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색 매화 달력 - 학술명저번역총서 동양편 62
최관 옮김 / 소명출판 / 200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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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근세문학의 전형적인 대중소설이다. 마치 한 편의 잘 짜여진 연극대본, 아니 드라마대본을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TV 멜로드라마에서 시청자는 인물의 전형성과 구성의 상투성에 불만을 표출하지만 어느새 전개에 몰입하여 주인공을 따라 울고 웃기를 거듭한다. 더하여 어려움을 극복한 주인공의 장래는 사랑의 성취와 더불어 항상 해피엔딩이다.

 

연극 내지 드라마적 구성은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에서도 두드러지는데, 전체 작품은 전 4, 12권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각 권은 2척으로 구성된다. 연극적 용어를 빌리면 권은 막에, 척은 장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작품은 인물간 대화로 전개되는데, 동시대의 연극 장르라고 할 수 있는 조루리의 영향이라는 평가다. 작품의 진행 동력으로서의 화자의 역할도 이색적이다. 작중 화자는 대개 작가로서 작중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여 독자와 직접적 대화를 모색하고 있다. 이 점에서 강담(講談)과 유사한데, 그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우리네의 판소리와도 비슷한 면모가 있다고 하겠다.

 

<뜬구름><금색야차> 등 일본 초기 근대문학 소설들을 읽다 보면 구성과 내용, 특히 정조 면에서 서구의 것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맛을 느끼게 된다. 그동안은 작풍의 동질성과 시대적 속성의 공통 등에서 원인을 구했는데, 전통에 보다 뿌리를 두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변사로서의 화자의 역할, 명사구로 끝나는 문장 형태 등. 이 작품이 발표된 게 1832년이니 상기 작품들과는 약 40년 정도밖에 시대적 차이가 나지 않는다.

 

일본 근세문학의 여러 장르 중 이 작품은 인정본(人情本)’으로 분류된다. 영웅과 무사들이 활약하지도 않으며, 괴담과 해학적 성격과도 거리가 있다. 남녀 간의 애정, 사람들 간의 인정과 세태, 당대 사회의 풍속을 주된 관심사로 삼고 있다. 여기에 유곽과 유녀가 작중 공간적 배경과 주요 인물들의 직업으로서 전면에 등장한다. 일본 근세 조닌문학의 독특성이 반영된 결과이며, 후에 히구치 이데요의 유명한 작품들에까지 연결된다.

 

전형적인 멜로드라마로서 주인공의 출생의 비밀, 남녀 주인공 간의 삼각관계, 주인공들의 역경과 시련이 점철되는 점은 현대와도 흡사하다. 아직 신분계급이 엄존하던 시절임은 그토록 당당하던 도베가 무사에게 바로 무릎 꿇고 절절 매는 장면을 통해서, 그리고 단지로가 무사 집안의 상속자로 일약 신분상승이 이루게 된다는 설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오초와 요네하치는 단지로를 사이에 둔 연적의 관계다. 단지로와 오초, 단지로와 요네하치 커플은 저마다 상당한 사유를 지니는데, 사실상 정혼자와 현실적 부부와도 같은 설정이 그것이다. 요네하치는 게이샤이며, 오초도 단지로를 위해 게이샤가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 남성을 사이에 둔 처지이니만치 두 사람의 관계가 평온할 리 없다. 연적에 대한 서로간의 질투와 시기, 단지로에 대한 사랑의 갈구는 공통이다. 여기에 고노이토와 숨겨둔 애인, 도베와 여협 간의 사랑의 부가적 플롯으로 첨가되어 작중의 애정 분위기는 제법 훈훈하다. 주인공들이 내내 행복하다면 대부분이 여성인 시청자와 독자의 심금을 울릴 수 없다. 눈물샘을 자극하고 동정심을 불러일으킬 고난이 등장하여 주인공들을 괴롭혀야 한다. 처절하리만치 극단적인 고통으로. 이 악역을 여기에서는 유곽의 지배인 기헤와 한 통속인 마쓰베가 담당한다.

 

