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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쿠와 우키요에, 그리고 에도 시절 - Art 020
마쓰오 바쇼 외 지음, 가츠시카 호쿠사이 외 그림, 김향 옮기고 엮음 / 다빈치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그 날 아침은 시가 한 편 쓰고 싶었다.흐린 날이었으며 또 평소와 다름없는 날이었다.그 당시 하이쿠 몇 편 읽었던 듯 하다.그 중 몇개는 오래 기억하기로 마음 먹었을 것이다.아주 평범한 날 아침에 서푼짜리 시심을 돌게 한 것은 어느 죽음과의 대면이다.회사를 10분정도 앞둔 길이었다.길 바닥에 누런 물체 하나를 발견하고 흠짓 놀랐다.팔뚝 만한 크기의 누런 강아지가 길 한복판에 누워있었다.그리 오래전에 치인 것 같지는 않았으며 또 숨진 것이 분명해 보였다.평소에 길바닥에 누워 버린 동물의 시신을 보면 곧 바로 눈길을 돌린다.대게 그런 유해들은 곤죽이 되어 있기 마련이고 죽음의 경건함을 느끼기 전에 시각적 혐오의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하지만 그날 그 강아지의 모습은 아직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속도를 줄이지는 못했지만 평소와 달리 그 강아지를 계속 눈에 담으며 지나갔다.내가 강아지를 무척 사랑하는 사람이거나 또는 공공의 이익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다면 내려서 후속 조치를 했겠지.하지만 나는 둘 다 아니다.그저 한 강아지의 죽음을 그날 따라 조금 오래 더 생각한 사람일 뿐이었다.그 때 읽던 책에 메모를 남겨 두었다.목격한 죽음을 하이쿠 처럼 여운을 주는 글로 남기고 싶었다.하지만 능력미달... 그냥 이렇게 무미건조하게 써 놓았을 뿐이다.
비오는 차도 위에 쓰러져 죽은 어느 개를 추모함....2003년 7월 8일
장 그르니에의 수필에 나온는 어떤 글 같다는 생각을 당시에도 했을 것이다.
하이쿠는 짧아서 좋다.또 정형화 되어 있어서 좋다.근대 시문학은 자유시의 발달을 토대로 한다.정형시는 문학에서 전근대의 상징처럼 비추어진다.그래서 요즘 시인들은 대개 자유시를 쓴다.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데 정형시는 형식 상의 한계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하지만 읽는 독자 입장에서 한시나 하이쿠와 같은 정형시를 읽다 보면 근대 자유시에서 느낄 수 없는 무한한 해방감을 갖게 된다. 하이쿠는 짧지만 강하고 긴 여운을 남긴다.하이쿠 시인들은 자연과 삶을 관통하는 혜안을 17자에 담았다.정형시가 주는 압축미는 독자에게 시를 해석할 수 있는 공간을 넓혀준다. 시를 읽고 상상할 수 있는 몫을 독자의 삶에 대한 깊이에 떠넘겨준다.특히 하이쿠의 회화적 인상은 읽은 이의 마음 우물 속에서 잠자고 있던 일련의 감정을 한 순간에 끌어올려준다.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벚꽃 아래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은 -이사-
이 눈 내린 들판에서 죽는다면 나 역시 눈부처가 되리 -초수이-
장마가 시작되자 이름 없는 시냇물들도 잔뜩 긴장했다- 부손
짧은 시들이지만 시각적으로 너무 강렬하다.영화의 스틸 사진 처럼 한 편 한 편이 그려진다.올 봄에도 벚꽃 길을 걸었다.이사의 하이쿠를 생각하면 삶에 대한 강한 긍정의 마음이 떠오른다.초수이의 눈부처는 사면을 하얗게 채운 들판을 쪽문을 열고 내려다 보는 작가의 시선을 떠오르게 한다.마지막 부손의 하이쿠에서는 장마철의 비에 젖은 푸른 숲의 시각적 이미지 사이로 콸콸콸 돌아드는 시냇물의 청각적 이미지까지 겹쳐진다.<하이쿠와 유키요에,에도시절>에서도 다색판화 우키요에의 발전에 하이쿠 동호회가 있었음을 알리고 있다.하이쿠의 시각적 이미지가 그 만큼 그림과 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만나는 하이쿠와 우키요에의 연결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다.우키요에를 감상한다는 차원에서는 의미가 분명있는 일이다.하지만 하이쿠의 이미지는 종이 위 그림 속에 그려지는 것 보다 읽는 이의 마음 속의 떠오르는 상이 훨씬 미적이고 훌륭하다.
