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불천탑에 담긴 소망을 만나다
천년 세월을 여는 화순 운주사

 
  도선국사가 가람조성을 감독하며 앉아있었다는 공사바위.
왜 떠나는가. 몸에 잘 맞는 옷처럼 편안한 일상을 훌쩍 벗어던지고, 탈 것에 감금된 채 군것질과 졸음으로 지루한 시간을 때워야 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면서 왜 때마다 철마다 기어이 떠나려 하는가.

9월 중순, 주말을 기해 집을 나서며 불현듯 자문했던 건 찾아간 곳이 하필 운주사여서일까. 사는 이유만큼이나 다양할 듯한, 왜 떠나는가에 대한 답변은 툭 던져진 물음만큼이나 단순하게 되돌아온다.

모든 여행자로 하여금 첫발을 떼게 하는 건 결국 그리움일 터. 이곳이 아닌 저곳에 대한 그리움을 몸살로 앓는 행위라고 여행자의 발길을 규정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떡을 포개놓은 것 같은 원형다층석탑.  
새로운 세상을 꿈꾸다 좌절하는, 운주사에 얽힌 이야기는 여행자의 등을 떼미는 그리움의 다른 얼굴일지 모른다.

순리와 조화의 땅인 화순(和順)에 자리한 운주사는 골짜기에 줄지어 늘어선 불상과 불탑뿐만 아니라 갖가지 전설로 신비감을 더하는 사찰이다.

사찰이라고는 하지만 일주문도 사천왕상도 없는 운주사에 들어서면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저편 끝 영귀산 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도선국사가 가람조성을 감독하며 앉아있었다는 공사바위가 보인다.

[동국여지승람]에는 ‘운주사는 천불산에 있으며 절 좌우 산에 석불과 석탑이 각 1000기씩 있고 두 석불이 서로 등을 대고 앉아있다’고 적혀있다. 또한 여러 가지 유래가 전해오는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게 부부와불에 얽힌 전설이다.

도선국사가 천불천탑을 세워 천년 동안의 태평성대를 열고자 석수들을 불러들여 대공사를 했다.

불심 깊은 석공들이 도선의 지시 아래 새 세상에 대한 염원을 담아 하룻날 하룻밤 동안 천불천탑을 거의 다 세워가는데 일하기 싫어한 한 동자승이 “꼬끼오” 소리를 냈다.

 
  발우를 닮은 원구형 석탑.
이에 놀라고 실망한 석공들이 날이 샌 거라 착각해 그만 손을 놓는 바람에 마지막으로 일으켜 세우려던 부부불상이 와불로 남게 되었다 한다.

좌절된 꿈의 허전함을 잠시라도 유보하고 싶어서겠다. 이 부부불상은 평지에 흩어진 탑과 석불을 거치고 석벽에 새겨진 마애여래좌상을 만난 뒤 마지막으로 찾게 된다.

대웅전 왼쪽의 산을 올라가면 시위불이 나타나는데 거기서 몇 걸음만 더 올라가면 좌불과 입상으로 누워있는 부부불상을 만날 수 있다.

자연석 암반에 조각된 채로 누운 불상을 떼어내려 애쓴 자취에는 불가항력 앞에서 무너지는 석공의 탄식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그래서일 거다. 접근금지를 경고하는 석탑이 아니라 떡을 포개놓은 것 같은 원반형 다층석탑과 정겹게 쌓아놓은 거지탑과 발우모양의 원구형석탑을 들여다보노라면 땀을 쏟으며 정을 휘두르는 석공들이 떠오른다.

 
대웅전 북쪽의 거대한 바위벼랑에 새겨진 마이여래 좌상.  
위엄을 부리는 불상이 아니라 벼랑에 기댄 채 비스듬하게 앉은 석불과 코가 닳고 눈과 입이 뭉개진 돌부처를 들여다보노라면 그들의 아내와 노모가,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 자식이 떠오르고.

그리고 마침내는 흐릿한 형상의 불상들에 눈과 코와 입을, 가슴 한켠에 접어넣었던 이상향을 그려놓고 있는 자신을 들여다보게 된다.