유곽을 배경으로 게이샤들이 등장하는 사랑 이야기를 하필 인정본이라는 명칭으로 불렀는지 궁금하다. 요네하치는 단지로에 대한 애정을 품고서 스스로 요시와라에서 쫓겨나 자유 게이샤가 되어 단지로를 구제하고 뒷바라지한다. 오초 또한 단지로를 구하기 위해 스스로 게이샤의 신분을 선택하고 후에는 유녀가 될 결심마저 품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단지로에 대한 일편단심은 유혹과 위협에도 변치 않는다. 요네하치를 돕는 유녀 고노이토의 인정과 숨겨둔 애인에 대한 헌신, 오초를 구하고 돌보는 여협 오요시. 쫓겨나는 고노이토에 대한 한 가닥 마음씀씀이를 보여주는 유곽 사람들. 여염집 여자들은 말할 것도 없고 신분상으로는 하층이라고 할 만한 유곽 사람들조차도 한구석에 진실한 정을 가지고 있다. 막부와 무사의 지배층의 엄격하고 권위적인 자세에 비하며 오히려 이들에게서 더욱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페인의 황금세기에 사회 밑바닥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피카레스크 소설이 등장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당대는 풍속에 대한 검열이 매우 강화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작자가 이를 피하기 위해 소설의 음란성 내지 풍속 저해에 대한 방어 문구를 반복적으로 삽입하고 있다. 이 작품은 비록 배경과 인물에서 시비가 될 수도 있지만, 오로지 정조와 절개를 지닌 여인들의 이야기로서 외설 자체를 목적으로 한 게 아니라 교훈성을 도모하고 있다는 것, 그래서 음란한 부녀자를 작중에 그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장치에 불구하고 결국 막부의 처벌을 면하지 못했으니 딱할 따름이다.

 

TV 멜로드라마는 시청자의 눈과 귀를 집중시키는 매력이 있다. 이 작품도 시대적, 지역적, 문화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독자에게 제법 읽는 재미를 안겨준다. 솔직히 책명만 보고는 읽을까말까 망설였다.

 

역자 서문에서와 같이, ‘춘색 매화는 두 가지 뜻을 함의하고 있다. 엄동설한의 시련을 견디고 핀 여린 매화 한 줄기의 암향(暗香)은 오초, 요네하치, 오요시, 고노이토 등을 상징한다. ‘춘색은 계절적으로 매화가 만개하는 봄철을 뜻하기도 하지만, ‘()’이라는 글자가 사춘기, 춘정, 매춘 등 성적 욕망을 나타내는 데 사용되기도 하는 것을 감안하면 유곽이라는 배경과도 연결된다.

 

여성 인물들에 비하면 남성 인물들, 특히 단지로는 뭇 여성들의 사랑을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시된다. 작중 내에서 그는 시종일관 소극적이며 현상을 타개할만한 아무런 행동도 감행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요네하치와 오초 등의 도움에 생을 의존하는 무능력한 모습만 보일뿐이다. 게다가 두 여인들의 애정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유녀 아다키치와 정을 통한다. 혼자서만 끙끙 속앓이를 하다가 광기에 들리는 <뜬구름>의 인물, 여인의 배신에 스스로를 타락시키는 <금색야차>의 인물들과 상통하는 일본 근대의 소극적인 남성상이라고 하겠다.

 

책 만듦새는 전반적으로 탄탄하고 훌륭하다. 부가적 자료와 해제도 충실하다. 특히 약 30쪽에 가까운 앞부분의 컬러 도판은 당대 게이샤와 유녀들의 모습 및 복장, 생활 등을 엿볼 수 있어 매우 유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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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지리학 시론 및 열대지역의 자연도 지만지(지식을만드는지식) 자연과학선집
알렉산더 폰 훔볼트 지음, 정암 옮김 /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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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소싯적부터 여행기와 탐험기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김찬삼의 해외 여행기를 비롯하여 리빙스턴, 슈바이처, 헤딘, 아문센 등의 탐험담을 넋을 놓고 읽기도 하였다. 우연히 서점가에서 훔볼트에 대한 신간을 보는 순간 옛 열정이 되살아났다고 할까.

 

이 책 자체는 탐험기가 아니다. 훔볼트 자신도 단순한 모험가가 아니다. 그는 박물학, 자연학 등에 대한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탐험을 진행한다. 훔볼트가 18세기 초 수년에 걸쳐 남미대륙을 답사한 후 보고서를 정리하기 전 일종의 요약본 형식으로 발표한 저작이다. 전자는 이론적, 후자는 사실적 성격이 두드러진다.

 

<식물지리학 시론>은 식물지리학의 이론적 개념 정립을 목적으로 한다. 종래의 식물학을 기술식물학으로 부르며, 식물지리학은 지금으로서는 명칭만 존재하는 학문이지만, 실제로는 일반자연학의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학문 분야”(P.3)라고 제기한다. 생소한 분야니만치 식물지리학의 의의에 대한 소개를 더 하고 있다.

 

식물지리학은 다양한 기후 환경 아래서 식물을 그 장소와 연관시켜 고찰한다.” (P.3)

 

식물지리학은 매우 다양한 식물 형태의 배후에 어떤 원초적 형태가 있는지, 나아가서는 종의 다양성을 진화 또는 퇴화의 과정으로 볼 수 있는지 같은 문제에 관해서도 검토할 수 있다.” (P.11)

 

저자는 아메리카와 유럽의 기후, 위도, 고도별 식생의 차이를 언급하면서 식물지리학이 지질학과 정치사나 문화사에 결부시켜 고찰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이해의 심화와 확대를 꾀한다. 특히 식생의 양상에 대한 고찰을 통해 민족의 취향이나 독창성에 미치는 영향까지 지적하고 있다.

