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성근대나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바람이 성근 대나무숲을 지나매 바람이 떠나면 대나무숲은 소리를 지니지 않는다. [채근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Thu, 29 Oct 2026 19:11:49 +0900</lastBuildDate><image><title>성근대나무</titl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성근대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클래식이 사랑을 말하는 법 출간기념 북콘서트 - 노예진 피아노 (2026.10.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94952</link><pubDate>Mon, 26 Oct 2026 23: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94952</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클래식이 사랑을 말하는 법 출간기념 북콘서트 - 노예진 피아노 콘서트일시 : 2026년 10월 26일(월) 19:30장소 : 삼익아트홀연주 : 노예진 (피아노)진행 : 이다솔 (아나운서)&nbsp; &nbsp; &nbsp; * 서민수 (저자)프로그램&nbsp; - 리스트, 사랑의 꿈 3번&nbsp; - 슈만-리스트, 헌정&nbsp;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C단조 Op.13 "비창" 중 1악장&nbsp; - 쇼팽, 연습곡 Op.10, No.12 "혁명"&nbsp; - 리스트, 발라드 2번 B단조&nbsp; - 리스트, 노르마의 회상<br>* 세줄평모 온라인서점에서 펀딩을 진행했던 북콘서트다. 평소 듣고 싶었던 피아니스트의 공연을 책값에 약간만 보태면 되니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프로그램도 연주자가 가장 선호하는 곡들이다. 저자와의 토크, 연주자와의 토크가 있지만, 무엇보다 연주가 핵심이다. 한 마디로 노예진의 파워풀하면서 감정이 분출하는 연주는 일품이다. 확실히 낭만적 스타일, 게다가 리스트에 잘 어울린다. 공연장이 아쉬울 뿐이다. 앵콜로 저자와 함께 네 손을 위한 곡을 연주하여 한층 뜻 깊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6/pimg_63928654843640056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9495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The Class+ 인다코 콰르텟 (2026.10.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9313</link><pubDate>Fri, 23 Oct 2026 22: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9313</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nbsp;The Class+ 인다코 콰르텟일시 : 2026년 10월 23일(금)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인다코 콰르텟 (Quartetto Indaco)&nbsp; &nbsp; &nbsp; &nbsp;- Eleonora Matsuno, Ida Di Vita (바이올린)&nbsp; &nbsp; &nbsp; &nbsp;- Jamiang Santi (비올라)&nbsp; &nbsp; &nbsp; &nbsp;- Cosimo Carovani (첼로)프로그램&nbsp; - 라벨, 현악 사중주 F장조 M.35&nbsp; - 푸치니, 국화&nbsp; - 멘델스존, 현악 사중주 3번 D장조 Op.44, No.1<br>* 세줄평멘델스존과 라벨의 순서를 바꿨다. 첫소절을 듣는 순간 라벨의 음이 넘실거린다. 2악장에서 피치카토의 향연은 눈과 귀가 모두 즐거운 경험이었다. 푸치니의 '국화'도 진한 상념을 들려준다. 멘델스존의 경쾌함과 낭만적 향기는 청자의 심정을 편안하게 달래준다. 인다코 콰르텟은 특이하게 첼로의 소리가 두드러진다. 그래서일까 전반적으로 콰르텟의 사운드가 풍윤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23/pimg_6392839210749311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931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 (츠베탕 토도로프/류재화/아모르문디) - [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8643</link><pubDate>Fri, 23 Oct 2026 