하여, 발길을 돌려나올 즘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무작정하고 떠난 발길이 어디를 향하든 이상향에 대한 그리움을 잃지 않는 한 새로운 세상은 여전히 열려있을 거라는.

 
  절 서쪽 산비탈 숲속에 길이가 12m인 남편불과 10m인 아내불이 사이좋게 누워 있다.
 
마치 이곳 운주사가 천불천탑에 실패함으로써 천년 세월을 뛰어넘는 상상의 공간으로 자리해 왔듯이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
정미경 지음 / 현대문학 / 2005년 6월
평점 :
품절


사랑한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자체로 삶에 형식을 부여한다고 한다. 그러나 어디 사랑뿐이겠는가. 정미경의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사랑의 변주와도 같은 욕망을 다룬 소설로 ‘욕망한다는 것은, 욕망한다는 그 자체로 삶에 형식을 부여한다’는 결론을 도출해 낸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욕망을 다른 사건을 추동케하는 원동력으로 깔아놓는 게 아니라, 욕망 그 자체를 주제로 다룬다. 좀 웃기는 추측이지만, 나는 (이 소설뿐 아니라) 욕망을 다룬 소설들의 원조가  ‘세 가지 소원’이라는 동화이고, 욕망은 소원 모티브의 변용이 아닐까 싶다.


욕망의 이면을 의뭉스럽게 들춰내는 ‘세 가지 소원’ 이야기가 동서고금을 아우르며 다양한 버전으로 나왔다는 건 ‘욕망’이야말로 식욕이나 성욕이나 에고와 동급인 인간조건임을 확인케 한다. 재밌는 건 소원이 항상 세 가지로 한정된다는 점이다. 왜 하필 세 가지일까, 내심 묻고 답해놓고 보면 감이 잡힌다. 금력, 권력, 매력(매력발산의 조건인 아름다운 외모, 젊음을 포괄하는). 이 세 가지 답변이 욕망의 우선순위로 열거된 데 의아해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상한 슬픔의 원더랜드>는 무소불위의 산신령에 상응하는 돈과 권력이 사랑을 얻기위한 포석으로 장치된 가운데 권력을 좇는 최한석과 돈을 좇는 이중호, 사랑을 좇는 오윤희, 유지원, 김동주 등 다섯 인물이 소설을 끌고나간다.


동화속 무지한 부부가 허영과 과욕과 질투와 성급함과 이기와 같은 성격적 결함으로 세 가지 소원을 말아먹고 마는 것처럼, 돈과 권력과 사랑이라는 세 범주의 자본주의적 욕망을 체현하며 사는 인물들 가운데 누구도 행복하지 못하다.


카리스마 넘치는 운동권 리더였던 최한석은 학우의 투신사건에 관련돼 도피하는 과정에서 야학 제자인 오윤희와 관계를 맺으며 유지원과 김동주에게도 상처를 남긴다. 그리고 20년 후 정치권의 핵심부에 들어서는데, 권력의 정점에서 표출되는 최한석의 상승욕망은 낡은 동아줄을 거머쥔 곡예사처럼 아슬아슬하고 불안하다.


서로를 살벌하게 미워하는 부모 밑에서 자란 이중호는 투기와 투자, 거기에 따라오는 긴장과 희열을 통해서만 자기존재를 느낀다. 인간적 감정에 관한한 백지상태로 여자에 대한 욕정조차 느끼지 못하는 이중호는 최한석을 끌어들인 '보물선 사업'에 한탕을 건다. 이 투기사업이 정치권의 '게이트'에 연루되면서 이중호는 최한석의 사주에 의해 총을 맞고 죽는다.


빈민층 출신의 오윤희는 도피 중이던 야학선생 최한석을 숨겨주고 그의 아이를 가졌다가 낙태한다. 그가 떠난 후 예쁜 얼굴과 잘빠진 몸매를 밑천삼아 고급 매춘을 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연예인으로 활동하며 살아간다. 그리고 순정을 바쳤던 최한석을 다시 만나 그의 사랑을 얻으려 하지만 최한석의 마음이 유지원에게 가있는 걸 알고 총을 들어 최한석을 겨눈다.


