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 기생뎐
이현수 지음 / 문학동네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신기생뎐>은 2006년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까지 올랐다.그러나 상을 받지는 못했다.문학상이란 것이 그렇다.겉표지에 '00문학상 수상' 딱지를 하나 두르고 있으면 눈이 한번 더 간다.미스 코리아가 두른 어깨띠 마냥 '올해의 소설'띠를 두르면 그 아우라가 1년은 보장된다.한해가 지나가 또 다른 후보들이 신문 문화면을 채우면 고별 행진을 하며 스르르 기억에서 잊혀져간다.물론 아니라고 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아주 오래도록 문어다리보다 질기게 독자들의 입맛을 붇돋아주는 책들도 있다고 말이다.맞는 말이다.올해 동인문학상은 <틈새>라는 작품이 받았다.그럼 작년(2005년)에 무슨 책이 받았을까?....국내 문학을 내 몸처럼 아끼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한다.결국 보편적으로 말해 문학상의 유효기간은 1년이다.2007년 '이상문학상 수상집'이 나왔는데 2006년 수상집을 들고 다니면 왠지 뒤깍이 같아보이기 때문이다.

문학상 수상작품이 그럴진대 아무리 아까운 탈락이라지만 후보작을 오래 기억해주는 사람은 많지 않을것이다.하지만 <신기생뎐>은 오래 기억되었으면 좋겠다 싶은 작품이다.오히려 '2006 00상' 이라는 시간을 한정하는 딱지가 붙어 있지 않기에 더 긴시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한다.글의 처음을 문학상과 관련된 이야기로 풀어서 그렇지 사실 문학상이나 콩쿠르 우승이니 하는 것이 예술가치를 평가하는 절대적 기준은 아니다.어떤 유명한 사람이 그랬다나.."경쟁은 경마장에서 하는 것이지 예술 작품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라고.

이현수라는 작가의 작품은 <신기생뎐>이 처음이다.신문에 난 동인문학상 최종후보군을 보고 보관함에 넣어두었다.물론 다른 몇몇 작품들도 함께.그러다가 수상발표가 난 후에야 책을 주문했다.1등 먹은 책보다 떨어진 책에 더 눈이 간 것은 아무래도 삐딱한 우월감이던가 아니면 곧 잊혀질 책에 대한 연민같은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좀 더 그럴싸한 이유를 대자면 '소재'의 특이성이 마음에 들었다.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보이긴 하지만 '일상사'의 질곡에서 아직 헤어나지 못한 소설들에 좀 지루함을 느껴왔다.후일담과 일상의 미묘함의 한 시대를 건너더니 요즘은 가벼움을 동반한 일탈이 패권을 잡는듯하다.무식을 무기로한 일반적 편견일 것이다.어쨋건 나의 부족한 식견은 한국 문학을 그렇게 재단하고 있었다.그 와중에 만난 <신기생뎐>의 소재는 특이해보였다.

내가 아는 기생이라봐야 책이나 영화로 만난게 전부다.대개 조선시대 황진이의 선후배들이다.가끔 정치드라마를 보면 정치인이나 군부 인사들이 모종의 계획을 도모하기 위해 만나는 요정,그리고 그 종업원 기생 정도가 가장 최근에 간접적으로 만난 기생이다.소설 <신기생뎐> 역시 허구이다.하지만 왠지 인간극장을 보는 듯 하다.즉 소설적 리얼리즘이 돋보인다는 말이다.부용각에 모여든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딘지 모르게 한번쯤은소설이나 영화에서 만나봤음직한 내용들이다.상투적이라기 보다는 무언가 원형의 기억같은 것을 툭툭 건드린다는 느낌이 더욱 강하다.

오래된 소나무 향기를 내뿜은 부용각,어머니의 자궁처럼 낮은 사람들의 사연과 욕망,회한을 묵묵히 그러나 포근하게 안아준다.못난 나무가 산을 지킨다고 했던가. 옴팡진 눈에 박복한 생김의 타박네는 뒤틀려있어 위태로와보이면서도 수백년 절을 지켜온 일주문의 기둥처럼  등굽어가는 부용각을 건사해낸다.부엌에서 잔뼈가 굵은 그녀는 시장터에서 만나는 욕쟁이 할머니이다.그녀가 내뱉는 말들은 하나의 운율을 이루어 잘만들어진 요리처럼 맛갈나다.욕을 들으며 즐거워지는 것은 그 욕이 세월의 향기속에 숙성되기 때문이다.세속적이지만 약아 빠지지 않았다.실속을 챙기지만 남을 해하지 않는다.무뚝뚝하지만 숭늉같이 -그 말 밖에 없다-그냥 숭늉같은 의리와 인정이 있다.연꽃의 대궁처럼 텅비어가는 기생들을 바라보며 그 텅빈 마음을 채워주는 것이 부엌 흙냄새가 나는 타박네의 역할이다.타박네의 욕질과 적재적소의 옛스런 표현들은 <신기생뎐>의 비타민같다.몰락의 기운이 서려있는 기생들 속에서 그녀는 거울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햇빛과 같다.유려하게 흐르던 흐름은 타박네가 등장하는 순간 액센트를 받는다.셋 잇단음표가 되고 스타카토가 되어 소설의 스피드를 높인다.<신기생뎐>의 완급이 타박네의 말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이 재미있다.그리고 캐릭터를 보고 웃음을 띄는 순간, 소설속에서 튀어나와 '너는 뭐하는 종잔데...웃고 지랄이여' 라며 머리통을 칠 것 같은 등장인물의 생생함.작가 이현수의 은근한 공력이 느껴진다.

