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성근대나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바람이 성근 대나무숲을 지나매 바람이 떠나면 대나무숲은 소리를 지니지 않는다. [채근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27 Jun 2026 08:39:24 +0900</lastBuildDate><image><title>성근대나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성근대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피프티 피플 (정세랑/창비) - [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56710</link><pubDate>Fri, 26 Jun 2026 16: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5671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35671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off/893643424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6434241&TPaperId=1735671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a><br/>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br/></td></tr></table><br/>수십억에 달하는 세상 인구 중에는 영웅호걸보다는 갑남을녀, 장삼이사, 필부필부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소설 속 등장인물 역시 제아무리 보통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작가가 생명력을 불어넣은 점에서 결코 예사로운 인물이라고 볼 수 없다. 작품의 분량에 따라 한 명에서 대하소설은 수백 명까지 인물이 나오지만, 이들이 모든 세상 사람을 대변한다고 주장하면 과언이다. 게다가 등장인물 전체가 모두 주인공은 아니지 않는가.   &nbsp;  특별한 사람의 특별한 삶만이 소설의 주인공과 소재가 되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이들의 삶과 생각과 감정이 오히려 공감을 일으킨다. 인생의 온갖 신분과 환경과 행동과 사고와 감정을 한두 명의 주인공이 독점한다면 아무리 허구지만 너무 작위적이지만, 다수의 인물이 나눠 갖는다면 자연스럽다. 수많은 범부의 평범한 이야기가 차라리 그럴듯하다.  &nbsp;  그런 조각들을 쥐었을 때 문득 주인공이 없는 소설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니면 모두가 주인공이라 주인공이 50명쯤 되는 소설, 한사람 한사람은 미색밖에 띠지 않는다 해도 나란히 나란히 자리를 찾아가는 그런 이야기를요. (P.392, 작가의 말)  &nbsp;  하물며 우리네 같은 필부들의 삶도 결코 간단하지 않다. 자신의 구구절절한 삶을 글로 풀어놓으면 대하소설이나 대하드라마 못지않을 거라고 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세상 사람 모두의 삶은 자체로 타인의 삶과 전혀 동일하지 않다. 그런 면에서 정세랑 작가의 이 작품은 독특하다. 오십 명, 작가의 계산 실수로 오십일 명의 등장인물은 자기 이름의 장에서 각자가 짧지만 당당한 주인공이다. 작가는 각기 몇 쪽이라는 제한된 분량 속에서 인물의 생을 전반적으로 훑기도 하지만, 대개는 가장 임팩트 있는 때와 사건을 다룬다.  &nbsp;  별개의 작품이 아닌 이상 각 장은 어떤 식으로든 연계성을 지녀야 한다. 많은 인물이 드나들 수 있고, 각자가 저마다 사연을 지닐 수 있어야 하며, 성별이나 계층에서 편중되지 않아야 하는 곳으로 작가는 종합병원을 골랐다. 의사, 간호사, 기사, 행정직 등의 원내 구성원과 병원 이웃. 환자, 보호자, 병문안 또는 업무상으로 병원을 방문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가족과 친지들. 개개의 인물은 남자나 여자, 아이, 어른, 노인으로 나뉠 수 있다. 어른이면 결혼 여부, 결혼했으면 자녀 여부, 나아가 손주 여부를 물을 수 있다. 학력, 건강, 취미, 국적 등 다양한 조합을 고려하면 경우의 수는 수천수만 가지로 확장된다.   &nbsp;  무심코 한두 장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 순간 앞에 나왔던 인명인데 또는 어쩐지 비슷한 배경과 사건을 다루는 데 하는 느낌이 든다. 이후로는 책장을 앞뒤로 넘기며 그가 누구였던가 하는 숨은그림찾기를 시작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사람 간의 관계를 매칭시키는 재미가 의외로 쏠쏠하다. 나아가 작중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이 결코 나와는 무관하지 않으며, 우리를 스쳐 지나가는 무수한 사람들이 제각기 하나의 소우주를 품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nbsp;  그러면 작가는 왜 이러한 시도를 하였을까 궁금하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되기에 충분한 사연을 갖고 있는데. 아마도 오십일 편의 장편소설을 작가가 쓰는 게 불가능하다는 현실적 인식이 있었으리라. 발자크의 인간 희극, 에밀 졸라의 루공마카르 총서조차도 모든 인간 현상을 반영하였다고 할 수 없으므로. 모두가 주인공이라는 말은 누구도 주인공이 아니라는 말과 동의어다. 우리는 자신의 삶에서 주인공이지만, 전후좌우를 둘러보면 타인도 모두 또 다른 주인공임을 보게 된다. 내 삶의 특수성을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의 상대적 우월성을 내세우기 어렵다. 우리는 보다 겸손한 태도와 겸허한 마음가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다.  &nbsp;  오십일 명의 인물 중에서 독자가 누구를 선호하고 더 공감하게 될 것인가는 전적으로 독자에게 달려 있다. 나로서는 장유라, 배윤나, 홍우섭, 이설아, 한규익, 임찬복, 김시철, 이동열, 방승화, 소현재가 그러하다. 놓인 처지와 사고, 감정과 경험에서 가장 유사한 인물이 누구인가에 따라 독자의 마음이 끌리는 인물은 달라질 것이다. 적어도 이들 모두가 전혀 감흥이 없거나 무관하다면 자신의 삶을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nbsp;  공감과는 별도로 각 인물은 제각기 흥미롭다. 브리타 훈겐과 스티브 코티앙의 이야기는 황당하지만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송수정과 장유라가 겪는 슬픔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조희락과 지현, 최대환과 남세훈, 양혜련과 하계범은 내게 미지의 세계다. 이수경과 지연지는 우리네와 다른 인종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은 내가 미처 상상하지 못했거나 실행의 엄두조차 내지 못한 선택을 통한 다른 차원의 삶은 살아간다. 개중에는 딱한 처지에 동정심을 품게 되거나 응원하고 싶은 인물도 있지만, 우리도 결국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nbsp;  이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확실히 정세랑답다. 대다수의 등장인물이 한날한시, 한곳에 모이게 하는 설정이. 현실적 가능성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다. 이런 당당함이 작가 특유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작가의 말에서 밝힌 것처럼 인물 모두에게 가급적 춤을 추도록 하려고 했는데 실패하였다는 점과 반복하여 등장하는 도마뱀 캐릭터에 관한 언급도 일종의 이스터에그처럼 흥미 유발 장치다.  &nbsp;  여태껏 이런 유형의 소설은 처음 접한다. 수많은 조각이 모여 커다란 모자이크가 완성되는 느낌이랄까. 하나의 그림 퍼즐을 완성하기 위해 불필요한 조각은 없는 것처럼. 우리네 삶도 결국 다층 다종의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다. 오십일 명의 인물 중에 분명히 나도 들어가 있을 것이다. 그들의 삶이, 우리네 삶으로 인식하고 다가올 때 비로소 삶의 온전한 얼개를 그릴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9666/4/cover150/893643424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9666047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91회 아트엠콘서트 - 김도현 피아노 리사이틀 (2026.6.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46747</link><pubDate>Sun, 21 Jun 2026 13:0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46747</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91회 아트엠콘서트 - 김도현 피아노 리사이틀 : 노래는 물결이 되어일시 : 2026년 6월 18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김도현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슈베르트, 4개의 즉흥곡 D.899&nbsp; - 슈베르트-리스트, 물 위에서 노래함 S.558/2&nbsp; - 슈베르트-리스트, 마왕 S.558/4&nbsp; - 글린카-발라키레프, 종달새&nbsp;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소나타 2번 Bb단조 Op.36 (1931 revised version)<br>* 세줄평오랜만에 듣는 슈베르트의 즉흥곡은 새삼 훌륭한 곡임을 느낀다. 편곡 작품은 원곡 리트에 없는 리스트다운 화려함과 당당함이 드러난다. 라흐마니노프 소나타는 부분적으로 좋은 대목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아직 내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곡이다. 연주자는 개인적으로 어려운 고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하는데 완전히 극복하기를 바랄 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21/pimg_7093891535160430.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4674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임영주 바이올린 독주회 (2026.6.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37707</link><pubDate>Tue, 16 Jun 2026 10:3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37707</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임영주 바이올린 독주회일시 : 2026년 6월 15일(월) 19:30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연주 : 임영주 (바이올린), 이영신 (피아노)프로그램&nbsp; - 슈만,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3개의 로망스&nbsp;Op.94&nbsp; - 슈만,&nbsp;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1번 A단조 Op.105&nbsp; - 슈만,&nbsp;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2번 D단조 Op.121<br>* 세줄평슈만의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만 꾸며진 무대다. 실연에서 슈만의 바이올린곡을 듣기 어려운데, 좋은 기획이다. 피아노가 바이올린과 대등하게, 때로는 독자적으로 펼치는 가운데 조화와 긴장이 묘한 매력을 준다. 슈만의 작품답게 독특한 선율 또는 화음 진행이 여전히 인상적이며 내재한 어두운 정열과 격정을 무난하게 잘 살려 연주하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16/pimg_709389153515523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3770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클래식의 권장 (허제/북트리) - [클래식의 권장]</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4466</link><pubDate>Tue, 09 Jun 2026 00: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44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72637555&TPaperId=173244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6/59/coveroff/e07263755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E072637555&TPaperId=173244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클래식의 권장</a><br/>허제 / 도서출판 북트리 / 2026년 03월<br/></td></tr></table><br/>이 책도 클래식 음반 가이드북이다. &lt;두근두근 클래식&gt;에 이은 후속작이다. 모든 면에서 전작과 유사하다. 숨겨진 작곡가와 작품 소개, 기존에 알려진 음반 관련 일화 소개 및 오해 정정은 동일하고, 몇몇 악기에 관한 이야기, 유명한 곡이지만 위작으로 판명 난 작품 등 나름대로 차별성도 지닌다. 분량도 1.5배 정도 늘어나 얄팍하다는 느낌에서 벗어났다.  &nbsp;  근년 들어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소개하는 책들이 많이 나왔다. 대개 유명 작곡가와 대표 작품의 감상 포인트를 재밌는 일화와 함께 다룬다. 대중성을 고려하기 때문에 유명하지 않은 작곡가는 소개될 기회를 얻지 못한다. 이 책의 특장점은 비주류 작곡가도 소개하며, 익히 알려진 악곡의 경우도 작품보다는 연주자와 연주 자체에 비중을 두고 있다. 결국 음악 감상자로서는 누구의 무슨 곡이냐도 중요하지만, 어떤 연주자의 연주인지도 못지않게 비중이 크다. 유명한 곡은 수백 개의 연주가 존재하기에 여기서도 옥석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nbsp;  총 38개 장의 내용을 낱낱이 언급할 수 없기에 개인적으로 흥미롭고 인상에 남은 대목만 소회를 남긴다.   &nbsp;  베토벤의 3중 협주곡을 리흐테르, 오이스트라흐, 로스트로포비치가 카라얀과 협연한 음반은 최고의 명반이자 최악의 음반으로도 평가가 엇갈린다. 주로 독주자 3인방과 카라얀의 주도권 다툼에 관련된 일화가 그것인데, 개인적으로 과도한 확대해석으로 생각하는 저자도 마찬가지 의견이다. 프로예술가들은 설사 사이가 좋지 않더라도 연주에서는 최고를 지향하는 법. 하물며 그들이 사이가 좋지 않았다는 명확한 증빙도 없다. 협주곡은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 조화와 경쟁. 연주자 간 사이가 아주 좋았다고 해서 반드시 훌륭한 연주가 나온다는 보장도 없다.  &nbsp;  카라얀은 똥폼을 잔뜩 잡은 채 찍은 사진이지만, 누군가의 눈에는 불만 어린 표정으로 비친 것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카라얀은 자신의 사진을 스스로 관리하여 좋고 멋있는 것만을 공개했다고 한다. 연예인처럼 이미지 관리 차원이라고나 할까. (P.25, 베토벤 3중 협주곡)  &nbsp;  클래식 음악계에서 여성 연주자는 많지만, 여성 작곡가는 드물다. 샤미나드와 그녀의 피아노 3중주 작품 소개는 그런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심오하고 진지함과는 거리가 먼 살롱풍의 아름다움을 담은 샤미나드와 훔멜의 작품은 무시될 만한 성격이 아니다. 모두가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가 될 필요도 없고 되어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3중주를 언급하는 김에 차이코프스키, 라흐마니노프, 골덴바이저, 아렌스키, 쇼스타코비치로 이어지는 슬픔의 3중주 전통도 빼놓을 수 없다.  &nbsp;  저자는 잘 알려진 위작을 여럿 소개하는데, 의외의 반전이 주는 묘미와 더불어 익명의 작곡가와 숨겨진 사연을 파헤쳐 보는 쏠쏠한 재미와 더불어 씁쓸한 여운도 남는다. 한때 카치니의 &lt;아베 마리아&gt;로 유명세를 떨쳤던 곡이 사실은 카치니와 전혀 무관한 현대 작곡가 바빌로프의 작품이라고 한다. 페르골레지의 &lt;조화의 협주곡&gt;도 바세나르란 무명 작곡가의 작품인 게 20세기 말이 되어서야 밝혀졌단다. 하이든의 현악 4중주 &lt;세레나데&gt;도 사실은 호프슈테터가 원 작곡가라고 하니 놀랍다. 작곡가가 애초에 정체를 숨긴 경우도 있지만, 출판업자의 농간인 사례도 있다. 무명인 원 작곡가가 드러났다고 음악의 가치가 절하되지는 않음은 당연하리라. 한편 하이든의 유명세는 그의 두개골마저 가짜가 존재하게끔 하였다니 유명하다고 마냥 좋아할 일만은 아니다.  &nbsp;  잉글리시 호른은 영국과도, 호른과도 다른 악기라는 이야기, 바이올린과 첼로 사이에 치인 신세인 비올라의 처지, 바이올린의 명기란 무엇인가를 다룬 장은 무심코 넘기기 쉬운 악기라는 대상에 초점을 맞춘 적절한 대목이다. 개인적으로 근년 들어 비올라가 참으로 매력 있는 악기임을 새삼 발견하였다.  &nbsp;  타이스의 &lt;명상곡&gt;으로 시작하여 마스네, 차이코프스키, 글라주노프 등 명상적인 소품 연대기는 간과하였던 악곡의 성격을 되새기게 한다. 반대되는 분위기를 자아내는 쇼스타코비치의 왈츠와 로망스는 흔히 떠올리기 쉬운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곡가 쇼스타코비치와는 전연 다르다. 그의 왈츠와 로망스가 편곡과 편집 오류로 인해 &lt;재즈 모음곡&gt;에 포함된 사연은 기가 막힌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게 생전 처음 접하는 브루흐의 두 대의 피아노 협주곡이다. 브루흐의 제자가 악보 출판 배달 사고를 일으켜 늙은 스승을 등쳐먹었다니 갑자기 브루흐가 딱해 보일 지경이다.  &nbsp;  전작에서도 저자는 간혹 문화예술계의 작태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드러내었는데,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다만 가치관과 이념으로 좀 더 나아간 점은 다소 유감스럽다. 클래식 음악은 고급, 재즈는 저급이라고 칭하는 인식은 클래식 우월주의 관점에 사로잡힌 견해다. 개인적으로 클래식 음악을 높이 평가하지만, 가요나 국악, 팝송과 월드뮤직 등도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믿는다. 윤이상에 대한 평가도 주관적 맹목에 가깝다고 본다.  &nbsp;  최근 사람들이 즐기는 햄버거나 째즈는 고급문화가 아니다. 햄버거는 정크푸드이고 째즈의 주제는 마약, 매춘, 도박이다. 고급만이 가치 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쓰임이 다르다는 것이고 저급한 것은 지양해야 할 것이다. (P.129,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로망스)  &nbsp;  일본에서 &lt;광주여 영원하라&gt; 음반을 한 평론가가 &lt;명반대전&gt;에 소개하였는데 마지막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한국 정부를 타도하는 음악을 북한의 지휘자와 악단이 연주하는 것이 두렵다.” (P.100, 쇼스타코비치 교향곡 5번)  &nbsp;  전작에서 제법 심각했던 교정 오류는 이 책에서 많이 줄었지만, 여전히 곳곳에 실수가 나타난다. 예를 든다면, 브람스 &lt;주제와 변주&gt;를 다룬 장(P.283)의 부제는 ‘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이다. ‘자유롭고 행복했던 독신’의 잘못임을 누구나 알 수 있다. 