첼리스트 카잘스, 나의 기쁨과 슬픔
앨버트 칸 지음, 김병화 옮김, 파블로 카잘스 구술 / 한길아트 / 2003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1938년 6월 파리 녹음....카탈루냐 사람 카잘스가 만들어낸 음악이 그는 본 적도 없었을 은빛 원반에 담겨져 내가 있는 먼 곳의 아침을 연다.겨울 가뭄을 녹였던 단비가 긋고 난 후 만나는 새벽 하늘...아직 창 밖은 흐리다.무명의 하늘을 하나 씩 열어 제끼듯 빛이 스며든다.그리 멀지 않은 곳에 보이는 뭉쳐있는 한 덩어리 산.바흐의 선율과는 상관없다는 듯 자기의 의지에 따라 자신의 모습을 드리운다.아직 어둠이 있던 시절 그저 검은 덩어리의 그림자였던 산들.지금 보니 앞서거니 뒷서거니 경계가 있다.앞에 있는 산은 자신이 더 앞에 있다것을 자랑하려는 듯 더욱 선명한 겨울 빛을 보연준다.앞산 속으로 몸의 절반쯤은 숨긴 뒷녀석은 자신이 모든 걸 감싸고 있다는 듯 은근한 웃음으로 희뿌옇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이제 주인과 자신도 잊은 듯 스스로 음악이 돼어 간다.

모음곡은 2번 d단조로 넘어 간다.수 많은 인연의 부침을 묵묵히 지켜봐 왔을 오래된 석탑 위로 눈이 내린다.조용한 경내가 눈 때문에 더욱 고즈넉하다.석등 위에서 반쯤 눈이 덮히고 대웅전에 달린 풍경 속 작은 물고기의 등 위에도 하얀 눈이 덮힌다.공양간 굴뚝 아직 남은 온기는 눈의 침범에 저항해 보지만 이도 오래지 않아 하얀 모자를 쓸 터이다.모든 옷을 벗어 버리고 굵은 힘 줄 만을 남겨둔 절집 나무처럼 첼로소리는는 외로우나 비굴하지 않다.카탈루냐 사람 카잘스의 첼로는 시간의 심연과 기억의 회한을 되짚는다.

파블로 카잘스는 이미 두 세대 전의 사람이다.그의 청년시절 아직도 브람스는 활동하고 있었다. 드보르작,라벨,림스키 코르샤코프,말러,라흐마니노프 같은 작곡가들이 전부 그의 시대 사람이다.사라사테,외젠 이자이,자크 티보,알프레드 코르토,크라이슬러...등등. 이 많은 인물들 속에서도 카잘스는 현재와 가장 가깝게 느껴진다.우선 그가 다른 이들에 비해 오래 살았다는 이유도 한 몫하겠다.하지만 오래 살았다는 것만이 카잘스를 동시대인으로 느끼게끔 해주는 것 만은 아니다.

 우선 카잘스가 남긴 음악적 자양분부터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무반주 첼로 모음곡이 가장 좋은 예일테다.카잘스가 바흐의 악보를 발견한 것이 그의 13살때이다.단순한 연습곡이 아니라 하나의 완결된 음악으로 이를 이해하고 세상에 알린 것이 카잘스의 공로다.마치 멘델스존이 바흐의 마태수난곡을 세상에 알린 것에 비견할 만한 일이다.음악을 연주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에게 이 곡에 대한 카잘스의 39년 녹음은 영원불변의 명연이다.물론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 이 곡의 다른 연주 녹음들을 좋아할 수 도 있다.나 역시 5종이 넘는 무반주 첼로모음곡을 가지고 있지만 카잘스의 연주를 가장 즐겨듣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가끔 듣는 그의 녹음은 다른 연주들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우라가 있다.카잘스가 첼로 연주에 있어서 혁신을 불러 일으킨 것 역시 이미 많이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이러한 음악적 발견과 혁신 외에 그가 음악을 대하는 태도 역시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카잘스는 노동자들의 친구였다.그의 음악은 늘 카탈루냐 민중의 이익을 대변하고 그들에게 음악의 깊은 울림을 전하고자 하는데 목적이 있었다.그는 이렇게 말했다 ,

 "내가 예술가라는 것은 사실이지만 예술을 실현하는 과장을 보면 나 역시 하나의 육체노동자입니다.나는 일생 내내 그래왔어요"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부의 대부분을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들 아닙니까? 그런데도 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적 재산을 향유하지 못하고 지내야 합니까?

카잘스는 스스로 예술가들이 쉽게 빠져 버리는 '자기애적 예술지상주의'와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그는 어린시절 부터 노동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카페나 술집등지에서 연주했다.유년기에 그의 음악을 즐기는 노동자들의 모습이  그에게 육체노동에 대한 긍정적 가치를 심어준 것 같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음악, 아니 어떤 형태의 예술이든 그 자체로는 대답이 될 수 없다고 느꼇습니다.음악은 어떤 목표에 봉사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그것은 그 자체보다 더 큰 어떤 것,즉 인간성의 일부가 되어야한다.......음악가도 인간이잖아요,그의 음악보다는 삶에 대한 그의 태도가 더 중요한 것입니다.또 그 두 가지가 서로 분리될 수도 없고요."

카잘스의 자서전을 보면 크게 두가지 테마가 있다.하나는 위대한 예술가로서의 궤적이고 또 하나는 정치적으로 옮바른 삶을 산 사람의 모습이다.카잘스는 그 두 요소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그가 젊은 시절 만들었던 '노동자 연주회 협회' 라는 단체는 카잘스의 생각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다.1928년 최초 노동자 연주회에서 받은 환호를 카잘스는 아주 오래도록 기억하게 된다.그리고 카탈루냐 노동자들에게도 그 기억은 오래도록 소중하게 남는다.1965년 카잘스의 90살 생일,프라드 축제 현장에 두 대의 버스가 산 넘고 물 건너 넘어온다.40여년 전 노동자 연주회 협회에서 함께 연주하던 노동자들과 그들의 자녀들이었다.그들은 카잘스 앞에서 모차르트를 연주했다.음악과 사람에 대한 진정성은 이렇게 시간의 한계를 뛰어넘는다.

카잘스가 살았던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중반부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다사다난 했던 시기로 기억될 것이다.서유럽은 19세기 말 문화와 과학의 전성시대를 달리고 있었다.인류의 이성은 꺼지지 않는 불빛처럼 달아 올랐고 합리적 이성과 과학이 곧 유토피아를 만들것으로 믿었다.풍요로움에 바탕을 둔 예술 역시 백가쟁명의 다채로움을 보여주었다 . 흔히 말하는 '아름다운 시절'이었던 것이다.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연이은 1,2차 대전과 파시즘,홀로코스트등은 천국과 지옥이 한 마당 안에서 펼쳐진 것에 다름아니다.카잘스는 그 시대의 한 복판을 관통했다.카잘스의 고향 카탈루냐는 스페인에서도 독립적인 문화와 역사를 갖고 있는 지역이다.어린 시절 부터 카잘스가 채득한 저항의 정신은 카탈루냐 역사가 만들어 준 선물이다.카잘스는 카탈루냐 공화국 정부를 전복시킨 파시즘 정권에 저항했다.또한 카잘스는 2차 세계대전 중 수 많은 해외도피 요구에도 불구하고 유럽을 떠나지 않았다.히틀러의 독일에서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이미 훨씬 그 전일이다.포로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애호가 히틀러의 연주 요청 마저 거부한다.그런 면에서 당시 일자리를 얻기 위해서 나치에 우호적일 수 없었다고 한 지휘계의 황제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변명과 대조적이다.카잘스의 정치적 소신은 승전국 영국에서의 연주거부에서도 드러난다.영국에 우호적이었던 카잘스를 틀어지게 만든 것은 전후 프랑코 정권에 대한 서방국가의 불분명한 태도때문이다.그는 옥스포드나 캠브리지의 학위수여도 모두 거부한다.

