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드팀전 (드팀전 서재) &gt; 그냥 떠오른 생각</title><link>http://blog.aladin.co.kr/apple21/category/45309</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그맘때가 올 것이다.잠자리가 하늘에서 사라지듯이 그 맘때에는나도 이곳서 사르르 풀려날 것이니..........</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Mon, 09 Mar 2026 08:35:19 +0900</lastBuildDate><image><title>드팀전</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t_777882183398718.jpg</url><link>http://blog.aladin.co.kr/apple21/category/45309</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드팀전</description></image><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amp;lt;음악,좋아하세요&amp;gt;출간 이벤트 종료합니다.(열심히 살겠습니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73938</link><pubDate>Thu, 19 Dec 2019 10: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1137393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6601&TPaperId=1137393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off/k562636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이벤트 종료합니다. 감사합니다.<br>stella k님, 빵굽는 건축가님, 파워리뷰어님,수연님,&nbsp;필로소피아님, 프레이야님,chika님,글꽃바람님,mira님,,comandante님<br>서재 어디에든 비밀댓글로 주소 남겨주세요.3분이 남겨주셨는데 출판사 번거롭게 하지 않기 위해&nbsp;주소 다 수집되면 일괄배송 해드리고 싶어요.(며칠 기다려보고 너무 늦어지면 선배송하겠습니다.)<br>------------------------------------------------<br>2001년 여름, 이윤기 씨의 책에 대해 몇 자 끄적인 것이 알라딘 서재 시작이었습니다. 이후 리뷰 몇 개를 남기고 오시는 분들과 댓글로 인사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한 두 해 지나며 정치적 이슈에 따른 논쟁도 참여하고 아는 분들도 많아졌습니다. 학생,의사, 학자, 교사,계간지 편집자, 작가, 소설가, 기자, 대기업 직원, 번역가, 전업 주부, 염소키우는 여자, 동아리 선생님 등등 다양한 분들과 실제 이름이 아닌 닉네임으로 만났습니다.<br>&nbsp;책을 좋아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늘 즐거운 일이었습니다. 게다가 당시 알라딘은 인터넷서점이라는 걸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았던 때라 이주의 리뷰나 페이퍼등에 괜찮은 선물을 얹어 주었습니다. 몇 개 쓴 글이 상을 받고 또 축하인사를 받게 되면 기분이 좋더라구요.(네. 종종 받았어요.)&nbsp;<br>요즘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예전에 1년에 한번 알라딘 리뷰 대회가 있었습니다. 1등 상금이 무려 100만원이었어요. 2회 대회였었나봐요.&lt;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수 없게 가까운&gt;리뷰를 후다닥 썻는데 그게 예상외로 1등을 받았어요. 아는 분들께 책 선물도 해드렸던 것 같고 그 포인트 머니로 알라딘에서 전부 책 샀어요.<br>잘 놀다가 2009년이었던가요 우리 사회에 비정규직 문제가 첨예한 쟁점이 되었을 때 알라딘도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당시 몇 몇 분들과 알라딘 불매운동을 주도했습니다. 서재가 양분되어 시끄러웠지요.&nbsp;제가 서재에 발을 끊기 시작한게 그즈음이었습니다. 이후 가끔 생각나면 한번씩 긴 글을 쓰기도 했지만 1년에 한 두번입니다. 책 구매는 여전히 알라딘으로 합니다만 주로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많이 사요.&nbsp;<br>하여간 알라딘에 오랜 만에 나타나서 옛 감흥에 젖었나 봅니다.&nbsp;어느덧 나이가 50 인데 그 시절은 저 역시 좋았던 젊은 시절이었으니까요..<br>이벤트 참여해 주신분들 감사드립니다. &lt;음악, 좋아하세요&gt;&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150/k562636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322452</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이벤트 페이지가 사라졌어요. 사과 및 재공지 (종료)</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63348</link><pubDate>Sat, 14 Dec 2019 2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11363348</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6601&TPaperId=113633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off/k562636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lt;음악,좋아하세요&gt; 출간 기념으로 사적 이벤트를 하나 열었습니다.<br>많지는 않지만 몇 몇 분이 참여해주셨는데<br>이 페이지가 종종 링크가 잘 열리지 않더니만&nbsp;제가 프레이아님 댓글을 달고 수정하다가 삭제되었어요. 저는 댓글 삭제를 눌렀는데 페이지 삭제가 눌러졌을까요? 이상하게 없는 페이지로 나와서 저도 놀랐습니다.&nbsp;왜 그런걸까요?<br>알라딘의 오류든 저의 시스템 적응 오류듯&nbsp;보내주신 글이 사라진 것 같습니다.&nbsp;관심 가져주신분들께 사과 말씀드립니다..<br><br><br>프레이야님 이 댓글을 쓰고 있었거든요.프레이야님&nbsp;저 부산 삽니다. 호밀밭 출판사도 그렇지요 ㅎㅎ<br>이벤트 재공지합니다.<br>1) 12월17일(화) 여러분들이 좋아하시는 시구절이나 문장을 하나 만 써주세요. 가벼운 인사와 더불어.<br>10분께 책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br>2) 제게 먼저 댓글 달아주신&nbsp; 6분은 일단 무조건 보내드리겠어요. 댓글과 아름다운 문장 골라 주셨는데 날아가버렸으니...혹시 이전 페이퍼에 댓글 올려주셨는데 빠진 분 계시면 알려주세요. 제가 오늘 오전에 각각 댓글 다 달았었는데...그것도 날아갔어요.<br>&nbsp;stella k님, 빵굽는 건축가님, 파워리뷰어님,수연님, 필로소피아님, 프레이야님<br>&nbsp;위의 6분은 주소를 비밀댓글로 보내주세요.이벤트 끝나고 주소 일괄 취합되면 한번에 보내드리겠습니다. 다시 한번 사과드립니다. 오랜만에 알라딘 서재들어왔더니만 시스템 마저 타박이군요.<br><br>&nbsp;&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150/k562636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322452</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초밥과 어울리는 &amp;lt;음악,좋아하세요?&amp;gt; 다른 곳 리뷰 하나</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61956</link><pubDate>Sat, 14 Dec 2019 10: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1136195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6601&TPaperId=1136195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off/k562636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사회학자이신 이성철 교수님께서 페이스 북에 올려 주신 리뷰입니다. 1년에&nbsp; 두 어 번 뵙는데 사심가득 애정가득한 리뷰를 써주셨어요. 전 사실 아는 분들이 책 쓰면 리뷰를 안씁니다..쑥쓰럽구 그래서. 하지만 앞으로는.소식 뜸할때 이런 리뷰 받으니 훈련소에서 애인 편지 받는 느낌이랄까?&nbsp; &nbsp;책과 직접 관련 없는 몇 가지 사적인 내용과 인물들은 임의 삭제했습니다.페이스북 지인들 이름..이런것들.<br>(알라딘 출간기념 이벤트는 계속 진행 중입니다.)( &lt;- 구매는 요기로)<br><br><br><br><br>&lt;독후감&gt;모처럼 올리는 글이다.(1)&nbsp; 엄상준 PD의 &lt;음악, 좋아하세요?: 엄PD의 세상과 만나는 음악이야기&gt;(2019, 호밀밭출판사)를 읽으면서 그 느낌을 남기고 싶었다. 400쪽이 넘는 책이지만 메모를 해가며 아주 흥미진진(?)하게 읽었다.엄PD와의 인연이 좀 있다. 2012년이었나? 아님 그 이후였나? 엄PD가&nbsp; 노동조합 지회의 간부를 맡고 있을 때 나에게 조합원 교육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아마 나의 &lt;영화가 노동을 만났을 때&gt; 책을 보고 연락을 한 것 같다.&nbsp; 교육을 마친 후 방송국 옆의 ‘봉이 동동’에서 지회장님 등이랑 술추렴한 기억도 있다. 이후 옐로스톤의 간헐천처럼 만나 술잔을 기울였다.(만남은 항상 뜨거운 온천이었다.)진중한 그가 페이스북에 올리는 글들 중에 유독 속내를 밝히며 싫어하는 인간들은 ‘꼰데’들이었다. 그러나 ‘아재’는 좀 봐주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 자신도 스스로 아재라 칭하고 있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아재는, ‘아 쟤?’하고 무심코 넘길 수 있는 범주이지만, 꼰데는 자신이 꼬인 데를 모르는 인간이기 때문에 여타 사람들을 자신의 잣대(ruler)로만 측정하는 부류라 여기기 때문인 것 같다. 즉 그런 인간을 독재자(ruler)로 여기는 것 같았다.왜 이런 말을 하냐면.. 책 제목이 &lt;음악, 좋아하세요?&gt;라서다. 엄PD라면 절대 이 제목을 쓰지 않았을 것 같다. 일상에서 이런 말은 즉각 반발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예컨대 ‘안 좋아하면 어쩔 건데?’라는 등의 반응이 나온다. 즉 꼰데스런 제목이다. 아마 호밀밭출판사의 장현정 대표가 이 제목으로 밀어붙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심증은 가지만 물증은 없다. 그런데 어떤 분들은, ‘안 좋아하면 어쩔 건데?’라고 퉁명스레 말하곤 ‘내가 음악 좋아하던가?’라는 반추도 할 것 같다. 이 책은 그런 반추를 하게 만드는 책이다.(장현정 대표의 작명이 좋았다는 말인가....)(2) 책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장’(章, chapter)으로 구성되어있다. 마치 네 개의 곡으로 구성되는 교향곡처럼(4악장)... 교향곡을 이루는 각각의 작은 곡을 ‘악장’이라 하니, 그의 책은 ‘봄 악장’, ‘여름 악장’... 등의 식으로 움직인다(무브먼트, movement) 그러나 그의 책 목차 형식은 기악곡 중심의 교향곡을 표방하는 듯하지만, 대중가요-민요-클래식-팝 등 ‘세상의 모든 음악’을 아우르고 있다.(KBS 클래식 FM 프로그램 이름이기도 하네...) 교향곡이 연주될 때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않지만, 나는 이 책의 각 장이 끝날 때마다 기립박수를 치고 싶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순서대로 읽을 필요도 없다. 어느 곳을 먼저 읽더라도 그 속에 또 다른 교향곡들이 있다.(3) 그의 글이 참 좋은 이유는 이렇다. 특정 곡에 대한 권위있는 또는 정통한 해석만 강조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 자신이 좋아는 곡들만 추천하는 것도 아니고 다른 버전들에 대해서도 충분히 알려준다.(그러나 겸손한 가치판단은 있다. 당연한 것 아닌가?) 내 식대로 말한다면 이렇다. 예컨대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곡 ’사랑의 기쁨‘을 슬프게 느낄 수 있고, 그의 ’사랑의 기쁨‘을 들으면서 슬픔도 느낄 수 있지 않은가? 또는 안성기, 황신혜 주연의 영화 &lt;기쁜 우리 젊은 날&gt;의 주제곡 이었던 ’마르티니’의 ’사랑의 기쁨‘의 가사 속에 사랑의 슬픔이 들어있듯이... 엄PD의 글이 그렇다. 이분법이 아니라서 좋다. 아마 그가 익힌 사회과학의 내공도 깃들었으리라 생각한다.(4) 음악에 관한 내공과 적공은 두말할 필요없지만, 무엇보다 엄PD의 글이 정말 빼어나다. 예컨대 각 절의 첫 문단은 시(詩)다. 정말이다. 저자 자신이 글과 글자에 얼마나 깊은 마음을 담으려했는지 알 수 있다. 예컨대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 나그네’에 대한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피아노의 흰 건반이 눈 내린 하얀 숲이라면, 검은 건반은 눈 위에 찍힌 발자국이었다.”고대 이집트에서 조각가는 ‘살아있게 만드는 자’라는 뜻을 지녔다고 한다. 과장 없이 말한다. 그의 글은 음악을 살아나게 한다. 이를 위해 그는 조각칼로써 해당 음악에 걸맞는 책을 선택한다. 책 속에서 소개하는 책들을 찾아보는 재미도 있다. 예컨대 57쪽에 이런 글이 있다. “.... 공기의 진동에 불과한 음악이라는 비-물질을 단단히 붙잡아 놓은 물질성이 좋다.”나는 이 문장을 읽으며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사회과학자들의 논문이나 책 속에 아무런 상관없이 자연과학의 용어를 쓰는 행위(fashionable nonsense)를 질타한 물리학자 ‘앨런 소칼’을 은근히 두둔하면서도, 소칼에게 쓸데 적은(쓸데 없는 것은 아니므로!) 대응을 한 사회학자 ‘브루노 라투르’도 포용하는 부드러움...을 느꼈다....면 지나칠까? 그리고 115쪽의 도입부는 마치 ‘줄리언 반즈’의 그것처럼 읽혔다.(확인해보시라...)(5) 그의 책에는 음악을 말하면서 낮은 곳들과 연대하는 실천이 담겨있다. 세월호와 공관병, 그리고 남미의 굴욕과 피의 역사가 담겨있다. 독일의 과학역사학자 에른스트 페터 피셔는 어느 곳에서 이런 말을 했다. “개별 학문 분야와 무관한 질문이 제기되면, 객관성이라는 관념이 매우 취약하다는 사실이 바로 드러난다.” 음악도 과학도 학문도 모두 현실관계적이라는 말일 것이다. 이 책의 큰 덕목 중의 하나이다.이 책에서 프로이트를 인용한 문장이 있다. “충분한 애도를 갖지 못한 기억은 다른 이름으로 돌아온다. 애도란 사랑하는 사람의 상실 이후 상실의 자리로 들어서는 것이다...”(74쪽) 함께 인용한 나희덕의 시도 좋다... ‘노동’에 대한 그의 시선은 첼로의 거장 ‘파블로 카잘스’의 말로 대변된다.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정을 보면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 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127쪽)(6) 그외 사소하지만 부러운 것들 몇 가지- &lt;적벽가&gt;를 이야기 하는 장면에서 ‘애늙은이’가 들어앉아 있는 것 같았다. 그는 김소희의 판소리 &lt;심청전&gt;의 한 대목을 ‘소리로 그린 그림’ 같다고 했다.(234쪽)- 가끔 본 엄PD의 모습은 좌중에서 별 말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책 속에서 그의 지킬 또는 하이드를 만나게 된다. 이렇게 유머스런 분이었나?...라는...- 엄PD의 머리카락은 베토벤 닮았지만, 얼굴은 바흐가 떠오른다. 그런데도 구수한 된장 냄새가 나는 모습이다. 늘 골몰하기 때문에 드러난 몰골이라 생각한다. 여담이지만 베토벤은 바흐(Bach)를 시냇물(bach)이라 생각지 않고, 큰 바다라고 말했다.(메르, mer)- 다 읽고 책을 덮으니 다시 책 제목의 뜻을 새기게 된다. &lt;음악, 좋아하세요?&gt;... 나의 대답은 이렇다. ‘더 좋아할 거에요..’ 올리브 색스는 그의 책 &lt;뮤지코필리아&gt; 서문에서 니체를 인용한다. ‘음악은 근육으로 듣는다.“ 더 좋아해야 근육이 생긴다.* 아래 사진은 참치집에서 찍은 것이다. 심지어 초밥도 축음기 속으로 뛰어든다... 아니... 술병 속으로 인가?....<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150/k562636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322452</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출간 1주일 뒤 &amp;lt;음악, 좋아하세요?&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47025</link><pubDate>Sun, 08 Dec 2019 1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11347025</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62636601&TPaperId=113470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off/k562636601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lt;음악, 좋아하세요?&gt; 출간되고 1주일이 지났네요.&nbsp;부산에서 북 콘서트하고, 축하 술자리 하고, 몇 몇 분께 인사하다 보니 일상의 흐름이 깨져버렷습니다.<br>이번 주는 정신을 가다듬고...<br>그러나후배가 휴가를 가버리는 바람에손발이 무척 바쁜 한 주가 될 듯 합니다.<br><br><br>압구정에 있는 클래식 플랫폼 &lt;풍월당&gt;에는 이렇게 전시가 되어 있네요.&nbsp;클래식 음악 들으시는 분들께는 소중한 공간입니다. 제게는 이중적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이지만 실장님과는 부산에서 부터&nbsp; 좋은 인연이 있어서 이렇게 신경 써주셨습니다.<br><br>출판사 대표님이 참치 횟집에서 인증샷. 횟집 매장에 이렇게 디스플레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범용성과 적응력에 감동.<br>음악이 다 그렇지 않을까요? 세상의 모든 음악은 모든 필요와 쓸모와 감동이 있으니까.어느 하나를 더 높이 칠 필요도 없어요. (동세대 트로트의 여왕은 주현미와 김연자라고 생각합니다. &lt;미쓰트롯&gt;이후 송가인의 기세가 장난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주현미님과 김연자님이 최고입니다.)&nbsp;<br><br><br>책 내부를 펼쳐 보면 이런 구성입니다.<br>테오 앙겔로풀로스의 영화 &lt;황새의 멈춰진 발걸음&gt;의 음악과 몇 년 전 세계를 울린'해변의 쿠르디' 사진, 그리고 &lt;무정한 빛&gt;(수잔 린필드, 바다출판사) 에 언급되는 사진의 윤리성에 대한 이야기 등이 엮였군요.<br>영화 속에는 ‘연(鳶)의 우화’가 나온다. 세계의 멸망 이후 대지를 떠날 수 있는 연줄에 사람들이 몸을 싣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카라인드루의 ‘난민의 테마’가 반복된다. 국경 근처 일꾼 여러 명이 전신주에 오른다. 마치 하늘로 날려 올린 연줄을 타고 오르는 것 같다. 하지만 전신주는 땅과 하늘의 중간 지점에서 멈출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갈 수 없다. 중음(中陰)의 공간에서 시간이 그렇게 멈춘다. 난민들의 시간이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9832/24/cover150/k5626366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98322452</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첫 책이 나왔어요 &amp;lt;음악,좋아하세요?&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31738</link><pubDate>Mon, 02 Dec 2019 1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11331738</guid><description><![CDATA[오랜 만에 알라딘 서재에 글을 올립니다. 알라딘에서 책은 구매하고 있지만&nbsp; SNS 쪽으로 주거지를 옮긴지 오래되어서 ㅎㅎ&nbsp; 글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찾는데도 좀 어리둥절했어요. 오래 전 살던 옛집을 찾아 갔더니 거리도 집도 바뀌어서 헤메는 것과 비슷하군요.&nbsp;<br>하여간 오랜만에 와서 이런 소식 전하려니 좀 쑥스럽긴 합니다. 지난 금요일 첫 책이 나왔습니다. &lt;음악,좋아하세요&gt;(호밀밭)&nbsp;<br><br>3년 정도 중앙일보 일요판인 &lt;중앙선데이&gt;에 기고했던 글을 다시 수정했어요. 음악인문에세이 정도 되겠네요. 클래식 음악이 주를 이루기는 하지만 판소리,재즈,가요 등등 몇 가지 씩 세상사는 이야기들과 기타 등등<br>12월을 맞아 설치한 크리스마스 트리 앞에서 한번 찍어봤어요. 책 제목 &lt;음악, 좋아하세요?&gt;는 제가 좋아했던 만화&lt;슬램덩크&gt;에서 채소연이 강백호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을 패러디 했어요. 소연이가 백호에게 묻지요. "농구, 좋아하세요?"....마지막에 백호가 산왕이랑 경기할 때 큰 부상을 당해서 정신이 약간 혼미한 상황에서 어딘가에게 답합니다. "네, 좋아합니다."&nbsp; 혼을 담아서 말이지요. 전 이 장면이 참 좋았어요.&nbsp; 크리스마스 트리 아래서 찍으니 선물용으로 좋겠다 싶지 않습니까?<br><br>알라딘 서재 활동할 때도 제가 오프라인에서 뵌 알라디너가 10명 안쪽이었습니다. 갑자기 당시 이름들이 좀 생각나네요. 바람구두님, 아프락사스님(이름 바꿨는데 뭔지 잘 기억이),승주나무님,jade님,글샘님,바람돌이님...또 계시겠지만 전부 오래 전 분들이라..ㅜㅜ 하여간 어차피 책에 사진 공개한 마당에 까잇...펭수의 탈을 벗고. (쑥스)&nbsp;<br><br>&nbsp;오늘 저녁에 부산에서는 북토크도 해요. 저녁7시 광안리.&lt;생각하는바다&gt;&nbsp;시간되시는 분은 그냥 오셔도 됩니다.&nbsp;<br>그리고 펭수처럼 당당하게 영업모드...&nbsp;"책 좀 사주세요.김명중]]></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1202/pimg_777882183237303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11331738</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amp;lt;엑소더스&amp;gt;: 현대적인,너무나 현대적인 모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258955</link><pubDate>Sun, 07 Dec 2014 00: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7258955</guid><description><![CDATA[30년도 지난 기억에서 부터 시작해보겠습니다. 국민학교 저학년때 일입니다. 교회에서 단체관람 으로 찰튼 헤스톤, 율 브리너 주연의 영화&lt;십계&gt;(1956)를 보러 갔습니다. &nbsp;영화의 클라이막스인 홍해가 갈라지는 장면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고전주의 시대의 조각같이 생긴 찰튼 헤스톤이 망망대해를 향해 두 팔을 벌렸습니다. 바닷물이 깍두기처럼 각을 잡고 갈라졌습니다. 물의 벽. 영화관 곳곳에서 "할렐루야","주여"하는 탄성이 흘러 나왔습니다. 어린 저는 공공장소에서 커다란 목소리로 탄성을 외치는 교인들이 의아했으며 창피했습니다.&nbsp;<br><br>&nbsp;영화&lt;엑소더스: 신들과 왕들&gt;를 보는 동안 어느 누구도 "할렐루야"나 "오. 주여" 를 부르지는 않았습니다. 그 점은 다행입니다. 몇 가지 추론을 해 봅니다. 단체 관람자들이 없어서 집단 행동이 없었다는 점은 아닐까. 또는 영화를 본 그 날 기독교인들이 많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공공장소에서 종교적 색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내성적 기독교인들이 많았을지도 모릅니다. 기타 등등&nbsp;<br>하지만 영화적으로는 다른 곳에서 답을 찾아야 보게 됩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lt;엑소더스&gt;는 종교적 소재이지만 종교를 지우는 방식으로 그것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리들리 스콧감독은 영화의 표면은 모세와 람세스의 갈등 구조에 촛점을 맞추고 있다고 말합니다. 