이들 세 인물과 달리, 돈과 권력과 사랑에 대한 소유욕망에 있어 비교적 거리를 둔 유지원과 김동주의 삶은 작가의 직접조명에서 비켜난 듯 흐릿하다. 욕망의 함량이 세 가지 소원을 비는 기회로 작용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타적 순정을 간직해온 두 사람이 제 삶의 테두리에 갇힌 채 이 사회의 주변인으로 그려지고 있다는 사실은 묘한 역설을 느끼게도 한다. 


작가가 의도했든 안했든 저 다섯 명의 삶이 얽히고설키는 난마의 굿판은 자본사회에 발을 디딘 이상 그 누구도 욕망의 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을 폭로하면서 동시에 질문을 던져온다.


“자, 그러니 어쩔래? 너는 위험수당을 크게 지불하며 빛나는 정상의 삶을 추구할래, 아니면 그냥 결정적인 파국을 모면하는 대가로 무명의 주변부 삶에 머물래?”


욕망의 변주로 던져오는 이 질문에 맞닥뜨렸다 해도 당황할 필요는 없다. 세 가지 소원 앞에 황감해 하는 동화속 부부와 달리 우리는 이미 대상을 욕망하는 것에서 나아가 욕망 그 자체를 욕망하며 채워지지 않는 갈증과 허기로 괴로워하는 욕망의 속성을 꿰뚫어보았고, 돈과 권력과 사랑이라는 대상을 단념한 무채색의 삶이 가져다주는 마음의 쓸쓸한 평정을 눈치챌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알다시피 욕망의 허와 실, 어느 쪽에 배팅할지는 어디까지나 자유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바람구두 > 동아일보 - 2030女, 프라이드를 입다

[커버스토리]2030女, 프라이드를 입다
[동아일보 2006-07-21 08:13]

[동아일보]

“어떻게 나를 40분이나 기다리게 할 수 있어요?”

그녀는 아름다웠다. 화가 나 동그랗게 치뜬 눈망울, 그런데도 물기를 머금은 듯 반짝인다. 긴 생머리에 균형 잡힌 몸매. 코가 어색하게 높았더라면 ‘성형했겠지’라고 위안(?)이라도 삼았을 텐데.

“세상에 청담동 ‘하루에’를 몰랐다고요?”

이름만 듣고 일식집인 줄 알았다. 화려한 금색 주물 테두리에 짙은 붉은색 커튼이 달린 우아한 파스타 전문점인 줄은 몰랐다.

그녀는 정말 세련됐다. 가슴 부분이 살짝 파인 검정 레이스 톱과 몸에 붙는 스키니 진은 섹시했다. 단정한 진주 귀고리와 생머리는 절묘하게 청순했다.

스타일리스트 서은영(37) 씨. 자타가 공인하는 청담동 패션 피플이다.

거리에는 그녀를 향한 두 가지 시선이 존재한다. 동경하거나 혀를 차거나. 그래서 서 씨는 청담동이 좋다. ‘동지’들을 만날 수 있으므로.

‘쇼퍼홀릭’, ‘섹스 앤드 더 시티’,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그녀들의 필독서다. 영미 소설로 ‘칙 릿(Chick lit)’이라 불린다.

패션과 소비에 탐닉하면서도 자신의 일을 사랑하는 2030 여성을 주로 다룬다. 청담동 그녀들의 이야기이자 그녀들처럼 되려는 사회 초년생의 ‘고군분투기’다.

소설과 드라마에서 방금 걸어 나온 듯한 그녀들. ‘허영과 사치’로 질투와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겉모습이 전부는 아니다. 그녀들은 백조 같다. 우아한 자태를 뽐내지만 속으로는 쉼 없이 물갈퀴질을 한다.

‘한국판 칙 릿’ 속 그녀들의 일상을 엿봤다.