카잘스의 삶은 음악적으로도 인간적으로도 훌륭한 모범이 된다.특히 세상에 대한 그의 적극적인 태도는 인상적이다.물론 그에게도 한계가 있다.케네디 대통령에 대한 그의 믿음은 시대적 한계이기도 하고 정치적 안목의 소박함에 실소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하지만 그러한 점은 사소한 부분이다.카잘스는 음악과 삶의 진정성이 묻어나오는 인간이었다.하지만 현실의 나는 불행하게도 인간적인 모범까진 안돼더라도 정치적으로 옮바른 음악가들 조차 만나 본 적이 없다.우리 사회에서 음악 한다는 것은 사실 계급적으로 어느 정도 상위층에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내가 만난 음악한다는 사람들은 대개 좋은 집안에서 어느 어느 선생에게 사사받고 유럽의 무슨 콘소바토리니 하는데서 잠깐 공부하고 가끔 연주회하고...뭐 이런 사람들이다.그들은 악보를 읽을 줄은 알지만 자신의 음악 왜에는 아는 것이 없다.심한 경우는 자신이 다루는 음악 외에 다른 클래식 음악에 대해서도 무지한 사람들이 많다.예전에 성악 공부하는 음대생이 "라흐마니노프가 프랑스 사람이에요? 윤이상이라고요? 첨들어보는데..." 라고 하더라.즉 성악 공부하니까 그 외 음악은 잘 몰라도 된다는 건 가보다.물론 아직 어린 친구였으니 그럴 수도 있다.하지만 이건 공부 많이 한 음악선생들도 마찬가지다.악보와 연주테크닉,곡 해석 이런 것만 선생이다.도대체 음악이 음악만 갖고 되는 것인가.그들의 음악 외적 수준은 고등학교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는 듯 해보였다.역사관,세계관,인간관...등등 너무 음악공부가 어려워서 그랬겠지...물론 음악가가 일반인들보다 더 뛰어난 혜안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하지만 자신들이 세상의 어느 부분에 어느 한 모습으로 살고 있는지 좌표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을까.또한 비슷 비슷한 음악소비자들 사이에서 고만고만하게 흡족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다른 계급의 사람들과 사회의  다른 영역이 움직이는 법에도 관심을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언제가 봤던 영화<바이올리니스트>가 떠오른다. 주인공은 바흐의 음악이 필요한 곳은 비싼 표사서 고급스러운 옷을 차려입은 관객들이 앉아있는 음악회장이 아니라고 생각했다.정작 필요한 곳은 자본주의 세상 속에서 가난으로 인해 영혼마저 상처입은 낮은 곳이라고 믿었다. 그는 결국 노숙자들이 머무는 지하철 역에 바이올린 하나 달랑 들고 나섰다.카잘스는 말한다.마치 내가 만난 그리고 내가 혐오하는 몇 몇 우리음악가들에게 나를 대신해서 이야기 해주는 듯이...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모욕은 곧 나에 대한 모욕입니다.예술가라고 해서 인권이라는 것의 의미가 일반 사람들 보다 덜 중요할까요? 예술가라는 사실이 인간의 의무로부터 그를 면제시켜줍니까? 오히려 예술가는 특별한 책임감을 가지고 있습니다.왜냐하면 그는 특별한 감수성과 지각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때에도 그의 목소리는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자유와 자유로운 탐구,바로 그것이 창조력의 핵심입니다."

...........파블로 카잘스! 감사합니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드팀전 2006-01-16 11:48   좋아요 0 | URL
별 5개 주기엔 뭔가 좀 아쉬운 듯 도 하고....그의 음악엔 별 다섯이 충분하지만말이죠.아무래도 구술 형태의 자서전이어서 주관적으로 미화하는 부분이 있을 것 같다는 선입견이 있어요.

2006-01-24 18: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01-28 12: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의 역사 에코 앤솔로지 시리즈 1
움베르토 에코 지음, 이현경 옮김 / 열린책들 / 2005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술은 유토피아를 구체화 할 수는 없으나 예감할 수는 있다.   -

 - 아도르노-

 움베르토 에코의 <미의 역사>를 관통하는 하나의 개념을 꼽자면 미에 대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아이도 알만 한 그런 개념이다.아름다움에 대한 개념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어왔다는 것이 미의 상대성에 대한 가장 사전적 정의일 것이다.에코는 미술을 중심으로 수세기에 걸쳐 변화되어온 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통시적으로 살펴본다.에코가 서문에서도 밝혔듯이 여기서 말하는 미는 서유럽 중심적이다.

에코의 서문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것은 <비교표>이다.비교표라는 삭막한 용어밖에 없나 싶지만  가장 간명하게 이 장을 설명하는 말이다.비교표는  '주제별 미술 슬라이드'를 보는 듯 한 느낌을 준다.<옷을 벗은 비너스>의 예를 보자.첫 슬라이드는 빈 미술사 박물관에 있는 <뵐렌도르프의 비너스>이다.이후 <밀로의 비너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벨라케스의 <거울을 보는 비너스>,고야의 <옷을 벗은 비너스>, 마네의 <올랭피아> 그리고 마지막 켈린더 속의 모니카 벨루치의 누드까지 ..비교표는 역사 속에서 비너스의 이미지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그 외에도  <옷을 입은 비너스><옷을 벗은 아도니스><예수><성모><왕> 등을 보여주는데 서양 미술사의 주요 소재들의 변천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책은  고대 그리스의 미에서부터 가장 최근인 20세기 후반 미디어의 미까지 다룬다.흔히 미술사 교과서에서 볼 수 있는 진행 순서를 따르고 있다.그리스 미학에 있어서 미학사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 원근법의 창안이다.그리스 미술이 주관적인 시각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이때 부터 시작된 원근법은 전문 미술가들에게는 장애가 되지 않는 요소지만 일반 미술 교육에서는 금과옥조처럼 여겨지고 있다.수세기에 걸쳐 원근법에 대한 변증법적 발전이 있어왔다.하지만 우리의 미술 교육(최소한 내가 배웠던 시절의)에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철칙이다.미학 관련된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미술에 대해 우리 교육에 어떤 철학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든다.그저 몇 몇 테크닉 좋은 아이들이 높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다.(다행히 나는 교육계에서 인정하는 미술을 잘했지만..)그리스 미술에 또 하나 가장 중요한 점은 바로 아폴론적 미와 디오니소스적 미를 동시에 인정했다는 점이다.안정과 평화 속에 혼란의 카오스가 난입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는 것은 이후 추함과 악마적 미의 표현부터 미에 대한 현대적 표현까지 가능하게끔 통로를 열어 놓은 것이다.그리스 미학은 조화와 비례를 중요시했다.건축은 물론이고 인물상들까지 조화와 비례의 수학적 기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우리가 그리스 조각상을 보면서 그 완벽함에 감동을 받는 것은 피타고라스의 수학적 미학이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흔히들 말하는 황금비는 지금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리스 미학으로부터 시작한 글은 시간을 따라 중세로 넘어 온다.중세 천년은 흔히들 '암흑의 시대'로 일컫는다.최근에 나온 중세 미시사 책들은 그런 편견이 진짜 '편견'이었음을 보여주고 있다.그러나 아직 일반의 굳은 마인드를 뚫기에는 동력이  부족하다.이 책 <미의 역사>에서 가장  신경써서 다루고 있는 부분이 중세의 미이다.에코가 중세를 바라보는 시각 역시 기존 '암흑기론'에 반기를 드는 쪽이다.특히 중세의 시나 회화는 빛이 가득하다.당대 사상의 중심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미의 세 가지 요소를 강조했다.즉 비례,완전성,그리고 명료성이다.이 명료성 미학의 기원 중 하나가 신은 빛과 동일시 된다는 것이다.즉 중세의 기독교 중심 세계관에서 빛은 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이러한 빛에 대한 개념은 일상으로도 확대된다.인용된 랭부르 형제의 <5월,베리 공작의 귀중한 성무일과>라는 작품을 보면 누가 과연 중세를 어둠의 시대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붉은 휘장과 녹색의 여성 가운,스웨덴 국기를 떠올리게 하는 남성의 가운..화사한 5월의 기운이 화면 전체에 가득하다.또한 그리스 시대부터 인정된 '추함의 미학'이 괴물과 기이한 존재들의 형상화로 발전한다.