영화를 세속의 갈등과 스펙터클이 혼합된 헐리우드 영화로 보는 것이 맞다는 말입니다. 그렇지만 영화 속에서 신의 문제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리들리 스콧은 신의 문제를 방석 밑으로 넣어 놓은 것이지 창 밖으로 던진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모세의 정체성부터 출애굽의 해방까지 신 개념을 바닥에 깔아 놓고 있습니다.그는 대략 범신론과 회의적 유신론 사이를 오고 가고 있습니다.<br>먼저 리들리 스콧이 창조한 모세가 현대적 인물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크리스천 베일은 이 영화에서 부드러움과 강함,신념과 회의, 폭력과 자비, 인내와 신경증을 동시에 가진 분열적인 인물을 현명하게 연기해 내었습니다. &nbsp;영화&lt;엑소더스&gt;의 모세는 신에 대해 끝까지 의심의 눈초리를 내려 놓치 않습니다. 신이 이해 불가능한 절대자라면 모세는 이해불가능한 신의 타자입니다.&nbsp; 두 모호함이 대결하는 국면은 여러 차레 등장합니다. 모세는 처음으로 난 것들을 죽이겠다는 도착적인 신의 결정에 대해 "그것만은 안된다."고 강력하게 항의합니다. 람세스가 죽은 아이를 들고 "이것이 너의 신이냐?" 고 묻는 대목에서 모세는 연민과 죄책감, 그리고 침묵의 깊은 눈으로 항의하는 자에게 정당함이 있다는 암묵적 동의를 보냅니다.<br>&nbsp;영화 속 유대의 유일신 야훼(여호와)는 영화&lt;십계&gt;에서처럼 모세와의 대화를 통해 음성으로 존재하는 신입니다. 영화&lt;엑소더스&gt;는 신의 이해불가능성을 표면에 드러내는 방식으로 신의 존재를 보여줍니다. 영화에서는 어린 아이의 형상을 한 신이 등장합니다.&nbsp;리들리 스콧이 드러내는 신의 가시성은 오히려 신의 줄어든 영향력에 대한 역설적 표현에 가깝습니다.&nbsp; 신이 모호성을 유지하려고 애쓰지만 하지만 결국 모호성의 심연에는 신의 불능성이 있다는 것 입니다. 그렇게 신은 이제 자신을 직접적으로 재현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능을 가리기 위한 방편이었겠지요. 영화&lt;엑소더스&gt;에서 신은 이집트에 내리는 재앙의 출처를 설명하기 위한 설정 이외에 영화에서 비껴 서 있습니다. 왜 유대인을 구하려하는지, 왜 모세를 선택했는지 설명이 없습니다. 오히려&nbsp;급한 성질의 모세를 자극하거나, 그를 몰아세우곤 하는 신경증적인 신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모세가 낙상한 이후 일종의 후유증 속에서 신을 만나는 듯이&nbsp; 설정함으로써 신은 망상 속에서 존재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 일으키게 합니다. 신과 이야기하고 있는 모세를 바라보는 시선은 분열증 환자의 대화같아 보이기까지 합니다.리들리 스콧은 &nbsp;신을 축소한 빈 공간에 이 현대적인 모세를 기입함으로써 이 영화를 주도해나가게 합니다. 이 지점을 예리하게 공략한 것은 리들리 스콧이 홍해의 기적을 영화&lt;십계&gt;와는 다른 방식의 사실주의적 방식으로 재현한 것만큼이나 탁월합니다. 물론 그 역시 영화의 가장 강력한 하이라이트인 갈라졌던 홍해가 다시 봉합되는 장면에서는 판타지를 100%활용합니다.<br>&nbsp;모세가 가진 현대적 속성와 그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 잠시 철학적 사유를 활용해야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모세-신-유대교가 중심 주제어가 될 것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lt;죽은 신을 위하여&gt;에서, 유대교와 이교, 그리고 기독교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그 중 유대교가 가진 특징은 신을 가시적 영역에서 몰아냅니다.십계명에 있는 형상의 금지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는 과정은 신의 의도 자체의 불투명성과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합니다. 지젝은 '불투명한 타자의 욕망과의 대면' 이라고 말합니다. 지젝은 인간이 자유로와지는 지점이 이런 대면을 통해서라고 말합니다. 니체적으로 말하자면, 신의 섭리라는 안정감 보다는 자유의 불안을 향유하는 위치를 얻게 된다고 보면 됩니다. 리들리 스콧에 의해 다시 아이의 옷을 입은 신에게 영화&lt;엑소더스&gt;에서 모세는 여러번에 걸쳐 신의 욕망, 의도를 묻습니다. 그 때마다 신은 질문에 다시 질문하기 방식 또는 모호하게&nbsp; 답을 피해가는 우회 전략을 택합니다. 전능한 신이 드러내는 것은 일종의 '무능함'이었습니다. 400년 이상의 유랑 세월을 한 번에 구제해내지 못하는 무능, 또 몇 번의 재앙이 실패로 돌아가는 허약한 전술 , 구해낸 민족이 환락과 쾌락에 빠지게 되는 모순 등은 신이 무언가 계속 실패하고 이를 그 때 그 때 수습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습니다. 유대인의 구출 역시 궁극적으로는 람세스라는 법의 이름을 통하지 않고 불가능 했습니다. 법을 매개하지 않고는 이루어지지 못하는 역능은 결국 무능이라는 단어로 밖에는 설명하기 힘듭니다.&nbsp;<br>&nbsp;전능의 신에게는 이 모든 게 단 한 번의 재앙으로도 가능했을텐데 말입니다. 지젝이 보기에 유대교가 다른 종교와 달랐던 첫번째 차이는 유대인들이 '신의 무능'이라는 비밀을 알아내었다는 것입니다. 영화 속에서 모세 역시 신의 무능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다고 추론해보게 됩니다. 모세가 끝까지 신의 충직한 신민이 되기 보다는 무언가 고독한 반항아, 회의주의적 배가본드로 보이는 이유는 그래서입니다. 지젝은 구약의 욥이 깨우친 것이 신이 내리는 고통이 가진 무의미함이었다고 말합니다.&nbsp; '최초의 이데올로기 비판'이 되는 것이지요. 통상적 해석에서는 고통은 시험이라거나, 더 큰 행복을 위한 과정이라는 식의 원인-결과론이 존재하는 반면 고통의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고통은 무의미합니다. 오로지 고통 그 자체가 자연주의적 의미로만 남는 것이지요. 고통이 신의 사랑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면&nbsp; 고통이 무의미한 것이라면 신의 의미조차 의문이 됩니다. 영화 속에서 모세는 신이 가한 고통이 결국 무의미한 행위의 반복에 지나지 않았음을 이해하고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지점은 &nbsp;정치-신학적 비판요소가 자리잡게되는 영토가 될 수 있습니다.<br>비록 유대교가 신이라는 이해불가능한 타자의 욕망과의 접촉을 통한 자유를 얻었다고 하더라도 유대교는&nbsp;대리 보충물들을 이용하게 됩니다.유대인들의 관례나 의례등이 그것이겠지요. 논의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반면 기독교는 모든 것을 말한 종교, 즉 계시의 종교가 됩니다. 지젝에게 중요한 것은 모든 것이 계시된 '사건' 이후를 충족 시켜 나아가는 일종의 결단주의적 성격이 기독교가 가진 윤리성과 보편성의 근원이 된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보증하는 강력한 &nbsp;언설은 신 스스로의 자기 부정이었습니다. 즉 이 구약의 불명확성의 신은 이제 스스로를 부정하는 유래없는 방식을 취합니다.("주여,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nbsp;라는 십자가 칠언을 통해 )대단히 독창적이고 또한 도착적입니다. 기독교가 보편성을 재획득하는 방식은 메시아를 실재계로 남겨두는 유태의 방식이 아니라 메시아의 재림 이후의 삶을 우리가 살고 있고, 그것을 꾸려나가는 공동체적 윤리적 보편성이 이를 추동하며 또한 그 재림의 결과를 완성할 수있다는 태도입니다.<br>&nbsp;유태인 모세는 &nbsp;홍해를 건너고 나서도, 신의 능력을 보고 나서도 새로운 세계에 대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습니다.&nbsp;모세는 그런 면에서 신의 죽음까지는 아니어도 신의 무능과 그 이후에 대한 역사적 고민이 투여된 현대적 모세상입니다. 영화&lt;다크나이트&gt;에서 선/악의 본질에 대한 존재론적 고민에 빠진 영웅이라는 새로운 캐릭터를 잘 표현해낸 크리스천 베일은 이 영화&lt;엑소더스&gt;에서도 심연에 어떤 모습이 숨겨져 있는 지를 드러내지 않는 영웅상을 잘 소화해내었습니다. 모세-신 관계 속에서 베일의 깊은 눈 속에서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것은 없습니다. 어쩌면 모세는 신과의 끊임 없는 줄타기 속에 -본인 스스로도 확신 할 수 없었던- 존재했던 해방의 리더가 아니었나 싶습니다.<br>하지만 리들리 스콧이 줄곧 회의적 유신론자의 태도를 취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현대적 모세 속에 신의 양태를 범신론적으로 해소시키려는 단면이 드러나곤 합니다. 범신론에서는 신이 세계의 창조와 더불어 세계의 사물에 투여되는 방식으로 자신을 소멸시킵니다. 그리하여 신을 뜻하는 "모든 곳에 있으며 어디에도 없는" 존재가 만들어 질 수 있습니다. 모세가 스스로 유태인임을 인정하는-내적으로 공감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장면에서 범신론적 신의 존재가 드러납니다. 람세스는 어린 시절 유모의 팔을 자르는 폭력적인 예비 행위를 통해 모세의 정체성을 입증하라고 합니다. 왕족으로 자라났고, 수 많은 전투에서 살육을 했던 모세에게, 노예 신분인 유태인 하녀는 하나쯤 죽어도 별반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설령 그가 친누나일지 아닐지 모르지만 말입니다. 모세는 여기서 그녀의 죽음을 "그렇다. 나는 유태인이다."라는 선언을 통해 막아 냅니다. 영화 속에서 이 장면은 불필요한 죽음을 막기 위한 모세의 윤리적 행동으로 그려지기는 합니다만, 이 선언은 또한 모세를 이집트 왕자에서 유태인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됩니다. 모세는 끈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의심하지만, 이 선택에 대한 충실성이라는 윤리적 결단주의의 방식으로 자신을 추동해냅니다. 우리가 영화 속에서 만나는 모세는 유태인이 아니었을 수도, 또는 유태인일 필요도 없었을, 신이 선택한, 또는 신의 선택을 충실하게 이행을 통해 완성하려고 한 정치가였을지도 모릅니다.&nbsp;<br>모세를 굳이 유태인으로 볼 필요가 없다는 해석은 프로이트의 것입니다.&nbsp;종교적인 방식으로 수용하지 않는다면 &lt;성경&gt;은 가장 잘 보관된 인류학,또는 신화학의 보고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는 그 중에서도 드라마틱한 성격과 스펙터클을 내재하고 있어서 영화하는 입장에서는 한 번쯤 도전하고 싶은 과제일 것입니다. 모세의 이야기를 아시는 분들은 이 이야기의 서사구조가 고대 영웅 신화의 많은 것들과 겹쳐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아이의 유기- 구조- 성장- 자기 정체성 확인- 모험- 고난의 극복-영웅의 귀환" 이런 반복되는 서사가 모세의 이야기에도 들어있습니다. (모세는 '강에서 주운 아기'라는 뜻입니다.) 즉 가장 오래된 내러티브 형식인 셈입니다.&nbsp;프로이트는 &lt;모세와 일신교&gt;에서 모세가 이집트 말기 유일신(태양신)을 섬기는 이집트 귀족이었다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다신교를 전통으로 하는 이집트 기득권 세력과의 투쟁 중 일종의 지지기반으로서 억압 받는 유태 민족을 포섭하여 새로운 땅으로 향한 것이라고 파악합니다. 즉 유태인의 유일신 사상은 이집트로부터 나온 것이라는 거죠. 그리고 모세가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것은 일종의 초기 국가건설을 위한 일종의 시원적 폭력의 공동체적 희생양(르네 지라르)으로 해석될 여지를 둡니다. 공동체의 구성에는 두 가지의 과제가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과의 동일시이고 또 다른 하나는 외상적 판타지의 공유입니다. 영화 &lt;엑소더스&gt;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브레드 피트의 영화&lt;퓨리&gt;를 보면, 탱크 분대장인 브레드 피트가 선량한 신입 병사 로건 리먼에게 강제로 나치를 살해를 종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그리고 점점 이 신입은 탱크 부대의 일원이 됩니다. 전장의 공동체에 필요한 &nbsp;외상을 공유하지 않는다면 타자에 의한 살해되든지, 공동체 내부에서의 살해되든지 어쨋거나 생존을 도모할 수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프로이트의 논리로 가면 이집트인 모세는 정치적 결합을 통해 유대인을 해방할 수 있는 리더였고 공동체의 전통을 수용할 수도 있었지만, 깊고 깊은 외상적 판타지까지 유태인과 공유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모세는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일은 공동체 내부 출신인 여호수와의 것이지요. 모세를 죽인 그 시원적 국가건설의 폭력에 대한 보완물이 바로 모세를 일종의 선지자로, 신의 대리자로, 신화의 주인공으로 만들었다는 것이 프로이트의 모세에 대한 신화적 분석의 요체입니다.<br>&nbsp;이런 해석으로 보자면 굳이 모세를 현대적 인물상으로 재현하지 않더라도 모세라는 인간 자체가 대단히 외부적이고, 이질적인 존재였다는 점은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입니다. 그런면에서 모세를 영화&lt;십계&gt;처럼 충실한 하나님의 전달자로만 바라보는 관점보다 리들리 스콧의 복합적이면서,경계에 선 인물, 끊임없는 회의 속에 살아야 하는 인물로 그린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듭니다. 거기에 거대한 스케일을 누구보다 잘 요리할 줄 아는 헐리우드의 거물인 그가&nbsp;여기에 손을 댄 것은 신의 축복을 받을 만한 일입니다. 영화 속에서 리들리 스콧은 압도적 스케일로 출애굽기를 완성합니다. 그는 스페인 등지에 &nbsp;거대한 세트장을 만들고 이집트의 신전이나 조형물들을 고증에 입각해 재현합니다. 이집트 의상이나 장식품들의 화려함 역시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을 만큼 아름답습니다. 또한 마차를 비롯하여 무기류 등의 소품 역시 말할 필요도 없겠지요. 의 CG 역시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하지만 사실성의 구현을 우선으로 생각합니다. 만화&lt;슬램덩크&gt;의 명명대사를 인용하자면.. "CG는 거들 뿐입니다." &nbsp;현대의 발전된 CG기술 덕분에 60년 전 영화&lt;십계&gt;에서 생략했던 개구리 떼나 메뚜기 떼같은 재앙들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재앙들이 대단히 스펙터클함에도 그 비주얼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는 방식들도 효과적입니다. 욕심을 제어할 줄 아는 태도는 오랜 경험이 만들어낸 거장의 복식호흡이 아닐까 싶습니다.&nbsp;<br><br>사족) 1. 종교에 대한 논쟁이나 종교적 해석의 정당성을 다루는 이야기가 아니니까 종교인들께서는 그다지 분개하실 필요 없습니다. 참고로 저는 종교가 없고, 거기에 더하여 유물론자이기까지 합니다. 물론 종종 기분을 깨고 싶어하지 않는 이들 앞에서는 범신론자 행세를 할 때도 있습니다. 범신론자인 척 행세하면 괜히 너그럽고 포용력이 강해보이는 -완전히 대중문화 현상일 뿐인데도- 그런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nbsp;2. 브레드 피트의 영화&lt;퓨리&gt;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점은... 퓨리 분대의&nbsp;&nbsp;캐릭터가 우습게도 곧 개봉하는- 저와 저희 집 아이들이- 너무나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lt;마다가스카의 펭귄&gt;과 그대로 닮아 있었다는 점입니다. 두고 보시면 곧 패러디물 나올겁니다. 아시는 분은 이 우스운 비교에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영화&lt;퓨리&gt;속에서 단순 무식한 포탄장착병은 애니메이션&lt;마다가스카의 펭귄&gt;에서는 니코입니다. 신입병사 로건 리먼은 당연히 착한 프라이빗이죠ㅋㅋ, 과학자 코왈스키는 퓨리에서는 독실하고 진지한 샤이아 러버프가 맡습니다.)<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1206/pimg_777882183111384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258955</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북플이란게?</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227860</link><pubDate>Thu, 27 Nov 2014 10: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7227860</guid><description><![CDATA[북플인 뭔가 하고 있는데...알라딘 상단 오른쪽에 가입을 신청하는 배너가 떠있다.아래로 동그란 원 안에 아는 서재인들의 이름이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계속 스크롤된다.<br>아래 한 가지씩 금메달을 달고 있다.<br>서양철학의 1위 달인...동양고전의 1위 달인...000의 1위 매니아...<br>&nbsp;매니아란 말은 내게 '덕후' 같이 들려서 섬찟하다.예전에도 있었던 서재 무슨 무슨 순위 같은 것을 조금더 분화하고 자극적으로 만들었다그러니까...이제 각자 열심히 달려 보세요.<br>&nbsp;1위는 1위를 고수하기 위해서, 2위는 한 번쯤&nbsp;전교 1등 이겨보기 위해서....<br>최소한 나는 다시 고등학교로 돌아가고 싶진 않다.]]></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amp;lt;나를 찾아줘&amp;gt;(Gone girl,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183729</link><pubDate>Sun, 26 Oct 2014 23: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7183729</guid><description><![CDATA[영화&lt;나를 찾아줘&gt;(Gone girl, 2014)&nbsp;<br>스릴러의 주인공은 인물이 아니다. 사건이다. 사건들의 씨실과 날실이 주인공이다. 영화의 오프닝 크레딧이 등장하면서 베틀이 삐꺽거리며 움직인다. 욕망이 사건의 이름으로 몸을 부르르 턴다. &nbsp;곧이어 영화는 인물들의 시선과 욕망에 따라 숨가쁜 교차 운동을 진행할 것이다. 데이비드 핀처의 &lt;나를 찾아줘&gt;는 160분이 넘는 시간동안 관계의 강박에 대한 타피스트리를 엮어 낸다. 시끄러운 데뷔작이었던 &lt;에이리언3&gt;에 이어, &nbsp;&lt;쎄븐&gt;,&lt;파이트 클럽&gt; 등의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으로 장르계의 장인 반열에 올랐던 그이다. 이번 영화&lt; 나를 찾아줘&gt;에서 핀처는 현대인의 욕망과 타자성 그리고 강박증을 스릴러의 형식을 통해 풀어 낸다. 그가 찾아낸 장소는 가장 가까우면서도 또한 가장 먼 거리를 가진 부부라는 이중성의 공간이다. 어떤 이들에게 이 공간은 -비록 매우 소수이겠으나- 베아트리체의 천국이 될 것이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연옥으로 오인된 곳이거나, 또는 림보(limbo)이거나, 더 많은 사람들에겐 지옥 그 자체이다. 안타깝게도 주인공 닉 던(벤 에플랙)은 &nbsp;단테 알레기리와 다른 방향으로 이를 경험하게 된다. &nbsp;<br>영화에서 부부의 공간은- 영화적으로도 상징적으로도- 중요하다. 영화의 중심적 배경이 되면서, 또한 욕망과 관계의 엇갈림이 만드는 거리감이 생성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nbsp;부모가 쓴 '어메징 에이미'라는 성장소설의 주인공이기도 한 에이미 던(로자먼드 파이크) .그녀는 소설의 모델로 어려서부터 셀레브레티였다. 그런 그녀가 매력적이지만 성공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닉과 결혼한다. 그리고 뉴욕에서 닉의 고향인 미주리로 이사한다. 이 둘은 아름다운 2층 집에 산다. 하지만 해자( 垓字) 건너편 &nbsp;동경의 시선으로만 존재하는 중세 성의 내밀성처럼, 이 부부의 공간은 절대적 타자들의 공간이다. 자유주의적 &nbsp;개인주의가 만든 근대 세계에서 우리는 흔히 사생활이라는 이름하에 가족의 공간을 할당 받고 보호받는다. 즉 이 곳은 생의 욕망 피라미드에서 가장 기초적인 안정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곳이다. 또한 노동력의 안정적 재생산의 요체로서 일종의 침범할 수 없는 배타적 공간이다. 이 절대적 공간 속에는 두 명의 남녀, 즉 친밀성과 거리감이 하루에도 수 없이 교차할 수 있는 또 다른 절대적 타자가 존재한다. 사건을 추동하는 강박증적 욕망의 시선은 이 집 내부에서 있는 두 명의 타자들 속에서 1차적으로 발생한다. 그리고 2차적인 시선은 이 집 자체를 -즉 에이미의 실종사건- 바라보는 여론이라는 시선 속에서 발생한다. 즉 욕망이 집이라는 공간을 두고 내부/외부 사이에 충돌하고 있으며 이 둘이 상호참조적으로 반응한다. 사건의 중심 인물인 에이미는 이 자신과 타자들의 욕망이 가진 상호참조성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다. 그녀의 범죄는 약간의 클리쉐처럼 범죄소설을 탐독한 결과이고, 그 결과물은 사건과 사건의 해결방식이 결국 욕망의 거대 서사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발적 사건을 통해 사건의 방향이 바뀌게 되었을 때도 그녀는 지속적으로 일종의 대타자와의 상호참조를 놓치지 않는다. &nbsp;<br>핀처가 이 두 욕망의 매개를 각자의 시점을 통해, 그리고 미디어의 시선이라는 &nbsp;부부의 타자가 되는 시선을 통해 교직하는 방식은 뛰어나다. 특히 매력적인 지점은 이 수많은 타자들의 시선이 가진 희극성을 &nbsp;메인 요리 위에 뿌리는 검은 후추처럼 블랙 유머의 요소로 끌어들인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화 &lt;나를 찾아줘&gt;의 식감이 완성된다. 이 살짝 살짝 씹히는 검은 후추의 맛은 이 영화의 전체적 긴장감을 이완시키는 요소이면서 또한 장인의 손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매혹의 포인트이다.&nbsp;<br>영화 속에서 욕망의 가장 중심인물은 에이미다. 그녀의 삶은 베스트셀러 소설 속에 이미 선행되어 있었다. 영화 중반부 '어메이징 에이미가 실제 에이미보다 앞서간다.'는 대사가 나온다. &nbsp;에이미의 삶은 &nbsp;어머니의 욕망- 영화 속에서 아버지의 존재는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즉 그녀의 존재는 일종의 '어메이징 에이미'라는 상상계 속의 거울 안에 머물러 있다. 영화는 이 상상적 관계성의 일치가 일종의 절대적 타자를 만나게 되면서 강박증으로 드러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녀의 모든 연애는 일종의 타자와의 접촉이고 이것은 늘 실패로 끝났다. 물론 스릴러의 모든 역사가 그렇듯이, 에이미의 증상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에이미에게 상징질서들은 적응하고 내면화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오로지 저항하거나 이용해야하는 도구들일 뿐이다. 그녀는 거울 속으로 프레임화된 자신의 모든 욕망에 최대한 충실하다. 사랑 또는 결혼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와의 접촉이 생겼을 때 발생하는 변화들에 대해 강력한 자기생존의 저항선을 긋는다. 즉 라캉식으로 말하자면, 상징 질서의 주체는 빗금쳐져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녀는 상상계 속에서 그 상상계를 유지하기 위해 타자에 빗금을 긋는 방식을 택한다. &nbsp;<br>그녀가 여기에 &nbsp;동원하는 것은 더 큰 타자의 욕망과 시선이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는 그녀가 어린 나이부터 셀레브레티였다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 또한 실종 첫 날부터 기자회견이라는 방식을 통해 에이미의 실종을 스펙터클화하는 부모들의 태도로 부터 미루어 &nbsp;짐작할 수 있다. 