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길비, 광고가 과학이라고? - 창의력도 과학을 바탕으로 만들어진다는 것, 알고 있니?, 광고인 내가 꿈꾸는 사람 14
김병희 지음 / 탐 / 201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청소년 대상으로 진로 탐색에 도움을 주려는 목적으로 직업별 대표적 위인의 직업 세계를 위인전 형태로 기획한 시리즈물 중 하나다. 오길비란 인물은 여기서 처음 듣는다. ‘광고의 아버지로 일컬어진다고 하는데, 해당 분야의 문외한이기에 이번 참에 관련 책을 보는 것도 도움이 되리라.

 

오길비는 광고인으로 정착하기까지 요리사, 세일즈맨, 갤럽 조사원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하였다. 자칫 인생 낭비로 여겨질 수 있지만 오길비는 각 직업을 통해서 훗날 성공적인 광고인이자 경영자가 되는데 필요한 역량을 습득하였다고 한다. 인생의 첫 출발부터 자신이 꿈꾸고 원하던 직업의 세계로 뛰어들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자신이 현재 종사하는 직업 분야에서도 기초 역량을 배양하고 업무 수행의 기준을 확립할 수 있다고 하니 섣불리 실망하고 좌절할 필요가 없다는 것.

 

오길비는 자신의 직관이나 감이 아닌 철저한 자료와 시장 조사를 바탕으로 과학적 분석을 한 다음에 광고 제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P.65)

 

오길비가 동시대의 광고인들과 차별되는 점은 광고에 대한 접근방식의 차이다. 그의 광고는 철저히 판매 지향적이다. 지금이야 새삼 당연한 말이지만 당시에는 광고와 판매의 결부가 그렇게 긴밀하지 않았다고 한다. 광고 제품이 자체로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라면 제품 자체만 집중하면 되지만, 현대 사회의 대다수 상품과 서비스는 품질의 균일성으로 차별성을 보이기 어렵다. 이때 중요한 것이 해당 브랜드의 강조다. 특정 브랜드 애호가는 다른 이유를 찾지 않는다. 그 브랜드의 상품이면 충분하다.

 

오길비는 광고에 브랜드 스토리를 접목하였다. 비록 그의 경쟁자로 소개되는 번벅과 접근방식은 다르지만 지향점은 동일하다.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는 해서웨이 셔츠 광고, 슈웹스 음료 광고, 도브 비누 광고 및 롤스로이스 자동차 광고 등이 오길비의 대표적 광고 사례다.

 

오길비와 번벅은 제품 중심의 광고를 주장하면서도 브랜드 이미지의 중요성을 일깨워줌으로써 이미지 광고라는 광고의 새로운 문을 열었습니다. 친구이자 경쟁자로서 서로를 의식하며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바탕으로 자기만의 길을 뚜벅뚜벅 걸어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어요. (P.173)

 

예술로서의 광고를 지향했던 번벅이 아닌 과학 지향적 오길비가 광고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것은 무엇보다 그가 자신의 신조를 저작물로 남겨 후대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광고계 후배들은 오길비의 책을 통해 광고인의 역량, 태도 및 가치관 등을 확립할 수 있었고 그를 계승하는 동시에 도전하는 길을 찾을 수 있었다.

 

오길비의 삶을 되돌아볼 때 유년기 시절 교육의 혜택을 무시할 수 없다. 몰락하였지만 어쨌든 귀족 가문 출신으로 엘리트 교육 코스를 받은 기초 체력에 그의 남다른 자질이 결합하였고 헌신적인 노력이 더해져서 오늘날의 오길비가 되었다. 그가 남들과 달리 글쓰기에 소질과 관심을 보였던 것 또한 전혀 의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일찍이 세일즈맨 시절 쓴 판매 팸플릿에 대한 평가를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포천>은 그의 팸플릿을 역사상 최고의 판매 교과서이자 매뉴얼로 선정했어요. 제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일하는 광고인의 싹이 그때부터 보이기 시작한 걸까요? (P.48)

 

또 하나 오길비는 광고인으로서 자부심이 굉장히 높았다는 점이다. 광고인은 대체로 광고주 앞에 을의 처지에 놓이게 마련이고, 대형 광고주라면 더욱 그러하기 쉽다. 오길비는 광고인의 독립성을 요구하였고 그것이 어려울 경우 광고 수주를 스스로 포기하였다. 포드 자동차의 광고 수주에 참여를 포기한 사례가 이를 말해 준다.