16: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864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448635&TPaperId=1758864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37/23/coveroff/899244863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2448635&TPaperId=1758864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야, 계몽주의의 그늘에서</a><br/>츠베탕 토도로프 지음, 류재화 옮김 / 아모르문디 / 2017년 08월<br/></td></tr></table><br/>저자는 프랑스의 역사학자, 철학자, 사회학자, 문학 평론가이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면 제법 여러 권의 책이 출판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프란시스코 고야에 관한 여타 미술 분야의 도서와는 궤를 달리한다. 그는 고야를 화가의 차원이 아니라 사상가로 인식하고 그의 사상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어떤 방향으로 발전했는지를 탐색한다.  &nbsp;  고야는 당대 최고의 화가였을 뿐만 아니라, 같은 시대를 살았던 괴테나 50년 후 등장한 도스토옙스키에게도 뒤지지 않는 심오한 사상가였다. (P.33, ‘고야, 사상가’)  &nbsp;  고야가 살던 시대를 살펴봐야 그의 그림과 이 책에서 보고자 하는 의도를 이해할 수 있다. 고야는 괴테, 베토벤과 동시대 인물이었고, 프랑스 대혁명과 나폴레옹 시기를 온몸으로 관통하였다. 평민의 신분에서 출발하여 왕실 수석화가로 출세하였지만, 계몽주의 성향을 지닌 개혁 세력과도 끈끈한 친분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계몽주의의 세례를 받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nbsp;  미술 애호가는 고야의 회화 작품, 특히 거대하고 화려한 프레스코화, 태피스트리 밑그림, 초상화를 일반적으로 선호한다. 말년의 ‘검은 그림’도 그 충격적 주제와 색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저자는 ‘검은 그림’을 제외한 일반적 회화 작품은 거의 거론하지 않고 분석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것은 고야가 예술가이자 사상가로서 자신의 내면을 투영하지 않은 그림이라고 판단해서다. 그것은 생활인으로서 고야가 생계와 출세를 위해 외부의 주문에 응하여 그린 상품일 따름이다. 물론 그것들 가운데서도 다른 화가와는 구분되는 고야만의 독자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예컨대 유명한 왕실 가족 초상화를 고야처럼 그릴 수 있는 화가가 누가 또 있겠는가.  &nbsp;  저자는 고야의 삶과 예술세계에서 세 번의 격변이 찾아왔다고 기술한다. 첫 번째는 청각 장애의 발발, 두 번째는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 세 번째는 나폴레옹의 침공과 스페인 독립 전쟁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풍파의 시대 상황.   &nbsp;  병과 새로운 장애로 인해 이제 주문받은 그림이 아닌 다른 것을 그릴 수 있게 되었다. 처음으로 오로지 내적 필요성과 표현 욕구에 추동되어 그리게 된 것이다. 이 변화는 실로 중대하여, 모든 편지에서 언급된다. (P.66, ‘병과 그 영향’)  &nbsp;  성공적인 화가로서 잘 나가던 고야를 멈춰 세운 청각 장애는 고야가 자신의 외부에서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도록 하는 계기가 되었다. 상업적 수요에만 따라 그리던 그림에서 스스로의 내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그리기 시작한 것이다. 알바 공작부인과의 실연은 다른 책에서는 지나가는 수준으로만 다루고 그의 그림 세계에서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지 않던 요소다. 토도로프는 실연 이후 고야가 이성의 억제에 숨죽였던 비이성의 세계를 본격적으로 탐험하고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강조한다. 일련의 마녀 그림, 정신이상자, 감옥 등을 그린 그림과, 판화집 &lt;변덕들&gt;이 그러하다.  &nbsp;  1797년 봄, 감정적 단절은 그를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세계로 향하게 만든다. 그후로 그는 바로 그 자신을 표현하고자 애쓰게 된다. 상상적 형태들이 고삐가 풀린 듯 그의 붓 아래로 몰려든다. (P.85, ‘치료와 재발, 그리고 알바 공작부인’)  &nbsp;  나폴레옹과 스페인 독립 전쟁, 이후 페르난도 7세의 집권은 정치사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시기다. 계몽주의 개혁 세력과 보수적인 귀족과 종교의 반동 세력의 대치는 프랑스 군대의 침략으로 일대 전기가 마련되었다. 