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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선택하는 특별한 기준 1 - 개정판
김형경 지음 / 푸른숲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처음에는 페미니즘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삼십대 후반의 사회적 명성이 어느정도 있는 전문직 여성들의 모여 사회를 비판하고, 현실의 여성을 억압하는 문제, 성문제 등을 다루는 책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어가면서 나는 박세진에게 몰입되었고 그녀의 정신분석 수순을 똑같이 밟아가며 나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빨려들어가서 읽었다. 세진뿐 아니라 인혜의 이야기도 흡입력이 굉장히 강했기 때문이다. 사실은 너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현재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좀 더 천천히 들여다보고 싶어서 두 번째 읽을 때는 세진에게 초점을 맞추어 읽었다. 세진이 했던 말들, 의사가 했던 말들에 형광팬을 그어가며, 나의 상처에 직격탄을 날린 곳에는 펜으로 내 이야기를 써나가며 그렇게 읽었다. 그리고 책을 덮은 지금... 내 이야기를 어디에든 잘 정리해서 둬야겠다는 생각과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오래오래 고민하여 치유의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의사는 처음 병원을 방문한 그녀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무엇을 해결해 줬으면 하는지 말해보세요] 그녀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제 삶을 총체적으로 점검해보고 이 작업을 통해 제 삶의 터닝포인트로 삼고 싶어요]라고 말한다.
나는 심리학 책도 읽었고, 심리상담도 받아봤고, 교회에서 내적치유 프로그램도 참여를 했었고 지금도 진행중이다. 그런데 문제는 내가 이것들을 통해 무엇을 해결받고 싶은건지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냥 막연하게 뭔가 힘들고 뚫리지 않는데 정면으로 그 문제에 부딪힐 엄두는 못내고 그냥 겉핡기만 열심히 하고 그래 이정도면 됐어! 라고 여기며 똑같은 문제로 계속해서 넘어지고 있었다. 친구들은 묻는다. [대체 넌 문제가 뭔데? 뭐가 그렇게 심각한건데!!] 그러게 도대체 내 문제가 무엇인건가. 만일 내가 병원에 갔는데 의사가 내게 [내가 무엇을 해결해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묻는다면 나는 화를 내며 뛰쳐나올지도 모른다. 내 마음의 위로도 안해주고 바로 문제로 들어갔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내 문제를 회피하고 내 주변을 둘러싼 그 무엇에서 맴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문제에 조금씩 직면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세진의 문제와 나의 문제가 많은 부분이 닿아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동생이 태어나면서 외가에 보내진 세진과 집을 나간 엄마 때문에 방학 때면 할머니댁으로 보내진 나, 열심히 울어봐야 들어주는 이 없어 좌절감을 맛보았던 세진과 생일 날 친구들의 축하를 받고는 뭔가 해주고 싶은데 집에 아무도, 아무것도 없어 수퍼에서 과자를 훔쳤던 나, 질투의 대상이었던 인혜네 집에 그렇게 끊임없이 갔던 세진과 엄마가 학교 선생님인 친구네 집에 가서 그 집 방안으로도 못들어가고 마루에서만 놀던 나, 타인에게 도움을 청하는 일이 어려운 세진과 시키느니 그냥 혼자서 해결하지 하면서 모든 짐을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나, 특별한 용건이 없으면 전화를 못하는 세진과 대학교 때 아빠에게 전화를 하면 늘 "왜?" 라고 하시며 전화를 받으셔서 용건이 없으면 집에도 전화를 못하게 된 나, 호의를 호의로 받을 수 없는 세진과 호의에 대해서 나를 깔보는 것 같아 오히려 화를 내는 나... 정말 여러면들이 겹쳐 보였다. 나는 잊었던 내 과거의 일들을 조금씩 조금씩 꺼내기 시작했다. 정말 그게 있었던 일인지 내가 만들어낸 건지 모를 정도로 우습고 기막힌 과거의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그렇게 꺼내기 시작했다.
책은 건강한 퇴행에 대해서 말한다. 친근한 관계가 형성되고 가까워지면 퇴행이 일어나야 한다고. 오륙세와 같은, 아이들이 소꿉장난으로 엄마 놀이하는 수준까지 퇴행이 따라야 한다고. 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유치한 관계]를 견딜 수 없어 했다. 가치있는 대화, 가치 있는 일들을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어른들은 당신은 참 어른스러워요 라고 말하고, 친구들은 너는 뭐가 그렇게 어렵니! 라고 말했다. 지금은 나의 모든 퇴행이 남편에게 마구 쏟아버려져서 남편을 힘들게 한다. 책에서도 세진은 경호를 참 힘들게 한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나의 분노와 화의 원인을 찾아내서 그것들을 남편에게만 쏟아 붓는 것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을 일차 목표로 삼았다. 옆에 없으면 보고 싶고 빨리 집에 왔으면 하면서도 남편이 계단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는 순간부터 서운한 것이 확~ 내 몸을 감싸는데 아주 환장할 노릇이다. 그리고는 나도 모르게 끔찍한 말로 그를 할퀸다. 이제 제발 그만하고 싶다. 이제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