 본다. 어떤 행동을 함에 있어 여기저기 시끄럽게 하는 것은 남보기 우사스럽기 때문에 조용히 나 혼자 하면 된다는 사람들 말이다. 나는 개인적 윤리로서는  이것을 꼭 나쁘게 보지만은 않지만 이것은 '정치적 행위'가 아니다.  그러면 아마 이런 질문이 있을거다. '이런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면 '정치'가 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맞는 말이다.  핵심은 거기에있다. '모이게 하는 것'. 혼자 조용히 삼성에 불매하는 것은 아직까진 정치적 행위의 필요충분 조건을 갖추지 못한다. '모이게 하는 것' 이라는 참여와 연대의 영역이 누락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러한 집단화 과정에 참여하는 실천에 있는 것이다. 물론 너무 낯을 가리고 말도 못하고 쑥스러워서 남들과 하기 힘든 사람들도 있을게다. 그런 사람들에게 '참여'란 뭔가 껄끄러운 말이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하면 안되냐?' 고 말할 수 있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나도 그럴 때가 많다.  모든 경우에 해당되지는 않겠지만 나는 이럴 때 나름대로의 해법을 '선언'이라는 차원에서 찾는다.  그래서 '조용히... 선언하라'고 말하고 싶다. 그리고 '조용히...실천하는 것'  알랭 바디우식으로 말하자면 이'선언'이 '정치'로 가는 첫길이다. 그냥 시끄럽게 떠드는 인간들은 다 말뿐인 존재들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이 정도라고 생각한다면- 혼자 묵묵히 하는 것의 가장 본원적인 짓은 마스터베이션임도 알것이다- '선언'이라는 것은 그와 분명히 차원이 다른, 가장 작지만 또 가장 큰 걸음이 될 수 있다. 혼자서 조용히 '나는 삼성 안사...그걸 실철할거야' 이런 것은 앞서 말한바와 같이 아무런 효력도 없는 분출일 뿐이다. '나는 삼성의 물건을 구매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훨씬 정치적이며 자기 구속력도 강하다. 그리고 항상성의 측면에서도 그 유통기한이 길다.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다시 정치에 대해 생각한다. 정치가 사라져 가는 시대에 그 복원을 위해서라도 '정치는 모든 것이다' 라고 말해야 할 듯 하다.  

...부산에도 눈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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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포스터에서 <더 셀>,<더 폴>을 만든 타셈 싱 감독의 여자주인공들이 순간 스쳐간다. 아니면 이스트반 자보의 <메피스토>라든지... 

 

<블랙스완>은 <더 레슬러>를 만든 대론 아로노프스키의 최신작이다. 나탈리 포트먼과 뱅상카셀이 주연을 맡고 있다. 국내 개봉은 내년 2월정도로 잡혀 있다고 한다. '검은 백조'는 차이코프스키의 <백조의 호수>에 나오는 악마의 딸 오딜이다. 주인공 왕자가 백조 오데트와의 약속을 깨게 만드는 것이 흑조 오들이다. 즉 팜므 마탈의 매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오데트와 오딜은 1인 2역을 맡는다. 영화 예고에서 주인공이 그녀의 라이벌 릴리에 대해 갖는 강박은 흑조의 그런 본능적인 검은 매력이 자신에게 약하다는데서 출발한다. 거기에 완벽을 향한 예술적 강박이 포개진다. 그녀의 강박은 또 다른 자아를 현실 속에 불러 들이는 것으로 보인다. 복도에서 스쳐 지나가며 언뜻 보이는 또 다른 자아로 추정되는 배우는 위노나 라이더이다. (나탈리 포트먼과 위노나 라이더의 이미지가 매우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다.) 질투와 경쟁,그리고 예술적 강박은 주인공을 실제로 검은백조로 만들어간다. 참고로 감독은 대학에서 심리학을 전공했고 영화는 심리스릴러 장르로 알려져있다.

 

여담삼아.. 

차이코프스티의 발레 <백조의 호수>중에서 검은백조 오딜의 유명한 32회전 뿌에테를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질리안 머피의 공연 중에 올려본다. 이런 장면은 권투로 치면 '마지막 한방' 같은 그런 것이다. 요즘 국내외를 막론하고 아마추어 장기자랑에 나오는 성악가 지망생들이 대개 부르는 노래가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중에서 '공주는 잠못이루고'이다. 그 마지막의 All'alba vincero! ...  vincero... vincero. (파바로티의 한방은 영원히 기억되리라!!)
빈체로...빈체로...빈 체에에엥에에에로.... 열정적인 이탈리아 남자 성악가들은 이거 한방으로 먹고 가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이거 한방이 없으면 식자층의 사랑을 받을 수 있을지언정 대중적 장악력은 떨어지는 법. <백조의 호수>에서도 마찬가지다. 32번 멋지게 돌아주어야 한다. 쉬크하게 

 

'예술과 삶'이라는 겨울에 어울릴 만한 주제로 내 책상 위에 놓인 영화는 찰리 카우프만의 <시네도키,뉴욕>이다.  나는 겨울을 좋아하는데-윈터 홀릭? 오로지 눈때문인가? 부산은 '무설'의 도시다- 그렇다고 자잘한 감상을 위해서는 아니다. 그건 정말 딱 밥맛-밥에게 미안하지만- 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에서 이렇게 말한다. 

"겨울은 무뚝뚝한 손님이다. 하지만 나는 그를 존중하며, 유약한 남자들처럼 배불뚝이 불의 우상에게 기도 드리는 일 따위는 하지않는다." 

&nbs 

 혹시 예고 중간에 나오는 잔잔한 노래가 귀에 걸리면  좋은 귀를 갖고 있는 거다.  

겨울은 차가운 위로가 필요한 계절이다.

영화 속에서는 엔딩 크레딧에 나오는 Jon Brion 의 Little person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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