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justin > 이 한 권의 명서
이 한 장의 명반 클래식
안동림 지음 / 현암사 / 200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업상 일주일의 사흘은 시골에 내려가 산다. 오디오가 있을 리 없다. 강의실에서 강의실로 낮 동안은 눈코 뜰 사이 없이 바쁘다. 연구실 창밖 바로 눈앞에 다가드는 산 그림자를 희부옇게 저녁 안개가 가릴 무렵이 되어야 비로소 내 시간을 찾는다. 이 때 문득 책상 위에 놓은 트랜지스터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는 귀에 익은 음악. 어떤 값진 오디오 장치가 이때의 감동적인 순간을 만들어 줄 수 있겠는가!' (책에서)

안동림 교수님을 무어라 일컬으면 좋을까요? 음악애호가? 평론가? 시인? 교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교수님께서 '레코드 수집가'나 '레코드 비평가'는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한 때 철학교수로 재직하시면서 '장자'를 향기롭게 번역하신 분이시기도 합니다. 지금은 음반에 대한 책들이 저술, 번역, 편집을 통해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몇 년 전 이 책이 3권 짜리로 처음 나왔을 때만 해도 이러한 시도 자체가 무모하게 여겨지리만치 모험에 가까운 일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학생 때 비싼 가격 때문에 사지 못하고 늘 서점에 가서 힐끔힐끔 보고 오는 제가 안스러웠는지 동기들이 돈을 모아 통합본을 선물로 사주었을 때의 감격을 저는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다. 선물받은 지 몇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 책을 펴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기 때문에 저는 되도록 제 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두고 있습니다. 제가 갖고 있는 것은 같은 내용의 구판입니다만 신판이 나왔다니 반가운 마음 금할 수 없습니다.

교수님의 글을 읽으면 하나의 음악 작품이 탄생되기 위하여 작곡가가 어떤 인생의 행로를 거쳐서 어떤 노고를 통해 작곡하였는지, 그리고 그런 작곡가 못지 않게 연주자와 지휘자는 또 얼마마한 공로를 들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공들여 녹음된 음반을 이리 찢고 저리 분해하여 날카로운 비평의 칼날을 들이댑니다만(물론 이 작업도 필요한 일이겠으나) 교수님은 하나의 음반을 마치 그분들의 혼이 담겨있듯 소중하게 다룹니다.

한 때는 비평보다 칭찬 일변도의 말씀인 것 같고, 또 고전적인 녹음만을 다루신 것 같아 다른 책도 기웃거려 보았습니다만 다시금 이 책의 향기로 되돌아 오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 '아! 음악은 이렇게 듣는 것이구나!'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음악 이야기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과 철학, 사람과 삶이 녹아 있습니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는 분이라면, 음반 몇 장 값을 아껴서 꼭 읽으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또한 반드시 음악이나 음반과 연관되어 있는 것만이 아니라 인생에 대한 자잔한 수필집처럼 두고 두고 읽을 수 있는 책이기도 합니다. 새로운 녹음에 대한 교수님의 감상도 첨부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솟기는 합니다만, 20세기의 베스트 셀러라는 책도 1000년전에 씌어진 단테의 신곡만 못하듯, 고전음악에 대한 고전적인 해석의 향수에 젖어든 교수님의 글은 무엇이 우리의 감성을 풍요롭게 만드는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클래식 음악은 이론적인 공부를 시작하고 나서 듣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과 만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클래식 음악을 처음 접하시는 분들은, 입문 서적들이 봇물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인 공부에 식상하시다면 맑은 감성의 소유자이신 안동림 교수님의 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참존 디에이지 시알디 3종 세트 - 모든피부
참존화장품
평점 :
단종


참존 제품을 잘 쓰는 편인데

이번 디에지 시알디 제품은 다른 거에 비해 유분 수분이 다 부족한 거 같습니다.

워낙 건성이라 그런지 발라도 금방 건조한 느낌이 들어서 자꾸 덧바르게 되네요.

스킨이나 로숀도 그렇고 특히 탄력크림은 유분 수분 다 부족한 느낌.