도둑이 남겨 두고 갔구나 창에 걸린 달 -료칸-
텅 빈 집 밤 되니 더욱 썰렁하여/ 뜰에 내린 서리나 쓸어 보려다가
서리는 쓸겠는데 달빛 쓸기 어려워/ 그대로 달빛과 어우러지게 남겨두었네 -황경인-
아래 있는 시는 물론 하이쿠는 아니다.하지만 두 시의 정서가 왠지 어울릴 듯하여 써 보았다.청빈한 삶,아무도 없는 깊은 밤,홀로 있는 적막함을 달래 주는 것은 달빛 뿐이다.
꽃구경에 날 저무니 집으로 가는 머언 벌판 길 -부손-
붉은 꽃 푸른 산 해가 지는데/교외 들판 풀빛은 끝없이 녹색
상춘객은 가는 봄 아랑곳하지 않고/정자 앞 오가며 지는 꽃잎 밟네 -구양수-
두사람의 생애,그 가운데 피아난 벚꽃이런가 -바쇼
꽃잎 하나 날려도 봄이 가는데/바람에 만점 꽃 펄펄 날리니 안타까워라
보는 이 눈앞에서 꽃 이제 다 져가니/ 술 많이 마셔서 몸 좀 상해도 저어 말지니라
강 위의 누각에 물총새 집을 짓고/궁원가 큰 무덤에 기린 석상 나뒹굴었네
세상 변하는 이치 잘 살펴 즐기며 살지니/뜬구름 같은 명리로 이 몸 묶을 게 무었이랴? -두보-
굳이 같은 정서라고 우길 필요는 없다.하이쿠나 한시나 자연을 바라보고 인생을 넘나 들었으니 마음은 같은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하이쿠 시인들은 대개 방랑하며 가난하고 고적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그래서 그들의 시에는 '가난한 마음냄새'가 난다.시인의 가난한 마음은 작은 미물에 시각을 고정한다.작은 것들에 대한 애정은 유머러스한 표현을 통해 생의 위대함과 인간의 편협함을 비웃는다.이런 하이쿠들은 웃음을 유발하면서도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어서 마음에 든다.
다리 위의 저 거지도 아들을 위해 반딧불을 잡으려 하네-이사-
새벽에 핀 이 꽃들 나는 내가 보려고 했던 것보다 더 많이 신의 얼굴을 보았다.-바쇼-
죽은 자를 위한 염불이 잠시 멈추는 사이 귀뚜라미가 우네 -소세키-
하이쿠의 힘은 사물을 관조하는 힘이 아닌가 한다.하나의 사물은 맨눈으로 보면 그냥 있는 사물일 뿐이다.그 곳에 깊은 응시를 배제한다면.오래도록 사물을 바라보면 모든게 달라진다.매일 쓰던 걸레도 싱크대에 쟁여 있는 빈 그릇도 .... 오래 바라 보면 그 사물들이 말을 건다.그리고 세숫대야가 호수처럼 보이기도 하고 비누가 야위어 가는 것처럼도 보인다. 오래 바라보면 모든게 달라져 보인다.그건 진실인것 같다.
봄은 산을 넘어 간지 오래. 나는 두리번 거리기만 하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