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 Space Fantasia (2001 야화) 세트 1~3(완결) 2001 Space Fantasia
호시노 유키노부 글.그림, 박상준 감수 / 애니북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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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리가 우주로 나아가는 것은 결국 존재를 외부에서 사유하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SF는 존재의 문제를 비경험적 상상을 전경화하여 내부와 외부에서 사유하는 장르이다. 서사의 중심축과 주변축의 배치가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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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석 평전 - 부치지 않은 편지
이윤옥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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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서른 셋에 죽은 김광석 보다 오래 살았다.  나보다 먼저 태어나서 더 일찍 죽은 이들을 추월하여 살고 있다. 김광석은 언제나 내게 '형'의 이미지였다. 그런 마음 속 이미지와 정지된 사진 속 이미지는 작은 충격을 만든다. 그가 죽음으로 자신의 시간을 멈춰세운 후에도 나의 시간은 떠밀려 가듯 흘러 왔기 때문이다. 젊은 김광석을 보면서 드는 낯섦은 그렇게 떠밀려온 시간이 만든 틈이다. 나무의 옹이를 쓰다듬는 심정으로 실로 오랜만에 김광석을 만난다. 

나는 김광석을 좋아했다. 그렇다. 정말 좋아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그에 대한 나의 마음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었다. 왜였을까?  <김광석 평전>을 읽으며 내가 왜 그동안 그에 대한 이야기를 아꼇는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우선 '보이지 않는 특별함'을 선택하고 싶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내 세대 사람들 중에는 김광석을 좋아하는 이들,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나름 팬이라면 팬일 수도 있는 층이 꽤 넓은 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마디라도 그에 대해서라면 거들 수 있는 사람들도 많다. 나의 애정은 그런 '보편적 애정'을 거두어드리는 방식에 있다. 그를 내 마음 속에 더 특별하게 남겨 놓는 방식은 그에 대해 그런 보편적 애정을 수동적으로 퇴각시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김광석'에 대한 이야기도, 그의 노래도 거의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거기에는 또다른 이유가 있다. 나는 지나온 20대를 김광석과 함께 봉인했다. 나의 20대는 김광석과 함께 흔들렸고 그와 함께 사멸했다. 여기서 사멸은 그의 육체적 죽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가 죽고 난 뒤 얼마지나지 않아. 나는 서른을 넘겼고 서른 어느 즈음부터 나는 김광석을  피했다. 장마가 시작되어도, 코 끝에 겨울 냄새가 흘러도, 아무 일도 하기 싫은 흐린 날에도, 돌이키고 싶은 추억들이 가슴을 치밀고 올라올 때도, 나는 애써 김광석을 피했다. 나는 내 20대를 그와 함께 묻어두고 싶었다. 가끔 서글픔이 밀려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겠지만 그것의 심연으로 다기 내려가고 싶진 않았다. 결국 이런 생각들임에도 김광석을 운운하는 것은 내 내밀한 공간을 들먹이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낳는다고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사실은 대중음악의 보편성이고 거기에 삶의 노래와 사람의 노래를 들려준 김광석이 가진 가장 큰 강점이기도 하다.) 나는 그를 사랑했고 내 20대를 사랑했기에 섬세하게 그에 공명했으며 또 어느 시점에선 그것 조차 물 밑으로 가라앉힐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김광석을 처음 알게된 건 고등학교 자율학습 시절이다. 친구가 듣던 카세트를 빌려 들었는데 그게 <동물원 2집>이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한 노래에 빠져들었다.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를 필두로 <혜화동>까지. 어떤 노래 하나 버릴 곡이 없었다. 이 음반에서 나는 김광석, 김창기, 박기영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그 때는 김광석에 비해 김창기나 박기영의 설익은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 2집에서 나는 특히 박기영이 부른 <이별을 할 때><별빛 가득한 밤에>같은 발라드를 좋아했다.(나는 아직도 이 노래를 부를 수 있다.) 그리고 동물원에 대한 관심은 1집을 듣게 만들었다. 김광석이 부른 <거리에서>와 함께 김창기가 부른 <잊혀지는 것>은 한동안 나의 18번이었다. (나는 김광석이 <다시부르기>에서 노래한 버전보다 김창기 버전을 더 좋아한다. 무기교로 덤덤하게 불러서 그렇다.)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나의 '동물원'에 대한 애정은 가시지 않았다. 김광석이 탈퇴하고 난 이후에는 그의 솔로 앨범도 찾아 들었고, 박기영의 솔로 앨범도 들었다. (이 둘은 모두 카세트로 가지고 있었는데 내가 마지막으로 들었을 때 테잎의 상태는 웅웅 거릴 정도로 늘어나 있었다.) 김광석의 1집에서는-확실히 그의 이후 음반들에 비하면 범작일 수 밖에 없는데- <기다려줘>,<너에게>,<슬픈우연>등을 좋아했다. 1집만 비교해 볼 때는 비슷한 시기에 구한 박기영의 앨범이 사실 더 애정이 갔다. <백마에서>라는 곡이 수록되어 있었다. (이 곡은 동물원 5집에 재수록된다. 하지만 박기영 솔로앨범에 있는 곡이 훨씬 좋다. 눈이 내리는 날마다 이 곡을 얼마나 들었는지.) 다른 멤버들중 기타를 치던 이성우가 프로그레시브 장르로 음반을 내었는데 사실 크게 관심을 갖진 않았다.  

김광석이 동물원 멤버들 중에서 눈에 확 들어오시 시작한 건 2집부터다. 나는 이 앨범을 대학 동기들에게 무척 많이 선물했다. 마땅히 줄만한 선물이 없으면 김광석의 음반이었다. 나는 동기들 사시에서 음악을 좀 안다는 축으로 평가 받았고 내가 고른 음반에 친구들의 반응은 '역시'였다. 더 신이나서 동네 방네 김광석 2집을 선물했다. 그리고 과방에서는 그의 첫번째 히트곡이라할 만한 '사랑했지만'을 기타를 치며 불러댔다. '사랑해에지..마....안.    그대를' 이 곡은 물론 내게 좌절을 안겨준 곡이기도 했다. 김광석 처럼 잘 안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잊혀지는 것'이 좋은 지도 모른다.더 문제는 우리 과에 지금은 연극 연출을 하는 한 선배가 있는데, 이 곡을 나보다 10배쯤은 잘 불렀다는 데 있다. 하여간 나는 나름 '김광석 전도사'로 맹렬히 활약했다. 하여간 조금 지나니까 모두들 김광석에 주목했다. (내가 열심히 뛰어서 그런건가? 아닐것이다. 그래서 내가 열심히 뛴 건 역사에 기록되지 못햇다.^^) 