카를 로젠크란츠는 <추의 미학>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추는 상대적 개념으로서 다른 개념과의 관계 내에서만 이해가 가능하다는 점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추는 미가 존재할 때에만 존재하는데 이는 미가 추의 긍정적인 측면을 구성하고 있기때문이다.만약 미가 없다면 추는 절대 존재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해리포터나 반지의 제왕 등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상상 속의 동물들이나 괴물들은 어떻게 보면 중세시대부터 쌓여온 신화의 누적된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중세 사람들은 이 괴물들의 아름다움에 대해 크게 이야기하지는 않았다고 한다.이들은 괴물들을 비롯해서 불가사의한 것에 매료되었던 것이다.이는 후대에 이국적인 것에 대한 예술가들의 매력과도 이어진다.

중세 미학의 또다른 재미는 십자군 전쟁으로 기인한 음유시인과 귀부인과의 사랑이야기이다.열망하지만 다가설 수 없음의 미학이 본격적으로 시를 수 놓고 있다.엘리아데 같은 사람은 폭력성과 잔인성이 연애라는 형식을 통해 세련되어가는 과정 즉 합리화의 과정으로 보기도 한다.음유시인들의 다가갈 수 없는 여인에 대한 존재감은 시와 미술에서 '천사같은 여인'을 만들어 낸다.우리가 단테나 그 후 낭만주의 작가들의 글에서 만날 수 있는 성녀와도 같은 지위의 아름다움 여인상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는 시기인 것이다.

미술사는 인문주의 정신에 입각해 그리스를 구현하고자한 르네상스와 절대왕정을 바탕으로 화려함을 선보인 바로크의 시대로 넘어간다.18세기에 이르면 부르주아지들이 힘을 얻게 된다.이들은 이성과 규율을 중시하는데 미학사에선  신고전주의 시대가 이에 병행한다.신고전주의는 매우 엄격한 자연주의 정신하에 잘못된 고전성에 반발했으며 이는 바로크의 과잉과 거리를 두는 것이었다.또한 이 시대에는 미의 즐거움이 미의 영역과 숭고의 영역으로 발전하다.여기서 말하는 숭고는 신에 대한 정신적 숭고가 아니라 자연주의적 숭고이다.불가사의한 것에 대한 매력이 자연적 체험에 바탕을 둔 숭고미로 전이되었다고 보는것이 옳다.클래식 CD재킷에 자주 등장하는 카스피어 다비트 프리드리히의 <난파><방랑자>같은 것이 전이된 숭고미의 대표적 예이다.

19세기로 넘어오며 드디어 낭만주의의 물결이 서양미술사를 장악한다.미술사에서 많이 배우는 <사르다나팔루스의 죽음><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상>의 들라크루아 <메두사의 땟목>의 제리코 등이 등장한다.낭만주의의 키워드는 감정,자연,자발성이다.또한 밤의 우울과 불안한 방황도 중요한 덕목이 된다.독일에서는 이 물결을<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칭했다.19세기 중반으로 넘어오며 영국을 중심으로 단순성을 강조한 댄디즘과 프랑스의 퇴폐주의가 성행한다.또한 예술이 예술을 위한 것이라는 순수주의 관념이 예술계를 지배한다.퇴폐주의와 비슷한 시기에 보들레르를 필두로 하는 상징주의가 예술계의 한 축이 된다.그리고 19세기 말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고 또 미술 책에도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상파가 등장한다.모네,르누아르부터 시작해서 고흐,고생,세잔 등 현대 미술에도 막대한 영향을 끼친 후기 인상파들까지...

움베르토 에코는 책 후반부에 기계의 미학에 대해 다시 그리스시대부터 되짚어온다. 수단으로서의 기계가 미학적 평가대상으로 바뀐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롤랑 바르트의 <현대의 신화들>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나는 현대의 자동차가 고딕 대성당과 정확하게 동급이라고 생각한다.그것은 무명의 예술가들이 열정적으로 창안해 낸 한 시대의 위대한 창조물이다.

바르트의 지적이 아니더라도 현대의 기계들 그들이 가진 스타일과 디자인들은 이미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평가받아야 하는 미학적 대상이 되었다.그러한 측면에서 기계의 미학을 현대미의 하나로 위치시킨 에코의 시각은 훌륭하다.물론 상대적으로 분량이 협소한 부분이 없진 않지만 이 책이 기계문명의 미학에 대해서만 다룬 것은 아니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다.20세기 전반부의 현대 미술은 재료에 대한 도전이며 기존 예술에 대한 도전 자체가 작품이된 시기이다.뒤상의 <샘>이나 앤디워홀 등의 작품을 보면 알 수 있다.에코는 이 책의 마지막을 미디어의 미로 마무리하고 있다.이 시대를 에코는 도발의 미와 소비의 미 사이의 극적 투쟁의 장으로 보고 있다.예술에 대해 극한 도전을 펼쳐온 아방가르드조차 소비시대의 미에 포획된 듯이 보인다.에코는 미디어를 통해 제공되는 미에 어떠한 통일된 모델도 어떠한 단일한 미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그는 관용의 대향연 앞에서 전반적인 혼합주의 앞에서 제어할 수 없는 완전한 미의 다신교 앞에서 항복할 수밖에 없다라고 책을 맺고 있다.

리뷰를 쓰다가 보니 결국 서양미술사의 약사를 정리하게된 듯하다.이 책<미의 역사>는 미라는 것이 수천년을 거치며 어떻게 변화해왔고 현재 우리가 아름답다 또는 추하다고 느끼는 것이 어떻게 유전되어 왔는지를 살펴보고 있다.내용이 그다지 쉽지만은 않다. 사회적 변화상과 미술작품의 상세한 소개까지 곁들인 서양미술사책들의 친절함도 없다.대표적인 작가들의 작품해설 같은 것도 전혀 없다.그러므로 서양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하지만 이런 점들을 보상해주는 미덕도 많다.우선 선명한 그림인쇄이다.책값이 조금 부담스러워서 그렇지 최고 수준의 도판 인쇄를 보여준다.하지만 이것도 부차적인 장점이다.이 책의 최대 매력은 수많은 인용문들이다.인용문이 원저술보다 훨씬 많다는 느낌을 준다.에코는 각 시대의 미의 개념을 설명하면서 반드시 그에 해당하는 당대 저술을 싣고 있다.철학서에서 음유시인의 시집,작가미상의 전설집,소설과 사회학 서적들... 인용문들 중에는  당시 시대의 미적기준과 가치에 대해 에코의 글보다 훨씬 와닿는 글들이 있다.물론 너무 파편적이어서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글들도 있는데 그럴 때는 과감하게 넘어가면 별 문제 없다.에코가 인용하고 있는 글들 중에는 좀처럼 만나기 쉽지 않은 글들도 있다.전부는 아니지만 그 단맛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는 재미가 상당하다.

