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항 막걸리집의 안주는 사람 씹는 맛이제 - 찰지고 맛있는 사람들 이야기 1
박형진 지음 / 디새집(열림원) / 2003년 8월
평점 :
절판


2년전인가 혼자 변산반도에 다녀온 적이 있다.한적한 해안도로를 따라 내소사를 찾는 길이었다.시간마저 수면제를 먹은 듯 흐느적거렸다.졸음에 겨운 눈을 들어 무심한 논길을 바라보았다.흐릿한 망막 속에 어느 농부의 밀짚모자가 들어왔다.흰색 메리어스에 구리빛 종아리.푸른게 자라는 벼와 멀리보이는 섬 그림자.그 농부가 왠지 외로와 보였다. 아마 곧 비가 올 듯 한 날씨때문이었을 것이다.

모항에 가본 적은 없다.그런데 박형진 시인의 책을 보면 모항 한복판에 와있는 듯 하다.갯벌에서 살아 숨쉬는 조가비의 소리가 들리고 꽁짓배의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린다.이런 글은 그 곳에 사는 사람만이 쓸 수 있는 펄펄살아 있는류의 글이다.문장이 세밀하지도 날렵하지도 않다.한 문장이 대여섯줄이 넘을 만큼의 만연체에 묘사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하지만 박형진 시인의 이 책에는 멋진 글이 가득하다.아마 흰종이위에서 본 것이 까만 글씨만은 아니였기 때문일 것이다.거기에는 구릿빛 피부에 누런이빨이 성근 모항사람들이 얼키설키 큰목소리를 내어 설레발을 펴고 있었다.

이 책은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져있다. 첫 부분은 모항 사람들의 이야기이다.여기에는 시인과 동시대에 사는 현재형의 사람도 있고 또 박 시인의 기억 속에서 살아난 사람도 있다.이들이 모여 하나의 살아있는 역사를 만든다. 둘째 부분은 아이들에게 이야기하는 곡식과 농사 이야기이다.보리고개와 관련된 이야기부터 콩,고구마,녹두 등 시골에서 자랐을 사람이면 누구가 하나쯤 이야기꺼리가 있을 법한 소재에 대해서이다.

개인적으론 모항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훨씬 재미있고 흥미롭다.그들은 모항의 역사이다.그중 가장 기억남는 사람은 고막녀이다.예전 시골에는 한 마을에 꼭 누군가 한 두명쯤 모자란 사람이 있었다.그래서 동네아이들의 놀림감도 되고 또 한참 많은 나이인데도 친구도 되고 그랬다.내가 살던 동네에도 그런 사람이 하나 있었는데, 그는 내 친구의 형이었다.근데 아무도 그를 형이라 부르지 않았던 걸로 기억한다.그의 호칭은 꼬마에게도 조금 나이든 어린아이에게도 공히 '바보 상국'이었다.나보다 한 열살쯤 많았던 것 같다.항상 푸른 츄리닝에 콧물이 덕지덕지 묻은 소매를 하고 다녔다.영화[살인의 추억]에 보면 나오는 그 친구-향숙이는 예뻣다-하는 그 친구와 비슷했다. 왜 그렇게 다들 비슷했을까? 아마 박시인의 고막녀는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었던 지체장애우 친구들의 모습일 것이다.책을 보고 있으면 그녀의 모습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하고 그녀의 비극에 서글픈 맘이 생기기도한다.

그외에도 이 책에는 술주사 서금용씨,눈끔적이,오징개 양반등등 재미있고도 또 한편으론 가슴 아픈 서민들의 이야기가 가득하다.이들이 엮어 놓는 삶의 씨줄과 날줄은 마치 이 책이 소설인양 착각하게 만든다.이문구나 김주영의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모항에 바글바글 모여 서로 각축을 벌이는 듯 하다.그만큼 다양한 삶의 형태와 모습들이 박시인의 찰진 시심에 담겨 우러나오고 있다.