 

오길비는 No’라고 말할 수 있는 광고인이었죠. 광고주가 광고회사를 선택하는 게 아니라 광고회사가 광고주를 선택하는 놀라운 관행을 만들어 나갔어요. 이런 용기와 전문성을 높게 평가받아 오길비는 모두가 우러러보는 최고의 광고인이 될 수 있었어요. (P.116)

 

한편 기획물의 속성상 오길비의 장점과 성공만을 강조하였지만 그의 가정생활을 미화해서는 곤란하다. 성공을 위해서 개인적 삶, 그리고 가정을 포기하는 태도는 당대 가치관으로는 특이한 게 아니지만 현재처럼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시대에서는 용납되기 어렵다. 그가 두 번이나 이혼을 겪을 수밖에 없었던 까닭, 그것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야근과 휴일 근무를 당연시하고 남들에게도 이것을 요구한다면 도덕적 비난에 앞서 법적인 문제가 제기되기 마련이다. 과거의 위인들에 대해서는 항상 비판적 수용 태도를 지향해야 마땅하다.

 

본문 중간에 오길비 광고 전략의 핵심을 잘 요약하여 유용하며, 마지막 장은 별도로 광고라는 직업 세계에 대한 개략적 소개를 하고 있어 직업으로서 광고 분야에 관심을 품은 청소년에게는 유익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관자 미래인 청소년 걸작선 19
제임스 프렐러 지음, 김상우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2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학교폭력 사안은 국내에서도 오래전부터 대두되었다. 근래는 관리체계가 나름 정착된 탓인지 관련 이슈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학교폭력이 근절되었다고 섣불리 단언하는 건 곤란하다. 학교폭력에 대해서라면 개인적 경험도 있고 보고 들은 이러저러한 사례와 견해가 제법 있기에 말하고자 하면 지리하게 늘어날 수 있으므로 더는 언급하지 않고 이 책 자체의 내용에 대해서만 다루고자 한다.

 

학교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 마지막으로 학교 당국으로 구성된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분은 비교적 명확하다. 이 책에서는 그리핀과 할렌백이 해당한다. 외견상 그리핀은 매력 만점의 학생이며, 할렌백은 다른 아이들도 어울리기 싫어할 정도로 비호감의 대상이다. 그리핀 일당의 할렌백 괴롭히기에 다른 아이들이 굳이 나서서 반대하지 않는 것도 이런 연유다. 물론 그것으로 학교폭력의 정당성이 옹호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리핀의 외모와 언행을 기술하는 대목만을 보자면 그리핀은 흠잡을 데 없이 훌륭한 학생이다. 그의 외면과 내면의 극적인 대조는 그래서 더욱 두드러진다.

 

녀석의 미소는 깨끗하고 순수한 햇살 같았고, 긴 속눈썹은 가볍게 깜빡였으며, 볼은 투명한 핑크색을 띠고 있었다. 녀석은 완벽한 천사의 가면을 쓰고 있었다. (P.146)

 

그리핀의 마음 한가운데는 큰 구멍이 있었다. 인간에 대한 동정심이나 연민은 없었다. 그리핀은 그게 뭐든 간에 별 느낌이 없는 애였다. 차갑고 딱딱한 벽돌 같은 애였다. (P.199)

 

여기서 작가의 관심은 지켜보는 아이들, 즉 방관자에게 주어진다. 방관자는 이해관계가 없으므로 굳이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개입할 이유가 없다. 언뜻 보면 그에겐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방관자의 존재 자체가 이미 가해자에게 승리감을, 피해자에게 패배감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나쁜 짓을 해도 누구도 말리지 않고 내가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누구도 내 편이 되어주지 않을 때 인간관계는 뒤틀리기 마련이며, 신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악영향을 받는다. 방관자는 이처럼 폭력을 묵인하는 동시에 잠재적 피해자가 될 우려가 있다. 작가는 방관자의 위선적 태도를 한 꺼풀 벗기기 위해 밀그램의 실험을 소개하고, 마틴 루서 킹의 격언을 인용한다.