이념적으로는 프랑스를 지지하지만, 애국심으로는 프랑스에 저항해야 하는 모순에 처한 개혁 세력의 고뇌, 프랑스군의 폭력적 지배가 보여 주는 계몽주의 이념의 한계, 페르난도 7세의 집권 이후 표출하는 반동 정치의 혼란. 여기서 고야는 무지, 종교, 미신, 광기와 같은 비이성의 폭력성과 더불어 이성의 폭력성도 경험하면서 어느 한쪽도 긍정하지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부닥친다. 인간성을 향한 의문과 불신, 고발을 폭로하는 대표 작품이 판화집 &lt;전쟁의 참화&gt;이다.   &nbsp;  고야는 이제 계몽주의 사상이 침략과 억압과 학살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계몽주의 사상은 폭력을 막기에는 충분치 않았고, 오히려 반대로 계몽주의 사상의 이름으로 나폴레옹 군대는 폭력을 자행했다. [......] 이성의 잠만 괴물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각성 상태도 마찬가지였다. (P.160, ‘나폴레옹의 침략’)  &nbsp;  고야 말년의 ‘검은 그림’ 창작 동기와 해석이 분분한 가운데, 저자는 이것을 치유 목적의 그림으로 이해한다. 그가 겪은 인간성의 불신과 혐오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 아무에게도 보여 주지 않는 그림을 그린 후, 그는 귀머거리의 집을 떠났다는 것이다. 일종의 미술치료인 셈이다. 판화집 &lt;어리석음&gt;도 같은 맥락으로 인식한다.   &nbsp;  고야가 검은 그림들을 누구하고도, 심지어 친구들과도 공유하려 하지 않은 것은, 이 그림들을 창작하는 행위가 곧 자기 치유의 작업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는 찬사를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검은 그림들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바로 그 그림들을 그렸다. (P.253-254, ‘두 번째 병, 검은 그림, 광기’)  &nbsp;  치유의 덕택일지 고야 말년의 작품은 보다 밝고 긍정적이다. 주제와 색감, 표현 면에서. 보르도에서 그린 &lt;젖 짜는 여인&gt;이 주는 우아함과 평온함이 눈에 띈다. 활기차고 웃음 띤 노인이 춤을 추거나 맨발로 그네를 타는 말년의 데생 작품은 해탈과 초월의 느낌마저 자아낸다.  &nbsp;  저자가 고야의 예술세계에서 특히 놀라워하면서 주목하는 점은 공식적 그림과 비공식적 그림 창작을 긴 세월 분리하여 병행하였다는 사실이다. 공식적 세계에는 미술관에서 많은 관람자를 끌어들이는 대다수의 화려한 작품이 속한다. 왕실과 귀족 초상화, 마하 연작, 그리고 1808년 5월 연작이 그러하다. 비공식적 창작에는 판화집, 데생집이 속한다. 오늘날 사상가로서 주목받게 되는 작품은 후자의 영역이다. 특히 저자는 고야의 데생에 주목한다. 단순히 밑그림의 도구가 아니라 일기와도 같이 고야의 내면 사고와 감정을 반영하는 실제적 표현 수단으로 인식한다. 저자에 따르면 고야처럼 이원화된 예술세계를 병행한 예술가는 없었다고 한다.  &nbsp;  프란시스코 고야를 잘 알지 못한 때에 다른 유명한 화가와 비교하면 그에 관한 책이 시중에 상대적으로 많이 나와 있다는 점을 의아하게 여겼다. 장애를 극복하고 드물게 장수하며 안주하지 않고 회화와 판화라는 두 영역에서 독보적인 자취를 남긴 점. 나아가 명성이 당대에 국한된 게 아니고 근현대에 와서 더욱 높아갔다는 점, 위대한 예술가를 넘어 사상가로서 끊임없이 재조명되고 있는 점을 볼 때 그에 관한 세인의 관심이 남다를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nbsp;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사상가 고야를 집중 조명하고 있는 의미 깊은 역작이다. 특히 &lt;변덕들&gt;과 &lt;전쟁의 참화&gt;를 깊이 있게 검토하고 주요 작품을 상세하게 분석함으로써 독자가 놓치거나 간과하기 쉬운 개별 판화를 유심히 살펴보고 이해의 심화를 가능케 한 점은 무엇보다도 커다란 덕목이다.   &nbsp;  세상은 건강/병, 이성/광기, 낮/밤, 빛/어둠처럼 명확한 대립을 이루는 범주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고야는 그림을 통해 그 둘의 상호 침투성과 불가분성을 보여 주고자 애쓴다. 둘을 나누는 경계는 투과성을 띤다. 이성과 비이성은 인간의 특성이며 똑같은 지위에 있다. (P.120, ‘‘변덕들’의 해석’)  &nbsp;  책 내용이 비교적 전문적이기에 화가 고야를 비로소 알고자 하는 초심자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지 않다. 화가 고야의 삶의 전반을 추적하지 않았고, 공식적인 창작 영역도 저자의 관심 범위 밖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러 도판을 수록하였지만, 언급하거나 분석하고 있는 그림 전체가 아니기에 다소 불친절하고 아쉬운 면도 존재한다. 다만 고야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거나, 몇 권의 관련 책의 독자라면 이 책을 통해 인간성과 나아가 사회 원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통찰과 공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의도하고 지향했던 결과라고 개인적으로 이해한다.  &nbsp;  고야가 예견했고 토도로프가 증언하듯, 우리가 경계해야 할 위험은 뚜렷한 경계 없이 부유하는 ‘미몽’과 ‘꿈’, ‘마술’과 ‘주술’이 아니라, 전체주의 같은 국가적 장치로 일제 소탕하는 가면 쓴 ‘이성’이다. (P.327, 옮긴이의 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1737/23/cover150/899244863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1737235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강변의 조문객 – 메리 셸리 작품집 (메리 셸리/정지현/민음사) - [강변의 조문객]</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6815</link><pubDate>Thu, 22 Oct 2026 17:4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681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8380&TPaperId=1758681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7/20/coveroff/893743838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38380&TPaperId=1758681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강변의 조문객</a><br/>메리 셸리 지음, 정지현 옮김 / 민음사 / 2024년 09월<br/></td></tr></table><br/>&lt;수록작&gt;폴란드인의 사랑보이지 않는 소녀악마의 눈불멸하는 필멸의 존재변신유프라시아강변의 조문객순례자들꿈  &nbsp;  메리 셸리는 &lt;프랑켄슈타인&gt;이 아니더라도 고딕, 모험, 환상 문학을 선호하는 듯싶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9편의 단편의 면면을 살펴보더라도 개인과 사회의 일상적 단면을 표현하는 작품은 찾아보기 어렵다. 악마와 초현실을 다루거나 전쟁, 모험, 난파를 소재로 삼기도 하고 타국을 지역적 배경으로 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다는 생각이다. 여기서도 영국을 제외하고 이탈리아, 그리스, 스위스, 프랑스가 등장한다. 시대적으로도 중세와 현대를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그의 또 다른 장편인 &lt;최후의 인간&gt;은 하물며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그리고 있다.  &nbsp;  먼저 인상에 남는 단편은 &lt;불멸하는 필멸의 존재&gt;와 &lt;변신&gt;이다. 전자는 불멸의 영약을 마셔서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된 사람의 이야기인데, 누구나 다 바라 마지않는 영생이 결코 행복한 삶이 아님을 말해준다. 나만 홀로 청춘인데, 가족과 친구 모두가 늙고 차례로 세상을 떠난다면, 누구를 사랑하고 교감을 할 것인가, 어차피 그들도 곧 이별할 텐데. 그런 면에서 불멸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고 할 것이다. 카렐 차페크의 &lt;마크로풀로스의 비밀&gt;과 제재 면에서는 비슷하다.   &nbsp;  죽음을 바랐지만 절대로 죽지 않았다. 불멸의 인간. 야망도 탐욕도 생기지 않았고, 심장을 괴롭히는 열렬한 사랑도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어차피 나만큼 오래 살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없기에 사랑은 나를 괴롭게 할 뿐이었다. (P.119, 불멸하는 필멸의 존재)  &nbsp;  후자는 샤미소의 &lt;그림자를 판 사나이&gt;를 연상시킨다. 그림자든, 육체든 자신에게 속한 고유의 것을 악마와 거래한 치명적인 대가를 여기서 보여준다. 귀도는 방탕한 생활의 극단에 내몰려 보물 상자를 받는 조건으로 자신의 몸을 사흘간 빌려주기로 거래한다. 신의를 지킨다면 그것이 악마이겠는가. 귀도의 몸을 쓴 악마는 개과천선을 위장하고 약혼녀와 결혼식을 치르려 하는데, 그것은 곧 자신의 영원한 파멸인 동시에 줄리엣의 선한 영혼마저 타락시키는 씻을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 것이다.  &nbsp;  세상사의 우여곡절은 인생을 결코 평탄하게 내버려두지 않는다. 연인 간, 가족 간 무수한 이별과 곡절이 중첩되어 흘러가게 마련이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제자리에 돌아오게 될 때 그것은 우연이자 기적이 되게 마련이다. 그것은 비극적 결말로 귀결될 수 있지만 때로는 해피 엔딩을 맞이하기를 기대할 수 있다. &lt;악마의 눈&gt;과 &lt;순례자들&gt;이 여기에 해당한다. 