마지막으로 사족 한 가지 더 붙인다.표지에 움베르코 에코의 저자 이름이 너무 크게 쓰여 있어서 간과하기 쉽지만 이 책은 사실 에코 외에 또 다른 공동저자가 있다.지롤라모 데 미켈레라는 사람이다.누군지는 모른다.하지만 그는 에코와 거의 50%씩 나누어 집필했다.에코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겠지만 그의 이름이 빠져 있는 것에  왠지 씁쓸하다. 책을 판매하는데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유리했기 때문일까... 역사 속 숨은 이름들을 위하여... 


댓글(3) 먼댓글(0) 좋아요(4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6-01-07 12: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6-01-08 06:50   좋아요 0 | URL
ㅋㅋ.. ㅜㅜ 감사...제가 원래 좀 약하거든요.약한데다가 쓰고 나면 돌아보질 않습니다.ㅋㅋ 이건 또 어디서 나온 버릇인지.ㅋㅋ 늘 눈치보며 쓰기때문에..빨리 쓰고 아래로 내려야돼요.회사에선 아저씨들 눈치보고 집에선 와이프가 왜 컴퓨터방에서만 있냐고 울고..
여러모로 감사.하나 하나 보고 고치다가 '귀차니즘' 발동해서 그냥 복사해서 다시 붙였습니다.역시 잔머리가 좋아요.그나저나 30분씩이나.. 여간 폐가 아니군요.
걍..개떡처럼 쓰면 찰떡처럼 보세요.ㅋㅋ 앞으로도 개떡은 주욱 이어집니다.
오늘 아침은 와이프가 어딜 좀 일찍 나가서 이른 아침 서재질을 하넹....
즐거운 일요일!!

돌바람 2006-01-09 11:44   좋아요 0 | URL
으하하, 개떡이 이렇게 맛있을줄이야. 저랑 비슷한 상황이시군요. 그럼요, 찰떡같이 보겠습니다요^^*
 
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 / 정원출판사 / 2005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낙엽의 붉은 물마저 빠져가는 늦가을이다.리히터가 연주하는 슈베르트의 마지막 피아노 소나타를 듣고 있다.지난 일본 여행에서 운좋게 얻은 음반이다.건반이 낙엽위에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낸다.'따랑 따 따 라'..올가을 가장 많이 들었던 게 리히터의 음반이었다.비록 디지털화된 CD의 피아노 소리지만 가을을 아름답게 만들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리히터로 인해 행복한 가을이었다.그러던 즈음 그의 책 한 권이 출판되었다.

<리흐테르>.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어떤 사람은 리히테르라고 읽고 어떤 사람은 리히터라고 쓴다.영어식 발음과 러시아 발음의 차이일 것이다.내게는 리히터가 편하다.그래서 그냥 계속 리히터라고 읽을 참이다.이 책은 리히터의 회고담과 음악수첩이다.유명한 아티스트들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던 브루노 몽생종이 리히터의 다큐제작 후에 발표한 책이다.이 책은 생각보다 두툽하다.나의 읽기 스피드로는 올해 안에 다 보기 힘들겠다 싶었다.하지만 책장을 넘기자 책읽는 속도가 악상기호로 치면 '점점 빠르게'로 바뀌었다.클래식 음악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즐거운 책이 아닐 수 없다.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평전'형태의 책이 아니라는 것이다.서점에 가면 글렌 굴드를 비롯하여 몇 몇 음악가의 평전집을 볼 수 있다.그 책들 또한 나쁘진 않다.한 연주자의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곡 해석의 방향등을 이해하게 해 준다.또 기이한 행각들이나 주변 아티스트들과의 관계를 통해 그의 삶의 일부를 엿보는 즐거움도 준다.하지만 이 책 <리흐테르>는 그 이상이다.이유는 이 책이 리히터의 구술과 그의 메모에 의존한 책이기 때문이다.몽생종은 다큐멘터리 작가 답게 리히터와의 인터뷰와 수집했던 자료를 꼼꼼히 정리하여 1인칭 시점의 회고담을 완성했다.그러므로 마치 20세기 피아노의 전설이 내 앞에서 담담하게 그의 삶을 이야기하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회고담의 생생한 나레이션은 평전이 갖는 현학성이난 인물에 대한 미화와는 다른 매력을 갖는다.그는 이 책에서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과격하게 자신과 주변 상황들을 묘사한다.어떨 때는 극단적인 감정이나 언사도 마다하지 않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보여주고 있다.

책의 시작은 몽생종의 편저자 서문으로 문을 연다.몽생종이 리히터를 만나서 영화촬영을 허가 받는 과정이 재미있다.인위적인 것을 극도로 싫어했던 리히터는 촬영이야기 자체도 꺼내지 못하게 한다.하지만 서로의 신뢰가 쌓이며 결국 암묵적인 촬영동의가 이루어진다.그럼에도 자연스러운 인터뷰와 앵글을 위해 몽생종은 카메라를 리히터의 시야에서 제거하는 지난한 촬영방법을 택한다.리히터는 카메라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모르는 척하는 침묵동의를 통해 촬영에 협조한다.정말 아쉬운 것은 리히터의 콘서트 촬영을 앞두고 서거한 일이다.감독의 입장에서는 정말 안타까왔을 것이고 남은 기록을 볼 수 없는 음악팬의 입장에서도 두고 두고 아쉬운 일이다.

책의 1부는 리히터와의 인터뷰를 제구성한 회고담이다.음악팬들이라면 리히터의 생애에 대해서는 대략적으로 알고 있다.97년 리히터가 사망했을 때 <객석>을 비롯해 많은 클래식 잡지들이 그의 삶을 다룬 특집 기사를 실었었던 기억이 난다.그는 어렸을 때는 전문적인 음악교육을 받지 못했다.하지만 그의 아버지가 음악가였기때문에 어려서부터 재능을 보였다.그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러싼 가족사는 파란만장하다.아버지는 독일계 러시아인으로 혼란의 시기에 총살당한다.그리고 어머니는  그다지 훌륭하지 못한 인물과 재혼을 한다.리히터는 거의 20년 가까이 어머니와 의절하고 살다가 1960년대 서방세계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다시 만나게된다.이 책의 6장<어두운페이지>에 이러한 가족사가 리히터의 시각으로 쓰여져있다.여기서 그는 의붓아버지뻘이되는 콘드라예프에 대한 노골적인 비난을 서슴치 않는다.

리히터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중에 하나가 스승이었던 게리히 네이가우스였다.리히터를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시켜주고 퇴학의 위기를 넘기게 해준 것도 네이가우스의 공이다.네이가우스의 집안은 대대로 피아니스트로 명성이 자자하다.할아버지 게리히 네이가우스는  골든베이저와 더불어 러시아피아노학파의 기둥이었다.그의 아들 스타니슬라프 네이가우스 역시 피아노교육자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다.또한 그의 손자 스타니슬라프 부닌은 쇼팽콩쿠르 우승자로 현재도 쇼팽연주자로 명성을 높이고 있다.리히터는 스승이 연주하는 베토벤의 피아노협주곡 <황제>를 최고로 쳤다고 한다.그래서 그의 레퍼토리에 그 곡은 빠져있다.