타박네가 소설의 한축을 이룬다고 하지만 <신기생뎐>의 주인공은 역시 기생들이다.이 소설에는 세 명의 기생이 등장한다.채련,오마담,미스 민.....채련과 오마담은 동기이고 미스 민은 차기 부용각의 기대주이다.이 세명은 각기 다른 시대를 살아 왔지만 기생이라는 이름으로 똑같은 한의 정서를 지닌다.그리고 셋은 변증법적으로 하나가 되기도 한다.뛰어난 춤솜씨로 촉망받던 채련은 사랑을 얻을 수 없는 처지를 비관하여 이른나이에세상을 접는다.모두를 사랑하지만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할 수 없는 잔인한 운명을 스스로 끊어버린 것이다.유명한 소리꾼도 고개를 떨구개 만든다는 오마담은 채련과는 다른 방법으로 그 운명과 대면한다.자기를 비우는 방법으로 소리를 지키고 부용각을 지킨다.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슬픔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다.수많은 남자들에게 몸을 주고 정을 주지만 늘 돌아오는 것은 배신일 뿐이다.오마담은 서운해하지 않는다.그녀는 기생의 삶이 몸에 배게한 허무의 정을 깊이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지는 벚꽃이 가는 봄을 원망하지 않듯이 대숲의 떠림을 간직한채 그녀는 기생의 운명을 따라간다.미스 민은 마지막 기생이라는 떨리는 감투를 써야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다.철길 옆의 가난은 그녀를 국악원 대신 기방으로 몰았다.오마담의 허무미와 다르게 그녀는 야망의 푸른빛이 서려있다.소설은 그녀의 기대와 다짐을 통해 사라져가는 문화공간으로서의 기방의 미래에 나지막한 희망을 싣는다.기생들의 캐릭터와 그녀들의 한을 풀어나가는 솜씨 역시 눈여겨볼만하다.특별한 세계를 살아온 그녀들의 이야기가 깨진 독에서 흘러내리는 달콤쌉싸름한 술처럼 흘러내린다.작가는 기생을 전통문화를 이어가는 예인으로서도 파악한다.물론 예인과 기생은 성과 속의 세계로 나뉘어 살고 그렇게 인정받고 있지만 말이다.오마담의 소리,채련이나 미스민의 춤 등 묘사하는 작가의 호흡과 표현력도 근래 소설에서 만날 수 없는 깊은 맛이 난다.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지 않은 문장들이 도처에 깔려있다

<신기생뎐>을 읽다가 책장 위에 꽂혀 있는 최명희의 <혼불>에 눈길이 갔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프레이야 2007-01-16 09:45   좋아요 0 | URL
님의 리뷰 멋집니다.^^

2007-01-24 10: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글샘 2007-01-24 12:24   좋아요 0 | URL
몇 번 씩 소리내서 읽어도 아깝잖은 문장들이 어떤 건지 한번 보고 싶군요. ^^
셋잇단음표와 스타카토... 요즘 피아노 배우다 보니 이런 거 힘들어요. ㅠㅠ 아직 건반 자리도 못찾아 뒤뚱거리면서도 멋지게 폼잡고 앉아서 우아한 선율을 연주해낼 날을 꿈꿉니다. ㅋㅋ 멋진 리뷰 잘 읽고 갑니다.^^

달팽이 2007-01-24 20:01   좋아요 0 | URL
리뷰가 너무 멋있어 책읽고 혹 실망할런지 모르지만...
일단 보관함으로 옮깁니다.
혼불은 마눌이 사둔것이 눈앞에 들어오는데...
아무래도 열권을 달아 읽을 공력이 딸리는지라...이 책을 먼저 주문해서 들어볼까...생각중..

드팀전 2007-01-25 14:07   좋아요 0 | URL
글샘님>좋아하실 겁니다.피아노는 저도 배우고 싶지만.지금은 좀 곤란.제가 피아노학원다닐때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는데...그게 늘 가슴의 한이되더군요.박철순이 피아노 건반보다 좋았습니다.
달팽이님>설마... 언감생심 졸렬한 리뷰가 어찌 책을 따라가겠습니까.재미있는 책이고 향기가 있습니다.사람들의 향기,세월의 향기 같은 것들...지난번 모임에서 사라져가는 것들에 관심이 있어서 사진을 찍으신다 하셨던 걸로 기억합니다.이 책이 딱 그러네요.사라져가는 기생들의 이야기니까...
혼불은 대학4학년때 읽었는데...좋았지요.8권인가쯤에는 사천왕상을 중심으로 한 권 통째로 불교문화에 대한 이야기만 있었던것 같아요.그때부터 사찰에 가면 그 의미를 알아보며 꼼꼼히 보기시작했지요.사찰 장식의 이해 같은류의 책들도 사보고..^^...혼불10권이 1부로 알았는데..그 이후 작가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멈춰선게 안타까왔습니다.최명희 작가는 모든 글을 육필로 썼다하더군요.원고지가 너덜 너덜한데 뒤에 첨가한 글을 메모지에 써서 본 원고에 붙였다더군요...혼불...그 책을 읽던 대학 시절을 생각하면 ...아련해지는게...마음 한 켠에 바람 한점 휭 지나갑니다.
 
타샤의 정원 - 버몬트 숲속에서 만난 비밀의 화원 타샤 튜더 캐주얼 에디션 2
타샤 튜더.토바 마틴 지음, 공경희 옮김 / 윌북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나의 정원은 아파트 발코니다.크고 작은 몇 몇 개의 화분이 나의 정원의 전부다.결혼 전 총각 때 키워온 화분 중에서 아직 건재한 녀석들도 있다.그러나 대개는 결혼 후 새로 들여다 놓은 녀석들이다.나의 화분 관리는 나의 인간관리만큼이나 즉흥적이다.평소에 별 관심을 두지 않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애정이 있는 척 바라본다.게을러야 잘 키울 수 있다는 화분들이야 나의 호들갑에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그러나 따뜻한 손길을 필요로 하는 녀석들은 무척이나 반갑게 나를 맞이 한다.이러한 '무신경과 과대관심의 반복'은 식물들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애정표현 방식이다.가끔은 와이프가 이미 물을 준 화분에 또 물을 주어서 아이들을 시들시들 하게 만들기도 한다.이 무지몽매한 애정표현으로 몇 몇 녀석은 이미 저 세상으로 보냈다.화분에서 앙상해져 버린 식물들을 걷어 낼 때는 마음이 아프다.화분을 정리하고 나면 곧 잊게될 죄책감도 느낀다.