 

각각의 지역에서 볼 수 있는 자연의 성격이라는 것은 확실히 이것들의 형태가 자아내는 아름다움 속에, 그리고 그것들이 짝이 되어 자아내는 조화와 대조 속에 존재한다.” (P.25)

 

훔볼트는 다년간의 탐사 결과를 한 장의 커다란 지도로 압축, 요약, 분류하여 글자 그대로 일목요연하게 나타내려고 하였다. <열대 지역의 자연도>는 이 지도를 읽기 위한 해설문이다.

 

필자는 열대지역이 나타내는 자연 현상의 총체를 태평양 해면에서부터 안데스 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에 이르기까지 한 장의 지도에 요약하기를 시도했다.” (P.35)

 

그것은 또 필자가 준비하고 있는 일련의 보고서 내용을 요약한 것이기도 하다” (P.36)

 

저자는 일반자연학의 진보는 개별적인 연구와 함께 지표에서 볼 수 있는 현상이나 사상들 모두를 결부시킴으로써 비로소 가능”(P.36)하다고 하여 종합적, 융합적 과학 이해를 제시하며,

자연도의 이해를 통해 상상력과 기쁨을 정신에 나누어 주는 것이 가능하다고 인식한다.

 

이어서 자연도의 구체적 내용에 대한 소개가 이어지는데, 지도의 축척비율이 왜곡될 수밖에 없는 이유, 최고봉 침보라소 산의 해발고도 측정치에 대한 설명을 한 후 단면도의 윤곽을 통해 지질 현상을 논하고 지도 안쪽에서는 적도 주변 지역의 식생 지리를 상세히 표현하기 위해 고도대별 식물의 형태에 대응해서 식생도에도 식물군생별 영역을 설정하여 세부적으로 논하고 있다. 특히 기나나무(cinchona)의 분포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흥미롭다.

 

훔볼트의 탐사와 관찰이 이루어진 시기는 19세기 초, 우리는 각종 자연다큐를 통해 열대지방 고산, 특히 킬리만자로의 고도별 식생이 다채로움을 인지하고 있지만 당대의 시대적 인식을 염두에 두며 매우 획기적일 수 있다. 더구나 그는 식생뿐만 아니라 기온, 습도 등 폭넓은 지구과학적 현상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적도 주변지역의 자연도의 목적은 식물지리학상의 고찰에 공헌하는 것만이 아니다. 자연도는 동시에 해발고도에 따라 변화하는 현상 모두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기 위한 시도이기도 했다.” (P.78)

 

저자는 이하에서 식물지리학 외 일반자연학의 각 분야에서 행해져 온 연구 성과를 14개 항목으로 정리하면서 이 책에서는 간단하게 개요만 언급하고 있다. 해당 항목은 다음과 같다. 기온, 기압, 습도 전기, 하늘의 청도, 빛의 감쇠, 수평굴절률, 대기의 화학조성, 중력의 감소, 비등수 온도, 지질, 설선(雪線), 해상에서 산을 바라볼 수 있는 거리, 서식지의 고도로부터 본 동물의 다양성.

 

대기의 화학조성에서 이미 상식이 된 대기 내 질소 대 산소 비율에 대한 논의가 신기하고, 안데스 산맥의 명칭을 남미에 국한하지 않고 오늘날의 로키 산맥까지도 포괄하는 용어로 사용하고 있어 이채롭다. 특히 인디언이 몽골계 인종이고, 아시아에서의 이동설에 대해 당대는 아직 가설단계에 있음을 알려준다.

 

해설 포함 150여 면에 불과한 소책자에서 포괄적이고 세부적인 전문적 내용을 기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구나 인문 사회학에 비하여 학문적 발전이 빨리 이루어지는 자연과학에 있어서랴. 그럼에도 지리학과 지구과학의 학문적 초창기 단계에 지대한 공헌을 한 훔볼트의 생생한 육성을 당대적 인식 틀과 함께 살펴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 중간에 낯선 식물종의 이름이 여과 없이 라틴어 학명 그대로 융단 폭격 수준으로 노출되고 있어 이 방면에 문외한인 독자로서는 곤혹스럽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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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즈레구사 일본명작총서 9
요시다 겐코 지음, 김충영.엄인경 옮김 / 문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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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기[호조키]>, <마쿠라노소시>와 함께 일본 3대 고전수필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4세기 초에 성립되어 17세기 에도 시대 이후부터 고전으로 본격적으로 향수되었다고 한다. 작자는 승려로서 당대 와카의 거장으로 손꼽힌 인물이다. 작중에 불교적 색채가 농후하고 와카의 이야기가 등장하는 것은 이런 배경이다. 243단 구성으로 분량만 보자면 앞선 <방장기>의 세 배 이상이다. 다만 각 단의 구분은 작자 본인이 아니라 후대에 성립되었다.