"그는 슈만과 스크리야빈을 아주 멋지게 연주했다.또 쇼팽의 협주곡 E단조와 베토벤의 황제는 어떤가?이 두곡의 연주는 너무나 경이로워서 나는 언제나 이 곡들을 내 레퍼토리에 포함시키는 것을 스스로 삼갔다"

리히터의 인간적인 낭만성이 돋보이는 대목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즐거움중 하나는 리히터와 주변 음악가들의 관계이다.리히터가 그들의 음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또 그들과의 관계는 어떠했는지를 엿볼 수 있다.2부 음악수첩에는 짧은 메모 형태로 그 내용들이 들어있다.또 그의 회고담 속에도 여러 음악가들과의 관계가 사실적인 표현으로 수록되어있다.예를 들어 작곡가의 경우 리히터는 프로코피에프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다.그래서 프로코피에프의 소나타를 연주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과정들이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또한 벤자민 브리튼과는 평생의 좋은 인연을 맺기도 한다.반면 쇼스타코비치와의 관계는 좀 대면대면 했다고 기록한다.첫만남이 우연히 길거리에서 이루어졌으며 몇번 그의 곡을 동료들과 연주했지만 인간 쇼스타코비치와는 가까와지기 어려웠다고 한다.

연주가로서 리히터의 에밀 길레스에 대한 비난은 아주 사실적이다. 에밀 길레스는 네이가우스 밑에서 동문수학한 사이이다.하지만 리히터는 길레스를 시샘이 많아서 주변과 스스로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한다.특히 길레스가 네이가우스와의 관계를 부정한데에 대해서는 아쉬움을 빌어 크게 비난한다.네이가우스가 그일로 죽는 날까지 깊은 상처를 받았다고 리히터는 말한다.그외에 카라얀 역시 리히터와는 코드가 맞지 않았다.명반으로 알려진 베토벤의 <삼중협주곡>의 경우 로스트로포비치-카라얀,오이스트라흐-리히터의 구도가 형성되었다고 한다.카라얀은 협연자들의 재녹음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앨범사진 찍기나 강요한다.그 유명한 표지 사진에 대해서 리히터는

"그 사진을 보면 카라얀은  멋지게 포즈를  취하고 있고 우리는 바보들처럼 미소를 짓고 있다.얼마나 역겨운 사진인가!"라고 말한다.

로스트로포비치의 경우 그의 탁월한 능력과는 별개로 그가 과시적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부분에 대해 눈을 흘긴다.반면에 리히터가 최고로 인정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극찬을 아끼지 않는다.대표적으로 지휘자 푸르트뱅글러,므라빈스키, 카를로스 클라이버,성악가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마리아 칼라스 등이 그들이다.특히 카를로스 클라이버에 대한 리히터의 칭찬은 엄청나다.그의 음악수첩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찬란하도록 완벽하다.이보다 나은 것은 상상할 수가 없다.먼저 클라이버를 칭찬하고 싶다.이 기적에 참가하지 못한 사람들은 우리의 행운을 부러워하리라. (클라이버가 지휘한 요한슈트라우스 <박쥐>를 본 후) 

마침내 제대로 된 <라 트라비아타>를 보았다.카를로스 클라이버는 <라트라비아타>를 있는 그대로 발견했다.이 오페라를 감상하면서 처음으로 진정한 기쁨을 느꼇다(클라이버 지휘 베르디<라트라비아타>를 본 후)

리히터는 기본적으로 자기연주에 대해 만족할 줄 모르는 완벽주의자다.그래서 그가 스스로 한 녹음에 만족을 표한 것은 몇 장 되지 않는다.헨델키보드 녹음이라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2번 녹음 정도가 눈에 들어온다.반면 불만족스러운 녹음은 부지기수다.특히 명반으로 알려진 드보르작의 <피아노 협주곡>은 여러 차례에 걸쳐 불만과 아쉬움을 토로한다.

정말이지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카를로스는 너무나 세심했고 나는 경직되어 있었다.그 바람에 드보르자크 특유의 매력과 단순성을 살리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음반은 평론가들과 음악팬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다.리히터의 자기기준이 엄격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음악팬들의 부화뇌동 때문일 수 도 있다.비슷한 예를  언젠가 본 블라디미르 호로비츠의 명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에 대한 이야기가 떠오른다.유진 오먼디가 지휘한 이 곡의 명연중에 하나로 알려져있다.하지만 이 곡은 조율이 되지 않은 피아노로 연주를 했다는 것이다.당시 호로비츠의 피아노조율사의 증언이다.그럼에도 최고의 명연이라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음악팬들의 부화뇌동인 듯 하다.

이 책의 가장 내밀한 부분은 2부에 해당하는 음악수첨이다.거장이 남긴 이런 종류의 메모는 여태까지 들어본적도 본적도 없다.그런 측면에서 이 메모는 자료적 가치는 물론이고 읽는 재미입장에서도 최고다.음악 수첩에서 리히터는 그가 참가했던 공연이나 들었던 녹음들에 대한 짧은 평가를 싣고 있다.이 메모를 보면 리히터가 오페라의 현대적 연출에 상당히 부정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다.또한 현대 음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는 것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이 메모에서는 현재 맹활약하고 있는 연주자들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또한 그가 반복구에 철저하지 못한 걸 배격했다는 것도 알 수 있다.글렌 굴드의 바흐연주를 좋아하면서도 굴드가 반복구를 빼먹는다는 것에 대해서는 분개한다.그가 특별히 관심을 보인 젊은 아티스트들은 졸탄 코치슈,안드레이 가브릴로프,올레그 카간,나타샤 구트만 등이다.(이제는 정상에 있는 아티스트들이다.)리히터는 이들 대부분과 협연하기도 한다.반면 부정적인 평가를 보낸 아티스트들도 있다.대표적으로 폴리니가 그렇다.

폴리니는 슈베르트의 작품을 프로코피예프나 20세기의 다른 작곡가들이 쓴 작품처럼 연주한다.

폴리니는 연주스타일이 힘차고 때로 영웅적이기까지 하며 더없이 정확하고 기교가 뛰어나다.하지만 어떤 매력도 느껴지지 않고 부자연스럽게 최신 유행만 따르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한마디로 '금속으로 주조된 쇼팽'이다.

라두루푸의 리사이틀에 대해서도 '이 피아니스트의 연주에는 모든 것이 미리 계산되고 계량되어 있어서 뜻밖의 기쁨이나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 전혀없다.마치 커다란 쟁반에 한꺼번에 차려내온 식사와 같다"

또다른 거장인 미켈란젤리에 대해서는 조금은 조심스럽게 이야기한다.

어쨋거나 악보를 광신적이다 싶을 만큼 정확하게 재현한 것은 분명하다.미켈란젤리는 말 그대로 완벽주의자다.하지만 내가 보기에 이런 광신적 태도와 악기에 대한 극단적인 엄격함은 상상력의 비상을 가로막고 작품에 대한 진정한 애정의 표현을 방해한다.하지만.........누가 명인을 심판할 수 있으랴...  (드뷔시 전주곡집 1권 녹음을 듣고)

기돈 크레머와 마르타 아르헤리치에 대해서는 독설을 가한다.

전혀 마음에 들지 않는 연주회였다.하긴 놀랄 일도 아니다.이들은 리허설도 하지 않고 바로 무대에서 연주를 한다니 말이다.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그저 수치스러울 따름이다.이런 태도로 예술에 임하는 것을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이들이 그렇게 행동해도...결과는 엄청난 성공이다.