요즘 집에 있는 화분 중에 요주의 대상은 '벤자민'이랑 '파키라'이다.신혼 초에 화원에서 사온 녀석들인데 최근 관리불량으로 상태가 좋지 못하다.요주의 대상목록에 올라와 있던 '고무나무'는 어젯 밤 마지막 잎을 떨구었다.고무나무의 주민등록은 말소 되었다.(고무나무의 명복을 빈다.못난 주인 만나서...ㅜㅜ) 비교적 키우기 쉬운 식물을 가져오지만 아파트에서 키우는 것은 쉽지 않다.단순히 물만 맞추어 준다고 잘 크는 것이 아니다.빛,토양,습도,환기 등등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 관리해야 될 것은 너무나 많다.결국 '식물우기'에는 아이를 돌보는 마음이 필요하다.

<타샤의 정원>의 주인공 타샤 할머니는 1년 내내 아이를 돌보듯이 그녀의 정원 속 자식들을 돌본다.봄이 늦은 버몬트의 숲 속에서 겨울나기는 그녀의 가장 큰 고민거리다.구근들이 눈 속에서 잘 견디는지 너무 많은 눈 때문에 뿌리가 썩어버리는 것은 아닌지...그녀는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기 위해 정성과 땀을 아끼지 않는다.그녀의 정원 속 자식들은 그녀의 애정에 대한 보답으로 봄부터 가을까지 동화 같은 풍경을 선보인다.아름다운 장미와 함박 웃음을 띤 백합,정원의 배경이 되는 옅은 붉은 빛의 돌능금나무.....모든 꽃과 나무들이 그녀의 땀을 먹고 조화롭게 자란다.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보고 있으면-비록 사진이지만-눈이 휘둥그레 해진다.자연이 만들어 놓은 멋진 색의 조합과 부드러운 붓터치에 눈이 큰 호사를 한다.

타샤 할머니의 정원가꾸기에서 가장 큰 감명을 받는 것은 그녀의 끝없는 호기심과 탐구정신이다.지금 타샤 할머니의 연세가 90임을 생각한다면 정말 본받고 싶은 삶의 태도이다.그녀는 동화 속 정원을 꾸리기 위해 해마다 예쁜 구근들과 씨앗들을 얻는다.그녀는 아름다운 것들을 얻기 위해 끈임없이 정보를 얻고 연구한다.그녀의 몸이 갸녈프지만 건강한 이유는 정원일의 노동때문이며 정신이 건강한 이유는 이러한 정열때문이다.그에 비하면 나의 화분가꾸기는 너무 건성이다.모든 일에는 '인과의 법칙'이 적용되는 법.논리적으로도 나의 화분들이 시들 시들해지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다시 한번 너무도 단순한 진리를 깨우친다.사랑은 세상의 모든 것을 키운다는 진리....

타샤 할머니의 정원을 보면서 상상 속으로 나의 정원을 그려본다.누구나 그런 꿈을 꿀테지만 나 역시 아파트살이를 마감하고 싶다.어렸을 때 살았던 마당이 있는 집같은 곳에서 살고 싶다.(어린 시절 우리집 화단에는 덩쿨 장미와 목련,홍매화가 아름다웠다.) 아파트는 집이 아니다.아파트는 사는 공간일 뿐 결코 집이 될 수 없다.집은 정서의 공간이며 기억의 공간이어야 한다.그런데 콘크리트 닭장 같은 아파트는 그런 향기를 머금을 수 없다.그저 포름알데히드나 시멘트 독같은 것이나 내뿜을 뿐이다.마당 있는 집에 사는 즐거운 상상을 해본다.타샤 할머니처럼 꽉 들어찬 정원을 꾸미고 싶진 않다.타샤 할머니의 정원은 유성페인트로 칠한 정원같다.아름답긴 하지만.그녀의 정원에는 너무 많은 꽃들과 나무들,풀들이 어우러져 있다.꽃잔치 속에 파묻히는 것도 좋겠지만 나는 조금 여백을 둔 정원을 만들고 싶다.우리나라의 수묵화가 그러하듯이 빈 공간이 보이는 그런 정원이 좀 더 여유로와 보일 듯 하다.마당이 조금 크다면 와이프가 좋아하는 느티나무를 심고 싶다.봄날의 반짝이는 잎새와 가을단풍이 예쁠것이다.여름철에 붉은 꽃이 예쁜 배롱나무도 여러 그루 심고 싶다.8월이 되면 뜨거운 햇살 아래서 붉은 빛이 더욱 선명해질 것이다.유실수도 몇 그루 심고 싶다.따먹지 않더라도 작은 나무에 몇 개의 사과,몇 개의 살구,몇 개의 감이 열리면 아이가 나무에 달려 있는 것처럼 귀여워 보일 것이다.연보랏빛 수국도 몇 그루 심어 놓고 싶으며 날렵하여 아름다 붓꽃도 가꾸고 싶다.담장 밑으로 부용꽃과 접시꽃도 심을 것이다.키작은 패랭이도 군데 군대 심어 놓으면 예쁠 것이다.