1000회를 넘긴 학전의 콘서트에도 나는 세 번쯤 갔었다.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으나 학전 위에는 작은 커피샵이 있었다. 당시로서는 인테리어가 꽤 괜찮았다. 거기서 공연을 앞두고 있는 김광석을 흘깃 흘깃 보기도 했다. 쑥스러워서 싸인 같은 것은 부탁조차 하지 못했다. 언젠가 그가 <이등병의 편지>를 부르고 있는데 제일 앞 보조석에 앉은 여자 하나가 노래 하는 내내 울었다. 무슨 사연이 있나보다 하면서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래가 끝나자 김광석이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손수건....이거 라도 쓰세요. 괜찮아요. 좀 지저분하긴 해도...괜찮아요.자" 하며 사양하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건넸다. 그러면서 " 애인이 군대 가있나요. 하여간 전 좀 짧게 단기사병,6방으로 갔다 왔는데...요즘 30개월인가요.좀 줄었나요. 하여간 너무 길어요. 군대 간 사람도 그렇고, 기다리는 사람도 그렇고...그런 생이별이 없지요. 빨리 통일이되서 좀 ...." 이렇게 이야기했다.  

대중가요는 원래가 동새대와 호흡한다. 그렇기 때문에 60먹은 사람도 젊은 시절 듣던 노래를 들으면 지난 추억이 떠오르고, 70먹은 사람도 그렇고...내게는 김광석이 또 그렇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는 나의 20대의 시련과 좌절, 사랑과 배신, 고민과 탈출 속에 있었다. 학교 다니며 이런 모든 고민들을 기다려주던 곳은 술집이었다. 나는 저녁이 되기도 전에 혼자 술마시러 내려가기도 했다. 가끔은 6시쯤 들어오는 같은 과 친구들이나 선배들을 만나서 머쓱해지기도 했다."야..왜 혼자 와있어" 하여간 이 술집에서는 늘상 김광석 노래만 또 틀어놨다. 술집 형과 친했기 때문에 아무 때나 혼자 가서 술 먹어도 눈치를 주지 않는 그런 곳이었다. 가끔 청소도 해주고 심부름도 해주고. 이 양반은 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이 나오면 '야...거 봐라. 광석이도 그러지 않냐.' 라며 위로가 되지도 않는 말을 해 주었다.(사실 진짜 위로는 그 형과 그 술집이 그 때 그 자리에 있었던거였다. 그 형은 내가 대학을 1-2년뒤 가게를 정리했다. 가끔은 그가 보고 싶기도 하다. 무척이나 반겨줄 텐데) 재미난건, 내가 아내와 처음 만난 날 아내를 데리고 간 곳도 그 술집이고 그날도 김광석을 주구 장창 틀어댔다. 그 술집은 의자 하나 제대로된 세트가 없을 만큼-여기저기서 주워와서 그렇다- 후졌는데 아내는 그런 분위기를 무척 좋아해주었다. 언젠가 내게 "그날 그 술집에 가지 않았으면 아마 나랑 흐지부지되었을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인생 재밌는거는 그런거다. 사랑와 번민의 20대의 난망함을 소진하던 곳이 결국 희망의 싹도 키워준거..인생 참 재밌다.  

나는 김광석 노래 중에 <기대어 앉은 오후>를 좋아한다. 한 낮의 컴컴한한 이국의 단칸방, 열리지 않는 창문, 바람에 펄럭이는 하얀 빨래, 멀리 지붕 뒤로 보이는 작은 바다한 조각,낯선 언어들 속의 고립...중고 오디오에서 <기대어앉은 오후>를 좋아하게 된 건 그 때 기억때문이다. 다른 모든 것들이 움직이는데 나와 내 공간만 차갑게 동면하고 있었다. 김광석의 앨범 중에는 박기영이 피아노 반주한 곡과 기타로 연주한 버전이 각각 있는데 모두 마음에 든다. 

김광석이 죽던 날, 내 주변 사람들은 술을 마셨다. 김광석이 죽다니...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는 그 때 어땟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술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데....  

 그보다 더 많은 나이를 살고 있다는게 부끄럽지 않아야 할텐데...라는 생각을 해본다. 가끔은 그가 원망스럽다. 하지만 누가 그의 상처와 고민들을 알 수 있었겠는가.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나와 그는 분명히 만날 수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 인연의 촉수를 드리우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와의 작은 인연도 생겼을 것이다. 술잔을 기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기회마저 그의 이른 죽음이 앗아갔다. 그래서 살아생전 나는 그와 노래를 매개로 이야기를 나눌 수 밖에 없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내게는 고마운 일이다. 나의 20대는 그의 노래가 배경이 되지 않고 울린적이 단 한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삶을 깊은 우울로, 때로는 희망으로 채워주었던 광석이 형, 지난 힘든 시절, 형의 노래로 함께 그 시간을 견뎌올 수 있었던 것에 감사합니다. 먼 곳에서도 60이 되면 해보고 싶다던 오토바이 여행을 하시며 아름답고 자유로운 노래를 울리고 다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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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 리뷰에 <김광석 평전>에 대한 책이야기는 거의 없다. 김광석은 그렇게 동시대를 산 사람에게 항상 과거의 추억과 함께 오는 사람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김광석을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함께 부조된 시간을 그리워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의 노래는 늘 지난 시간 속에 고정된 풍경이다. 