또 하나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박 시인의 아들출산 이야기이다.특히 시골은 남아선호가 강하다.생산력과 관련된 생존의 문제이기에 강남 부유층의 남아선호 원정출산과는 질이 다르다.박시인을 비롯해 당시 모항사람들의 출산에 대한 이야기는 아주 재미있다.남자아이를 바라는 마음에서 생기는 웃지못할 에피소드와 시골아낙들의 말빨(?)은 진짜 살아있는 웃음이 무언지 알게한다.

박시인은 막내 아들 보리-이름이 참 예쁘고 그 의미까지 알면 더욱 예쁘다-를 길에서 낳았다.도움을 청한 시골 아낙이 시어머니를 데리고 오는데 그 시어머니가 또 박시인의 어릴 적 동네 누님이었단다.이런한 우연과 따뜻한 출산광경을 도시에서 만날 수 있을까?

하지만 요즘 부안은 핵폐기장 문제로 아주 시끄럽다.시인의 마을과 가까운지는 모르겠다.시인도 시위에 참여했는지도 모르겠다.하여간 고향을 지켰던 순한 사람들이 왜 각목과 섬뜩한 구호로 무장했는지 깊이 생각해볼 일이다.이 책을 덮자 자꾸만 모항사람들의 웃음과 tv속 핵페기장 반대구호가 귀를 어지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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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박민규 지음 / 한겨레출판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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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을 나는 기억한다.나는 미련곰탱이였다.학교를 조퇴하고 독산동에 있던 코카콜라 공장에 가서 어린이 회원에 등록했다.나의 OB사랑은 한 사람 때문이었다.등번호 21번 박.철.순. 야구에 관심이 떨어진 후에도 박철순은 나의 우상이었다.MY WAY.가끔 심심풀이 삼아 로또할때 그의 등번호 21번은 꼭 포함시킨다.^^

삼미슈퍼스타즈.훗훗. 그래 그런 팀이 있었다.연고를 따지자면 나 역시 삼미의 팬이었어야 한다.그런데 나는 정권의 지역연고주의에 과감하게 반발했다. 당시 가을 소풍 사진을 보면 한반의 남학생 중에 OB모자나 삼성 야구 점퍼를 입고 있던 아이들이 절반이상이다.(프로는 역시 자본력인가!) 난 매일 야구하고 주말엔 다른 팀들과 경기하고 그랬던 것 같다.우리 동네 야구팀 이름은 '보라매'-팀선수중 공군과 연관있던 사람도 없는데 왜 보라매였는지는 아직도 의문이다. 그 친구들 지금은 어디서 무었을 할까?

이 소설은 깜직한 비유와 패러디로 한국 자본주의의 제반문제를 풍자한다.한국 사회의 모든 교육은 사회적 성공을 위해서다.성공한 사람들이 만드는 세상의 가치여부는 중요치않다.성공한 자들의 축에만 끼면 만사 오케이다.그래서 기를 쓰고 공부한다.그나마 계급상승의 열린길은 교육이었다.(물론 요즘은 그것도 허구일뿐이다.) 길을 가다 하수도 맨홀을 고치고 있는 노동자를 보면 어른들은 그랬다.'너도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저렇게 된다.' 아이에게 하는 이야기지만 진짜 유치찬란,짬뽕에 소주 푼 이야기 같지 않은가?

하루 12시간 이상의 중노동에 시달리는 입시공부를 했다.그리고 대학가서도 취직하겠다고 그런 노동을 했다.그랬더니 별반 새로울 것 없는 샐러리맨이다.바람불면 바닥에 배깔고 좀 살만하면 내가 난데하는... 그렇다.작가는 말한다.너희들 다 속고 있다고. 나 역시 전적으로 동의한다.속고 있는 거 맞다.속고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철길 위를 달릴 수 밖에 없었다.왜냐고 묻는다면 작가의 말대로 이건 지루박 이기 때문이다.첨부터 지루박 리듬에 맞춰 우스꽝스런 춤을 추었기 때문이다.가끔 가다 지루박리듬으로 돈 벌어 가족부양하고 차도 사고 ...집은 대출받아 꾸역꾸역 사고...푸우핫핫.

