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비어천가>에는 이런 아름다운 표현이 나옵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 아니 휘며, 꽃도 좋고 열매도 많이 열립니다. 샘이 깊은 물은 가뭄에 마르지 않으며 내를 이루어 흘러 바다로 갑니다  

 저는 지속적으로 이 싸움이 '알라디너와 알라디너'의 싸움이 되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찬성과 반대는 어디에나 있고 때로는 악의적이거나 왜곡된 비난에는 마땅히 대응해서 그 뜻이 어디에 있음을 밝혀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큰 흐름에 있어서 작은 하나의 줄기일 뿐 그런 찬성과 반대의 성명전이 이 싸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닐겝니다.  

사람들은 좋을 때, 누구나 다 좋은 사람입니다. 그렇지 않은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한 사람의 가치는 그에게 위기가 닥쳤을 때, 삶의 고난이라는 운명적인 풍랑을 만났을 때 비로소 드러납니다. 존재론적으로 말하자면 '한계상황'일 수도 있겠지요. 서양 철학중에는 그 지점에 '죽음'을 상정해 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가 책을 읽고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은 책 위에 적혀 있는 문자만을 이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마미치 도모노부의 뛰어난 책 <단테의 신곡 강의>에는 '고전'(즉 클래식)에 대한 의미있는 해석이 나옵니다. 이 말은 '클라시쿠스'라는 형용사에서 나온 말인데 이것은 '함대'를 의미하는 '클라시스'라는 명사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저자는 결론에서 '인생의 위기에 당면했을 때, 정신적인 힘을 주는 책이나 작품'을 '고전' 즉 클래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경계를 좀 더 해체해서 '독서'나 '책읽기'까지로 넓혀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것은 책이나 인문학이 가진 중요하지만, 또한 여러가지 기능 중 한 가지 역할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알라딘 불매참여자든 비참여자든 모두들 책을 사랑하는 분들이고 그 만큼의 깊은 생각과 뜻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서로를 향해 아무런 생명도 살지 못하는 그런 마른 강바닥을 드러내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천 권의 책이 모래 바람처럼 귀를 빠져나갈뿐입니다.  

다시금 읽어 봅니다. 

"불휘 기픈 남간 바라매 아니 뮐쌔, 곶 됴코 여름 하나니.
 새미 기픈 므른 가마래 아니 그츨쌔, 내히 이러 바라래 가나니."  

알라딘 불매운동이 어떤 분들에게 불편함을 드린다는 것은 맞는 이야기일겁니다. 그런 분위기를 만든 것은 일단 미안한 일입니다. 하지만 알라딘 불매운동에 참가하는 사람들 어느 누구도 '불매를 권유' 하거나 '구매를 비난'한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걸로 압니다. 실제로 불매를 선언해놓고 구매를 하더라도 이를 강제할 아무런 방법도 없습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은 알라딘 불매운동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선언이고 실천입니다. 그러므로 알라딘 불매운동에 어느 수위에서든 뜻을 같이 하지 않는다면 자유롭게 구매하고, 또 연말에 많아진 이벤트의 혜택을 누리셔도 아무도 비난하지 않을겝니다. 그렇다면 '그래도 너네들 속으로 비난할 거잖아' 라고 하실 수도 있겟지요. 그런데 발화되지 않는 '속마음'까지 어느 누가 감히 요구하고, 어느 누가 개선 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것까지 바라는 마음을 현실로 강제화하려고 할 때 그것은 매우 위험한 폭력이 될 겁니다.   

사마천의 <사기>에는 이런 말이 나옵니다.  

"치솟아 오른 용은 떨어지기 마련이며, 채워진 달은 기울기 마련이다." 무상한 권력에 대한 은근한 비판입니다만 세상 사의 모든 일이 그와 같습니다. 불매운동도 시작이 있었기 때문에 그 끝이 있을 겁니다. 그걸 모두 압니다.  농부가 봄에 씨를 뿌릴 때는 모든 싹들이 잘 자라주기를 바라는 신심을 갖고 정성을 다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를 언제나 만족스럽게거둘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마다 농부가 씨를 뿌리는 것을 멈추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걸 모두  압니다.

저는 알라딘에서 사태를 바라보는 많은 분들이 이 일로 인해 알라디너들 사이에 반목이 심해질 것을 우려하시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해결책을 찾아 보려는 마음 역시 이해합니다. 따뜻한 진정성 역시 고맙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 마음은 조금 더 기다려주시는 인내의 그릇에 담아두셨으면 합니다. 앞서 말했듯이 모든 운동은 시작이 있고 그 끝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상황이 또는 국면이 또는 알라딘 불매자들의 전체적 의견이 결정할 것입니다. 행위를 참가한 것도 그들의 의지이며 행위를 중지하는 것도 그들 개인의 의지입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을 어떤 수위에서 이해하고 어떤 수위에서 찬성 반대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신 제가 -편의상 불참자라고 하겠습니다.- 바라는 점은  전체로 봤을 때 소수에 지나지 않는 불매운동자들에게 침을 뱉지 마시기 바란다는 겁니다. 누군가 거리에 앉아서 파업을 하고 있으면 그들에게 호의를 보내주지는 못하더라도 시각적인 약간의 불편함과 조금 피해가야하는 불편함 때문에 '뭐야 시끄럽게. 저기 딴데로 가서 하던지' 라고 침을 뱉어서야 되겟습니까. 그것이면 족합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알라딘에서 불매운동자들 보다 더 소수이지만 악의적인 방식으로 이 문제를 조롱하고, 비난하는 분들께 그래서 상처를 주며 또 상처를 받게 될 분들께, 아주 오래된 시 한편을 인용하며 글을 맺겠습니다. 을지문덕은 우중문에게 일곱 번을 져주었습니다. 3행의 '전승공기고'는 그런 뜻입니다.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을지문덕(乙支文德)

