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엘리어트
멜빈 버지스 지음, 정해영 옮김 / 프로메테우스 / 2012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원작 영화에 바탕을 두고 소설화한 작품이다. 이 경우든지 또는 반대의 경우든지 성공한 원작의 유명세가 개작의 성공을 담보하지 못하는 사례가 많다. 장르에는 각기 고유한 예술 미학이 있기 마련이므로 원작의 오리지낼리티를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개작의 독자성을 확립할 것인가를 선택할 필요가 있다. 이 작품에 국한하여 평한다면, 원작을 관람하지 못한 나로서는 소설에서도 나름의 감동과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고 판단한다.

 

궁벽한 탄광촌, 가난한 살림살이, 엄마의 죽음으로 인한 편부 가정, ‘상류층의 계집애나 하는발레에 관심과 재능을 보이는 아들, 편견과 반대를 극복하고 발레단의 주연 남자무용수가 되는 아들. 줄거리의 요점을 대강 짚으면 이렇다, 매우 진부하면서도 감동을 심어주는 설정이자 구성이다.

 

자칫 상투적이기 쉬운 이 작품에 다른 읽을거리를 부여한 점은 탄광의 파업이다. 소위 영국병을 치료하기 위한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접근방식을 도입한 대처 총리가 강경하게 밀어붙인 곳이 탄광이다. 자본과 효율성의 논리로 보자면 당연한 조치라고 하겠고, 그것이 당대 및 후대에 좋은 평가를 얻었다는 점도 원리적으로 보면 마땅하다. 문제는 그것이 단순히 수익성과 효율성의 관점으로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제아무리 사양산업이지만 광부들과 그들의 가족들의 생계가 달려있으므로 그들에게는 생사가 달린 절박하고 절실한 사안인 것이다.

 

법은 무기지만, 우리를 위한 무기가 아니다. 법이 언제 우리 노동자 편인 적이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변호사, 판사, 경찰 간부들. 그들은 대개 자본가 편에 선 작자들이 아니던가. (재키, P.79)

 

소설 곳곳에는 정부와 경찰에 대한 비판과 경멸에 가까운 대목이 자주 등장한다. 작품의 주인공 가족이 상대적 약자인 광부이므로 그들의 시각에서 파업을 저지하고 노조를 탄압하는 정부를 좋게 볼 수가 없을 것이다. 또한 정부 조치를 실제로 현장에서 실행하는 경찰도 마찬가지다. 굶느냐 마느냐, 추위에 덜덜 떠느냐 마느냐, 나아가 죽느냐 사느냐가 걸린 투쟁의 현장에서 생계유지와 전혀 무관한, 즉 없어도 하등 아쉬울 것 없는 발레를 한다는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따름이다. 이렇듯이 이 작품은 좁게는 한 소년의 꿈의 실현이라는 성장 소설적 관점에서 볼 수 있지만, 넓게 보면 사회계급 간 갈등과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모색한 것이다.

 

작가는 한 가지를 더 추가하였으니 동성애에 대한 인식이다. 계집애나 하는 발레를 남자아이가 한다고 해서 그 아이의 성향이 곧 계집애는 아니다. 운동은 남자, 예술은 여자로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편협한 사고방식이다. 하지만 사회적 선입견은 뿌리 깊다. 빌리의 가족이 처음에 펄쩍 뛰었던 것도 그러한 인식과 우려와 무관하지 않다. 작중에서 빌리의 친구 마이클은 서서히 동성애적 성향을 드러내며 이에 대한 빌리의 우정은 변함없다. 물론 이 작품의 핵심이 동성애 사안이 아님은 분명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집으로 오는 내내 혼자 연습을 하면서, 비로소 나는 내가 춤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말 아찔한 기분이었다. (빌리, P.64)

 