하물며 본문도 아닌 표제 윗줄의 부제에서 이러하니 교정의 허술함을 지적하지 아니할 수 없다.  &nbsp;  이런 모든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클래식 음악과 음반의 길잡이로 충분한 가치가 있음을 말할 나위 없다. 특정 분야에 편중된 척박한 클래식 음악 출판 부문에서 힘겹게 고투하는 저자를 응원한다. 참고로 알라딘 서점에는 실물 도서가 없고 전자책만 판매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806/59/cover150/e07263755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806599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두근두근 클래식 (허제/좋은땅) - [두근두근 클래식]</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3852</link><pubDate>Mon, 08 Jun 2026 19: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385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9452&TPaperId=1732385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9/77/coveroff/k952039452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52039452&TPaperId=1732385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두근두근 클래식</a><br/>허제 지음 / 좋은땅 / 2025년 06월<br/></td></tr></table><br/>클래식 음반 가이드북이다. 저자는 클래식 칼럼니스트인데, 개인적으로 클래식 추천 음반을 살펴볼 때 많이 참조한다. 저자가 낸 책도 여러 권 갖고 있다. &lt;명반 산책 1001&gt;, &lt;불후의 클래식&gt;, &lt;두근두근 클래식&gt;, &lt;클래식의 권장&gt;이다. &lt;명반의 산책&gt;은 지인에게 양도하였다. &lt;명반 산책 1001&gt;은 명곡에 대한 소개 없이 순수한 음반 안내서다. &lt;불후의 클래식&gt;은 소위 명곡 명연을 작품당 여러 면에 걸쳐 집중적으로 소개한다.   &nbsp;  이 책은 대중적인 명곡도 다루지만 비인기 명곡 소개를 많이 한다. 곡 자체에 초점을 맞춰 소개하거나 특정 음반을 알리는 데 주력하기도 한다. 때로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곡가를 발굴하는 경우도 있다. 순수 클래식 음악뿐만 아니라 영화음악과 국악에도 한 항목씩 배정하였다. 최종적으로 음반 소개에 이어지지만 음반을 매개로 한 음악 에세이 겸 가이드북이라고 해야 마땅할 것이다. 클래식 초보자에게 바로 권하기는 어렵지만, 다소간의 지식과 경험이 있는 애호가라면 무척이나 흥미진진하게 책장을 넘길 수 있다. 두껍지 않은 분량에 심리적 접근 장벽도 상대적으로 낮다.   &nbsp;  개인적으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보에 협주곡을 알게 되어 기쁘다. 이름만 들어봤던 라이네케의 &lt;발라드&gt;, 나아가 플루트 협주곡과 운디네 소나타를 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가 작곡한 곡이 그렇게 많다는 사실에 놀랐다. 바버의 &lt;칸쪼네타&gt;와 드뷔시의 피아노 3중주 등도 생소하지만 흥미를 당기기는 마찬가지다. 오펜바흐의 &lt;자클린의 눈물&gt;에 얽힌 비화, 비하의 &lt;아리오소&gt;, 플루트 소품집 &lt;미니어처&gt;와 더불어 경시되던 케텔비의 음반을 소개한 건 무척이나 반갑다.  &nbsp;  당시 평론가들은 ‘불후의 작품’이라고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품위가 없고 저속하지만 즐거운 곡이라며 비난하였다. 또 ‘순수하고 싸구려인 사이비 동양주의’란 빈정거림도 있었다.당시 대중음악의 태동기인 시절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클래식이 아닌 가벼운 것이었고 이게 비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P.148, 케텔비 &lt;페르시아의 시장에서&gt;)  &nbsp;  쿠벨릭이 지휘한 체코필이 연주한 스메타나 &lt;나의 조국&gt;에 관한 저자의 부끄러운 일화, 대형 경기장에서 오페라 공연을 하는 상업주의 비판, 예술의 전당 음향에 관한 저자의 불만, 샤콘느 음악과 추모곡을 연동하여 비슷한 사례를 계속 소개한다든지, 클래식 연주자가 실력보다는 외모와 노출로 주목을 끄는 사례, 아버지의 명성에 가린 바흐의 아들들 중에서 칼 필립 에마누엘 바흐를 부각하는 글 등은 재미와 유익을 두루 갖추고 있다.  &nbsp;  결국 나는 그것을 수정하고자 무려 8년을 기다려야 했고, 드디어 2009년 나온 &lt;불후의 클래식&gt;에 ‘눈시울을 붉히고’로 수정할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후배 말만 믿고 확인도 하지 않고 쓴 내가 경솔했다. (P.22, 스메타나 &lt;나의 조국&gt;)  &nbsp;  멀쩡한 오페라 극장을 놔두고 도떼기시장 같은 대형 경기장으로 나가 오페라 공연을 하고 또 여기에 비싼 돈 내고 사람들이 몰려가는 이유가 몹시 궁금할 따름이다. (P.46, 푸치니 &lt;투란도트&gt;)  &nbsp;  이 책에서 주요 작품 또는 연주로 다루는 음반을 다 감상한 후 독서 단상을 쓰면 좋겠지만, 그러면 꽤 많은 시일이 걸리거나 가능하지 않을 것이기에 - &lt;불후의 클래식&gt; 진도가 나가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순전히 글의 내용만을 가지고 일단 몇 자 끄적거린다.   &nbsp;  다만 여러 장점과 미덕에도 불구하고 책 자체로서 완성도는 많이 부족하다. 정보의 오류는 드물게 나타나지만, 빈번하게 마주치는 맞춤법의 오류는 분명한 교정의 오류다. 좀만 더 꼼꼼하게 살폈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하나씩 예시만 든다.  &nbsp;  칼 뵘 연주 이외에도 명연주로는 모노이지만 에리히 클라이버 연주 그리고 클라우디오 아바도와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연주를 추천한다. (P.51, 모차르트 &lt;피가로의 결혼&gt;)→ 에리히 클라이버 연주는 모노가 아니라 스테레오 녹음  &nbsp;  드보르작이 이 곡을 통해 끝없는 우수와 동경을 마음속의 향수와 같이 토로하고 있다면, 셸 역시 느꼈던 인생의 감회를 마지막 녹음을 통해 백조의 노래로 울부짖고 있다.오늘도 그의 1970년 도쿄 실황 연주는 들으며 예술적 향취에 젖어본다. “인생을 짧은 예술은 길다” (P.175, 드보르작 교향곡 8번)→ 오늘도 그의 1970년 도쿄 실황 연주를 들으며 예술적 향취에 젖어본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길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79/77/cover150/k952039452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79771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매혹하는 미술관 (송정희/아트북스) - [매혹하는 미술관 -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2557</link><pubDate>Sun, 07 Jun 2026 2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2255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380&TPaperId=1732255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81/22/coveroff/89619643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1964380&TPaperId=1732255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매혹하는 미술관 -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a><br/>송정희 지음 / 아트북스 / 2023년 08월<br/></td></tr></table><br/>부제 ‘내 삶을 어루만져준 12인의 예술가’와 같이 갤러리스트인 저자가 애호하는 12인의 여성 미술가를 소개하는 책이다. 여기서 소개하는 12인의 미술가는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 판위량, 마리기유민 브누아, 프리다 칼로,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 원래 마리 로랑생을 다룬 책을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고, 읽어보니 글의 내용이 알차고 깊이 있어 전체를 다 읽게 되었다. 천경자, 카미유 클로델과 프리다 칼로 정도가 그나마 들어본 이름이고 후자 두 명의 간단한 정보만 기존에 접했을 뿐 나머지 미술가는 생면부지다.  &nbsp;  이 책이 동종의 다른 미술 입문서와 구별되는 특색은 저자의 약력이다. 보통 미술 관련 서적은 화가 또는 큐레이터 등 미술 전공자가 집필하게 마련이다.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공감, 감상, 기법 등 전문적 영역은 문외한으로서는 접근에 한계가 있어서다. 저자 송정희는 문학 전공자로서 미술 전시 및 기획에 관심을 가져 갤러리스트로 일하고 있다. 이 책의 글에서 짙은 문학적, 인문학적 이해와 해석이 두드러진 건 이러한 배경 때문이고 그것이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하고 있다.  &nbsp;  저자는 12인의 예술가를 네 가지 키워드로 구분하여 배치한다. ‘아름다움, 그 너머’, ‘뮤즈에서 예술가로’, ‘몸을 통해, 몸을 위해’,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 그것이다. 예술가로 아름다움을 천착하는 건 당연하겠지만, 아름다움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 이들로 특히 조지아 오키프, 마리 로랑생, 천경자를 다룬다. 추상표현주의의 개척자 오키프는 꽃, 짐승 뼈 등 그동안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던 사물을 확대함으로써 그로테스크한 신비로움을 일깨운다. 그녀의 말처럼 본 것을 그렸을 뿐이지만, 그것을 제대로 보고자 한 사람은 이전에 아무도 없었다. 마리 로랑생에 대해서는 건너뛴다. 천경자의 예술과 굴곡진 삶을 처음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과 이국적인 것의 조화를 꿈꾼 그녀의 미술에 대한 평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위작 논란으로 한국을 떠나게 된 그녀의 말년이 안타깝다.   &nbsp;  오키프는 사막에 나뒹구는 하찮은 것들, 평범한 것들, 작은 것들, 버려진 것들을 크게 그렸다. 사람들은 그것을 추상이라고 했고, 그녀는 “그저 본 것을 그렸을 뿐”이라고 했다. (P.35)  &nbsp;  수잔 발라동, 키키 드 몽파르나스, 카미유 클로델을 다룬 장은 남성 예술가에게 영감을 주는 모델 역할을 넘어서 스스로 예술가의 고지로 올라선 인물을 다룬다. 이 점에는 앞에 나온 조지아 오키프도 마찬가지다. 수잔 발라동은 르누아르, 모딜리아니, 드가, 툴루즈 로트레크 등 화가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모델이다. 키키는 사진작가 만 레이, 화가 후지타의 모델이자, 댄서와 가수로 ‘몽파르나스의 여왕’으로 불렸다.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인 동시에 자신 또한 뛰어난 조각가였다. 피사체로 그치지 않고 자신 또한 예술가로 우뚝 서기를 고대하였지만, 정신병원에서 불행한 삶을 마감한 클로델은 그나마 현대에 재평가되고 있다. 발라동과 키키, 특히 여체를 이상화하지 않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그려낸 발라동은 아쉽다.   &nbsp;  인상주의 화가들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부풀리거나 포장하지 않았다. 그녀의 자화상은 강인하고 굴곡진 그녀의 내면을 현실적인 표정으로 살려냈다. (P.112)  &nbsp;  수잔 발라동이 여성 초상화와 누드화를 많이 그렸지만, ‘몸을 통해, 몸을 위해’ 장에서 소개하는 화가는 판위량, 브누아, 프리다 칼로다. 판위량은 삶 자체가 예술과 맞물려 있다. 창기 출신의 여성, 중국인이지만 중국에 돌아가지 못하고 유럽에서 방랑하며 정착하지 못한 미술가. 영원한 사랑과 존경의 대상인 판찬화와 재회하지 못한 채 끝끝내 떨어져 죽음에 이르는 불행한 삶. 벌거벗은 자신의 몸을 통해 인간과 여성을 끊임없이 사유한 예술세계.   &nbsp;  판위량은 자국에서 쫓겨난 디아스포라 예술가였고, 그렇다고 유럽인이나 미국 모더니즘의 틀 안에 자신을 맞출 수도 없었던 경계인이었다. 그녀는 중국에서도 유럽에서도 영원한 타자였다. (P.187)  &nbsp;  프리다 칼로와 남편 디에고, 둘의 만남은 천행인가 불행인가 쉽사리 판단하기 어렵다. 프리다를 괴롭힌 디에고의 행동만을 따져보면 만나서는 안 될 인연이겠지만, 그것이 결국 프리다의 예술로 빚어졌음을 고려한다며. 예술과 인생은 온전히 양립하기 어렵다. 마리기유민 브누아는 신고전주의 화가로서 역사화, 초상화, 자화상 등 여러 작품이 있지만 이 책은 &lt;마들렌의 초상&gt;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19세기 초에 그린 흑인 여성의 상반 나신을 통해 단순히 예술적 아름다움을 넘어서 내밀하게 잠재한 욕망, 편견과 환상을 벗겨내는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해석의 장점을 그대로 드러낸다.  &nbsp;  당시 남성 예술가들과 문학가들에게 깊이 스며들어 있던 성적 욕망은 오리엔탈리즘과 아프리카에 대한 환상으로 나타났다. 이런 욕망과 환상이 초상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세 개의 시선 사이에 촘촘히 개입하고 있다. (P.202)  &nbsp;  마지막으로 ‘회복과 치유의 약속’이라는 주제의 마리나 아브라모비치, 케테 콜비츠, 루이스 부르주아는 앞선 미술가들에 비하면 20세기로 넘어서는 현대 예술가다. 각각 행위예술, 판화, 설치작품이라는 비주류 장르에 천착하여 일가를 이루고 미술계의 주요 일원이 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lt;예술가가 여기 있다&gt;, &lt;리듬 0&gt;, &lt;연인들, 만리장성 걷기&gt; 등의 퍼포먼스는 인상 깊고 때로는 감명 깊지만, 여전히 행위예술 자체는 인물, 시간, 공간의 기억에 의존하기에 당대성을 넘어서기 어렵지 않나 생각한다. &lt;예술가가 여기 있다&gt;를 제외하면 오히려 고행에 가까운데, 고통을 넘어선 너머를 지향하는지도 모르겠다.   &nbsp;  그런 면에서 콜비츠는 빈곤, 전쟁, 고통을 직시하고 고발함으로써 예술을 향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상류층과 부르주아를 위한 예쁜 객체만을 과연 예술이라고 칭할 수 있을까. 우리네 삶은 행복보다는 고통과 불행이 압도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말이다. 그녀의 &lt;판화&gt; 연작, &lt;피에타&gt; 등은 예술의 다른 소명과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것이 민중미술에 영향을 미쳤음은 당연하리라. 루이스 부르주아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거대한 설치작품 &lt;마망&gt;은 책에 실린 조그만 사진이 아니라 실물을 봐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을 것이며, 바느질 작업의 산물도 마찬가지로 사진과 글로는 공감에 한계가 있다. 다만 저자가 던진 질문은 하나의 숙제임에 공감한다.  &nbsp;  예술과 비예술의 아슬아슬한 경계, 모호한 섹슈얼리티, 다중 정체성을 내포한 그녀의 말년 바느질 작업은 여전히 우리가 지금도 물어야 할 질문이자 과제로 남아 있다. (P.303-304)  &nbsp;  저자가 여성 미술가만 소개한 것은 동성 예술가의 삶과 예술세계가 저자에게 더 와닿아서라고 밝힌다. 따라서 직접적 의도는 아니더라도 여성주의적 시각이 내용과 글에 일부 반영되어 있음을 인식하고 책을 읽어 나갈 필요가 있다. 판위량을 창기의 신분에서 구제하고 결혼한 후 예술가로서 대성하도록 물심양면의 지원을 한 판찬화를 제외한 대다수 남성 인물은 그리 긍정적으로 기술하지 않고 있음도. 오키프와 스티글리츠, 로랑생과 아폴리네르, 클로델과 로댕, 프리다와 디에고, 마리나와 울라이 등을 보면 여성 예술가에게 남성과 사랑은 불타오르는 예술의 동력인 동시에 자신을 갉아먹는 촛불과도 같다.   &nbsp;  알지 못하였던 좋은 미술가를 여럿 알게 된 것이 이 책에서 얻은 큰 소득이다. 꼼꼼하고 차분하게 써 내려간 저자의 문장은 인문학적 글쓰기의 미덕과 결부하여 예술가와 예술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한다. 반복해서 읽어보고 싶은 마음은 결국 미술가와 작품에 대한 일반적 소개를 넘어 해당 인물의 삶과 예술의 진지한 관찰과 해석이 주는 문장의 맛을 깊이 음미하기 위해서다. 개별 미술가에게 할당된 적은 분량의 글에서도 핵심적 내용을 충분히 전달하고 있으며 나아가 소개된 예술가에 대한 호기심과 흥미를 불러일으켜 추가로 지적 욕구마저 생기게끔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281/22/cover150/89619643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281224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마리 로랑생 회고전 - 무지개 위의 춤 (2026.5.29)</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7612</link><pubDate>Fri, 05 Jun 2026 00:2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7612</guid><description><![CDATA[<br>전시회명 : 마리 로랑생 회고전 - 무지개 위의 춤기간 : 2026.4.10-8.23장소 : 마이아트뮤지엄<br>관람일자 : 2026년 5월 29일(금)<br>* 관람평광고 포스터가 눈길을 끌어서 잘 알지 못하면서 덜컥 예매하였다. 작가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기대감을 지닌 채 관람장에 들어선다. 처음 가보는 곳이었는데 전시환경은 괜찮은 편이었다. 두드러진 불편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작품 옆에 바로 작품 설명이 없는 경우가 제법 많다는 점이다. 전시를 위한 최선의 선택인지는 모르겠지만 작품 설명이 한군데 몰려 있어 내가 관람하는 그림이 무언지를 곧바로 확인이 어렵다.<br>마리 로랑생 뮤지엄과 협력하여 100여 점을 전시하였다고 하는데, 확실히 대다수의 대표작을 한자리에서 일별할 수 있어 좋았다. 작가의 연대순으로 세탁선의 여인, 잊혀진 여인, 무지개 위의 춤, 장미와 여인의 네 섹션으로 구분하여 작품 이해를 돕고 있다. 도판을 통해 익히 본 그림이 많지만 실제 작품을 눈으로 보는 느낌은 전혀 다르다. 실관람에서 개별 작품의 크기를 비로소 체감할 수 있으며, 재질과 표현방식에 따른 차이도 확연히 구분할 수 있다.<br>기억에 남는 그림들을 두서없이 나열하면 &lt;가구가 딸린 렌트하우스&gt; &lt;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에서의 춤&gt; &lt;종려나무 아래의 젊은 여인&gt; &lt;춤&gt; &lt;성 안에서의 생활&gt; &lt;초상화&gt; &lt;기타를 든 두 소녀&gt; &lt;마담 앙드레 그루의 초상&gt; &lt;무희들&gt; &lt;음악&gt; &lt;세 명의 젊은 여인들&gt;이다. 대체로 큰 사이즈의 그림이 주는 강렬한 인상이 여운을 남긴다.<br>마리 로랑생의 작품 특징, 즉 여성들의 세계를 주로 대상으로 삼았고, 파스텔톤 색상을 즐겨 사용하였으며, 그림 속 여성들은 현실세계가 아닌 신화와 환상 속 여인 같은 이미지를 지니는 점이 작품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언뜻 비슷하면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각자의 개성을 찾아볼 수 있다.