神策究天文(신책구천문)
妙算窮地理(묘산궁지리)
戰勝功旣高(전승공기고)
知足願云止(지족원운지)



그대의 신기(神奇)한 책략(策略)은 하늘의 이치(理致)를 다했고,
오묘(奧妙)한 계획(計劃)은 땅의 이치를 다했노라.
전쟁(戰爭)에 이겨서 그 공(功) 이미 높으니,
만족(滿足)함을 알고 그만두기를 바라노라   

**추신) 알라딘 불매 참가자분들은 테마카페에 김종호씨의 글이 올라왔으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물론 진위여부 부터 설왕설래가 이어지겠지만 '뿌리와 샘'을 생각하며 '평상심'을 유지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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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12-15 12:36   좋아요 0 | URL
마지막 한시는 제가 많이 좋아하는 한시입니다.
(여수장우중문시- 써먹을 때가 제법 많아서요..ㅋㅋ)

드팀전 2009-12-15 12:38   좋아요 0 | URL
한국의 명문 중에 하나이지요. 학교 다니며 다 배우잖아요^^
 

DEAD LINE...

까만 속이 들여다 보이는 커다란 육식동물의 입. 침을 뚝뚝 흘리는 음흉한 미소.  

빚쟁이에게 쫓겨 속옷을 적시며 깨어난 꿈.  

더이상 갈 곳이 없는 벼랑 끝에 선 마음. 

DEAD LINE. 

.. 

알라딘에는 출판 쪽에 계신 분들도 계시고, 신문이나 잡지의 기자들 또는 외부 필자들도 계신다. 평균적 조건으로 봐서 오래 살기 힘든 직업들이다. 

난 가급적 DEAD LINE에 걸리기 전에 조금 조금 준비하는 편이지만 살다 보면 그림자처럼 내 뒤에서 초시계를 들고 고개를 까딱거리는 친구를 만난다.  문이 열리면 총알처럼 달려나가 미끼를 물어버릴 경주용 개처럼 말이다.  

연말에는 다들 일이 많다. 특히 회계쪽에 계신 분들은 정산 문제때문에 바쁘실 거다. DEAD LINE에 먹히지 않고 무탈하게 연말을 넘어갈 수 있기를...  

책상 위의 포스트 잇을 다 떼어버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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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18: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12-15 0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 재고소진 이벤트에 참가할 책들은 아닙니다. 저로서는 오래 보관할 책이니 탐내지 마세요.^^ 

올해 저는 판소리 듣고 읽었습니다. 그 동안 몇 몇 눈대목들을 교양 과목 강의처럼 건성으로 듣다가 좀 더 애정을 가지고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언젠가 이야기 했던 판소리에 대한 페이퍼를 하나 올리려고 합니다. 제가 저랑 한 약속을 지키는 의미도 있고, 또 판소리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있다면 조금 도움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서 입니다. 실제로 아직 판소리의 깊은 속내를 읽었다고 하기엔 이른 감이 있습니다. 숭늉 한 사발의 첫 구수한 맛 정도만 느꼇지 그 안에 담긴 어머니의 지극한 맛까지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첫 돌 하나를 놓은 것은 또 다른 가능성의 길도 열어놓는 것이라 생각하고 느긋한 마음을 가집니다. 저로서는 책과 관련된 올해 마지막 페이퍼가 될 듯 합니다. 

먼저 사진 한장 올립니다. 



제가 올해 본 판소리 관련 책들입니다. 이것 말고도 두 권이 더 있는데 그 책은 읽지 않았고 또 그다지 추천하고 싶은 마음도 들지 않습니다. 이건 나중에 이야기하겠습니다. 참고로 제가 알라딘 상품으로 넣지 않고 이렇게 사진으로 올린 것은 '불매' 하고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 책 중에는 서재 이미지가 없는 헌책들이 상당부분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 하나 찾기가 귀찮다는 실용적 이유때문에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 올해 알라딘과 헌책방(인터넷 헌책방포함), 오프라인 서점을 거의 3분의 1씩 이용했습니다. 특히 판소리 관련된 책은 거의 온오프라인 헌책방을 이용했습니다. 14권의 책 중 왼쪽 두권만 새 책입니다. 판소리 책을 사면서 보수동 헌책방 골목에 가서 덜 뻘쭘하게 되었습니다. 헌책방에 가면 주인 아저씨들이 꼭 이렇게 묻습니다. "손님, 무슨 찾으시는 책 있으세요?' 사실 저는 특별한 책을 몇 권 적어가기도 하지만 대개는 둘러보다가 눈에 드는 것을 찾는 편입니다. 그리고 대개 어떤 책의 제목을 이야기해도 헌책방 주인은 그게 있는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프라인 헌책방은 데이터 정리가 정말 아날로그적이기 때문이지요. 대개는 주인의 기억력에 의존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판소리 책을 사기로 하고 나서는 항상 돌아오는 질문에 '네..혹시 판소리 관련된 책 좀 있나요'라고 답합니다. 그럼 좀 헌책방 주인과 이야기를 더 나눌 수있게 됩니다. "옛날에는 판소리 책이 좀 있었는데...<창악대강> 표지 없는 걸 얼마전에 팔았는데..얼마였더라...하여간 싸게" 뭐 이런식으로 말입니다. 

