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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조너선 사프란 포어 지음, 송은주 옮김 / 민음사 / 2006년 8월
평점 :
사람들은 언제나 그게 '마지막'인지 알지 못한다.
78년 첫 겨울 밤이었다.나는 아이였다.수확이 끝난 포도밭 길을 아버지와 걷고 있었다.신년 영시 예배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가끔 씩 켜져 있던 가로등이 훈훈하게 느껴졌다.새 해 첫날,나는 아버지께 그런 질문을 했다.
"아빠 그럼 이제 77년은 다시는 안 오는 거야? " 아버지는 대답하셨다."그렇지.어제까지 77년은 끝났고 이제 78년이 된 거야.앞으로도 77년은 다신 오지 않아.우리 준이가 고등학생이 되고 어른이 되고 아빠가 할아버지가 되고 또 죽게되고..그래도 다시는 77년은 오지 않는단다.시간은 그런 거야.."
나는 거의 울 뻔 했다.그 때 까지 내게 시간은 하루 단위의 개념이었다.햇살이 비치고 그림자가 짙어지는 날들의 연속일 뿐이었다. 어제까진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77년이 마치 피붙이처럼 느껴졌다.'어떻게 한 번 간 것은 다시 오지 않는단 말인가? 내가 살아가야 할 시간 동안 바늘 구멍 만큼도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단 말인가?' 어떻게 내게 그럴 수 있단 말인가?'시간의 비정함에 몸서리가 쳐졌다.또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의 일회성에 대해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우리들의 시간은 늘 '시작'이며 '마지막'이다.수 십년이 지난 지금도 '마지막'이라는 말은 나를 늘 두렵게 한다.다시는 오지 않는 '마지막'.그러나 더 두려운 것은 지난 후에 그것이 '마지막'이었음을 깨닫는다는 것이다.
자기계발서나 잠언서에 나오는 '언제나 마지막 날 처럼 살아라'라는 말을 나는 싫어한다.몇 명을 제외하고는 그 '마지막'이 자기에게 어떻게 다가 오는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어느 시인이 그랬던가, '거역할 수 없는 불행은 정전처럼 다가온다.'라고..어느 누구도 정전을 예상하지 않는다.심지어 한국 전력 공사 직원들 마저도.평온하게 TV 드라마를 보고 있다가...수 십장의 리포트를 타이핑하고 있다가 ...화장실에 앉아서 만화책을 보고 키득이고 있다가.....불행은 '정전'처럼 순식간에 다가와서 빛을 암흑으로 바꾸어 놓는다.그리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일상을 제시한다.
그 안에 사람들의 삶이 있다.
우리는 이미지화된 죽음에 너무 익숙하다. TV를 켜면 사건사고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매일 몇 명씩 있다.그들의 죽음을 보며 우리는 그저 '저런 일이 다 있네' '안됐다.'라고 잠깐 신경을 쓰고 잊어버린다.그러나 불행의 뒷자리에 동석해서 사랑하는 사람들 보내야 하는 가족들에겐 참으로 엄청난 슬픔과 상실감이 기다리고 있다.그들에게 '마지막'은 예고 없이 그렇게 찾아온다.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이 가까운>의 주인공 오스카는 9.11 테러로 자상한 아버지를 잃는다.아이는 아버지가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남긴 전화 메시지를 혼자 간직하고 있다.오스카는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상상하며 잠을 이루지 못한다.소년은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그러면서 뉴욕에 살고 있는 무언가를 잃었음직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소년은 죄책감과 상실감 속에서 아버지를 확인하고 싶어한다.또 하나의 축은 오스카의 조부모들의 이야기이다.때는 2번째 세계 대전,오스카의 조부모들은 드레스덴에 살고 있었다.그들은 사춘기를 지난 아름다운 청년들이었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할머니의 언니 애니와 사랑하는 사이였다.어느 밤,하늘을 덮은 비행기들은 수많은 폭탄을 머리 위로 떨어뜨린다.오스카의 할아버지는 사랑하는 여인과 그 여인이 잉태하고 있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아이를 잃는다.그의 시간은 거기서 정지해 버린다.그는 시간과 함께 말을 잃는다.드레스덴을 피해 건너온 미국 땅에서 사랑했던 여인의 동생을 만나고 그들은 존재와 무 사이를 오고 가는 사랑을 나눈다.하지만 할아버지 토마스에게는 상실의 아픔이 그의 모든 삶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 소설은 상실과 슬픔,그리고 소통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사람들은 슬픔을 겪게 될 때 주로 소통을 단절시킨다.세상과의 대화를 멈춘다.그의 슬픔은 그를 압도하기 때문에 세상과의 벽은 이루 말할 수 없도록 높아진다.오스카의 할아버지 토마스는 실어증을 겪음으로서 그의 상실감을 온몸으로 느낀다.그는 과거의 아픔에 묶여서 어느 곳에도 머물 수 없는 사람이 돼어 버린 것이다.새로 태어난 아기와 그를 기다리는 여인에게도 다가갈 수 없었다.그는 부치치 못하는 편지를 통해 그가 버리고 온 세계에 대한 죄책감을 전한다.그의 편지는 소리 없는 글자가 되어 그와 같은 이름을 쓴 아들과 함께 잠든다.