얼굴이 당겨서 영..안좋네요

 

지성피부인 사람이라면 괜찮을 듯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전출처 : 바람구두 > 세 편의 우중시(雨中詩)

우중행(雨中行)


박용래



비가 오고 있다
안개 속에서
가고 있다
비, 안개, 하루살이가
뒤범벅되어
이내가 되어
덫이 되어

(며칠째)
내 목양말은
젖고 있다.

출처 : 박용래, 먼바다-박용래 시전집, 창비, 1984



추야우중(秋夜雨中)

최치원


秋風唯苦吟(추풍유고음)
世路少知音(세로소지음)
窓外三更雨(창외삼경우)
燈前萬里心(등전만리심)

가을 바람에 오직 괴로운 마음으로 시를 읊으니
세상에 나의 시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
창밖에 밤 깊도록 비가 내리고
등불 앞에는 만 리 고향을 향한 마음만이 서성이네.


----------------------------------------------
박용래 시인의 "우중행(雨中行)"에는 최치원의 한시 "추야우중(秋夜雨中)"의 심상이나 정조와는 다른 느낌이 있습니다. 최치원의 雨中이 창 밖의 광경이고, 시인은 등불 앞에 있어 젖지 않는 것에 비해 박용래의 雨中은 며칠째 목양말을 젖게 하는 비입니다. 그럼에도 박용래의 비는 최치원의 비보다 훨씬 멀리서 내리는 비처럼 느껴집니다. 목양말이 젖는 빗 속에 있는 시인의 비보다 최치원의 비가 더 가까이에서 내리는 비로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까닭은 박용래 시인이 최치원처럼 내리는 비에 마음을 싣지 않고, 관조하는 시적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최치원보다 박용래가 빗 속에서 더 외로와 보이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혹시 어렸을 때 미래의 나에게 편지를 띄워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알지도 모르겠습니다. 10년 전의 나는 분명 나인데, 현재의 내가 10년 전의 내가 보낸 편지를 읽는 동안 과거의 나란 사람이 과연 어떤 사람이었는지 도통 알 수 없거나 낯설게 느껴질 때...

박용래 시인의 시가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독백과 같다면, 최치원의 시는 한탄(恨嘆)이기 때문입니다. 최치원은 비록 "세상에 나의 시를 아는 사람이 적구나."라고 노래하지만, 이것은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박용래 시인의 시에서 시인은 그런 대상조차 상정하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슬픕니다, 아니 슬프다는 감정조차 맑게 정제된 평온함입니다.

비가 옵니다, 안개 속에서 비는 오는 듯, 가는 듯 합니다.
마음이 실리지 않은 비를 시인은 멍하게 바라봅니다.
비와 안개와 하루살이가 범벅이 됩니다.
어쩌면 시인은 보안등이 매달린 남의 집 처마 끝에 서 있는지도 모릅니다.
갈 곳이 없는 건지, 어디로 가야할 지조차 생각하지 않으며...

슬픔도, 절망도, 비탄도 느끼지 못하는 슬픔이, 절망이, 비탄이 그리고 외로운 평온함이 덫이 되어 (며칠째) 오도가도 못하며 목양말이 젖습니다. 최치원의 시에서 시인의 물리적 위치는 등불 앞에 고정되어 있는 대신 마음이 서성인다면, 박용래 시인의 시에서 시인은 어디론가 가고자 하지만 가지 못한 채 정지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시인 기형도는 시 "雨中의 나이 -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규명되어질 필요가 있다."에서 "정지해 있는 것은 언제나 독을 품고 있는 법"이라고 이야기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

雨中의 나이
-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규명되어질 필요가 있다.