  이 책은 연대기 순으로 김광석의 삶을 따라간다. 그러면서 각 앨범을 통해 그의 음악이 어떻게 성숙해나가는지를 그려낸다. 김광석 노래가 가진 힘'삶의 노래,소통의 노래'에 대해서도 구체화 해나간다. 무난한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한가지 크게 아쉬운 점은 이 평전이 그다지 '발로 뛴' 평전이 아니던가 아니면 그 흔적을 스스로 지운 것이다. 대개 인용되는 인터뷰들은 이미 많이 알려진 내용들이거나 신문,PC통신의 자료들이다. 그의 죽음과 관련된 미묘한 문제,유가족에 대한 배려 등등으로 작가가 더 이상 쓰지 못한 부분이 있음은 작가도 암시한다. 하지만 그런 내용을 떠나서 김광석의 주변인물들이나 동료들의 증언 등등이 그다지 충실하지 못하다는 인상이 강하다. 예를 들어 김광석이 자기 음악 인생에 큰 선생님이라고 했다는 김민기의 인터뷰도 하나 정도 들어있으며, 김창기나 안치환,강산에 등등 동료들의 인터뷰도 거의 실려 있지 않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발로 뛴' 평전을 처음부터 기획하지 못했다면 좀 아쉬운 부분이다. 작가 역시 이것이 '김광석 평전'의 시작이되길 바란다는 소망처럼 더 충분한 자료와 인터뷰들으로 그의 이야기가 다시 쓰여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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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설의 명창 임방울 - 고독한 광대의 생애 이상의 도서관 20
천이두 지음 / 한길사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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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궁시렁 궁시렁"쑤욱..대에...머리" 를 흥얼거리니 모두 <개그 콘서트>에 나온거라고 폴짝 거린다. 그 프로그램은 예전에 서너 번 본 적이 있었는데 당최 재미가 없어서 이후 절연하고 있다. 그런 반응을 보고 개그 소재로 "쑥대머리"를 이용했었나 보다하고 추측했다.  쑥대머리는 개콘, 개콘 은 쑥대머리...더질더질. 짖궃게도 질문을 하나 던진다. "쑥대머리가 무슨 뜻인지?"..조금 전까지 총기어렸던 눈빛과 전광석화같던 추임새는 백열등 전구 터지듯 펑하고 사라진다. 교실 앞에 나가 수학 문제를 풀라는 것도 아닌데 다들 머뭇 머뭇 멀뚱 멀뚱.. 천장에 만원짜리 붙었는가. 그래도 다행히 '쑥대머리' 가 판소리인 줄은 안다. 그래서 다음 질문을 하니 또 저 멀리 잔별도 많은 하늘에 오늘은 오버로드가 떳나보다. 오버로드 정찰 보낸 질문은 이거다. '쑥대머리는 판소리 어디 나오는 노래인지?' 
에이..때는 바야흐로 "오버로드 정찰 갔다 돌아온다 황급히 들어와서 정확히 두 시 방향 프로토스 발견했소" 하는 시대이니(한 때 유명했던 또랑광대의 판소리 스타크 사설이다.) 뉘를 탓하랴. 마침 2시 방향에서 저그들이 러쉬하니 지상병력을 모으러 다들 흩어진다. 더질더질

우리 시대의 판소리의 위상이 그렇다. 이건 현실이다. '우리 소리를 무시하지 마라.' 라고 각성의 소리를 외치는 것은 기실 아무 소용도 없다. 차라리 맥도날드가서 파전을 주시오라고 외치는게 더 빠를 지도 모른다. 결국 이건 계몽적 의지로 응혈되어 남아 도는 피를 쏟는-차라리 헌혈을 해라- 자기 만족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가 좋아하는 이 좋은 것을 몰라주는게 서럽다는 투정은 10대 후반쯤에 종료해야 한다. 예술에서도 그렇고 정치에서도 그렇다. 간혹 통속적인 예술 매니아,정치 애호가(?) 중에는 "진정을 몰라주는 대중"에 대한 원망을 여기 저기 섞곤한다. 그런 말을 오래 듣고 있다보면 진짜 지겹다.  한다는 소리를 단적으로 정리하면 '이 좋은 걸 몰라주는..', '그 정도 밖에 안되는 수준의..' 이기 때문이다.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런 푸념을 통해서 낮추는 건 '대중'이요 높이는 건 '자기'임을 자신은 모른다. 여기에는 은근한 엘리트 의식-각성된 자의-이 숨겨져 있다.  

  판소리 대목중 '쑥대머리'는 일제시대 명창 임방울의 트레이드 마크다. '쑥대머리는 개콘이 아니라 임방울'의 전매특허다. (판소리 용어로 '더늠'이라고 하면 될 성 싶다)   

쑥대머리 귀신형용(鬼神形容) 적막옥방(寂寞獄房) 찬 자리에 생각난 것이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漢陽郞君) 보고지고.
오리정(五里亭) 정별후(情別後)로 일장서(一張書)를 내가 못봤으니
부모봉양(父母奉養) 글공부에 저를이 없어서 이러난가.  

 <춘향가>의 옥장한탄 장면에 나오는 대목이다. 요즘은 따로 떼어 부르기도 하지만 완창 <춘향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아닌 경우도 있다. 다른 더늠을 넣는 넣는 것인데 그것은 판소리 창자의 특권이다. (<쑥대머리>의 내용분석은 정양 시인 <판소리 더늠의 시학>에 비교적 자세히 나와있다. 참고하면 좋을 듯 하다.) 하여간 임방울은 이 곡 하나로 1930년대 일약 판소리계의 스타가 되었다. 당대 SP음반사들이 서로 임방울을 불러서 녹음했다고 한다. 내가 가진 천이두 선생의 책 <천하명창 임방울>에는 '쑥대머리' 녹음이 3번으로 적혀 있다. 하지만 최근 자료를 보면 총 4회 각기 다른 레이블에서 녹음한 걸로 나온다. 판소리의 고음반자료들과 명창들의 흔적들이 재발굴되면서 이런 자료들은 수정되기 때문에 그리 흠잡을 필요는 없을 성 싶다. 

  임방울 선생과 사연 깊은 곡이 지난해 한 번 크게 울린적이 있다고 한다.(나는 현장에 가보지는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의 노제때 안숙선 명창이 임방울 작사 작곡의 <추억>을 불렀다는 것이다. <추억>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임방울의 여성 편력과 그의 따뜻한 마음, 그리고 음악적 표현력을 이야기할 때 꼭 언급되는 내용이다. 기생 산호주의 죽음을 애통하는 일종의 단가이다. 산호주는 임방울 선생의 소리에 반한 기생이다. 둘이 눈이 맞아 살다가 어느날 임선생 목소리가 망가진 걸 알고 독공하러 훌쩍 떠나버린다. 산호주는 임방울을 찾으러 가지만 냉정하게 거절당한다. 이후 젊은 나이에 산호주가 죽자 선생이 그녀를 애도하며 만든 곡이다. 가사의 내용이 망자에 대한 애통한 심정을 담고 있으니 추모곡이라 할 말 하다.  