 

딱히 할 일도 없어 무료하던 차에, 하루 온종일 벼루를 마주하여 마음속에 떠오르는 자질구레한 일들을 그저 붓 가는대로 적어 가노라니,......”라고 시작하는 서단의 작품의 표제와 성격을 대변해준다. ‘붓 가는대로 적는다라는 것이 곧 수필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작자가 보고, 듣고, 겪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체계 없이 서술한 조각글이다. 작가가 다루는 소재는 광범위하다. 요리, 처세, 세태, 수양, 화초, 의술, 음악, 와카, 불교, 관습, 기담, 우스개 등. 물론 견문담, 일화, 고사, 이적도 흥미롭지만 내심의 술회가 더 인상 깊다.

 

겐코의 가치관은 기본적으로 무상(無常)에 근거한다. 세상은, 인생은 덧없는 존재다. 자칫하면 염세적으로 흐르기 쉬운데, 이 점에서 <방장기>와 구별된다. 조메이가 주관적 시각에서 애상적, 회고적, 염세적 성향을 띠고 있는 반면, 겐코는 엄정하고, 담백하며, 다양한 관심을 객관적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어 염세와는 거리가 있다.

 

작자는 세상사의 무상함, 즉 덧없음을 인정한다. 인심의 변화무쌍함에도 탄식한다[25-27]. 이러한 무상의 이치를 미혹된 자는 깨닫지 못하고 어리석은 자는 슬피 여긴다[74]. 겐코에게 있어 염세와 둔세는 삶과 생명을 소홀히 하라는 의미가 아니라 오히려 참다운 삶과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추구하라는 것이다[93].

 

세상은 덧없기에 정취 있고 소중하다[7]. 작자는 정취를 중시한다. 계절의 추이에 따른 정취를 아낄 줄 안다[19]. 하늘이 주었던 정취도 잊지 않는다[20]. 시절에 맞게 존재하는 것이라면 무엇에서든지 흥취를 찾을 줄 안다[21].

 

한껏 무성해져 있는 가을 들녘처럼 풀로 우거진 뜰은 넘쳐흐를 만큼 잔뜩 맺힌 이슬로 뒤덮여 풀벌레 소리는 원망에 찬 듯하고, 뜰을 흐르는 도랑물 소리는 한가로운 정취를 자아내고 있었다.” [44]

 

정취라면 남녀 관계의 정취도 놓칠 수 없다. 멋진 남자는 연애의 멋을 아는 남자라고 스님답지 않은 신선한 의견을 펼치며[3], 연애결혼의 묘미도 설파한다[240]. 다만 역시나 경계의 주문도 잊지 않는다. 즉 색욕에 탐닉하는 것은 경계하고 있다[8, 9]. 여자의 본질은 비뚤어져 있으므로 미혹에 마음을 뺏기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것이다[107]. 그런데 어찌하랴. 인력을 어쩔 수 없는 자연의 교묘한 장치인 것을. 한편 음주의 정취와 폐해를 논한 175단도 흥미롭다.

 

우리는 안다. 인생은 덧없고, 가야할 길은 머나먼 것을. 서둘러 속세를 등져야 한다[112]. 사람의 마음은 외연에 이끌려 바뀌기 쉽다. 마음 속 도심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므로 조용한 환경에서 수행할 필요가 있다. 따라서 바람직한 삶의 양식은 속세를 벗어난 둔세하는 것이다[58]. 세상사를 떠나 마음가짐을 차분히 하는 정서는 <방장기>의 세계와 상당히 유사하다[75].

 

생로병사, 특히 죽음은 순서가 없고 때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무상한 인생, 이왕 결심한 일이라면 망설이거나 미루어서는 안 된다[49, 59]. 이처럼 인생은 유한하고 불확실하므로 큰 일, 중요한 일을 서두르고 헛된 일, 사소한 일은 떨쳐버려야 한다[188]. 그는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으면 죽은 사람이라고 단언한다. 잡념을 제거하고 잡사에 관여하지 않는 등의 노력에 시간을 써야 하므로[108].

 

겐코는 의식주와 약을 넘어서면 사치라고 간주한다[123]. 안분지족을 깨우치는 것이 곧 지혜다[131]. 재물, 지위, 명성 등에 대해서는 가차 없다. 훌륭한 삶의 태도는 허유와 손신의 고사를 통해 알 수 있듯이 검소와 무소유에 있다[18].