<판소리 이야기>는 군산대 최동현 교수의 책입니다. 최교수는 학술적 논문과 대중적 에세이를 넘나들면서 판소리를 전하고 계시는 이 쪽에서는 꽤나 유명한 분입니다. <판소리이야기>는 제목처럼 판소리에 관심을 갖는 평범한 독자들을 위해 판소리의 전체적인 모습을 쉽게 쉽게 써내려간 글입니다. 판소리에 대한 개괄에 이어서 판소리와 관련된 뒷이야기, 야사,전설같은 이야기들을 배치하여 호기심을 풀어줍니다. 예를 들자면 '득음을 하기 위해 명창들은 정말 똥물을 먹었는가?' 이런 것들 말입니다. 마지막 장에는 최교수가 만났던 명창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김소희,강도근 명창같은분들도 있지만 지역의 숨은 고수들의 이야기도 있습니다. 더불어 이 책은 판소리 눈대목 CD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일주,정권진,강도근 명창의 장기들을 들을 수 있습니다.   

<판소리의 세계>는 판소리 학회의 학술논문을 모아놓은 책입니다. 우측 두번째에 있는 <판소리의 바탕과 아름다움>이 80년대 나온 학술논문들의 모음이라면 <판소리의 세계>는 좀 더 최근 것입니다. 다양한 필자들이 참여했기 때문에 글의 스타일, 주제의식 등이 다릅니다. 하지만 편집과정에서 판소리의 전반적 이해를 필두로 판소리계에서 다루어지는 주제들을 구분해 놓았기 때문에 길을 잃지는 않을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정병헌선생의 <판소리의 미학적 성격>과 3부에 해당하는 김현주 선생의 <판소리의 장르교섭양상>, 박일용 선생의 <판소리의 작시원리>, 김병국 선생의 <판소리 사설의 문체>등을 유익하게 읽었습니다.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는 '나의 고전 읽기' 시리즈로 나온 책입니다. 부산대학교 정출헌 선생이 글을 썼습니다. 이 책은 판소리 연구로 보자면 '작품론'에 해당합니다.<판소리의 세계> 4부 역시 그런 작품론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판소리 5마당을 하나씩 분석하여 판소리가 당대 민중과 갖는 관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특히 판소리가 가지 '민중정치적 요소' 등에 주목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다보면-굳이 이 책만이 아니어도 - 내가 도대체 '흥부전' '춘향전'에 대해 알고 있던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수궁가'가 얼마나 복잡한 정치 텍스트인지도 알수 있게 됩니다. 특히 이 책은 판소리 사설에 한정 짓지 않고 현존하는 판소리계 소설과 이본들을 비교하여 그 판소리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는 점에서 판소리텍스트의 외연을 넓게 보는 안목을 키워주빈다. 

(더 줄여서 써야겠군요..남은 책이...)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천하명창 임방울>은 제가 리뷰로 정리한 것이기에 더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앞의 것은 판소리를 찾아떠나는 여행문이고 뒤의 것은 최고의 가객으로 손꼽히는 임방울 명창에 대한 평전형식의 에세이입니다. 

<판소리 더늠의 시학>은 시인으로도 유명하 정양 선생의 판소리 작품론입니다. 정양 선생은 이 책에서 '판소리의 사설을 닮아가기와 끌어내리기'라는 방식을 통해 강한 민중전통을 읽어냅니다. 놀부와 도깨비의 심술을 비교하고, 가난타령을 통해 천민자본주의를 비판합니다.적벽가의 새타령과 군사설움을 통해 잘못된 군주에 대한 민중들의 통렬한 비판을 긍정합니다. 적벽가의 가장 뛰어난 점이기도 합니다. 판소리계의 논쟁 거리중 하나인 신재효에 대한 평가에 대해 정양선생은 매우 부정적입니다. 그가 판소리의 민중적 건강성을 양반문화와의 타협 속에서 잃어버리게 했다는 것이빈다. 다른 책들에도 신재효이 명과 암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판소리 기원설등과 함께 주요 논쟁중에 하나입니다. 판소리의 해학과 민중적 의미에 관심이 있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입니다. 