내가 가진 책은 <천하명창 임방울>이다. 저자는 동일인이고 책의 소제목도 거의 대동소이하다. 천이두 선생은 이 책에서 임방울 선생의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이브라이드한 글쓰기를 선보이고 있다. 스스로도 일종의 에세이라고 칭하는것이 좋겠다고 말한다. 주가 되는 것은 일종의 평전 형식이다. 임방울 선생의 지인들로 부터 들은 이야기와 전설같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그의 삶을 한 편 한 편씩 소설형식으로 풀어나간다. 책의 첫 대목에 임방울의 국장과 광주 각설이들의 조문이야기도 일련의 에피소드에 소설적 상상력을 가미해서 서술한 대목이다. 그 외에도 공창식 명창으로 추정되는 스승으로부터의 수련 과정, 칼칼한 스승 유성준 명창으로부터의 배움과정 등은 모든 소설 형식으로 꾸려진다. <전설의 명창 임방울>을 알라딘의 미리보기로 읽어 보니 첫 장면에서 소설적 부분이 좀 더 보강된 듯하다. <천하명창 임방울>에 실린 에세이류의 글들이 <전설의 명창 임방울>에도 실려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어쨋든 내가 가진 책에는 소설류의 글 다음에는 판소리 에세이라고 할 만한 글들이 주로 실린다. 중심에는 임방울 선생의 소리와 관련된 것이지만 판소리 특성이나 전승과 관련된 글들이 주로 실려 있다. 그런 면에서 천이두 선생이 소설과 에세이를 결합한 방식은 임방울 선생의 일대기를 따라가면서 판소리를 둘러싼 전체적인 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어 임방울 선생이 동편의 소리와 서편의 소리를 동시에 배워 자신만의 독창적인 창법을 만들어 낸 것을 저자는 높이 평가한다. 이런 장면에서 동편과 서편의 전승계보 그리고 또 고제 판소리와 신제 판소리의 차이등을 송만갑,정정렬 명창들이 에피소드를 통해 비교한다. 또한 당대의 라이벌이라고 할 말한 명창 김연수와의 대립구도를 통해 임방울의 장단점을 엿볼 수 있게도 한다. 니체식으로 말하자면 김연수는 아폴론적이고 임방울은 디오니소스적이다. 김연수는 판소리 오마당을 정리하여 자신만의 동초제를 만든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한다. 판소리의 현대화라고 할 만한-저자는 좀 부정적이지만-창극 운동에서도 정정렬 명창의 뒤를 잇는다. 임방울은 이와는 완전히 반대다. 창극을 싫어했고, 제자를 남기지도 못했다. 소리만큼은 당대 최고였지만 김연수처럼 완벽한 발음을 전달하지도 못한다. 김연수 명창의 음반을 들을때 무언가 명쾌한 느낌이 드는 것은 그의 발음에 대한 강조때문이기도 하고 합리적인 이면론에 기인하기도 한다. 하여간 이 둘은 여러모로 달랐으나 판소리계에서 각각 존경을 받을 위업을 성취한 사람들이다. 

 임방울 명창의 소리는 왜 그렇게 인기가 있었을까? 요즘들어 봐도 임방울의 목소리는 매력적이다. 다만 음반취입을 꺼린 그이기에 녹음도 별로 없고 있다한들 음질이 열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방울의 소리는 다른 명창들이 갖지 못한 그만의 독특한 개성이 있다. 명창 강도근 선생은 임방울선생의 청을 '찬물 날아가는 소리'라고 했다. 마음에 드는 비유다. 특유의 청구성에 수리성을 얹은 소리로 당대 대중들의 폐부를 찌른 것이다. 여기에는 임방울이 대중과 직접 소통할 수 밖에 없었던 사회적 상황이 있다. 임방울 선생의 따님이 했다는 말에 핵심이 있다. 요약하자면 '선배들이 누린 통정이니 대부니 하는 이름도, 정부의 비호 아래 겨우 숨이라도 쉴수 있게된 인간문화재라는 칭호도 얻지 못한 가객' 이라는 것이다. 임방울 명창은 '일제시대부터 한국전쟁 전후'까지 한국현대사의 가장 어두운 비극 시대를 민중과 함께 겪어온 사람이었다. 그가 기댈 수 있는 청중이란 것은 선배들처럼 '양반들'도 아니었고,또 후배들처럼 '정부'나 '일부 애호가들'도 아니었다. 전근대와 근대의 이행기 속에서 그는 망국의 한을 가진 민중들을 토대로 그들과 함께 울고 노래할 수 밖에 없었다. 판소리 사회사에서는  이 시대와 관련하여 '판소리 계면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점을 비판적으로 지적한다. 아무래도 앞서 말한 역사적 한이 청중들의 기호와 소리에 반영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기에 임방울이 큰 몫을 차지했다는 것도 그릇된 말은 아니다. 하지만 천이두 선생은 그것을 '민중성'과의 결합이라는 판소리 본연의 정신과 연결시킨다. 또한 임방울의 소리는 통속적 계면화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면의 예술성을 극대화시켜 판소리에서 저어하는 노랑목의 위험성을 건너고 있다고 말한다.     

 거친 시대,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다간 명창 임방울.  엉뚱한 상상을 한다. 온갖 부귀와 미녀들이 있는 옥황상제의 궁전 '광한천허부'에서 탈출하려고 눈을 쫑끗 뜨고 있는 임방울 말이다. 그의 소리를 사랑한 옥황상제가 그를 계속 옆에 두려고 하고, 그는 자기 소리를 사랑하는 민초들과 여염집의 자유로움으로 달아나려 실강이하고...더질더질

** 내가 리뷰를 쓴 책은 정확히 말하자면 현대문학에서 나온 천이두의 <천하명창 임방울>이다.그러나 현재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책<전설의 명창,임방울>이며 앞선 책의 개정,증보판 인 듯 하다.

**임방울 명창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이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www.imbangul.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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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 대한민국 보고보고 시리즈 1
배연형.서희원 지음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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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다. 물에 가라 앉은 고향 마을의 돌담길을 따라가는 듯한 여행이다.  

여행은 장소의 이동이다. 그런데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는- 제법 거대한 제목의-시간의 역행이다. 몸집으로 뱉어낸 거미줄을 다시 삼키는 거미처럼. 되감기하는 릴테이프의 회전처럼. 소리길을 찾아 나선 여행에서는 공간의 수평선과 시간의 수직선이 교직된다.  

길을 나서자. 

<한국의 소리,세상을 깨우다>의 여정은 서울에서 시작된다. '대한제국 대황제 보령망육순 어극 사십년 칭경기념비'...서울 살면서 광화문 근처를 자주 다녔지만 비각에 눈길을 준 적 없었다. '교보 앞에 무슨 비각이 하나 있었다. 그 정도.' 도로원표...얼핏 본 것 같기도 하다. '광무대'....동대문 근처였다구?

여행은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1900년대 초반 세워진 협률사,원각사,광무대 등 근대식 극장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이 길은 100년이 지난 현재의 서울에서 끝난다. 추측컨데 지금 우리 소리가 나아가야 할 바를 '온고지신'의 역사를 통해 이해하고 새로운 각성을 갖자는 것이 여행의 목적인 듯 싶다. 