<br>익히 알려진 회화 외에도 삽화가로서의 면모도 들여다볼 수 있다. &lt;가든파티&gt; &lt;춘희&gt; 등에 수록된 석판화 등을 소개하고 있다. 유익한 동시에 흥미로운 전시회다. 가정의 달 이벤트로 엽서 한 장을 받았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5/pimg_70938915351443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761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정조의 비밀편지 (안대회/문학동네) - [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6925</link><pubDate>Thu, 04 Jun 2026 18:1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69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929&TPaperId=173169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10/83/coveroff/895460992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09929&TPaperId=173169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정조의 비밀편지 - 국왕의 고뇌와 통치의 기술</a><br/>안대회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01월<br/></td></tr></table><br/>조선 후기 중흥을 일구었던 영조와 정조의 찬란한 시대가 갑작스럽게 스러진 후 조선왕조는 빠르게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때 이른 정조의 죽음으로 인한 어린 순조의 즉위는 왕권 약화와 세도정치가 발호한 빌미가 되었다. 급격한 정치적 격변을 음모론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은 정조 독살설을 주장하였고 꽤 많은 지지층을 모았다. 이를 다룬 소설과 영화도 등장하여 대중의 관심을 끌 정도였다.  &nbsp;  우리가 생각하는 정조와 노론 벽파는 팽팽한 대립 관계다. 왕이지만 전권을 휘두를 수 없고, 파당을 형성하여 왕권을 능히 견제할 수 있는 신하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싸고 동정하는 무리와 옹호하는 무리의 당쟁. 정조의 재위는 왕권의 기반을 강화하고, 노론 벽파를 견제하면서 왕조를 재건하려는 분투의 기간이었다면 과장일까.  &nbsp;  정조의 어찰과 심환지의 문집, 그리고 &lt;정조실록&gt;을 비롯한 정사, 이 세 가지 사료를 견주어볼 때, 정조는 공식과 비공식의 두 가지 경로를 이용하여 심환지와 접촉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P.58)  &nbsp;  2009년에 공개된 정조의 어찰은 그런 면에서 역사 이해에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정조가 노론 벽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350여 통의 비밀편지. 그것은 단순한 안부 묻는 성격을 넘어서는 서신 정치 또는 공작 정치의 내용을 담고 있다. 정조는 국정의 시시콜콜한 사항을 사전에 심환지에게 묻거나 본인의 뜻을 전하면서 따르도록 요구하거나 다른 신하들의 행위를 날카롭게 평가한다. 정치, 인사 관련 주요 현안에 대해 누가 어떤 식으로 주장을 펼치도록 조정한 흔적도 역력하다. 배우를 선발하고 연기와 대사를 배정하여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 무대를 지휘하는 연출자의 모습이 바로 정조다.  &nbsp;  여기서 우리의 역사 이해는 혼란스럽다. 비밀편지가 집중된 정조 시대 후기의 공식 사료의 내용을 어디까지 신뢰해야 할 것인지. 심환지는 정조의 어명을 거스르고 비밀편지를 파기하지 않았다. 심환지 외에 얼마나 많은 당대 신하와 정조가 비밀편지를 주고받았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공식 사료 독해보다는 이면의 정치 역학이 본질에 가까움을 우리는 계속 의심해야 하게 되었다.   &nbsp;  정조가 보낸 비밀편지는 자신을 독살했다고 오해할 만큼 적대적 관계로 알려진 심환지를 적극적으로 회유하고, 막후에서 비밀스런 지시와 조정을 주도하는 노련한 정치가의 수완과 동태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P.11)  &nbsp;  이 책에 따르면 비밀편지는 내용상으로도 다방면의 해석을 요하는 흥미로운 사항을 많이 포함하며, 문장 면에서도 흥미로운 대목이 눈에 띈다. 짧은 시간을 내어서 급하게 써 내려간 글이다 보니 수사성을 배제하고 직설적인 문체를 사용하고 문체반정의 당사자인 자신의 공식 입장과는 다른 소품체의 문장을 구사했다고 한다. 이두식 표기의 사용은 물론 한글 어휘를 그대로 노출하는 등 구어적 표현도 드물지 않다.   &nbsp;  이 비밀편지의 공개를 통하여 우리는 모범적 군주 정조가 아닌 노회한 정치가 정조의 이미지를 새로이 떠올리게 되었다. 신하들을 인형처럼 자유자재로 조종하고자 하였던 정조. 공식 석상에서는 노론 벽파에게 공격적으로 보였던 이면에는 이처럼 어르고 달래면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풀어나갔던 것이다. 임금과 어찰을 교환한다는 것은 신하로서는 무한히 영광스러운 일이며 자신이 특별대우를 받는다는 의미일 테니 더더욱 임금에게 협조적으로 되기 마련일 것이다.  &nbsp;  그런데 심환지는 어명을 어기면서까지 어찰을 보관하였던 것일까? 어쩌다 한두 통이 아니라 거의 전부를 수신일시까지 표시하며 일목요연하게 남겨둔 까닭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단순히 어찰의 영광을 오래 보존하려는 목적이 아님은 금방 알 수 있다. 그러면 다른 정치적 의도를 지닌 것으로 봐야 하는데, 여기서 심환지가 호락호락한 인물이 아님을 알게 된다.  &nbsp;  정조와 노론 벽파는 결코 한배를 탈 수 있는 정치적 동지는 아니다. 정조는 심환지를 통하여 벽파를 통제하려 하였고, 심환지는 정조의 비밀명령을 따르고 호응하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여차하면 이를 뒤집을 수 있는 물증을 손에 쥐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고 보면 어찰에서 정조가 심환지의 무심함과 부주의함을 수차 지적하고 있음은 심환지가 정조가 원하는 그대로 항상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봐야 할 것이다.  &nbsp;  &lt;어찰첩&gt;에 보이는 정조의 성격은 다혈질적이고, 흥분을 잘하며, 조급하다. 정조는 이러한 자신의 성격을 태양증이라고 자체적으로 분석했다. 그 때문에 화병도 자주 나고 가슴의 심한 통증도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P.97)  &nbsp;  이 어찰을 통해 저자는 정조의 사망 원인이 독살보다는 자연사, 즉 병사에 가까움을 짚는다. 편지에서 정조는 자신의 건강 상태가 나쁨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병세를 스스로 진맥까지 하고 있다. 사십 대 중반이라면 당대 기준으로는 결코 적은 나이는 아니다. 임금으로서 국정을 총괄하고, 반대파 신하들과 대립하는 가운데 화성 신축과 문예부흥을 끌어내는 다사다난한 과업을 수행하면서 받는 스트레스 또한 격심하였을 것이다. 타고난 기질과 군주 지위가 갖는 막중함이 결부되어 정조의 병을 심화시킨 것이 아니었을까. 이 어찰의 존재로 독살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저자의 주장대로 한층 설득력을 가지려면 보다 명백한 근거 제시가 필요할 것이다. 노론 벽파와 정순왕후가 굳이 독살을 감행할 명분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nbsp;  정조의 비밀편지는 조선 후기 우리가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과 사고에 커다란 전환점을 마련하였다. 이제 우리는 정조 시대 공식 사료가 기록하는 역사상의 사건을 액면 그대로 믿기 어려워졌다. 정조의 진정한 의도는 공식 사료에 있을까 아니면 공개 또는 비공개된 비밀편지에 숨어 있을까. 흥미로운 동시에 더 깊은 노력과 연구를 요구하는 과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10/83/cover150/895460992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10838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 (마리 로랑생/이혜연/수오서재) - [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5848</link><pubDate>Thu, 04 Jun 2026 00:4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58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7910&TPaperId=173158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2/91/coveroff/k8321379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32137910&TPaperId=173158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죽었다기보다 잊혀졌어요</a><br/>마리 로랑생 지음, 이혜연 편역 / 수오서재 / 2026년 04월<br/></td></tr></table><br/>마리 로랑생 전시회에 가기에 앞서 화가의 삶과 그림 세계를 알고 싶었다. 전시회 설명이 다소 부족하다는 평도 있었기에 더욱 그러하였다. 이 책은 시중에 유통중인 마리 로랑생 관련 유일한 서적으로서, 그녀의 유일한 자전적 저서를 편역하고, 95점의 대표작 도판을 수록하였다고 한다.  &nbsp;  이 책에 실린 마리 로랑생의 글은 그의 첫 책이자 유일한 저서인 &lt;밤의 수첩&gt;을 편역해 구성했음을 밝힌다. &lt;밤의 수첩&gt;에는 마리 로랑생의 산문, 시, 단상들이 담겨 있다. (일러두기)  &nbsp;  이 책의 장점은 화가 자신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점과 상대적으로 큰 판형과 고급용지로 담은 풍부한 도판이다. 단점은 기본적 개요 외에 수록작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도판이 연대기적으로 나열되어 있어 본문과 그림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이다.<br>처음 9면에 걸쳐 그녀의 생애를 소개한 글을 담고 있는데,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의 연인이었고 야수파와 입체파의 득세하던 사조 속에서 자신만의 독자적 화풍을 유지 발전하였다는 점이 눈에 띈다. 운 나쁜 결혼으로 뜻하지 않게 망명 생활을 겪어야 했으며, 디자이너 니콜 그루와의 동성애적 동반자 관계를 장기간 유지하였음도 알게 되었다. 여기에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아폴리네르의 유명한 시 &lt;미라보 다리&gt;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말년의 그녀는 나치 정권에 모호한 입장을 취하여 전후 부역 판정을 받았으며, 무엇보다 유언이 가슴에 다가온다.  &nbsp;  마리 로랑생은 서양미술사에서 흔히 남성의 관점에서 여성상을 그리던 관습에서 벗어나, 여성의 눈으로 바라본 그들의 모습과 여성성을 담아낸 최초의 여성 화가라고 평가되기도 한다. (P.14)  &nbsp;  그녀의 그림은 대부분 여성을 소재로 한다. 남성은 거의 배제되거나 개인적 친분이 있는 극히 예외적 존재만을 그렸다. 작품 속 여성은 남성의 시각과는 전혀 무관한 순전히 여성 화가의 시각에 비친 여성적 인상이다. 현실의 여성이라기보다 신화와 환상 속의 여인처럼 가볍고 투명하며 시공을 부유하는 듯한 가냘프고 섬세한 모습이다. 그녀의 작품에서 육감적 여성은 너무나 거리가 멀다. 아폴리네르와 열정적 사랑과는 무관하게 그녀는 이미 동성애적 성향을 내재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여성 간의 편안하고 친밀한 분위기, 비슷한 취향과 부드러운 대화는 남성과의 관계에서는 좀처럼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그녀의 글의 도처에서 이를 찾을 수 있다.  &nbsp;  연대순으로 수록된 그림을 보면 초기에는 입체파 등의 영향을 받았으나, 1912년 &lt;가구가 딸린 집&gt;에서 비로소 그녀의 개성적 화풍이 펼쳐지기 시작함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 속 여성은 검은 윤곽선으로 신체를 표현한 가운데 긴 팔과 긴 손가락, 날아갈 듯 발끝을 세우고 있다. 얼굴형도 뾰족한 인상을 주는 가운데 눈은 세부 묘사 없이 검정색만으로 그리고 있다. 주변에는 대체로 악기가 등장하고, 개 또는 말과 같은 반려동물도 함께 하는 경우가 많다. 후기로 가서는 검은 신체 윤곽선이 사라지고 얼굴형도 부드러워지며, 비교적 화려한 색도 간혹 사용하는 사례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한 눈에 봐도 마리 로랑생의 작품임을 알아 챌 수 있을 정도의 특색은 여전하다.  &nbsp;  수록된 그림들 가운데 인상에 남는 작품을 두서없이 나열하면, &lt;가구가 딸린 집&gt;, &lt;우아한 무도회 또는 시골 무도회&gt;, &lt;춤&gt;, &lt;조각배&gt;, &lt;삼미신&gt;, &lt;다이애나 여신&gt;, &lt;성의 삶&gt;, &lt;곡예를 하는 소녀&gt;, &lt;세 소녀&gt;, &lt;개가 있는 풍경&gt;, &lt;무희들&gt;, &lt;세 명의 젊은 여인&gt;이다. &lt;자화상&gt;, &lt;코코 샤넬의 초상&gt;, &lt;키스&gt;처럼 대표작으로 알려진 그림은 그렇게 와닿지 않는다.  &nbsp;  세상에 혼자 남겨졌다기보다 / 쫓겨났어요. /쫓겨났다기보다 / 죽었어요. / 죽었다기보다 / 잊혀졌어요. (P.84, 진정제)  &nbsp;  이 책이 마리 로랑생의 화첩을 넘어서는 가치는 그녀 자신의 글을 담고 있어서다. &lt;밤의 수첩&gt;을 발췌 편역이기에 글의 온전한 모습을 알기 어렵지만, 그녀 스스로가 밝히고 있는 여성성의 의미, 아폴리네르와 관계와 일화, 어릴 적 아버지와 얽힌 육식 양 추억 등은 그녀 작품을 해석하는 단초 역할을 담당한다. 이 책의 표제도 그녀의 시에서 한 대목을 가져온 것이다.   &nbsp;  &lt;밤의 수첩&gt;이 제대로 출판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의 전기도 &lt;마리 로랑생, 사랑에 운명을 걸고&gt;라는 제목으로 역시 오래전에 나왔다가 단종되었다. 부록으로 연보가 실려 있는데, 흥미로운 대목이 있어 마지막으로 소개한다. 1983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일본에서 마리로랑생미술관을 설립했다고 한다. 앞서 보았던 알폰스 무하도 그렇고, 일본의 문화적 저력을 다시금 보게끔 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8932/91/cover150/k8321379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8932913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김진환 비올라 독주회 (2026.6.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4071</link><pubDate>Tue, 02 Jun 2026 23:2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4071</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김진환 비올라 독주회일시 : 2026년 6월 2일(화) 19:30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연주 : 김진환 (비올라), 서형민 (피아노)프로그램&nbsp; - 브루흐, 콜 니드라이 Op.47&nbsp; - 힌데미트, 무반주 비올라 소나타 Op.25 No.1&nbsp; - 브리지, 생각 &amp; 알레그로 아파쇼나토&nbsp; - 요크 보웬, 비올라 소나타 1번 C단조 Op.18<br>* 세줄평비올라로 듣는 콜 니드라이는 다소 낯설다. 힌데미트의 소나타는 무반주라서 더욱 비올라의 음색을 더욱 잘 느낄 수 있는데, 마지막 악장을 생략하여 아쉽다. 후반부의 메인은 보웬의 소나타다. 처음 듣는 작곡가와 곡이다. 뭐랄까, 유머러스함과 진지함, 열정이 잘 조화된 작품으로 굉장히 인상적이었다.&nbsp;앵콜곡으로 오펜바흐의 '자클린의 눈물'이라 금상첨화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602/pimg_7093891535142312.jpe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407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오무아무아 (아비 로브/강세중/쌤앤파커스) - [오무아무아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1623</link><pubDate>Mon, 01 Jun 2026 18:5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116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734310&TPaperId=173116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64/37/coveroff/k86273431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62734310&TPaperId=173116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오무아무아 - 하버드가 밝혀낸 외계의 첫 번째 신호</a><br/>아비 로브 지음, 강세중 옮김, 우종학 감수 / 쌤앤파커스 / 2021년 09월<br/></td></tr></table><br/>2017년 하와이에서 망원경으로 이상한 우주 물체가 하나 탐지되었다. 소행성 또는 혜성의 하나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특성을 파악할 수 없어 하와이어로 ‘오무아무아’, 즉 ‘탐색자’라고 명명하였다. 대다수의 천문학자는 오무아무아를 특이하긴 하지만 우주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물체로 간주한다. “독특한 모양과 특징적 반사”는 기존의 우주 물체 범주로는 설명하기 어렵지만 어쨌든 그렇다고 보는 것이다.  &nbsp;  오무아무아는 외계 기술 장비다.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 가설이다. 모든 과학적 가설과 마찬가지로 데이터와 대조, 검증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과학에서 흔히 그렇듯 우리가 가지고 있는 데이터는 확정적이지는 않지만 상당하다. (P.294)  &nbsp;  이 책의 저자인 하버드대 천문학과의 아비 로브는 여기에 이의를 제기한다. 오무아무아는 외계의 인공 물체라는 주장이다. 기묘한 외관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오무아무아가 보이는 특이한 궤도는 자연적인 동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견해다. 소행성이나 혜성의 에너지원인 가스나 붕괴가 아닌 다른 동력을 사용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nbsp;  오무아무아의 속성과 궤도를 설명하기 위한 무리한 가설을 억지로 전개하기보다 인공 에너지를 토대로 우주를 유영한다고 설명하면 간단하다. 그는 그것이 가능함을 빛의 돛 추론 가설로 제시한다. 아주 얇은 거울 돛을 지닌 경량 우주선이라면 현행 우주선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여행할 수 있어 성간 탐사가 가능하다고 제시한다. 우리도 기술적으로 가능한데 고등 문명을 지닌 외계 생명체라고 불가능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다.  &nbsp;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자연적으로 그러한 형상을 가진 물체는 전혀 없고, 그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알려진 자연적인 과정도 없다. 그런데 인류는 그 요건에 맞는 것을 만들어 냈고, 심지어 우주로 쏘아 올리기까지 했다. 바로 빛의 돛이다. (P.159)  &nbsp;  오무아무아의 발견이 이미 늦고 상세한 자료가 부족한 상황에서 모든 건 추측과 가설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주류 과학자는 오무아무아를 자연물로 이해한다. 비록 정보 부족으로 확인할 수 없지만 특이한 속성도 결국 드물지만 극단적 예외에 속하는 것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인공물로 보는 의견조차도 우주 쓰레기 정도로 약화해 이해하려고 한다.   &nbsp;  주류 과학은 우주에는 지구 행성의 인간 외에 고등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성간 여행을 하는 인공물이라는 개념은 원천적으로 논의의 대상에서 배척한다. 제아무리 기묘하더라도 오무아무아는 따라서 자연물일 수밖에 없다. 저자는 이에 냉엄한 비판을 던지는데, 그것은 결국 인간의 오만과 무지를 드러낼 뿐이라는 것이다.  &nbsp;  천문학에 문외한인 우리로서는 무엇이 맞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저자의 주장은 확실히 타당성이 있다. 반면 수많은 천문학자가 단지 맹목적 편견에 사로잡혀 외계 생명체와 인공물을 부정한다고 믿고 싶지 않다.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오를 탄압한 인물들은 과학계가 아니라 종교계가 아니었던가.  &nbsp;  이 책에서 저자는 외계 생명체 연구에 대한 과학계의 부정적 인식과 몰이해를 비판한다. 자신이 보기에 터무니없을 정도로 확률이 낮은 이론에는 엄청난 돈을 투입하면서도 지적 생명체가 가까운 우주에 존재할 높은 가능성은 일부러 외면하는 듯한 학계에 실망과 분개가 느껴질 정도다. 모든 건 인간의 유일성에 대한 맹목적 믿음에 기인한다고 본다.  &nbsp;  대부분의 과학계가 이 가설을 불편해하는 이유는 오무아무아를 만든 것이 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다른 문명이 그렇게 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발견 중 하나, 즉 우주에서 우리만이 유일한 지능이 아니라는 발견이 우리 태양계를 통과했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P.297)  &nbsp;  저자는 ‘우주 고고학’을 제창한다. 지구 행성이 아닌 다른 우주에 존재하는 생명을 찾아 나서는 일이야말로 과학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고 본다. 오무아무아는 이러한 외계 생명체의 존재를 입증하는 단서 역할이 되는 셈이다. 이 책이 순수 과학서로 구분되기 어려운 점이 여기서 발생한다. 어찌 보면 저자는 천문학계에서 소외당하는 비주류의 연구 분야를 부각하기 위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하겠다.   &nbsp;  게다가 저자가 주창하는 우주 고고학의 성과를 지나치게 낙관론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오무아무아가 정말로 외계 인공물이라면, 오무아무아를 날려 보낸 고도의 지성을 지닌 생명체가 존재하는 셈이다. 우리와 그들이 우주에서 조우할 때, 양자 간의 소통이 원활하고 상호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될 수 있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비단 SF 영화의 흥미적 요소만을 위해 외계인의 침공 시나리오가 자주 사용되는 건 아니다. 인류는 과학의 순진한 낙관적 전망이 어떻게 비극적 결과가 이어졌는지 수차례 목격하였다. 과학계와 여기에 연구비를 지원하고 지지하는 정부와 시민들이 과연 ET를 발견하기 위한 노력에 그토록 큰 자원과 관심을 쏟을 것이란 섣부른 기대는 금물이다.  &nbsp;  다른 행성에서 생명체의 증거를 발견한다면 이는 우리를 근본적이고도 미묘한 방식으로 변화시킬 것이다. 나는 그 변화 중 대부분은 더 좋아지는 것이라고 상상하게 된다. (P.259)  &nbsp;  그럼에도 저자의 빛의 돛 추론은 흥미롭다. 태양계를 벗어난 저 먼 우주를 탐험하기 위한 우주선은 빛에 가까운 빠른 속도를 낼 수 있다면 더욱 좋다. 우리는 아직 태양계를 넘어서지 못하였는데, 빛의 돛이 여기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실제적 고안이라면 관심을 끌 수 있지 않겠는가. 빛의 돛에 달린 작은 카메라가 탐지하는 모든 것은 천문학은 물론 우주와 세계를 이해하는 우리 자신의 인식에도 분명 발전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므로.  &nbsp;  오랜만에 읽는 천문학 서적이다. 다만 흔히 생각하는 성격과는 다소 다른 유형인데, 우주와 별, 은하 등을 다루는 게 아니라 외계 존재의 가능성을 추적한다. 어쨌든 오무아무아는 엄연한 사실이다. 단지 우연한 일개 현상으로 만족하고 묻어버릴 것인지 아니면 이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고 무엇을 끌어낼 것인지는 과학자뿐만 아니라 우리가 과학에서 기대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한 복합적인 견해와 맞물려 있음을 깨닫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964/37/cover150/k86273431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964376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강진 오르간 연주회 (2026.5.29)</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05755</link><pubDate>Sat, 30 May 2026 14: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05755</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제17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진일시 : 2026년 5월 29일(금) 19:30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연주 : 강진 (오르간)프로그램&nbsp; - 바흐, 오르간 협주곡 G장조 BWV 592&nbsp; - 바흐, 코랄 전주곡 "주 예수 그리스도여, 우리와 함께 계시옵소서" BWV 649&nbsp; - 바흐, 코랄 전주곡 "깨어라, 우리를 부르는 소리 있도다" BWV 645&nbsp; - 비에른, 환상모음곡 Op.54 중 6곡 '웨스트민스터의 종소리'&nbsp; - 바흐, 전주곡과 푸가 BWV 552 중 5성 푸가&nbsp; - 댄 밀러,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nbsp; - J. C. H. 링크, "피난처 있으니" 선율에 의한 변주곡 Op.55 중 1-4번, 12번, 피날레&nbsp; - 비에른, 오르간 교향곡 3번 Op.28 중 5악장 피날레<br>* 세줄평오늘 프로그램은 바흐와 비에른이 주인공이다. 바흐의 오르간 협주곡보다는 확실히 코랄이 그나마 친근하다. 비에른의 첫곡은 흥미롭고 마지막 곡은 장대하다. 링크의 작품은 생소하지만 재밌게 들을 수 있을만하다. 연주자의 후평처럼 예배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는 선곡이다. 지난번보다는 꽤 많은 청중이 자리하여 의외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30/pimg_709389153513893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0575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밤의 피크닉 (온다 리쿠/권남희/북폴리오) - [밤의 피크닉]</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302371</link><pubDate>Thu, 28 May 2026 19:5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30237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0892&TPaperId=1730237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8/20/coveroff/893783089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830892&TPaperId=1730237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밤의 피크닉</a><br/>온다 리쿠 지음, 권남희 옮김 / 북폴리오 / 2005년 09월<br/></td></tr></table><br/>왠지 마음이 끌리는 책이 있다. &lt;꿀벌과 천둥&gt;을 읽으면서 온다 리쿠를 알게 되었고, 그녀의 소설 중 &lt;밤의 피크닉&gt;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읽어볼까 말까 계속 망설이다 이렇게까지 오래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다면 심적 해방을 위한 독서라도 괜찮겠다 싶었다.  &nbsp;  모두 줄지어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어째서 이렇게 특별한 느낌인 걸까.  &nbsp;  뒤표지의 문장이 유독 마음에 와닿는다. 걷기의 묘미, 그것도 단체 걷기가 지니는 최고의 미덕을 더없이 간결하게 잘 기술한다. 걷기를 좋아하고, 걷기를 다룬 작품 독서를 애호하는 나로서는 끌리지 않을 수 없다.  &nbsp;  고등학생들이 거교적으로 일 년에 한 번 치르는 ‘야간보행제’, 말이야 그럴듯하지만 야간 행군이나 다름없다. 한두 시간도 아니라 스물네 시간을 걷는 강행군은 그야말로 고행이 아니겠는가. 그럼에도 이 소설에 등장하는 학생들은 보행제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막상 보행제를 그리워하는 모순된 감정을 느낀다. 당시의 고통은 순간적이지만 보행제가 주는 추억과 상념은 두고두고 가슴속에 남아서다. 미국에 유학 간 안나의 목소리가 그러하고, 누나의 체험을 부러워하던 준야가 슬그머니 합류한 것도 마찬가지다.  &nbsp;  나란히 함께 걷는다. 단지 그것뿐인데, 신기하네. 단지 그것뿐인 것이 이렇게 어렵고, 이렇게 엄청난 것이었다니. (P.336)  &nbsp;  걷는 행위는 가장 원초적인 동작인 동시에 정신을 건강하게 만든다. 제아무리 침울하고 우울해도 훌쩍 한 바퀴 걷고 나면 한결 가슴이 가벼워지는 건 우연이 아니다. 걷기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이 오늘도 자기 수준에 맞춰 단거리에서 장거리까지 수많은 걸음을 분주히 놀린다. 걷기는 지극히 개인적인 행위이지만, 여럿이 걸을 때 주위를 향한 경계선을 낮추고 서로의 마음을 수용하려는 태세를 나타내는 경우가 있다. 단순한 신체적 행위 속에서 타인에게 숨기거나 속이고자 하는 작위적 마음은 오래가지 못한다.   &nbsp;  그리고 밤의 미학은 어떠한가. 낮과 해가 이성이라면, 밤과 달은 감성이다. 명징한 의식은 밤의 어둠과 고요와 애매함 속에서 풀어지고 튼튼한 심리적 방어망은 느슨해지지 않던가. 여기서 서로 간에 속 깊은 대화를 통해 마음을 주고받는 환경이 조성된다.  &nbsp;  같은 반인 니시와키 도오루와 고다 다카코는 이복남매이다. 아버지의 외도로 맺어진 관계이니 서로가 편하지는 않다. 친구들에게도 철저히 집안의 수치를 숨기고 있지만 서로를 향한 의식마저 숨길 수는 없다. 영문 모르는 친구들은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는 두 사람이 은연 중 좋아하지만 표현하지 못하는 걸로 오해할 정도다.  &nbsp;  고교 3학년생으로 마지막 보행제인데, 얼마 있으면 졸업하고 뿔뿔이 흩어질 텐데, 이대로 데면데면한 관계로 끝내야 하는가. 이 작품은 고다와 도오루의 시점을 오가면서 각자가 교대로 화자가 되어 보행제와 자신과 가족, 친구들의 상황을 기술한다. 고다는 처음에는 반 친구와 후반부에는 단짝 미와코와, 도오루는 줄곧 시노부와 함께 걷기를 이어 나간다.  &nbsp;  잡담과 때로는 침묵이 교차하면서 진로 진학, 이성 친구 교제와 같은 또래에 통상적으로 갖게 되는 고민을 주고받기도 하며, 좋아하는 상대방에게 마음을 고백하려는 대담한 시도를 하는 학생도 있다. 고다와 도오루를 맺어주려는 헛된 깜짝 계획도 있다. 불미스러운 스캔들의 주인공을 색출하기 위한 은밀한 탐색 작업도 동반되는 등 그들의 대화와 고민은 청소년과 성인의 경계선상에 놓여있는 만큼 다채로우면서도 위태롭기도 하다.  &nbsp;  “굳이 잡음을 차단하고 얼른 계단을 다 올라가고 싶은 마음은 아프리만큼 알지만 말이야. 물론 너의 그런 점, 나는 존경하기도 해. 하지만 잡음 역시 너를 만드는 거야. 잡음은 시끄럽지만 역시 들어두어야 할 때가 있는 거야.” (P.155-156)  &nbsp;  부모들은 자녀에게 흔히 이렇게 말한다. 다른 데 신경 쓰지 말고 학업에 집중하라고. 이성 친구와 몰입하고픈 취미는 나중에 대학 가서 해도 충분하다고. 학생들은 온갖 관심과 욕구를 억누르는 게 권장되고 당연시되는 풍토와 습관에 함몰된다. 그들에게 고등학생 시절은 훗날 어떤 의미와 기억으로 떠오를까. 학교, 학원, 과외, 독서실로 날마다 쳇바퀴 도는 맹목적인 나날이 아닐까. 한국이 아닌 일본의 학생들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으리라. 그래서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한 어조로 도오루에게 해주는 말은 어른다워 오히려 어색하게 들린다.  &nbsp;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 내지 증오라고들 하지만, 정말로 무서운 건 무관심이다. 사랑이든 증오든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애초에 관심이 없다면 그건 더 이상 어떠한 관계 설정도 불가능하다. 고다와 도오루의 표면적 무시와 외면이 친구들의 눈에 두드러진 건 그래서였으리라. 차라리 덤덤한 동급생 관계였다면 모를까. 그것은 두 사람의 내면에 서로를 향한 끌림이 있어서다. 유전자의 힘이라고 해도 좋을.  &nbsp;  결국 불평을 쏟아놓자, 시노부가 보기 드물게 진지해졌다.“이봐, 그건 아냐. 순서가 바뀌었어. 너희들이 연결되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는 거야.” (P.151)  &nbsp;  고교생을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에 결말은 비교적 긍정으로 나아간다. 전속력으로 달리다가 다리를 다쳐 낙오한 도오루와 그를 돌보는 시노부. 때마침 지나치다가 그들을 발견하는 고다와 미와코. 서로를 향한 연대와 응원이 필요한 때 도오루와 고다는 비로소 제대로 된 대화를 처음 주고받는다. 막상 아무것도 아닌 것을, 두 사람은 서로를 미워하고 원망할 아무런 이유도 없는데. 잘못은 어른이 한 게 아닌가, 게다가 그들은 한 아버지라는 불가변한 공통점을 지닌다.   &nbsp;  앞으로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긴 세월.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버린 지금부터, 두 사람의 새로운 관계를 기다리고 있는 시간. 이제는 도망칠 수 없다. 평생 끊을 수 없는 앞으로의 관계야말로 진짜 세계인 것이다.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P.349-350)  &nbsp;  소설의 초점은 응당 주인공인 고다와 도오루, 그리고 그들의 절친인 미와코와 시노부에 맞춰져 있다. 작가는 이들을 둘러싼 다양한 학우들을 등장시켜 작품의 폭과 깊이를 더한다. 안나와 동생 준야, 고다의 학급친구이자 보행제 전반을 동행하는 치아키와 리카의 소탈함, 엉뚱함이 매력인 고이치로와 도오루에게 깜짝 고백하는 우치보리 등. 이들은 단지 주변인물에 그치는 게 아니라 동년배 청소년들의 생활과 생각의 단면을 절묘하게 드러낸다.  &nbsp;  &lt;꿀벌과 천둥&gt;에서도 경험했지만 온다 리쿠의 작품은 최고 미덕은 문장과 서사가 주는 힘 자체다. 작가는 화려한 수식구와 정교하게 세공한 문장에 천착하지 않는다. 평범하지만 꼭 적합한 문장이 필요한 때와 곳에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적절하게 배치되어 있다. 독자는 낮과 밤을 지나면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을 되풀이하듯 자연스러운 흐름을 따라 작품을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쪽에 이르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작가로서 이보다 더 행복한 일이 있을까.]]></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8/20/cover150/893783089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82029</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강한미 오르간 연주회 (2026.5.2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94770</link><pubDate>Sun, 24 May 2026 18: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94770</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제16회 남대문교회 파이프오르간 연주회 - 오르가니스트 강한미일시 : 2026년 5월 22일(금) 19:30장소 : 남대문교회 대예배실연주 : 강한미 (오르간)프로그램&nbsp; - 바흐, 오르간 작품(환상곡 G장조) BWV 572&nbsp;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nbsp; - 로제-뒤카스, 전원곡&nbsp; - 메시앙, 천국을 소망하는 영혼의 고요한 알렐루야&nbsp; - 맥밀란, 아카데미 행진&nbsp; - 뒤뤼플레, '오소서 창조주 성령이여' 주제에 의한 전주곡, 아다지오와 코랄 변주곡 Op.4<br>* 세줄평남대문교회는 언덕 위에 있어 접근성이 불편하지만 대예배실 공간은 훌륭하며 오르간의 자태도 뛰어나다. 여지껏 들었던 오르간 연주 중 음향 밸런스가 가장 뛰어나다. 개인적으로 비도르와 로제-뒤카스의 곡이 평온과 위안 그 자체로 마음에 다가온다. 메시앙도 괜찮았다. 바흐와 뒤뤼플레의 작품은 더 이해가 필요하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실한 연주에 마음이 끌린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4/pimg_70938915351335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9477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남에셀 오르간 독주회 (2026.5.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87544</link><pubDate>Wed, 20 May 2026 14: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87544</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남에셀 오르간 독주회 - 파리의 교회들일시 : 2026년 5월 19일(화) 19:30장소 : 새문안교회 대예배실연주 : 남에셀 (오르간)프로그램&nbsp; - 유진 지구, 토카타&nbsp; - 쿠프랭, 베네딕투스&nbsp; - 보엘리, 환상곡과 푸가&nbsp; - 프랑크, 코랄 2번&nbsp; - 쥬앙 알랭, 리타니&nbsp; - 장 기유, 토카타 Op.9&nbsp; - 생상스, 전주곡 B단조&nbsp; - 뒤뤼플레, 알랭 이름에 의한 푸가&nbsp; - 메시앙, 기쁨의 폭발&nbsp; - 비도르, 안단테 소스테누토 (오르간 교향곡 9번 Op.70 "고딕" 중)&nbsp; - 비에른, 피날레 (오르간 교향곡 6번 Op.59 중)<br>* 세줄평엄청 큰 규모의 대예배실 전체를 울리는 거대한 오르간 음향을 체험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강력하고 위압적인 사운드의 오르간보다는 포용하고 충만하는 스타일을 선호하는 까닭에 쿠프랭, 프랑크, 생상스, 비도르의 곡이 더 가슴에 와닿았다.