그녀에게는 불특정 다수의 시선은 삶을 이루는 중요한 무엇이 될 수 있겠으나, 구체적 개인들은 소거된다. 에이미는 영화 속 현재 속에서 어떤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는다. 관계의 기호성 지수 0 이다. 그녀가 관계를 얻을 수 있는 방식은 타인의 시선으로부터 도망가 있던 때뿐이다. 퍼팅 연습하는 아주 짧은 장면이다. 모르는 두 남녀와 잠시 함께 있는 이 장면에서 핀치는 에이미의 유일한 &nbsp;타자와의 접촉을 -익명성으로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내 영화적 터닝포인트로 활용하고 그녀의 접촉을 재앙화시켜 버린다. 즉 그녀는 애처롭게도 어떠한 관계성 자체도 맺을 수 없는 존재로 남게 되는 것이다. 그녀는 이제 절박해진다. 영화의 분기점이 되는 사건이다. 비로소 그녀는 상상계의 환상을 유지시킬 수 있었던 유일한 방식 즉 '죽음충동' 의 낭만성을 포기한다. 그녀는 이제 냉정하게 상징질서와 상상계 사이를 순환하는 뫼비우스의 띠를 발견한다.&nbsp;흥미로운 것은 닉이다. 닉은 아름다운 아내 덕에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처럼 보여진다. 상황파악 못하는 곳에서 썩소도 날리고, 어린 제자와 불륜도 저지르고, 결혼생활의 불만도 극도에 닿아 있다. 그렇다고 목을 매달아야 되는 정도의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곧 그렇게 될 운명에 처해진다. 약간 허당기 있어 보이는 이 인물은 사건의 과정에서 반짝이는 몇 몇 모습을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은 수동성이다. 필름 느와르의 남자 주인공들이 가진 우수와 우울증은 보이지 않는다. 그는 사건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를 오고 가지만, 영화 초반부를 제외하면 영화는 그를 고군분투하는 피해자의 시선에서 접근한다. 영화에서 가장 큰 아쉬움 중에 하나는 바로 닉의 수동성이 그 일관성이다. 물론 이 인물은 마지못한 상황에 소극적 방식으로 대처하기는 한다. 허나 그가 가진 내적 일관성을 위해서 포기해야 했던 것은 인물인 만들어내는 극적 긴장감이다. 일종의 거세당한 현대의 남성성을 포여주는 것 같은 인물로서 드러나는 닉은 사건에서 단 한번을 제외하면 능동적 주체가 되지 못한다. 그가 불리한 상황에서 인터뷰를 통해 분위기를 전환하는 것이다. 그가 택한 전략은 에이미에게 까지 효과를 발휘한다. 그것은 에이미의 깨어진 상상계의 거울에 새로운 거울을 들어주는 방식이었다. 닉이 가진 유일한 일격이자, 닉의 입장에서 보자면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방식이다. 그렇지만 그의 전략이 가진 효과는 결국 다시 그를 더욱 강하게 옮아매는 방식으로 돌아온다. 그런면에서 그의 유일한 능동성은 그를 더 깊은 수동성으로 포획하는 자승자박의 실패한 전술이 된 셈이다.&nbsp;<br>영화의 서사는 결국 에이미의 실종과 에이미의 귀환의 과정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녹록치 않은 실종이며 또한 쉽지 않은 귀환이다. 이타카로 돌아오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닌 법이다. 하물며 자아/타자를 동시에 파괴하려는 원대한 욕망을 가졌던 이의 귀환이라면 더더욱 만만치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이에 사건들의 연쇄가 있었다.사건을 바라보는 수많은 시선들 있다. &nbsp;이들은 집 앞에 모인 수 많은 중계차들, 선정적인 TV 토크쇼, 에미미를 찾기 위한 자원봉사자들의 모임 등으로 존재한다. 즉 구체적인 개인으로 호명되는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에이미가 도구적으로 이용한- 좀 더 친숙하게 말하자면, 호구로 이용한 사람들을- 이들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렇게 구체성을 띠지 않은 인물들은 존재하지만 포획될 수 없는, 유동적인 대중의 욕망 그 자체 상징한다. 닉은 시니컬하게 "좋아하다가, 증오하다가, 사랑한다."라고 이 욕망의 속성을 표현한다. 상황주의자 기드보르는 &lt;스펙터클의 사회&gt;에서 스펙터클에 대해 &nbsp;"사람들로 하여금 다양한 전문화된 매개체들에 의존해서 세계를 바라보게 하는 경향" 이라는 정의한다. &nbsp;에이미의 욕망과 대중의 욕망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그곳이다. 에이미 귀환 과정이 이루어지는 결정적 계기에서 그녀는 자기가 도구적으로 활용하고 계획했던, 스펙터클의 이미지를 스스로 참조하는 방식을 택한다. 그녀의 세계는 상상적으로 완결된 세계이다. 즉 그녀에게는 절대적 타자라는 개념이 없다는 뜻이다. 오로지 그녀에게 존재해는 타자란 스펙터클화된 타자, 즉 자신의 존재 자체를 스펙터클화하고 또 세계 그 자체를 이미지화한 그곳의 주민들이다. 이 만남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강박 그리고 구체적인 내밀성까지 침입한 그곳에서 '그녀는 사라졌다.'<br>대단히 긴 영화 시간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그다지 지루하지 않다. 시점의 교차가 중요한 역할을 맡기도 했고, 핀처가 군데군데 깔아 놓은 시니컬한 유머코드들도 재미를 더했다. 스릴러 영화가 가져야 하는 사건 전개의 논리적 빈틈들은 꽤 있어보인다. 약간 허당까가 있다. 영화에서 논리적 빈틈을 찾는 것은 사실 좀 허접해보이기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사건 자체가 주인공이라면 사건의 얼개가 좀 더 치밀했어야만 했다. 에이미가 자살 결정을 번복하는 과정이나, 그녀의 배치물들이 효과를 발휘하고 또는 의심을 사는 과정들이 치밀하지 않다. 어떤 심리적 변화요인들을 이미지화하지 않는다. 종종 등장하는 축약형 나래이션처럼 그렇게 사건 자체를 압축시키는 요소가 있다. 마지막 중요한 사건에서 에이미의 살해동기와 과정 역시 인과율이 떨어진다. 그녀의 악행을 드러내기 위한 그녀의 노력만이 부각되고 있다. 살인의 추억이 없는 셀레브레티가 마치 &lt;원초적 본능&gt;의 얼음 송곳녀처럼 단호하고 확실하다. 또한 CCTV 알리바이 조작 장면은 인과율 측면에서는 거의 치명적이다. 초호화 주택의 CCTV는 필요한 살인 장면만 찍는다는 말인가? &nbsp;FBI가 바보도 아닌데 전국민적 관심사가 된 인물과 연관된 살해 사건이 일어난 집에 그 수많은 CCTV 화면을 스캐닝도 하지 않을 수 있는가...그녀가 납치되었었다는 한 달간 CCTV 녹화 장면 확인하면 그녀는 곧 구속될 것 같다. 핀처는 블랙 코미디 스릴러를 만들려고 했는지도 모르겠다.<br>영화 속 두 주인공 벤 에플랙은 약간의 허당 이미지를 잘표현해 냈다. 그의 넓은 어깨는 단단하고 강인한 무엇이 아니라 아내와 쌍동이 여동생, 어린 제자, 그리고 흑인 변호사에게 조언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는 어른-아이의 모습 그 자체다. 스릴러 영화에 나온 심각한 아담 샌들러 동생쯤으로 보인다. &nbsp;에이미 역의 로자먼드 파이크는 데이비드 핀처덕에 계 탓다. 희대의 악녀라는 샤론 스톤은 파이크에 비하면 너무 천박했다. &lt;보디 히트&gt;의 캐서린 터너급이다. 로자먼드 파이크는 떡이라도 돌려야될 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1026/pimg_777882183109129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183729</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amp;lt;옥수수섬&amp;gt; (Corn island)</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168529</link><pubDate>Sun, 12 Oct 2014 08: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7168529</guid><description><![CDATA[영화&lt;옥수수섬&gt;(Corn island) (2014)<br><br>섬이 있었다. 작은 섬이다.<br>&nbsp;어쩌면 섬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잠시 모습을 드러내고 사리지는 일식같은 땅이다.&nbsp;드러냄과 숨김을 내재하는 강 위의 검은 대지. 해마다 강이 범람하면 반복되는 시간의 퇴적물이 작은 섬을 만든다. 인근의 농부들은 이 곳에 옥수수를 심는다. 그리고 수확이 끝나면 농부들은 떠난다. 섬도 다시 범람 하는 물 아래로 사라진다. 하이데거가 말하는 진리의 심연이 드러냄과 숨김을 반복하듯이.<br>영화는 &nbsp;새로 생긴 섬에 도착하는 늙은 농부의 모습을 따라간다. 특별한 움직임은 없다. 마치 밥을 먹기 위해 숟가락을 찾듯 일상적인 움직임들이 포착된다. 농부는 손으로 흙을 비벼본다. 땅을 조금 파본다. 작은 파이프 조각 하나를 줍는다. 배를 묶기 위해 나무를 박는다. 타르코프스키의 &lt;희생&gt;에 나오는 나무처럼 섬 가운데 잎을 떨군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이제 당분간 거처하게 될 집을 짓기 위한 노력이 시작된다. 집터를 잡는다. 네 귀퉁이에 나무를 놓는다. 사각의 공간에 잠시 누워서 하늘을 보고 잠이 든다. 다시 일어나 기둥을 세운다. 수평을 잡는다. 마치 세트를 만들듯이. 일련의 모든 과정이 마치 흘러가는 강물처럼 무심하게 진행된다. 카메라는 섬 안에서 또는 섬 밖에서 도도한 강물처럼 어떤 생색도 내지 않는 일련의 동작들을 포착한다. 자연의 무심함과 농부의 무심함이 교차한다. &nbsp;진화적으로 오래된 이 관계에서는 오로지 침묵만이 소통의 언어가 된다.&nbsp;영화의 첫 번째 대사는 20분이 지나서이 등장한다. 대화라고 하기에는 짧고, 독백이라고 하기에는 긴. 할아버지와 소녀의 단답형 대화. 침묵을 깨는 첫번째 대사가 나오기 까지 영화는 이미지들의 이야기로 시공간을 채운다. 마치 '말씀' 이전에 이미지가 있었던 것 처럼 관객들을 이미지의 다이얼로그 속에 놓여진다. 풍부한 시각 이미지와 청각 이미지들...그리고 고요함 속에 무수한 진동을 이루어내고 있는 운동하는 이미지들까지. 조금도 첫 인간의 목소리를 빌린 대화가 기다려지지 않는다. 20분의 이미지들의 느린 충돌 속에 짧은 대화, 그리고 또 다시 침묵이 이어진다. 다음 번 대화도 20분 정도 뒤에 나온다. 두 번째 침묵은 이제 이미지들의 향연보다는 이미지로 표현되는 내러티브를 예견한다.&nbsp;<br>&nbsp;'옥수수섬'은 영화속 배경이자 유일한 공간이다. 그리고 극의 주인공이다. 이 공간은 마치 연극의 무대와도 같다. 영화는 인위적일 수 있는 공간 설정을 자연의 흐름과 반복성이라는 유장함 속으로 희석 시킨다. 그리하여 공간적 폐소라는 한계를 시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의 무대로 바꾸어 놓는다. 예를 들어, 주인공들은 영화 내내 단 한번도 이 섬을 벗어나지 않는다. 시선 조차 이 섬을 넘지 않는다. 모든 내러티브와 서사와 인물, 그리고 과거와 현재가 이 섬에 봉인된다. 할아버지를 따라 섬으로 들어온 손녀, 그녀의 시선만이 유일하게 섬 너머를 단 한번 힐끗 바라본다. 외부로 향한 시선은 그것이 유일하다. 영화 속에서 주인공들은 종종 섬 바깥으로 나간다. 목재를 가져오기 위해, 음식물들을 가져오기 위해 밖으로 나간다. 이 섬은 잠시 머무는 곳이고 이들은 인근 마을 어딘가에서 온 것이다. 이들은 밖으로 나가지만 이어지는 숏은 섬으로 들어오는 배의 모습이다. 마치 외부 세계는 연극 무대의 뒤 쪽처럼 존재한다. 관계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라지는 곳이다. '옥수수섬' 인근에는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이웃이 있다. 영화 속에는 등장하는 그 타자들은 섬 건너편에 있는 군인들이다. 이들의 존재 역시 총소리라는 청각이미지로 또는- 본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 이전에는- 일상적인 순시라는 행위들을 통해 존재한다.감독의 입장에서 일종의 축약도로서 압축된 섬이라는 공간은 결국 감독이 전달하고 싶은 이야기를 그릴 수 있는 캔버스가 된 셈이다.&nbsp;<br><br>그렇다면 감독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었던 것일까?우선 영화의 초반부와 후반부를 이끄는 것은 거대서사는 일종의 자연과 인류사의 압축도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반복되는 순환구조 위에 작은 섬이 놓여있다. 이 섬은 현재 유일한 존재자이고 새롭게 만들어진 것이지만 또한 원형질의 기억을 담고 있는, 즉 과거를 보편성의 이름으로 포괄하고 있는 공간이다. 초반 시퀀스는 그래서 수렵에서 농경으로 돌아온 인류의 태초 문명사를 상징하는 듯 진행된다. 퇴적으로 만들어진 섬 위에서 원형의 시간으로 부터 그리 멀리 떨어져 나오지 않았을 농부의 시간이 포개어진다. 두 층의 시간을 것은 무심함이다. 마치 태양이 뜨고 다시 떨어지는 것처럼, 생을 마친 생명이 꺼지고, 그 시간에 또 다른 꽃이 피는 것처럼 말이다. 자연주의적 무심의 공존. 시간의 영원성이 만들어내는 심연의 숭고가 작은 섬의 이미지 속에 들어가 있다. 그리고 압도적인 영화의 결말은 영원한 심연이 만드는 파국과 생성의 영원한 실천이다. 파국의 시퀀스에서 카메라는 단 한번도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다. 자연에 대응하는 어떤 시급한 즉물성만이 남는다.&nbsp;예를 들어 섬을 떠나가는 소녀의 모습은 멀어지는 뒷모습만으로 남는다. 화면의 좌측에서 천천이 사라진다. 클로즈업이나 인물에 다다가는 카메라는 없다.&nbsp;사건은 남지만 감상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떤 애상도 애련도 애도도. '야생의 것들이 자신에게 미안해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라고 말하는 D.H 로렌스의 싯구처럼 카메라는 이들의 상황을 긴박하지만 담담이 그려낸다. 생장과 욕동으로 충만했던 섬은 흐르는 물로 사라진다. '모든 굳어진 것들이 사라지듯' &nbsp;대지의 파국, 대지의 흩어짐을 이렇게 사실적으로 잡아낸 장면도 드물 듯 하다.&nbsp;인간의 내러티브가 다시 섬의 내러티브, 자연의 거대한 서사로 돌아 온것이다. 그리하여 영화의 주인공이 진정으로 섬이었음을 재인한다. 즉 파국-소멸- 생성의 섬만이 유일한 주인공이 된다.&nbsp;영화는 거대한 소멸 이후에도 다시 삶은 시작되고 반복될 것임을 알려준다. 일종의 영원회귀다. 또다른 분산과 이합 그리고 다른 시공간에서 이들의 삶과 기억은 또 자연과 역사라는 무한한 익명의 이름으로 포개어진다.<br>영화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 이러한 니체적인 순환론 구조라면 영화 중반부의 긴장과 사건을 만들어내는 것은 프로이드적 리비도다. 영화 초반부 등장하는 사춘기 손녀는 이 영화의 긴장감이 어디서 발생하게 될 지 예견하게 한다. 그녀가 하는 일상적인 행동,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물과 섬의 경계에서 하는 시소놀이, 섬 바깥을 바라보는 아련한 시선, 섬 너머에서 들리는 총소리, 종종 지나가는 경비선... 영화에서는 아이에서 여인으로 성장하고픈, 또는 성장하게끔 되어 있는 소녀의 '생의 약동'이 억압된 리비도의 형태로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어, 강을 건너온 사슴이 사냥꾼들에게 살해되는 장면이 있다. 그녀는 죽은 사슴의 핏방울 위에 주저앉는다. 노골적으로 초경과 가임의 가능성을 상징하는 장면이다. 소녀가 가지고 온 인형은 이제 벽에 걸린다. 즉 소녀 옆의 자리는 이제 아이의 것이 차지해서는 안된다는 일종의 선언과도 같다. 영화 속에 성적 긴장감은 소녀의 일상적인 행동을 통해서 그리고 군인들의 존재를 통해 드러난다. 그 남성적인 시선들은 폭력적 성의 예감으로 영화 전체에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 영화 속에서 군인들은 일종의 '절대적 타자'이다. 그 이웃은 '하나의 사물'이고 또한 침입자이다. 하지만 군인들의 시선은 좀 더 근원적인 원초적 불안감을 야기할 뿐 소녀의 리비도의 왜곡된 반향으로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들은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지만 직접적인 폭력의 이름으로 침입하지는 않는다. 그런면에서 이웃이라는 군인들의 존재와 시선은 성적 메타포의 맥거핀에 지나지 않는다. 욕망의 흘러넘침으로 인해 긴장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외부의 것이 아니다. 그 중심, 또는 고정점에는 소녀가 있다. 그런면에서 이 영화를 소녀의 시점으로 해석한다면, 일종의 성장영화가 될 수도 있다. 탈영병에게 먼저 성적 에너지를 보내는 것도 소녀다. 하지만 이는 좌절된다. '아버지의 이름' 의 이름을 달고 있는 농부가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그녀가 택할 수 있는 방식은 이 섬을 모두 파멸시키는 것이다. 즉 엔딩부문의 섬의 무너짐은 일종의 부친 살해- 영화 속에서는 할아버지-인 셈이다. 이것은 욕망을 저지하는 &nbsp;법의 이름을 파괴하고픈 소녀의 욕망이 자연의 법칙의 힘을 빌어 이루어내는 존속 살해인셈이다. 소녀의 시점에서 보자면 세계의 파괴는 새로운 성장, 새로운 세계를 위한 조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어떠한 애도와 애상의 클로즈 업도 없이 사라지는 것은 정치적으로 올바르다.&nbsp;그녀는 살아 남는다. 흐릿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던 강의 저편, 산 뒤의 그 곳으로 나아 갔을 것이다.&nbsp;<br><br><br>이 영화는 19회 부산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작품다. 조지아-과거명 그루자아-출신의 게오르게 오바슈빌리 감독이 만든 영화다. 카를로비바리 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이미 여러 영화제에 초청작으로 소개되었다. 영화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화 대신 침묵을, 언어 대신 이미지를 앞세운다. 하지만 침묵과 이미지가 훨씬 많은 메시지를 건넨다. 이를 한정된 공간 속에서 매우 유려하게 구현해낸 점은 감독의 뛰어난 점이다. 특정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사건이기 때문에 장면 구축에 심여를 기울인 흔적이 보인다. 또한 전체 문명사의 축도를 그려내고, 자연과 인간의 관계 또는 그 너머에 대한 생각할 거리들을 영상화한다. 이 점도 훌륭하다. 하지만 영화를 빠져나오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은 앞서 이야기한 자연성으로 포장된 연극적 인위성 이다. 즉 영상과 메시지의 영화적 전략에 어떤 의도적인 견인에의 의지가 느껴진다는 것이다. 영화는 시종일관 조용하며, 관조적인 자연을 대상으로 하여 연출되고 있지만 오히려&nbsp;그 안에 거대한 의지를 독파해내겠다는 감독의 주지주의적 향기가 표면화된다는 점에서 오래된 모더니즘의 전략들이 느껴진다. 영화제는 이런 영화들을 좋아한다. &nbsp;영화보는 즐거움을 느끼게 해주는 수작이다. &nbsp;&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4/1011/pimg_77788218310834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7168529</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중용23장 </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87697</link><pubDate>Thu, 24 Apr 2014 11: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87697</guid><description><![CDATA[중용 23장
&nbsp;

其次는 致曲 曲能有誠이니
&nbsp;
誠則形하고
&nbsp;
形則著하고
&nbsp;
著則明하고 
&nbsp;
明則動하고
&nbsp;
動則變하고 變則化니
&nbsp;
唯天下至誠이아 爲能化니라
&nbsp;
<BR>그 다음은 곡진함으로 이룸이니, 곡진하면 능히 성실함이 있으니, 성실하면 형체가 나오고, 형체가 나오면 나타나고, 나타나면 밝아지고, 밝아지면 움직이고, 움직이면 변하고, 변하면 화하니, 오직 천하의 지극한 정성이어야 능히 화하느니라. (역: 이윤숙)
&nbsp;
정조를 다룬 영화 &lt;역린&gt;에는 중용23장이 나온다. '곡진하다.' 라는 말은 "작은 일에도 매우 성실하다." 라는 뜻이다. 
&nbsp;
무고한 어린 생명들의 사그라짐을 보면서 삶에 대해 생각한다.&nbsp;
&nbsp;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하...참담하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79256</link><pubDate>Wed, 16 Apr 2014 16: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79256</guid><description><![CDATA[점심 때 뉴스를 보니 배는 침몰했지만 99% 이상 구조된 것 처럼 보였다.
&nbsp;
안타깝긴 하지만&nbsp;사망 2명이면 그나마 불행중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nbsp;
&nbsp;
&nbsp;
조금 전 뉴스를&nbsp;보니 오보였다.
&nbsp;
실종 293명 !!!
&nbsp;
참 정신이 아득해진다.&nbsp;
&nbsp;
저 배에 타고 있었을 부모들의 심정을 감히 감히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nbsp;
부디...기적처럼. 두 손 모아 기원한다.
&nbsp;&nbsp;
자꾸 집에 전화를 걸게된다.]]></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예방접종에 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78969</link><pubDate>Wed, 16 Apr 2014 12: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78969</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3721078&TPaperId=697896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20/coveroff/8963721078_1.jpg" width="75" border="0"></a>&nbsp;<br/><br/> 
&nbsp;&nbsp; &lt;예방접종&gt; 
&nbsp;
&nbsp;기본목적은 다 같다.&nbsp;
&nbsp;아이가&nbsp;아프지 않고 건강하게 성장하길 원한다.
&nbsp;
&nbsp;예방접종의 이유
&nbsp;
1) 국가에서 의무적으로 요구한다. ('푸코' 까지 가야 한다)
&nbsp;
2) 남들도 다 한다.&nbsp;(남들이 당신 아이의 인생을 살아주진 않잖아.)&nbsp;
&nbsp;
3)&nbsp;해서 해될 것 없다. (파스칼이 종교를 믿어야 되는 이유를 그렇게 설명했다지. 그런데 '해서&nbsp; 해되는 아이들도 있을 수 있다.' 는 가정은 왜 안할까? 그리고 그게 내 아이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nbsp;
4)&nbsp;의사가 어련이 알아서 해주지 않을까? (당신 정말 순수하고 영혼이 맑은 사람이다.&nbsp;나같은 나쁜 남자들은 그런 걸&nbsp;'X밥' 이라고 하고, 조금 덜 나쁜&nbsp;사람들은 그런 걸 '호구'라고 한다.)
&nbsp;
5) 나도 예방접종 다 하고 잘 먹고 잘사는데 (잘 먹고 잘 사는지는 모르지만 당신 아이들이 당신처럼&nbsp;잘먹고 잘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은가? )
&nbsp;
&nbsp;*** 그리고&nbsp;이게 가장 중요하다. 앞에건 다 썰이다.
&nbsp; 
사실 당신은 예방접종을 모른다. 
의사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nbsp;
그냥 다 하는 것이라니까 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nbsp;
&nbsp;
"7만원짜리 맞을 실래요, 4만원 짜리 맞으 실래요?" 만 묻는다. 그래서 "뭔 차이가 있는데요."라고 물으면 "별 차이는 없어요. 부작용이라는 측면에서 의학적으로 0.001 정도의 안전성 정도"
&nbsp;
"네 7만원짜리요." 로 간다.
&nbsp;
의학적으로 0.0001의 안전성이 무얼 뜻하는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뭐 이런거 바쁜 의사선생님들이 설명해줄리가 만무하다.
&nbsp;
어떤 병원가면, 동시에 두 개의 주사를 맞으라고도 한다. 서로 다른 성분이라서 괜찮다고, 안전하다고 한다. 물론 괜찮을 수 있다. 보편적으로 말이다.