 

상대적 세계에서의 모든 현상은 가상의 산물이다. 말할 가치도 없으며, 바랄 가치도 없다.” [38]

 

작자는 잘난 체 하지 말고, 항상 신중하고 겸손할 것을 요구한다[79]. 요즘과 같은 자기 PR의 시대적 요구와는 반대되는 정언이다. 잘난 척 생색내지 말 것을 거듭 강조하지만[233], 말할 때는 솔직할 것을 요청한다[234]. 억지로 꾸며서 흥미진진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러운 게 낫다는 지론이다[231].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수양이 필요하다. 인품과 용모는 타고난 것이지만 학식, 교양을 비롯한 마음은 노력 여하에 따라 갈고 닦을 수 있는 요소다[1]. 그래서 자기 자신을 알아야 만사의 이치를 아는 사람이라고 하여 스스로에 대한 인식의 필요성을 절감한다[134]. 남보다 잘난 점은 오히려 결점이라고 할 수 있으므로 오만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하며, 진정 뛰어난 사람은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식하는 인물이다. 소크라테스의 일갈은 서양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일체유심조가 해골 물을 마신 원효 대사의 전매특허는 아니잖은가? 길흉은 사람 마음에 따라 정해지며[91],

 

겐코는 밤의 드러나지 않는 정취를 아는 이가 멋진 사람이라고 말한다[191]. 벚꽃이 만개되기 전후와 만월이 되기 전후의 정취를 즐기는 정서도 마찬가지다. 만사는 시작될 때와 끝날 때가 오히려 좋다고 하며, 그래서 축제 후의 텅 빈 대로를 보는 것이 축제를 구경하는 것이나 진배없다고 보는 것이다[137]. 만개한 꽃의 화려함은 찰나의 현상에 불과하며 삭풍이 불어 가지만 앙상한 고목이 사물의 본질에 가깝다.

 

희로애락에 흔들리지 않으며 자기도 남도 의지하지 않는 항상심과 부동심을 지니고 치우치지 않고 항상 관대하게 처신하는 사람[211], 이 사람이 바로 마음의 주인이다[235].

 

작자가 종종 회고적 성향을 드러내는 것은 옛날과 비교할 때 당대의 현실에 비관적 인식을 가져서이다. 단순한 회고 취미가 아니라 그가 보기에 당대의 것은 멋이 없고 천박하다[22]. 와카를 보더라도 옛사람의 와카가 단순, 솔직, 산뜻, 정감이라는 면에서 더 뛰어나다고 말한다[14]. 와카사천왕으로 불리던 겐코의 견해이니 허튼소리라고 폄하할 수는 없으리라. 29단에서 32단까지에 고인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러면 겐코는 당대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을까? 아래 문장에 함축되어 나타난다.

 

어찌 되었든 거짓이 많은 세상이다.” [73]

 

도깨비 소동이 벌어져 야단법석과 싸움까지 일어나는 어이없는 현상은 참과 거짓마저 분명하지 않은 당대의 어지러움을 드러내는 사건이다[50]. 시가와 음악으로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성인들의 시대나 가능한 일이며, 실용성을 중시하는 당대에서는 어리석기 그지없다고 자탄한다[122]. 위정자의 역할에 대한 비판 또한 따갑기 그지없다. 평범한 백성을 궁지에 몰아 범법자로 만들어 벌하는 세상[142], 그것이 겐코의 당대 현실이며, 현재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는 것 같다.

 

작자는 가슴에 담고 있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배가 불룩해질 것 같은 심정이 들어 붓 가는대로 생각을 맡겨 적어”[19]본다고 기술한다. 따라서 작품 전체를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 이해할 필요는 없고 단별로 개별적 감상과 향수가 가능하다. 다만 옮긴이의 말처럼 그 속에 숨어있는 유기적 관계를 외면해서는 안 될 것이다(P.267). 그런 면에서 각 단의 제목을 붙인 점에 대해서는 일장일단이 존재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붙이지 않았으면 더 고마웠을 것이다. 내용상 정확하지 않기도 하고, 깊은 음미에 지장을 주는 선입견을 조장하기도 한다.

 

겐코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온다. 한없는 욕망과 유한한 일생, 즉 무상(無常)의 세계로.

 

환영과 같은 삶 속에서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 모든 욕망은 진리와 등을 지는 망상이다.” [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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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sangko 2014-08-06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요시다 겐코...검색으로 구경 잘 하였습니다....^^
 
방장기
가모노 조메이 지음, 조기호 옮김 / 제이앤씨 / 200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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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삼대 고전수필 문학에 속하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나머지는 세이 쇼나곤의 <마쿠라노소시>와 요시다 켄코의 <쓰레즈레구사>라고 한다.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1237단의 구성으로 본문만 따지면 100쪽에 미치지 못한다. 내용상 3부분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1장은 이 책 전체의 도입부에 해당한다. 2장에서 6장까지는 인간세상의 5대 재해를 기술하고, 7장부터 종장은 작자의 소회와 심경을 담고 있다.

 

1장에서 초메이는 흐르는 강물, 물거품, 시드는 나팔꽃, 사라져 버리는 아침 이슬과 같은 어휘의 사용을 통해 인생과 세상사의 무상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1장의 이런 분위기는 작품 전체를 지배하고 관통한다.