소설은 상실의 아픔이 서로의 보이지 않는 사랑으로 인해 치유되어 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작가는 소설의 구성을 겹꽃의 꽃잎 처럼 만들어 놓으므로써 소설 말미까지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치 않는다.소설의 각 장은 분절된 듯 보이지만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가끔 소설의 화자가 누군지,앞의 장과 어떤 관계가 있었는지 뒤적여봐야 하는 경우도 있다.그러나 집중력이 좋은 독자라면 나 같은 혼란을 겪지는 않을것이다.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진들이나 형식적 실험들은 그다지 인상적이지는 않다. 실험들을 구경하며 소설의 내러티브에서 잠시 쉬어가는 효과를 준다.'이게 뭘 의미할까? ' 잠시 퍼즐 조각을 쳐다 보는 느낌으로 보면 충분하다.
소설 속에 나오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이나 9.11 테러 당시 트윈빌딩에 갇혀 있던 아버지의 목소리는 무척이나 사실적이다.마치 눈 앞으로 공포의 현장을 끌어다 놓은 듯 하다.엄청난 폭발음과 정신을 놓게 만드는 굉음,흔들림,죽음의 사선에 한 발 걸친 생명의 두려움.그리고 그 순간 머릿 속에 떠오르는 사람... 좀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나는 드레스덴 폭격 장면과 소설 끝에 등장하는 아버지의 메시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그리고 집에서 가을햇볕을 받으며 아기와 브람스를 들으니 '산책하고 있는 기분'이라고 문자를 남긴 아내가 생각이 났다.또한 냉랭한 한반도의 상황을 보고 술자리에서 '확 전쟁이나 한번 나서 뒤집어져라.' 하는 주정섞인 목소리도 떠올랐다.그리고 또 한 목소리....
몇 달 전에 목격했던 교통사고 장면이 떠올랐다.고속도로의 난간을 들이 박고 코란도 승합차는 종잇장이 되었다.119 구조대가 절단기로 문을 열고 피투성이가 된 운전자를 꺼냈다.승합차 안에는 널부러진 CD와 가족사진인 듯 보이는 작은 액자..... 어찌 어찌하여 차에 적힌 집 번호로 전화를 했다. 내게 운전자의 인상 착의를 확인하던 어느 중년 여인의 울먹이는 목소리.어머니인 듯 했다...맞는 것 같다는 대답에 전화기 넘어 커지는 흐느낌....
며칠 후 그 운전자는 죽었다. 저녁때 보자며 현관에서 손을 흔들었던게 그의 '마지막'이었을 것이다.아무도 그게 '마지막'인지 몰랐을것이다.그에게 어린 아이가 있었겠지.그 아이의 운명은 앞으로 어떻게 바뀌에 될까? 엄마 혼자 아이를 키우기 쉽지 않을텐데...아빠 없이 자라며 외롭지는 않을까? 엄마가 재혼을 한다고 마음속에 상처를 받진 않을까? 남들처럼 평범하게 학교 가고 졸업하고 그랬을텐데..앞으로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누군가 나의 죽음을 나의 아내에게 알리게 해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두렵고 슬픈일인가? 그러나 사람들은 '마지막'을 알 지 못한다.설령 지금이 '마지막'일 지라도 우리는 빌어먹는 강아지처럼 운명 앞에 눈만 멀뚱 멀뚱 뜨고 있을 뿐이다.책은 너무나 진부하여 '진실'에 가까운 결론을 맺는다.'지금 사랑하라.'고..어린 아이들에게 포획된 메뚜기처럼 운명의 장난을 거역치 못하는 인간 존재가 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뿐이다.부디 아이들의 주먹이 내 머리 위로 떨어지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일..그리고 사랑하는 일.
나는 오늘 집에 한 다발의 꽃을 사들고 들어갈 것이다.그리고 아가와 아내를 꼭 안으며 '사랑한다'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