자신이 정말 하고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일찍 알아차릴 수 있다면 행운이다. 게다가 하고 싶은 것이 자신이 남다른 재능이 있으며 그걸 알아차릴 수 있다면 더 큰 행운이다. 빌리는 행운아다. 재능을 지닌 많은 아이가 눈에 띄지 못한 채 서서히 스러지는 게 다반사인 세상이다. 그래서 빌리가 윌킨슨 선생님을 만난 것도 행운이다. 뛰어난 예술가는 저절로 생겨나지 않는다. 재능을 알아차리고 이끌어 줄 수 있는 스승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훈련을 쌓기 위한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사람도. 그게 부모든 아니면 다른 후원자든. 빌리는 제대로 실감하지 못할 것이다. 빌리의 학비 일체를 마련하기 위해서 재키가 얼마만큼의 고민과 노력을 감수해야 했는지. 소중히 간직한 결혼반지를 전당포에 넘기고, 파업 동지를 배신하고 탄광에 복귀하려고 하는 참담한 심정. 배신자의 돈을 받아야만 하고, 파업 실패 소식에 오히려 일해서 학비를 벌 수 있다는 안도감 등을.

 

빌리가 발레 수업을 허락받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자신의 용기뿐만 아니라 가족의 반대도 극복해야 했다. 사회적 편견뿐만 아니라 아들의 장래를 염려하는 아버지의 현실적 사유도 반대의 충분한 명분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죽은 엄마 사라는 현실 인물 못지않게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망설이는 빌리는 꿈에서 엄마의 뜻과 바람을 확인한다. 재키는 죽은 아내의 처지에서 빌리의 사안을 새로이 바라보며 자신의 반대가 올바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사라라면 빌리의 발레를 무조건 지지하고 응원하였을 터이므로. 부모가 원하는 꿈이 아니라 자식이 바라는 꿈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게 부모의 참다운 역할임을.

 

나는 정말로 가슴이 찢어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게다가 그건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도 아니었다. 자꾸만 사라가 내게 그렇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재키, P.192)

 

발레는 단지 빌리 엘리어트의 개인적 성공만을 가져오지 않았다. 발레를 통하여 빌리네 가족은 하나가 되었다. 엄마의 죽음과 파업 사태 이후 뿔뿔이 흩어지고 반목하던 재키와 토니, 빌리는 빌리의 발레가 갖는 의미를 깨닫고 이룰 수 있도록 분투하는 과정에서 가족의 가치를 깨닫는다. 재키는 자신이 모든 것을 감당하고 책임질 수 없음을, 토니는 아빠의 눈물을 보면서 더 만사를 아빠에게 책임 지우고 의존할 수 없음을.

 

그렇다. 파업은 어떤 집을 갈라놓기도 하지만, 또 어떤 집은 단단하게 뭉치게도 한다. 그렇더라도, 나는 재키와 토니가 발레란 것 때문에 또 이렇게 뭉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조지, P.224)


문득 원작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과 구성에서 소설과는 얼마나 다를 것인지 궁금하다. 무엇보다도 영상 매체를 통한 예술적 느낌이 글자 매체로 읽었을 때의 감흥과 동등한 수준일지 확인해 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보물섬 비룡소 클래식 1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정영목 옮김 / 비룡소 / 2003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렸을 때 흥미진진하게 읽었던 추억의 모험소설이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읽음에 그런 생생한 감정을 갖지 못하니 한편 아쉽다. 나이의 다소, 축약본과 완역본의 차이 등이 분명히 영향을 미친다. 반면 완역본이 주는 풍요로운 내용의 향유, 줄거리만 쫓아가느라 놓쳤던 대목과 장면의 재발견 등은 장점에 해당한다.

 

<배의 주방장>이 원래 제목이라는 작가의 말을 통해 존 실버라는 인물의 비중과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확실히 전반부를 짐 호킨스가 단독으로 끌고 간다면, 후반부는 호킨스와 실버가 공동 주연이라 하겠다. 특히 강렬한 개성의 표출이란 면에서는 실버를 당할 인물이 없다.

 

실버는 해적치고는 독특한 유형이다. 해적이 어떤 사람들인지 겪어봐서 충분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 호킨스조차 의심의 눈초리로 실버를 살펴봤음에도 그에게서 전혀 해적의 낌새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하물며 지주와 의사 같은 사람들은 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음을 반복적으로 표현한다. 오직 선장만이 유보적 태도를 취하는데, 딱히 개인적 차원의 의심이 아니라 선장이라는 직업적 속성의 발로라고 할 것이다.