&nbsp;
어떤 사람들은 폭탄주를 10잔 먹어도 끄덕 없지만, 어떤 사람들은 1잔에 얼굴 벌개진다.
&nbsp;
그러니까 당신 아이한테 10잔 먹을 수 있는 주량인지 아니면 1잔 먹고 쓰러지는지
한 번 예의상 물어보고
맞혀라. 그러면 된다.
&nbsp;
그리고&nbsp;당신의 아이가 건강한, 말하자면 그&nbsp;보편적인 상태인지 아닌지 어떻게 아나?
&nbsp;
이런거다. 불임부부-죄송한 말씀이지만-&nbsp;어떤 사람도 자기가 또는 상대가 불임인지 아닌지 알지 못한다.&nbsp;처녀, 총각때 다들 그거 알고 결혼하나?&nbsp; 예를 들어, 내 정자의 활동성을 내가 측정해 봤냐? 
&nbsp;
그런데 어떻게 당신의 아이가 바람직하게도 아주 건강할 뿐만 아니라,&nbsp;정말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nbsp;단정할 수 있을까?&nbsp;&nbsp;밥 잘 먹고, 똥 잘싸고, 잘 논다는 것이 증거가 되진 않을것 같다. 그건 현상적인 문제일 뿐 화학적 약물에 어떤 반응을 할 지 난 잘 모르겠다.
&nbsp;
나도 지금 밥 잘먹고, 똥 잘 싸고, 잘 놀지만...정자 수가 지난 1년사이 108개가 줄었다.
내가 어떻게 알았냐구?
그걸 내가 어떻게 알겠냐?
잠시 삼천포 갔다 왔는데...
&nbsp;
문제는 예방 접종에 대해&nbsp;충분히 알고, 고민하고, 맞히라는 것이다. 
맞히지 말라는게 아니니까 미루어 짐작하여 난리브루스 추지도 말고.
&nbsp;너네 집은 어떤데라고 물어보지도 말고.
&nbsp;
알고 선택하면&nbsp;된다. 정답은 없다. 아는거 귀찮으면 그냥&nbsp;전문가의 손에 넘기구.
&nbsp;
아이들 이유식과 유모차&nbsp;고민은 열라게 하는데 비해
예방접종이나 이런거는 너무나 국가와 전문가를
믿잖아. 
그들은 고결한 순수의 결정체니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954/20/cover150/896372107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9542044</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삶을 통해 알게 된 시시한 것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71717</link><pubDate>Thu, 10 Apr 2014 14: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71717</guid><description><![CDATA[지난 겨울,&nbsp; 오랜 만에 야구공 5개를 던졌다. 
&nbsp;
시속 100km이상 나오면 선물 준다는 이벤트에 현혹되고 만 것이다. 
초등학교 시절, 동네야구에서 빠른 공으로 상대를 압도하던 소년 드팀전이 아직 어딘가에
살아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nbsp;
파란 바구니에 담긴&nbsp;타조알같은 야구공을 만지작 거렸다. '몸도 안풀고 던지면&nbsp;분명 팔에 무리가 갈꺼야' 라는 울림이 마침표에 닿기도 전에 "아빠!! 화이팅! 우리 아빠는 100 넘긴다. 아빠 쌔잖아." 라는 아들의 목소리가 세방고리관을 때렸다.&nbsp;아이들 옆에 있던&nbsp;아내 역시 씨익하고 웃는다. '뭐람 저 웃음은?!'&nbsp;
&nbsp;
속으로는&nbsp;'이거 쌔게 던지면 1주일은 고생할텐데'라는 말이 둥둥둥 거리고 있었고, 발은 이미 투구를 하는 위치로 향하고 있었다. '에이..그래 파스 하나 붙이고 좀 뻐근하고 말겠지' 하는 20대나 생각하는 몸에 대한 너그러운 마음 가짐으로 첫 구를 젓먹던 힘까지 다 해서 쏴-아 하고 던졌다.
몸 속에 있는 모든 혈액이 팔로 쏠리는 느낌이었다. "아...욱" 
&nbsp;
88km...댕댕댕
&nbsp;
바구니 속에는 아직 4개의 타조알들이&nbsp;포크 댄스를 하듯 줄 맟춰 대기 중이었다. 
&nbsp;
'이미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는 심정으로 나머지 3개를 마저 던졌다.
&nbsp;
88km를 넘지는 못했다. 
&nbsp;
마지막 공은 버리는 듯 던졌다. 팔을 절단해야 할 지도 모른다는 만화같은 공포감이라고 해두자.
&nbsp;
병원과 한의원을 오고 가고 있는데&nbsp; 양한방 공통으로 "인대에 무리가 왔다." 는 의사면허도 없는 나도 내릴 수 있는 어마무시한 진단을&nbsp;하얀가운을 탈탈 털며 내려주셨다.
물리치료와 침으로 통증을 잡고 있다. 생활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지만 특정 동작에서 아직도 팔이 결린다.
&nbsp;
오늘 어깨에 침을 꽂고 누워 있다가 갑자기 지금 산 시간 만큼 내가 더 살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했다. 생물학적으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최소한 지금처럼 활발하게 삶을 영위하지는 못할 것이다.
&nbsp;
인생을&nbsp;절반&nbsp;정도는 산 셈이다.
&nbsp;
지금부터 중요하다. 
인생의 절차탁마를 통해 찾게된 삶의 진실이니까...
&nbsp;
1) 지금 인생에서 만나는 것들의 진정한 아름다움, 
&nbsp; 그 아름다움의 일회성을 지금&nbsp;자각하고 간직할수 있는 자는 행복하다. 
&nbsp; 
2) 까불면 다친다.
&nbsp;&nbsp; 최소한 시간 지나면 쪽팔린다.
&nbsp;
40년 넘는 시간 동안 겨우 이거 알았다. 우둔하니 별 수 없다.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허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67728</link><pubDate>Mon, 07 Apr 2014 15: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67728</guid><description><![CDATA[요즘 버라이어티를 보면 '허세'라는 말이 종종 등장한다.
&nbsp;
&nbsp;'허세'라는 단어가 그리 어려운 단어가 아님에도 의외로 잘 쓰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익숙한 TV프로그램에서 이 단어가&nbsp;자연스럽게 등장하니 오히려&nbsp;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온다. (졸라 멋지게끔 '개시한다'라고 해주까...)
&nbsp;
하여간 '허세'라는 단어는 음악처럼 직접적이어서 자막에 "아...이 형 허세는..." 할 때 마다 자막이 딱딱한 막대기가 되어 가슴을 쿵쿵&nbsp;건드린다. 그러니까&nbsp;'허세'라는 버라이어티 자막을 보면서 자기윤리적으로 되는 것이다. 
&nbsp;
그러다가...
&nbsp;
&nbsp;사람이란게 졸라 약삭 빨라서,&nbsp; 웃자고 만든 버라이어티의 자막이 던진 윤리의 몹쓸 덫에 걸려 나만 죽을 수 없다는 생각에, 내 주변 인근&nbsp;10리에서 그 단어의 저인망에 걸리는&nbsp;사람들이나 과거 행동들을&nbsp;스캔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면 사랑이요 남이 하면 불륜'의 무기로&nbsp;내 드라이브는&nbsp;빠른 검사로,&nbsp; 타인은 정밀검사로 시행하는 거다. 
&nbsp;
&nbsp;
그 뭐시냐...
&nbsp;
별로 어렵지 않은 이야기 어렵게 만드는 것도 인문병신학의 특징이다. 물론 어려운게 모두 병신학은 아니다. 어떤 건 어렵지만 파다보면 피가 되고 살이 된다.&nbsp;그&nbsp;점을 노린다. 어려운 것 처럼 보이면 있는 것 처럼 보인다는 허세. 결국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nbsp;깊은 인문학의&nbsp;범선에 무임승차. 인문병신학의 승차권 확보. (아-으 동동다리...)
&nbsp;
누가 뭐라 할 지면 "유 노 왓 아 민" 하면 그냥 남들은 대충&nbsp;묻어갈 수 있다. 그러다가 태클 걸리면 "왓 더 퍽..." 하면 그만.&nbsp;&nbsp;&nbsp;
&nbsp;
&nbsp;
아...따뜻한 봄 날.&nbsp;
벚 꽃이 진다.&nbsp;
못 놀아 지랄병이 도진다. 
&nbsp;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이방인' 번역 비평</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59452</link><pubDate>Mon, 31 Mar 2014 15: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59452</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138129&TPaperId=6959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770/98/coveroff/8970138129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2664&TPaperId=6959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26/72/coveroff/893746266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964742&TPaperId=69594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1/5/coveroff/8993964742_2.jpg" width="75" border="0"></a>&nbsp;<br/><br/>한동안 출판계가&nbsp;번역 문제로&nbsp;시끄럽지 않을까 싶다. 알라딘에서도 종종 있는 번역비평이 이번에는 유명한 작품의 유명한 번역가를 상대로 스캔들을-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다.-&nbsp;만들었다.
&nbsp;
자극적인 제목 "우리가 읽은 &lt;이방인&gt;은 카뮈의 &lt;이방인&gt;이 아니다." 노이즈 마케팅의 간판을 제대로 걸었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최소한 성공적이다 싶다. 
당장 나 역시 까뮈의 &lt;이방인&gt; 새 번역본을 구매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nbsp;
 
&nbsp; 허핑포스트 '알베르 카뮈 번역 논쟁' :
&nbsp; http://www.huffingtonpost.kr/2014/03/29/story_n_5053660.html?ir=Korea&amp;utm_hp_ref=korea#
&nbsp;
&nbsp;
새움출판사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이미 지난해 부터 카뮈 연재글을 통해 번역비평이 진행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nbsp;
&nbsp;
http://saeumbook.tistory.com/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새로운 번역본이 맞서 싸우는 대상은
김화영 교수의 민음사 번역본이다.
&nbsp;
문화권력의 측면에서 본다면
김화영-민음사 조합과의 싸움은
다윗과 골리앗의 대전과 비슷하다.
&nbsp;
하지만 전쟁은 규모의 싸움이 될 때가
많지만
전투는 꼭 그렇지 많은 않다.
그리고 작은 전투의 성패가 판세를 바꿀 수도 있고...
&nbsp;
&nbsp;
&nbsp;
&nbsp;
프랑스어 번역의 abc도 모르는 독자이기 때문에 번역의 옮고 그름을 판단할 계제는 아니다. 번역이라는 것 역시 다른 예술 창작 과정과 유사하게 일종의 취사 선택 과정과 해석 작업이 필요한 것이라는 점은 안다. 단지 해석상의 문제라면&nbsp;양해수준에서 봉합될 수도 있다. 하지만&nbsp;'해석상의 차이'와 '오역' 이 갈라지는 지점은 미묘하며 또한 중요하다.
&nbsp;
강건너 불구경 하는 기분이기는 하지만,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 것은 독자 입장에서 결코 나쁘지 않다. 누가 이기고는&nbsp;관심의 동심원&nbsp;밖의 일이다. 이런 논쟁 과정이 벌어질 수 있느 풍토가 번역가에게, 출판사에게 일종의 내적인 규제 원리로 영향을 미친다면&nbsp;더 좋은 번역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결국 독자다.
&nbsp;
25년 전 쯤 , 집에 있던 70년대 초반에 나온 문고본&nbsp; 카뮈의 &lt;이방인&gt;을 읽었다. 오래전이었지만 강렬한 느낌을 받았었다. 태양 빛 때문이었나. 이 참에 다시 집어도 좋을 것 같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1/5/cover150/899396474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10511</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예술은 사기이며 뻥이다 </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55985</link><pubDate>Fri, 28 Mar 2014 10: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55985</guid><description><![CDATA[
&nbsp;
그렇다. "예술은 사기다."&nbsp; 
&nbsp;
코끼리표 전기 밥솥이나 삼성전자 컬러 TV 만큼이나 진부한 이 말은 영화&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에도 적용된다. 영화가 진부하다는 것이 아니다. 영화&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이&nbsp; '뻥으로서의 예술, 사기로서의 이야기, 판타지로서의 영화' 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것이다.
&nbsp;
그런면에서&nbsp;영화는&nbsp;팀 버튼의 &lt;빅피쉬&gt; 나 타셈 싱의 &lt;더 폴 : 오디어스와 환상의 문&gt;의 연장선 속에 있다. (이 정도 이야기하면 이미 다 아는 사람들은 "아...뭔 풀 뜯어 먹는 소리하려는지 알겠군." 할테지만) 두 영화 모두 '이야기에 대한 아름다운 영화' 이다.&nbsp;&nbsp;팀 버튼과 타셈 싱 모두&nbsp;헐리우드의 스타일리스트이다. 그들이 만드는 시각적 이미지는&nbsp; 동화적이고 환상적이다. 독보적인 시각 이미지로&nbsp;영화의 식욕을 높인 사람들이다.&nbsp;이런 스타일리쉬한 영상은 21세기에&nbsp; 분홍빛 셔츠를 입고 헐리우드를 활보할 것 같은 웨스 앤더슨에게로 이어진다. (사랑스러운 영화 &lt;문라이즈 킹 덤&gt;을 보라.)
&nbsp;
영화를 비롯하여 모든 예술은 일정 정도 숙성된 이후 자기반영적인 속성을 갖는다. 자기반영이라는 건 쉽게 말하면 '되먹이는 것'이다. 이것은 놀이가 될 수 도 있고, 성찰이 될 수도 있으며, 또한 전제가 된 개념에 대한 도전이 될 수도 있다. 즉 예술이 예술 자체를&nbsp;소재로 삼고, 영화가 영화 자체를&nbsp;대상으로 삼아 노는&nbsp;것이다.&nbsp;예를 들어 글로리아 스완슨이 나오는&nbsp;영화&lt;선셋대로&gt;)는 헐리우드 무성 영화에 대한 오마주이자, 스튜디오 시스템에 대한 자기 성찰 또는 영화 자체의 의미를 되짚는 자기 반영성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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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 역시 동화적인 시각이미지와 코믹 스릴러 양식을 전면에 내새우고 있다. 하지만 영화의 한 겹 아래에는 앞서 말한 뻥으로서의 '이야기'와 '예술' 또는 '영화' 에 대한 경이와 존경을 담고 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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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먼저 선명한 색상과 잘 짜여진 화면 구성으로 마음을 빼앗아 간다.&nbsp;단 한 장면도 건성으로 찍은 샷이 없을 정도로 프레임으로 통해 들어오는 시각이미지는&nbsp;완벽히 감독의 의도와 통제하에 놓여 있다.&nbsp;장인이 한 땀 한 땀 눌러 찍듯 한 장면 속의 색상과 소품, 세트, 조명 등이 일관된 흐름 속에서 진행된다. 빨간 색 엘리베이터, 보라색 유니폼, 분홍색 케이트샵, 푸른 빛의 감옥, 하얀 설원. 감독의 게이적인 아지자기함이 사랑스럽다. (대단히&nbsp;키치적인 색 분포아닌가? 키치가 뭐?)&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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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늙은 작가(톰 윌킨스) 의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늙은 작가의 영화 속 이름은 없다 !!&lt;흥부전&gt;이나 &lt;해와 달&gt; 이야기의 원작자가 없듯이. 태초에 이야기가 시작될 때 거기에 작가란 존재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형태의 문학인 구비 문학이란 것이&nbsp;무명씨들의 것이 아니었던가? 그렇기
때문에&nbsp;영화 속 젊은 작가 역시 이름이 없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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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를 응시한 무명의 작가는 자기의 스토리를 시작한다.&nbsp;영화는 피카레스크 구성을 따른다. 이제 수 십년 전 벚꽃 피는 오늘처럼 젊은 날의 그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젊은 작가(주드로)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기 좋아하는 사람들&nbsp;머무는&nbsp; - 우리 현대인들이 그러하듯이-&nbsp;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어슬렁 거린다. &nbsp;젊은 작가의 눈에 한 명의 노인이 들어 온다.&nbsp;엄청난 부호이자 호텔의 주인인&nbsp;무스타파(머레이 에브라함)이다. 그는 좋은 방을 놔두고 로비 보이의 숙소로나 적당한 자기 호텔의 작은 방에 머문다. 무스타파는 "오래되어 운치가 있다는 목욕탕" 에서 자신의 지난 이야기를 젊은 작가에게 들여준다.&nbsp;로비 보이로 이 호텔에 오게 된 이야기와 그의 스승이자 상사였던 구스타브(랄프 파인즈)와의 오래된 추억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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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정리해보자. 관객은 늙은 작가가 이야기하는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듣는데,&nbsp;작가가 어렸을 때,&nbsp;어떤 늙은이가 해 준 자신의 젊은 날의 이야기를 듣는 셈이다. (이야기가 좀 헷갈려 보이지만 의도한거다. 즉 '이야기'에 대한 영화라는 걸 말하기 위해서다.)&nbsp; 영화는 보다시피 두 번의 화자를 통해, 즉 두 번의 액자를 통과하여 메인 스토리에 도달한다. 액자 속의 또 다른 액자.&nbsp; 자...좀 전에 영화의 색감을 이야기하며 장면이나 씬이 아니라 '프레임'이라는 단어를 왜 썼는지 눈치 챘어야 한다.&nbsp; 영화는 프레임의 예술이다. 액자는 다른 말로 하면 창이고 프레임이다. 우리는 영화관에서 카메라의 프레임을 통해 촬영된 스크린이라는 창문을 통해 경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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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서 눈에 띌 정도로 반복적으로 사용되는&nbsp;구도가 바로 창문이미지이다. 창문(프레임)을 통해 호텔 내부를 보고, 창 틀에 서서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창문과 관련된 이미지가 너무 너무&nbsp;자주 등장한다. 공원의 비둘기 똥만큼 많다. 창을 중심으로 수평 패닝을 한다거나 창문을 통과하여 줌&nbsp;인,&nbsp;줌 아웃한다.&nbsp;반복에는 이유가 있다. 물론 감독은 쿨하게 "난 그게 좋았을 뿐이고"라고 말할 터이지만. 감독의&nbsp;의도가 영화를 보는 해석의 종착역은 아니다. 그런 수직적 비평관은 '작가를 죽여버린' 이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다.&nbsp;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창문의 이미지는 영화 프레임에 대한 상징적 기표인 셈이다. (이제는 진부한 상징아닌가?)&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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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벌써 두 번의 '액자'에 대해 말했다. 하나는 '액자 소설'의 액자, 그리고 '프레임'으로서의 액자이다. 영화의&nbsp;중심사건은&nbsp;&nbsp;'사과를 든 소년'이라는 명화를 유산으로 받게 된 호텔 지배인이 겪게 되는 소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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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그림이다.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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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자만&nbsp; 주인공은&nbsp;그림을 숨기거나 옮기지 않는다.&nbsp;그림이 걸린 액자를 옮긴다.&nbsp;뭔 말 장난이냐고.? 잠시 나와서 좀 보자.&nbsp;&nbsp;&nbsp;잠시 삼천포를 들렀다가. 과문해서 그런건지 모르지만, '사과를 든 소년'은 처음 보는 그림이다. 피카소의 '파이프를 든 소년'은 안다. (정말 '사과를 든 소년'이란 그림이 있는지 잘 모르겠다. 상관없다. 뻥이니까) '사과를 든 소년'&nbsp; 대신 벽에 걸렸다가 결국 분노 폭발한 아들(애드리언 브로디)에게 발각되어 부셔지는 그림은 누구나 알 만하다. 에곤 쉴레다. 영화&lt;파란 대문&gt;에서 김기덕이 하숙방에 졸라 떡하고 걸어 놓은 것도 에곤 실레였다. 하여간 우리는 그림을 옮긴 것 같지만, 사실 액자를 옮긴 것이다. 이건 말장난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데리다는 예술작품에 있어서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관계를 설명한다. 우리는 흔히 말하는 작품, 예술의 내적가치를 담지하고 있는 그것은 '에르곤'이다. 그리고 부차적인 그것, 즉 액자와 같은 것은 '파레르곤'이다.&nbsp;데리다는 이 에르곤과 파레르곤의 경계를 해체한다. 오히려 그동안 외면당했던,&nbsp;인식에 포함되지 않았던 파레르곤과의 위상, 침투, 넘나듦, 경계에 주목한다.&nbsp;이렇게 세 번째 '액자'가 등장했다.&nbsp;영화 &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에서 파르레곤은 화면비이다. 관객은 뭔가 변화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를 수 도 있다. 아니면 "아 왜 갑자기 화면이 줄었지?" 정도로 파악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영화 속에서는 화면비가 1: 1.37 1: 1.85 , 1: 2.35 등으로 변화한다. 스토리의 시간에 따른 변화인 셈이다. 화면비의 변화는 영화의 역사를 통시적으로 상징하는 한가지 오마주인셈이다. 영화에 대한 관객의 미학적 경험은 분명 시대를 따라 변화해 왔다.&nbsp;영화 &lt;그래비티&gt;의 시각적 이미지의 변화가 놀라운 것이 듯,&nbsp;화각의 변화, 스타일의 변화, 색깔의 변화 등 영화의 기술적 시지각의 변화 역시 영화라는 예술 체험에 있어서 거대한 변화를 의미한다.&nbsp;&nbsp;파르레곤으로서의 영화 프레임의 변화. 우리의 영화적 체험은 그런 파르레곤의 변화와도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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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언급했던 영화 &lt;더 폴&gt;의 도입부에는 베토벤 교향곡 7번의 장중한 울림 속에 멋진 흑백 오프닝씬을 만날 수 있다. 그 장면은 감독 타셈 싱이 무성영화 시대의 영화인들에 대한 존경으로 포함시킨 장면이다. 영화&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은 어떠한가?&nbsp;
&nbsp;
&nbsp;영화 속 주인공들의 모든 연기와 액션은 그야말로 버스트 키튼이나 해롤르 로이드의 그것 아니던가?&nbsp; 유산 발표장에서의 주먹다짐, 감옥에서의 도주씬, 호텔에서의 총격전 등등등... 현대의 코미디에서는 결코 만날 수 없는 올드한 ,그렇지만 향수를 자아내는 고전 코미디에 대한 감독의 애정이 묻어나는 장면들이 아닐수 없다.
&nbsp;
영화 속 마지막 대사에서 호텔 주인 무스타파는 '구스타브는 그 당대에도 이미 오래전 사람이었으나, 그의 환상 속에서 살았다.' 라는 말을 한다.(정확히 기억아지 않는다.)&nbsp; 
&nbsp;처음부터 무스타파가 로비 보이였는지 의문이 갔다. 외모가 다르지 않은가?&nbsp;그리고 그게 별로 중요한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무스타파가 결국 구스타브이며 로비 보이 제로라는 것이다. 아니&nbsp;그것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nbsp;이 영화가&nbsp;그 문제를 밝히는 스릴러는 아니지 않은가? &nbsp;궁극적으로 이 영화가 '이야기'와 '영화'라는 환상에 대한 이야기라면 주인공은 구스타브여도 제로로 불러도 상관이 없다. 