사실 지루박리듬을 따라가는 우리가 더 나쁜 건 옆에서 왈츠추고 있는 노마드적 인간들에게 우리의 춤을 강요한다는 것이다.'그렇게 추면 돈이 되겠어.'너 그렇게 해가지고 언제 집사고 노후준비할래' '니 인생 어쩌다 그리 망가졌니' ....등등.어떻게든 삼미슈퍼스타즈를 키워서 프로의 세계가 뭔지 보여주려는 그 알 수 없는 집단처럼. 작가는 후기에서 아주 명쾌하게 말한다.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따라 뛰지 않는것.속지 않는 것....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어록이다.밑줄 긋고 외우자.수능이나 승진시험에 반드시 나온다.밑줄 쫘-악)

소설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애정이 담겨있다. 특히 마지막의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과 프로야구(직장인)팀과의 경기는 압권이다.난 이 부분을 읽으며 코 끝이 찡해졌다.그림을 그려보면 무지 웃기는 장면인데 눈가가 붉어졌다.장타를 맞아 공주으러간 외야수가 함흥차사다. 공 밑에 떨어진 작은 꽃이 너무 아름다웠단다.아....이 장면을 어찌 눈물없이 볼 수 있단 말인지. 문득 안도현의 글귀가 생각났다.매일 매일 주식 하강 곡선을 그리도 뚤어지기 바라보며 지금 창밖에 어떤 꽃이 피었는지 관심있게 보지 않는 사람들...

작가는 결국 삶의 총체적 의미에 대해 질문한다.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인가라는 클래식한 질문이다. .내가 아는 어떤 분이-자식 교육은 자유롭게라고 늘 주장하며 아이들 학원 7개 보내는 자수성가한 여자분이다-만약 이 책을 본다면 분명이랬을 거다. '거봐. 항상 열심히 앞으로 뛰어야한다니까.끝이 없이 노력해야지.안그러니까.좋은 대학 나오고도 짤리고 변변치 않은 일이나 하잖아' 라고.^^ 그녀는 역시 프로다.난 그녀에 비하면 아마인가보다.부럽진 않다. 난 아마가 좋으니까.

퇴근길에 좌판에서 노란 국화 한다발 사가야겠다.보름은 행복하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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찔레꽃 기념관 외 - 2003년 제4회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윤대녕 외 지음 / 해토 / 200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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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이었다.TV문학관이라는 프로그램이 다시 제작되어 미디어비평가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우연히 채널을 돌리다 신문에 난 우호적 반응이 기억나 시선을 고정했다.검은 상복을 입은 김상중,심은하가 역인지 버스터미널인지 붐비는 곳에서 스쳐지나 갔다.윤대녕의 <천지간>이었다. 그때까지 난 그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더우기 작품은 본적이 없었다.화면으로 표현된 그의 작품,그의 정서는 날 TV에 딱달라 붙게했다. 다음날, 서점의 첫 손님으로 그의 소설집(동인문학상 수상집)을 사서 한 숨에 읽고 또 긴 한 숨을 쉬었다.

당시 나에게 <천지간>이란 작품이 뿜는 향기가 너무 강렬했던터라 아직도 그 때의 기억이 생생하다. 우연한 인연과 그 인연이 갖는 삶과 죽음의 뫼비우스,범피중류의 처연함,경계가 모호해지는 이승과 저승. 그 이후로 한동안 윤대녕의 팬이 되었다.그는 내가 작가중에 서슴없이 팬이란 이름을 붙일수 있었던 최초의 작가였던 셈이다. 그 이후 몇편의 단편과 장편을 보았다.물론 괜찮은 작품들이었다.하지만 시간의 더께 속에 그에 대한 관심도 점차 멀어졌다. 그러다 최근에 다시 그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이효석 문학상 수상작으로서....