몸이 고될 것 같다.그러나 생각만해도 즐겁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글샘 2006-12-23 20:51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식물 키우기에는 아이 기르는 마음까지는 아니더라도 각별한 신경을 써야하죠. 그런데, 화분에 식물을 기르는 일은, 아이를 가둬키우는 것 만큼이나 식물에게 잔혹한 일이라 생각해요. 흙에 심어주면 식물은 어지간해선 안 죽거든요. 화분과 흙. 그것이 고아원과 부모 정도 차이가 아닐까 합니다.
연말연시 잘 보내시길~~~

ghwngo 2008-01-30 08:46   좋아요 0 | URL
하하, 고무나무의 주민등록이 말소되었다는 부분에서 웃음이 터졌습니다.
 
하얀 성
오르한 파묵 지음, 이난아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에게 별로 해 본 일이 없다.몇 년 전인가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꺼냈다가 '별 쓸데 없는 생각이나 하는 이상한 놈...하여간 웃기는 놈' 이라는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그들은 마치 전어 사이에 끼어 있는 광어를 보듯 나를 봤던 기억이 난다. 

거슬러 올라가자.짧은 머리를 왜 '스포츠'라고 하는 지 궁금했던 중학교 시절이다. 밤을 잊는 애들을 위해서 별이 빛나는 밤에도 술자리에 가지 못한 DJ들이 궁시렁 궁시렁거리는 라디오를 듣고 있었다.형광등에 불빛이 깜빡깜박이 듯......문득..... '나는 나인가? 내가 나 아닌 것 같은데' 라는 뺑덕어멈 인당수에 빠지는 생각이 떠올랐다.당시 생각은 바나나 밟은 자전거 마냥 갈피를 잃고 엉뚱한 방향으로 진화했다. 나는 현재 라디오 앞에 앉아 졸음 겨워 하는 내가 어느 상위 존재가 움직이는 꼭두각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그 상위 존재는 지구로 부터 수 천 광년 떨어진 어느 별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그 생물체가 지구인보다 고등존재인지는 중요치 않다.그 별은 지구와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거기에는 하위 존재인 나를 규정하는 나와 똑같이 생긴 '진짜 나'가 존재한다.그 우주 먼 곳의 '진짜 나'의 행동을 나는 그대로 따라하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그가 오른 팔을 뻗어 라디오 볼륨을 높이면 거의 시차를 두지 않고 지구에 있는 나 역시 오른 팔을 드는 것이다.실제 500광년의 시차가 있겠지만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어쩌면 이미 '진짜 나'는 죽어 있는지도 모른다.거기까지 생각하긴 싫었다.결국 나는 우주에 있는 '진짜 나'의 반대로 비춰 같은 모양이 된 거울의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당시 나는 나의 존재가 좀 부질없다고 느꼇으며 이것이 짧은 백일몽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공포스럽기도 했다.

 상상력이 빈곤한 주변의 모범적인(?) 사람들만 제외하면 이런 엉뚱한 생각은 나만의 것은 아니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주변에는 모범적인(?) 인류만 있는지 모르겠다.그나마 위안을 삼는 것은 그 인류들도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라는 가정이다.단지 기억의 저장탱크가 현저히 낙후되어 떠올리지 못하고 있거나 이제는 어른이 되었으니 그딴 강아지 풀뜯어 먹는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 않는 것이 어른스러움의 표시라고 믿는 것인지도 모른다.어쟀거나 이런 누구나 하는 희안한 상상을 한 사람은 고금의 역사를 모래알처럼 많았다.조금 더 나이를 들어 '호접몽'의 장자를 알게 되었을 때 나는 우주에 있는 '진짜 나'를 다시 한번 쯤 떠올렸다.장자는 내 엉뚱한 상상이 결코 비정상적인 정신건강을 뜻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해준 예였다.이미 수 천년 전에도 잠결에 '나비와 나'를 혼동했던 사람도 있었으니 말이다.


'나의 자아는 타인의 자아이다'라는 말을 들을 적이 있다.들뢰즈가 그랬던 것 같은데...라캉이었던 것 같다.잘기억나지 않는다.그는 '자아는 자신을 오인함으로써 성립한다'라고 했던 것 같다.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나는 해방감을 느꼇다.'자아찾기'가 생의 과제 인 것 처럼 받아 들여지던 청년기를 넘긴 시점이었다.흙벽에 막혀 있던 물꼬가 지난 밤의 비로 무심하게 넘는 것을 본 느낌이었다.하지만 함부로 이 느낌을 함부로 전달해서는 안된다는 것도 알았다.


비교적 최근일이다.젊은 여성의 자아찾기란 문제를 가지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어떤 여직원에게 이 말을 인용했다.'나의 자아는 타인의 자아이다.'라고 말이다.(내게 중요한 느낌의 말이었지만..결론적으로 나의 실수였다.) 한마디로 '쥐약 살짝 발라 드신 분' 취급당했다.그 친구의 말은 일목요연했다. '내가 내가 아니면 누구에요? 그럼 여기 있는 내가 다른 사람이란 말인가요? 하여간...@@님은 이상하다니까 특이해..(약간 경멸의 목소리를 담아서) ' 더 이상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나는 나도 잘 모르는 말을 순간적으로 꺼낸 것을 후회하면서 또한  '나는 어쩌면 나를 구성하는 조각들의 합이거나 조각들의 화학적 변용일지도 모르지 않나..그 조각들은 결국 타자의 다른 이름일 수도 있구...또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엇일 수도 있구..정말 내가 나일 수도 있지만 '혹시 내가 타인이 아닐까 ?' 생각해보는게 그렇게 치명적인 일일까' 정신병자 니체는 과감히 '주체는 허구이다'라고 약먹는 소리를 했는데.(하긴 그런 소리를 하니까 정신병원에 갔겠지.)