 

석가모니의 용어를 굳이 빌리지 않더라도 인생은 수많은 고통과 고난으로 점철되어 있다. 나는 온전하고자 하나 세상의 풍파는 끊임없이 나를 뒤흔들어 가만히 있지 못하게 한다. 작가는 수십 년 전을 회상하여 자신과 세상에 충격을 준 다섯 가지 재해를 기술한다. 작가의 눈은 이는 단순한 재해가 아니라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한 자연의 준엄한 경고로 간주한다.

 

안겐 시대의 화재는 집과 재산에 열중하는 어리석음을 드러낸다. 지쇼 시대의 회오리바람은 지옥의 업풍과도 같은 신의 경고가 아니겠는가. 요와 시대의 기근 장에서는 사실적인 기술을 통해 굶주림의 비참함과 참담함을 극대화하고 있다. 인간이란 소수지어(少水之魚) 같은 가련한 존재다. 겐랴쿠 시대의 대지진 또한 인간사의 허무와 탄식을 자아낼 뿐이다. 인재라고 할 수 있는 후쿠와라[후쿠하라] 천도 장면은 급작스런 천도에 대한 세인의 불안과 불평을 진술하고 백성들에 대한 위정자의 자비심 부족을 질타한다. 아울러 귀족사회에서 무사사회로 변해가는 현상을 난세의 전조로 파악하여 우려를 표한다.

 

초메이는 여기에서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서른 살에 움막을 짓고 쉰 살에 출가하여 심산에서 세상을 등지니 그의 삶도 평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스스로 그럭저럭 견뎌내며 살아왔다고 술회한다(27). 그래서일까. 그의 글에는 염세적 인식이 짙게 배어난다.

 

단 한 순간이라도 마음의 불안을 안정시킬 수 있을 것인가? -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그렇게 될 것 같지는 않다.” (25)

 

얻고자 하는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다.” (27)

 

그는 은거하기 위해 조그만 집을 짓는다. 7단에서 세인의 집짓는 어리석음을 비판한 초메이지만 암자는 단지 방장에 불과한 임시 거처일 뿐이다. 그 좁은 곳에서 작자는 자연을 벗 삼아 나름대로 유유자적한 생활을 즐긴다. 자신을 소라게와 물수리에 비유하며, 아무런 걱정 없는 삶.

 

세속의 원망을 마음에 간직하지 않고 억척스러워하지도 않으며, 그저 한가함 속에 조용하게 지내는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근심 없는 나날을 즐거움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32)

 

자신의 처지와 심경을 초메이는 이렇게 자부한다.

 

내 한 평생의 즐거움은 선잠을 자고 있는 듯 가볍기 그지없으며,.....” (33)

 

살아 보지 않고 그 누가 이 좋은 기분을 확실하게 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어느 누구도 이런 마음을 알 리가 없다.” (34)

 

세상을 등지고 출가하여 불도에 뜻을 둔 것은 속세의 번뇌와 집착을 벗어나기 위함이다. 그가 초암에서의 한가롭고 조용한 생활에 만족하고 집착하는 것은 출가의 진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그는 자문하고 반성하며 아미타불을 염불한다.

 

초메이가 살던 시기는 12~13세기 가마쿠라 막부시절이다. 헤이안시대의 평화는 사라졌지만 아직 분열과 전란의 시기는 본격적으로 도래하지 않았다. 따라서 초메이의 글에서 풍기는 무상과 염세의 정조는 상당 부분 개인적 이력과 체험에서 비롯되었다고 봐야 한다. 다섯 가지 재해는 인간사에서 언제든 들이닥칠 수 있는 위험이 아닌가.

 

세상은 그가 기대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하였다. 신관의 직책도, 와카 시인으로서의 세속적 명성도. 세속에 실망하고 은둔자로서의 삶을 택하였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가능하다. 은자의 삶은 겉보기만큼 기실 그럴 듯하지 않다. 고사리와 풀뿌리를 캐며 연명하는 삶은 오히려 비참에 가깝다. 그럼에도 세속의 욕망을 덜어내자 심경은 평안을 얻는다. 높고 깊은 산 속에서 저 아래 세상을 바라보니 진세에서의 삶이 어리석게 느껴진다. 그 속에서 여전히 이전투구하며 악다구니하는 사람들이 가련하게 생각된다.

 

사방 한 장 정도의 초옥이면 충분히 몸을 쉴 수 있고, 재화와 지위를 구하기 위해 타인과 경쟁하고 눈치를 보며 마음을 졸일 필요 없이 그윽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흘러가는 강물 속에서 피었다 사라지는 물거품과도 같은 헛된 욕망에 연연해하는가. 그저 자연과 더불어 자연 속에서 소박함을 즐길 따름이다.

 

후대의 독자들은 초메이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으니 이후 수백 년간의 전국시대라는 일대 혼란기가 도래하기 때문이다. 생명과 도덕이 초개보다 못하게 취급받으니 그만큼 초메이가 보여준 탈속의 정서가 가슴 가득 다가왔으리라.