&nbsp;
한가지 주목할 필요가&nbsp; 있는 점이 있다. 인도 소년으로 보이는 로비 보이의 이름. 그의 이름은 '제로'(ZERO)다. 그는&nbsp;전쟁으로 모든 것을 잃은 이민자, 난민이다.&nbsp;그래서 '제로'이다. 수학에서 '제로'의 의미는 무엇인가 알면 그 '제로'라는 기표가 환상이라는 기표와 대단히&nbsp;상동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제로는 '없는 것이며 있는것이다' '없음으로 있음을 보장하는 것이며 있지만&nbsp;그 실체를 규정할 수 없는 무엇'이다.&nbsp; 우리가 예술이라는 것,&nbsp;영화라는 것. 이야기라는 것. 그것이 바로 '제로' 와 같은 도상에 서있는 것은 아닐까?&nbsp;
&nbsp;
영화 &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은&nbsp;사랑스럽고 아름다운&nbsp;이야기와 영화에 대한 '벚꽃 예찬' (우리 아들 이름이다.)이다.&nbsp;&nbsp;&nbsp;
&nbsp;
**&nbsp;&nbsp;엘리베이터 타고 열심히 멀티플렉스 영화관 올라가서- 예전엔 대개의 영화관이 1층에 있었다-&nbsp;뒤적여봐도&nbsp;확 꼽히는, 볼 만한, 그런 영화 찾기 쉽지 않은 시즌이다.
그런데 웨스 앤더슨의 &lt;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gt;을 외면 한다고...당신은 미세 먼지때문이거나, 봄날의 멜랑꼴리때문에 제 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 아님 말고 홍홍홍&nbsp;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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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저주받아야돼</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935692</link><pubDate>Tue, 11 Mar 2014 10:2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935692</guid><description><![CDATA[그렇다. 미리 경고한다. 나는 격한 말로 쓸 거다. 왜냐하면 이들은 진짜 나쁜 놈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이 왜 나쁜 놈인지는 물론 주관적 의견이기 때문에 아니라고 하면 할 수 없다.
&nbsp;
노동당의 박은지 대변인이 죽었다. 어제 영결식이 있었다. 자살로 추정된다고 한다. 먼저&nbsp;명복을 빈다. 이제 모든 것을 놓았으니 바람처럼 자유로와지시길...
&nbsp;
그것이 무엇이었든 삶을 포기하려는 마음을 먹는 다는 것은&nbsp;견디기 힘든 고통과 슬픔, 그리고 절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nbsp;뚝 떨어져서 이렇게 저렇게 살아가는&nbsp;사람들로서, 그 실존의 공감으로 그녀가 겪었을 아픔을 이해하진 못하겠지만 위로하고 싶다.
&nbsp;
아침 포털사이트에서 주말 기사를 보다가 고 박은지님 관련된 글을 봤다. "9살 아들이 발견"이라는 글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아들과 비슷한 나이다. 초등학교 2학년 또는 3학년.&nbsp;
&nbsp;
이 장면은 여러가지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아마 그 상상대로 모든 일이 벌어졌을 것이다. 아이는 엄마의 죽음을 보았던 것이다. 
&nbsp;
나는 아이가 받았을 충격과 공포에 대한 걱정과&nbsp;
동시에 이 빌어먹을 기자님들에게 쌍욕을 하고 싶어졌다.
이 새끼들, 진짜 나쁜 놈들이다. 
&nbsp;
&nbsp;
그들이 '아이의 충격'을 걱정했을까? 아이의 충격을 걱정했다구?&nbsp; 지랄하십니다..
아...사건의 진실을 전하고 싶으셨다구요. 그게 이 사건에 대단히 중요한 진실이었군요?
이 개나리 똥구멍만한 종달새 개새들아
&nbsp;
어디 가서 누구 누구 만나 들을 소리를 가지고 뭔가 아는 척하고, 자기가 꽤나 높은 무엇입네 하고 다니면서 결국 한다는 짓이 저런 짓들이다. 거기에 장례식장 가서 우는 아이 사진 찍어서
모자이크해서 올리고.&nbsp; 도대체 뭐하는 짓인가?
&nbsp;
결국 싸구려 내러티브에 익숙한 위대한 기자님들의 글빨 짓과
셔터질에 지나지 않는다. 아...좋은 대학 나와셨다구요.
&nbsp;졸라대 새대가리과를 나오셨나 봅니다.
&nbsp;
sns에&nbsp;올라오는 글들은 "아이는 어쩌구" "저런 모진 엄마" 이런 흐름으로 간다. 대중들이 그렇게 움직이는 것은 당연하다.&nbsp;보수언론의 신문기자 새끼님들이 만들고 싶었던 이야기가 바로 그거니까. 댓글에는 분명히 "자식도 버리는 냉혈한 모정"이나 "자식은 아랑곳 하지 않는 빨갱이" 라는 악성 글들도 이미 있을 것이다.
&nbsp;
위대한 기자님들께서&nbsp; 비스켓 부스러기만큼이라도&nbsp;아이가 받을 상처에 대해 공감했다면- 그리고 그런 일을 목격했던 아이라면 당연히 보호해주어야하는게 사람의 도리 아닌가- 저 따위 글을 올릴 수 없다.
&nbsp;
저들은 '아이의 충격'을 이용한 것 뿐이다. 그러니까 너네들은 아이의 슬픔과 충격을 이용해서 너네들의 하루 업무를 마친 거라구. 시방새들아. 너네들이 독가스실 버튼 누르는 놈들이라구...
&nbsp;
아이가 발견한 것이 도대체 이 사건과 무슨 상관이 있나? 기자들은 물론 관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최초 발견자와 목격자를&nbsp;써야하니까. 그 경우도 대개는 기사 내에 숨어서 넘어간다. 지나가던 행인이 발견하여...또는...가족이 발견하여....이렇게 말이다. 그런데 그걸&nbsp;표제에&nbsp;떡걸어서 "아이가 발견"이라고 쓰는 건 뭐 하자는 짓인가? 그걸로 뭘 얻을 수 있다는 말인가? 사람들의 쑥덕거림을 위해 한 사람의 죽음과 한 아이를 팔아넘기는가?
&nbsp;
대중의 관심과 클릭 수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지 저&nbsp;아이의 고통과 상처는 눈에보이지 않는다.&nbsp;아이는 이미 충격적인 엄마의 죽음으로&nbsp;평생 따라다니게 될&nbsp;트라우마를 경험했다.&nbsp;보호해주어야만 하는 가엾은 존재다. 그런데 이런 작은 존재를 너네들의 셔터질과 글질로 더 깊은 상처를 줘. 그러니 너네들은 개새소리를 들어야 마땅한거다.
&nbsp;
이제 주변에 아는 사람들은 수근 거릴 것이다. 
"아이구...애가 그걸 다 봤다지." "애가 그 담부턴 좀 이상하데요","아이구...참 안됐네. 애가 무슨 죄가 있어." ....
&nbsp;
'아이의 충격'을 걱정해준&nbsp;좋은 대학을 나오시고, 월급도 괜찮으시고,&nbsp;회사원들보다는 어디가서 폼잡기도 괜찮으신 기자새끼님들이 만들어 주신&nbsp;상황이다. 
&nbsp;
에라이 이...수준 낮은 새끼들.
너네들은 나쁜 새끼들이야. 그거나 제대로 알라구.
&nbsp;
아...아침부터 진짜 열받네. 
&nbsp;&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어이 거기 민증 좀 봅시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838240</link><pubDate>Wed, 22 Jan 2014 04: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838240</guid><description><![CDATA[요즘 포털 검색 1위는 역시 개인정보 유출이다. 어제 백화점에 잠시 들렀는데, 카드 담당창구는 정말 바글 바글 했다. 주로 50대 이상의 장년층 및 노년층들이었다. 창구 직원을 붙들고 하소연하는 분부터 직원들에게 화를 내는 분들도 있었다. 창구에서 상담이나 해주던 직원이 왠 봉변인가?&nbsp; 정말 자기랑은 아무 관련도 없는데 연신 굽신 굽신...하도 안돼 보여서 지나가면서 "고생하시네요."라고 위로의 말을 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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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등록제에 대해 다들 얼마나 관심이 있으신지 모르겠다.&nbsp;90년대 후반이었던가&nbsp;주민등록 교체할 때 하도 개겨서 주민등록에 대해 읽고 들은게 있었다. 이번 일로 그게 생각이 났다. 주민등록제도는 박정희 정권 때 본격적으로 시행된 제도이다. 전국민에게 고유식별번호를 부여하여 국가가 개인의 신상을 일목요연하게 수집,관리하는 제도이다. 간첩 및 불순 세력 색출,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이 주요 관심사였다. 
&nbsp;
뭔가 좀 수상쩍다 싶으면 &nbsp;"어이 거기 민증 좀 봅시다."&nbsp;이건데.&nbsp; 당시 군부 출신의 국정 책임자들은 바빠서 영화를 못보셨던 것이다. 스파이 임무의 첫 번째는 "자, 여기 자네 여권과 신분증일세." 이거 아닌가?&nbsp;&nbsp;결국 간첩 잡는 건 핑계였다.&nbsp;간첩 중에 주민등록증 미소지로 걸린 사람 있던가?
결국 사회안전이라는 이름의 사회통제가 목적이었다.
&nbsp;
하여간 90년대 말, 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권력의 통제라는 주제에 대단히 깊은 관심이 있었다. 일상적 파시즘론을 비롯하여, 미셀 푸코를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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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에 의하면, 한국의 주민등록제도는 세계 최강이다.&nbsp; 대개의 자유민주주의 국가들&nbsp;역시 국민들의 정보를 어떤 식으로든 국가가 관리한다.&nbsp;근대 주권국가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배제/포함을 정치 철학적 근간으로 삼기 때문이다.&nbsp;대개는 나라마다 다르게 적용되는데 몇 가지 공통적인 방식들이 있다. '개인번호 식별제','거주지 등록제', 그리고 '신체정보 등록제'다. 이중 최강은 맨 마지막에 있는 '신체정보 등록제'이다. 쉽게 말하자면, '지문 날인'이다. 이건 서구권 국가에서는 범죄자들에게만 채취한다.&nbsp;그러니까 좀 확대해석해서 보면, 전 국민을 예비 범죄자 취급하는 셈이다. 뭐 그렇게 까지 볼 필요가 있겠냐만, 그래도 그런 거긴 하다.
&nbsp;
&nbsp;각 나라는&nbsp;각기 국내 실정에 맞춰 이를&nbsp;선별적으로 적용한다. 미국은 의료 보험번호나 자동차 등록증 번호로 이를 대체하고 개인 고유번호를 부여하지 않는다. 프랑스는 고유번호가 있지만 거주지를 따로 등록하지 않는다.&nbsp;동사무소 가서 전입신고 안해도 된다. 대개&nbsp;국가 권력과 국민의 자유 사이에 침해소지가&nbsp;국가 초기부터 쟁점시 되었던 나라들이다. 독일이나 북유럽 국가 등 복지제도가 잘 발달되어 있는 나라들은&nbsp;국가에 의한 주민관리제도가 미국이나 프랑스등에 비해 발달되어 있다. 하지만 다른 관계법령으로 사회복지 이외의 사용을 대단히 엄격히 제한하고 있다고 한다. 
&nbsp;
우리는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 사이의 쟁점...뭐 이런거&nbsp;없다.&nbsp;그러니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 살면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습니다."에 눈물, 콧물, 감동 비빔밥 3종 세트를 9900원에 모셔도, 절대 저런 건 관심이 없다.&nbsp;흥미롭지 않은가?
이건 대단히 중요한 문제인데도, 이런거 문제 제기하면&nbsp;영화&lt;남쪽으로 튀어&gt;의 김윤식 대하듯, 튀는 사람 또는&nbsp;빨갱이 또는 무정부주의자&nbsp;,반정부세력이라고 생각한다.
&nbsp;
그런데 '국가권력과 개인의 자유'는 빨갱이들의 반정부세력의 관심주제가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국가라는 미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 사람들이 키워 낸 문제다. 그러니까 빨갱이의 문제가 아니라 파랭이의 문제라는 거다. 똥과 된장을 구분 못하는 이들이니
&nbsp;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국 '국가'에 과잉 몰입되어 있는 것이다. 물론 개인이&nbsp;일부러 '국가'몰입한 거 아니다.&nbsp;권력은 여러가지 다양한 전술을 통해 개인의 자유 및 신체를 장악한다.&nbsp;그리고 오랜 권력의 개입 효과를 지우는 방식, 즉 개인이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로&nbsp;권력의 개입을&nbsp;받아들이게하는 방식으로 마감된다. '권력의 내면화'라는 것이다.&nbsp; 푸코의 권력론에서 이 권력은 단순히 정치권력만이 아니다. 착각해서 '난 정치권력 이런거로 부터 자유로운데'하면 안된다. 먼저 정치권력으로&nbsp;부터 자유로울 수도 없으며, 둘째, 푸코의 권력은 길게 이야기 할 순 없지만&nbsp;협소한 권력개념을 넘어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푸코의 권력/자유에 대한 관심은 '규범권력-생체권력-통치성'&nbsp;이라는 방법으로 완성된다. 푸코가 70년대 중반 신자유주의적 주체성의 출현을 예기하며 언급했던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현재 우리가 도달해 있는 곳이다.
&nbsp;
국가 권력이 잘 만들어 준&nbsp;개인정보등록법은&nbsp;자연스럽게&nbsp;기업체의 고객정보가 된다.&nbsp;페이스북이나 트위터 또는 아마존 같은데&nbsp;등록해본 사람은 안다.&nbsp;한국보다 훨씬 가입 절차가 간단하다. 이미 국가가 포맷을 만들어 놓고 잘 쓰고 있는 정보들이니 기업체도&nbsp;그 익숙함에 기대어 그걸 요구한다.&nbsp;울며 겨자 먹기로 신상은 다 넘겨 준다. 최고의 시장 조사 자료가 아닌가. 생년월일 나와 있지, 사는 곳 나와 있지, 핸드폰 번호 있지...&nbsp;결국 국민은 국가권력의 감시 대상이며 또한 기업체의 밥이 되는 거다. 국가와&nbsp;기업은 원래 친했고&nbsp;&nbsp;소비자/국민을 호구로 삼아 앞으로도 잡은 손을 쉽사리 놓치&nbsp;않을것이다.
&nbsp;
주민등록제도는 쉽사리 안 바뀐다.&nbsp;개인의 프라이버시권을 강화 하는 쪽으로 수정되기 보다는 오히려 효율성의 이름으로 점점 강화될 것이다.&nbsp;생체칩 이런 이야기도 나오는 마당이니 말이다.&nbsp; 정치적 감수성이 개입된 디테일이 살아야 이런 문제에 대해 따지고 자시고 해야 하는 거다. 그런데 당징 그런게 어디있겠나. 시켜서 하고 마지 못해서 하고 불편하니까 한다.
&nbsp;
일단 현 단계에서는 개인정보 유출의 분노를 밀어부쳐서 기업체의 정보 수집 약관&nbsp;고치고, 주민번호나 기타 가입 항목도 좀 줄이고 했으면 좋겠다.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2014 문제는 에티튜드라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824787</link><pubDate>Thu, 16 Jan 2014 1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824787</guid><description><![CDATA[1.새해 첫 페이퍼인가 싶기도 하다. 올해는&nbsp;더 바빠질 것 같은 예감이다. 
문제는 태도라는 건 며칠전 내가 회사 선배에게 약간은 신랄하게 뱉은 말이다. 그냥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는 정도에서 -늘 그렇지만- 마감할 수 있었던 건 선배의 부드러운 인성 때문이다.
&nbsp;
그래도 지구는 돌 듯이...&nbsp;그래도 문제는&nbsp;태도이다. 
&nbsp;
우연히 광고 하나를 보았는데, 내가 했던 말과 똑같은 이야기가 나와서 혼자 웃었다.
하나는&nbsp;"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와 "문제는 태도다." 이것이다. 
&nbsp;인공위성을 띄울&nbsp;정도가 되어야 이런 말을&nbsp;할 수 있는 건 아니다.
&nbsp;
송호준에 대해서는 지난 부산 영화제때 만난-
다큐멘터리 영화&lt;망원동 인공위성&gt;과 관련된 일을 한 -후배가
이야기해 주어서&nbsp;
알게 되었다.
&nbsp;
재미있게 살아야 한다.&nbsp;
삶이 지루하면 지는 거다. 
&nbsp;
2.예찬이가 만화 삼국지를 보더니 너무 아쉬워한다. 그의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아빠, 원통해"다. &nbsp;내가 어린 시절 삼국지를 보고 느꼇던 것과 같은 이유때문이었다.
&nbsp;
&nbsp;유비,관우,장비가 다 죽고&nbsp;천하통일은 다른 이의 몫이어서...
&nbsp;
&nbsp;예찬에게 "아빠도 똑같은 생각을 했어."하며 공감해주니 아이가 "그렇지. 아빠도 그랫지."라며 조금 위안받는다. 그리고 조금 지나자 '타임머신'을 만들겠다고 한다. 그리고 '아이언 맨 슈트'를 입고,&nbsp;유비, 관우, 장비를&nbsp;도와주겠다고 한다. 옆에 있던&nbsp;동생 재원이는 덩달아 "나도 그렇게 할거야."라고 한다.&nbsp;결국 그래서&nbsp;다섯명이 도원결의를 하는 수준에서 합의했다.
&nbsp;
그리하여&nbsp;예찬이가 타임머신을 완성하는 그날이 오면
여러분들은 &lt;삼국지&gt;를 읽을 때 ,유비,관우,장비 + 예찬,재원을 보게될 것이다.
이상하게 생긴&nbsp;쇠갑옷을 입은 넷째, 다섯째 동생들과 더불어 
중국을&nbsp;통일한 버전을 만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알고&nbsp;있는 &lt;삼국지연의&gt;는&nbsp;그 때는 없다.
&nbsp;
아이들과 노는 것도 지루할 틈이 없는 즐거움 중에 하나다.
&nbsp;&nbsp;
&lt;망원동 인공위성&gt;(김형주 감독,2013), 이 다큐멘터리 영화는 올 여름경에 극장 개봉을
예정 중이라고 한다.
&nbsp;

&nbsp;&nbsp;
&nbsp;
&nbsp;
&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쪽 팔리진 않아야지</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708061</link><pubDate>Fri, 22 Nov 2013 18: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708061</guid><description><![CDATA[영화에 대한 평가는 뒤로 하고
&nbsp;곽경택 감독은 
&nbsp;영화&lt;친구&gt;에서 
"쪽팔리다 아이가" 가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최고의 대사라고 했다.
&nbsp;
내부에 낙관성을 유지하면서도 요즘 늘 내 마음에 울리는 소리가 바로 저거다.
&nbsp;
이래 저래 쪽팔리는 세상에 살고 있으면서도 태연한 척 있는 것도 쪽팔리고
자판 두드리면 풀려나오는 생각이랍시고 눌러 찍는 글들도 쪽팔린다.
&nbsp;
예전만큼 음악을 열심히 듣지도 않고 책도 열심히 읽지 않는다.
그래도 무언가 꾸준함은 있다. 
&nbsp;
네이버 TV의 '온스테이지'는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이고 해보고 싶었던 콘텐츠다.
최근 리스트(오른쪽)에 있는 기타리스트 박윤우를 알게 된 것도 그곳이다.
&nbsp;
부산에 잉거마리 공연이 있던데 박윤우가 올지 모르겠다. 시간되면 가보고 싶은데
이래 저래 걸림돌이 많다.
&nbsp;



&nbsp;
한동안은 차 안에서 피타입을 열심히 듣고 다녔다. 1집 부터 찾아 들었다. 
좋은 랩퍼인지 아닌지는&nbsp;잘 모르겠지만 내 스타일에는 맞는다.
가사 좋다. 
&nbsp;



&nbsp;
좋은 악기는 예민한 악기다. 훌륭한 연주자를 만나 그 성능을 최대치로 표현하면 천상의 소리가 나오지만 얼렁뚱땅한 범인을 만나면 그 크고 작은 실수들을 다 드러낸다. 
&nbsp;
뭘 하든 &nbsp;쪽팔리진 않아야 한다.]]></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 영화&amp;lt;설국열차&amp;gt;: 세뇌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512961</link><pubDate>Thu, 08 Aug 2013 09:2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512961</guid><description><![CDATA[
&nbsp;
혈액형별 뇌구조라는데 웃길려고 한 번 올려본다. 난 B형이다. 이런 유사과학을 믿지도, 신뢰하지도 않는다. 헉...그런데 조금 맞다. ㅜㅜ 그런데 다른 혈액형들 둘러 보면 다 맞다.ㅋㅋ 그래서 이런게 사이비 과학이다. 하지만 '길에서 마주친 여학생'은 매우 맞는것 같다.호호호&nbsp;Have you ever really loved&nbsp; woman?&nbsp;
&nbsp;
&nbsp;영화&lt;설국열차&gt;에 대한 평가에 호불이 갈린다. 텍스트가 다양한 해석의 갈래를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 의미의 다층성으로 인해서도 즐거운 일이다.&nbsp; 예를 들어, 봉준호가 과거에 비해 디테일과 인과관계를 소홀히 했다는 비평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실제로 그런 면도 있을 것이다. 아마 헐리우드에서 제작했다면, 헐리우드의 제작자의 지시를 받아가며 제작했다면, 당의정에 쌓여서 먹기 좋은 알약을 만들었을 것이다. 매끄럽고, 소화시키기에는 훨씬 그 편이 나았을 것이다.&nbsp;하지만 영화&lt;설국열차&gt;는 봉준호가 작정하고 자기 마음대로 만든 유기농(? ^^ )의 거친 SF영화다. 봉준호는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해먹어 보겠냐는 듯, 밭에서 무를 쑤욱하고 뽑으며 씨-익하고 웃는 듯 하다. 제1 투자자인 CJ 역시 작품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은 취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CJ는 투자와 배급문제에는 -국내 흥행 성공은 사실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CJ가 가지고 있는 배급망을 생각하면 문제될 것도 없었다. 물론 비즈니스는 냉정하기 때문에 장사가 되는 작품이 필요조건으로 구비되어야 한다. 
&nbsp;
여러가지 평가와 논평이 가능하지만, 내가 개인적으로 가장 듣기 불편한 단어가 이 영화를 보고 온 사람들의 입에서 몇 차례에 걸쳐 들려온다. 그 단어는 '세뇌'다.
&nbsp;
위대한 '세뇌'의 생존력은 반공의 시대가 끝나도 무의식 속에 기생하고 있다. '세뇌'라는 단어는 아마 '이데올로기'에 대한 한국의 역사와 맥을 같이 할 것이다.&nbsp;해방 정국부터 시작된 말일 것이다. 여기서 '이데올로기'는 쉽게 말해, 좌익병, 빨갱이병이다. 즉 멀쩡해 보이던 삼촌이, 순종적이고 착한 딸이 어느 날 '세뇌'되어, 좌익활동을 한다. 7,80년대 영화나 드라마들은 이런 걸 강화한다. 80년대에는 '의식화교욕','좌경화교육'이라고, 뭔가 민주정의적인 표현법을 만들어 내었다. 그래 봐야, 오렌지나 어린지나 같은 말이다. 어쨋거나 저쨋거나 의리도, 주체성도 없이 '세뇌' 당한 것이다. 
&nbsp;
SF영화의 전통&nbsp;속에서는 기계를 통한, 인간 개조 프로그램이 이루어진다.( 최근의 트렌드는 유전자조작이나 복제인간이다.)&nbsp;클래식한 예를 들자면, &lt;1984&gt;나&nbsp;&lt;시계태엽장치 오렌지&gt;같은 것이 대표적이다. 영화나 드라마 속에 세뇌된 인간들은&nbsp; '애비,에미도 없다.'&nbsp; 천륜을 끊을 만큼 세뇌는 무시 무시한 것이다. 각종 형태의 삐라가 만들어내는 상상은 그런 것이다. 빨갱이들이 어떤 사상을 주입하여-때로는 의자에 붙들어 앉혀, 고문이라는 방식으로- 인간을 바꾼다는 것. 대단한 공포다.&nbsp;나의 주체성이 사라진다는 것, 내가 피붙이 조차 외면할 만큼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내가 나 역시 상상할 수 없는 완전히 알 수 없는 이가 된다 것. 이것만큼 커다란 공포를 불러 일으키는 것이 또 어디있겠는가?&nbsp;한창&nbsp;SF 재난영화에서 몸값 올리고 있는&nbsp;좀비가 되어 버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애비 애미도 못알아 보고 물어 뜯는 좀비말이다.