리히터는 20세기 최고의 피아니스트 중 한명이다.특히 그의 방대한 레퍼토리와 음악의 성직자 같은 고결한 모습은 요즘 연주자들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다.그렇다고 그의 연주가 늘 최상은 아니다.그의 메모에서도 보여지듯이 그는 즉물적인 연주를 싫어했다.그것 나름의 장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리히터는 영적인 에네르기가 충만한 연주를 좋아했고 본인도 그런 연주를 최고로 쳤다.그의 연주를 실제로 볼 수 없었음이 너무 너무 아쉬울 따름이다.

리히터의 슈베르트 마지막 소나타..폴리니의 냉혈같은 연주도 때론 들을 만하다.브렌델의 소박하면서도 지적인 연주는 진지해서 좋다.머레이 페라이어의 낭만적이고 풍부한 음향을 머금은 연주 역시 즐거움을 준다.하지만 오늘은 리히터가 최고다.느리면서 강하고 굵은 울림이다.에너지와 충만한 감성. 슈베르트.... 리히터..... 


댓글(7)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mannerist 2005-11-26 16:42   좋아요 0 | URL
흑... 늦었다. 영문판 번갈아 보면서 천. 천. 히. 쓰는 와중에 선수 치시다니. ㅜㅡ
근데 쓰시는 김에 이세욱님의 노고에도 조금은 언급해주시지 그랬어요. =)

드팀전 2005-11-27 08:59   좋아요 0 | URL
빨라도 상안줍니다.ㅋㅋ...번역자의 노고에 대해서는 님이 언급하세요...ㅋㅋ 뭐 번역에 대해서 잘 알지못하니까...
평전이 아니어서 좋았어요.아마존을 찾아보니 루돌푸 제르킨 책도 있고 클라우디오 아라우 책도 있더군요.특히 전 아라우 책에 관심이 갑니다.아라우 역시 클라우제라는 좋은 스승밑에서 공부를 했지요.특히 클래식의 불모지였던 남미 출신이고 레퍼토리 역시 상당히 넓습니다.현대 음악쪽은 별로 관심을 안가지긴 했지만...전 아라우 책이 나오면 사고 싶은 맘은 있는데 영어로된거 사전 찾아가며 볼 정도의 여력은 없습니다.ㅋㅋ

todundleben 2005-11-29 18:44   좋아요 0 | URL
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리히터 아저씨는 굴드 아저씨를 무지 싫어할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군요. ㅎㅎ

드팀전 2005-11-30 09:22   좋아요 0 | URL
처음뵈요.서재명이 인상적이군요.글렌 굴드의 바흐에 대해 좋게 평가했던 걸로 기억되는데요.음색도 높이 평가했고..단 한가지 굴드가 반복구 지시를 무시하는 것에 대해 분개했다네요.꼭 굴드뿐이 아니라 반복구를 지키지 않는 연주자에 대해 비난하는 내용이 많이 있더군요.

MANN 2006-01-16 02:20   좋아요 0 | URL
잘 읽었습니다. 리히터 정말 좋아하는데... 리뷰를 보니 이 책이 마구마구 읽고 싶어지네요.

강호 2006-01-16 11:30   좋아요 0 | URL
이세욱 선생은 이제 경지에 오른 느낌.

강호 2006-01-16 11:36   좋아요 0 | URL
2005년에 읽은 최고의 번역서였습니다.
 
강가의 아틀리에 - 장욱진 그림산문집
장욱진 지음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리집에는 장욱진의 그림이 한 점있다.

그러나 너무 놀랄 것은 없다.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복사본 그림이다.이 그림과의 인연은 몇 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 당시 원룸 빌딩 9층에 살았다.13평짜리 원룸에 침대,책상,옷걸이가 가구의 전부였다.아마 원룸살이의 기본세트 아닌가 싶다.침대에 누우면 마주보이는 하얀 벽이 을씨년스러웠다.뭔가 필요했다.해답은 서울 고속버스 터미널 지하상가에서 구해졌다.서울 본가에 갔다가 우연히 지하상가 액자점을 어슬렁 거렸다.거기서 엽서 크기보다 조금 더 큰 장욱진의 그림을 보았다.몇 만원인가를 주었다.투명한 아크릴 액자속에 그림은 평화로왔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즐거웠다.

그림을 사들고 삭막한 원룸 벽에 걸었다.햐얀 벽면에 땡그렁하고 장욱진 그림 한 점만 걸렸다.집에 국화 한 다발 사서 꽂아 놓아 본 원룸생들은 알 것이다.몇 천원 밖에 안하는 국화가 집안 분위기를 한동안 바꾸어준다는 것을...  그림 속에는 장욱진 작품에 수시로 등장하는 대상들이 전부 들어 있다.아마 유명한 그림일게다.그 제목은 아직도 잘 모르지만 말이다. 복사본 그림은 이렇다.초록빛 나무 속에는 새들 대엿섯마리가 찌르릉 찌르릉 지저귄다.나무 왼쪽 위로는 마지막 남은 붉은 홍시마냥 옅은 태양이 걸려있다.나무 아래 바둑판처럼 네모난 멍석이 깔려있다.멍석위에 앙상한 숯처럼 까만 사람 세명이 마주보고 앉아 있다.그 아래로 네발 달린 강아지가 어슬렁 지나간다.그림은 안정감이 있으면서 평화롭다.과감한 생략과 기호화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보고 있으면 어느 여름날 시골마을 어귀가 그려진다.동네 큰 나무아래 흰옷입은 노인들이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눈다.올해 농사이야기도하고 서울간 자식 이야기도 한다.이웃 마을 김영감 손자 낳은 이야기도 한다.매미의 왱왱왱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산 위에서 불어온 여름바람이 흰 마고자의 열을 내리고 살며시 돌아나오는 소리도 들린다.어느 집 담장너머 콩국수 면발 물에 헹구는 소리도 들린다.장욱진의 그림을 한참 보고 있으면 마치 그 그림속이 내 고향인 듯  오만가지 소리와 향기.그리고 풍경이 마음속으로 밀려든다.

<강가의 아틀리에>는 이번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책 100권' 중 하나로 뽑혔던 책이다.그림 산문집이라는 말처럼 책에는 글보다 그림이 많고 그림보다 여백이 많다.여기 올라온 글들은 화가 장욱진 선생이 6-70년대 잡지나 신문에 기고 했던 것들이다.주로 장욱진 선생의 신변이야기들,그림과 관련된 생각들,술에 대한 이야기들이 주를 이룬다.문장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글의 내용이 깊은 울림을 갖지도 않는다.화가는 그림으로 승부하는 사람이지 글로 평가받는 사람이 아니니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

국립박물관장이었던 김원룡 선생은 장욱진 선생을 두고 '붓만 빼았으면 그자리 앉은 채 빳빳하게 굶어죽을 사람'이라고 했다.한가지에 미쳐야 일가를 이룬다는 말이 그에 다르지 않을 것 같다.장욱진의 그림에서 보이는 단순소박함이 유치하지 않고 깊은 울림을 주는 것은 그의 내공에서 기인한 것일게다.어떻게 생각해보면 장욱진의 그림은 유치원때 한두번 그려본 그림같기도 하다.사람은 머리에 손발만 갖춘 모습이다.동물들도 입체감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이 그냥 네발 또는 두발이 성냥개비처럼 땅에 닿아있다.장욱진은 자신이 심플하다라고 말했다.그의 그림은 보면 그의 삶이 정말 심플했을 것으로 짐작된다.설령 그의 삶이 번잡한 일상에 치였을 지라도 그이의 영혼은 단순한 아름다움으로 가득했을 것 같다.