&nbsp;장 기유의 토카타는 오르간의 연주 기능성을 극한까지 추구하는 독특한 경험이다.&nbsp;앵콜연주가 끝나고 퇴장하는데 연주자가 다시 나와서 두번째 앵콜곡을 연주한다. 맨 뒷자리에 다시 주저앉아 음악을 듣는데 확연히 달라진 음향에 놀랐다. 기존의 직접 음향이 아니라 공간 전체를 아우르는 음향, 다음부터 오르간 공연은 뒷자리에서 감상해야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20/pimg_709389153512948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8754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메리 셸리, 퍼시 셸리/유혜인/이일상) - [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84389</link><pubDate>Mon, 18 May 2026 19: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843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039015&TPaperId=172843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7/10/coveroff/k31203901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312039015&TPaperId=172843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1816년 여름, 우리는 스위스로 여행을 갔고 - 프랑켄슈타인의 기원이 된 두 여행의 기록</a><br/>메리 셸리.퍼시 비시 셸리 지음, 유혜인 옮김 / 이일상 / 2025년 06월<br/></td></tr></table><br/>개인적으로 메리 셸리와 퍼시 비시 셸리의 결혼 선택을 탐탁잖게 생각한다. 두 사람의 부적절한 만남으로 퍼시 셸리의 가정생활은 파탄 났고, 그의 아내는 자살을 감행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이 둘은 죄책감 없이 곧바로 결혼을 치렀으니 요즘으로 치면 파렴치한 인물에 가깝다. 제아무리 낭만으로 포장하고 예술가 특유의 방랑으로 옹호하더라도 잘못은 잘못이다. 특히 퍼시 셸리에게 더 큰 책임을 묻는다. 유부남으로서 어린 메리를 유혹하였고, 아내를 죽음에 이르게 한. 내가 개인적으로 퍼시 셸리 작품을 손대지 않는 것도 이에 대한 반감과 전혀 무관하지 않다.  &nbsp;  이 책은 메리 셸리와 그녀가 쓴 &lt;프랑켄슈타인&gt;과 연관성에서 관심을 끈다. 10대의 메리 셸리가 이 소설을 구상하였던 그 때와 그 장소를 다루고 있어서다. 당시 메리 셸리는 무슨 상황에서 어떤 환경을 겪으며 이 작품의 틀을 만들어냈을까. 전체 3부 구성인데, 1부는 1814년, 2부는 1816년 두 사람의 유럽 여행을 소재로 한다. 1부는 메리의 여행 수기 형식이며, 2부는 메리와 퍼시가 쓴 각 2통의 여행 편지이다. 3부는 퍼시의 시 &lt;몽블랑&gt;을 담고 있다. 부록으로 &lt;프랑켄슈타인&gt; 서문 2개를 수록하고 있어 기획 의도를 명확히 한다.  &nbsp;  두 사람은 넉넉한 여비 없이 1814년 여행을 떠났기에 한여름에 이동의 불편을 겪으며 무조건적인 즐거움과 행복을 누리지는 못하였다. 그럼에도 메리 처지에서는 영국을 떠나 첫 외국 여행인 만큼 보고 느끼는 모든 것이 새롭고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음을 알 수 있다. 프랑스, 스위스, 독일, 네덜란드를 거치는 여정은 나폴레옹 전쟁이 종식된 직후였기에 아름다운 풍광과 대비되는 참혹한 전쟁의 상흔이 곳곳에 드리워져 있었다. 메리의 글에서 자연의 경이에 압도됨과 동시에 현실 사회의 날카로운 인식이 드러난다.  &nbsp;  집이 불타고 가축이 도살당하고 전 재산을 잃은 마을 사람들의 고통을 보고 있노라니 전쟁에 대한 혐오가 살아났다. 교만한 인간이 같은 인간에게 퍼뜨린 역병으로 망가지고 쇠약해진 나라를 여행해 보지 않았다면 느끼지 못할 감정이었다. (P.31)  &nbsp;  1816년 여행은 프랑스와 스위스를 오가는 여정인데, 시인 바이런과 동행하였고 여기서 &lt;프랑켄슈타인&gt;이 태동했음은 서문을 통해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소설에서 프랑켄슈타인은 자신의 창조자를 찾으러 무시무시한 폭풍과 날씨를 무릅쓰고 사방을 헤매고 다닌다. 비정하리만치 냉혹한 풍경 묘사는 작가의 순수한 창작이 아니라 직접 스위스에서 경험했던 반영임을 이 편지 기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nbsp;  어느 날 밤에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강한 폭풍이 불었어. 호수가 번쩍이자 쥐라산맥의 소나무가 다 보이는 거 있지. 모든 풍경이 순간 하얗게 빛나더니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고 어둠 속에서 머리 위로 무시무시한 천둥이 쳤어. (P.83, 두 번째 편지)  &nbsp;  두 영국인이 처음 바라본 알프스와 몽블랑의 장엄함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당사자 아니고서는 분명 형언하기 어려울 것이다. 요즘처럼 사진과 영상이 발달하여 미리 간접 체험이라도 했으면 낫겠지만, 상상 속 막연히 그려왔던 수준을 초월하는 광대한 규모의 거대한 산봉우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밖에 없으리라. 메리는 물론 퍼시조차도 탄식을 아끼지 못하는 까닭이리라.  &nbsp;  이전엔 정말 몰랐어. 산이 이런 존재인지 미처 상상하지 못했지. 하늘 높이 서 있는 이 거대한 봉우리들이 돌연 내 눈앞에 들어왔을 때 가슴에서 광기와도 같은 황홀한 경이로움이 터져 나오더군. 이게 전부 하나의 풍경이었단 말이네. (P.115, 세 번째 편지)  &nbsp;  유럽과 프랑스, 스위스의 정치 체제가 갖는 뚜렷한 대비를 통해 메리와 퍼시는 2년 전에 비해 훨씬 성숙한 사회 비판 인식을 보여 준다. 영국인을 향한 프랑스인의 내재적 분노의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자유주의를 억누르는 전제주의 체제의 폭정을 향한 혐오감을 감추지 않는다. 프랑켄슈타인이 단순히 공포 문학이 아니라 진한 울림을 남기는 것은 인간존재의 본질에 대한 의문을 우리에게 던지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nbsp;  인간 사회의 보편적 도덕과 윤리 기준에서는 결코 긍정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문학사에서 하나의 이정표를 만들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당대는 퍼시가 더 영향력이 있었지만, 프랑켄슈타인의 창시자 메리의 명성은 현대에 가까울수록 한층 드높다. 이 책은 소설 &lt;프랑켄슈타인&gt;에 흥미를 느낀 독자가 가벼운 마음으로 그 탄생 배경을 훑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487/10/cover150/k31203901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487107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90회 아트엠콘서트 - 김영욱 &amp; 박유신 듀오 리사이틀 (2026.5.14)</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7856</link><pubDate>Fri, 15 May 2026 11: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7856</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90회 아트엠콘서트 - 김영욱 &amp; 박유신 듀오 리사이틀일시 : 2026년 5월 14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김영욱 (바이올린), 박유신 (첼로)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글리에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8개의 소품 Op.39 중 No.1~4, No.7&nbsp; - 오네게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소나티네 H.80&nbsp; - 코다이, 바이올린과 첼로를 위한 듀오 Op.7<br>* 세줄평바이올린과 첼로의 이중주를 위한 작품은 드물다. 오늘 프로그램 모두 생소한 건 그런 까닭이다. 그리 인기있지 않은 연주형태이지만 연주를 들어보면서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같은 현악기라는 음색의 공통분모에, 첼로의 중저음을 기반으로 바이올린이 자유롭게 비상하는 음악은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섬세함에서 광포함에 이르기까지 두 악기로 들려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음향을 접할 수 있다, 익숙하면서도 생소한. 부부 연주가이기에 더더욱 호흡이 절묘함은 부가적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5/pimg_709389153512467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785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 (2026.5.14)</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6185</link><pubDate>Thu, 14 May 2026 14: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6185</guid><description><![CDATA[<br>전시회명 : 렘브란트에서 고야까지 - 톨레도 미술관 명작전기간 : 2026.3.21-7.4장소 : 더현대 서울 ALT.1<br>관람일자 : 2026년 5월 13일(수)<br>* 관람평얼리버드 티켓을 구입해놓고 시간을 못 내다가 겨우 관람 기회를 가졌다.&nbsp;톨레도 미술관이 소장한 52점의 회화를 전시하는데,&nbsp;시기와 주제별로 공간과 작품을 배치하여 동선을 따라가며 설명만 읽어도 충실한 감상을 할 수 있다.&nbsp;지난번 무하 전시회때 처음 가봤지만, 확실히 더현대 서울은 공간과 조명, 동선 등을 잘 세팅해놓아 감상하기에 편리한 환경이다.렘브란트, 고야, 들라크루아, 터너 등 들어본 화가 외에 알지 못하는 프랑스, 이탈리아, 플랑드르 화가들이 대부분이다. 전시회 포스터에 등장하는 &lt;까막잡기 놀이&gt;(프라고나르)는 그나마 얼마전에 읽은 책을 통해 알게 되어 반갑다. 개인적으로 나티에가 그린 &lt;로앙 공주&gt;가 가장 마음에 들었다.&nbsp;첫 작품인 &lt;성가족과 세례 요한&gt;(살비아티)와,&nbsp;카날레토가 그린 베네치아의 풍경 , &lt;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gt;(리치)도 인상적이었다.물론 렘브란트, 고야, 터너 등의 그림은 명불허전이지만 아무래도 생소한 화가의 의외의 작품이 강한 인상을 주는 것은 어쩔 수 없다.&nbsp;많지는 않지만 충실한 수집품으로&nbsp;르네상스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서양회화사를 일별할 수 있는 좋은 자리였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4/pimg_709389153512365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618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Winfried Bönig 오르간 독주회 (2026.5.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5693</link><pubDate>Thu, 14 May 2026 10:1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5693</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Winfried Bönig 파이프오르간 독주회일시 : 2026년 5월 12일(화) 19:00장소 : 경동교회연주 : Winfried Bönig (빈프리트 뵈니히) (파이프오르간)프로그램&nbsp; - 카르크-엘레르트, BACH에 의한 파사칼리아와 푸가 Op.150&nbsp; - 바흐, 샤콘느&nbsp; - 바흐, 파사칼리아 BWV 582&nbsp; - 아르노 란트만,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 Op.29<br>* 세줄평쾰른 대성당의 오르가니스트라는 유명세 탓인지 경동교회 공연 중 이렇게 많은 청중은 처음이다. 카르크-엘레르트와 란트만의 곡은 완전히 생소한데, 첫곡의 연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파워풀한 음량에 압도감을 느낀다. 경동교회 오르간에서 이런 소리가 나다니. 후자는&nbsp;헨델의 유명한 오페라 아리아를 주제로 한 변주곡이기에 다채롭게 변화해가는 오르간 음향을 경험할 수 있다.&nbsp;역시 메인은 바흐인데&nbsp;샤콘느의 친숙하면서도 새로운 음향에 좋지만, 오르간 원곡인 파사칼리아는 확실히 바흐가 대단한 작곡가임과 그 작품의 뛰어남이 돋보인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14/pimg_7093891535123383.jpe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7569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강보라 바이올린 독주회 (2026.5.8)</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65916</link><pubDate>Sat, 09 May 2026 07: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65916</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강보라 바이올린 독주회일시 : 2026년 5월 8일(금) 19:30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연주 : 강보라 (바이올린), 김은찬 (피아노)프로그램&nbsp; - 모차르트, 바이올린 소나타 28번&nbsp;E flat 장조 K.380&nbsp; - 그리그, 바이올린 소나타 3번 C단조 Op.45&nbsp; - 엘가, 바이올린 소나타 E단조 Op.82<br>* 세줄평세 곡 모두 비교적 자주 듣는 작품은 아니다. 연주자는 전체적으로 섬세한 스타일로 작품을 해석한다. 모차르트 곡에 배어있는&nbsp;은근한 슬픔을 잘 드러내며, 그리그 작품에서 격정과 열정에 가려 놓치기 쉬운 세밀한 사운드에 집중한다.&nbsp;엘가의 곡은 바이올린의 진한 사운드가 매력적으로 생각하는데, 극도의 섬세하고 미묘함에서 거친 열정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작품을 이끌어나가 흥미롭다. 몸만 덜 피곤했어도 한층 좋았을 텐데, 비몽사몽을 헤맨 게 아쉽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9/pimg_70938915351183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6591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말러리안 시리즈 9 - 말러 교향곡 8번 (2026.4.30)</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52952</link><pubDate>Fri, 01 May 2026 22: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52952</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말러리안 시리즈 9 - 말러 교향곡 8번일시 : 2026년 4월 30일(목) 19:30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홀지휘 : 진솔연주 : 말러리안 오세크스트라독창&nbsp; - 이윤정 (소프라노)&nbsp; - 김수정 (소프라노)&nbsp; - 장혜지 (소프라노)&nbsp; - 김세린 (알토)&nbsp; - 정수연 (알토)&nbsp; - 박승주 (테너)&nbsp; - 이승왕 (바리톤)&nbsp; - 전태현 (베이스)합창&nbsp;&nbsp; - 국립합창단&nbsp; - 부천시립합창단&nbsp; - 위너오페라합창단&nbsp; - 김포시립소년소녀합창프로그램&nbsp; - 말러, 교향곡 8번 Eb장조, "천인"<br>* 세줄평말러의 천인 교향곡 실연은 처음이다. 곡 특성상 실연이 자주 없기에 말러리안 프로젝트의 후원회도 가입하고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다.&nbsp;1부는 다소 실망하였다. 우주가 진동하는 듯한 울림을 기대했건만, 생각보다 음량이 작고 관현악과 합창이 서로 섞여 혼탁함마저 자아냈다. 이것이 실연의 한계인가 아니면 연주 규모가 작아서인지 또는 내 좌석의 치우침 탓인지 알 수 없다. 그냥 체험 자체만으로 만족하자라는 심경이었다.2부는 훨씬 안정감있게 다가왔다. 아무래도 총주의 비중이 작고 독창이 활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악의 뛰어난 활약, 합창의 적절한 반주, 악단의 충분한 협연. 중간에 아쉬움도 있지만 여유롭게 마음을 다잡은 탓인지 그렇게 거슬리지 않았다. 특히 후반부의 구원에 이르는 빌드업과 마지막 터뜨림에서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었다. 음반으로는 알 수 없는, 그래 이 맛이지.진솔과 말러리안의 쉽지 않은 도전에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내면서 수개월 후 인천시향 공연을 다시 기약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501/pimg_709389153511164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5295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소금길 (레이너 윈/우진하/쌤앤파커스) - [소금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42825</link><pubDate>Tue, 28 Apr 2026 00:3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4282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730589&TPaperId=1724282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85/85/coveroff/k88273058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82730589&TPaperId=1724282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금길</a><br/>레이너 윈 지음, 우진하 옮김 / 쌤앤파커스 / 2021년 03월<br/></td></tr></table><br/>우리는 날마다 걷는다. 그럼에도 마음먹고 걷는다는 행위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러닝족에게 러너스 하이가 있다면, 워킹족에게는 워커스 하이가 있다고나 할까. 그것은 전자의 쾌감과는 결을 달리한다. 오히려 무겁던 마음이 가벼워지고 어지럽던 머리가 가뿐해지며, 들뜬 감정이 차분해지며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nbsp;  제주올레길 완주, 국토대장정 같은 장거리 걷기가 나름 지지층을 얻고 있으며 해외로 눈을 돌리면 유명한 산티아고 순례길, 오래전에 읽은 &lt;나는 걷는다&gt;(베르나르 올리비에)의 실크로드 대장정, 수년 전 읽은 &lt;와일드&gt;(셰릴 스트레이드)가 다룬 퍼시픽 크레스트 트레일, 그리고 여기 이 책의 주인공이 걷는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 등. 이러한 길이 걷는 이에게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줌에도 꿋꿋이 존재하고 있음은 단지 완주했다는 정복욕만은 아닐 것이다.  &nbsp;  영국 남서부의 해안을 따라 걷는 1,000km의 코스. 