기형도

  

1
미스 한, 여태껏 여기에 혼자 앉아 있었어? 대단한 폭우라구.
알고 있어요. 여기서도 선명한 빗소리가 들려요. 다행이군. 비 오는 밤은 눅눅해요. 늘 샤워를 하곤 하죠. 샤워. 물이 떨어져 요. 우산을 접으세요. 나프타린처럼 조그맣게 접히는 정열? 커 피 드세요. 고맙군. 그런데 지금까지 내 생을 스푼질해 온 것은 무엇이었을까. 시시한 소리예요. 기형도 씨 무얼했죠? 집을 지 으려 했어. 누구의 집? 글쎄 그걸 모르겠어. 그래서 허물었어 요? 아예 짓지를 않았지. 예? 아니, 뭐. 그저…… 치사한 감정 이나 무상 정도로, 껌 씹을 때처럼.


2
등사 잉크 가득 찬 밤이다. 나는 근래 들어 예전에 안 꾸던 악 몽에 시달리곤 한다. 시간의 간유리. 안개. 이렇게 빗소리 속에 앉아 눈을 감으면 내 흘러온 짧은 거리 여기저기서 출렁거리는 습습한 생의 경사들이 피난민들처럼 아우성치며 떠내려가는 것 이 보인다. 간혹씩 모래사장 위에서 발견되기도 하는 건조한 물 고기 알들.
봄이 가고 여름이 가면 그런 식으로 또 나의 일년은 마취약처럼 은밀히 지나가리라. 술래를 피해 숨죽여 지나가듯. 보인다. 내 남은 일생 곳곳에 미리 숨어 기다리고 있을 숱한 폭우들과 나무 들의 짧은 부르짖음이여.
  

3
고양일 한 마리 들여놨어요. 발톱이 앙증맞죠? 봐요. 이렇게 신 기하게 휘어져요. 파스텔같이. 힘없이 털이 빠지는 꼴이란……
앗, 아파요. 할퀴었어요. 조심해야지. 정지해 있는 것은 언제나 독을 품고 있는 법이야.
  

4
시험지가 다 젖었을 것이다. 위험 수위. 항상 준비해야 한다.
충분한 숙면. 물보다 더욱 가볍게 떠오르기. 하얗게 씻겨 더욱 찬란히 빛나는 삽날의 꿈. 당신의 꿈은?


5
지난 봄엔 애인이 하나 있었지. 떠났어요? 없어졌을 뿐이야. 빛 의 명멸. 멀미 일으키며 침입해오던 여름 노을의 기억뿐이야. 사랑해보라구? 사랑해봐. 비가 안 오는 여름을 상상할 수 있겠 어? 비 때문은 아녜요. 그렇군. 그런데 뭐 먹을 것이 없을까?


6
그리하여 내가 이렇게 묻는다면. 미스 한. 혼자 앉아서 이젠 무 엇을 할래? 집을 짓죠. 누구의 집? 그건 비밀. 그래. 우리에게 어떤 운명적인 과제가 있다면. 그것은 애초에 품었던 우리들 꿈 의 방정식을 각자의 공식대로 풀어가는 것일 터이니. 빗소리. 속의 빗소리. 밖은 여전히 폭우겠죠? 언제나 폭우. 아. 그러면 모든 슬픔은 논리적으로 논리적으로, 논리…… 300원의 논리. 여름엔 여름 옷을 입고 겨울엔 겨울 옷을 입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음의 여행자
한스 크루파 지음, 서경홍 옮김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6월
평점 :
품절


 

유물론자는 아니지만, 나는 종교나 학문이나 예술에서 다루는 마음 정신 영혼 같은 아이템에 홀딱 넘어가는 사람들을 보면 순진무구하다기보다 참 멍청해 보인다. 버스 기다리는 사람 등뒤로 슬며시 다가와 ‘도에 관심 있으세요’ 속살거리는 길거리 도인을 따라가서 거금 30만원을 털리고 왔던 내 남동생한테나 선물하면 적당할 ‘마음의 여행자’ 같은 책도 그닥 안좋아한다. 안좋아하면서도 나는 이 책을 도서자료실에서 빌려와서 마지막 장까지 다 읽었다.