 

나는 선장, 검둥개, 장님 퓨를 보았기 때문에 이제는 해적이 어떻게 생겼는지 안다고 생각했다. 해적이란 내 생각에 따르자면 이런 깨끗하고 유쾌한 술집 주인과는 아주 다른 인간이었다. (P.103, )

 

, 지주님, 전체적으로 나는 지주님이 찾아낸 사람들을 크게 신뢰하지는 않습니다만, 존 실버만큼은 마음에 든다는 이야기를 해 두고 싶군요.” 의사가 말했다.

저 사람은 완벽하게 믿을 만하오.” 지주가 말했다. (P.113)

 

일행이 폭동의 음모를 간파하고 무사히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우연의 개입 덕분이었다. 그를 나타내는 표현을 들자면, 음흉, 교묘, 영리, 그리고 잔인이라고 하겠다. 대개의 악역이 무모하고 성급한 데 비해 실버는 참고 때를 기다릴 줄 알면서 자신을 위장하는 데 능숙하다. 교묘한 언변으로 무지한 해적들의 충동을 억누르면서도 필요하면 냉정하고 잔인한 면모를 서슴없이 보여 준다. 해적들이 그의 말을 따랐다면 이 소설은 금방 끝이 나고야 말았으리라.

 

실버와 대비되는 인물은 선장이다. 선장은 선원들은 물론 처음부터 지주와 짐의 호의도 얻지 못하였다. 깐깐하고 고지식함에서 비롯한 오해와, 무엇보다 그들의 조심성 없음을 나무라고 특별 취급을 하지 않는 데 대한 반감일 것이다.

 

내가 서둘러 주방으로 달려가는데, 선장이 의사에게 아주 큰 목소리로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내 배에서는 누구라고 특별히 예뻐하지는 않을 겁니다.”

분명히 말해 두지만, 나는 지주와 생각이 똑같아 선장을 무척 미워했다. (P.124)

 

선장으로서는 세상 물정 모르는 승객들이 어리석고 답답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이것은 기분전환 뱃놀이가 아니며, “죽느냐 사느냐의 아슬아슬한 모험”(P.117)임을 깨닫지 못하므로. 부정적 인상을 받은 선장의 진가는 예방 조치와 통나무집에서 포탄의 위협에 깃발을 내리길 거부하는 단호함에서 드러난다. 실버의 위협 앞에서도 그는 당당하게 실버를 공박하며 모욕적 언사를 퍼부을 정도다. 그는 세련되고 사교적인 인물이 아니지만 깊은 책임감을 지닌 옹골차며 강인한 인물이다.

 

내 깃발을 내리라고요!”

선장이 소리를 지르더니 덧붙였다.

안 됩니다. 나는 못 합니다.”

그의 말을 듣는 순간 우리는 모두 그 말에 동의했던 것 같다. 그것이 강인하고, 뱃사람답고, 선한 감정이었을 뿐 아니라, 적에게 우리가 그들의 포격을 우습게 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전략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P.227)

 

짐 호킨스는 소설의 공동 주인공인 동시에 사태 해결의 열쇠를 푸는 역할이다. 작품의 커다란 굴곡점에는 항상 그가 개입한다. 보물섬 지도를 품에 넣고, 실버 일당의 음모를 엿들었으며, 벤 건을 만나고 닻줄을 끊은 히스파뇰라 호를 숨겨두는 등 작중 유일한 소년인 그가 없었다면 소설은 쓰이지 못하거나 해적 일당의 손쉬운 승리로 끝나고 말았을 것이다.

 

물론 그에 대한 비판적 의견도 가능하다. 보물섬에서 짐은 언제나 단독 행동을 감행한다. 이것이 가져온 성공적 결과는 소설이기에 가능하다고 봐야겠다. 게다가 항상 우연의 행운이 짐에게 유리하게 작용한 덕택도 무시할 수 없다. 사려 깊고 심사숙고하지 못함은 그의 소년으로서의 한계인 동시에 소설 독자를 염두에 두었다고 봐야겠다. 그럼에도 결과가 항상 만사를 면죄해주지 못한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어리석은 짓으로, 앞서 내 멋대로 보트를 탔던 것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짓이었다. 요새 안에는 성한 사람이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이번 일 역시 결국은 우리 모두를 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P.271)