윤대녕의 <찔레꽃 기념관>은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현대적 복원같다. 하얀 메밀꽃이 찬연한 봉평장 대신 붉은 네온싸인과 찔레꽃이 살짝핀 대도시로 배경이 바뀐다.<메밀꽃>에서 자연인의 삶을 준 아버지와 아들의 인연이 소재라면 <찔레꽃>에선 문학적 삶의 대부가 된 이발소 아저씨와 주인공의 인연이 전개된다. <메밀꽃>에서 허생원과 동이의 인연이 서로 왼손잡이라는 복선만을 남긴 채 소설이 끝나듯 <찔레꽃>에서도 이발소에 걸려있던 밀레의 <만종>과 푸슈킨의 시로 인연의 얇은 개연성 한 가닥만 남겨 놓고 끝난다. 윤대녕이 몇몇 단편에서 보여준 소설의 구조,즉 한 사람의 과거를 타자의 입을 통해 플레시백하고 그것이 또 어느 사람과의 미묘한 인연의 한 줄기였음을 전하는 방식.이것은 언제나 내게 마음 한 구석의 묘한 아쉬움과 허함을 남긴다.

이 느낌을 뭐라 한마디로 잘라 말 할 수는 없다.굳이 말하자면 우리가 하는 작은 행동 또 어떤 선택들이 절대자의 명령에 의한 운명과는 다른, 이미 예정된 그러나 아쉬운듯 가녀린 관계의 인연속에 생겨나는 부족함같은 것이다.그 인연의 부족함과 그로 인한 떠남,또는 미완의 무엇은 마음 속에 먼 길이의 끝을 바라보는 자의 아쉬움,그래야만 했는데도 그러지 못했던 자들의 -그리고 지금은 어찌할 수 없는-서글픈 시선을 담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도 윤대녕의 그런 정서를 느낄 수 있어서 과거의 팬으로서 반가왔다.단 예전보다는 몽환적 느낌이 많이 줄어 들고 현실의 척박함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다는 생각이다.이것이 작가의 발전일지 어떨지는 이 한편으로는 알 수 없을 듯 하다.

수상작외에도 이 작품집에는 김영하,김훈,한강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하는 작가들의 근작이 실려있다.전체적으로 좀 아쉬운 점은 대개 작품들의 소재가 시한부,죽음,병원등과 관계가 있다.이와 같은 소재들이 인간의 실존을 또 삶의 이면을 다시 보게 하는 시점을 제시하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한 작품집에 5할 이상이 이런 소재들과 관련있다는 것은 선정위원들의 취향때문일지 아님 요즘 한국소설의 전반적 경향때문인지는 알 수 없는 노릇이다.개인적으로는 이삿날의 일상적 갈등과 천년의 시간을 버텨온 가야토기를 오버랩하는 김영하의<이사>,잊었던 자신의 슬픈 근원을 더듬어 나가는 기수상자 이순원의 <아비의 잠>,동인문학상 수상작에도 포함되어있던 성석제의 <쾌활한 냇가의 명랑한 곗날>등에 애정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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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의 집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8
이사벨 아옌데 지음, 권미선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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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는 남미 태평양 연안 남북으로 길게 뻗은 나라.수도는 산티아고.이게 대학 입학전 까지 칠레에 대해 알고 있던 전부다. 대학을 입학하고 우리 역사를 익히며 우리와 비슷한 제3세계의 존재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그 한복판에 칠레가 있었다.

이사벨 아엔데의 첫소설<영혼의 집>에는 칠레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있다.이 소설은 델 바에 가문의 4대에 걸친 여인의 역사이자 칠레 사람들의 역사이다.특히 이 소설은 73년 아엔데 대통령의 인민연합이 군부쿠데타로 전복되는 역사적 사건을 중심 모티프로 하고 있다.물론 이 내용은 책의 후반부에 집중되어 있지만 칠레의 지식인치고 이 사건에 빚을 지고 있지 않은 자는 없었을 것이다.마치 80년대 우리작가들이 광주의 부채를 떨칠 수 없었던 것처럼.