&nbsp;
영화&lt;설국열차&gt;를&nbsp;본 사람들이 종종하는&nbsp;세뇌의 구체적 시퀀스들이 있다. 학교에서의 윌포드를 찬양하는 장면, 하층계급 앞에서 '각자 자리를 지키라'는&nbsp;오래된 격언같은 장면들이다. 사실 이것을 세뇌라고 읽어 주는 것만으도&nbsp;이데올로기의 틈새를 보여준다. 물론 이것을 당신들의 일,&nbsp;타자의 일,&nbsp;영화 속의 일이라고 생각을 멈추는데 조금 문제가 있을 뿐이다. 이 생각을 조금 더 발전 시켜 보면 이런 것이다.&nbsp;이데올로기라는 말의 한국적 뒤틀림은&nbsp;그렇다 치자. 그 '세뇌'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근본적&nbsp;배제를 문제시 해야한다.
&nbsp;
세뇌는 대단히 배타적 단어이다. 발화의 위치를 단 한번 만 생각해본다면, 그것이 얼마나 한 쪽의 언덕에서서 외치는 고함인지 알 수 있다. 그 언덕에서&nbsp;세상은 세뇌 당한자와 그렇지 않은 자가 있다.&nbsp;영화를 보고 있는 관객은 스스로를 '세뇌 당하지 않는자'의 언덕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아니, 이 바닥도 비슷할 것이라는 조금은 객관적 생각까지 미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거기서 그것들을 이해하는&nbsp;세뇌당하지 않은자다.&nbsp;그들은 세뇌당한 것이고, 나는 세뇌를 관찰하는 자리에서 그들의 세뇌를 당당히&nbsp;이야기 할 수 있다.
&nbsp;
그러므로&nbsp;세뇌는 영화 속에서 만나는 팀버튼식의 알록달록 교실에 있는 아이들이나 당하는 것이다. 이것이 궁극적으로 자유주의적 가치관의 가장 근본적 결함이다. 
&nbsp;
&nbsp;이데올로기라는 것이 작동한다면,(작동한다.&nbsp;인류 역사에 작동하지 않은 적은 단 한번도 없다. 앞으로도 작동한다.)&nbsp;이렇게 자기는 이데올로기로부터 배제되어 있는 존재라고 생각하는 그 지점이 가장 이데올로기가 제대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는 지점이다.&nbsp;그런 의미라면,&nbsp;세상은 모두 세뇌당하는 사람들의 공간이다.&nbsp;&nbsp;
&nbsp;
&nbsp;아감벤은 푸코의&nbsp;'장치'개념을 확대하여, '인류의 역사는 장치의 역사다.'라는&nbsp;말을 한다. 그 장치라는 것은 결국 이데올로기를 포함하여, 인간의 역사, 문화, 생활, 옷차림, 말하는 방식, 화장실에서 응가를 처리하는 방식 까지&nbsp;구획하고 통치하는&nbsp;기제인 것이다.&nbsp;&nbsp;그리고 그게 맞다는게 내 생각이다.&nbsp;내가 관심을 두는 인문,사회,미학은 이데올로기의 전체 지형도를 그리고, 그것에 대해 일격을 먹이는 무엇이다. 그 지형도는 '세뇌'라는 말처럼 간단치가 않다.
&nbsp;
&nbsp;결국 문제는&nbsp; 이데올로기 전체(전체는 형식,내용,효과 등등을 모두 포한하는 전체다.)대한 이해다. 그것은 세계를&nbsp;아는 방식이고, 또 세계를 뚫는 방식이다. 영화에서 한가지 아쉬운 점은 그 세밀한 장치들의 효과들을 충분히 개진하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그렇지만, 이런 문제를 건드릴 수 있는 상업 영화는 드물었고, 앞으로도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nbsp;
&nbsp;
&nbsp;]]></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808/pimg_7778821838838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512961</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amp;lt;설국열차&amp;gt;에 대한 아내와의 잡담</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507980</link><pubDate>Mon, 05 Aug 2013 18: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507980</guid><description><![CDATA[++ 영화&lt;설국열차&gt;에 대한 스포일있습니다. 리뷰는 아닙니다. 아내랑 나눈 대화를 거의 가감없이 정리한 형식. 영화적 사실 관계가 다를 수 도 있지만, 남의 부부 대화 엿듣는 느낌으로 보시면 됩니다. ㅋㅋㅋ
&nbsp;

&nbsp;
&nbsp;

&nbsp;영화&lt;설국열차&gt;를 휴가 마지막 날 밤 9시 넘어 봤다.&nbsp; 늦은 밤이었으나 극장은 만석이었다. 천만 관객 돌파는 최소 3주 이상이 걸리는 일이어서 초반 흥행 성곡이 천만 벽을 단언해 주진 않는다. 물론 천만이 무슨 염라대왕의 살생부는 아니지만 말이다. 올 상반기 최대 히트작이었던 &lt;아이언맨3&gt;과 비교해 본다면 초반 스타트는 &lt;아이언맨3&gt; 그 이상이 아닐까 싶다. 향후 방향은 좀 다를 수 있는데, &lt;아이언맨&gt;은 남녀노소 모두 즐길 수 있는 오락영화인데 반해, &lt;설국열차&gt;는 조금 색깔이 다르기 때문이다. 영화에 대한 관객 평들이 이후 영화 흥행 성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 같다. &lt;설국열차&gt; 입장에서 다행이라는 것은, 최소한 &lt;아이언맨3&gt;은 두번 볼 마음이 없는 나같은 관객이 &lt;설국열차&gt;는 두 번 볼 계획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영화 흥행에는 도움이 되질 않겠나. 그래봐야 손바닥으로 바닷물 퍼담는 것정도 겠지만.
&nbsp;

&lt;설국열차&gt;를 먼저 보고 온 것은 아내였다. 휴가 기간 중 둘째가 아파서 함께 여행을 가지 못했다. 그래서 여행 돌아온 후로는 개인적으로 룰루랄라 거릴 수 있는 시간은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이 둘은 내 몫이었다.
&nbsp;
오늘 낮에 아내가 회사 근처에 왔다. 요즘 시험 준비하는게 있어서 공부하다가 햄버거 하나 사가지고 위로방문하라기에 들렀다. 아내가 영화&lt;설국열차&gt;에 대해 물었다.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 영화 보는 동안 스쳤던&nbsp; 생각 몇 개를 이야기했다.(긴 리뷰는 쓰지 않을 것 같다. 영화 &lt;설국열차&gt;는 내게 약간의 분석적 작업을 요하는 텍스트가 될 것이라서) 
&nbsp;
아내)영화 어땟어?
나)&nbsp;음..나쁘지 않았어. 한국 SF영화의 정치적 아이디어를 일정 수준 높인 것 같아.
&nbsp;
아내) 마지막에 북극곰, 이상하지 않았어.
나)&nbsp;그렇지. 그런데 왜 봉준호가 북극곰을 롱샷으로 제시하지 않고 돌아보는 미디움 샷을 넣었는지 생각해봐야해. 내가 보기에 그건 봉준호가 웃기려는 거야. 그냥 이제 힘 빼라고 넣어주는 농담같은 것. 사실 생존이 가능한 상황이라는 것으로서의 상징이라면 산기슭을 올라가는 곰샷이면 충분했다구. 근데 굳이 미디움 샷을 넣었단 말이지. 내가 보기에...그런거 있잖아...우리가 뭐 한참 진지하게 말하다가...이야기 끝낼 쯤 되면....그러니까 말이 그렇단 거지요 뭐! ㅎㅎ 아니면 말구요..하는 식으로 어깨를 가볍게 하는 화법을 쓰잖아. 그런거야. 곰이 왜 나왔는지, 곰이 식인곰인지 아닌지 뭐 이런건 전혀 중요하지 않다구. 중요한 과정은 그 전에 모두 끝났잖아.
&nbsp;
아내)그런가? 하긴 언젠가 TV에서 신성우가 왜 뮤지컬 배우들이 공연 끝나고 나면 커튼콜 할 때 우스꽝스런 포즈를 취하는지 이야기 한 적이 있었거든. 그게 관객들에게 '이제 연극은 끝났어요. 각자 자기의 현실로 돌아가세요.'라고 빠져 나오는 시간을 주는 거라데.
나) 음. 좋은 비유같네. 봉준호도 그랬을 수도 있겠지. 하여간 곰이 북극곰인지, 시베리아 곰인지 그거 별로 중요한거 아닌거고, 그게 현실적이네 아니네도 전혀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는 거지. 웃기려고 한거야 봉준호가...ㅎㅎㅎ
&nbsp;
아내)자긴 어떤 점이 좋았는데?
나)&nbsp;일단 몇 가지 패러디들이 귀여웠어. 예를 들자면 &lt;올드보이&gt;의 장도리씬 있지. 봉준호가 기차에서 하데. 물론 귀여운 오마주인데, 생각해보면 장도리씬의 공간과 기차의 공간이 비슷한 부분이 있어. 앞으로 가아가야 하는 절박함. 뒤는 죽음이지.ㅎㅎ 그 기차의 현자있잖아. 그 사람이 팔을 내주었더니, 나중에 다른 기차 안 사람들도 팔을 내었다는 대사 같은 거 있지. 그거 기독교의 산상수훈에서 '오병이어'에 대한 공동체적 해석과 유사해. 어떻게 그 작은 음식으로 모든 사람을 먹였겠어. 예수가 솔선해서 자기의 모든 것을 내놓은거야. 그러니까 저마다 하나 씩 나중에 먹으려고 숨겨놓았던 것을 내놓게 되었고 결국 무리 전체가 떡과 물고기로 먹을 수 있었지. 성경은 그걸 상징적으로 '오병이어'로 먹었다고 말하는건데, 틀린 말도 아니잖아.&nbsp;&nbsp;
&nbsp;
그리고 커티스 반란팀의 첫번째 위기. 진짜 조마조마 하던데, 적외선 살육씬 있잖아. 거기서 성냥으로 횃불로 대응하잖아.
&nbsp;
아내)그래.아이가 성냥을 켜지
나)&nbsp;그래, 그리고 어른들에게로 이어져. 그 장면 보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메테우스의 신화랑 거의 유사해. 그리고 마지막에 아이들만 남지. 영화적으로는 그 촛불을 건넨 아이와 마지막에 살아남은 아이가 같은 아이라구..
&nbsp;
아내) 영화적으로는 그렇겠네.&nbsp;영화 &lt;괴물&gt;의 끝보다는 낙관적이긴 하지.
나)&nbsp;그게 봉준호가 가진 현재의 정치적 포지셔닝인 것 같아. 기본적으로 봉준호는 현세대를 믿지 않아. 즉 우리와 봉준호를 포함하는 모든 기성세대 말이지. 거기에는 별 희망이 없다고 보는 것 같아. 사실 나도 좀 그래서, 봉준호를 끌어들이려는 것 같기도 한데.ㅋㅋㅋ 하지만 아이들은 좀 다르지. 최소한 그 아이들은 두 개의 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물론 그아이들도 늘 희망이 될 수는 없어. 단지 아직 카드를 펴지 않았으니, 우리보다 낫잖아.
&nbsp;
아내) 그래, 우리 아이들 잘키워야겠어
나) 어제 예찬이에게 화를 세번 내었는데, 마지막에는 예찬이가 나를 바라 보던 표정이 ...하 뭐라고 해야할까. 좀 서글퍼보이기도 하고 하여간 맘에 남아.
아내) 그래, 자기는 바깥에 나가서 남들에게 뭔 피해주는 일 하면 너무 곧바로 화를 내더라.
나) 좀 그래. 다른 사람에게 피해주는 건..좀. 하여간 그래도 예찬이에게 잘해야 하는데...
&nbsp;
어쨋거나, 봉준호가 보기에 새로운 세상에 어른들은 들어갈 수 없어. 아니 들어가서도 안돼. 그만큼 기성의 것에 부정적이지. 물론 기성세대들도 할 일은 있어. 그 아이들을 폭발로 부터 지키는 것. 거기까지가 끝이야. 이거 구약 성경에 나오는 모세와 여호수와 관계 같은 거 잖아. 모세가 이집트로부터 유대인을 이끌고 고생 고생하며 도망쳐 나오긴 하지만 하나님은 모세에게 가나안을 밟을 영광을 주지 않지. 모세의 역할은 가나안이 보이는 그곳까지야. 그리고 여호수아가 결국 입성해.
영화에서도 봐바... 마지막에 살아 남은 아이들...그 아이들은 흙을 밟아 본 적이 없는 아이들이라구. 걔네들 모두 기차에서 태어났잖아. 고아성이 영화 마지막에 밟는 눈길은 ...마치 우주비행사 암스트롱이 달에 내려서 작은 발걸음이나 인류를 위한 거대한 발자취다...뭐 이랬던 거랑 비슷하다구. 즉 그 아이들에게 그 땅은 완전히 새로운 가치이고 새로운 땅이야. 그들이 거기서 다시 시작한다구. 그런 의미에서 어른들은 모두 사라져야해. 봉준호는 그런 디스토피아-유토피아의 공식을 따르고 있어. 나는 영화가 절망으로 끝난 것은 아니라고 봐. 즉 아까 말했던 것을 연결시키면 횃불을 이어 받은 새로운 희망이구 인류니까.
&nbsp;
아내)그런데 결국 커티스는 다 속은 건가?
나) 글쎄. 거기는 여러 해석이 가능할 것 같아. 봉준호는 앞뒤 인과관계를 잘 맞추려는 노력을 많이 하거든. 봉준호의 디테일이란게 결국은 거기서 나오는 거겠지. 길리엄이 그러잖아. 앞칸에 가면 윌포드의 이야기에 속지마라. 혀를 뽑으라 그러나...하여간...&nbsp;그 말을 받아들인다면, 윌포드의 말을 100% 수용할 수는 없어질지도 모르지. 하지만 커티스는 윌포드가 말한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아. 사실 대단히 설득력있거든. 아마 그랬을 거야...여기서 중요한 포인트가 하나 발생하는데...성냥 달라는 고아성을 첨에는 뿌리치는데 커티스가 다시 재정신 돌아오는 계기가 대단히 휴머니즘적인 사건에 의해서야. 뭐랄까...혁명에서의 이론과 신념같은 것 중요하겠지만 어떤 결정적 사건을 만드는 힘은 그게 아닌 것일 수도 있지. 봉준호는 최소한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아.
&nbsp;
아내) 자기는 어떤 장면이 좋았어.
나) 글쎄.윌포드와의 대화도 좋았지만,&nbsp;영화에서 가장 정치적 색깔을 드리운건, 송강호와 커티스가 문앞에서 나눈 대화야. 커티스가 문을 열라고 하지. 그런데 송강호가 그래 나도 열구 싶다구...그 문 말고...기차 바깥문 말이야라고 하지
아내) 그래, 그 장면 좋더라.
나) 사실 좌파 정치에서 아직까지 논쟁하고 재논쟁하는 그런 주제이기도 해.&nbsp; 커티스의 반응이 흥미롭지. 커티스 역시 '바깥에 나가면 죽어'를 반복한다구. 커티스는 보면, 일종의 레닌처럼 비쳐지거든. 거기서 그가 레닌의 제스처를 끝까지 취하진 못하는구나 싶기도 하고...하여간 반란군의 리더 역시 학교의&nbsp;학생들에게 주입된 것같은 담론을 의심없이 받아 들이고 있다구. 아랫칸에서도 그런 담론의 유포는 계속되지. 아랫칸 사람들 역시 현재의 물질적 상황과 인정투쟁 욕구는 강했지만 그 체제 외부를 생각하지는 않는다구. 즉 바깥의 사유를 염두해 두지 못하는 거야. 니체나 들뢰즈등에 영향을 받은거겠지만... 소수자운동 등등 뭐 한방에 무슨 전복을 꿈꾸는 그런거 말고, 체제의 움직임에 자체에 제동을 거는 다양한 운동들이 그런 사유에 기대어있어. 그렇게 바깥의 사유를 염두해 두지 못하면 결국 윌포드의 제안, 내 대신 이 자리를 대신해서 기차를 유지해주게 라는 요청에 허걱하게 된다는거지...혁명이라는게 그렇게 권좌만 바꾸는 건가? 물론 그런 의미도 크겠지만,&nbsp;그렇게 되면 결국 쉽게 말해&nbsp;못가진 자들의 질투, 욕심 정도로, 너희가&nbsp;돼도 다 똑같다라는 정도로 머물 수 밖에 없는거거든.&nbsp; 다행히 커티스에겐 아직 윤리적 선택의 길이 있었지만. 근데 실제로 우리 노조나 그외 기타 정치조직이나 보면 실제 여기서 대입할 수 있는 일들이 많아. 
&nbsp;
아내) 자기 이야기들으니까...뭐 그런 것 같기도 하네.
나)&nbsp;몰라 나도. 그냥 영화 보면서 그 정도 생각했구. 다시 한 번 봐야돼. 이거 원래 만화가 있었잖아. 2008년에 봤거든. 집에 가면 책 있어. 어제 영화 보고 와서 잠시 화장실에서 넘겨봤거든 만화에서는 기차가 순환하고, 앞 칸 뒤 칸 구분이 있고, 뭐 그 정도 설정만 빌려왔어. 뒤에 이야기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다구. 봉준호보다 훨씬 디스토피아적이지. 만화 속에서는 실제 열차가 1001량이나 돼. 그리고 2부인가 하여간 그 설국 열차가 또 있어서 충돌이 예상된다는 상황도 나오고...스윽 봐서 정확히 기억은 안나. 영화는 아무래도 캐릭터나 스토리를 좀 더 단순화하고 집중화 시켰야했겠지. 하여간 만화랑은 완전 달라. 
&nbsp;
아내) 그렇구나. 자기 이제 들어가봐야지.
나)&nbsp;어...공부 열심히 하고. ㅎㅎ 공부하는거 보니 귀엽네.ㅋㅋㅋ 저녁때 보자.]]></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805/pimg_77788218388299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507980</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 &amp;lt;마지막 사중주&amp;gt;에 대하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506474</link><pubDate>Mon, 05 Aug 2013 01:0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506474</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0058360107&TPaperId=6506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429/86/coveroff/005836010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062736916&TPaperId=6506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7/92/coveroff/8947084921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042738145&TPaperId=6506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93/17/coveroff/8947786497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72736930&TPaperId=6506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01/32/coveroff/8947586854_2.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262738368&TPaperId=650647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8/64/coveroff/842193323x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apple21/6506474'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 스포일이 걱정된다면 보지마세요. 길기까지 하니까.&nbsp;제발.&nbsp;그냥 영화관 가서 맘에 드는 제목 있으면 들어가서 아무런 인포메이션 없이 보고 오는 방식이 스포일의 강박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가장 지적인 방식이며, 또한 공연윤리심의위원회의 스포일 가이드 라인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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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십니까?"라는 질문은 당혹감을 불러일으킨다. 순간 자기가 정말 행복한지 돌아보게 한다. 그럭저럭 나쁜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혀끝을 살짝 건드릴 때쯤, '아니 그런데, 저 인간이 묻는 행복이란게 뭐지?' 라는 생각이 뇌신경을 건드린다.&nbsp; 이어서 '아니, 왜 저런 걸 묻는거야? 뭘 얻자고, 뭐 하자는 거지?'라는 데 까지 생각이 미친다. 질문에 묘한 악취가 난다고 느껴지는 순간&nbsp; 몸속의 아드레날린은 별의별 거지 같은 위악의 제스처를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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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영화&lt;마지막 사중주&gt;도&nbsp;한가운데로 직구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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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푸가 사중자단의 연장자이며 첼로연주자인 피터(크리스토퍼 월켄 역)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으며 영화는 시작된다. 25년 이상&nbsp;서로 이해하며 최고의&nbsp;음악을 만들어온 푸가 사중주단.&nbsp;드디어 위기를 맞는다.&nbsp;시작은 제2바이올린을 맡던 로버트(필립 세이 무어 호프만 역) 부터이다. 팀의 위기가 전면에 드러나는 상황에서&nbsp; 제1바이올린과 역할을 나누고 싶다고 말한다. 왜 자신은 늘 배경이 되어는 제2바이올린에 만족해야만 하냐는 것이다. 조화의 이름으로, 삶의 이름으로 덮어 두었던 크고 작은 욕망과 불만들이 하나씩 움을 틔운다. 과연 그들은&nbsp; 행복했을까? 그들은 무엇을 대가로 치루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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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젝은 &lt;실재의 사막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gt;에서 이렇게 말한다.