장욱진의 그림 속 인물들은 기호에 가깝다.자코메티가 떠오른다.실존주의 조각가라는 자코메티 역시 존재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실체를 최대한 단순화시켰다.그의 사람들은 그래서 모두 앙상한 뼈만 남은 사람들 같다.존재의 본질이 외연에 있지 않다는 것인가? 하여튼 장욱진의 인물들도 모두 앙상하다.하지만 같은 기호로 남은 인간이지만 장욱진의 그림 속 사람들은 훨씬 풍요로와 보인다.아마 인물들이 무언가와 관계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관계의 대상은 대개가 태양.나무,개,한옥집 등등 우리 자연과 삶의 모습들이다.그래서 장욱진의 그림은 단순하고 본질적이어도 결코 외롭지 않다.또한 그의 작품들은 동양에서 바라보는 인간적 가치의 본질을 보여준다.이러한 보편성은 그의 표현이 갖는 한국적 터치를 통해 특수성도 확보한다.이 책에 있는 삽화들은 불가의 달마도나 선화를 연상시킨다.많은 여백과 단순한 붓터치는 보는 이에게 많은 상상을 요구한다.장욱진이 작품을 대하는 태도가 그림이 그대로 묻어나는 듯 하다.그는 말했다.

나는 고요와 고독 속에서 그림을 그린다.자기를 한곳에 몰아 세워놓고 감각을 다스려 정신을 집중해야 한다.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 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괴로움의 눈물을 달콤하게 해주는 마력을 간직한 것이다.회색빛 저녁이 강가에 번진다.뒷산 나무들이 흔들리는 소리가 들린다.

장욱진의 그림 속 세상에 기호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석양이 수면을 쓸어가는 것을 바라보며 막걸리 한 잔을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댓글(7) 먼댓글(0) 좋아요(1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바람구두 2005-11-21 16:03   좋아요 0 | URL
증말? 복잡해 보이는데... ^^;;

드팀전 2005-11-21 17:38   좋아요 0 | URL
TT 잠깐 그렇다는 거죠 켁켁....평소 삶은 좀 복잡한거 같아요.휴..오늘도 왜이리 심사가 복잡할까...그러니 단순해지고 싶은 거겠죠.그것도 몰랑?

sandcat 2005-11-22 13:11   좋아요 0 | URL
내공이란 말, 참 많이 쓰이지요.
하긴 어디서는 내공을 주고받기도 하덩구만요.
내공이란 무얼까, 그건 다름아닌 "내 마음의 자유" 같은 것.
누구를, 무엇을 만나도 자유로운 ...

우리집에는 벽에 걸렸다던 그림이 그려진 철제 저금통이 있어요.
밑에 동전 빼는 구멍이 따로 없어 얼마 안 넣었지만.

"아무것도 욕망과 불신과 배타적 감정 등을 대수롭지 않게 하며 "가 맞나요?

드팀전 2005-11-22 13:23   좋아요 0 | URL
켁켁...뭔가 빠진 듯 한데.. 책 뒤에 장욱진 선생이 쓰신 글이거든요.뭔가 이상하긴 한데...쓰다가 빼먹은 것 같네요.집에가서 찾아봐야함돠..ㅋㅋ

파란여우 2005-11-22 21:15   좋아요 0 | URL
장욱진 그림 슬라이드 6장 있습니다.
가끔 햇빛 찬란한 날에 그것을 비쳐 보면 마음이 고요해지죠
생활인으로서의 장욱진은 빵점!! 그림쟁이로는 성공!!
리뷰어로서의 드팀전은 기죽이는 얄미운!!!^^

2005-11-23 10: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11-23 11:03   좋아요 0 | URL
파란여우님>뭐...예술가가 다 그렇지 ... 하여간 희안한 인간들이라서 적응이 감당이 안돼요.그쵸? 칭찬에 감사드립니다.근데 제가 리뷰를 얼마나 무성의하게 쓰는지 보신다면 실망하실 거에요.회사에서 컴퓨터 켜놓고 마치 일하는 듯 하면서 쓰는 경우가 많은데요.그래도 왠지 눈치가 보여서 ..지나가다 누가 '뭐해..'이러면 화면을 밑으로 쑥내리길 반복합니다.그러니 다쓰면 읽어보지도 않고 바로 올려요.다른 님들이 오타를 지적해주시거나 집에서 다시 한번 볼때 오타나오거나 말도 안돼는 문장이 나오면 그때 그때 수정합니다. 좀 깊이 생각하고 문장과 구조를 만들어 보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그러면 이게 또 스트레스가 되서 원래 의도에 어긋나게 될 듯 합니다.즐거운 서재질을 위해서는 그냥 쓰려구요.오타나 비문이 나오면 그때 그때 이야기해주세요.이미 각오하고 있으니까 그때 그때 고치렵니다.찾아보면 무지 많습니다.
 
아름다움을 훔치다 - 김수남이 만난 한국의 예인들
김수남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4년 2월
평점 :
품절


APEC이라고 차량 2부제를 했다.설령 2부제를 하지 않았어도 차를 가지고 나가지는 않았을 것이다.어제 저녁 내가 사는 동네에는 '경찰 반, 시위 대 반'이었다.1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가 4시간이 걸렸다는 트럭기사의 인터뷰를 보았다.사실이었을 것이다.

오늘 아침은 지하철을 탓다.내심 즐거웠다.내가 사는 곳은 지하철 출발지이기에  언제든 앉아갈 수 있다.그리고 오늘은 학교도 공무원도 주5일제 하는 사람들도 쉬는 토요일이다.나는 지하철에 앉아 <아름다움을 훔치다>를 펼쳤다.지하철이 계속 찌그덩 찌그덩 소리를 냈다.방송으로 어디 역을 지난다고 왕왕 거렸다.하지만 난 하나도 듣지 못했다.내 시선은 사진에 꼽혔으며 내 마음은 내가 직접 이들을 만난 듯 안쓰러워 시큰 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서는 지옥철이라 불리는 지하철이 오늘 아침은 내 감정의 도량이 되어주었다.

이 책이 등장하는 사람들은 전통문화의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분들이다.제주 큰 심방 안사인,동해안 굿의 신석남,판소리의 김소희,밀양 양반춤의 하보경 등등....현재 살아계신 분들도 있고 김수남 작가의 사진 속에서만 사시는 분들도 있다.이들의 약력을 대개 살펴보면 집안이 대대로 무당이었거나 아님 광대들이었던 경우가 많다.멋진 사진과 아름다운 글보다 내 상상력을 자극한 것은 약력으로 만나는 이들 삶의 행적이다. 첫장에 있는 제주 칠머리당굿 예능보유자 였던 안사인 큰 심방이 대표적이다.그의 첫 약력은 이렇다.

1923년 제주도 제주읍 용담리에서 21대 세습무인 임생의 큰아들로 태어났다..... 안씨집안은 본래부터 무가는 아니었다.증조할아버지가 19대째 세습무계 집안의 딸 고시의 미모에 반하여 결혼했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업을 이어받았다.