철학에 대해 그다지 깊지 못하다.근대철학의 기점을 대개 데카르트의 '고기토'에 둔다는게 정론인 듯 싶다.부정의 부정을 통해 '생각하는 존재'라는 마지막 추출물을 얻었다,그리고 이 데카르트의 생각은 근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여전히 지배적으로 작용한다.그래서 그런지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자아찾기'를 그 시기의 핵심과제인양 설명한다.'자아'를 찾아야 된다고 하면서 수행평가와 수능문제집만 펼쳐준다.데카르트의 문제는 '타자'에 있었다. '타자'라는 존재는 이 데카르트에 있어서는 배제되어 있는 듯하다.타자는 자기 존재의 대척점에 서있다.타자는 결국 자기 존재를 통해서만 재인식되는 영역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현대 철학의 어떤 분파는 타자론이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복원에 공력을 쏟는다.자기 존재의 필터링을 거치지 않는 타자의 존재는 사회적으로 타자화된 소수자 문제에 대한 관심으로도 발전하게 된다.(.(나는 철학이 전공이 아니기에 그저 상식 수준에서 기억나는 대로 말할 수 밖에 없다.더 공부 많이 한 분들이 더 공부 많이한 방식으로 이야기해주는 글들이 있으니 그게 도움이 될 듯하다)


더 복잡한 건 잘 모른다.그저 내가 찾고자 했던 '자아'가 어떻게 해도 나의 것에만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해하며 '자아찾기'의 덫에서 빠져나왔다는 것 밖에...또는 내가 찾는 자아라는 것이 내겐  유니크한 무엇인지 모르지만 사실 별개 아니라는 생각까지...어쨋거나 지금은 '나는 나'라는 방식의 차이짓기가 별 의미가 없다는 쪽일 뿐이다.(물론 '나는 나'이며 우주라고 주장해도 별로 할 말은 없다.)

 <하얀성>의 마지막 부분에 주인공을 찾은 방랑 노인 에블리야의 말은 이렇다.

(그는)우리는 이상하고 놀라운 것을 우리 마음속이 아니라 세상에서 찾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찾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해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하는 것은 우리를 불행하게 한다고 말했다.내 이야기 속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도 이것이라고 했다.'

호자가 찾고자 했던 '모든 것을 한순간에 바꾸어버릴 그 깊은 진실'은 찾을 수 없는 것일 지도 모른다.주인공 나는 그 하얀성을 보고 이렇게 생각했다. '어쩐지 나는 이렇게 아름답고 도달하지 못할 어떤 것은 단지 꿈에서만 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호자는 노예인 주인공을 알고 싶어한다.주인공이 가진 지식에 대한 전수에서 시작된 호자의 탐구는 한 인간의 존재-기억 자체에 대한 근원적 소유를 원하는 방향으로 진행된다.그들은 서로 대화를 하고 부끄러움을 나누고 두려움을 공유한다.이러한 탐구를 통해 호자가 얻고자 했던 것은 나를 포함한 존재의 근원적 진실이다.그러나 존재의 진실은  파디샤의 군대가 결코 넘어뜨릴 수 없었던 '하얀성'처럼 완벽한 접근을 거부한다.호자의 존재의 진실에 대한 강박은 사냥여행에서 극에 달한다.그는 마을의 모든 사람들에게 주인공을 만났을 때 처럼 질문을 한다.'부끄러움'에 대해 이야기하라고 말이다.극한 탐구는 죽음을 앞둔 이들에게 진실을 요구한다.그러나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존재의 근원이 기억과 습관을 바꾼다고 이루어진다고 생각되진 않는다.이 책은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며 이 글을 쓴 이가 호자인지 노예 주인공인지 모호하게 만들었다.이것에 집착하다 보면 안풀리는 퍼즐처럼 앞뒤를 맞추어보고 싶은 끝없는 욕구에 지치게 된다.그러나 나처럼 성의 없는 독자에겐 처음부터 그런 점은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소설은 일종의 '이중성 인격 ' '도플갱어' 식 캐릭터를 도입하고 있다.지킬과 하이드 처럼 동일 인물의 이중성과는 다르게 다른 인물의 동질화과정을 그린다.결국 동질화는 또다른 형태의 분화를 낳는 형식으로 소설은 발전한다.결말 부분에서 한번의 뒤틀림을 통해 주체와 대상을 모호하게 만들어 버린다.소설의 캐릭터들을 어떻게 보는냐에 따르 두가지 설정이 가능할 듯 하다.하나는 '호자'와 '나'를 비슷하게 변해 가는 다른 인물로 보는 방식이다.또 다른 하나는 소설 속 '나' 또는  '호자' 라는 인물 내부의 충돌로 보는 것이다.물론 텍스트를 꼼꼼히 분석하면 어느 설정이 설득력이 있는지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내가 무슨 비평가도 아니니 그렇게까지 수고할 필요는 없을 성 싶다.단지 소설을 본 독자의 또다른 상상을 통해 가능한 일을 이야기 하는 것일 뿐이다.작가가 불쾌하다고 내게 메일을 날리지만 않는다면-설령 날린다 하더라도-책을 읽고 상상하는 것은 독자의 고유 권한이기 때문이다.모든 것이 호자(또는 나)의 상상이 만들어낸 즐거운 이야기라면 주체/타자는 동일 인물 안에서 서로 대화하고 갈등하는 형상이 된다.재미있는 것은 이렇게 본다면 주체 내부에서의 권력관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호자와 나 사이에는 분명히 주인과 노예라는 외부적 권력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그러나 그 권력은 결코 일방적일 수는 없는 것이다.노예의 자아는 지속적으로 주인의 자아를 비웃고 시비걸고 그 밑바닥을 드러내도록 독려한다.자아를 인격화한 우를 범하고 있긴 하지만 자아 내부에서 발생하는 -외부와 절연된-권력관계가 있을까 하는 또다른 엉뚱한 상상을 해보게 된다.