"... 주체가 자기 욕망의 불일치 안에 고착되어 있는 것이 행복의 대가이다. 일상생활에서 우리는 우리가 정말로 욕망하지 않는 것들을 욕망(하는 척)한다. 그래서 우리가 '공식적으로' 욕망하는 것을 얻는 일은 결국 우리에게 닥칠 수 있는 최악의 일이 된다. 그래서 행복은 본질적으로 위선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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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푸가 사중주단의 명성과 행복은 지젝의 입을 빌자면, 모든 욕망의 배반이었던 셈이다.&nbsp;그것은 멤버 교체 또는 팀 해체의 위기 앞에서 유령처럼&nbsp;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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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영화 속 사중주단의 이름부터 살펴보자. '푸가 사중주단'. 영화 속에서는 뉴요커들이 '푸규어 쿼텟'이라고 발음한다.&nbsp;'쿼텟'이라는 발음이 매력적이다. 미끄러지는듯 하면서도, 살짝 당겨주는 그 느낌.&nbsp;'푸가'란&nbsp;쉽게 말하자면, 여러 개의 성부가 주선율과 일정한 규칙적 관계를 두고&nbsp;전체 화성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합창단으로 예를 들자면, 소프라노가 주 멜로디를 한다면 알토와 테너,베이스등이 화음을 만드는데, 이 화음이 단지 보조적인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멜로디의 모방,변형, 또는 확산의 관계를 통해 전체적인 하나의 덩어리를 만든다.&nbsp;영화 속 연주팀의 이름이 푸가인 것은 이중적인 의미로 읽힌다.&nbsp;그것은 푸가라는 형식이 내적으로 가지고 있는 이중성과도 관련이 있어 보인다. 원칙적으로 각 성부는 독립적인 역할을 맡는다. 하지만 실제로는 멜로디를 연주하는 리더 악기가 존재한다. 그러니까 원론적 차원에서의 평등을 말하지만, 그 안에 순수한 의미의 평등은 존재하기 어렵다. 내재적으로 힘의 관계,권력 관계가 존재하는 것이다. 이 힘은 물론 상호적인 것이긴 하다. 푸가 사중주단 역시 그런 권력관계의 발현이 문제의 시작이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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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영화&lt;마지막사중주&gt;를 이끌어가는 양날개는 중견의 연기파 배우들과 베토벤의 음악이다. 주요 배우들은 과르네리나 스트라디바리우스처럼 귀에 찰싹찰싹 달라붙는&nbsp;연기를 한다.&nbsp; 그들의 연기에 실밥이 없다. 크리스토퍼 월켄,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케서린 키너, 마크 아이반니가 그들이다. &nbsp;사중주의 생명은 악기 간의 완벽한 호흡과 밸런스듯이, 이 영화&lt;마지막 사중주&gt;에서 4명의 배우들은&nbsp;최상의 연기 조합을 만들어 낸다. 화려한 제스처나 극단적 캐릭터는 없다. 그들의 연기는 잘 지은 흰색 쌀밥&nbsp;같은 연기이다.윤기가 흐르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며, 식감을 자극하는 밥 향기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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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영화 속의 캐릭터들을 보자. 인물들은&nbsp;현악사중주에 쓰이는 악기들의 보편적 특성과 동형 구조를 가지고 있다.&nbsp;예를 들어 딸이 엄마인 줄리엣에 대해 말할 때, '비올라는 두 개의 바이올린이 가지고 있지 못한 깊이를 더해준다.'라고 말한다. 실제 현악 사중주에서 비올라의 역할이 그렇고, 극중 비올라 주자 줄리엣의 성격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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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첼로 주자인 피터는 파킨스 병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 연주 생활도 곧 끝날 것이며, 자신의 삶 자체가 흔적으로만 남을 것이다. 지난해 먼저 떠난 아내의 그림자-피터의 상상 속에 등장하는 그녀는, 놀랍게도, 성악가 안나 소피 폰 오토였다-는 더욱 커진다. 하지만 피터는&nbsp;첼로의 굵고 깊은 소리처럼 삶의 심연을 거스르지 않으며 유영한다. 모든 시간에는 추억이 있고, 또 멈춤이 있고, 그리고 잊힘이 있다는 것을 그만이 안다.&nbsp;&nbsp;제1바이올린의 대니얼은 음악 외엔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는 구도자적인 삶을 산다. 그는 러시아의 자작나무처럼 냉정함의 외피 속에 자신에 대한 엄격함과 음악에 대한 헌심을 담았다.&nbsp;그에게는 이민자의 정서적 고독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의&nbsp;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사랑이 다가온다. 그의 흔들림은&nbsp; 중년의 객기와 같은 것이 아니다. 마지막 열정을 쉽사리 놓치고 싶은 이가 누가 있겠는가? 그의 바람이 한순간 사라져버렸을 때, 그는 늘 하던 데로 활대를 다듬는다. 그의 숨결에는 돌아오지 못하는 것에 대한 깊은 회한과 그것 없이 살아가야하는 시간에 대한 고통이 묻어있다. 그의 반복되는 기계적 움직임은&nbsp;그런 의미에서 안타까움을 불러일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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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올라의 줄리엣은 사중주단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고정점이다. 피터는 그녀의 스승이자 부모 같은 존재이다. 이제 그의 부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제2 바이올린 로버트는 그녀의 남편이고, 제1 바이올린 대니얼은 한때 애인이었던 사람이다. 로버트는 그녀가 자신을 진정 사랑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에게 원했던 것은 제2 바이올린의 역할처럼 안정감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녀의 젊은 시절 연인은 대니얼이었지만, 그 둘은 이제 동료일 뿐이다. 그녀는 로버트를 이해하려 하지만, 문제는 점점 그릇되어 나가고 이 둘은 별거에 들어간다.&nbsp;또한 그녀의 딸 역시 다른 이름의 상처를 맛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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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에겐 자신을 입증하려는, 즉 인정투쟁에 대한 욕구가 있다. 모두들 최고의 제2 바이올린이라고 칭찬하고, 본인 역시 '함께 하는 즐거움'을 더 높이 샀지만 그 안에는 또 다른 욕구가 늘 자리 잡고 있었다. 그대로 멈추며 안주할 것인가, 파괴를 통해서라도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할 것인가의 위치에서 로버트는 자기를 드러내는 방향을 택한다. 그가 보기에 팀은 지나치게 제1바이올린과 멘토인 첼로에 의존하고 있었다. 초기에 있었던 음악적 이견차이와 이를 좁히기 위한 열정적 소통마저도 희끗한 머릿결처럼 회색빛이 되어 버렸다. 그의 선택은 팀 내 균열을 만들어내지만, 사실 이런 '폭력'-하이데거가 존재를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했던-이 없었다면 그는 그의 욕망과&nbsp;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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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인물들이&nbsp;현실적인 흡입력을 가지는 이유는 이들이 모두 익숙한 것과의 결별이라는 사건 앞에서 파국적으로 보이지만,&nbsp;유연한 애도 과정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자의에서든, 욕망의 대면을 통해서든, '익숙한 것과의 결별'에 임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있다.&nbsp; 그들이 이것들을 다루는 방식은 매우 온건하다. 고통스러우나, 파괴적이지 않고, 병적이지 않은 방식인 셈이다. 또한 단시간적이다. 그들은 뉴요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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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또 하나의 중심축은 첼리스트 피터의 고별 공연 레퍼토리인 '베토벤 현악사중주 14번 작품131'이다.&nbsp;많은 베토벤 추종자들이 그의 최고 작품으로 후기 현악사중주를 꼽는다.&nbsp; 후기 현악사중주는12번부터 16,그리고 대푸가까지 포함하여 총 6곡의 작품이다. 흔히 베토벤의 일대기를 세시기로 나눌 때,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기간에 나온 작품들이다. 잘 알려진 베토벤의 교향곡 9번, 그리고 애호가들에게 일종의 그노시스적 영감을 준다는&nbsp;후기 피아노소나타 같은 곡들과 함께 작곡되었다. 특히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는 매우 독창적인 면 때문에,그리고 일종의 현학성(?) 때문에 애호가들의 사랑을 받는다.&nbsp;이 음악은&nbsp;과거 베토벤 음악과도 차이가 있으며, 이후 등장하는 후배 작곡가들 것과도 다르다. 이 영화에서 자주 들리는&nbsp;현악사중주 14번의 1악장은 아다지오로 시작된다. 베토벤의 작품 중 아다지오로 시작되는 작품은 이것을 포함하여 오로지 2곡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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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1악장의 도입부는 전형적인 푸가풍이다.&nbsp; 곡은 진행되면서 전형적인 푸가의 틀을 벗어나기 때문에 학자들은 푸가라고 지칭하 보다는 '푸가풍'이라고 말한다. 제1바이올린의 주선율에 이어 5도 차이로 다른 악기들이 등장한다. 푸가 사중주단의 마지막 곡이 '푸가풍'이란 점, 그리고 애도의 느낌을 자아내는 아다지오 악장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에서 슈베르트가 임종을 이 음악이 지켰다는 말에 미루어 볼 때, 이 음악의 1악장은 그런&nbsp;지나간 시간에 대한 애도의 느낌을 자아내는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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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극 초반부에&nbsp;피터는 학생들이게 이 현악사중주의 특징에 대해 설명한다. '모두 7악장으로 되어 있으며, 중간에 쉴 수 없다. 그래서 연주자들은 악기 조율을 할 물리적 시간이 없다. 불협화음이 발생해도 그냥 가야 하는가? 아니면 멈추고 조율해야 하는가?&nbsp;그렇다. 이 곡은 끊김이 없다. 마치&nbsp;연속적인 시간의 흐름에 얹혀 흘러가는&nbsp;우리네 삶처럼 말이다. 멈추어야 하는가? 아니 멈출 수 있는가? 아니 그냥 가야 하는가? 아니 그냥 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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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딜레마를 해결하는&nbsp; 한가지 방법으로,흔히 말하는 변증법적 화해에 반대하여 아도르노는&nbsp; '말년성'이라고 개념을 제시한다.&nbsp;그는 '말년성'의 특징을 조화와 해결이 아닌 비타협, 난국, 풀리지 않는 모순이라고 설명한다. 그것은 정체성을 규정해내는 총체적 개념을 거부하고 부유하는 상태, 모순을 그대로 그 자체로 존중하는 태도이다.&nbsp;그런 수행을 통해&nbsp;모순은 파국과 생성의 가치를 배양하는 장치가 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매우 설득력 있는 주장으로 느껴진다. 앞서 말했던 피터의 딜레마와 아도르노가 말한 '말년성'의 특징은 결국 공명하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이것이 베토벤 후기 현악사중주가 담고 있는 의미의 일부이며, 영화 &lt;마지막 사중주&gt;는 이 생의 말년성을(이것을 연대기적으로 수용하면 절대 안된다.) 음악영화의 이름으로 영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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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영화는 모순의 스펙터클을 관객에게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그들이 완벽한 봉합의 샴페인을 터뜨리는 것도 아니다. 사중주단의 조화를 파괴하지 않는- 즉 상징질서를 전복시키지는 않는- 방식으로 내러티브는 마무리된다. 물론 '사중주단은 과거와 같진 않을 것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대니얼이 꼼꼼히 적혀 있는 악보를 덮는 장면이 그런 변화를 예시한다. 불안하고, 불확실하지만 자발성과 즉흥성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믿음으로 중단된 나머지 악장이 시작된다.&nbsp;&nbsp;그들의 이들의 삶 속에서 타자에게 노출되어 버린 욕망의 흔적 역시 금세&nbsp;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해결의 기미를 희미한 낙관을 담아 영화는 보여준다.&nbsp; 즉 영화는 삶의 표면 아래 가라 앉은&nbsp;타오르는 얼음의 그림자를 일정부분 추출해내지만, 개량적인 방식으로 재봉합 시키는 안정적인 방식을 취하는 것이다.&nbsp; 이 과정을 처리하는 방식은 쾌도난마다. 이것은 영화적으로 급속한 제동처럼 보이는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런 어색함이&nbsp;현실적이긴 하다.&nbsp;늘 봉합이 이루어지는 방식은 마치 벌어진 살이 순간 오므라들 듯이 어긋남 속에서 급속히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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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베토벤은 후기로 갈수록 꼼꼼한 연주 지시를 악보에 명기해 놓았다고 한다.&nbsp;하지만 베토벤의 연속적 연주 지시는 삶과 음악이 포개지는 자리에서 깨어져도 상관없지 않을까?&nbsp; 푸가사중주단의 멈춤은 그런 의미에서 엄격한 기준으로 보자면 어긋난 연주일 수 있다. 하지만 그 급작스러운 단절이 없다면, 우리 삶에는 어떤 도약의 가능성들이 남아 있을지 반문해보게 된다. 새로운 멤버와 함께 연주는 재개되고, 관객들은 그 모든 상황을 자연스럽게 이해한다. 그리고 베토벤의 음악은 여전히 살아 있고, 삶도 여전히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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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 왼쪽부터 부다페스트사중주단, 과르네리사중주단, 이탈리아사중주단
하단 왼쪽부터 에머슨사중주단, 타카시사중주단, 브렌타노사중주단.
p.s)&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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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영화사 보도자료를 보니 감독이 어려서부터 실내악을 좋아했다고 한다. 영화 속 푸가 사중주단을 만들어내면서 과르네리 사중주단, 이탈리아 사중주단, 에머슨 사중주단을 모델로 생각했다고 한다. 과르네리는 40년 이상 유지된 사중주단이었다. 1,2 바이올린의 구분이 당대 다른 사중주단에 비해 좀 약했다. 이탈리아 사중주단은 여성멤버가 있었다. 에머슨은 1,2바이올린이 곡에 따라 서로 임무를 바꾸는 독특한 구조이다. 이 팀이 모두 베토벤 후기 사중주 음반으로 유명하다. 개인적으로 추가하자면 타카시 사중주단과&nbsp;알반베르크사중주단. 그리고 오래되었지만 빼놓을 수 없는 부다페스트사중주단과 부슈사중주단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훌륭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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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영화 속에서 피터의 후임으로 오는 나니 리는 실제로 뉴욕에서 활동하는 한국계 첼리스트이다. 이 영화의 사운드트랙 음원이 나니 리가 속해 있는 브렌타노 사중주단의 연주다.
&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92/62/cover150/697776782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926247</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아...정녕 이것이...</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87223</link><pubDate>Thu, 25 Jul 2013 03: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487223</guid><description><![CDATA[&nbsp;알라딘은 종종 독창적인 상품들을 만든다. 다행히 날개 없는 선풍기나 아이패드 같은 것은 아니다.&nbsp; 기껏 해야 이사갈 때&nbsp; '이 참에 버릴까, 아니야 그래도 한 때 좋아했는데' 라는 3초간의 고민을 안겨주는 소소한 물건들이다.&nbsp;머그컵, 티셔츠, 에코 백 등등&nbsp;사실 작가 김승옥의 얼굴에서 멈칫 거리지만 않았던들 몇 번의 물질에 숨 죽은 고사리처럼 되어 버린 검은 티셔츠도 사진 않았을 것이다. 김승옥에서 걸려 버린게 외상이 되어 그 셔츠를 두고 두고 곱씹기 위해 산 셈이다.&nbsp;하여간 내게는 여름철&nbsp; 햇빛을 쏙쏙 흡수해줄 검은 셔츠가 서너장이 있었다. 특히 아는 사람은&nbsp;탐내는, 셔츠 배꼽 언저리에서 '시쉬쉿' 하고&nbsp;sheet of sound를 들려 줄 존 콜트레인이 새겨진 멋진 반소매 티셔츠.&nbsp;수년 전에&nbsp;배우 모씨가 우연히 그 셔츠를 보더니 "어...이건&nbsp;그대랑 잘 안 어울리는 듯 한데. 나 주지?" 라고 했지만, 절대&nbsp;사수하여 지금도 존은 옷장에서&nbsp;순번 기다리고 있다.&nbsp;&nbsp;그런데 심야 라디오도 틀어 놓지 않은&nbsp; 깊은 밤. 바람은 시원하게 쌩쌩 부는 이 밤에,'앗' 하고&nbsp;스타카토의 탄식을 불러일으키는 녀석이 등장했다.&nbsp;&nbsp;&nbsp;&nbsp; 그렇다. 이것은 PKD(필립 K- '왜 이건 늘 '케이'라고 하지 않고 K라고 하는지, 존 F 케네디도 그렇구.'- 딕)의 '유빅컵'이다. &nbsp;하악 하악....&nbsp;살짝 걱정도 된다. &nbsp;마치 약 먹는 기분이 날 것 같다. 한편으로 보면 비이커가 떠오르기도 한다.화학공학도도 아닌데&nbsp;맥주를 비이커에 따라 마실 필요가 있을까 싶긴 한데...&nbsp;그래도 저거 하나 있어야 겠다.&nbsp;맥주 한번 따라 마셔보고 역시 맥주는 '하이네켄 잔이야'라고 생각한다면 그냥연필 꽂이로 쓰던지 하지 뭐!!]]></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725/pimg_7778821838784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87223</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폴 토마스 앤더슨의 영화&amp;lt;마스터&amp;gt;</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47383</link><pubDate>Thu, 04 Jul 2013 11:0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447383</guid><description><![CDATA[지난 달 영화의 전당에서 폴 토마스 앤더슨전이 있었다. 
영화&lt;마스터&gt;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맞지 않았다.
다음 주말이면 일반 개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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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경력은 화려하다. 2012년 베니스 은사자상,남우주연상을 비롯해서
많은 영화제에서 감독상, 주연,조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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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호아킨 피닉스, 에이미 아담스가 출연한다.
호아킨 피닉스가 배우로서 우리 관객의 눈에 들어온 건 아마 영화&lt;글라디에이터&gt;에서
근친상간의 욕망과 질투에 사로잡힌 황제 역할을 맡았을 때였을 것이다.
그 전 까지는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 요절한 배우 리버 피닉스의 동생 정도로만
기억되었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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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예고에서 보여지는 그의 금새라도 조각날 듯 한 분위기의 표정연기는
조각같은 배우들의
얼빠진 표정보다 훨씬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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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경이 2차 대전 이후이다 보니 영화에도 복고풍의 노래가 많이 쓰였다고 한다.
한국판 뮤직비디오에는 조 스태포드의 'no other love'를 배경음악으로 사용했다.
멜로디는 귀에 익다.
&nbsp;
쇼팽의 에튜드 작품10의 3 일명 이별의 곡으로 알려진 노래다.
이미 수많은 사람들이 여러 종류의 편곡으로 불렀다.
조 스태포드의 오래된 느낌이 비오는 계절에 어울린다.
&nbsp;

]]></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704/pimg_77788218387034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47383</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영화&amp;lt;코스모폴리스&amp;gt; 시사회 다녀와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26099</link><pubDate>Fri, 21 Jun 2013 15: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426099</guid><description><![CDATA[**&nbsp;어제(6/20) 부산 영화의 전당 시사회에서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lt;코스모폴리스&gt;를 봤다.&nbsp;어차피 기억에 의존하는 영화쓰기인지라 며칠 지나면 쓸 마음도&nbsp;땡볕아래 아이스크림처럼 사그러질 것 같고 해서 그냥 끄적인다. 늘 그렇듯이 아님말구식이지 뭐.ㅎㅎㅎ 시작.&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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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제 금융시장은 '버냉키쇼크'라는 것에 술렁이고 있다. 미 연방준비위원회 의장의 유동성 축소 발언에&nbsp;세계 주식시장 전체가 초록불을 빨간 불로 바꾼다. 한국 증시 역시 마찬가지다. 코스피 지수 붕괴선을 두고 대책과 해석이 분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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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감독의 &lt;코스모폴리스&gt;는 그런 국제금융시장을 움직이는 '큰 손'&nbsp; 애릭 패커(로버트 패틴슨 역)의 이야기이다.&nbsp;&nbsp;(앞서 언급했던 '버냉키쇼크'와 유사한 예는 영화에서도 잠시 언급된다. '재무장관의 발언 하나에 시장이 과민하게 움직인다.' 고 탓하는 장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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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영화는 세계 금융의 수도&nbsp;뉴욕을 배경으로 한다. 월가의 큰손 애릭 패커는 사무실에 있지 않다. 그는 개량한 리무진 속에서 금융시장과 접속한다. 여기서 접속은 이중적인 의미다. 1차적으로 그의 비즈니스. 즉 실제 거래를 하는 방식이 그렇다. 컴퓨터 단말기를 통한 트레이드는 이제 상식이다. 두번째는 타자와의 접속방식이다.&nbsp; 그가 타자와 만나는 방식이 분산적이다. 이 영화에서 -기억에 의존하자면- 3명 이상의 사람이 모인 적이 없다. 마지막 이발소 씬에서 짧은 대화를 제외하면 말이다.&nbsp;대화는 늘 1:1 형식을 취한다.&nbsp;즉 애릭 패커가 타자와의 관계맺는 방식은 마치 컴퓨터 단말기와 개인이라는 관계의 미메시스다.&nbsp; 그가&nbsp;&nbsp;컴퓨터 단말기와 접속하면서 '투자-기계'가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그는 그 외의 삶에서 새로운 접속점을 찾아 내지 못한다. 그의 정체성 따위를 논하려는 것은 아니다.&nbsp; 최소한 접속의 지점을 찾지 못하는 인간은 어떤 지점에서 비가시적 &nbsp;자본처럼 그 물질성을 놓쳐버리게 된다는 휴머니즘적인 유물론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nbsp; 자본주의를 인간화한 형식에 가까운 그가 결국 자기 목적성을 놓쳐버리는 순간 -자본은 절대 자기목적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는 내파한다.