 소리길은 남쪽을 향한다. 한반도를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여행 경로의 방향을 생각하며 잠시 개인적으로 재미있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소위 전국 여행이라고 할 만한 기행을 살 면서 두 번 했는데 모두 시계방향으로 돌았다. 육상 트랙을 돌아도 시계반대 방향으로 도는 데, 왜 나는 그 반대로 햇을까? 초등학교 5학년때 처음 본 동해 바다의 수평선의 파란 강렬함이 끌어 들이는 힘 때문이었을까? 하여간 다음 번 여행은 꼭 시계 반대방향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문득 했다. 

이 여행은 사당패의 본거지 안성부터 시작해서 충남 서천-논산-익산-전주- 고창 -담양 이런 식으로 나아간다. 여행 길라잡이의 면면을 살펴보면 이번 여행에서 특히 살펴보고자 하는 지점을 파악할 수 있다. 저자 배연형 선생은 고음반연구회 활동이나 방송진행 경력 등으로 판소리계에서는 나름 이름이 알려진 분이다. 노재명,정창관, 최동현 선생들과 함께 판소리 대중들에게는 음반 해설이나 판소리 관련 글들을 통해 익숙한 이름이다. 이 분들과 함께 판소리의 대중화에 주력하고 계신 분이다. 그러니까 이 책은 우리 소리기행을 전반적으로 담아내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핵심은 조선 성악의 최고 예술이었다는 '판소리'에 집중되어 있다는 말을 하려는 것이다.책의 분량으로 보더라도 4개의 챕터중 2개 부분이 '판소리기행'이다. 

그렇다면 이제 여행 가이드 배연형 선생을 따라 본격적으로 소리 기행 중 특히 판소리 여행을 떠나야 할 때다. 안성 청룡사를 떠나면 본격적인 판소리 이야기가 시작된다. 판소리 관련된 2-4장의 첫번째 소제목과 마지막 소제목을 보자. 여행의 하이라이트 부분인 셈이다.  '중고제의 끝자락 ,거장 이동백' 부터 시작된다. 그리고 '현대 국악의 중심, 보성소리와 창극'으로 판소리 이야기가 끝난다. 공간적으로 보면 충청남도 서천군 장항읍에서 시작해서 전남 보성군과 고흥군 거금도에 해당한다.(거금도에서 조금 오른쪽으로 가면 나로호를 발사한 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이다.) 이렇게 여정을 잡은데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 여행의 출발이 서울에서 시작해서 남하하여 다시 서울로 끝나는 것도 사실 중의적인 의미를 갖는다.단지 저자가 서울에 살아서 그런 것 만은 아니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도록 하자.  

둘러볼 여행지는 모두 판소리 명창들의 고향이거나 활동 무대들이다. 그곳에 무슨 화려한 유적지 같은 것은 없다. 박물관이나 동상 정도 만나면 다행이다. 하지만 발걸음 마다 '오리정의 이별'을 앞두고 울부짖는 춘향이의 설움과 '상좌 다툼'을 하는 민화 속 동물들의 웃음이 묻어 있다. 여기 등장하는 명창들의 면면을 살펴보자. 서천 장항의 이동백, 김창룡 명창, 판소리의 중시조 송흥록 명창, 30년 앞을 보고 판소리를 했다는 익산의 정정렬 명창, 최초의 판소리 이론가라 할만한 고창의 동리 신재효 선생, 순창의 김세종 명창, 장판개명창, 서편제의 시조 박유전 명창, 최초의 여성 판소리 스타 이화중선 명창, 쑥대머리의 임방울 명창, 구례의 유성준,박봉술 명창, 보성소리의 정응민 명창, 창극의 개척자 김연수 명창.....그 외에도 소리의 사숙 관계를 통해 수많은 명창들의 이야기가 덩쿨칡처럼 얽혀있다. 

저자는 이제는 거의 남아있지도 않은 판소리의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개략적으로 판소리의 역사와 명창들의 계보를 정리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 책을 통해서 동편제,서편제,중고제의 계보와 판소리 다섯바탕의 전승 계보를 그릴 수는 없다. 하지만 딱딱하게 씌여질 수 있는 개론서들 대신 쉬엄 쉬엄 여행하는 기분으로 판소리 이야기와 명창들의 야화들을 섞어 들으며 판소리와 친해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분명하다.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에 나오는 주요 지역들 중 이미 가 본 곳들도 꽤 있다.그렇지만 나 역시 판소리에 관심을 갖기 전까진 하나 같이 그냥 스쳐 지나쳤다. 5-6년전에 보성 차밭에 갔더니 한복을 아름답게 차려입은 여인이 소리를 하고 있었다. 그때도 '아..보성. 차말고도 판소리도 유명하지' 하면서 그냥 지나쳤다. 그랬으니 정응민의 고택을 애써 찾을 일 만무하다. 낙안 읍성도 흥미롭게 돌아다녔지만 그곳이 송만갑,오태석 명창과 관련있는 전혀 알지 못했다.(아이가 크면 이 책에 나오는 것처럼 '전라도 소리 여행'을 한 번 꼭 해보고 싶다는 마음을 갖는다. 이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진도도 포함될 것이다.) 

판소리 명창들의 일화들과 야화들은 사실 이런 저런 판소리 책을 읽다보면 여러번 중복되는 내용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장소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풀려나오니 현장감이 높다는 것이 장점이 될 터이다. 여기서는 그 구구절절한 이야기들을 다 언급하지는 않겠다. 과거 명창들의 소리는 대략 저작권도 만료되었을 테니 조금만 공을 들이면 음반을 통하지 않고도 온라인 상에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한껏 소리를 잡아 올렸다 '턱'하고 내려놓는 이동백 명창의 소리나 과거 명창들의 더늠을 잘 흉내내었다는 김창룡 명창의 소리, 장자백, 이선유,이화중선 등등 그들의 소리를 들으며 이 여행의 발걸음을 따라 간다면 훨씬 좋을 듯 하다. 

자...앞에서 이야기한 배연형 선생이 '충남 서천부터 보성까지 판소리 여정'을 잡은 이유를 이야기할 때다. 그것은 '판소리 전파설'과 깊은 관련이 있다.(판소리를 들으시는 분들은 이미 눈치를 채셨을 것이다. 판소리 발생 논쟁은 이 책에 나오지 않는다.) 판소리는 19세기부터 20세기 초까지 전성기를 누린 음악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그 기원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다. 무가기원설, 설화기원설,광대소학지희설,육자배기토리설, 창우기원설 등등... 그런데 이중 핵심은 '무가기원설'이다. 주장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판소리에 있어서 창자들이 전문적인 집단이나 사람이었다는 점과 판소리의 시작이 시나위권 중에서 주로 전라도 지역이라는데는 어느 정도 의견의 일치를 보인다. 그런데 여기에 발생론의 기점에 대해 다른 이견이 '중고제 기원설' 또는 '경기충청 기원설'이다. 이 책의 저자 배연형이 바로 대표적인 주창자이다. <한국의 소리, 세상을 깨우다>의 구성이 남쪽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북쪽에서 출발해서 땅끝인 보성과 거금도에서 끝나는 것, 즉 남하하는 여행을 채택한 것, 이것은 판소리의 남하를 주장을 해온 저자의 판소리 전파론을 여행 여정에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이 여행의 여정이 저자가 주장하는 판소리의 진화 방식과 같기 때문이다. 