오르한 파묵이 가진 지역적 특이성이 이 책을 '동서양의 문화적 충돌'이라는 사회적 측면으로도 읽게 한다.즉 노예로 상징되는 서양/호자로 대표되는 동양.....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교류하는 것.결국에는 구분이 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 서로의 세계 속에 동화되어 가는 것.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사회적인 문제보다는 자아/타아론적 관점에 더 마음이 끌렸다.물론 터키 작가가 가진 사회적 환경이 자아/타자의 문제에 더 천착할 수 있게 만든 토양이 되었음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에 올라 익히 이름을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야 파묵을 접했다.터키 이스탄불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언제쯤 가능할 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사람들은 언제나 그게 '마지막'인지 알지 못한다.

78년 첫 겨울 밤이었다.나는 아이였다.수확이 끝난 포도밭 길을 아버지와 걷고 있었다.신년 영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가끔 씩 켜져 있던 가로등이 훈훈하게 느껴졌다.새 해 첫날,나는 아버지께 그런 질문을 했다.

 "아빠 그럼 이제 77년은 다시는 안 오는 거야? " 아버지는 대답하셨다."그렇지.어제까지 77년은 끝났고 이제 78년이 된 거야.앞으로도 77년은 다신 오지 않아.우리 준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고 또 죽게되고..그래도 다시는 77년은 오지 않는단다.시간은 그런 거야.."

나는 거의 울 뻔 했다.그 때 까지  내게 시간은 하루 단위의 개념이었다.햇살이 비치고 그림자가 짙어지는 날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어제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77년이 마치 피붙이처럼 느껴졌다.'어떻게 한 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바늘 구멍 만큼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시간의 비정함에 몸서리가 쳐졌다.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의 일회성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우리들의 시간은 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나를 늘 두렵게 한다.다시는 오지 않는 '마지막'.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지난 후에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나 잠언서에 나오는 '언제나 마지막 날 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 '마지막'이 자기에게 어떻게 다가 오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거역할 수 없는 불행은 정전처럼 다가온다.'라고..어느 누구도 정전을 예상하지 않는다.심지어 한국 전력 공사 직원들 마저도.평온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수 십장의 리포트를 타이핑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키득이고 있다가.....불행은 '정전'처럼 순식간에 다가와서 빛을 암흑으로 바꾸어 놓는다.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을 제시한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 있다.

우리는 이미지화된 죽음에 너무 익숙하다. TV를 켜면 사건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매일 몇 명씩 있다.그들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그저 '저런 일이 다 있네' '안됐다.'라고 잠깐 신경을 쓰고 잊어버린다.그러나 불행의 뒷자리에 동석해서 사랑하는 사람들 보내야 하는 가족들에겐 참으로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이 기다리고 있다.그들에게 '마지막'은 예고 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자상한 아버지를 잃는다.아이는 아버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남긴 전화 메시지를 혼자 간직하고 있다.오스카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소년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그러면서 뉴욕에 살고 있는 무언가를 잃었음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소년은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아버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또 하나의 축은 오스카의 조부모들의 이야기이다.때는 2번째 세계 대전,오스카의 조부모들은 드레스덴에 살고 있었다.그들은 사춘기를 지난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할머니의 언니 애니와 사랑하는 사이였다.어느 밤,하늘을 덮은 비행기들은 수많은 폭탄을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이 잉태하고 있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를 잃는다.그의 시간은 거기서 정지해 버린다.그는 시간과 함께 말을 잃는다.드레스덴을 피해 건너온 미국 땅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동생을 만나고 그들은 존재와 무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랑을 나눈다.하지만 할아버지 토마스에게는 상실의 아픔이 그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상실과 슬픔,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사람들은 슬픔을 겪게 될 때 주로 소통을 단절시킨다.세상과의 대화를 멈춘다.그의 슬픔은 그를 압도하기 때문에 세상과의 벽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높아진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실어증을 겪음으로서 그의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낀다.그는 과거의 아픔에 묶여서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는 사람이 돼어 버린 것이다.새로 태어난 아기와 그를 기다리는 여인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그는 부치치 못하는 편지를 통해 그가 버리고 온 세계에 대한 죄책감을 전한다.그의 편지는 소리 없는 글자가 되어 그와 같은 이름을 쓴 아들과 함께 잠든다.

소설은 상실의 아픔이 서로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인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작가는 소설의 구성을 겹꽃의 꽃잎 처럼 만들어 놓으므로써 소설 말미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치 않는다.소설의 각 장은 분절된 듯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가끔 소설의 화자가 누군지,앞의 장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뒤적여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집중력이 좋은 독자라면 나 같은 혼란을 겪지는 않을것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이나 형식적 실험들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실험들을 구경하며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잠시 쉬어가는 효과를 준다.'이게 뭘 의미할까? ' 잠시 퍼즐 조각을 쳐다 보는 느낌으로 보면 충분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이나 9.11 테러 당시 트윈빌딩에 갇혀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사실적이다.마치 눈 앞으로 공포의 현장을 끌어다 놓은 듯 하다.엄청난 폭발음과 정신을 놓게 만드는 굉음,흔들림,죽음의 사선에 한 발 걸친 생명의 두려움.그리고 그 순간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과 소설 끝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메시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그리고 집에서 가을햇볕을 받으며 아기와 브람스를 들으니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문자를 남긴 아내가 생각이 났다.또한 냉랭한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술자리에서 '확 전쟁이나 한번 나서 뒤집어져라.' 하는 주정섞인 목소리도 떠올랐다.그리고 또 한 목소리....

 몇 달 전에 목격했던 교통사고 장면이 떠올랐다.고속도로의 난간을 들이 박고 코란도 승합차는 종잇장이 되었다.119 구조대가 절단기로 문을 열고 피투성이가 된 운전자를 꺼냈다.승합차 안에는 널부러진 CD와 가족사진인 듯 보이는 작은 액자..... 어찌 어찌하여 차에 적힌 집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내게 운전자의 인상 착의를 확인하던 어느 중년 여인의 울먹이는 목소리.어머니인 듯 했다...맞는 것 같다는 대답에 전화기 넘어 커지는 흐느낌....