 

배를 탄 많은 인물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거나 무인도에 버려지는데, 악역 중에서 유일하게 실버만 무사히 생환에 성공한다. 해적의 우두머리이자 최고의 악당인 그가 비참한 결말을 맞이하지 않은 데는 그에 대한 작가의 편애가 있어서다. 엄청난 악당이자 소름 끼치는 사기꾼이고, 무자비한 해적이자 잔인한 살인자이고 간교한 배반자. 상황을 직시하는 명확한 판단력과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결단력, 무엇보다 짐에 대한 일말의 호의가 그를 살린 동시에 그를 매력적인 인물로 만들고 있다. 이 때문에 독자는 그를 미워할 수는 있되 차마 싫어할 수 없다.

 

어마어마한 보물은 자석처럼 사람들의 탐욕과 허용을 끌어당긴다. 위험할 줄 알면서 목숨을 감수하면서도 보물을 찾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이 작품에서도 보물 때문에 많은 사람이 죽음을 맞이한다. 보물을 발견하면 모두가 행복할까? 그렇지 않음을 소설의 결말은 또한 우리에게 보여 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킬 박사와 하이드 씨 비룡소 클래식 33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지음, 에드워드 윌슨 그림, 박광규 옮김 / 비룡소 / 2013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모든 사람은 천사와 악마 그 중간 어디쯤에 놓여 있다. 선인은 천사에 더 가까이 위치해 있고, 악인은 악마에 더 가까울 뿐이다. 사람의 내면에는 선과 악이 공존한다. 선천적 본성과 후천적 학습과 사회의 규율에 따라 악을 억누르고 선을 표방하며 살아가는 게 사람의 모습이다. 권선징악은 인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한 필수적인 구호다. 우리는 악을 혐오하고 악인을 미워하는 성향을 지닌다. 그럼에도 역사를 통틀어 수없이 발생하는 악을 향한 거부할 수 없는 끌림은 우리에게서 악을 제거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증명할 뿐이다.

 

지킬 박사의 비극은 그가 제2의 파우스트 박사가 되려고 한데 있다. 절대 지식을 추구하고 선악의 극한을 탐험하는 위험은 인간이 자신의 본성을 잃을 가능성이 커짐을 뜻한다. 절제되지 않는 쾌락이 탐닉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듯이 제어되지 않는 악은 타락의 덫에서 놓여나오지 못하게 된다. 자신의 심신이 쇠잔해질 때까지 그리하여 인간성이 상실될 때까지 말이다. 그 끝에서 하이드 씨가 나타난다. 모든 사람이 하이드 씨를 접할 때 보이는 공통적 반응은 현실 세계에서 불가능한 현상을 목도함에 따른 것이다. 순수 악 또는 절대 악의 구현, 즉 악마를.

 

뭔가 불쾌하고 싫거든요. 그렇게 혐오감을 주는 사람은 평생 처음이었지만, 왜 싫은지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어딘가 잘못된 것이 틀림없는, 어디라고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크게 잘못되었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P.20)

 

이 소설의 전반부가 변호사 어터슨의 시각에서 사건을 조망하는 반면, 후반부는 래니언 박사의 진술과 헨리 지킬의 참회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킬 박사는 인간의 이중성을 분리하여 추한 모습을 하나의 실체로 구현하였다. 자신의 능력으로 하이드를 통제할 수 있다고 자신하였다. 자신의 생각이 오만이었음을 깨달았을 때 그는 이미 하이드에게 지배당하였다. 수렁에 빠진 사람처럼 한발 두발 가라앉는 상황에서도 그는 사악한 탐욕의 쾌락을 포기하지 못하였다.