전자는 그리스의 해안가를, 후자는 스위스의 산악 지방을 배경으로 한다. 모험과 약탈, 은혜와 원수, 복수가 켜켜이 쌓이는 가운데, 악마의 눈으로 불리는 흉포한 산적 드미트리는 어릴 때 죽은 줄로 알았던 딸과 손주와 재회한다. 기사 부르크하르트는 사랑하는 딸이 적대적인 이웃 영주의 아들과 비밀 결혼을 하자 배신감에 칩거 생활을 한다. 세월이 흘러 늙은 영주는 모든 은원이 부질없음을 깨닫고 화해하고자 하나 이미 방안이 없다. 순례자를 가장한 외손주의 방문과 외손녀와 젊은 공작의 결혼은 독자에게도 출생의 비밀이 주는 쫄깃함과 행복함을 안겨준다.  &nbsp;  본격적인 사랑 이야기를 빼놓을 수 없다. 남녀 간 사랑이야말로 문학과 예술의 근원적 제재가 아니겠는가. 이 책에서도 &lt;폴란드인의 사랑&gt;, &lt;보이지 않는 소녀&gt; 그리고 &lt;꿈&gt;이 이것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다만 작가의 성향답게 아름답고 순탄한 사랑이 아니다. 음모와 모험, 유령과 환상, 고딕풍의 분위기가 이야기 전반을 감싸고 있어 소재의 진부함을 색다르게 다루고 있다. 전자는 이탈리아, 가운데는 영국, 후자는 프랑스를 각각 지역적 배경으로 한다. 특히 전자와 후자는 폴란드와 러시아의 전쟁, 프랑스의 종교분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어 더욱 현실감을 부여한다. 내용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다채롭게 흘러가지만 결말은 동일하다. 사랑의 성취와 승리!  &nbsp;  그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달려가서 죽은 줄로만 알았던 여인을 안았다. 보이지 않는 소녀가 바로 로지나였다. (P.67, 보이지 않는 소녀)  &nbsp;  그는 위험천만한 침상에서 떨어지려고 하는 그녀의 새털 같은 몸을 떠받았다. 그녀가 눈을 뜨고 연인을 보았다. 운명의 꿈을 꾸는 내내 자신을 지켜보았고 자기 목숨을 구해 준 연인을. (P.248, 꿈)  &nbsp;  나머지 단편인 &lt;유프라시아&gt;와 &lt;강변의 조문객&gt;도 작품 간 유사성을 지닌다. 이 역시 사랑을 다루지만, 사랑하는 가족의 상실이 주는 슬픔과 영향이다. 전자는 그리스 독립전쟁, 후자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다. 전자는 적군에 납치당한 여동생을 구출하지만 누이의 목숨을 지키지 못한 오빠, 후자는 난파당한 배에서 먼저 구출되기를 거부하고 끝내는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를 죽게 했다는 회한에 사로잡힌 딸. 콘스탄틴과 클라리스/엘렌은 누이와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죄책감으로 한 사람은 무모할 정도의 용기를 전장에서 발휘하고, 클라리스/엘렌은 외딴곳 오두막에 홀로 고적한 은둔의 삶을 영위한다. 두 작품 모두 그들 주위에 머물렀던 사람의 목격과 증언 형식을 취하고 있다.   &nbsp;  클라리스/엘렌의 슬픔이 독자에게 더욱 절절하게 다가오는 것은 무엇보다 육친을 죽음으로 몰아갔다는 자책과 비난과 자기부정의 철저성이 자아내는 극단적인 비극성에 있다고 하겠다.   &nbsp;  병과 죽음의 문턱에 다다랐던 경험이 내 절망에서 독을 빼 주었어. 네가 본 슬픔과 번뇌는 누그러진 아픔과 경건한 희망으로 녹아내렸지. 난 이제 비참하지 않아. 이제는 말이야! (P.194, 강변의 조문객)]]></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4797/20/cover150/893743838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47972079</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95회 아트엠콘서트 - 김정은 피아노 리사이틀 (2026.10.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1590</link><pubDate>Mon, 19 Oct 2026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1590</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95회 아트엠콘서트 - 김정은 리사이틀 "선율에 마음을 싣고"일시 : 2026년 10월 15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김정은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스카를라티, 소나타 C장조 K.502&nbsp; -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16번 C장조 K.545&nbsp; - 드뷔시, 전주곡 제1권 중 4곡 '저녁 대기 속에 감도는 소리와 향기'&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nbsp; 12곡 '음유시인들'&nbsp; - 하이든, 변주곡 F단조 Hob.ⅩⅦ:6&nbsp; -&nbsp;쇼팽, 환상곡 F단조 Op.49<br>* 세줄평다채로운 곡을 감상할 수 있는 유쾌한 공연이었다. 