며칠 후 그 운전자는 죽었다. 저녁때 보자며 현관에서 손을 흔들었던게 그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아무도 그게 '마지막'인지 몰랐을것이다.그에게 어린 아이가 있었겠지.그 아이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에 될까?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을텐데...아빠 없이 자라며 외롭지는 않을까? 엄마가 재혼을 한다고 마음속에 상처를 받진 않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가고 졸업하고 그랬을텐데..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죽음을 나의 아내에게 알리게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슬픈일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마지막'을 알 지 못한다.설령 지금이 '마지막'일 지라도 우리는 빌어먹는 강아지처럼 운명 앞에 눈만 멀뚱 멀뚱  뜨고 있을 뿐이다.책은 너무나 진부하여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맺는다.'지금 사랑하라.'고..어린 아이들에게 포획된 메뚜기처럼 운명의 장난을 거역치 못하는 인간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부디 아이들의 주먹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그리고 사랑하는 일. 

나는 오늘 집에 한 다발의 꽃을 사들고 들어갈 것이다.그리고 아가와 아내를 꼭 안으며 '사랑한다'라고 말할 것이다.


댓글(14) 먼댓글(0) 좋아요(2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멜기세덱 2006-11-24 19:24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우수리뷰 당당 1등하셨네요..ㅎㅎ 예전부터 눈여겨 보았지만, 역시 대단하시네요. 다시 한 번 축하드려요.

다락방 2006-11-24 19:43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드팀전님. 우수리뷰 1등이라니. 정말 멋져요! 물론, 리뷰도 멋지구요!!

드팀전 2006-11-24 22:18   좋아요 0 | URL
살면서 이런 일도 생기는군요....
이벤트에 별로 기대하지 않아서 저도 무척 놀랐습니다.
알라딘을 닫지 않으신 회사 상무님께 감사드려야겠습니다.최근에 각종 사이트들을 회사에서 접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아직 알라딘은 살아있거든요.쓴 시간을 보니 회사에서 눈치 보며 쓴 것 같은데....
.. ... 미진한 글에 이렇게 과분한 상을 주시면 전 위축됩니다...왠지 몸이 경직되고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부담스럽기도 하네요.ㅜㅜ
어쨋거나 감사합니다.^^
오늘 만난 소방관 아저씨들에게 9.11때도 미국 소방관 아저씨들이 많이 고생하셨을테니까...그분들께 감사인사를 드려야겠네요.^^
그리고 축하해주신 분들께도...^^

행복희망꿈 2006-11-24 23:37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앞으로 좋은일이 더 많으시길 바랍니다.

마늘빵 2006-11-25 08:56   좋아요 0 | URL
축하드려요 와~

비연 2006-11-25 13:19   좋아요 0 | URL
와! 축하드려요^^

마노아 2006-11-25 18:16   좋아요 0 | URL
다시 한번 눈여겨 보며 리뷰 읽었는데 눈물날 것 같았어요. 이 책 저도 보아야겠어요.
그리고, 다시 한번 축하해요^^

kimji 2006-11-25 23:59   좋아요 0 | URL
축하드립니다^^ 제가 다 기쁘네요!!! ^^

2006-11-26 00:06   URL
비밀 댓글입니다.

크리스 2006-11-28 18:55   좋아요 0 | URL
정말 좋은 리뷰네요. 1등 하실만 해요. 축하드려요!!! 리뷰를 읽고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습니다.^ ^

거친아이 2006-11-28 23:16   좋아요 0 | URL
우수 리뷰란 이런 것이군요~읽고 나니 알겠네요^^
축하 인사가 늦었지만, 그래도 축하드려요. 리뷰 넘 좋네요.

ryuhwlove 2006-11-30 16:42   좋아요 0 | URL
서평 읽고 눈물이 그렁그렁하기는 처음입니다.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서평이네요. 서평 잘 봤어요.^^

자야 2006-11-30 20:50   좋아요 0 | URL
마치 한 편의 수필을 읽는 듯 했습니다. 책을 통해 자신을 발견해가는 모습이 빨리빨리 책장을 넘기고 있는 제게 반성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침흘린책 2006-12-01 10:01   좋아요 0 | URL
와~~ 정말 멋집니다...축하드려요~
 
능소화 - 4백 년 전에 부친 편지
조두진 지음 / 예담 / 200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예전에 외화 TV 시리즈 물 중에 <환상특급>이라는게 있었다.주말 저녁 때쯤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조두진 작가의 <능소화>를 읽으며 그 중 인상적이었던 한 편이 떠올랐다.

어느 날 소년이 열병을 앓는다.같은 시각,300-400백년전 소년이 살고 있는 그 지역에 어느 소녀 역시 열병을 앓는다.(과거와 현재가 동일 시간 속에 형성되어 있다.) 생사의 기로를 오고 가던 다른 시대의 두 친구가 서로의 눈과 귀를 통해 다른 세계를 보게 된다.물론 텔레파시 처럼 서로 이야기 하기도 한다.둘 다 내성적이었으며 진지한 아이들이었다.그 둘은 서로의 낯선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듣느라 밤이 새는 줄 모른다.그러나 문제가 생겼다.소녀는 마녀 사냥의 시대에 살고 있었다.소녀가 현대의 소년으로 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를 주변에 이야기하자 사람들은 그녀에게 마녀가 씌웠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한다.'쇠덩이가 말보다 빨리 달리고 독수리 보터 커다란 새에 수백명의 사람이 타고 날아다닌다.' 이런 말들은 교구 내에 있는 목사에게 들어간다.목사는 호색한이였다.그 소녀에게 마녀감별을 한다면서 응큼한 수작을 부린다.소녀는 달아나고 분개한 목사는 소녀를 마녀로 매도한다.소녀는 감옥에 갖히고 곧 화형을 당할 처지에 놓이게 된다.현대에 살고 있는 소년은 어떻게 해줄 도리가 없다.화형식 날은 점점 다가오고...소년은 도서관으로 달려간다.그리고 소녀가 살고 있던 시대의 지역 역사 책을 샅샅이 뒤진다.그 목사에 대한 약점을 찾아낸 것이다.