 

죄를 범하는 것은 결국 하이드였으니까 그건 하이드인 거라고 생각했지. ‘지킬은 잘못이 없다고. 다시 자기로 깨어나 보면, 선량한 본질은 상실되지 않고 그대로 있으니 지킬 박사는 기회만 있으면 하이드가 저지른 죄를 서둘러 지워 버리고자 애쓰기도 했지. 이렇게 하는 동안 양심은 차츰 마비되어 갔지. (P.132-133)

 

지킬 박사의 참회는 결국 궤변이다. 지킬과 하이드는 별개의 인물이므로 하이드가 누린 쾌락은 물론 그가 저지른 온갖 악행은 지킬과 하등의 관계가 없다라는. 하나의 정신과 하나의 육체에 두 인간이 공존할 수 없음을 그는 알지 못하였다. 하나의 생명체라고 인정하는 즉시 하이드는 자신의 생존을 위한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생명체의 본성이므로. 하이드는 지킬을 제거하고 완전한 하이드가 되기를 소망한다.

 

지금 나는 라고 하고 있네. ‘라고는 부를 수가 없어. 이 지옥의 아들에게는 인간다운 데가 조금도 없었네. 마음속에 공포와 증오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지. (P.147)

 

지킬 박사는 하이드를 라고 부르며 자신이 아닌 다른 존재임을 인정한다. 최초에 그의 것이자 동시에 자신의 것인 추한 얼굴에 기쁨을 느꼈던 그가 이것을 부인하고 만다. 영혼의 공존이 영혼의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는 반쪽 영혼의 소멸로 귀결된다. 남은 반쪽에 대해 지킬 박사는 상관없다고 말한다. 그는 이제 지킬 자신이 아닌 남인 하이드 씨이므로. 지킬은 이제 죽었다고 말하며.

 

나는 상관없네. 지금 나는 정말로 죽음을 맞이하네.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기든 그것은 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일이네. 그러므로 나는 여기서 펜을 놓고 이 참회록을 봉하고 불행한 헨리 지킬의 생애를 마치고자 하네. (P.153)

 

여기서 반문한다. 이 소설에서 하이드 씨는 옴짝달싹 못 하고 자살을 선택하고 말지만, 만약 그가 세상 속으로 활개 치며 돌아다닐 수 있었다면 그가 남긴 온갖 흔적은 정말 지킬 박사와는 무관한 것인가. 자신의 피조물에 대해 그는 너무나 무책임하지 않은가. 나는 그럴 줄 몰랐어요, 애초에 의도는 순수하고 좋았어요. 그것과 나는 상관없어요 하고 어깨를 으쓱하면 그걸로 끝인지. 오늘날 과학연구의 순수성을 주창하는 일부 과학기술자들이 그러하듯이.

 

부디 내게 주어진 어두운 길을 걸어가도록 내버려 두게나. 나는 지금 비할 데 없는 천벌과 위험을 스스로 불러들였다네. 세상에 다시없을 죄인임과 동시에 더할 수 없는 고뇌를 짊어진 인간이지. 이토록 인간의 마음을 약하게 하는 고뇌와 두려움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싶네. (P.71)

 

이 글만 읽으면 우리는 글쓴이의 고뇌와 연약함에 동정을 금할 수 없다.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허덕이는 가련한 인간의 한계. 거짓 필적으로 하이드의 존재를 숨긴 인물은 누구인가. 변호사에게 유언장을 남기고 하이드를 지켜 달라고 부탁한 사람은 누구였던가. 지킬 박사는 위태로운 동거의 결말을 예감하면서도 죄악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락의 길을 선택하였다. 그것은 결코 그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이 소설을 인간에 내재한 선과 악의 모습을 극한으로 끌어올려 생생하게 보여주었다고 평가한다. 물론 자체로서도 빼어난 성취이지만, 작가는 제어되지 못한 지식과 욕망의 위험성을 현대판 파우스트 박사를 소환하여 다시금 일깨우고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래니언 박사에게 제안하는 하이드는 파우스트를 유혹하는 메피스토펠레스와 닮은꼴이다.