취향이 아닌 책을 대출해서 끝까지 다 읽은 건 저자인 한스 그루파가 헤르만 헤세 이후 독일 최고의 작가로 평가받고 있다고 해서다.(영혼 아이템에는 강한데 평단의 평가에는 쫌 약해서리 ㅡㅡ;;) 70년대에 중고등학교 다닌 사람들 대다수가 그렇듯 나 역시 ‘악마에 홀린 것’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는 ‘데미안’의 카리스마에 꽂힌 바 있으니, 헤세의 전작에 깔려있는 영혼의 구도자니 마음의 길이니 하는 도닦는 소리에 감염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읽게된 이 책 ‘마음의 여행자’가 ‘유리알 유희’나 ‘마음의 소로’에서 헤세가 그려보인 본질적이고도 근원적인 세계의 그림 비스무리한 걸 드러내느냐 하면, 아니었다. 이 책, 솔직히 지루했다. 꽁트 내지 우화에 가까운 단편소설 열한 편이 하나같이 상투적이고 천편일률적이었다. 매 소설마다 지혜로운 ‘데미안들’이 느닷없이 등장해서는 싹수가 있는 ‘싱클레어들’에게 내가 저 아득한 십대와 이십대의 들녘 어디에선가 누군가에게서 질리게 듣고 감동 먹었던,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잔뜩 폼 잡고 되풀이해 들려준다. 대충 이런 구절들이다.

 
“네 마음속에는 다른 사람들과 다른 무언가가 있어. 어쩌면 그것은 늘 깨어있으려는 의식 같은 걸거야. 다른 사람들은 그저 일상에 이끌려 무덤덤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넌 그렇지 않아."


"그들은 이미 꿈을 접은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은 더 이상 이룰 꿈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꿈조차 앗아 가고 싶어하지. 네 꿈을 잘 간직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네 꿈도 날아가버리고 말아. 그 꿈과 함께 나비의 날개도 부서져 버리고... 페터, 너에게 아주 깊은 열망이 있다는 걸 눈빛을 보면 알 수 있어. 넌 너의 삶을 살고 싶어해. 넌 날고 싶은 거야. 그리고 넌 틀림없이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좀 살아본 사람들이라면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읽고 들을 땐 엄청 멋있고 영양가 있고 그럴싸한데 현실이라는 필드에서는 전혀 힘을 발휘 못하는 말들이다.  


하고보니 말이 좀 심하게 나온 듯한데 이건 어디까지나 삐딱선을 탄 내 경우에 그랬다는 거고, 마음의 여행을 할 자세가 돼있는 사람들한테라면 몹시 매력적인 책일 수도 있겠거니 싶기도 하다. 이 책에 나오는 열한 명의 주인공들이 별 갈등 안하고 마음의 가이드에게 덥석 넘어간 것처럼, 가령 영혼의 목마름을 느껴 길거리 도인의 말에도 귀 기울이는 내 남동생이 읽었다면 울림 깊은 메시지의 성찬에 감격하여 눈길을 조용히 깔 거라는 건 안봐도 비디오니까 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말리와 나 - 세계 최악의 말썽꾸러기 개와 함께한 삶 그리고 사랑
존 그로건 지음, 이창희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처지가 비슷하다 보면 생활패턴도 비슷해지기 마련, 명절로 주어진 연휴에 은근 싱숭해하던 차에 날아온 문자를 보니 작품 한답시고 화실에 컵라면 쌓아놓고 사는 친구다. 끌끌 혀를 차주고는 동래전철 역 근처 카페로 (득달같이) 나갔다. 친구는 덩치에 어울리잖게 앙증맞은 시츄를 끌어안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맡게된 강아지라는데 어떠냐니까 일초도 안걸려 답이 튀어나온다.


“사람하고 똑같아. 정말 똑같다니까.”


어찌나 똑같은지 기가 차다는 듯 고개를 젓는 친구에게 나 역시 너무 잘 알고 있노라 안심시켰다. 개라는 동물이 얼마나 친인간적인지, 먹여주고 재워만 주는 주인에게 바치는 그들의 순도 100%짜리 믿음과 애정이 얼마나 민망할 정도인지 개를 길러본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다.