젊고 건강한 때, 별다른 삶의 고민이 없을 때 걸었다면 비록 육신은 힘들더라도 더할 나위 없는 흥미롭고 즐거운 트레일이었을 것이다. 레이너와 모스 부부는 그렇지 않다. 설상가상이란 표현은 이런 상황을 묘사하기에 가장 적합한 용어이리라. 경제적 파산과 모스의 불치병이 동시에 닥쳤고, 몇 푼만 손에 지닌 채 살던 집과 농장에서 쫓겨난 50대 부부.  &nbsp;  그리고 이제 저 문밖을 나서게 되면 모든 것이 다 과거의 일로 남게 될 터였다. 그동안 가꿔온 삶이, 인생이 다 끝나버리게 되는 것이었다. (P.17)  &nbsp;  이들에게 떠난다는 것, 즉 무작정 걷는 행위는 불가항력이자 유일한 선택지다. 머무른 채 노숙자가 되고 모스의 죽음을 속절없이 지켜볼 게 아니라면, 그들은 떠나야 한다. 어디론가? 사우스 웨스트 코스트 패스를. 제 몸 하나 건사하기도 어려운 모스와 더불어 레이너는 무거운 배낭을 짊어진 채 또 다른 노숙의 길을 떠난다.  &nbsp;  아무리 미친 짓이라고 해도 우리는 해내야만 했다. 만일 이 길을 떠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이번 여름을 넘어 계속해서 펼쳐질 미래와 그 미래에 있을 모든 일을 멍하니 기다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모스도 나도 그런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P.66)  &nbsp;  이 책의 미덕은 우선 대다수 독자에게 생소한 영국의 SWCP를 전면적으로 소개한다는 점이다. 마인헤드에서 랜즈엔드를 거쳐 풀까지 이르는 영국 지도상 남서부 끝자락 해안 길을 걷는 코스. 마인헤드에서 랜즈엔드까지 해안이 높고 날카로운 절벽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대서양의 맹렬한 바람과 파도가 절벽을 때려서 생긴 수많은 코브(cove). 랜즈엔드에서 풀까지, 특히 풀에 가까워질수록 흰색의 토양이 우세해 백악기라는 명칭을 낳게 되었다는 사실도. 랜즈엔드는 우리네 땅끝마을과 같은 의미인 게 사람 사는 세상은 비슷하다.  &nbsp;  SWCP가 지나는 길에 있는 영국 남서부의 여러 도시와 마을의 독특한 매력도 흥미롭다. 우리는 영국이라고 하면 런던을 우선으로 떠올리게 된다. 일부러 관심을 두지 않으면 데번과 콘월이 어느 쪽에 붙어 있는 지명인지 모를 정도다. 이렇게 영국 지방과 소도시의 존재와 특색에 대한 정보도 유익하다.  &nbsp;  모스 부부는 팔자 좋게 배낭여행을 떠난 게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지급되는 보조금에 의지하여 음식과 물품을 구비해야 하기에 누가 봐도 궁핍하고 초라한 여행자의 외양이다. 세탁과 목욕을 자주 하기 어려우니 꾀죄죄한 행색에 냄새마저 풀풀 풍기는 그야말로 노숙자다. 여정에서 부닥치는 사람들 가운데 친절한 사람도 있는 반면 이들에게 거리를 두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도 있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겠다. 중산층에서 일순간에 하층민으로 몰락한 모스 부부는 이러한 처지를 더더욱 뼈저리게 절감한다. 노숙자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허술한 정책, 노숙자를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는 일반 대중의 인식 등.  &nbsp;  무엇보다 모스 부부를 괴롭힌 건 희망이 보이지 않는 앞날이다. 날이 갈수록 처지는 모스의 건강에 대한 끊임없는 염려. 모스의 향후 부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레이너의 근심. SWCP를 완주할 수 있을지, 완주하고 나면 다음에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막막한 심정. 여정 내내 레이너를 괴롭히는 건 육신의 고통보다는 이러한 심적 번민이었다.  &nbsp;  이곳에서 우리는 여전히 우리 인생의 주인이었고 우리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지배하고 있었다. 등에 배낭을 짊어지자 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우리는 다시 걷기로 결심했다. 그 선택과 함께 할 수 있는 자유를 붙들기로 한 것이다. (P.354-355)  &nbsp;  &lt;와일드&gt;와 마찬가지로 결국 이 책도 모스 부부의 눈부신 미래를 보여주지 않지만, 적어도 시커먼 어둠과 잿빛의 어슴푸레함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알려준다. 모스는 의사의 예상과는 달리 육체적으로 강인해졌고, 미래 설계를 위한 생의 의지를 표명하고 선택한다. 추운 겨울을 피해서 걷기를 중단하고, 레이너가 친구의 농장에서 수개월간 더부살이를 하면서 양털 깎기 노동을 통해 번 돈은 미래를 향한 종잣돈이 될 수 있다.   &nbsp;  두 사람의 선택은 일견 무모하였지만 걷기를 통해 무너지지 않는 삶의 태도를 성취할 수 있었다. 그들이 낙담한 채 그대로 주저앉았더라면 모스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것이며, 이 책도 당연히 세상에 나오지 못하였을 터이므로.  &nbsp;  내 안의 정수는 사라지지 않았다. 확실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는 없지만, 이 길을 한 걸음씩 지나갈 때마다 내 안에서는 뭔가가 점점 더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P.383)  &nbsp;  이 책 역시 온라인 마켓에서 새책 같은 헌책을 고르면서 싼 맛에 장바구니에 추가하였던 책이다. 원체 이런 유형의 책을 좋아하였기에 적어도 실망해서 집어던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5백 면이 넘는 두툼한 분량임에도 어려움 없이 책장을 넘길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 부부가 지나는 패스의 여정을, 구글맵을 통해 시각적으로 확인하여 뒤따를 수 있어 더욱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수 있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785/85/cover150/k88273058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785857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신지혜 피아노 독주회 (2026.4.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39328</link><pubDate>Sun, 26 Apr 2026 13: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39328</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신지혜 피아노 독주회 - Hommage Series Ⅱ: "Schumann loves Chopin"일시 : 2026년 4월 24일(금) 19:30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연주 : 신지혜 (피아노)프로그램&nbsp; - 쇼팽, 야상곡 Op.15 No.1&nbsp;&nbsp; - 쇼팽, 야상곡 Op.15 No.2&nbsp; - 슈만, 쇼팽 야상곡 Op.15 No.3에 의한 변주곡&nbsp; - 쇼팽, 발라드 1번 Op.23&nbsp; - 쇼팽, 발라드 2번 Op.38&nbsp; - 슈만, 크라이슬레리아나 Op.16<br>* 세줄평쇼팽과 슈만이 단순히 교분이 있다고만 알고 있었다. 서로 작품 헌정을 주고 받고, 슈만은 변주곡을 쓸 정도로 크게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을 이 프로그램을 통해 비로소 알게 되었다. 강한 낭만성과 과격한 정념의 표출보다는 정서와 구조, 표현의 정확성을 더 잘 알게 해주는 연주다. 역시 &lt;크라이슬레리아나&gt;가 들려주는 슈만 특유의 양식과 상념이 인상 깊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6/pimg_709389153510622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3932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비잔틴제국 비사 (프로코피우스/곽동훈/들메나무) - [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30447</link><pubDate>Tue, 21 Apr 2026 18:4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3044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434685&TPaperId=1723044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110/19/coveroff/k6624346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662434685&TPaperId=1723044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프로코피우스의 비잔틴제국 비사</a><br/>프로코피우스 지음, 곽동훈 옮김 / 들메나무 / 2015년 11월<br/></td></tr></table><br/>동로마제국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세계사 수업 시간에 주목받는 인물이다. 황제로서 업적이 뛰어나기에 특별히 대제라는 호칭을 사용할 정도니. 그는 일시적이지만 지중해를 다시 로마의 내해로 만들었고, 서양 3대 법전으로 손꼽히는 로마법 대전을 편찬하였고, 성소피아 성당 같은 불멸의 건축물을 남겼다. 그는 로마제국의 영광을 마지막으로 재건하였고, 그의 사후 동로마는 결코 이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  &nbsp;  여기까지만 보면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제왕으로 칭송받을 만하다. 그런데 프로코피우스는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lt;비사&gt;에서 은밀히 밝힌다. 이 책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동시대 인물로서 &lt;전쟁사&gt;와 &lt;건축론&gt;으로 황제와 벨리사리우스 장군을 찬미했던 공식 역사가가 남긴 일종의 비망록이다. 원래 이런 유형의 기록이라면 공식 역사서로는 남기지 못했던 사실이지만 드러낼 수 없던 진실과 숨겨진 일화를 기대하기에 흥미진진함과 아울러 상당한 사실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nbsp;  프로코피우스는 이 책에서 황제와 황후, 장군에게 무자비한 인신공격을 퍼붓는다. 정복 사업을 진두지휘했던 벨리사리우스 장군이 완전한 애처가이자 공처가로 부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주변 사람 모두를 포기할 정도의 바보라고 밝힌다. 부인이 그 정도의 사랑과 헌신을 받을 만하다면 아무 문제 없지만, 그 부인은 외도를 서슴지 않는 파렴치한 인물임도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장군의 형편없음을 더욱 부각한다.  &nbsp;  그제서야 모든 사람들은 이 인간의 진면목을 알아채고 웃음거리로 삼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그의 면전에 대고 ‘멍청이’라고 모욕했으니, 이제야 벨리사리우스의 어리석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P.96)  &nbsp;  프로코피우스는 벨리사리우스 장군의 비서로 일하였다고 하니 그나마 이 정도는 봐준 셈이다. 황제와 황후에 대해서는 비난의 정도가 심하여 그들을 차라리 악마로 묘사할 정도니까 말이다. 두 사람은 로마제국을 파멸시키고 사람들을 망치기 위해 작정한 극악무도한 악한들이라고 기술한다. 테오도라 황후의 경우 한술 더 떠 그녀의 출신을 들어 세상에서 가장 불결하고 타락하며, 잔혹한 여성으로 폄하를 아끼지 않는다.  &nbsp;  사람들이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번은 유스티니아누스의 어머니가 친구에게 고백하기를, 그가 남편인 사바티우스의 아들도 아니고, 실은 어떤 남자의 아들도 아니라고 했다고 한다. (P.143)  &nbsp;  그녀는 이렇게 태어나고 자랐다. 그녀의 이름은 모든 남자들의 입에서 일반적인 음란의 차원을 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P.124)  &nbsp;  맹목적일 정도로 과도한 인신공격은 이 책의 진실성을 때로 의심케 할 정도이다. 저자가 이들에게 지독한 개인적 원한을 품은 게 아니라면 이 정도로 무자비한 비난을 퍼붓는다는 건 사실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난의 외피를 거두고 나면 동로마제국 전성기의 어두운 현실이 눈에 들어온다. 거창한 정복 사업에 따른 재정 부족은 과다한 징세로 이어져 백성들은 곤궁에 허덕이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진 등의 자연재해 빈발과, 치명적인 전염병의 유행은 인명과 재산의 막대한 손실로 이어졌다. 황제 부부는 백성들의 어려움 따위는 신경 쓰지 않고 쓸데없이 화려한 건축물을 계속 짓고, 야만인들에게 재물을 아낌없이 퍼주고 국고를 고갈시켰다. 이것이 프로코피우스가 지적하는 당대의 큰 문제이자 현실이었다.  &nbsp;  그의 지적은 상당한 적확성과 타당성을 지니고 있다. 그 덕분에 마냥 성공적이고 화려하기만 했던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사실은 장기적 쇠퇴의 조짐을 내포하고 있음을 후대에서 인식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정말로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이 빛 좋은 개살구였을까? 이 점은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nbsp;  프로코피우스의 지적대로 유스티니아누스 치세가 어마어마한 폭정의 시기였다면 그의 사후 동로마제국은 곧바로 멸망으로 이어졌을 테지만, 누구나 알듯이 이후 천년 가까이 더 존속하였다. 그의 후세 황제 중에서 대단한 성군이 나왔다는 기록이 없는 걸 보면 저자가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복 사업을 옹호하자면 로마제국의 황제로서 고토 회복을 포기한다는 건 황제로서의 소임을 방기하는 것과 다름없다. 훗날 이슬람 세력의 발흥 등으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모를까 충분히 시도해 볼 만 사업이며, 어쨌든 일정 부분 성공을 거두지 않았는가. 확보한 영토를 계속 유지하였다면 금상첨화였겠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교훈을 얻은 것도 이러한 시도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으로 봐야 한다.  &nbsp;  백성들을 쥐어짜서 야만인들에게 펑펑 베푼다는 비난도, 격변기에 군사적 충돌을 최소화하기 위하여 페르시아와 슬라브에게 협상을 통한 평화를 구한 정책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에 가깝다. 황제는 고토 수복을 위하여 서쪽으로 진군해야 하는데, 동쪽과 북쪽에서 적국이 쳐들어와서는 안 된다. 그들이 무력으로 침입해 온다면 그 피해는 협상 경비의 수준으로는 감당 못 할 지경에 이를 것이다. 테오도라 황후의 출신에 대한 맹공은 오늘날 관점에서 지나치게 계급적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고 봐야 한다. 배우, 즉 매춘부 출신이 분명한 테오도라의 진면모를 알아차리고 결혼한 황제의 안목과, 이후 공동 통치자로서 역량을 발휘한 테오도라의 능력을 오히려 높이 상찬해야 한다. 귀족 출신인 프로코피우스로서는 그런 테오도라 황후가 결코 마뜩잖았을 것이다.  &nbsp;  이러저러한 편견과 그릇된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꽤나 볼만 하고 흥미로운 점이 많다. 가뜩이나 사료가 부족한 동로마제국 초창기 시절, 그것도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유스티니아누스 시기의 궁중 비사를 그득 담고 있다. 아울러 당대의 종교 갈등과 청색파와 녹색파 간 파당 분쟁이 적나라하게 기술되어 있다. 동시대인의 시각에서 묘사한 당대 현실이므로 어떤 것에 비할 바 없는 생생함을 지니고 있어 당대의 사회상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하는 일차 사료의 구실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만 옮긴이의 말대로 미신적인 믿음에 기초한 일부 사실을 제외한 대부분의 내용을 믿는 건 다소 위험한 견해다.  &nbsp;  이 책은 프로코피우스의 원서를 1926년 리처드 앳워터가 번역한 영역본을 저본으로 한 중역본이다. 중역본이라고 해도 원전 번역이 없는 상황에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 동로마제국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흥미롭게 일독해 볼만 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110/19/cover150/k6624346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110199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김용옥/통나무) [한글개정신판] - [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 한글개정신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28453</link><pubDate>Mon, 20 Apr 2026 18: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2845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641386&TPaperId=1722845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0642/90/coveroff/89826413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2641386&TPaperId=1722845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도올 김용옥의 금강경 강해 - 한글개정신판</a><br/>김용옥 지음 / 통나무 / 2019년 09월<br/></td></tr></table><br/>동봉 스님의 금강경 강설은 흥미롭지만, 분명히 한계도 있다. 동봉 스님의 사고와 해석에 참신하고 독창적인 대목은 있더라도 불교 사제로서 불교의 틀을 벗어날 수는 없다. 나와 같은 비신도 관점에서 금강경 이해를 도모하는 사람이 반드시 불교적 이해에만 종속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의미에서 도올 선생의 책을 자연스럽게 집어 들게 되었다.  &nbsp;  구판은 나온 지 오래되었고, 한자 표기가 많아서 읽기 불편하다고들 하는데, 개정 신판은 한글 표기를 대폭 늘려서 가독성이 매우 좋다. 도올은 자신의 금강경 강해를 자부하는데, 가장 완전한 고려대장경 판본을 최초로 사용한 역본이라는 점이다. 요즘은 대장경 판본을 사용한 책들이 몇 권 나왔지만, 초판이 나온 1999년을 염두에 두면 자부할 만하리라.  &nbsp;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도올은 거의 일백 면에 달하는 서론을 풀어놓는다. &lt;들어가는 말&gt;, &lt;금강경에 대하여&gt;, &lt;금강경의 의미&gt;, &lt;“소승”은 뭐고 “대승”은 뭐냐?&gt;가 그러하다. 금강경이라는 경전을 이해하기 위한 소개글에 해당하여, 금강경에 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독자에게 큰 도움을 준다. 본문을 마친 후에는 &lt;경후설&gt;이라는 후기, &lt;감사의 말&gt;과 &lt;아름다운 우리말 금강경을 독송합시다&gt;라고 하여 한글 번역문을 따로 싣고 있다.  &nbsp;  도올판 금강경의 특징은 각 분, 즉 장 전체를 한꺼번에 싣지 않고, 절로 나누어 강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에서 몇 장 몇 절 하듯이. 