#1. 패션 피플(Fashion people)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고들 하지. 그래도 결국은 겉모습으로 판단하잖아. 무조건 명품으로 치장하는 ‘사치’와 나를 표현하는 ‘스타일’은 달라. 스타일은 노력해서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거야.”(서은영)

“이태원 동대문을 뒤지다가도 이거다 싶은 명품엔 투자를 하는 거지. 결국 자기만족의 문제니까.”(강주연 엘르 패션 에디터·34)

“패션은 내가 얼마나 감각적이고 창조적인지 보여 주는 거야. 촌스러운 사람에게 예술 사진 맡기고 싶겠니?”(사진작가 보리·33-그녀는 평범한 흰 티셔츠를 뒤집어 입는 센스를 보였다)

브랜드 컨설팅회사 ‘브레인 파이’의 피현정(35) 대표. 손으로 만든 천연비누 ‘핸드메이드by파이’ 사업도 한다. “뉴욕 출장 마치고 새벽에 왔다”며 반긴다.

미키마우스 그림이 그려진 민소매 티셔츠와 헐렁한 청바지. 자연스레 드러난 군살 없는 팔은 미국 뉴욕 시 센트럴 파크를 달리고 온 뉴요커처럼 산뜻하다.

소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주인공 앤드리아는 에버크롬비(미국의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 티셔츠를 입고 수많은 프라다 패션 앞에서 기가 죽는다.

피현정은 그런 의미에서 프라다다. 앤드리아의 기분을 알 것 같았다.

그녀들의 패션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린다.

‘미래에셋 3억 만들기 펀드’보다 ‘마놀로블라닉 100켤레 돌파’에 관심이 더 가고, ‘정상가보다 얼마나 싸게 샀는지’가 ‘얼마나 돈을 절약한 건지’로 통하는 세계다.

현정 씨는 아무리 야근해도 다음 날 화장은 완벽하다. 흐트러진 옷차림은 절대 금지. 오늘 입은 옷은 2주 후에나 입는다.

“첫 직장 면접에 탱크톱을 입었으니 말 다 했죠. 햇빛 좋은 날엔 빨간 원피스에 챙이 넓은 우아한 모자를 썼어요. 모자를 쓰고 앉아 일하는 제 모습에 다들 아연실색했죠.”

그녀는 독하게 일했다. ‘회사에 놀러 왔느냐’는 비아냥이 싫었기 때문이다. 남보다 두세 배로 일해야 ‘잘 한다’ 소리 한 번 겨우 들을 수 있었다.

“옷을 튀게 입다 보면 남의 입에 오르락내리락하고 이상한 스캔들도 끊이질 않아요. 그래도 어쩌겠어요. 남들 따라 살면 내가 사라지는데.”

최소한 그녀 주위에서 챙 넓은 모자는 이제 ‘일벌레’의 상징이 됐다.

#2. 쇼퍼홀릭 (Shopahoilc)

“4시에 촬영 끝나고 5시까지 공항에 가야 했어. 그렇다고 비비안웨스트우드 샘플 세일에 안 갈 수 없잖아? 눈이 뒤집혀서 옷을 뒤지고 있는데 누가 옆에서 나만큼 전투적으로 쇼핑 중이더군. 알고 지내던 잡지사 기자였어. 회사에서 몰래 나왔다나. 서로 쳐다보고 원 없이 웃었다, 정말.”(보리)

“‘이번 출장은 자라, H&M(중저가 여성의류)만 가자’고 매번 결심해. 근데 한국에서의 정가보다 30% 싼 걸 보고 어떻게 안 사겠어? 결국 신발 4, 5켤레는 기본, 옷 20∼30벌까지!!”(피현정)

“청담동 ‘화류계(우리끼리 이렇게 불러요)’ 생활 끝에 남는 건 옷밖에 없다는 말이 있잖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이지만 월세 사는 사람도 있어. 이곳에 온갖 드라마가 있으니 ‘섹스 앤드 더 시티’ 외에는 TV를 안 보지.”(서은영)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에서 주인공 캐리는 월세 원룸에서 쫓겨날 처지에 놓인다. 그녀가 가진 거라곤 통장 잔액 500달러와 마놀로블라닉 수백 켤레뿐.

캐리보다는 재테크 수준이 뛰어난 은영 씨. 그런 그녀도 구두만 300켤레가 있다.

올봄 전세로 이사한 그녀를 놓고 이삿짐센터 직원들은 격렬한 토론을 벌였다.

“뭐하는 여자 같아?”

“이 이상야릇한 파티복을 봐선 유흥가?”