<판소리의 이해>는 과거 국문학 전공자들이라면 이 책을 가지고 공부했을 가능성이 높은 책 중에 하나입니다. 한때 가장 유명했던 판소리 개론서 이기때문이지요. 조동일, 김흥규,박헌봉,이보형,정병욱 선생등이 글을 쓰셨고 '창비'에서 모았습니다. 판소리의 개념, 판소리의 작품론, 음악론, 판소리사 등이 순서대로 정리되어 있습니다. 헌책방에 가면 가장 쉽게 구할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앞의 책을 읽었다면 중복되는 내용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정병욱 교수의 <한국의 판소리>입니다. 이 책 역시 개론서로서 일반적인 형태를 갖고 있습니다. 2부 끝에 나오는 '판소리와 더불어'의 글들은 정선생이 각종 발표회나 감상회 등에서 해설하면서 남긴 글입니다. 김소희 명창의 <춘향가><심청가>의 디스크 해설도 여기 실려있습니다. CD를 사면 거기도 그래도 있지요. 3부에 명창론이 있습니다. 그런데 주로 <조선창극사>,<판소리 소사>에 실린 내용들을 요약 발췌하는 형식입니다. 이 책이 81년 나왔을 때는 <조선창극사>를 구하기 어려워서 이렇게 대중들을 위해 재인용한 듯 보입니다. 지금은 <조선창극사>(정노식저. 동문선)을 쉽게 구할 수 있습니다. <조선창극사>는 구한말까지 역대명창들의 이갸기를 정리한 책입니다. 명창들에 대한 기록으로 여러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책입니다. 책은 작은 글씨에 500페이지 분량이지만 이 중 절반은 판소리 다섯마당의 채록 사설입니다. 이걸 문자로 따라 읽을 필요는 없어보입니다.  

<명창의 증언과 자료를 통해 본 판소리의 모습> 이 책은 국악음악박물관장을 하는 노재명씨의 책입니다. 이 분은 국문학자나 음악학자가 아니라 순전히 판소리 음반을 사랑한 아마추어로 시작해서 전문가가 된 그런 분입니다. 고음반연구회 회원인데 이중 또 많이 알려진 분이 정창관선생입니다. 이 분 역시 음악 애호가에서 국내 최대의 국악음반 아카이브를 가진 홈페이지를 운영하시는 분입니다. 이 책은 비매품으로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주로 명창론을 다루고 있습니다만 특징은 명창들 또는 후예들의 인터뷰등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여기저기 산재해 있는 증언이나 평가들을 매우 잘 정리했습니다. 판소리에 대해 재미를 느낀다면 아무곳을 펼쳐놓고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입니다. 

박황선생의 <판소리 이백년사>는 판소리 말 그대로 판소리의 역사입니다. 학술적인 내용보다도 판소리의 발생과정부터 시대를 거치며 들고 나는 명창들과 인물들, 새로운 창제들, 그리고 시대적 변화에 따라 판소리가 변화해 오는 과정을 연대기순으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창극단의 이야기에서 그 역사는 일단락됩니다. 87년에 초판이 나온 책입니다.   

<판소리연구>는 이국자 선생의 책입니다. 이 책은 그다지 애써 찾아가며 추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최소한 판소리에 대한 전체적 그림이 있은 후에 보완삼아서 읽으면 좋을 듯 합니다. 이 책에서는 2부에 해당하는 <보성소리 심청가><송판적벽가><박동진의 변강쇠가>등 작품론이 읽을만합니다. 책의 3분의 2가량은 사설을 채록해 놓은 것입니다. 뿌리깊은 나무에서 나온 브리태리커판 판소리 다섯마당의 채록 내용과 중복되는 것도 있습니다. 가장 큰 매력이라면 박동진 선생의 변강쇠가, 숙영낭자전,배비장전,장끼전 등 사라진 판소리로 잘 연주되지 않는 사설이 실려있는 점입니다. 

김종철 선생의 <판소리사 연구>는 저 역시 제대로 읽지 못했습니다. 다른 책들도 그렇지만 이 책은 가장 전형적인 논문형식의 글입니다. 주로 판소리의 19세기와 20세기 변모 양상을 중심으로 여러 층위에서의 변화를 다루고 있습니다.  중간에 중간에 자주 인용되는 구한말 한자로된 신문이나 언문일치 이전의 표기법들은 이에 익숙하지 않은 저같은 독자들에게 상당히 큰 불편함을 줍니다. 

진옥섭 선생의 <노름마치>는 가장 많이 알려진 책입니다. 이 책은 잊혀진 예인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로 춤 추는 분들이 많지만 판소리 명인들의 이야기가 한 장을 차지합니다. 이책에 아오는 공옥진 여사가 계약서에 남겼다는 싸인은 TV 프로그램에서 통해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정광수, 한승호,한애순 명창등의 이야기가 이 책에 실려있습니다. 한승호 명창의 예쁜 미소가 눈에 선합니다.  

제가 헌책방을 통해 구해 놓고 별로 권하지 않는 책은 유신 선생의 <판소리예술론>, 곽준 선생의 <판소리와 장단>입니다. 앞의 책은 오래전 책이기도 하지만 판소리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고 국악 전체를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도 어떤 일관적인 흐름으로 쫓아가는 게 아니라 이것 조금 저것 조금 그러다가 흐름을 읽게 만듭니다. <판소리와 장단>은 정말 북장단을 배우는 분들을 위한 책입니다. 책의 주된 내용은 북을 치는 방법이기때문에 판소리를 더 깊이 들어가기 위해 북장단을 전문적으로 공부할 생각이 아니라면 권하지 않습니다.  