 

당신이 원하기만 하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지식과 명예를 얻을 새로운 길을 지금 당장 이 방에서 눈앞에 열어 드리겠습니다. 악마도 놀라 당황할 정도의 기적으로 당신의 눈을 어리둥절하게 만들어 드리지요. (P.118)

 

완전하고 더없이 순수하다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니며, 그것이 반드시 올바르고 좋은 것을 뜻하는 것도 아니다. 자신 속에 내재한 양면적이고 모순적인 본성을 인정할 때 비로소 우리는 주변을 돌아보게 된다. 인간이 인간적인 이유는 불완전성에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찰리와 거대한 유리 엘리베이터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지혜연 옮김 / 시공주니어 / 200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찰리와 초콜릿 공장>의 속편이다. 전자가 도시와 공장으로 영역이 국한되었다면, 이번 편에서는 스케일이 크게 확장되었다. 위로는 우주공간, 아래로는 땅속 깊이로. 우주에서는 왕꿈틀이라는 외계 생명체와 사투를 벌이고, 땅속에서는 마이너스 랜드를 방문한다. 이 모든 여행의 운송 수단은 바로 유리 엘리베이터. 말이 엘리베이터지 그야말로 만능이며 우주선보다도 최첨단의 기술을 탑재하고 있으니 우주비행사들이 입을 딱 벌릴 만하다.

 

이 안에 있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유리 엘리베이터는 방충격, 방수, 방폭탄, 방탄 그리고 방왕꿈틀이로 설계되어 있거든요! 그러니 안심하고 즐기시길 바랍니다.” (P.94)

 

이 작품은 찰리네 일가족이 총출동하는데, 각자 개성이 명확하다. 침대에서 일어날 줄 모르는 3인방 노인네. 그중에서 조세핀 할머니와 조지아나 할머니는 완전 투덜이 전문이다. 웡카 씨뿐만 아니라 독자들마저 짜증 나게 할 정도로 매사에 심술궂고 언제나 투덜거리는”(P.225) 두 할머니는 웡카 씨의 독주를 제어하고 소설에 다소나마 현실성을 부여하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어쩌면 그들의 모습이 더욱 실제에 가까우리라.

 

가족이 아닌 남을 믿지 못하고, 고령에 침대 생활만 함에도 살려 달라고 악을 써 대며 발버둥치고”(P.122) 있는 그네들. ‘젊음을 되찾아 주는 위대한 약을 앞에 두고 가족과 체면 상관없이 마구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다투는. 절대 침대를 떠나지 않을 것 같던 그들이 백악관 초대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적적으로 몸을 일으켜 용수철처럼 달려 나가는 장면! 이 소설에서 아쉬운 건 찰리 부모인 버켓 씨 부부의 지나친 소극성과 미약한 존재감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갑자기 뒤에서 휘익담요와 침대보 들치는 소리가 나더니 용수철이 피웅 퉁기는 소리가 들렸다. 세 노인이 침대에서 펄쩍 뛰어내린 것이다. 노인들을 웡카 씨를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다.

기다려요! 기다리라구!”

노인들은 놀라울 정도로 빠른 속도로 그 넓은 초콜릿 방을 가로질러 달려왔다. (P.241)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 작품의 주인공은 웡카 씨며, 찰리와 조 할아버지는 충실한 조력자의 구실을 한다. 웡카 씨는 여전히 천방지축이지만, 압도적인 지적 능력을 과시한다. 그는 무시무시한 왕꿈틀이의 정체를 아는 지구상의 유일한 인물이다. 그는 왕꿈틀이와 결부시켜 유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데 흥미롭다. 게다가 우주와 정반대의 깊은 지하공간인 마이너스 랜드의 존재도 알고 있으며, 여러 번 방문한 적도 있다. 초콜릿 단계를 뛰어넘은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가 보여주는 놀라운 약효는 기절초풍할 만하며 침대 3인방이 치열하게 쟁탈전을 벌일 정도로 매혹적인 생산물이 아니겠는가! 한 무제와 진시황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것이었으니 말이다.

 

전작과 비교해서 두드러진 차이점은 정부 고위 관료들의 등장과 그들에 대한 노골적인 풍자다. 우주 호텔과 수송용 캡슐의 유리 엘리베이터 조우, 왕꿈틀이의 공격에 맞닥뜨린 대통령과 부통령 이하 각료들이 보여주는 행태는 조소와 냉소의 완벽한 결합이다. 온통 가짜인 정보국장, 글자 그대로 장부의 균형을 맞추려고 애쓰는 재무보좌관, 쾅쾅 펑펑 부수는 것만 아는 육군참모총장 등은 일차원적인 풍자에 해당하지만, 바보 대통령과 그의 유모 출신 부통령의 역할은 냉소에 가깝다. 실제 권력의 배후세력인 부통령 팁스 양에게서는 최근에 읽은 <마틸다>의 교장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른다.