“맞아. 구두도 300켤레나 되더라.”

“그럼 한 트럭도 넘는 이 책들은?”

“…. 일이나 하자.”

은영 씨는 “독서가 취미인 게 다행”이라며 웃었다.

남들이 뭐라 해도 벽장 속 구두를 보면 뿌듯하다. 언젠가 자신을 좋은 곳으로 이끌 것만 같다.

그런 그녀도 현장의 모습은 180도 다르다. 머리카락 한 올 흘러내리지 않게 묶고 두꺼운 안경을 쓴다. 소설 속의 ‘B사감’이 따로 없다. 어시스턴트의 작은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다. 아무리 늦게 자도 오전 6시면 일어난다. 완벽해야 한다는 중압감. 그녀는 스스로 ‘부지런함의 저주’라고 부른다.

70% 아웃렛 세일에 무너지는 현정 씨도 일할 땐 다르다.

전화 받을 때 절대 ‘여보세요’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일부러 짧고 무겁게 ‘네’라고 말한다. 용건만 간단히 하란 뜻이다. 귀엽고 착하다는 말은 질색이다.

#3. 사랑을 꿈꾸다

“서른다섯, 막막했어. 호주의 사막에서 산도르 마라이의 ‘유언’을 읽다 펑펑 울었지. ‘인정이 없는 여자도 아닌데 나는 왜 죽도록 사랑하지 못했을까’란 구절 때문에. 내가 무섭게 일만 했구나, 사랑을 해야겠구나.”(서은영)

“남자들은 버겁다고들 해. ‘내가 아픈데 너는 파티에 놀러 가냐’, ‘저 가방 매번 사주기 힘들겠다’고. 파티는 비즈니스고, 가방은 내가 사면 되는데 말야.”(피현정)

“너무 예쁜 비비안웨스트우드 블라우스가 있어. 근데 몸에 너무 껴서 숨조차 쉴 수 없는 거야. 두 번 다시 못 입었지. 아무리 좋아도 나에게 맞고 편하지 않으면 소용없어.”(서은영)

그녀들은 대부분 싱글이다. 한국적 관점에서라면 ‘노처녀’다. 강주연 씨만 결혼했다. “다행히 어릴 때 만난 덕택에 남편이 이 세계를 이해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소설이자 영화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브리짓의 선택은 잘생긴 왕자 같은 휴 그랜트가 아니었다. 있는 그대로의 브리짓을 사랑한 ‘미스터 라이트(Mr. Right)’ 콜린 퍼스였다.

그녀들 역시 찾고 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줄 짝을. 아무도 망사스타킹이 뭔지 모를 때 색깔별 무늬별로 신고 다녔던 자신들을 말이다.

한때는 결혼이 하고 싶어 구미에 맞지도 않는 패션에 도전했다. 현정 씨는 생머리에 다소곳한 정장, 이른바 ‘심은하 룩’을 해봤다. 은영 씨도 귀여운 공주 패션으로 남자들을 만나봤다.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 적도 있지만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온전한 나로 살 수 없다면 행복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일도 사랑도 스스로 만족하고 즐길 수 있어야죠.”(서은영, 피현정)

수많은 칙 릿 중에서도 손꼽히는 인기작 ‘섹스 앤드 더 시티’. 그녀들 모두가 열광했던 시리즈를 끝맺으며 주인공 캐리가 했던 마지막 대사. 그녀들이 찾은 인생의 정답이다.

“가장 흥분되고 도전적이며 중요한 관계는 바로 나 자신과 맺는 관계다. 그리고 만약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을 찾게 된다면 그건 정말 멋진 일이다.(That's just fabulous)”

글=김현수 기자 kimhs@donga.com

사진=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디자인=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성공파 2030女, 일-패션-소비에 열정적▼

최근 교보문고 소설부문 베스트셀러 1위에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라는 책이 올랐다.

20대 초반 여성이 패션 잡지사에서 겪는 좌충우돌 사회생활 체험기를 가벼운 구어체로 풀어낸 미국 소설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최근 3주 동안 이 책을 구입한 사람 중 20, 30대 여성이 73.2%에 이른다.