무당중에는 크게 강신무와 세습무가 있는데 안사인은 22대쩨 세습무당이다.22대면 도대체 어디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것인가..조선시대,고려시대... 나의 상상력이 닿았던 것은 22대를 내려오는 안사인 조상들의 삶의 모습이었다.전부 무당의 눈으로 역사의 일부를 바라봤을 것이다.왜란이 있었을 때는 어떻게 했을까? 왕이 삼전도로 피난을 갔을 때 그 안사인의 선대 무당은 또 무었을 했을까? 일본이 조선을 합병했을 때 제주도에 살던 바로 윗대 무당들은 어떤 염원을 빌었을까?  도대체 22대가 무당이라면 그 안에 담고 있는 무당들의 이야기와 그 무당들이 염원해준 제주민들의 한은 어느정도의 양이었을까? 나는 안사인의 글을 읽으며 계속 그런 생각을 했다.

 무당은  전근대 시대의 심리치료사이다.무당들이야 다르게 생각하겠으나 인문학적으로 그런 해석이 지배적이다.무당은 영매의 역할을 하여 죽은 이와 산 자들 사이의 소통을 이루어준다.이 소통은 사실 죽은자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안녕'이란 말 한마디 들어보지 못하고 망자를 떠나보낸 이들을 위무해 주기 위한 것이다.내 생각은 그렇다.영매의 입을 통해 망자는 남은 이들에게 '나 걱정하지 말고 잘 살아라'는 이야기를 한다.남은 사람들은 그렇게 죽은이를 보내고 나머지 한많은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 아닌가.. 안사인,김금화,신석남같은 큰 무당들은 그렇게 남은 사람들의 삶을 위무했다.

흔히들 병신춤이라고 하는 공옥진의 삶은 한편의 영화다.레이 찰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레이>는 공옥진의 삶의 단편에 비추면 세발의 피다.내가 만약 영화 감독이라면 공옥진 선생의 삶을 영화로 꼭 그려보고 싶다.소리와 춤과 삶의 굴곡이 삼위일체를 이루어 해외에서 무지하게 상 받을 것 같다.

1938년 무용가 최승희의 수양딸 겸 심부름꾼으로 일본으로 건너갔다....일본 가정의 식모로 일하던 중 주인집이 비행기의 폭격으로 사라져버리자 홀로 문전걸식하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8살 먹은 공옥진이 거렁뱅이가 되어 일본에서 바닷길건너 남도 들녘까지 찾아온다.내 눈앞에 그 거지소녀의 모습이 막 그려졌다.어떻게 알고 그 길을 찾아왔을 것이며 결국 가족을 찾아왔을 때 부모들의 표정은 어떠했을까...그 길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공옥진의 파란만장한 삶이 이어진다.

딸을 낳고 누운 지 사흘 만에 전쟁이 터졌다.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들이닥쳐 헛간 짚더미 속에 숨은 그 의 등을 죽창으로 찔렀다.피를 흘리며 끌려갔다가 우연히 육자배기 한 가락 뽑은 것을 '인정받아' 죽음의 문턱에서 거짓말처럼 살아났다.

예전에 TV에서 가끔 씩 공옥진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재미있기도 했지마 사실 좀 무섭기도 했다.기괴한 모습이 실제 무슨 장애가 있어보엿다.장애가 왜 무서운것인지 잘은 모르겠으나 어린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비춰지기도 한다.90년대 들어서면서 공옥진의 모습을 본 적이 없다.90년대도 그녀의 공연을 계속 되었지만 아마 TV출연은 하지 않았나보다.공옥진의 사진 중에 아주 인상적인 것이 있었다.마을 장터로 짐작된다.공옥진이 목을 쭉들이밀고 춤을 춘다.빙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전부 살아있다.다음 사진 역시 인상적이며 이 책에서 말하는 광대 본연의 모습을 그린 듯 하다.조금 높은 곳에서 찍은 앵글이다.초가지붕과 양철지붕이 서로 머리를 대고 있다.중앙에 빙둘러선 관객들,뒤늦게 온 아이는 추리닝을 입고 자전거 뒷 안장위에 올라서 그 안을 넘어본다.무대 가운데는 공옥진과 마을 촌로들이 한판 춤을 추고 있다.

광대가 섰던 무대는 세종문화회관이나 예술의 전당이 아니었다.흙냄새와 시장냄새가 나는 장터 한 복판이라야 옳다. 이곳에는 공연관계자와 관객의 구분이 모호하다.관객이 한마디씩 거들기도 하고 필요한게 있으면 자기들이 가져다 주기도 한다.공연이 끝나며 함께 뒤섞여 놀기도 하고 막걸리 한잔 대접할 수 있는 여유도 있다.요즘 공연에서는 예술가는 도도하고 공연관계자들은 위압적이다. 관계자외 출입금지같은게 우리전통문화에는 없었나보다.통제에 통제를 거듭하는 요즘 공연문화가 왠지 치떨리게 싫어진다.

이 책에 나오는 대다수의 인물들은 그래도 국가로부터 그들의 가치를 인정받았던 분들이다.그렇다고 그들의 삶이 풍요로왔던 것은 아니다.밀양양반춤의 하보경 선생이 가족들과 찍은 사진은 삶의 옹색함을 보여준다.하지만 하보경 선생의 가냘프지만 위풍당당한 모습이 누추함을 날려보내고 있다.그들의 삶과 예술은 제대로 대접 받아야만 한다.남대문만 국보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문화들이 사실은 더 세심한 관리가 필요한 것 아닌가.이 무형의 문화들은 제대로 전수되지 않는 다면 사라져버린다.국보1호라는 남대문이 사라져버리면 아마 난리가 날 것이다.하지만 도당굿 도살풀이가 사라지면 누가 관심이나 갔겟는가? 눈에 보이는 것들만 중요시하는 풍조가 사회 전반의 정서지만 실제로 중요한 것들은 눈에 보이지 않고 전해진다.그 전수가 제대로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이 책을 다 본 지금.나는 갑자기 CD장을 뒤적인다.김소희 명창의 춘향가가 듣고 싶어졌기 때문이다.꽂아놓고 거의 듣지 않았다.아마 처음부터 다 듣기는 힘들것이다.그래도 <적성가>한 소절이라도 듣고 싶다.

적성의 아침 날은 늦은 안개 띄어 있고 녹수의 저문 봄은 화류동풍 둘렀는데.....

듣는 김에  SP복각으로 남아있는   이화중선의 <육자배기>,임방울의 <쑥대머리>도 들어야겠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kimji 2005-11-20 11:17   좋아요 0 | URL
어제 새벽, 장바구니에 책을 넣으면서 마지막까지 고민했던 책이 바로 이 책입니다. 아, 리뷰를 하루 일찍 올리셨더라면(이런 억지가^^) 아니면 제가 하루만 더 늦게 장바구니를 채워 구매를 했더라면 주저없이 이 책도 포함되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니 아쉬움이 더 커갑니다.
님의 리뷰, 잘 읽었습니다. 일요일인 오늘도 화창하시길-

2005-11-20 1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5-11-20 12:32   좋아요 0 | URL
저도 이 책 읽고는 성금연의 가야금을 들었더랬습니다.
공옥진의 춤사진에서는 계속 바닥이 보이더라구요. 비닐 천막 깔아 놓은 울퉁불퉁한 바닥 말입니다.
글자가 반, 백지가 반인 책이었지만, 사진과 글이 충분히 아름다운 책이죠.^^

2005-11-21 12: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드팀전 2005-11-21 17:43   좋아요 0 | URL
글샘님>국어선생님이 아니셨군요.ㅋㅋ 전 전 진짜루 그렇게 믿고 있었습니다.
ooo님>ㄳ....술도 드시고 좋으시겠어요.제 글이 재미있지는 않은데...곰곰..생각중
재미잇는 것도 가끔은 있겠지...위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