 

자기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 에릭은 생각했다. 그 못된 장난에 참여한 적이 전혀 없으니 말이다. 할렌백을 괴롭히기 위해 손가락 하나 까딱한 적도 없고, 그 게임이 재미있다고 생각한 적도 없었다. 그래서 에릭은 한 걸음 물러난 채, 그저 못 본 척했다. 하지만 사실 에릭은 모든 것을 다 보고 있었다. 복도에 있는 다른 아이들처럼 말이다. 그리고 점차 그 장난의 본질을 깨닫기 시작했다.

그건 청바지를 입은 악동들의 테러였다. (P.101)

 

그리고 방관자는 언제든 자신이 피해자의 위치로 전락할 수 있다. 작품 내에서는 에릭이 그리핀의 무리에 거리를 두기 시작하자 그리핀은 할렌백에서 에릭으로 괴롭힘의 대상을 변경한다. 이제 주변에 에릭을 도와주는 사람은 같은 처지의 메리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다. 방관자 대다수는 자신이 피해자가 될 가능성을 예감하지 못하거나 그 위험성을 염두에 두기에 더욱 몸을 사리게 되는 행동 방식을 선택한다.

 

가해자 그리핀의 왜곡된 성격, 그를 배태한 불완전한 가족관계는 이 작품에서 살짝 드러나지만 그것이 학교폭력을 변호할 수 없다. 가정환경을 탓하자면 에릭도 그리핀에 못지않게 열악한 처지이므로. 결국 당사자의 수용 방식에 따른 것이다. 피해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에서 할렌백과 에릭은 상반되는 대응 태도를 보인다. 할렌백은 피해자인 동시에 스스로 가해자가 되려고 한다. 폭력의 전형적인 대물림 구조이지만 폭력 자체를 해결하지는 못한다. 그는 여전히 피해자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한다. 반면 에릭은 폭력에 저항한다. 물리적 폭력도 에릭의 정신을 굴복시키지 못한다. 그리핀이 에릭을 놓아두는 것은 그를 괴롭혀봤자 자신에게 별달리 득이 될 게 없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학교폭력을 억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권위는 학교 당국이 가지고 있다. 학교 당국은 학교폭력의 인정과 처리에 의외로 소극적이다. 이 책에서도 그리핀은 여전히 아무 일 없는 것처럼 학교에 다니고 있다. 칼을 소지했다는 근거 없는 제보만으로 에릭의 사물함을 이 잡듯이 뒤지는 교사들이 어째서 에릭과 할엔 백의 폭행당한 흔적에는 둔감한지. 근거 없는 제보자에 대해 어떤 조처를 했는지 여기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다. 물론 이해는 된다. 학교폭력의 발생은 학교 관리자 입장에서는 자신의 관리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여차하면 향후 교사의 경력 및 승진에서도 감점 요소가 되므로 누구도 원치 않는다. 다만 학교폭력에 대한 학교 당국의 외면은 가해자와 피해자, 그리고 방관자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낸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리핀 코넬리의 문제는 저절로 사라질 문제가 아니었다. 에릭이 뭔가 행동에 옮기지 않는 한 계속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P.187)

 

학교폭력은 방치하면 저절로 해결되는 사안이 아니다. 시간의 힘은 가해자의 공격성을 강화하고 피해자의 억압과 분노를 심화시킨다. 방관자는 도덕과 윤리의 기준이 모호해진다. 학교 당국은 잠재적 핵폭탄을 키우고 있을 따름이다.