... 

대략 이렇습니다. 판소리도 모르겠고, 국악도 모르겠고, 무얼 들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시는 분들을 위한 .... 일단 <국악길라잡이>라는 책도 괜찮습니다. 제가 대학 4학년때 입사를 위한 상식공부를 하면서 읽었던 책인데 말그래도 개념어 수준의 정리가 잘되어 있습니다. 진회숙선생의 <나비야 청산가자> 역시 국악과 친숙해 질 수 있는 음악에세이집입니다. 송혜진 선생의 <국악,이렇게 들어보세요>는 일단 국악 음반 살 때 참고할 수 있는 책입니다. 유명한 국악 곡들과 함께 추천하는 음반들이 친절하게 수록되어 있습니다. 과거에 제가 국악음반 살 때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 외에 추천 사이트는  

'고창판소리박물관' www.pansorimuseum.com/ 

'판소리학회' www.pansori.or.kr/ 

'정창관의 국악음반세계' www.kukakcd.pe.kr/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 도 참고) 

'국립국악원'www.gugak.go.kr/ (국악 FM 도 참고)

이것이 올해 제가 남길 마지막 책관련 페이퍼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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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09-12-14 04:05   좋아요 0 | URL
올해 아직 15일이나 남았는데, 벌써 마지막이라뇨..
그나저나 드팀전님의 판소리, 한번 들어보고 싶네요. 나이들수록 우리소리가 그리워요~

드팀전 2009-12-14 09:14   좋아요 0 | URL
..혹시 제가 부르는 판소리를 생각하시는건 아니지요 .흐흐.
저희 큰 아들 예찬이는 '적성으으..' 하고 '사랑 사랑 내사랑이여' '쑥대에 머리이이" 까지-딱 거기까지만- 애교스럽게 합니다. 그것도 기분 좋을때만..

비로그인 2009-12-14 09:06   좋아요 0 | URL
에웅.. 드팀전님. 재고소진 놀이터에서 '책방출'은 선택 사항이야요. 그리고 이미 다 보셨고 앞으로도 두고두고 보실 책이면 '재고'도 아니잖아요. 탐은 나지만 손은 안댈게요.ㅎㅎ 뭐 어쨌든, 축하공연^^ 감사합니다. 저번에 사둔 음공간 음반 다시 꺼내고 싶어지네요. 저는 두번째 CD가 좋더라구요. =)

드팀전 2009-12-14 09:30   좋아요 0 | URL
제가 헌책방에서 산 책 중에 국립국악원 비매품으로 나온 남도무악 책이 있는데요..일종의 채보인 셈인데 앞뒤로 또 남도 굿에 대한 설명도 꽤 있어서 재미있습니다...메아쿨파님은 중국에 계시니..^^ 서점에서 혹시 사서삼경 멋진 디자인의 폼나는 판이 있으면 한번 구해보세요. 저도 한권쯤 갖고 싶습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12-14 09:04   좋아요 0 | URL
귀야 뚫려라 하면 죽어라 듣기만 했는데, (어느새 듣다 자고 있음 --)
공부를 해야하는군요 공부..
참으로 스스로를 돌아보게 됩니다.

드팀전 2009-12-14 09:19   좋아요 0 | URL
듣다보면 조금 더 궁금해지고 그러면 찾게 되지 않겠습니까.^^
이 책 중 <조선 최고의 예술 판소리>같은 책은 굳이 음악을 듣지 않고 우리 고전을 다시 본다는 차원에서 봐도 흥미로운 책이라고 생각해요. 스토리는 다 아는 이야기이니 친숙하지만 ..또 그 안에 또 다른 것들..

mong 2009-12-14 10:29   좋아요 0 | URL
아...생소하긴 하지만 엄두는 안나는 머~언 판소리
일단 책부터 한권 읽어봐야겠네요

드팀전 2009-12-14 11:15   좋아요 0 | URL
전 클래식을 들을 때도 사실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부터 시작했어요. 베토벤이나 바흐는 너무 멀리 있고 음반으로 만나는 연주자들에 대한 관심부터 시작해서 곡과 작곡가에 대한 이해로 들어간 셈이죠.
판소리도 그와 유사했습니다. 우리 시대에 또는 가까운 시대에 이 땅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좀 더 흥미롭지 않을까요..작가 정신에서 나온 <명창들의 시대>라는 책이 쉽게 구할 수 있는 대표적인 책입니다.

카스피 2009-12-14 10:42   좋아요 0 | URL
음 이렇게 한 주제를 가지고 책을 모으는것도 참 멋지것 같아요^^

드팀전 2009-12-14 11:15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이것 저것 관심이 많을 뿐입니다.
 

<주역> 64괘의 마지막을 '미제괘'라고 들었습니다. <주역>에 대해 적셔진 여우꼬리만큼도 아는 바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뜻은 이렇다고 합니다. 