또한 개를 키우다 보면 분명히 알게 되는 한 가지 사실이 어떤 개도 연습용이나 대체용 존재가 아니라는 점이다. (애들 정서에 좋아서 개를 데려다 키운다는 정도라면 또 몰라) 개의 1년이 사람 7년에 해당하니까 개의 죽음으로 사람과의 이별을 연습해 볼 수 있어 좋다는 식으로 내뱉는 사람은 절대로 애견가라 할 수 없다는 걸 개를 키워보면 저절로 알게되는 법이다.


정말 그럴까 의심스러우면, 그리고 혼자사는 게 적적하다거나 사람한테 부대끼다 못해 넌덜머리가 난다든가 기타 등등으로 개를 한번 키워볼까 마음먹은 적이 있다면 ‘개죽음’으로 사람과의 이별연습을 꾀하는 야멸친 개주인과 별다를 것 없는 이유로 개를 키우기 시작해  자전적 소설을 펴내기에 이른 존 그로건의 '말리와 나'를 읽어볼 일이다.


존 그로건 부부가 처음 개를 맞아들이려 했던 건 자신들이 장차 아이를 키울 수 있을지 여부를 동물 돌보는 것으로 타진해보자는 이유에서였다. 그랬던 그로건 부부도 ‘세상에 말리 같은 개는 없었다’는 사후 진단을 받은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 혐의가 농후한 리트리버종 개 '말리'와 함께 살게 되면서 깨닫는다. 개는 애들 정서함양 내지 상황판단을 돕는 보조 대체물이 아니라 그 자체로 인간과의 감정교류가 가능한 존재라는 걸 말이다.


말리가 13세의 고령으로 사경을 헤매자 그로건은 안락사를 결정한다. 그리고 그로건은 온집안을 어질러놓고 문짝과 가재도구를 부수고 마당을 파헤치고 차안에 온통 침을 묻혀놓았던, 생존시 세상에서 가장 말썽꾸러기라고 생각했던 말리를 추억하는 칼럼을 쓴다. 그 결과?


다음날부터 그로건에게 수백 통의 메일이 날아들고 ‘세상에 말리 같은 개는 없었다’는 게 완전 착각이었던 걸 알게 된다. 차고 넘칠 정도는 아니라도 말리 같은 개는 세상에 많았다. 자신이 지금 키우고 있는 개가, 혹은 자신이 키웠던 개가 얼마나 멍청하고 얼마나 주책 대책 없고 얼마나 집안 살림을 망쳐놓고 날이면 날마다 갖가지 분란을 일으키는지 낱낱이 고하는 메일에는 그들이 돌보고 키운 말썽꾸러기 개에 대한 사랑과 애착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러니까 단적으로 말해 ‘말리와 나’는 말리에 대한 추억과 함께 전국의 골칫거리 개주인들로부터 날아든 메일을 통해 사랑의 본질을 일러주고 진정한 소통이 어떤 건지를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대낮부터 맥주잔을 함께 기울이며 나는 여러모로 칠칠치 못한 친구 품에 안겨있는 시츄를 염려하여 ‘그 많은 단점에도 불구하고, 아니 그 단점조차도 사랑했다.’고 회고하는 그로건의 말을 들려주고는 ‘말리와 나’의 일독을 권했다. 친구는 그러나 시츄의 눈을 그윽이 응시하며 내 말을 무시했다.


“말리는 말리고 쭈쭈는 쭈쭈야.”


맞는 말이었다. 친구가 이미 시츄를, 아니 쭈쭈를 키우고 있다는 걸 내가 깜박했던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잠못드는밤 2006-10-09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아지도 모두 개성이 있어서 다 다르지요.
그래도 단점을 다 알지만 정말 '내 아이'는 이뻐요. 그렇죠? 후훗~
강아지가 연습용이나 대체용이 아니라는데 공감 100%!

누미 2006-10-11 1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아이'를 기르시는 분이군요^^
집에 있는 시간을 낼 수 없는 형편이라 불가능하지만
길거리에서 개를 볼 때마다 걸음이 멈춰진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