저자는 책 중반부에서 부터 주류의 '무가기원설'에 대해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다가, 중반부와 결말부에서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피력한다. 

흔히 동편제와 서편제의 경계선을 섬진강으로 보지만 그보다는 전라북도와 남도의 경계선에 해당하는 노령산맥을 기준으로 구분하는 편이 더 이해하기 쉽다. 요컨데 판소리는 경기와 충청에서 발생하여 점차 전라북도로,그리고 전라남도로 퍼져나갔다. p250 

그러니까 저자의 주장으로 보자면 판소리는 경기,충청의 중고제 소리(그 전에 고제 판소리가 있다) 가 전라북도 쪽으로 가서 동편제 소리가 되고, 이후 계면조와 기교를 더한 서편제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서편제 중에서 박유전으로 부터 정씨가문으로 계승된 보성소리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그 과정이 200년쯤 걸리게 되면서 맨 먼저 시작된 중고제는 전통이 끊기고, 송씨 가문의 동편제 소리도 송만갑을 경유하여 조금 변모하고, 주로 서편제와 보성소리가 현대 판소리의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는 경기 충청에서 시작해서 보성에서 판소리 기행을 끝맺는다. 그리고 이런 도정을 통해 남하한 판소리가 보성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와 주류가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해 말<판소리 100년의 타임캡슐>이라는 책을 통해서 방대한 실증적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했다고 하여 학계에 관심을 끌기도 했고,또 여전히 논란이 분분하다. 그러니까 <한국의 소리>이 책은 <판소리 100년의 타임캡슐>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나온 책인 셈이다.

그럼 과연 무엇이 판소리 기원론 또는 전파론의 정답이냐? 누가 알겠는가? 여하튼 그의 각고의 노력으로 판소리에 대한 연구의 폭이 넓어질 것 만은 사실일 듯 하다. 그러나 배연형 선생의 '경기충정지역 기원설'은 판소리계에서는 비주류적인 견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책에 나오는 설명만 믿고 어디 가서 '판소리는 경기충청에서 시작해서 내려간 거다.'라고 너무 당당하게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좀 갸우뚱 하거나 머뭇거릴 수 있다는 점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끄는 또 한가지 빠뜨리기 쉬운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명창들의 전신 사진들이다.  여러 판소리 책에서 만날 수 있는 사진이다. 명창들은 모두 한결 같은 포즈다. 그들은 모두 한시 한폭을 배경으로 하여 사진을 찍었다.그런데 이 사진을 찍은 사람에게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 관심을 사진사이다. 이 사진은 모두 벽소 이영민 선생이 찍은 것이다. 그는 전문사진사도 아니고-그 시대에 그런게 있었겠는가?- 판소리 명창도 아니다. 그는 일제시대 순천사람으로 우리 소리의 중요성을 알고 명창들의 사진뿐만이 아니라 그들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귀명창이다. 진정한 남도의 문화인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옥섭의 <노름마치>에도 보면 이영민 선생에 대한 이야기가 잠깐 나온다. 명창들 뒤에 있는 시는 바로 벽소 선생이 명창들의 소리를 평한 내용이다. 자존심 강한 당대의 명창들이  자신의 소리를 평가한 글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벽소 선생의 문장이나 공력이 명창들의 소리에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한자를 다 모르고 한문시를 제대로 독해하지 못해서 사진 속의 글을 제대로 읽을 수 없음이 무척 안타깝다. 이 책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벽소 선생의 이런 글이 쉽게 찾아진다.   

복사꽃 훈훈한 밤 봄성(春城)엔 달빛이 가득
버들 숲엔 안개끼고 누각엔 바람이 부네.
한 마디 맑은 노래 하늘은 강물결과 같은데
하늘음악(仙樂) 구름 중에서 울리는 듯 하여라  

                                         장흥 김녹주 명창에 대한 벽소 선생의 한시.

어차피 명창이 될 수는 없는 몸들이니 벽소 선생의 마음 자락 한 줌만 훔쳐도 즐거이 소리를 즐길 수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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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탄생 대우고전총서 21
프리드리히 니체 지음, 박찬국 옮김 / 아카넷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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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의 가슴을 펴라.활짝, 더 활짝! 그리고 그대들의 다리도 잊지마라! 그대들의 다리도 들어올려라,그대들 훌륭한 무용가들이여,그대들이 물구나무를 선다면 더욱 좋으련만!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4부

 니체의 초기저작인 <비극의 탄생>은 고전 그리스 비극의 탄생과 몰락에 대한 이야기이다. 물론 이 책이 그런 문헌학적인 가치만 있었다면 고전 목록표에 오르기 보다는 전문가들의 도록에나 올랐을 것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그리스 비극의 성격을 드러내면서 동시에 세계와 예술,그리고 예술을 이해하는 유력한 방식을 강력히 피력한다. 니체가 <비극의 탄생>에서 보여준 예술론과 개념적 용어들은 이 책이 씌여진지 100년이 넘은 시점메도 사람들의 귀를 현혹하고 아이디어 고갈에 시달리는 저널리스트들의 타자기 위에서 그럴싸한 문화기사의 머릿말을 위해 쓰여진다. <비극의 탄생>에 나와서 이제는 보편명사가 되어버린 개념어가 '디오니소스적 예술'과 '아폴론적 예술'이다. 니체가 그리스 비극의 계보를 따지면서 적용한 개념이다. 이 말의 상식적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분히 이항적인 분류법으로 구분하는 고등학교 참고서의 설명도 아직 기억이 난다. 실제로 그렇게 구분할 수있는 대목이 있긴 하지만 반드시 그런 것 만은 아니다. 오히려 니체가 강조하는 방점은 '상호보충적'인데 있다. 그런고로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을 대립적 개념으로 하나는 '감성 대 지성' 또는 '비조형대 조형' '직관 대 분석' 이런 식으로 나누어 보는 것의 유용성보다 이 둘을 썀쌍둥이로 보는 것이, 그 점을 강조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종합의 유용성은 여전하다. 현역에서 은퇴를 선언한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은 <그라모폰지>와의 인터뷰에서 훌륭한 모차르트 연주를 위한 방법으로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말하기와 노래하기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다."라고 말이다. 결국 애써 비유하자면 말하기란 아폴론의 것이고 노래하기란 디오니소스의 것이다. 이런 식으로 백여년이 지나도 니체식의 화법의 변용을 거쳐 여전히 유효하다.  