 " 어린 여우가 물을 거의 건넜을 때 그만 꼬리를 적시고 말았다. 이로운 바가 없다."  

 알라딘 불매운동은 운동의 경중에 상관 없이 대략 2달 가까이 이어져 오고 있습니다. 편의상 두 단계로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11월 부터 테마카페가 개설되기 전까지가 초기 단계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몇 몇 분의 불참선언과  작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새로운 달에 들어서면서 잊혀질 듯한 사건이 작은 불씨들과 함께 재점화 되었습니다. 12월의 이야기입니다. '테마카페'가 개설되었습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분들이 참여 의사를 표명하셨습니다. 이것이 현재의 두번 째 단계입니다. '테마카페' 가 개설되고 또 다시 알라딘 불매운동과 -편의상 이렇게 표현하겠습니다-비참여 사이의 크고 작은 칼춤들이 오고 갔습니다. 

저는 이 문제에 개입을 결정하고 나서는 일련의 찬반 토론에 상대적으로 관심을 적게 두었습니다. 전혀 눈길을 주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거기서 얻어야 할 것들이 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 눈길이 가장 오래 머무는 곳은, 제가 가장 지키고 싶은 것은 '알라딘 불매참가자들'과 '운동의 방향' 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둘러싼 찬반 토론은 2달 가까이 이어져왔습니다. 거의 반복되는 주제들이 공회전을 하고 있습니다. 이 토론 과정등을 통해 조금씩 이해의 폭이 넓어지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아예 상대에 대해 등지는 경우도 생깁니다. 앞으로도 이런 토론은 이어지겠습니다만 저는 이것이 고인 물 속에서 맴돌이 하며 나뭇잎만 썩이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그래서 저는 가급적 반복되는 토론에 말을 더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노자가 최고의 '선' 이라고 한것은 흐르는 물이었습니다. 물이 가진 힘과 유연성 그리고 아래로 향해 커져가는 흐름을 닮지 않으면 물은 고여서 썩거나 말라가기 시작합니다.  '불매운동' 참여자들 역시 이 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하리라 생각합니다.   

   현재 기업 알라딘은 '불매운동'에 대하여  급박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지도 않은 복권추첨 방송을 들여다 보는 심정이겠지요."그러다 말겠지,몇 명 나가고 다시 평온해지겠지" 정도 일 겁니다. 바닷가 모래위에 남긴 글들이 몇 번의 파도에 사라져 가는 것을 알고 있듯이 말입니다. 전략적 차원에서 기업 알라딘은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의 불편함과 파편적인 소비자들의 속성 비해 절대적인 우위에 있습니다. 알라딘 불매자들이든 불매반대자들이든 모두 기업 알라딘에 비하면 약한 존재들입니다. 

불매운동에 대해 기업 알라딘이 쓰고 있는 방식은- 많은 기업들이 의도적으로든 관행적으로든 애용하는-은 아주 오래된 중국의 대외 외교 전술과 같다고 보면됩니다.  이이제이(以夷制夷) 라고 하지요. 자주 쓰이는 한자성어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이 필요 없을 듯 합니다. 여기서 두 오랑캐가 누군지는 따로 말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앞서 <주역>의 마지막 괘를 이야기했습니다 .알라딘 불매운동 참가자들 중 거의 대부분은 '우리가 물에 젖은 여우 꼬리나 만지지 않을까'걱정하지 않고 참가한 사람은 없습니다. 대단한 승리를 기대하는 것 보다 오히려 패배에 대해 더 많이 걱정합니다. 무슨 강철대오같은 것으로 착각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생각없이 목소리만 외치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자기 목 위에 머리가 있듯이 다른 사람들의 목 위에도 머리가 있습니다. 단 하나 다른 것은 그들이 차가운 머리보다 조금 더 가슴을 좋아한다는 그 정도의 차이일 뿐이라고 위안합니다. 그리고 가슴의 온도가 조금 더 높다는 것이 머리는 나쁘고 목소리만 크다는 뜻도 아닙니다.