칠레는 남미 국가중 노조가 일찍 형성되었던 나라이다.다른 국가들에 비해 구리광산이 발달하여 외국자본의 침탈과 그에 대한 자각이 비교적 일찍 형성되었던 곳이다.하지만 대부분의 남미국가처럼 대농장은 일부 지주와 교회가 90%이상을 점유하고 있었다.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에스테반 가문 역시 그런 대지주중에 하나이다. 에스테반은 보수적 지주의 전형으로 괴팍한 성격과 델 바예가문의 여자-로사와 클라라-에 끊없는 사랑을 갈구하는 다층적인 캐릭터로 그려진다.사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클라라-블랑카-알바로 이어지는 3대의 여성들이다.하지만 그 세 명의 여성과 함께 역사를 헤쳐가는 역할은 에스테반이 맡는다.그는 이 주체적이고 개성적인 여인들과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그리고 역사적으로도 반동적인 인물이었다.하지만 칠레의 질곡의 역사를 헤쳐온 그는 소설적으로 충분히 매력적이다.

남미의 환상적 리얼리즘의 전통은 클라라를 통해 이루어진다.영혼과 소통하고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을 가진 클라라는 이 소설에 생기를 부여하고 긍정적 역사의 희망을 가능케한다.알바가 군부의 모진 고문을 극복하고 화해와 관용의 힘을 얻게 된 것도 바로 할머니 클라라의 힘이었다.블랑카는 세명의 여인중 젊은날의 연애행각을 제외하면 그다지 큰 감응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오히려 그의 애인인 페드로 테르세르가 한 역사적 인물을 연상시킨다.그는 바로 칠레 누에바 깐시온의 대표적 인물.민중가수 빅토르 하라이다.페드로는 소작농의 아들에서 민중가수로 변신하여 민중적 신임을 얻는다.후에 그는 아엔데 정권에서 각료를 하고 쿠데타 이후 블랑카와 망명한다.이에 비해 현실의 페드로 테르세르,빅토르 하라의 죽음은 훨씬 충격적이다.쿠데타 후 잔혹한 고문끝에 대형스타디움에서 살해당한다.인민연합정권이후 전성기를 이루었던 남미의 민중음악-누에바 깐시온도 물론 피노체트 정권하에서 철저히 탄압받는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들처럼 역사의 강물속에서 꿈틀거린다.페드로 테르세르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준 신부는 남미해방신학의 전통을 일깨워 준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교회는 언제나 우익이었지만 예수는 좌익이었다'는 ....

평자가 서평뒤에 논했듯이 살아있는 부수인물들은 이 소설이 역사소설임을 느끼게 한다.극좌모험주의자에 가까운 알바의 애인 미겔,미천한 신분에서 포주로 정계까지 움직이는 여인,클라라에게 인간적 애정을 느끼는 페드로의 아버지,미겔의 모험주의에 반대하는 외삼촌등..주인공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수많은 민중들의 모습은 역사가 단지 몇몇만이 모인 강물이 아님을 은유한다.

남미는 지리상의 발견 이후 수탈의 앞마당이었다.유럽의 수탈이 끝나고 어렵게 독립을 쟁취했다.하지만 머리 위엔 미국이란 잡식성 거대괴물이 있었다.그들은 남미 민중의 안위는 관심이 없었다.매판자본과 군부를 지원하며 제국의 보급창고로 이용하였다.시에라 마에스트라는 혁명전설을 남긴 쿠바는 고군분투하며 미국에 맞섰으나 선거를 통한 민주적 절차를 거친 칠레의 사회주의 정권은 73년 처참한 최후를 맞는다.그 후 피노체트의 10여년에 걸친 장기집권과 실권.영국망명으로 부터의 소환.칠레의 역사도 우리의 역사처럼 피와 살육의 역사였다.그래서 우리에게 그들의 심정이 그들의 눈물이 그들의 희망이 형재의 그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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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퇘지 - 양장본
마리 다리외세크 지음, 정장진 옮김 / 열린책들 / 200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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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외갓집은 농사를 짓는다.그곳에는 돼지 우리가 있었다.어느 더운 여름날 외갓깁을 찾았을때 그 안에 누워있던 암퇘지는 내게 실로 충격이었다. 내가 동화책이나 아기동물원에서 본 돼지들과는 규모가 달랐다. 임신을 한 상태여서 더 비대해보였겠지만 우리 한 켠에 누워있는 암퇘지는 안방에 있는 장롱만했다.그리고 냄새는 어찌나 지독하던지 그동안 아기돼지 3형제에 대해 갖고 있던 애정이 썰물빠지듯 사라졌다. 이 소설<암퇘지>를 보며 지금은 세상에 없을 그 암퇘지를 생각했다.