 

이 작품의 결말은 아무것도 해결되지 못한 상황을 보여준다. 그리핀도, 에릭도, 할렌백도 여전하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화로운 중학교의 외양이다. 에릭 자신은 학교폭력의 그물망에서 벗어나 평범한 학생의 위치로 복귀하였다. 개인 차원에서 해결이지만 구조 차원에서는 달라진 바 없다. 그것은 학교폭력은 근원적 해결 없이는 뿌리 뽑을 수 없는 사안이라는 것을 작가가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개정증보 2판) - 복잡한 세상 명쾌한 과학
정재승 지음 / 어크로스 / 202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2001년 초판 간행 이후 20년 이상 꾸준히 대표적 교양 과학서로 입지를 유지하고 있는 책으로 개정증보 2판까지 나왔다. 400면에 가까운 분량 중 커튼콜이라는 명칭으로 10년 주기의 증보 후기를 상당 부분 덧붙이고 있는 점이 이채롭다. 본문 내용 자체를 건드리기 어려우므로 시간의 경과에 따라 발전한 과학지식 또는 저자 자신의 새로운 견해를 커튼콜에 담고 있다.

 

이 책은 과학서이지만 과학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지 않다. 부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저자는 물리학자의 시선으로 복잡한 세상을 조망한다. 자연과학에서 구축한 과학적 방법론을 인문학과 사회과학에 적용하여 참신한 관점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는 다방면의 최일선 현장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있다. 그로써 저자는 독자의 시선도 기존의 제한적 틀을 벗어나 더 폭넓은 시각에서 사안을 바라보기를 희망한다.

 

인간의 역사는 그 어떤 시스템보다도 복잡하고 카오스적이다. 앞으로 물리학자들은 이 혼돈스러운 사회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 속에 숨은 질서와 법칙을 찾아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관해 새로운 이야기들을 들려줄 것이다. (P.299)

 

우리가 사는 세상은 복잡하다. 고려해야 할 변수도 많고 예측도 어렵기에 자연과학자들은 인문 사회 분야에는 분석의 칼을 들이밀지 않았다. 20세기 후반부터 복잡계 과학이 대두되면서 저자와 같은 연구자들은 세상을 일종의 복잡계로 간주하면 과학적 분석이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다양한 사회법칙, 예술문화 및 사회과학 제 분야의 사례들은 그 연구 성과라고 하겠다. 인상 깊었던 몇 가지 예를 기억 차원에서 언급한다.

 

머피의 법칙은 세상이 우리에게 얼마나 가혹한가를 말해주는 법칙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얼마나 많은 것을 무리하게 요구하고 있는가를 지적하는 법칙이었던 것이다. (P.47)

 

언어학에서 지프의 법칙, 경제학에서 파레토의 법칙, 베키의 법칙과 무수한 멱법칙. 이들은 각각 다른 이름으로 불리지만 공통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다. 바로 불평등과 불균형이다. 경제나 맥주 소비, 웹페이지 사용 빈도, 도시 인구 등 시스템은 다르지만 각 시스템은 특정한 몇몇 개체에 대부분의 숫자가 몰려 있고 대다수를 차지하는 나머지의 역할(빈도)은 미약하다는 것이다. (P.142)

 

결국 생명체는 질서정연한 방식으로 규칙적인 운동을 수행하는 정적인 시스템이 아니라 불규칙하지만 유연하고 역동적인 상태를 통해 급변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역동적인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이제 심장 박동은 규칙적이다라는 상식은 과감히 던져버리자. (P.156)

 