 

정치인 풍자의 가장 압권은 부통령이 부르는 유모의 노래에 담겨 있다.

 

그래서 내가 제안을 했지 / 아하! 이런 얼간이도 정치가가 될 수는 있을걸요. / 유모, , 유모! 정말 근사한 생각이야! / 하고 아이가 맞장구쳤지

[......]

이제 내 나이 여든아홉이니 / 후회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네 / 전부 내 탓이지 / 저 미련한 돼지 같은 녀석이 / 대통령이 되었으니 말이야 (P.104)

 

웡카 씨는 물욕이 없는 사람이다. 그는 거대한 초콜릿 공장을 기꺼이 찰리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그는 위대한 약인 웡카바이트와 바이타웡카를 개발하였지만 이것으로 부를 축적하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초콜릿과 위 두 가지 약, 그리고 유리 엘리베이터로 뭇사람들의 환상과 욕망을 실현하는 데 만족한다. 그것에 이기적인 욕심을 품지 않는다. 그래서 웡카바이트를 둘러싼 침대 3인방 노인의 다툼에 웡카 씨는 뒷짐을 질 뿐이다.

 

왜 사람들은 터무니없이 욕심부리고 이기적으로 행동할까. 싸우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게 내버려두어야겠다. 보물이 눈앞에 있으면 누구나 예의를 걷어차는군. 정말 불행하기 짝이 없는 현실이야.” (P.166-168)

 

사람들의 욕망과 환상 실현을 위한 웡카 씨의 활동에는 한계가 없다. 이 작품의 전반부가 우주공간, 후반부가 공장 내부와 지하세계라는 수직적 횡단을 오가는 것이 그러하다. 조지아나 할머니의 나이를 마이너스에서 메이플라워호 당시까지 극단적으로 늘려놓는 장면도 그러하다. 미국 대통령과 전 세계가 지켜보는 상황에서도 눈가에 반짝 웃음이 스치며 예상 밖의 행동을 거침없이 벌일 수 있는 게 바로 웡카 씨다.

 

우리는 알고 있다. 웡카 씨가 설명이 곤란한 대목에서는 구렁이 담 넘어가듯 은근슬쩍 넘어가려 한다는 걸. 작가가 그려내는 웡카 씨의 종횡무진한 활약에는 꼼꼼한 이성의 힘으로 파헤칠 경우 수많은 빈틈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전작뿐 아니라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있을 법하지만 너무나 과장하였기에 사실상 그렇지 못하다는 점도. 그럼에도 독자는 웡카 씨의 돈키호테 같은 언행에 도리어 호감과 공감을 느끼며 결코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틸다 (양장) - 로알드 달 베스트
로알드 달 지음, 퀸틴 블레이크 그림, 김난령 옮김 / 시공주니어 / 2004년 2월
평점 :
절판


로알드 달의 동화는 상투적이지 않다. 그의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은 어리지만, 결코 약하지 않다. 그를 괴롭히는 나쁜 어른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대신 합당한 복수를 실행한다. 동화 속 주인공은 항상 아름답고 착하고 모범적인 인물이라는 도식의 틀을 그는 거부한다. 이러한 의외성과 (아이의 입장에서) 반격의 쾌감이 그의 작품의 매력이다.

 

<마틸다>는 나쁜 어른 vs 착한 아이의 대결 구도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주인공 마틸다의 부모는 한마디로 최악의 부모다. 그들은 딸에게 매우 차별적이며, 마틸다의 빼어난 능력을 외면한다. 속물적이고 탐욕적인 동시에 중고차 사기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는 도덕적 불감증도 지녔다. 마틸다를 무시하고 폭언도 서슴지 않는다. 마틸다는 복수와 반격을 가한다. 초강력 접착제 소동, 유령 소동, 머리 염색 소동이 그것이며, 학교에 다니면서 새로운 세상을 접하지 않았다면 소동은 계속되었을 것이다.