미국에서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로 꼽혔으며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주연의 영화로 개봉돼 인기를 얻고 있다.

2030 젊은 여성들의 일과 사랑을 가벼운 구어체로 풀어낸 ‘악마는…’과 같은 소설을 칙 릿(Chick-lit)이라고 한다. 젊은 아가씨를 뜻하는 속어인 칙(Chick)과 문학(literature)의 합성어다.

1996년 영국 서점가를 휩쓴 ‘브리짓 존스의 일기’가 칙 릿의 원조 격.

이후 여주인공의 색다른 직업, 패션, 쇼핑중독 등 흥미로운 소재가 가미되면서 일종의 문학 장르로 자리 잡았다. ‘하이힐’, ‘초보자들을 위한 스시’, ‘쇼퍼홀릭’, ‘워커홀릭’, ‘섹스 앤드 더 시티’ 등이 있다.

미국 칼럼니스트 캔디스 부시넬의 섹스 앤드 더 시티는 드라마로 제작돼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국내에서는 패션계 인물들이 수필 형식으로 책을 내 2030 여성들에게 화제다. 올해 5월 패션모델 송경아가 ‘뉴욕을 훔치다’를 냈으며 스타일리스트 서은영과 모델 장윤주가 ‘스타일북’ 출간을 앞두고 있다.

출판평론가 한미화 씨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읽을거리는 18세기부터 있었다. 한때는 결혼, 한때는 직업여성이 되는 게 화두였다면 최근에는 일, 사랑, 성(性), 패션 등 다양한 관심사를 담은 게 특징이다. 이는 현재 젊은 여성들의 삶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을 보는 맑은 창이 되겠습니다."

ⓒ 동아일보 & donga.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자벌레  


                           
        복효근



     오체투지, 일보일배다

     걸음걸음이 절명의 순간일러니

     세상에 경전 아닌 것은 없다



     제가 걸어온 만큼만 제 일생이어서

     몸으로 읽는 경전



     한 자도 건너뛸 수 없다




 

나는 옳지 않았다.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고,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이 옳았다 하더라도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을 드러냈다는 사실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고,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의 옳고그름을 떠나

내 말이나 내 생각이나 내 판단을 드러내는 방식이 옳지않았을 수도 있다.


나를 전적으로 믿는 게 미련한 짓이듯
내가 취한 태도를 전적으로 반성하는 것 또한 그만큼 미련한 짓이며

나 아닌 타인을 전적으로 믿거나
전적으로 비난하는 것 또한 그만큼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이리라.
 

모욕이든 비난이든, 혹은 아전인수의 욕심에서든
그것이 정당한지 아닌지 따지는 건 차후의 일이고, 일단은
흔드는 만큼만 흔들릴 일이다.

그 이상을 사양하는 한,
누구든 무엇에 대해서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여전히 괜찮다. 


잊지말아야 할 건
사람들을 움직이는 게 당위나 공평무사나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라는 것.

사람들의 사고와 태도를 결정짓게 하는 건 각자에게 주어진 상황,

각자가 지닌 조건, 그들 각자에게 가해질 유불리 따위다. 

오직 그들 각자의 입장과 이해만이
각자를 대변하며 각자의 마음을 움직이며 각자의 행동을 좌우한다.


명심하자.

