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덩어리가 되어버린 두개의 관념을 찾아 그 접점을 음미해본다면

우리가 얼마나 수많은 거짓말에 길들여져 왔는지 발견할 수 있을것이다.

모든 고사성어는 따라서 항상 큰 문젯거리이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난쟁이 어릿광대의 말>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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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에 찬비를 맞으며 돌아온 우산이다. 아침에 나와 보니 거죽에 조그만 나뭇잎 두엇이 아직 젖은 채 붙어 있다.

아마 문간에 선 대추나무 가지를 스치고 들어온 때문이리라.

그러나 스친다고 나뭇잎이 왜 떨어지랴 하고 보니 벌써 누릇누릇 익은 낙엽이 아닌가!


가을! 젖은 우산이 자리에서 나온 손엔 얼음처럼 찬 아침이다

                                                                                         이태준 <돌>

 

......첫문장 하나로 지난밤 모든 상황을 다 말해준다.정말 대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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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4-07-19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의 글을 읽으면 유장하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시인들 저리 가라죠.
 

뉘 집에 가든지 좋은 벽면을 가진 방처럼 탐나는 것은 없다. 넓고 멀직하고 광선이 간접으로 어리는, 물 속처럼 고요한 벽면, 그런 벽면에 낡은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혼자 바라보고 앉았는 맛, 그런 벽면 아래에서 생각을 소화하며 어정거리는 맛, 더러는 좋은 친구와 함께 바라보며 화제 없는 이야기로 날 어둡는 줄 모르는 맛, 그리고 가끔 다른 그림으로 갈아 걸어 보는 맛, 좋은 벽은 얼마나 생활이, 인생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일까!

......

벽이 그립다.

멀직하고 은은한 벽면에 장정 낡은 옛 그림이나 한 폭 걸어놓고 그 아래 고요히 앉아 보고 싶다. 배광(背光)이 없는 생활일수록 벽이 그리운가 보다.

                                                          이태준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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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사


안정사 옥련암 낡은 단청의 추녀 끝
사방지기로 매달린 물고기가
풍경 속을 헤엄치듯
지느러밀 매고 있다
청동바다 섬들은 소릿골 건너 아득히 목메올 테지만
갈 수 없는 곳 풍경 깨어지라 몸 부딪쳐 저 물고기
벌써 수천 대접째의 놋쇠 소릴 바람결에
쏟아 보내고 있다
그 요동으로도 하늘은 금세 눈 올 듯 멍빛이다
이 윤회 벗어나지 못할 때 웬 아낙이
아까부터 탑신 아래 꼬리 끌리는 촛불 피워놓고
수도 없이 오체투지로 엎드린다
정향나무 그늘이 따라서 굴신하며
법당 안으로 쓰러졌다가 절 마당에 주저앉았다가 한다

가고 싶다는 인간의 열망이
놋대접풍으로 쩔렁거려서
그리운 마음 흘러 넘치게 하는
바다 가까운 절간이다

                                               김명인 시집 <바닷가의 장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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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연엉가 2004-05-28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고 갑니다.
 

꽃밭 가운데 술 항아리

함께할 사람 없어 혼자 마신다

술잔 들어 밝은 달 모셔오니

그림자까지 셋이 되었구나

그러나 달은 술 마실 줄 모르고

그림자 또한 그저 내 몸 따라 움직일 뿐

그런 대로 달과 그림자 짝하여서라도

이 봄 가기 전에 즐겨나 보세

내가 노래하면 달 서성이고

내가 춤을 추며 그림자 어지러이 움직인다

깨어 있을 때에는 함께 즐기지만

취하고 나면 또 제각기 흩어져가겠지

아무렴 우리끼리의 이 우정 길이 맺어

이 다음엔 은하수 저쪽에서 다시 만나세

                                                      이백 <월하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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