 

* 옮긴이는 첫머리에 자신의 일본시절 개인적 기념사진을 여러 장 수록하고 있으며, 머리말도 사적 소감이 장황하다. 더구나 백 쪽 남짓한 해제는 개인적 감상과 작품과 무관한 소견으로 상당한 분량이 채워져 있다. 특히 근래의 자연 재해와 노무현정권의 수도이전의 시시콜콜한 사실을 장황하게 나열하는 것이 작품 이해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도저히 이해부득이다. 좋은 작품이지만 좋은 책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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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야마 2014-08-17 0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원광보건대학교 교수. 일본어문학 담당.
무상감과 '죽음'의식, 장송의례 등에 관심이 많다.
 
오치쿠보 이야기 - 일본 고대의 신데렐라 이야기 일본명작총서 10
박연정 외 옮김 / 문 / 2010년 3월
평점 :
품절


표제는 낯설어도 부제-일본 고대의 신데렐라 이야기-를 보면 대충 무슨 이야기인지 짐작이 간다. 내용이 뻔할 거라고 지레짐작하여 흥미를 잃는다면 이 작품의 절반도 알지 못하게 된다. 일본 중세의 헤이안 시대 작품이므로 모노가타리 장르에서는 초기작에 속한다. 유명한 <겐지 이야기>보다 시기적으로 앞설 정도로.

 

계모에게 구박받는 전처의 자식이라는 점에서, 신데렐라와 마찬가지로 오치쿠보도 주인공의 초라한 지위를 상징하는 공간적 표상이라는 점에서 유명한 동화와 공통적이다. 반면 동화와 성인 대상의 모노가타리는 기본 성격에서 동질적일 수 없다. 게다가 고대 일본이라는 시대적, 지역적 차이점도 신데렐라의 나이브함과는 다른 독특한 성격을 부여한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오치쿠보가 아니다. 전반부는 오치쿠보의 시녀인 아코기가, 후반부는 오치쿠보의 남편인 쇼쇼가 사실상 주인공이다. 오치쿠보의 역할과 캐릭터는 지나치게 소극적이다. 예쁘고 착한 인물인 것은 알겠지만 아무런 자기주장이 없다. 계모로부터의 학대에도 그저 괴로워하며 울기만 할뿐이다. 후에 쇼쇼가 계모에 대한 복수에 몰두하는 중에도 소극적 우려와 염려를 비칠 뿐이다. 물론 쇼쇼의 다음 말처럼 그 순수한 선함이 종국에 행복을 가져다주는 미덕이지만.

 

아씨한테는 속된 마음이란 것이 없다네. 본인에게 나쁜 마음을 품은 사람도 불쌍하다고 하는 사람이니.” (P.158)

 

아코기와 다치하키 커플은 굳이 오치쿠보와 쇼쇼를 맺어주기 위해 노력할 의무가 없다. 아코기는 다른 시녀들처럼 계모의 딸들을 시중들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집으로 가버리면 그뿐이다. 그녀가 오치쿠보를 떠나지 못하는 이유야말로 그녀의 마음씨를 돋보이게 한다. 오치쿠보와 쇼쇼가 부부의 연을 맺도록 안절부절 못하며 필요한 준비와 물품을 구하기 위하여 애쓰는 대목, 늙은 덴야쿠노스케가 오치쿠보를 강제로 취하지 못하도록 전전긍긍하는 장면, 다치하키와 상의하여 오치쿠보를 구출하도록 쇼쇼를 부추기는 등 그녀의 활약과 재치가 없었다면 오치쿠보의 일생은 평생 오치쿠보 상태에 머물렀으리라. 이 점은 같은 처지의 수많은 뇨보들에게 기쁨과 즐거움과 통쾌감을 안겨주었을 것이다. 아코기가 성공하여 자신은 물론 남편마저도 출세의 길에 오르게 되는 것이야말로 뇨보들의 깊은 소망을 반영해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의 작자는 신분 면에서 귀족층이 아니라 뇨보 같은 시녀들의 일상과 생각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중간계급으로 생각된다. 우아하고 고상한 어휘보다 인물들의 심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속어적 표현과 희화적 장면이 거리낌 없이 등장하는 점도 이채롭다. 인물과 정경 묘사를 중시하지 않고 인물들의 행동과 사건 전개에 주안점을 두고 있어 보다 모노가타리적이라고 하겠다.

 

오치쿠보의 신데렐라 성공담은 전 4권 중에서 2권 전반부까지로 국한된다. 이후는 쇼쇼의 계모에 대한 철저한 복수로 점철된다. 이 점에서 서양의 동종 이야기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접어든다. 그런데 당사자인 오치쿠보는 내키지 않아 하는 복수를 쇼쇼가 집착하는 연유는 무엇일까? 복수에 대한 일본 고유의 관념과 사랑하는 여인의 박해에 대한 견딜 수 없는 분노가 상승 작용을 한 것은 틀림없다. 여기에 권선징악의 철저한 구현을 바라는 세인들의 소망이 가세되었다고 본다.