사람들을 향한 시선을 그들 뒤편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것.
방향을 틀 것, 잣대를 상황 쪽에 둘 것,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설 것.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여기부터 천국입니다
임영태 지음 / 문이당 / 2005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개띠에 얽힌 안좋은 추억이 있어선가, 병술년으로 해가 바뀌고 자주 악몽을 꾼다. 적막한 꿈속 세상에서 유일한 등장인물인 나는 잔뜩 겁먹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에 쫓기고 있다. 꿈속의 존재로, 동시에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존재로 나는 이중의 고통을 느낀다. 꿈을 꾸는 동안 내가 느꼈던 불안과 공포는 잠에서 깨는 순간 말짱하게 사라지는데, 불안과 공포의 감각은 꿈을 꾼 나에게로 전이된 듯 아침나절 내내 기분도 몸도 개운치 않다. 나는 아마도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온전한 나인 게 아니라는 막연한 느낌에 빠져버리는 게 분명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있는 소설, <여기부터 천국입니다>를 신문의 신간소개란에서 본 게 지난해 10월이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인지하는 내가 나의 생물학적 원체에 의해 복제된 존재일 경우 나는 '나'인가라는 소개말을 본 거 같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너무나도 정직하게 소설형식으로 다룬 작가의 무모한(?) 주제선택에 경탄하며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 뒤의, 요컨대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개운치 않았던 기분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진작 책을 사보지 않고 미뤘던 건 서평이 실린 시점이  황우석 관련뉴스가 신문지상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무렵이라 일단 ‘복제’라는 용어자체가 지긋지긋해서였다. 나는 한번 더 악몽속을 헤맸고, 꿈속의 나를 지켜본 날 서점에 전화를 걸어 책을 주문했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손에 들기는 했지만, ‘코마’부터 ‘돌연변이’와 ‘바이러스’를 거쳐 ‘복제인간’까지 한때 내가 빼놓지 않고 읽었던 로빈쿡의 메디컬 스릴러 소설에서 스릴을 뺀 좀 맥빠진 작품이겠거니 여긴 내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다. 소설은 자아찾기의 미로를 헤매는 주인공 남기웅의 좌충우돌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가운데 복제인간의 정체성을 놓고 밀고 당기듯 이어지는 이정미와의 관계가 연민과 웃음을 끌어내는 소설적 장치로 빛을 발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했다.

이정미는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듯 연구소에서 남기웅과 짝을 맞춰 복제해 낸 여자 복제인간이다. 복제세계의 아담인 남기웅과 달리 이브인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 혹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생물학적 실체는 텅빈 기호이며 사유하고 기억하고 행동하도록 명령하는 문화적 주체가 '나'의 본질이다. '나'의 본질은 그대로인 채 생물학적 실체일 뿐인 몸을 바꿔입으면서 '나'는 건강한 상태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남기웅이 복제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도록 도와주려는 이정미의 논리는 복제인간을 연구하고 개발해 낸 연구소의 목적을 드러낸다. 바로 영생불사다.  

연구소의 목적은 이즈음 과학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국가정책의 하나로 진행되는 듯 보이는 줄기세포 연구의 숨은 목적을 아울러 떠올리게 한다. 병의 치유를 위한 것이라는 줄기세포 연구가, 그리고 복제기술이 끊임없이 윤리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 영원히 늙지 않고 싱싱한 몸으로 살고싶은, 신의 섭리든 자연의 순리든 생명체계를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영생불사. 여기서부터 마침내 천국은 실현된다고 믿는 연구소 과학자의 논리에 의한다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복제된 몸으로 바꿔입은 남기웅은 행운아다. 거기다 남기웅에게는 원체의 남기웅과 복제된 남기웅 둘 중 한쪽만의 생존을 선택케 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 결과? 남기웅은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원체를 버리고 현재의 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했다고 해서 복제된 남기웅을 나의 본질로 인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나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복제인간 남기웅은 그의 의지로 저지르는 행위와 기억들로써 새롭게 인지되는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그리고 남기웅은 마침내 복제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내가 가짜고, 나의 감각이 가짜고, 내 말과 행동과 나와 관계맺는 세계가 가짜라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그 가짜의 삶을 ‘살고있는’ 나는 본질(원체)에 앞서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존재에 대한 긍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기웅의 긍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흔쾌하지 않다. 작가 임영태는 ‘복제는 원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복제된 나는 다시 복제되지 않는다’는 차이를 둠으로써 영혼의 존재성으로 초점을 옮겨간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독자 개개인에게 맡겨진다.  

머지않아 우리는 소설속 남기웅처럼, 혹은 메피스토의 유혹 앞에 섰던 파우스트처럼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고통스럽고 비루하지만 영혼을 지닌 인간의 삶을 살 것인가, 영혼을 상실한 대가로 얻는 영원한 젊음과 건강을 누릴 것인가. 부활의 종소리와 함께 카르페 디엠의 축사가 울리는 ‘천국’은 이미 당신과 내가 선택해야 할 몫으로 던져져 있는지 모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