 

하니 선생님의 어린 시절은 마틸다보다 한층 더한다. 부모의 사별 후 보호자가 된 이모에게 갖은 학대와 착취를 겪은 그녀는 불행하게도 마틸다만큼 강하지 못하였다. 자신의 말처럼 어렸을 때 싹이 짓밟혀 버렸기에 성인이 된 후 집을 뛰쳐나와 오두막에 초라하게 머무르는 게 그녀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용기였던 셈이다.

 

암흑과 악몽의 유년 시절이라는 공통분모를 지닌 그들이 맞닥뜨린 거대한 적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이다. 이 동화에서 트런치불 교장은 나쁜 교사로서 거의 신화적인 존재감을 자랑한다. 크고 당당하며 거친 외양과 태도. 비교할 데 없이 막무가내인 언사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행동 등. 교육자로서 전혀 부적절한 아이들에 대한 험담과 적대감의 노골적이고 반복적인 표출은 물론이다. 투포환 하듯이 멀리 집어던진 아만다, 머리칼을 움켜쥐고 들어 올린 루퍼트, 두 귀를 잡고 높이 들어 올린 에릭, 한쪽 다리를 잡고 거꾸로 들어 올린 윌프레드. 현실로는 불가능한 행위라는 것을 알면서도 트런치불 교장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할 정도다. 악역이지만 워낙에 개성적이며 압도적인 캐릭터이기에 강한 인상을 주는 사례에 해당한다.

 

하니 선생님이 자신의 초라한 오두막으로 마틸다를 데리고 간 것은 무슨 목적이었을까? 분명 의식적으로는 아니었겠지만, 마틸다가 평범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과 그의 초능력의 목도는 혹시 그가 자기의 뒤엉킨 삶을 해결해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 어른에게 고통받는 어린 시절이라는 유대감에 마음을 터놓는 친구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단순한 생각일 수도 있다. 어쨌든 하니 선생님의 집 상태와 사는 모습을 알게 된 마틸다는 하니 선생님이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직감하였다.

 

하니 선생님은 마틸다를 만나서 잃어버린 삶을 되찾을 수 있었고, 마틸다는 반대로 자신을 아껴주고 동등한 인간으로 대해주는 어른을 만날 수 있었다. 게다가 마틸다의 부모는 끝까지 우리의 기대를 벗어나지 않고 기꺼이 마틸다를 던져버리고 외국으로 도망간다. 더는 퉁명스러운 부모에게 일희일비할 필요가 없게 된 마틸다가 하니 선생님과 함께 행복하고 정상적인 아이로 살아갔을 거라고 믿는다.

 

현실 세계에서 마틸다의 부모와 트런치불 교장 선생님 같은 어이없고 괴팍스러운 사람을 만나기는 어렵다. 너무나 극단적인 악인의 유형이기에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럼에도 로알드 달은 이렇게 선과 악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인물형을 표현한다. 여기에 대한 작가의 의견을 작품해설에서 읽어볼 수 있다.

 

나는 내 인물들이 아이들에게 재미있게 느껴지게 하기 위해서는 좋은 점이나 나쁜 점을 과장해야 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못되고 잔인하다면 아주 못되고 잔인하게 만든다. 만일 못생겼다면 아주아주 못생기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재미있고 효과적이다.’

 

동화의 제일 미덕을 무엇으로 볼지는 의향이 다를 수 있다. 혹자는 재미를, 혹자는 교훈성을 중시할 수 있다. 마틸다는 작중에서 재미를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는 작가의 의견과 동일하다. 동화를 쓰는 주체는 어른이지만, 읽는 주체는 결국 아이다. 동화에 지나치게 어른의 사고와 이념을 투영한다면, 읽는 사람으로서는 마뜩잖으리라. 로알드 달 이야기의 황당함은 재미를 우선 추구하는 데서 오는 보수적인 어른들의 당혹감에서 비롯하는 것이리라.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마틸다의 독서 목록이다. 조숙하고 영특한 마틸다는 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혼자서 도서관을 찾아가서 펠프스 여사의 배려로 여러 책을 읽는다. 어쨌든 청소년들에게 읽혀도 괜찮을 수준의 책으로 봐도 좋으리라.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