<비극의 탄생> 1장에 첫 문장은 그 중요성을 이렇게 말한다. 

"예술의 발전은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이중성과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사실은 생식이 지속적으로 투쟁하면서 단지 화합하는 남녀 양성에의존하는것과 유사하다."  <비극의 탄생>

 그런데 '나누기 좋아하는 '이성은 그런 과정을 철저히 몰이해한다. 니체의 용어로 이야기 하자면 그것은 아폴론적 인간의 것이 아니라 소크라테스적 인간이 벌인 일이다. 니체는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출현을 고대 그리스의 가장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는데, 그는 소크라테스적 인간을 이론적 인간이라고 칭한다. <비극의 탄생>은 물론이고 그 이후 벌어지는 근대/탈근대적 철학논쟁을 따라가다보면 니체의 '소크라테스적 인간', '이론적 인간'이 어떤 의미인지 조금 가닥이 잡힌다. 왜 니체가 포스트모던의 선구자로 불리는지 이해가 될 때 니체의 소크라테스적 인간의 의미가 명확해진다는 말이다. 하버마스가 '고대의 탐구 속에서 진리의 조각이나 찾아 해매는 인간들' 이라고 비난했던 자들의 첫번째 명단 속에 '니체'가 있다. 이런 비난의 무대 위에서 이야기하자면 계몽 이성의 강인한 신념, 니체의 용어를 빌자면 '이론적 낙관주의' 라고 할 만한 하버마스류가 '소크라테스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니체에게는 철학이나 학문을 성찰하고 넘어서는 심미적인 미학의 태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하버마스는 -쉽게 말하자면- '미학'을 모른다. 니체에 대한 미학적 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은-니체가 과연 전통적 의미의 미학자였는지에 대한 논쟁은 있지만- 철학의 하위 개념으로서 미학,또는 재현이나 모방으로서의 예술을 삶의 본질을 이해하는 중요한 위치까지 올린 것이다. 혹자는 철학에 대한 예술의 우월성을 주장했다고 보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것은 니체를 예술지상주의자,예술본질주의자 정도로 축소평가하려는 비판적 오용이 아닐까 싶다. 전체적인 맥락에서 철학의 시녀로 살던 예술을 동등한 위치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는 당연히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철학의 과잉기대를 줄이려는 것이 선구자의 방식들이기 때문이다. 어쨋거나 니체식으로 보자면  하버마스는 계몽 이성의 가능성을 위해 '세계를 인식 가능한 것' 으로 파악하고 이성을 통한 해결가능성을 낙관하는 자이다. 니체는 이런 전통의 기원에 소크라테스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실천적 염세주의에 반해서 소크라테스는 이론적 낙천주의의 원형이다. 그는 사물의 본성을 철저하게 규명할 수 있다고 믿으면서 지식과 인식에 만병통치약과 같은 효력이 있음을 인정하고 오류야말로 악 그 자체로서 파악한다. 저 근거들을 천착하고 가상과 오류에서 참된 인식을 분리해 내는 것이 소크라테스적 인간에게는 가장 고귀한 소명,유일하고 진정한 인간의 소명이라고 여겨졌다. 

물론 하버마스는 역으로'이성의 실천가능성'을 폄훼한 사람으로 니체를 지목한다. 이를 따라가면 결국 '포스트모던 논쟁의 전장'이 발견된다. 종군기자가 되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만 그것보다 여기서는 니체의 소크라테스가 다분히 허구적이라는 것에 대한 평가는 언급해야겠다. 즉 니체는 소크라테스라는 철학자 개인-도망가라는데도 약먹고 죽은 그 인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신화의 종언을 선언한 사람들로 소크라테스와 에우리피테스 등을 들고 있는 니체인데 사실 소크라테스의 책을 읽어본다면 그의 이성이라는 것이 결국 신적인 진리 앞에 복속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신과 신화를 결코 부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적 인간' 이라고 하는 것은 -적이라는 말에 주목해야한다.-'계몽이성적 인간의 출현' 이라는 은유적 해석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계몽의 변증법>에서 이런 출현을 호메로스의 오딧세우스까지 올려보내기도 한다. 사이렌 신화에서 욕망과 환상을 거부하고 이성으로 자기보존하려는 오딧세우스말이다.

앞선 <비극의 탄생>인용 문장에서도 '가상과 오류에 대한...'이라는 말이 언급되는데, 니체에게 '가상'은 중요한 개념이다. 쇼펜하우어의 '표상' 개념을 이용하는 것으로 그는 우리가 감각적으로 경험하는 세계는 세계 자체가 아니라 세계의 현상이라고 보았다. 이런 개념을 니체에게로 끌어오면 예술은 '이중으로 매개된 가상' 즉 '가상의 가상'이 된다. 그 단초를 보여주는 문장이 이것이다.