 불매운동 참가자들 거의 대부분은  불매운동을 다른 이들에게 요구하거나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그렇지 않던가요? 오히려 전술적인 생각이었던지 아니면 소극적 대응이였던지 주된 반응은 '신중파'들에 대해 우호적이었습니다. 그들의 참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그들을 적으로 만들면서 나아간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또한 이들은'불매운동' 참여에 대해 다른 이들의 참여를 돌아다니며 설득하여 불편하게 만들지도 않았습니다. '테마카페'라는 것을 개설해 놓고, 참여 선언하고, 아이디어 내고, 이벤트 하고, 서로를 의지한 것 외에 '불매운동'이 '불매 불참자들'에게 어떤 무리한 요구를 했다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물론 걔중에는 뜻이 앞서 간다거나 더 급진적인 요구를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건 사람 사는 곳에서는 어느 동네에나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불매 참가자들'에게 가해지는 비난과 조롱, 또는 드러나는 불편한 심기는 일방적일 때가 있는 듯 합니다. 특히 그동안 각종 반MB 신문 스크랩등을 통해 진보의 몸짓을 보이시던 분들의 그런 조류는 안타깝기 그지 없습니다. 최소한 '응원은 하지 못하더라도 침묵하는 편'이 그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입니다. 그 분들은 물론 '더 합리적'이고 '더 이성적'이시고 '더 전략적' 이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분들을 포섭하지 못한 잘못은 저희들에게 있겠지요. 어쨋거나 그런 진보적인 분들 역시 무언가 이 움직임이 주는 불편함이 있으실 겁니다.  진보적인 분들은 '프랑스 지하철 파업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 과 관련된 글을 보신 적이 있고 또한 가끔 인용하기도 하셨을 겁니다. 그런글들은 대개 시민사회의 성숙을 말하며 끝을 맺습니다 . '내가 파업할 권리가 있듯이 그들 또한 그럴 권리가 있다' '내가 최소한 불편을 감소하는 지지를 보내주어야 그들 역시 나를 위해 그래줄 수 있다' 대략 이정도의 결론이 나옵니다. '알라딘 불매운동'이 어떤 정서적 불편함을 비참가자들에게 요구하는지, 그 수위가 어느 정도인지 모르겠으나 저는 응원을 못할 바라면 차라리 침묵으로 도와 달라는 최소한의 예의를 부탁드립니다. 현재 알라딘 불매참가자들의 수는 비참가자들의 수에 상대도 못할 만큼 적습니다. 부디 이 문제가 서로 극과 극의 대립적 상황이 아니라면 '이이제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미루어 짐작 하시길 바랍니다. 알라딘 불매참여자들이 싸우고 있는 대상은 '알라딘 불매 비참가자'들이 아닙니다. 또한 알라딘 불매참여자들 역시 이 문제에 대해 알라딘과 싸우는 것이지 어떤 형식을 통해서든 비참여자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되새겼으면 합니다. 가끔 '욱'하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을 줄 압니다. 하지만 하수와 고수의 차이점은 목표를 위해 그런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것입니다. 작은 전투에 이기고 전쟁을 놓친다면 그것을 두고 좋은 장수라고 칭할 이는 아무도 없습니다.          

앞서 말했지만 알라딘 불매운동 참가자들 역시 이 사건 하나를 가지고 '비정규직 전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종호씨의 정규직 부여 같은 것도 요구하기 힘들다고 봅니다. 들리는 비난과 조롱 중에는 불매운동 참가자들이 '마구잡이' '우격다짐' 식이라는 악의적인 왜곡들도 간간히 있습니다. 계속 반복되는 왜곡에 반복되는 해명과 답변을 하다보면 분노가 치밀게 됩니다. 평정심을 잃게 되고, 죽든지 말든지 모르겠다가 되어 버립니다. 저는 알라딘 불매운동참가자들이 겪게 되는 이런 상황에 대해 우려하며 '평정심'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차라리 그런 악의적 조롱은 무시하시고 상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화란 상대방에 대한 인정과 예의를 갖추었을 때 비로소 나눌 수 있는 차 한잔과도 같습니다.  

현재까지 약 두달 동안 알라딘의 답변이 대략 서너번이 있었습니다. 그 동안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알라디너들의 논쟁의 량에 비하면 분량상 약소합니다. 하지만 고객운영팀장이 매번 답을 할 수도 없고 다수의 글에 대해 반으로 나뉜 거울처럼 똑같이 응대해주기를 요구할 수도 없을 겁니다. 다들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이번 '알라딘 불매운동'이 단순히 소비자 불만사항 접수와는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기업 알라딘의 두번째 방식은 '사건의 축소화' '협애화' 입니다. 어떤 분이 '생활 정치'를 이야기하셨는데 그분과 제가 보는 '생활정치'의 개념은 다를 듯 합니다만, 저는 '알라딘 불매운동'이 '생활 정치'의 대표적인 예라고 생각합니다. 즉 알라딘 불매운동은 '정치적 의사표명' 입니다. 그런데 알라딘의 반응은 여전히 1:1 개인 고객상담 수준을 넘어서지 않고 있습니다. 개인적 답변이나 고객불만 사항 처리페이지를 통해 이 문제에 응하고 있습니다. 물론 '알라딘 불매운동'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정도만 대응해도 적당하다고 생각하겠지요. 참가자들 입장에서는 꽤심한 일이지만 알라딘의 입장에서는 가장 소극적이며 무탈한 방식입니다. 그런데  지금 2달 가까이 알라디너 사이에 치고 받게 만든 이 문제가 단순한 '고객들의 불만' 일까요?  책을 바꿔 달라는, 적립금 사용은 어떻게 하느냐는, 재고는 언제쯤 들어오느냐는 그런 고객불만인가요? 