 

쇼쇼의 보복은 매우 가혹하다. 사람들 앞에서 계모 일행에게 모욕을 주는 행위도 수차에 걸쳐 서슴지 않는다. 계모의 셋째 딸의 남편을 빼앗고, 넷째 딸을 거짓 결혼으로 남부끄러운 사위를 얻게 만든다. 마침내 주나곤이 이사하려고 대대적으로 정비한 (오치쿠보 명의의) 저택마저 빼앗아 치명적 타격을 입힌다. 철천지 원한이 있지 않는 한 용인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수의 정도가 처절하다. 물론 나중에는 아낌없는 효도로 되갚지만 말이다. 이런 게 가능한 것은 역시 권력의 힘이다. 계모와 주나곤은 감히 쇼쇼 집안에 대들지 못한다. 나중에 천황의 외숙이 되고, 대를 이어 태정대신이라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정도로 그 위세는 당당하기 그지없다. 권력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것이 어디 일본 사람뿐이겠는가. 다만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점은 그들이 후에 쇼쇼의 호의에 모든 원한을 잊고 감사와 충성을 바치는 장면이다. 역시 우리네와는 정서가 차이를 보인다.

 

일본 중세의 독특한 결혼 풍습은 이미 알고 있지만, 정조보다 외양에 더 신경을 쓰는 오치쿠보의 태도는 여전히 낯설다. 체면과 허상을 중시하는 기질의 바탕으로 여겨진다.

 

오치쿠보는 남자의 정체보다 자신의 옷이 너무나 초라하고 속바지가 몹시 볼품없다는 사실이 신경 쓰였다.” (P.25)

 

오치쿠보는 부끄러움에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속옷은 제대로 갖추지도 못했고 윗옷에 바지 한 장만 달랑 걸쳐 입어 곳곳에 맨살이 드러난 옷차림을 생각하니 심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할 정도였다. 부끄러움으로 눈물보다 땀에 흠뻑 젖었다.” (P.27)

 

오치쿠보에 대한 계모의 태도는 단지 전처소생이라고 미워하는 것 같지 않다. 오치쿠보는 엄밀히 말해 정실 소생은 아니고 소실의 딸이라고 해야 옳다. 따라서 계모가 자신의 자식들과 오치쿠보를 차등하는 것은 납득이 간다. 소실의 딸이 자기 딸들보다 미모나 재주로나 뛰어남을 알고 있는 계모로서는 오치쿠보가 더욱 미웠으리라. 그래서 남자를 못 만나게 하고 계속 딸들 시중이나 들게 하면서 부려먹으려고 했던 것이다.

 

내 그리 남자를 만나지 못 하게 했건만 이렇게 분할 수가! 남자가 생긴 이상 결코 이 집에 그냥 붙어있지는 않을 게야. 남자 집으로 가겠지. 그 애가 없으면 큰일인데... 어여쁜 우리 딸들 옆에서 시중을 들게 하려 했는데.” (P.56)

 

그런 면에서 계모는 비록 악독한 인물이지만 강렬한 개성을 지닌다. 절 참배 길에 쇼쇼가 계모 일행을 괴롭히며 계모와 주고받는 대목이 이를 잘 보여준다.

 

(쇼쇼) “이제 충분히 질렸수?

(계모) “아직 안 질렸다.” (P.131)

 

고장난명(孤掌難鳴). 계모의 성격이 제아무리 독하고 모질다고 하더라도 혼자 힘만으로는 오치쿠보를 저리 박대할 수 없다. 오치쿠보의 아버지인 주나곤의 묵인과 외면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주나곤의 모호한 태도야말로 악랄함으로 일관하는 명확한 캐릭터의 계모와는 대조적이다. 주나곤은 딸아이가 오치쿠보로 불리는 것도 알고, 초라한 거처에 거주하고 있음도 잘 안다. 계모의 말만 듣고 구석방에 감금하고 괴롭혀 죽이라고 먼저 지시한 것도 주나곤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의의를 해제에서 인용하며 끝맺는다.

 

“<겐지모노가타리>를 비롯한 헤이안 문학의 귀족적이고 우아한 미의식이 우월하던 시대에 그와는 전혀 동떨어진 해학적이고 사실적인 장면 묘사와 스토리로 당대의 대중성을 획득한 본 작품은 친밀한 계모담형 이야기, 개성적이고 일관된 성격의 인물 유형, 아코기나 다키하키 같은 조역들의 맹활약과 치밀한 플롯 전개로 고대 모노가타리의 세계를 초월하여 후대의 독자를 사로잡는 저력을 보여 준다.” (P.2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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