사람이 다른 동물로 변한다는 소재는 그다지 새로운게 아니다.그리스 로마신화에도 신들이 툭하면 동물로 변해서 몹쓸짓을 한다.헐리웃의 영화들중에도 그런 소재에 대한 것은 부지기수다. 이 소설 <암퇘지>는 20대의 매력적인 여자가 부지불식간에 돼지로 변하면서 바라보는 세상을 그리고 있다.그리고 대부분이 그렇듯이 그녀의 눈으로 바라보고 경험하는 지긋지긋한 인간들과 그들이 만든 세상에 대한 풍자가 가득하다. 하지만 그러한 풍자가 독자에게 얼마나 설득력있게 행사되는가의 문제이다.그 점에서 이 작가의 힘이 조금 밀리는 듯 하다.

우선 작가가 그리고 있는 세상의 리얼리티가 초반부에는 살아있다. 직업을 얻기 위해 성을 매매한다거나 향수가게에서의 성공을 위해 나름대로 애를 쓴다거나..등등 .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이 돼지로 변해가는 중반이후 뜬금 없이 종말론적인 세상이 그려지고 있다. 선거에 출마할 정치인이 뜬금없는 난교파티를 열고 아프리카 주술사가 등장하여 설득력없는 이야기를 펼친다.독재자가 된 정치인은 종교단체 대표에게 살해당하고..등등

종말론적 세상을 그리는 것이 전혀 문제가 될 것은 없다.하지만 그 종말론적 세상에 대한 묘사라든지 그렇게 밖에 될 수 없었던 상황등에 대한 설명은 전부 빠져있으니 독자로 당혹스럽다.고대소설의 특징인 '어느날 갑자기 하는 식'으로 등장하는 우연성을 현대의 독자에게 강요하려면 더 많은 작가의 노력이 필요하거나 아님 더 많은 독자의 상상력이 필요할 것이다.그러한 점에서 사실적인 환타지위에 서 있으면서도 종말론적인 위기감으로 끝까지 긴장의 끈을 늦추지 않았던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와 비교해 볼 만하다. 아직 사라마구의 내공을 넘기에는 작가의 연륜이 한참 딸리는 듯 하다.

또 한가지 이 소설은 마조히즘적인 불쾌감을 가져온다. 굳이 성적인것만으로 치환할 필요는 없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상황에 절대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한다. 물론 돼지로 변하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체크하는데도 정신 차리기 힘들었겠지만... 소설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외모와 성이라 자본주의의 상징을 통해 부적절한 방법으로-써 놓고 보니 이상하다.요즘은 다들 그러지 않던가?-직장을 얻는다.그 이후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자각이라든지 하는 것은 없다.

변태적인 행위를 시키든 말든 어디로 끌려가든 말든...어떻게든 그 체제의 끝을 따라가려는 의지와 원래로 돌아가려는 의지만이 가득할 뿐 정신적인 각성이나 주체적인 대응이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외모가 돼지로 변하기 전부터 그녀는 돼지의 습성을 닮아가고 있었을런지 모른다.지독하게 수동적이던 그녀는 소설말미에 가서 드디어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기 시작한다.그것도 돼지가 됨을 인정한 후 가끔 인간으로 변하기 위한 정신의 집중일 뿐이다.

인간이 주체이기를 포기한 상태 아니 포기를 강요당하는 상태 흔히 말하는 인간소외이다.작가는 끝까지 인간됨의 자발적의지에대해 간과하며 넘어가고 만다.작가의 회의주의가 낭만적 그것의 발로가 아님을 보여주기 위해선 조금더 깊은 현실에 대한 성찰과 독자에 대한 설득이 필요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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