 알라딘은 이 사안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고객 불만 처리수준' 상태로 이에 임하고 있습니다. 또 어떤 분은 '출구전략'을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알라딘불매참가자들'이 '불매선언'한 것 이외에 알라딘과 어떤 대립각을 세웠습니까? 어떤 전선을 구축하고 어떤 전투를 했기에 벌써 '출구'를 이야기해야 하는 것일까요? 앞서 말했듯이 알라딘 불매운동은 그동안 비참여자들과의 토론이라는 싸움을 했지 알라딘과 싸우지는 못했습니다. 불매를 선언하는 것 외에 말입니다. 그리고 '출구'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도 고민해야 합니다. 기업 알라딘의 귀에 들리는 귀찮은 소리를 죽여주기 위한 것, 불매운동이라고 올라오는 페이퍼들에 대한 부담감. 그것을 위한 출구일까요? 실제 불매운동이 시작된 것은 2달 전이지만 제대로 주목받은것은 '테마카페'라는 공간이 열리고 나서입니다. 언제 '테마카페'가 열렸습니까? 도대체 몇 주가 지났을까요?  화투를 칠 때 좋은 패를 먹는 것 만큼 쓸모없는 패를 버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비풍초똥팔삼'은 그런 '버리는 패'에 대한 일반화 목록입니다. 아래 놓여진 패와 내가 들고 있는 패, 그리고 상대방의 패를 보고 '초'를 먼저 버릴 수도 '똥'을 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비유하면 휴전은 휴전 나름대로의 또 하나의 긴 싸움입니다. 수년 간의 전쟁의 결과물을 최종 확정 짓는 것은 몇 주간의 휴전 테이블 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윷놀이로 치자면 '도'나 '개'에 해당하는 말놀이를 가지고 '출구 전략'을 구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경솔한 듯 합니다. 

사실 불매운동 참가자들 역시 이 문제 하나로 대한민국의 파견업체의 고질적 폐악과 구조적 모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범위를 넘어섭니다. 하지만 또한 그 구조적 모순들을 구조적 편의로 생각하지도 못합니다. 어디가나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자동차 공장부터 영화관까지 우리 사회 곳곳에 비정규직이 있습니다. 그것을 몇 명의 사람들이 어떻게 분쇄하고 바꿀수 있겠습니까? 알라딘 불매운동 참가자들도 역시 알라딘에서 오랜 시간 글을 쓰고, 생각하고, 삶에 대해 고민한 사람들입니다. 즉 조롱하는 사람들이나 비판하는 사람들 만큼의 지능은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또한 그들 역시 비정규직의 희생으로 구현되고 있는 현재의 자본주의적 질서하에서 어떤 편의를 누리기도 하고 또 그 편의만 알고 희생은잊어버리기도 합니다. 이건 저도 그렇고 참가자나 비참가자 모두 다 그렇습니다. 여기서 동일한 근본적 태도가 양쪽에 발생합니다. 하나는 '핏빛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한 분노의 극단주의'와 '세상이 다 그런 건데 어쩔 수 있냐는 패배의 근본주의' 입니다. 저는 답을 모릅니다.  

 단 한가지 알고 있다면, 이제 그것이 나의 생활 영역에서 불거졌을 때 '내가 그동안 빚지고 있던 것들에 대해 무언가 답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제 아들 둘에게도 그렇게 가르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제 작은 두 아이들이 살게 될 자본주의 세상에서 불패의 그리스의 전사들 처럼 매번 싸우고 매번 희생에 대해 죄책감을 가지면 살라고 말하지는 않겠습니다. 그 마음을 담아두돼 우리가 겪는 일들, 우리가 들어가 있는 공간 안에서 그 일을 되뇌이게 하고 누군가 작은 도움의 손을 요구한다면 그 때는 믿은 바대로 생각한바 대로 행하라고 이야기 할 것입니다. 거기서 발생하는 불이익은 짧게 보면 손해지만 긴 인생을 볼 때 결코 잃은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비정규직 문제, 몇 몇 개인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한국사회에서 비정규직이 어떤 위치에 놓여있고, 그것이 한 개인의 발전뿐만이 아니라 한 가정의 안정성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자본주의다' 라고 그 이익만을 쫓지 않는다면 우리는 또한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안정적인 직장에서 자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미래를 도모하길 바라는 소망말입니다. 1960년대 마틴 루터킹의 '꿈'이 있었다면 이 시대에도 그런 '꿈'을 가져보는 것이 그리 비난받을 일은 아닐겝니다. 그리고 알라딘 불매운동은 그런 작은 소망들의 실천적 표현일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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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08: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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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4 09: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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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09-12-14 09:06   좋아요 0 | URL
제가 구매를 미루고 있지만, 불매운동에 참여한다고 선언하지 않은 것은 어느 정도의 알라딘 답변에 다시 구매를 해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드팀전 2009-12-14 09:29   좋아요 0 | URL
마립간님의 판단을 존중합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방법의 차이가 있다면 전 안에서 이야기하는 편에 있는것이고 마립간님은 바깥에서 이야기하고 계신겁니다. 지금으로서는 그 거리가 그리 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한겨레 21>의 특집 시리즈 '노동OTL' 을 자주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매우 좋은 기사들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번 기사는 우리가 경험 하지만 무심코 지나가는 것들에 대한 것이기에 더욱)  

 신종플루 이후 아이와 함께-어딜 가든 데리고 다녀야 한다. 큰 녀석은 늘 내 몫이다- 마트에는 가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에 마트 가면 점원들에게 인사 잘하고, 미소도 한 번쯤 짓고 해야겠다.  

한겨레21 <마트에선 매일 지기만 한다> 

h21.hani.co.kr/arti/cover/cover_general/2626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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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11: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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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15: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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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11 16: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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