"인간은 꿈의 세계를 산출한다는 점에서 완전한 예술가이다."  <비극의 탄생> 

  니체에에게 예술을 창조하는 두가지 기원은 '꿈과 도취'이다. 전자가 바로 아폴론의 기저가 되고 후자가 디오니소스의 것이다.고대 그리스인들은 그런 꿈의 세계에서 아름다운 가상을 구현하는데-그것이 바로 그리스의 신들이다- 이것이 조형예술의 전제가 된다. 그런데 이와 함께 현상의 인식이 무너질때 생기는 '전율'이라는 요소가 있다. 이것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본질인 '도취'이다. 예술 형식으로 구분하자면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음악'이다. 니체에게 세계의 심연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술이고 그리고 예술의 본체는 바로 '음악'이다. (불행하게도 그 음악이란 것이 문화산업이 만들어낸 소녀시대나 빅뱅이 아니라는 점...왜 음악이 다른 예술 장르들 중에서 가장 비모방적이며 본질적인 지는 미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이 필요하다.  이것이 음악이 다른 장르에 비해 니체처럼 본질적이다라는 뜻으로 이해될 필요는 없어도 최소한 차별적인 특수성이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세계는 그렇게 '아폴론적인 것' 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그리고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혼합'을 통해 표상된다. 니체가 그리스 비극의 탄생에 독특한 해석을 가한것은 이 혼합의 결과물이 바로 '그리스 비극'이기 때문이다. 그리스인들은 최초의 혼돈시기-거인족과 신들의 전쟁인 티타노마키아부터- 아폴론적 중간계를 통해 혼동의 끔직함을 피했다. 그렇지만 이후에 디오니소스의 침입을 받았을때 그들은 순치라는 방식으로 디오니소스를 파괴하지 않고 체제 내에 포섭한다. 니체가 그리스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화해'라고 불렀던 것이다. 니체는 그리스인들이 고뇌에 대한 민감성과 그들의 뛰어남으로 인해 세계의 본질을,심연을 이해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그들은 절망하고 좌절하고 포기했을까? 그렇지 않다. 그리스인은 명랑하다. 그런데 니체가 말하는 명랑성은 사계절이 봄이어서 생기는 그런 명랑성이 아니다. 니체의 '그리스적 명랑성'은 겨울-봄을 이해하고 그 몰락과 창조의 원리는 체화해낸 자들의 명랑성이다. 그리스인들은 그들의 이런 '실천적 허무주의'를  아폴론적인 형상으로-즉 무대 언어로- 상연하게 된다. 그리스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구도 하에서 보자면 비극의 출발점과 핵심이 무엇인지 명확해진다. 그것은 디오니소스적인 것이다. 하지만 이 광기-축제의 심연을 직접 바라볼 수 있는가? 니체는 그럴 수 없다고 본다. 그리스인들이 아폴론적 형상을 이용하여 마치 비극의 중심에 아폴론적인 것이 있고 그것이 중심이며 기원으로 생각케 한다는 것이다. (태양을 맨눈으로 직접 바라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므로 니체에게 실연으로서 그리스 비극에서 중심 모티브는 연기나 대사가 아니라 음악이며 그 음악이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실체이다. 음악은 마치 숨어 있는 배경처럼 느껴지지만 종국에가서 아폴론적인 것의 한계를 넘는 의미를 전달한다. 

음악은 세계의 본래적인 이념이며 연극은 이 이념의 반영,즉 그것의 개별화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다. ... ... ... 비극에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 사이의 난해한 관계는 진정 두 신의 형제결의라는 것으로 상징될 수 있을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의 언어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가서는 아폴론이 디오니소스의 말을 한다. 이와 함께 비극과 예술 일반이 최고의 목표가 달성된 것이다. <비극의 탄생>

물론 니체이 '예술-형이상학'은 니체 후기에 자기에 의해서 부정되고 한계가 지적되기도 한다. 니체가 독일문화 중흥의 기대로 그리스 비극의 적자로 이해한 바그너에 대해 <비극의 탄생>의 재서문인 <자기비판의 시도>에서 바그너를 폐기했듯이 말이다. 

우리는 음악이 직접 내면에 말을 걸며 내면으로부터 나오는 것이라고 착각한다. 음악은 의지에 대해서도 사물들 자체에 대해서도 말하지 않는다.그런 것은 내면적인 삶의 전영역을 음악의 상징성이 지배한 시대에에 비로서 지성이 꿈꿀 수 있었떤 것이다. 지성 자체가 이런한 의미심장함을 음향 속에 집어넣었던것이다.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1권 

앞서 언급했듯이 비극은 그렇게 시작해서 소크라테스적 인간들의 출현으로 몰락한다. 비극의 계보 속에서는 에우리피데스에 있어서 신화의 해체와 낙관주의가 드러난다는게 니체의 설명이다. 그는 근대의 전형을 형성한 '이성중심주의의 낙관성'을 '알렉산드리아 명랑성'이라고 칭한다. 그에 따르면 근대인들은 모두 알렉산드리아적 명랑성의 그물망 속에 놓여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이런 그물망을 깨기 위해 니체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비극의 탄생>에서는 종교개혁,바그너로 상징되는 독일문화의 깨어남을 요구하고 있는데-그런면에서 니체는 반계몽주의자였지만 문화적으로는 다시 계몽의 영역으로 들어간다- 좀 더 보편적 문장을 찾자면 이것이될 터이다. <비극의 탄생>에서 인기있는 말 중에 하나이다. 

"삶과 세계는 미학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된다" <비극의 탄생> 

문장은 짧지만 그 의미를 이해하기란 그다지 쉬운 말은 아니다. 수많은 해석이 가능할터인데,최소한 탈근대론 언저리에 있는 학자들은 '미학'과 '삶'의 연동에 관심이 높다. 푸코같은 이들이 "당신의 삶이 예술이 되게 하라." 라고 말했다면 그런 의미였을 것이다. 니체는 그리스인들인 추악함과 부조화마저도 예술적 유희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디오니소스적인 것이 직접적 파악될 수 있는 것이며, 이는 음악에서의 불협화음의 방식과 유사하다는 점을 말한다. 니체는 바그너의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언급한다. 어떤 의미에서 니체와 여러모로 유사한 아도르노는 쇤베르크에서 예술의 회생가능성, 세계를 버틸수 있는 힘을 찾았다. (내가 아직 쇤베르크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여러번 이야기했다.) 협화음의 세상-즉 이론적 낙관주의의 세상-에서는 디오니소스적 밤와 세계와 어둠의 세계가 움을 틀 자리가 없다. 그렇지만 니체에겐 이런 '몰락'의 이미지와 변화의 힘들이 모든 창조의 근원이다. 이런 불협화음의 이미지가 디오니소스적 음악의 한 모습이다.

"그대들은 나처럼 존재하라! 현상의 끊임없는 변천 속에서 영원히 창조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생존하도록 영원히 강제하며,현상의 이러한 변천에 영원히 만족하는 근원적인 어머니인 나를!" 

디오니소소의 신화중에 하나는 디오니소스가 여덟조각으로 찟겨졌다가 다시 사는 영원한 창조성의 상징으로 그려진다. 창조와 쾌락과 생산의 신...디오니소스. vivo ergo cogito ! (나는 살아있다.고로 생각한다.) 사실 니체의 <비극의 탄생>에서 중요한 것은 니체가 그리스 비극의 문헌학적 고증을 얼마나 철저히 해냈는가가 아니다. 니체의 최초 작품으로 그가 이후에 도달하는 철학적 세계의 맹아들이 <비극의 탄생>에 숨어있다는 점이다. 대략 니체사상을 요약하는 말이 '영원회귀','초인',' 디오니소스' 뭐 이런 것들인데....<비극의 탄생>을 눈여겨 보면 봄철 들판에서 보는 민들레처럼 그것들이 보인다.  

박찬국 역의 <비극의 탄생>은 역자해제가 60여페이지에 이른다. 주로 1,2장을 중심으로 '아폴론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 인 것의 개념과 비극의 탄생과 몰락을 둘러싼 대립물들을 비교적 친절하게 설명해놓고 있다. 따라서 과거 <비극의 탄생>을 읽었던 독자라면-최소한 <비극의 탄생> 재발견을 위함이 아니라면- 역자 해제만으로도 지난 기억을 되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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