이 책을 통해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은 과학에 대한 무지와 맹신은 양자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과학의 시대에 인정하지 않고 외면만 하는 행위는 타조가 모래 속에 머리를 숨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의 바람과 인정 여부에 무관하게 이미 과학 기술의 역할과 중요성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되었다. 그렇다고 과학 자체를 만능으로 여기고 절대시할 필요는 없다. 과학은 목적이 아닌 수단이다.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존의 접근론으로 도저히 해결되지 않으므로 새로운 접근방법의 일환으로 과학적 시각과 방법론이 필요한 것이다. 증권시장에 뛰어든 물리학자들 덕택으로 시장은 더욱 정교화되고 규모는 팽창하였지만 동시에 불안정성과 위험성이 가중되어 금융위기를 가져왔다는 내용을 통해 수단으로서 과학의 한계와 제약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결국 저자의 주장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과학 지식이 아니라 논리적이고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능력이 아닐까 싶다”(P.89). 즉 이 책은 과학 지식 자체와 성과를 독자에게 전파하여 교양 수준을 제고하는 목적도 있지만 복잡한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단편적인 관점에만 의존해서는 안 되며 다양하고 복합적 관점이 필요하다는 점, 따라서 과학적 사고방식의 의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더욱이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서 혁신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도 더더욱 중요하다.

 

혁신은 엉뚱한 두 개념을 연결해 창조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을 연결해서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 이것이 바로 아이디어가 생산되는 과정이다. (P.350)

 

앞서 언급한 지프의 법칙 및 파레토의 법칙은 사회 체계 내 불평등과 불균형은 태생적이고 불가피함을 보여준다. 흔히 말하는 20 80의 구조가 고착화 될 수밖에 없다면 자연과학은 모르더라도 개인적으로든 사회적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여기서 자연과학과 인문 사회과학의 차이가 시작된다. 후자에서는 바람직하지 못한 고착구조를 개선하거나 깨뜨리기 위한 노력과 수단의 발견 내지 발명이 요구된다. 파레토의 법칙에 좌절만 하고 있다면 롱테일 법칙은 찾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저자는 복잡계 물리학자로서 자연과학의 시선을 자연현상에서 인간 세상으로 돌려볼 때 새로운 조망과 혁신이 가능하다고 믿는다. 이는 인문 사회학자들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신성불가침한 고유한 절대 영역이 있다고 단단한 방어막을 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게 아니라면 과감하게 자연과학의 방법론을 적용할 것이 요구된다. 자연과학이 만능이라고 인정하자는 것이 아니라 학문 간, 학제 간 소통과 협업이 무수한 변수들이 들어찬 복잡계로서의 세상과 사회 이해에 필요할뿐더러 그것이 연구자 개인은 물론 사회 전체적으로도 윈-윈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자연과학은 인문·사회과학과 만나서 새로운 학문으로 거듭 태어나고, 사회과학의 주제에 자연과학적 도구를 사용하는 접근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 자연과학자들의 연구 주제를 전 사회적 범위로 확장해야 하며, 인문·사회과학자들의 손에 테크놀로지의 연장을 쥐어주어야 한다. (P.313)

 

초판이 씌어진 지 오래되어 내용에 언급하거나 인용한 사례가 올드한 느낌이 있다. 젊은이들 중 O. J. 심슨 살인 사건을 아는 숫자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아프리카 문화와 프랙털을 소개하는 장에서 서태지 헤어스타일을 연관시키는데 당대에서야 서태지가 하나의 문화 아이콘이겠지만 현시점에서는 어떤 의미를 지닐까 의구심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베짱이 할아버지 - 제3회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보름달문고 2
김나무 지음, 강전희 그림 / 문학동네 / 2003년 6월
평점 :
품절


3회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수상작이라는 훈장을 달고 있음에도 의외로 대중적 인기는 얻지 못하였는지 현재는 품절(절판) 상태다. 사유는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분명하게 드러나는데 어린이의 흥미를 끌기에는 극적인 사건이 부재하고, 작품이 내거는 주제 의식이 너무나 노골적이어서 어린이의 감성과는 차이가 있어서다.