화형식날 목사는 소녀에게 마지막 할 말을 묻는다.소녀는 '나는 마녀가 아니다.하나님을 섬기겨 그분으로 부터 새로운 계시를 받았다.마을 어디 어디 나무 밑을 파면 목사가 몰래 암매장해놓은 시신이 있을 것이다.하느님은 그것을 알려주고 정의를 새우기 위해 나를 도구로 쓰신 것이다.'  목사는 당황하며 도망간다.

소녀는 풀려나고 얼마지나지 않아 소년에게 더이상 혼란을 막기 위해 교신을 끊기로 했다는 마음을 전한다.시간이 흐르고 모든게 일상으로 돌아왔다.또 시간이 흐른다.그러던 어느 날 소년은 소녀의 목소리를 듣는다.소녀는 소년에게 그 마을에 여전히 냇물이 있는 지 그리고 커다란 참나무가 있는지 묻는다.소년은 그렇다고 말한다.소녀는 소년에게 "그 나무 아래 수풀을 뒤지면 평평한 돌이 나올 거야.거기를 찾아봐 내가 남겨 놓은게 있어" 소년은 400년전 남긴 소녀의 흔적을 찾으로 그 숲을 간다.그리고 거기 오래된 바위 한 켠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다. '오래전 부터 당신을 사랑하는 친구가..'

<도모유키>의 작가 조두진의 두번째 소설<능소화>는 경북 안동에서 발견된 미라와 그 옆에 놓인 편지('원이 엄마의 편지')를 소재로 한다.젊은 나이에 남편을 읽은 원이 엄마의 가슴 아픈 사연이 구구절절 남겨 있다.그 미라는 왜 썩지 않고 아직 남아 있던 걸까?또 같이 발견된 편지들 중 대부분은 삭아 없어졌는데 이 편지만은 왜 원형 그래도 보존되어 있던 걸까? 작가의 상상력은 한 사람의 사랑과 염원이 이를 오래도록 지켜나갔다는 쪽으로 발전한다.소설 <능소화>는 여기서 출발한다.

소설 <능소화>는 <전설의 고향>이다.소설은 액자 소설과 르포타주 양식을 취하고 있다.하지만 내용은 400년전 안동 땅에 살았던 응태와 여늬 이야기가 중심이다.신화나 전설에서 일반적인 장치들이 거의 전형적으로 이 소설에서 씌이고 있다.예언,금기,금기에 대한 저항,그러나 운명적인 만남,거부할 수 없는 운명의 슬픔..

'원이 엄마의 편지'를 능소화와 연결한 것은 작가가 우연히 능소화를 보았던 날 동행한 노선생님의 말에서 비롯된다. 그는 "능소화에는 어여쁜 여인이 꽃이 되어 님을 기다리며 담 너머를 굽어본다는 전설이 담겨 있다"는 말을 남긴다.저자는 '원이 엄마의 편지'와 '능소화의 전설'을 엮어서 400년 전 이야기를 재구성한 것이다.

..사전에서 찾아본  능소화는 이렇다

 능소화(Chinese trumpet creeper )
금등화()라고도 한다. 중국이 원산지이다. 옛날에서는 능소화를 양반집 마당에만 심을 수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어, 양반꽃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소설 속에서 능소화는 하늘의 꽃이다.옥황상제의 정원에 있던 꽃이며 아름답지만 독이 있는 꽃이다.프로메테우스처럼 이 꽃을 훔쳐 인간 세상에 퍼뜨린 사람이 있었다.여늬다.물론 현실에서 인간의 몸으로 사는 여늬는 아니다.응태의 신탁은 소화꽃을 멀리 해야만 천수를 누릴 수 있었다.응태의 아버지 이요신은 모든 수단을 써서 응태를 지키려한다.또한 불길한 예언을 같이 안고 있던 여늬 아버지 역시 여늬를 불운으로 부터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그러나 운명은 인간의 노력으로 감당할 수 없는 법.이 둘은 소화꽃 넘어 드는 담벽에서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된다. (소설의 전개 과정은  <전설의 고향> 한 편을 본 듯하기 때문에 아주 친근하며 한편으로 식상하기도 하다.)결국 응태를 먼저 보낸 여늬 역시 능소화를 그녀의 무덤에 심게하여 다른 세상에서 응태를 만날 염원을 놓치 않는다.

한 여인의 사랑은 400년을 살아 남았고 능소화로 만발한다.

소설의 소재는 너무나 매력적이었다.아마 앞으로도 이 소재는 여러 장르로 또 여러 상상력이 첨부되어 생산될 듯하다.그러나 이 매력적인 소재를 요리하는 방식에 있어서 조두진 작가의 요리법이 성공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편안한 마음으로 읽어 내기에는 전혀 부담이 없다.아니 너무 부담이 없어서 오히려 밍숭맹숭하다.<도모유키>에서 보여준 작가의 인간의 보편성에 대한 고찰이 아무래도 <능소화>에서는 조금 떨어지는 듯 하다.물론 모든 작품을 첫 작품의 틀안에서 쓸 필요는 없다.하지만 <도모유키>이후 작가의 새로운 작품 대해 갖은 기대에 비하면 평균 이상의 점수를 주긴 어렵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노아 2006-09-30 19:20   좋아요 0 | URL
전 도모유키도 기대에 못 미쳤거든요. 시도도 좋고 시작도 좋은데 끝이 다부지지 못하단 느낌이 들어서요. 이 책은 관심은 가는데 선뜻 읽고 싶은 충동은 안 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