각 절은 한문 원문을 소개하고 한글 독음을 달고 있어 원문을 읽는 데 편의를 제공한다. 이어서 원문 해석, 즉 한글 번역문이 나오고, 강해가 이어지는 구조이다.  &nbsp;  육조가 “여시아문”의 아(我)를 추상화시켜 [......] 라고 해(解)한 것은 참으로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잡설에 불과하다. 아무리 그것이 일리가 있는 이야기라 하더라도 원의의 소박한 뜻에 위배하여 애써 현묘해지려고 노력하는 소치는 참으로 구역질나는 것이다. (P.105)  &nbsp;  우리가 도올에게 기대하는 바는 무엇보다 시원시원함이다. 그는 기존 해석의 안일함에 양보하지 않는다. 그것이 제아무리 옛날의 권위 있는 고승이라고 할지라도 신랄한 비판에 주저함이 없다. 주희가 집주한 논어 등 고전에 내가 학을 떼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성리학과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춘추전국시대의 고전에 성리학의 교조주의적 해석을 잔뜩 넣어 읽는 이를 질리게 만든 것과 같이.  &nbsp;  도올의 해석은 거침없다. 금강경이 후대에 이렇게 높이 평가되는 까닭은 소승불교의 한계를 지적하고 대승불교의 문을 연 기념비적 저작이어서다. 대승의 보살은 소승의 아라한을 부정하는 개념이다. 아라한은 선택된 출가자만이 가능하지만, 보살은 출가 여부와 무관하다. 아라한과 부처는 다른 계층이지만, 보살은 깨달음을 통해 부처에 이를 수 있다. 사상(四相)에 집착하지 않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게 묘하다. 부처는 수보리에게 불법(佛法)은 불법이 아닐 때 진정한 불법이라고 말한다. 여래는 “모든 법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P.338, 17-7)일 뿐이다. 그래서 도올은 이렇게 선언한다.  &nbsp;  불교의 종지는 무아(無我)요, 대승의 종착은 무아(無我)요, 보살의 종국은 무아(無我)다. (P.344)  &nbsp;  이런 인식으로 종교계를 바라볼 때 도올의 눈에 영 마뜩잖을 수밖에 없다. 강해 중간에 현재 불교와 기독교의 세태를 향한 적나라한 비판이 곳곳에 나타나게 되는 이유다.  &nbsp;  현금 한국의 대부분의 스님은 소승이다. 따라서 한국불교는 소승불교다. 왜냐? 그들은 법당에 앉아 있는 스님이고 절깐에 들락이는 신도들은 스님 아닌 보살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스님이 스님이라고 하는 아상(我相)을 버리고 있지를 않기 때문이다. (P.94)  &nbsp;  그렇게 색성향미촉법에 집착하는 것이 다 소승 기독교의 폐해다. 한국의 목사님들이시여! 그대들의 신도들을 참으로 대승인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설교를 하사이다. 매일 매일 십일조내라구 쫄린 주머니 털어 공해뿐일 건물 짓는데 우리민족의 신앙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사이다. (P.252)  &nbsp;  도올의 해석은 불교와 기독교라는 종교, 동양철학과 서양철학이라는 철학의 틀을 넘어서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강해에서 부처와 예수를 나란히 비교하고, 한자와 영어, 산스크리트어 의미까지 대조하여 설명하는 폭 넓음은 도올에게서만 가능하다.   &nbsp;  &lt;금강경&gt;은 어느 경우에도, 한 구절도 똑같이 반복되지 않는다.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 다르게 되어 있다. 그것은 반복이 아니라 변주다. 그리고 그러한 반복이 없으면 &lt;금강경&gt;은 &lt;금강경&gt;의 오묘한 맛을 낼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P.65)  &nbsp;  금강경의 메시지는 시종일관 대동소이하다. 전체 32분에 이르기까지 핵심 문구는 몇 개로 압축할 수 있다. 후반부를 사족으로, 단순한 부연이자 반복으로 깎아내리는 이도 있다. 금강경은 애초부터 독해용 경전이 아니다. 암송용 경전이라면 단순과 반복이 매우 중요하다. 간단한 주제일수록 확실한 각인을 위해 반복하여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효과적이다. 여기서 변주가 발생한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금강경의 구성을 향한 비판적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nbsp;  기대했던 것처럼 무척 흥미롭게 도올의 &lt;금강경 강해&gt;를 읽었다. 서론을 통해 금강경과 대승불교의 의의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었고, 금강경이 우연히 조계종의 소의경전이 된 게 아님을 이해하게 되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즉 무상정등각(無上正等覺)이란 게 특정한 하나의 깨달음이 아니라는 점, 지식의 습득으로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게 아니므로 정신적 수행이 중요하다는 점, 누구나 열반에 이를 수 있기에 부처가 될 가능성은 중생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는 점 등. 향후 일 년에 한 편 정도는 다른 불교 경전도 읽어보고 싶다.  &nbsp;  이 &lt;금강경&gt;이야말로 대승불교의 최초의 운동이면서 최후의 말미적 가능성을 포섭하는 포괄적인 내용의 위대한 경전인 것이다. &lt;금강경&gt;이야말로 대승불교 전사의 알파요 오메가다. (P.47)]]></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0642/90/cover150/89826413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0642903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89회 아트엠콘서트 - 브랜든 최 색소폰 리사이틀 (2026.4.16)</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27718</link><pubDate>Mon, 20 Apr 2026 10:5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27718</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89회 아트엠콘서트 - 브랜든 최 색소폰 리사이틀일시 : 2026년 4월 16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브랜든 최 (색소폰),&nbsp;Ilya Rashkovskiy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베토벤, 로망스 2번 F장조 Op.50&nbsp; - 베토벤, 먼 곳의 연인에게 Op.98&nbsp; - 베토벤, 호른 소나타 F장조 Op.17 중 3악장 론도&nbsp; - 라흐마니노프, 엘레지 Eb단조 Op.3 No.1&nbsp; - 라흐마니노프, 첼로 소나타 G단조 Op.19 중 3악장 안단테&nbsp; - 라흐마니노프, 보칼리제 Op.34 No.14<br><br>* 세줄평가요가 아닌 클래식 색소폰 연주는 처음 듣는다. 인지도 있는 오리지널 콘텐츠가 부족하다 보니 베토벤과 라흐마니노프 작품을 편곡하여 연주한다. 곡에 따라 알토, 테너, 바리톤 색소폰을 바꾸어 가며 연주하니 음색 차이를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평온하고 부드러운 듯하면서도 심지 있는 소리는 작품의 분위기에 따라 다채롭게 대응하여 흥미로운 사운드를 들려준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20/pimg_709389153509989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2771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금강경 (동봉 역해/올재클래식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14364</link><pubDate>Mon, 13 Apr 2026 16: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14364</guid><description><![CDATA[<br>금강반야바라밀경 조계종 표준본은 소략하여 친절하지 못하다. 경전의 깊이 있는 이해를 위한 상세한 설명이 있는 책을 찾다가 문득 서가에 이 책이 있는 걸 기억하였다. 이 책은 동봉 스님이 역해한 것인데, 약력을 보면 일찍부터 집필과 방송활동을 꾸준히 하였고 아프리카 사역 활동에도 매진한 분임을 알 수 있다.  &nbsp;  이 책의 구성상의 특징은 한글 번역이 선행하고 한자 원문 수록이 뒤따르며, 이어 해설이 나온다. 한글 번역은 4.4조에 4행 구성 형식을 취하는데, 독송에 용이하도록 역자가 의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경 독경은 대개 한자 원문을 읽게 마련인데, 아무 뜻도 모르는 한자보다는 한글이 훨씬 낫다고 본다. 그래서 이 책은 한자 원문에 한글 독음을 달지 않아 원문을 보여주는 데 의미를 두는 듯하다.  &nbsp;  경전 해설은 본문에 비하면 이런저런 말을 필수적으로 덧붙이게 마련이다. 그래야 소략한 내용을 다양한 각도에서 설명하여 이해를 높일 수 있고, 여러 가지 예시를 제공하여 뜬구름 같고 추상적인 내용을 독자의 눈높이까지 끌어내릴 수 있어서다. 역자는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우선 과학의 시각으로 경전에 접근한다. 종교와 과학이 배치되는 존재인 듯 간주하지만, 역자는 현대과학이야말로 경전의 진리를 이해하고 접근하는데 유용하다고 평하며, 이로써 불교의 종지가 과학적 토대 위에 기반함을 강조한다.  &nbsp;  불교는 불교입니다. 불교는 과학이 아닙니다. 그러나 불교는 매우 과학적입니다. 그러므로 과학을 도구로 하여 불교를 새롭게 해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P.348)  &nbsp;  그리고 원문이 한문이다 보니, 역자는 한자 뜻풀이를 매우 빈번하게 사용한다. 한자를 파자하고 세부 글자의 뜻을 재구성하여 원 의미를 강조하거나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nbsp;  살아있음은 두드림입니다. 사람[人]은 한결[一]같이 맥박이 뛰고[叩] 있는 ‘목숨[命]’입니다. (P.76)  &nbsp;  이러한 두 방식은 기존의 형이상학적 논의에 비해 참신하다는 장점을 지닌다. 특히 불교 교리가 전통과학이 아닌 현대과학의 맥락과 닮아있다는 의견은 흥미롭다. 다만 과학 용어와 이론으로 종교를 설명하려 든다면, 불교의 우월성을 드러내기 위한 아전인수로 비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또한 한자 구성원리를 활용한 뜻풀이의 경우, 금강경의 이차 원전이 한문이니만치 나름 타당성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일차 원전은 산스크리트어라는 점을 고려하면 무조건 한자에 갇혀 이해 접근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가 있을 수 있다.  &nbsp;  그 외 자신만의 독자적인 소수설 개진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어 다수설 또는 통설과는 해석의 방향이 다른 점이 눈에 띈다. 독자의 이해와 흥미를 제고하기 위한 차원인지 또는 역자 자신의 감흥을 억누르기 어려워서인지 해설 중간에 운문 표현이 간혹 나온다는 점도 이채롭다.  &nbsp;  금강경의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왈가왈부하기 어렵다. 이 경전은 고도의 종교적, 철학적, 사유적 의미를 담고 있으며, 그것을 비교적 평이한 어휘로 드러내고 있다. 따라서 언뜻 이해되는 것도 같으면서도, 서로 모순되는 논의를 전개하는 듯하면서도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도대체 말하고자 하는 요지가 무엇인가 헷갈릴 수도 있다. 다만 어렴풋이나마 부처가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대강 헤아릴 수 있는데, 문장은 간단하지만 이를 실행에 옮기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라고 해야겠다.  &nbsp;  금강경은 특정하고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하지 않는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과 같은 일체의 상(相)에 집착하지 말라고 한다. 그것은 대상과 한계가 없다. 보살은 물론 부처 자신도 여기에 해당하고, 부처가 가르치는 최고의 설법 자체도 마찬가지다. 그것을 부정하고, 긍정과 부정 자체도 초월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nbsp;  부처님은 스스로 철저한 자기 부정을 통해 진리를 드러내려 하셨습니다. 이것이 &lt;금강경&gt;을 접하는 기쁨입니다.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서 여래라 하여 예외일 수 없으며, 외형의 추구에서도 여래이기 때문에 예외일 수 없다는 말씀은 참으로 우리가 부처님 만난 것을 기쁨 중 기쁨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또 하나의 커다란 행복입니다. (P.362)  &nbsp;  경전 내용만 보면 부처는 물질보다는 정신을 더 높이 평가한다. 어마어마한 물질적 보시보다도 경전 사구게를 읽고 외워서 남을 위해 설하는 공덕이 더 크다고 반복하여 말한다. 그럼 부처는 물질경시주의자인가 의문이 들 테지만, 역자는 그렇지 않다고 단언한다. 물질은 누구나 추구하고 귀하게 여기지만, 여기에 매몰되면 최고의 깨달음에 이르기 어렵기에 이를 경계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nbsp;  &lt;금강경&gt;이 가난을 가르친다면 나는 솔직히 불자님들에게 &lt;금강경&gt;을 읽으라고 권하지 않을 것입니다. &lt;금강경&gt;은 청빈이 아니라 청부淸富를 가르칩니다. 깨끗한 부자가 되길 권하십니다. 삼천대천세계를 칠보로 가득 채워 보시하는 게 가난하다면 가능한가요? (P.269)  &nbsp;  여하튼 금강경은 흥미롭다. 대승불교의 출발에 가깝다는 불교사의 맥락에서 깊이 헤아려보지 않고, 또한 우리나라 조계종의 의고경전이라는 높은 지위를 염두에 두지 않더라도 경전 자체 의 분량이 길지 않고, 용어가 평이하여 읽기와 기본 이해가 어렵지 않다.  &nbsp;  다만 이 책 하나만으로 금강경을 끝내기에는 못내 아쉬움이 든다. 이 책은 불교 관점에서 스님이 쓴 책이므로 불교의 틀이라는 근원적 한계를 지닌다고 본다. 금강경의 이해가 불교 차원이 아니라 현대를 살아가는 비불교도의 중생 처지에서 어떤 의미로 다가올지 알아보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413/pimg_709389153509235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1436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로잘린드 오르미스턴/김경애/씨네21북스) - [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200519</link><pubDate>Mon, 06 Apr 2026 18: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20051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835379&TPaperId=1720051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17/82/coveroff/k21283537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12835379&TPaperId=1720051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알폰스 무하, 유혹하는 예술가 - 시대를 앞선 발상으로 아르누보 예술을 이끈 선구자의 생애와 작품</a><br/>로잘린드 오르미스턴 지음, 김경애 옮김 / 씨네21북스 / 2021년 10월<br/></td></tr></table><br/>알폰스 무하 관련 또 하나의 책이다. 이 책은 판형이 289*279mm로 먼저 읽은 재원 출판사의 대형 판형보다도 더 크다. 가장 큰 장점은 수록된 작품 도판이 시원시원하다는 점이다. 재원 출판사의 것이 맛보기 정도라면 이 책은 훨씬 많은 수의 그림을, 보다 생생한 채색으로, 고품질의 용지에 담고 있어 전시회 도록과 비슷한 인상을 풍긴다.  &nbsp;  구성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부는 ‘무하의 삶과 작품’으로 무하의 생애를 죽 훑어보고 주요 작품 경향을 다룬다. 무하를 잘 알지 못하는 독자라도 1부만으로 전체적 삶과 작품세계를 전망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닌다. 무하 작품 인생의 후반부는 &lt;슬라브 서사시&gt;로 대표되는 순수 회화이다. 다만 여러 가지 이유로 대부분의 무하 관련 책은 이를 비중 있게 다루지 않으며, 도판 수록도 매우 취약하다. 그 점은 이 책도 마찬가지인데 확실히 무하는 후반에 슬라브 문화를 그림에 담아내는 데 집중하였음을 그 외 여러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nbsp;  체코 당국은 &lt;슬라브 서사시&gt;를 위한 박물관 건립을 약속했지만 아직 달성되지 않았다. 무하의 기념비는 모두가 ‘무하 스타일’을 인정하는 그의 고국의 도시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P.87)  &nbsp;  여기서 저자는 체코 당국에 쓴소리를 남기고 있으니, 무하에 대한 정당한 인정과 예우를 하지 않고 있는 데 대한 것이다. 오늘날 무하 예술의 보존과 홍보를 위한 노력은 그의 자녀가 세운 무하 재단의 공이 크다. 한편 이 책은 비교적 편집이 꼼꼼하고 교정이 잘 되어 있어 신뢰감이 드는데, 딱 한 군데 오기가 있어 아쉽다. ‘성 비누스 대성당’(P.85)은 ‘성 비투스 대성당’이 올바르다.  &nbsp;  2부는 ‘무하 스타일’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무하 예술의 전형은 누가 뭐래도 무하 스타일로 대변되는 상업적인 아르누보 장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비록 무하는 그런 평을 원치 않았겠지만, 1893년에서 1903년 사이에 창작된 포스터, 장식 패널, 광고 디자인 등으로 무하는 당대에 명성을 누렸고 지금도 여전히 추앙받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다.  &nbsp;  저자는 2부에서 연도별 순서대로 창작된 작품을 소개하고 해당 작품의 내용과 특징을 짤막하게나마 분석한다. 단순히 그림명을 소개하는 차원을 넘어 작품의 창작 배경과, 작품의 세부 사항과 정확한 이해에 실제적 도움이 되는 유용한 설명이라고 하겠다. 무하의 작품 스타일은 분명 개성적이지만, 그가 고립무원에서 창작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게 된 점도 유익하다. 19세기 후반기에 무하의 앞선 시기와 동시대 화가들의 창작 경향을 통해 무하의 상업 포스터가 등장할 수 있는 개연성은 충분하였다.  &nbsp;  1890년대 프랑스 광고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던 선형 예술은 1860년대초 파리에서 발전되기 시작했다. 에두아르 마네는 1863년 자신의 작품 &lt;풀밭 위의 점심 식사&gt;에서 평면적 색채를 사용하고 명암 표현을 생략했으며 세부 묘사를 단순화해 화면의 2차원적 평면성을 두드러지게 했다. (P.91)  &nbsp;  무하의 상업예술 작품에서 익숙한 화려한 패턴의 배경을 논외로 하더라도 무하의 인물 표현은 평면적이어서 이전 시기의 인물화와 풍경화 등에서 보이던 주류 회화의 사조와는 뭔가 다르다고 생각했는데, 저자는 이 점을 명확히 짚어낸다.  &nbsp;  무하의 작품세계가 독보적인 까닭은 순수예술과 상업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벌였다는 점과, 회화에만 안주하지 않고, 포스터, 광고, 삽화, 조각, 공예, 상품디자인, 의상, 무대장치 등 조형예술의 전반을 두루 섭렵했다는 점에서 다른 미술가들과 차별성을 보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가진 재능과 기법을 후학도들에게 아낌없이 나눠주었으니, &lt;장식 자료집&gt;과 &lt;인물 자료집&gt; 등의 책자가 대표적이다.   &nbsp;  디자인에 대한 유일무이한 작품집으로 자리 잡은 &lt;장식 자료집&gt;은 유럽 곳곳에서 팔렸고, 예술가와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P.186)  &nbsp;  이 책은 알폰스 무하의 삶과 작품세계를 충실히 개괄할뿐더러 그의 실제 작품을 훌륭한 도판으로 감상할 수 있는 좋은 기획이다. 아르누보 예술가로서 ‘무하 스타일’을 낳았던 그의 전성기 시절 예술을 이처럼 한자리에서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추천할 만하다. 다만 이 책의 상대적 단점은 순수예술가로서 알폰스 무하의 다른 일면은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그것은 앞서 언급하였듯이 이 책만의 약점은 아니다. 대중들의 관심은 화려한 무하 스타일에 여전히 매혹당한 채 있어 그 너머를 아직 볼 수 없는 까닭이리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217/82/cover150/k21283537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217827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문학동네)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5304</link><pubDate>Tue, 31 Mar 2026 0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5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853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85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lt;수록작품&gt;홈 파티숲속 작은 집좋은 이웃이물감레몬케이크안녕이라 그랬어빗방울처럼  &nbsp;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시민의 삶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시장과 자본의 신성성은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고, 경제적 여유의 수준은 인간적, 사회적 가치판단의 척도로 자리매김하였다. 더더구나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소시민이 재산 증식을 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 수단이 되었다.   &nbsp;  세상사를 지배하는 기본 원리를 경제적 이해관계가 차지함에 따라 재산의 많고 적음, 그리고 부동산, 특히 아파트의 소유 여부에 따라 사회계층이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친척과 친구의 부동산 무용담에 이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부러움과 시기심을 품을뿐더러 왠지 모를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경제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루저로서의 낭패감이랄까.  &nbsp;  김애란 작가는 등단 때부터 유달리 소시민의 삶에 천착하였는데, 그것은 삶의 어둡고 괴로움을 묘사하면서도 한줄기 유머로서 빛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일지 김애란의 작풍은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밝음과 유머는 찾기 어려워졌다. 중견 작가인 그는 이제 세상과 삶의 파고에 지치고 싫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현실을 그 자체로서 냉엄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nbsp;  &lt;좋은 이웃&gt;과 &lt;빗방울처럼&gt;은 내 집 마련의 사회적 파장을 다룬다. 내 집, 나아가서 빌라보다는 아파트, 아파트도 구축이 아니라 신축으로 경제적 가치를 범접할 수 없는 계급으로 나뉘는 우리네 현실에서 내 집은 단순한 자가의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위상과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상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았을 뿐인데, 남에게 뒤처지는 패배감과 열등감. 게다가 나만 못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이 일거에 의기양양하는 장면. 그것은 삶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나아간다.  &nbsp;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P.120, &lt;좋은 이웃&gt;)  &nbsp;  젊은 윗집 부부와 시우 어머니를 향한 화자의 양가적 감정은 전세 사기로 일순간 풍비박산 난 가정으로 전락한 지수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빌라 전세 후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희망찬 내일을 꿈꾸던 찰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남편 수호는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난다. 지수와 수호 부부가 성실하지 못하였던가, 그들이 무모한 꿈을 꾸었던가. 그녀에게 삶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데, 외국인 도배 여자의 어눌한 한마디가 모국인보다 살갑게 다가온 건 차라리 웃픈 현실이다.  &nbsp;  평범한 소시민의 패배감은 &lt;이물감&gt;에서도 여전하다. 기득권층으로 분류되는 연령대이지만, 기태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헤어진 희주를 놓지 못해 그녀의 SNS를 뒤적거리며 잠재적 연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분별없는 우쭐감을 내보인다. 파트너 지수와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가 멀어진다. 그의 되새김질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실패한 소시민의 전형으로서 기태의 처지를 한마디로 압축한다.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그것은 신체적 병증이 아니라 마음의 나아가 삶 자체의 증상일 것이다.  &nbsp;  &lt;레몬케이크&gt; 속 기진은 엄마 선주와 다른 삶을 선택한다. 굳이 장사가 잘될 리 없는 책방을 개업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를 암시한다. 손님도 들지 않는 책방에서 무시했던 돈과 노후는 그녀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돈은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없고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치사한 존재다. 기진의 꿈과 낭만은 현실 앞에서 좌초 지경이다. 돌파구가 될 것으로 믿었던 유명 여행 작가의 행사마저 어처구니없이 취소되자 무력감에 빠진 기진의 눈에 세상사가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온다.  &nbsp;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P.214, &lt;레몬케이크&gt;)  &nbsp;  경제적 승자와 패자의 현실과 인식이 절묘하게 엇갈리는 현장이 &lt;홈 파티&gt;다. 홈 파티의 주최자와 참여자는 최고경영자과정 동기 출신 모임이므로 사회적으로 나름 한가락 하는 신분이다. 여기에 가난한 여배우 이연의 참가는 사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등장이다. 젊었던 한때 연극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의 상류층으로 경제력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세상을 판별하는 모습이 이연의 눈에는 역겹고 위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nbsp;  술의 힘을 빌린 이연의 결연한 한마디로 끝났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매우 밋밋하였으리라. 이연의 행동 실수 하나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데, 이연의 연기와 오대표의 만족감의 근원은 다르다. 전자는 홈 파티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된 액션이며, 후자는 루저가 잘난 체해봤자 결국 그럴 뿐이라는 확신의 미소다.  &nbsp;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P.41, &lt;홈 파티&gt;)  &nbsp;  &lt;홈 파티&gt;와 반대되는 상황에 놓인 소시민 부부의 난처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 &lt;숲속 작은 집&gt;이다. 외국 휴양지에서 한달살이는 하나의 로망이다. 문제는 주택 메이드에게 팁을 주어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의 사소한 사안으로 불거진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화자는 자기 부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엄마와의 관계 설정도 골치 아픈데, 여기서 메이드를 어떻게 대할지도 결코 편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인 남편의 덤덤한 태도와 달리 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메이드를 대하는 화자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양태는 결국 금전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을 예리하게 감지하는 화자의 감수성 덕분이라고 하겠다.   &nbsp;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P.86, &lt;숲속 작은 집&gt;)  &nbsp;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빛나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고 보람찬, 한마디로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청춘을 지나 중년에 접어들면 우리는 깨닫는다.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내가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다람쥐 쳇바퀴 돌게 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엄혹한 현실임을. &lt;안녕이라 그랬어&gt;의 화자도 연하의 애인과 헤어진 후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향집에 주저앉아 나날을 소비한다.   &nbsp;  삶의 진부한 현상을 돌파하기 위해 원어민 화상영어 수업을 듣는 화자는 화면 속 강사 로버트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된 화자에게 있어 로버트와 대화는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보다는 차라리 낯선 타인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다시 보지 못할 존재이므로 마치 나의 내밀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도 덜 창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화자와 로버트의 대화가 갖는 은근한 따스함은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화자의 앞날을 알지 못한다. 다만 ‘안녕’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처럼 그저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삶이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그냥 버텨내길 바라면서.  &nbsp;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P.249)  &nbsp;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작가를 포착한다. 금전적인 부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 윤리, 문화의 모든 영역을 재단하는 오늘날 세태. 기회에 재빨리 편승해서 안락과 우월감을 누리는 계층과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앞길만 걸었을 뿐인데 둘러보니 사회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계층의 대비. 소수의 성공자보다는 다수의 실패자가 대다수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네 대부분은 실패자, 패배자, 열등한 사람이기 마련이다.   &nbsp;  김애란의 작품은 그러한 사회병리 현상을 날카로운 시선과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그려 보인다. 작가는 화자와 독자에게 분명히 이 현상이 잘못임을 말하지만, 섣부른 위로를 더하지 않는다. 안녕이라 말하지만 거기에는 명시적 희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빛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고, 어두운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금강반야바라밀경 - 조계종 표준 주석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조계종출판사) - [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경 : 주석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2116</link><pubDate>Sun, 29 Mar 2026 2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21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29021&TPaperId=171821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57/coveroff/899362902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29021&TPaperId=171821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경 : 주석본</a><br/>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엮음 / 조계종출판사 / 2009년 01월<br/></td></tr></table><br/>한 달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만큼 다니시던 절에서 49재를 치르기로 하였다. 이때 가족이 경전을 필사하여 49재 당일에 소각하면 고인을 위해 좋다고 스님이 말씀하였다. 이에 따라 불교 경전 수업 겸 한문 공부를 위해 사경하기로 하였다.  &nbsp;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어쨌든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므로 종단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 판본이 표준이라는 판단에서다. 한자 원문에 한글 독음이 실려 있고, 해석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일단 번잡한 해설이 없어 깔끔하고 두껍지 않다. 가끔 각주가 있지만 많지 않을뿐더러 건너뛰더라도 경전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다. 맨 뒤에 미주와 색인이 있다.  &nbsp;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은 법이 실제로 없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말한 것은 일체법이 아닌 까닭에 일체법이라 말한다. (P.64, 구경무아분)  &nbsp;  대충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일체의 관념, 의식, 집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벗어나 보시를 행하되, 보시한다는 의식마저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를 수 있다. 이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은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어떤 정해진 법도 아니다. 말장난 같으면서 굉장히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과 반을 모두 긍정하므로 변증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nbsp;  이 얄팍한 경전이 조계종에서 그토록 중시되는 이유는 몇 장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처가 수보리 장로를 비롯한 대중 앞에서 설한 내용으로 요지는 오히려 간단명료하다. 비구를 비롯한 중생들이 오해하지 않고 명확히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부처는 같은 얘기를 몇 차례 반복하여 들려준다. 부처 자신이 이 경전의 중요성을 직접 설파하는 것은 그만큼 여기 실린 내용이 가르침과 깨달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리라.   &nbsp;  수보리여! 간단하게 말하면 이 경에는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다. 여래는 대승에 나아가는 이를 위해 설하며 최상승에 나아가는 이를 위해 설한다. (P.55, 지경공덕분)  &nbsp;  이 경전은 다른 불경과 달리 분량이 짧고, 쉬운 어휘를 사용하며, 반복되는 내용도 많다. 그것은 독송용으로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불자가 즐겨 독송한다고 간행사에서도 밝힌 바 있다. 부처 또한 이 경전을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受持讀誦) 행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하다못해 사구게만이라도 설하도록 권장한다.  &nbsp;  이 책은 매우 함축적이고 단정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었기에 솔직히 뜻풀이만으로는 부처의 가르침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알기는 어렵다. 해설본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nbsp;  일체 모든 유위법은 /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 같으니 / 이렇게 관찰할지라. (P.88, 응화비진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57/cover150/89936290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5763</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