 

이 작품은 두 개의 부모-자식 관계가 절묘하게 병행하는 흐름을 보여준다. 시골에서 외할머니와 살던 화자 영철이는 외할머니의 죽음과 함께 상경하여 부모와 함께 살게 된다. 가족 상봉이니 행복한 나날이 예상되지만 현실은 그러하지 않다. 영철은 생활에 급급한 부모에게서 따스한 관심을 받지 못하자 부모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은 할아버지와 서서히 친하게 된 영철이는 오히려 그에게 일종의 가족애를 품게 된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슬픈 가족사를 지닌 인물이다. 과거에 피치 못할 사정으로 아이를 고아원에 맡길 수밖에 없었고 이제는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고 자식의 주변을 맴돌며 바라보는 것만으로 삶의 의의를 찾을 뿐이다. 그러기에 자신의 초라한 차림에도 상관없이 친밀하게 다가오는 어린 영철은 그에게 놓쳐버린 자식과도 같은 남다른 존재감을 지닌다. 아래는 베짱이 할아버지가 장님 아저씨에게 건네는 조언이지만, 실은 작가가 독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주제 문장이다.

 

절대로 아이들을 포기하지 마세요.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P.51)

 

대학생 딸아이에게 무어라도 도움이 되기 위해 애쓰는 베짱이 할아버지를 보면 안쓰러울 정도다. 분홍우산을 건네주며 뒤돌아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졸업식 날 초라한 꽃다발을 전달할 기회를 놓쳐 기운 없어 하는 그의 모습. 그가 영철이에게 털어놓는 옛날얘기는 회한으로 점철된 자화상이리라.

 

부모의 사랑이란 건 말이다......한두 가지가 아니거든. 엄하게 꾸중하면서 혼내는 사랑도 있고, 다정하게 대해 주는 사랑도 있을 테고, 잘 입히고 좋은 것 멕이는 사랑도 있을 테고. 그런가 하면......아무것도 못 해 주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못난 사랑도 있지. 있고말고.” (P.113)

 

가족의 사랑은 물질적 요건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희로애락을 함께 하고 고난을 더불어 헤쳐나갈 때 끈끈한 유대가 생겨난다. 그것이 온갖 어려움에도 가족을 맺어주는 접착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베짱이 할아버지는 바로 이것을 몰랐기에, 그저 어린 딸아이의 더 나은 행복을 위한 선택의 결과가 두고두고 회한을 남기게 되었다. 오늘도 그는 딸아이와 손주를 멀리서 바라보며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나날을 보낼 것이다, 평생토록. 늙어가는 그의 유일한 삶의 목적이므로.

 

문구점에서 편의점집 아들로 성장한 영철에게 베짱이 할아버지와의 우정은 영원히 가슴속에 남는 추억이다. 비록 한철이지만 영철은 그에게서 진짜 할아버지 못지않은 따스한 감정 교류를 하였으며, 영철과 부모가 진정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과도기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무엇보다도 할아버지는 영철의 친구였다. 할아버지의 비밀을 깨닫게 된 영철의 각오가 남다른 것은 이런 까닭이다.

 

할아버지의 슬픈 눈빛이 또렷하게 생각났습니다. 가슴 한쪽이 더욱 아렸습니다. 그러다 차츰, 나는 깨달았습니다. 베짱이 할아버지와 난 아주 특별한 친구였다는걸...... 나는 중요한 일을 한 사람만이 갖는 뿌듯한 기분에 휩싸였습니다. 그리고 다짐했습니다. 옛 친구의 비밀을 꼭 지켜 주겠다고...... (P.197)

 