&nbsp;
&nbsp;금융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의 흐름은 비가시적이다. 현재 국제 경제 규모에 있어서&nbsp;실물경제는 비가시적 금융경제에 자리를 내준지 오래다. 이것은 어느 대통령, 어느 정권, 어느 경제블럭의 탐욕이나 욕망 때문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주기적으로 공황을 겪는다." 라는 오래된 금언이 있다. 이말을 한 사람들은- 물론 공황론에 대한 이견은 산처럼 많다- 이윤율 하락을 주 원인으로 생각했다.실제 2차대전 전후로 이윤율 하락을 견지해낸 것은 &nbsp;전시경제 시스템이었으며, 자본의 유기적 재구성 과정은 &nbsp;끊임없은 유동전략을 통해 '자기증식-재생산'이라는 목적을 달성해 왔다. 데이비드 하비가 &lt;신제국주의&gt;에서 말한 '조정' 또는 '축적'(fix) 라는 것은 세계체제론자들이 말하는 세계 경제의 파동 함수 속에서 자본이 대응하는 전술 방식을&nbsp; 정리해낸 것이다. 우리가 흔히 목격해왔던, 예를 들자면 외환은행 론스트 매각과 도 같은것-금융자본주의의 M&amp;A라고 하는 방식을 하비는 '강탈에 의한 축적' 이라고 말한다. 과거 포드시스템 하에서 실물경제가 아직은 숨을 쉬고 있을 때 공간의 이동 등을 통한 생존 방식과 다른 자본의 생존 적응방식이다. 생각해보면 자본은&nbsp;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 환경을 조절하는 거대한 괴물과도 같다. 윌리엄 깁슨의 소설 &lt;뉴로맨서&gt;에 등장하는 매트릭스. 자본주의는 그런 괴물이 스스로 창조해 놓은 매트릭스다. 모든 배치와 재생산은 그런 스스로 수정하고, 적응하는 매트릭스 안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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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사리 적을 지목하고 싶은 대적의 욕망은 짐짓 자본의 효과를 원인으로 착각하게끔 한다. 실제 애릭 패커와 같은 거대한 금융가의 큰 손들은 세계 경제를 교란시킨다. 그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존권을 잃고 크고 작은 행복들이 사라진다.&nbsp; 그들을 하나씩 제거하면 이 자본주의는 윤리적 자본주의로 전환될까?&nbsp; 대결은 국면적 상태로 계속되어야 하지만 - 그런 국면의 대결이 흐름을 주도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에- 몇 몇의 효과를 주범 삼아 제거한다고 자본주의가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 그것은 자본가보다 훨씬 큰 개념이기 때문이다.&nbsp;하지만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에 대항하는&nbsp;방법이&nbsp;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진격의 거인들'도 약점이 있기 마련이다.&nbsp;개인적으로는 푸코의 권력에 대한 사유에서 힘을 얻는다. &nbsp;권력을 전략적 관계로 파악한다면 우리는 구조주의적 공간의 불능적 매트릭스를 변용가능한 쟁투의 매트릭스로 바꿀 수 있다.&nbsp;영화에서 쥐와 케이크로 상징되는 사건들은 매트릭스 내의 지형도를 바꾸게 만든다.&nbsp; 비버리 실버는 &lt;노동의 힘&gt;에서 체제를 주조하는 대항력으로서의 저항의 힘에 대해 역사적으로 서술하고 있다.&nbsp;자본주의가 만드는 구조&nbsp; 역시 저항력에 따라 각기 다른 형태로 구성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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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애릭 패커는 위안화 투자 실패로 파산지경에 이른다. 여기서 그는 인지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매우 취약한 지점을 드러낸다. &nbsp;자본주의의 정점에 오른 사람이 자본의 비대칭성, 예측불가능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넌센스다. 감독은 그의 젊음과 오만함 등으로 인과성을 형상화해내려고 하지만&nbsp; 성공적이었는지는 의문이다. 오히려 감독은- 특히 내가 불만스럽게 생각하는 지점인데- 웅변투의 타인의 목소리를 통해서 자본의 유동성과 예측불가능성을 설파한다. 영화에서 전립선의 비대칭성같은 은유는 오히려 귀엽다. &nbsp;애릭 파커는 탁월한 정보력과 이성적 분석을 통해 자본의 흐름을&nbsp;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nbsp; 실패한다. 애릭 패커가 느끼는 존재의 붕괴감은&nbsp; 마치 &lt;계몽의 변증법&gt;에서 아도르노가 말한 '소외'와 유사하다.&nbsp;즉 오딧세우스는 이성의 힘을 통해 세이렌의 마법으로 부터 벗어난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귀를 막는 '소외' 방식을 택할 수 밖에 없었다. 자연과 인간의 변증법이 만들어낸 일종의 전술적 오류와도 같은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공리계 속에서 스스로 오딧세우스라고 생각한 패커가 취한 방식 역시 이런 '소외'의 변증법적 과정으로 귀결되고 만다. 자본주의라는 매트릭스 안에서 홀로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자본'이다. 자본은 자기합목적적인 운동을 한다. 그것만이 존재의 유일한 이유이다. 그 흐름은 저항조차 포섭하며 재생산한다.&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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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비인간적인 패커에게는-뱀파이어 패틴슨의&nbsp;무표정연기는 꽤 어울린다-&nbsp;돈과 섹스만이 세계를 체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nbsp;이 둘의 공통점은 더 큰 자극을 요청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패커 역시 정상성에 대한 염원을 가지고 있다. 그는 이야기를&nbsp;원한다.&nbsp;그러나&nbsp;이야기는&nbsp;어떤 맥락 위에서도 자리잡지 못한다. 자신이 밟고 있고&nbsp;운영한다고 착각하는&nbsp;자본주의라는 토양 위에서 미끄러진다. 흥미로운 일이다. 자본주의의 숨은 운용자라 자임하는 사람이 자신의 질서 속에서&nbsp;의미와 결합하지 못한다는 것. 특히 아내의 거절은 의미가 크다. 테리 이글턴은 &lt;발터벤야민 또는 혁명적 비평을 향하여&gt;에서 &nbsp;'거절이 공포를 불러일으킨다'는 어느 시인의 구절을 인용한다. 패커는 자본주의로부터의 일시적 거절과 아내로부터의 영원한 거절을 통해 비로소 공포와 대면한다. 그리고 의미결합의 실패로부터 오는 공포는&nbsp;결국 죽음본능으로 발현된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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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흥미로운 공간이 마지막에 등장한다.&nbsp; 패커가 유일하게 안식할 수 있는 곳. 패커의 오늘 일정은 궁극적으로 이 이발소를 찾는 것이었다. 어린 시절 부터 다녀온 이발소이다.&nbsp;여기서 패커의 행동은 마치&nbsp;오손 웰즈의 '케인' 의 오마쥬 같다.&nbsp;잠시 회고적 상념에 젖는 패커. 영화 속에서 거의 처음으로 3자의 대화공간이 만들어진다. 이발사와 운전기사의 대화 속에서는 다시&nbsp;흥미로운 접점의 공간이 언급된다. '택시'이다. 뉴욕의 택시.&nbsp; 이&nbsp;공간은 영화 초반부에 패커의 아내가 '자기는 택시가 좋다'며 언급하는 장면에 등장하고 마지막에 다시 상기의 형식으로&nbsp;등장한다.&nbsp;이발사가 말하고, 현재의 운전사가 말하고, 있는&nbsp;'택시' 무수한&nbsp;실제의 사람들이&nbsp;오르고 내리며 성좌처럼 역사를&nbsp;그들만의 작은 역사를 빚어 내는 공간이다. &nbsp;안타깝게도 패커에게는 그런 실제의, 육화된 삶의 흔적이 없다. &nbsp;그는 비로소 깍다가만 쥐파 먹은 머리의 흔적을 얻어낸다. 전기총이라는 인위적 자극으로도 경험하고 싶었던 육체성이 확인된다. 그가 리무진 주차장으로 가는 장면에서 그의 좌석 위치는&nbsp;그런 의미이다.&nbsp;그는 운전사 옆자리에 앉는다.&nbsp;하지만 이미 죽음을 향한 파국의 중력을&nbsp;끊어 내기엔 늦었다. 영화는 다시 한번 자본주의에 대한 최종 토론을 거치고 나서 총을 겨눈 상태에서 끝이 난다.그나마 다행이다.죽어 주는 건 최악의 선택이었을테니.&nbsp;&nbsp;
&nbsp;
&nbsp;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은&nbsp;이 자본주의에 대한 혜안(?)의 메시지를 어딘가로 투여-사실 투척이라는 말을 쓰고 싶다만, 크로넨버그에 대한 예의로 그렇게 하진 않겠다- 해야겠다는 일종의 사명감 같은 것이라도 &nbsp;있었을까?&nbsp;&nbsp;영화라는 담론에는 어쩔 수 없이 이데올로기가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읽어내는 방식은 나 역시 매우 좋아하는 것이다. 하지만 영화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메시지 말고도 또 있지 않는가? 그것은 같은 요리를 가지고 계란프라이를 만들 수도 오믈라이스를 만들수도 있는 그것.&nbsp; 크로넨버그의 계란은 어쨋거나 흡족스럽진 않다. 딱히 어려웠다고 말할 것도 없고 딱히 어떤 촉을 느꼇다고 할 수도 없는.&nbsp; 이거야 말로 하루키식 표현을 돌려쓰자면&nbsp; 요즘 뉴욕 메츠 6번 타자 같은 영화 아닌가?&nbsp; 영화 초반부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전문가들과 시위대, 마지막 씬의 해고자까지&nbsp;연극적이라고도 해야할 인물들&nbsp;모두 관객들에게 자본주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이&nbsp;많은&nbsp;크로넨버그식 욕망의 인형들이다.&nbsp;&nbsp;물론 돈드릴로의 아이들일 수도 있겠으나, &nbsp;우리가 본 것은 영화이지 소설이 아니잖아.ㅎㅎㅎ&nbsp; 원작자 돈 드릴로를 존중했던 탓일까?&nbsp;&nbsp;끊임없는 대화의 형식들, 아니 웅변의 형식이라고 해야 되지 않을까? 이건&nbsp;소설이나 우디 알렌 스타일, 또는 리처드 링클레이터 (비포시리즈 감독 ㅎㅎ) 이지 크로넨버그의 스타일은 아니지 않았던가.
&nbsp;
&nbsp;크로넨버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프로파간다를 이런 상투적이며, 직접적인 방식으로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nbsp;&nbsp; 크로넨버그라면 이보다는 나아야 하지 않을까? 이것이 &lt;폭력의 역사&gt;와 &lt;이스턴프라미스&gt;에서 날 것으로 드러내고 싶었던 '폭력'의 얼굴에 대한&nbsp;'자본' 버전인가?&nbsp; &nbsp;만약 그렇다면 영화에서 사회학자의 입을 통해- 이론이라구 이론.-&nbsp;드러난 대로 이것은 '텍스트화된 자본'에 대한 영화적 반복이다.&nbsp; 카이에 뒤 시네마는 이것을 높이 평가했을것이다. 우리가 너무 영화에 기대해서는 안된다는 의미에서 말이다.]]></description><image><url>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621/pimg_77788218386597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26099</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호우시절</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21167</link><pubDate>Tue, 18 Jun 2013 16: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421167</guid><description><![CDATA[6월이면 시작되는 장마... 내 기억 속의 장마는 두 장의 스틸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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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nbsp;대학 1 학년때. 이미 20년이 훨씬 넘었다.
수업은 예상보다 빨리&nbsp;끝났다. 친구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저녁이 되려면 멀었지만 주위는 이미 회색빛이었다.
혼자 이름모를 대학로 2층 카페이 앉았다.
&nbsp;
&nbsp;창 밖으로 우거진 플라타너스 사이로 초록비가 내렸다.
&nbsp;
아무도 없었다. 소리도 없었던 듯 하다. 내 기억의 스틸 사진 속 장면처럼 말이다. 아니 소리는 기억이 스스로 말소시킨 것일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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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로움과 다른 이름의 고독을 거기서 처음 대면했다.
&nbsp;
&nbsp;이후로 오래도록 친구가 되어 주었다.
&nbsp;
&nbsp;
#2
&nbsp;아카시아 숲 길을 쓸고 있었다. 군복 입은 다른 동료들과 함께.&nbsp;우거진 나무들 사이로&nbsp;파란 하늘이 점점 검게 물들고 있었다.&nbsp;습기를 많이 머금고 있는 바람이 불었다. 물을 잔득 머금은 목탄화같았다.
&nbsp;
혼자 하늘을 보다가.&nbsp; '아.장마가 시작 될 무렵인가?' 라고 생각했다.
&nbsp;
군대 고참이 "비 오려나 보다.&nbsp;어서 어서 마감하고 이제 내려가자." 라고 말했다.
&nbsp;
그의 목소리가 빗물이 모여들어 흘러내려가는&nbsp;소리처럼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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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3. 
&nbsp;멜랑콜리한 음악이나 들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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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시사인 300</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413023</link><pubDate>Thu, 13 Jun 2013 10: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413023</guid><description><![CDATA[어젯밤 가방에서 하루를 재워 놓았던&lt;시사인&gt;300호.&nbsp;오늘 아침&nbsp;설렁 설렁 넘긴다.&nbsp;언론계의 스파르트답게 300호에는 흥미로운 기사가 많다. 
&nbsp;
&nbsp;커버스토리는 '철수,호남을 얻다' 이다. 여자들이 제일 듣기 싫은 이야기가 남자 '군대'이야기,'축구'이야기,,그리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라고 한다. 이젠 별로 감흥도 없는 신석기 시대 유머이긴 하다.&nbsp;철수나 영희가 땅따먹는 이야기가 내게 그렇다.&nbsp;
&nbsp;
특집은 '삼성경제연구소'이다. SERI는 어제 오늘 이야기는 아니다. 그람시를 인용하는 스튜어트 홀의 문화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헤게모니적 쟁투이다. 실제 변화를 일으키는 것은 정치적 권력의 쟁투이지만 그 이면에 담론의 투쟁은 정치적 권력의 지반을 만들어준다. 그리고 쟁투과정에 매우 중요한 자원이된다.&nbsp;신자유주의와 그것을 지지하는 세계경제의 흐름은 어느날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 것이 아니다. 또한 그에 대한 대항권력도 '우리 합시다'해서 튀어 나오는게 아니다. 담론투쟁은 그런 의미에서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중요하다. 
&nbsp;
&lt;뉴스타파&gt;의 김용진 대표,최승호 PD와 인터뷰했다. &lt;뉴스타파&gt;는 요즘 인터뷰하기 힘든 인튜뷰어들(^^ ?)이다.&nbsp;'조세피난처'라는 말 대신 '조세 은닉처'란 표현이 어울리는데 하여간 이 뉴스보도 이후 &lt;뉴스타파&gt;는 가급적 다른 언론과의 인터뷰를 꺼리는 걸로 알고 있다. 후속보도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다른 인터뷰로는 &lt;한국일보&gt; 해직 편집국장과의 인터뷰도 있다.
&nbsp;
문화면에서 &lt;진격의 거인&gt;현상에 대해서 언급한다. &lt;진격의 거인&gt;을 일본 사회의 무기력의 은유로 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리고 그것은 '자본'의 은유로 읽어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싸우는 자 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
&nbsp;
영화&lt;에브리데이&gt;에 대한 평은- 미안하지만- 진짜 아무것도 아니었다.
&nbsp;
대단히 흥미로운 것은 칼럼이었다. 평화연구자 임재성씨가 쓴 글인데 &lt;공동체와 회사&gt;라는 제목이다. '그린비' 출판사와 노조 사이의 갈등을&nbsp;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인문사회학 책을 취미로 읽는 내게 '그린비'는&nbsp;세 손가락 안에 꼽는 출판사이다.&nbsp;글쓴이는 '진보적 인문학 공동체'와 '노동자의 권리가 보장되는 회사'라는 관점에서&nbsp;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이어서&nbsp;'공동체라는 이름 속에서도 존재하는 권력관계의 인정' 그리고 '동일함을 강요하는 공동체의 배타성을 넘어&nbsp;직원을 회사의 주인으로 인정'하는 태도에 방점을 찍고 있다.&nbsp;
&nbsp;
&nbsp;학문하는 사람들, 또는 문화 영역에 있는 사람들의&nbsp;일반적 특징 중에 하나가 인간적 유대의 강조이다. 특히 진보적 문화연대의 특징은 그런 끈끈한(?) 연대같은 것이다.&nbsp;이건 일반 회사에서도 목격되곤 한다. 서류적 인간이 아닌 동지 또는 가식적이긴 하지만 상징적인 또하나의 가족 같은 것이다.&nbsp;그 안에 싹튼 동지의식은 매우 강력한 힘이 되기도 하고 힘든 세상을 견디게 해주는 위로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nbsp;침묵과 외면 또는 봉합의 조건이 되기도 한다.&nbsp;특히 연대의 정에 대해 다른 접근을 하는 아랫사람을 만날 때는 더욱 그렇다. 결국 그건 평등이라는 정치적 올바름의 껍질을 쓴 하방식 권력이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선배나 권력자는 그런다.'너네들 내가 이런 좋은 생각으로 해주잖아. 그런데 나에게 이렇게 하면 어떡해. 이 나쁜'&nbsp;&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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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시선의 위치는 여기서 매우 중요하다.
&nbsp;
&nbsp;동지의식의 카르텔은 스스로 권력 위계를 인정하지 않는, 기형적인 착각을 한다.&nbsp;우리는 평등한 동지, 불편이나 어려움은 함께 참는 것.&nbsp;위계나 서열, 또는 비민주적 토의구조 같은 것은 보수적인 녀석들이나 또는 적들의 것일 뿐이다. 어려운 말 끼워넣지 않아도, 착각 중에서도 상착각이다. 
&nbsp;
최초의 어떤 모임들이 발기되는 과정은 소규모의 의기투합일 수 있다. 하지만 관계는 정체되는 것이 아니고 변화해야 하는 것이다. 개인과의 관계 역시 그럴진대 사람이 모인 집단이라면 더욱 그러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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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사인 300 축하해요.ㅎㅎ 인증샷 찍으면 추첨을 통해 상품 준다는데 혹한다..ㅎㅎ]]></description></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비 오는 일요일</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372296</link><pubDate>Sun, 19 May 2013 12: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372296</guid><description><![CDATA[<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855222&TPaperId=6372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47/88/coveroff/8992855222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012737248&TPaperId=6372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0/80/coveroff/8008871938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872736351&TPaperId=6372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59/8/coveroff/0753401665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932738852&TPaperId=6372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59/58/coveroff/0753404990_1.jpg" width="75" border="0"></a>&nbs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C502738797&TPaperId=63722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0/98/coveroff/2962436807_1.jpg" width="75" border="0"></a>&nbsp;&nbsp;<a href='https://blog.aladin.co.kr/apple21/6372296' target='_blank'>[상품더보기]</a><br/><br/>1.&nbsp;아침부터 빗방울 소리가 들린다. 창문을 열어 보니 고층 건물들 사이로&nbsp;느린 걸음의 안개가 다가온다.&nbsp;습관적으로 틀어 놓는 라디오.&nbsp; 젊은 여자는 놀라운 비밀을 공유하겠다는 우월감 넘치는 목소리로 톤을 높여 이야기한다.&nbsp;마라톤 행사로 인해 도로 통제가 있단다.
&nbsp;
...
&nbsp;
&nbsp;글렌 굴드의 시벨리우스 피아노 소나타의 느린 악장의 멜로디가 머릿 속을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한다. 하지만 거품처럼 잡히지 않는다.
&nbs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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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을 올려 놓고 이제는 창 문 밖에&nbsp;얼굴을 내밀고 있는 안개뭉치들을 바라본다.
&nbsp;
혼자 물끄러미 바라본다.
...
관성의 법칙은 글쓰기에도 존재한다. 한번 멈춘 펜은 그 자리를 유지하려고 한다. 그리고 주변에 지방이 쌓이면서 점점 더 움직이기 힘들어진다. 글쓰기를 생업으로 하거나, 또는 소통의&nbsp;중심거점으로 생각하는 이들은&nbsp;그래서&nbsp;습관적으로라도 무언가&nbsp;쓰는 것이&nbsp;옳은 일이다.&nbsp;전자나 후자나&nbsp;효과라는 측면에서는 권할 바는 아니다만.&nbsp;둘 다 인간관계라는&nbsp;폭발적 변수들과는&nbsp;일정정도 거리를 둔다.&nbsp;그나마 글로 생업을 이어가려면 실물적 흐름을 완전히 외면할 수는 없다.&nbsp;돈이라는 매개는 싫으나 좋으나&nbsp;접촉을 요청하기 때문이다.&nbsp;
&nbsp;
반면&nbsp;알라딘같은 곳에 취미로 글을 쓰는 것은&nbsp;즐거운 일이긴 하다.&nbsp;동호회에 전 회장 같은 느낌으로 여유를 부리며 글을 쓸 때는 더욱 그렇다. 적당한&nbsp;스노비즘과 적당한&nbsp;이해의 폭으로 여유를 부린다. 
&nbsp;
...&nbsp;그래서 글을 더욱&nbsp;쓰지 않게&nbsp;된다.
&nbsp;
2.&nbsp;최근 문화예술쪽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좀 만났다. 그런데 그저 문화자본을 통해 위세를 도모하는 부류들에 지나지 않는것 처럼 보인다. 사회적 지위도 높아지고, 돈도 좀 있는데,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와인을 한잔 기울이며 예술계에서 활동하는 누군가를 거론하면서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작품에 대한 이해나 미적 관심보다는 예술계의 네트워크에 더 관심이 많다. 지역 내에서 문화적 영향력이 있는 사람들이나 창작자들, 그들과의 교류 또는 인맥이 예술보다 더 예술적이라고 믿는 것일까?&nbsp; 이들이 '누구 누구 압네' 하며, '그 사람 작품이 아주 좋아' 라고 하면 그보다 사회적 지위도 낮으며, 뭔가 우호적 관계를 맺어야 하는 사람들은 동네방네 다니며 '그 분이 예술적으로 아주 해박하다.' 라고 자발적 스피커가 되어 준다.&nbsp;&nbsp;그렇게 공생이 이루어지는것 같다. 한 쪽에서는 얄팍한 취미로 자신을 포장하고, 정치경제적 이득을 요하는 사람은- 일단 예술이니 뭐니, 그런건 관심 없으니-&nbsp;그들의 부족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데&nbsp;충성을 다한다.&nbsp;&nbsp;그리고&nbsp;이들의 대화는&nbsp;이런 형식으로 마감된다..
&nbsp;
&nbsp;&nbsp;"어...그 작품 아주 훌륭하다구...00씨도 너무 돈버는데만 힘 쏟지 말고, 그런것도 경험해 보라구. 아...그리고 이번 주 공치러 가는거 멤버 다 만들어졌나? 누구 누구 나오신다고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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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점점 더 조용히.. 가만있어야 하겠구나라는 생각만이 강해진다.&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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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봐야 곧 샤게 될 몇 몇 책들 CD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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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42/58/cover150/899496367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425870</link></image></item><item><author>드팀전</author><category>그냥 떠오른 생각</category><title>자전거와 베토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pple21/6362568</link><pubDate>Sun, 12 May 2013 23: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pple21/6362568</guid><description><![CDATA[1. 예찬이와 재원이 그리고 아내와 함께 부산 알라딘 중고 서점에 다녀왔다. 최근 책 구매 패턴을 봤더니 알라딘 신상보다 중고책의 비율이 2:8 로 높다. 몇 몇 중요(?) 신간을- &lt;바벨17&gt;이나 &lt;마술적 마르크스주의&gt; 같은&nbsp;제외하곤 새 책을 잘 사지 않는 편이다. 새 책이 나와도 좀 기다린다. 물론&nbsp; 알라딘에서 하는 50%할인은 꼭 챙겨본다.&nbsp;보관함에 오래 있었던 &lt;야생종&gt;도 50%할 때 샀다. 예찬이 녀석은 최근 &lt;마법천자문&gt;에 완전히&nbsp;꽂쳤다. 일주일에 오로지 토요일과 일요일&nbsp;1시간 정도만 DVD나 영상물을 보여준다. 요즘 토요일 낮에는 &lt;마법천자문&gt;을 순서대로 보고 있다. 그리고 일요일 저녁에는 가족들이 함께 '런닝맨'본다. 오늘&nbsp;김병만이 담장 타는 장면은 대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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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중고서점에는&nbsp;바람 쇌 겸, 지하철을 타고 갔다. 동화책 몇 권 사려고 말이다. 서점에 들어가자 마자 사태가 급반전되었다. 서가에 꼽혀있는 &lt;마법천자문&gt;시리즈...동생 재원이까지 덩달아 '아빠, 마법천자문...' 한다. 한자는 고사하고 낫놓고 ㄱ자로 모르는 꼬맹이가 말이다. 결국 각 각 한 권 씩 사고 말았다. 지하철로 돌아오는 동안, 사온 책을 보던 아내는 꼬박 꼬박 졸고, 아이들은 졸졸졸 앉아서 마법천자문 보고 있고, 나까지 책 보고 있으면 훈훈함으로 유난 떠는 가족티를 낼까 싶어 나는 그냥 앉아 있었다.&nbsp; 지하철에 주루룩 앉아서 책 보고 있는 가족들을 보니 가장 흐뭇한건 사실 나였음은 말하지 않아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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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내와 지하철 통로를 빠져나오다가- 어디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내가 묻는다. " 자기는 우리 예찬이가 제일 잘하는게 뭐 같아?" ....순간...'어..잠깐...뭐지?'&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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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아하...자전거 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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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nbsp;접시꽃처럼 커다란 웃음을 터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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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예찬이가 자전거를 잘 타는 건 맞다. 자전거 신동까지는 아니어도, 자전거를 씽씽 신나게 탄다. 몇 년 전에 예찬이가 자전거 배우던 날에 대해 썻던 글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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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무슨 자동기술도 아니고...) 갑자기 다르덴 형제의 &lt;자전거 탄 소년&gt;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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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 2011년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작품이다.
왠만한 영화 사이트에서 쉽게 다운 받아서 볼 수 있다. 흔히 '자전거' 영화 하면 데시카의 &lt;자전거 도둑&gt;이나 &lt;시네마 천국&gt;&nbsp;- 물론 &lt;E.T&gt;에도 진짜 멋진 자전거 씬이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이후에 내게 '자전거'가 등장하는 가장 아름답고 기억할 만한 영화는 다르덴의 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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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은 묘하게 숨을 죽이게 만드는 구석이 있다. 살짝 들리는 가슴을 꾸욱 하고 눌러준다. 꾸-욱하고.&nbs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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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bsp;&nbsp;영화가 끝나면 베토벤의 피아노 협주곡 5번 &lt;황제&gt; 2악장이 흘러나온다.. (영화 전체에 걸쳐 메인테마처럼 몇 번쓰인다.)&nbsp;개인적으로는&nbsp;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피아노 협주곡 느린 악장이라고 생각한다.(때에 따라&nbsp;바뀌긴 한다. 내가 그렇지 뭐 ㅋㅋ) 다르덴은 원래 다큐 만들던 사람들이라 음악 사용을 자제하는 편이다. 그런데 이 영화 마지막은 다르다. 그러니까 영화 끝나고 확 일어나서 가버리면 안된다는 거.( 영화&lt;아이언맨&gt;은 진짜 반성해야 된다. 양치기 소년같은&nbsp;깡통 로봇들 같으니라구. 스크롤의 압박을 견디며 엄청 기다렸다만 남은 건&nbsp; '뭐 어쩌라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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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곡이다 보니 워낙 좋은 연주들이 많다.&nbsp;아래 영상에 있는 크리스티안 짐머만 연주, 클라우디오 아라우,한스 리히터 하저,&nbsp;아르투르 베네데티&nbsp;미켈란젤리의 연주를 자주 듣는다.&nbsp;처음으로 산 '황제'CD는 미켈란젤리 연주였던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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