이 작품은 첫인상과 주제 의식을 볼 때 얼핏 보면 진부하고 지루하게 비쳐질 여지가 많다. 실제로는 잔잔한 전개 속에 독자의 미소를 끌어낼 장면이 곳곳에 들어가 있어 책장을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다만 이것은 성인 독자의 관점이다. 주 대상이라고 할 만한 초등학생 어린이 독자에게는 다소 버거울 수 있겠다는 생각이다. 작가는 이야깃거리를 한꺼번에 확 드러내 놓지 않고 실타래를 풀 듯 조금씩 조금씩 늘어놓는다. 이 작품을 통해 영철이가 유치원생에서 초등학교 5학년으로 성장하듯이 어린이 독자의 내면도 나날이 영글어 가게 되기를 모두가 바라마지 않는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메타버스 비긴즈 - 인간×공간×시간의 혁명
이승환 지음 / 굿모닝미디어 / 2021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수년간 4차 산업혁명이 광풍처럼 몰아치더니 최근에는 메타버스 혁명이란 용어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고 있다. 내가 일하는 분야에서도 메타버스를 활용한 방안이 속속 제시되고 있는 와중에 더는 외면할 수 없는 찰나 이 책이 손에 들어왔다. 이 책을 통해 메타버스를 속속들이 이해하고픈 바람이다.

 

저자도 소개하고 있듯이 메타버스 개념 자체는 새롭지 않다. 용어는 다르지만 과거에도 메타버스에 해당하는 기술이 개발되었고 일정 부분 서비스로 도입되었다. 이른바 사이버 OO, 가상 OO 등이 그러하다. 당시는 사회적 수요도 적었고 이를 받아들이기 위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기 전이었으며 기술력도 부족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한동안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가 최근에 다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으로 대면 활동이 제약됨에 따라 더욱더 오프라인 같은 온라인의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이 책이 여타 메타버스 안내서와 구별되는 특장점을 가졌는지 비교하지 못해 알 수 없지만, 개설서로는 매우 짜임새 있고 내용과 흥미가 적절하게 균형을 이룬다. 구성과 수록된 내용으로 독자는 메타버스의 기본 기념과 혁신적 성격, 그리고 메타버스가 산업과 사회에 미치는 긍정적, 부정적 영향을 일목요연하게 이해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이 혁명에 도태되지 않도록 기업, 정부 및 개인이 메타버스에 동참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소개된 내용을 들여다보면 우리 주변에 의외로 메타버스가 이미 많이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포켓몬고의 열풍을 기억한다. 동물의 숲 에디션을 구하기 위한 부모들의 닌텐도 스위치 구매 열풍도 있다. 확산 중인 VR 기반 서비스도 만만치 않다. 온라인게임에서 자신의 아바타를 자신과 동일시하고 꾸미는데 아낌없이 투자하는 게이머들도 많다. 비단 게임이 아니라도 가상인간, 가상공장, 사이버 공연은 이제 낯설지 않다. 문학과 영화 장르에서는 오래전부터 가상 세계를 배경으로 다루었다. <매트릭스> 시리즈, <주만지> 시리즈 등. <레디 플레이어 원>을 보면 가상 세계와 현실 세계 중 무엇이 진정한 현실인지 헷갈릴 경우도 있다. 오래전 장자가 꾼 꿈이 이제는 고사성어에 머물지 않게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아직 메타버스를 제대로 경험하거나 동참하지 않은 상태다. 기껏해야 온라인 회의 목적으로 줌(ZOOM) 또는 구글 미트(MEET)를 사용하고 있다. 메타버스가 더욱 고도화된다면 이 책에 소개되었듯이 실제와도 같은 온라인 사무실이 기본이 될 날도 멀지 않으리라. 아바타의 시선을 통해 내가 가상 세계 속 인물과 사물을 교류하고 접촉하게 되는 경험 말이다.

 

메타버스에 대한 기대감과 우려감이 병존하는 현실이다. ‘4차 산업혁명처럼 메타버스 혁명은 변화가 가져올 기대감과 긍정적 요소를 강조한다. 자칫 음지의 어둠이 양지의 빛을 덮어버릴 수 있다. 메타버스가 과연 혁명으로 이어질지 현재로서는 속단할 수 없다. 찻잔 속의 태풍으로 그칠 가능성도 배제 못 한다. 분명한 것은 무언가 변화하고 있으며 메타버스가 여기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메타버스의 지향점이 어떠하든 우리가 사는 세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싫든 좋든 여기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는 동시대인에게 요구된다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