전반부에서는 모차르트의 친숙한 소나타가, 후반부에서는 하이든과 쇼팽이 중심을 이룬다. 쇼팽 곡도 좋았지만, 생소한 하이든 작품이 더욱 흥미로웠다. 기대보다 꽤나. 내게 드뷔시는 아직은 가깝지 않다. 공연 못지않게 연주자의 입담에 시간 가는 줄 모를 지경이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9/pimg_63928047873884909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8159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 (헤르만 헤세/폴커 미헬스/박종대/열림원) - [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72448</link><pubDate>Wed, 14 Oct 2026 22:4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7244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0834&TPaperId=1757244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31/45/coveroff/k28203083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82030834&TPaperId=1757244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구름은 바람 위에 있어</a><br/>헤르만 헤세 지음, 폴커 미헬스 엮음, 박종대 옮김 / 열림원 / 2025년 08월<br/></td></tr></table><br/>헤르만 헤세의 글은 아주 오래전 집중적으로 읽었다. 이후 산발적으로 한두 편 읽었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헤세의 자연, 특히 구름 에세이를 다룬 이 책의 접근은 매우 생소하다. 헤세가 그렇게 구름을 사랑하고, 깊은 관심을 지니며 천착하였는지 처음 알게 되었다.   &nbsp;  구름은 하늘 저 멀리 있기에 인간이 닿을 수 없는 신과 가까운 존재이다. 흰 구름은 평화로운 자연과 목가적 전원의 상징이다. 반면 먹구름은 폭풍과 재난, 그리고 비극으로 귀결된다. 색으로 말하자면 붉게 물든 석양의 구름이 자아내는 신비로움을 빼놓을 수 없다. 구름은 제자리에 머물지 않고 하늘을 떠다닌다. 구름은 정처 없이 떠도는 하늘의 방랑자다. 나그네, 방랑자를 구름에 비유함은 동서양이 공통적이다.   &nbsp;  너희는 본질적으로 우리와 닮았으니, / 우리 방랑자들, 우리 닻 없는 항해자들을 닮았으니. (P.18, 구름의 노래)  &nbsp;  방랑자의 모든 슬픔과 기쁨을 / 헤아리지 못한 사람은 / 구름을 이해하지 못하리. (P.81, 흰 구름)  &nbsp;  헤세의 문장에서 이 모든 것을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그는 구름을 방랑자와 많이 연결한다. 작가 자신의 삶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은 탓이리라. 그가 독일을 떠나 스위스의 자연에 은거한 연유는 모국에 발을 붙일 자리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겠는가. 당대 모국에게 있어 그는 반항아로 간주되었으니.  &nbsp;  원래 세상과 잘 맞지 않는 사람이었지. 세상은 그런 반골적인 나에게 수없이 회초리를 들었지만 그래도 나를 죽이지는 못했어. 나는 여전히 살아 있고, 세상에 저항하며 버텨 왔어. (P.131, 저녁 구름)  &nbsp;  편자는 헤세를 “구름 관상학자”(P.160)로 칭한다. 한마디로 구름을 보고 읽어낼 줄 안다는 말이다. 그만큼 헤세가 구름을 깊이 관찰하고 애정하여 일반 사람이 간과하는 다채롭고 미묘한 구름의 형상을 파악하였다는 뜻이리라. 구름이 무한한 하늘에 실체감을 부여함으로써 인식 가능한 공간으로 만드는 존재임을 언급하는 대목에서 확실히 그것을 깨닫는다. 나로서는 미처 생각조차 하지 못한 견해다.  &nbsp;  구름은 광대무변의 공간에 실체감을 부여하고, 그 공간을 살아 있게 하고, 측정 가능한 것처럼 보이게 하고, 우리를 그 공간과 연결시켜 준다. (P.10, 구름)  &nbsp;  제아무리 아름답고 뛰어난 자연 경관도 오래 보거나 자주 보면 흥미가 떨어지게 마련이다. 우리는 단순히 아름다움에 열광하지 않는다. 우리를 진정으로 사로잡는 건 그것과 연결된 감정이다. 칼리다사의 &lt;메가두타&gt;에서 구름은 부부간 사랑의 전령이다. 헤세도 구름을 바라보며 첫사랑의 추억을 회상하고, 학생 시절에 어머니를 부끄럽게 여겨 외면했던 가슴 아픈 경험을 반추한다. 꿈속에서나마 어머니가 자신을 보며 웃고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며 위안 삼는다.  &nbsp;  구름은 변화무쌍하다. 잠시만 눈을 다른 데 두었다가 바라보면 원래의 모습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그러기에 구름은 덧없음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문득 고개를 들어 구름을 쳐다보면 인간은 상념에 젖기 마련이다. 그것은 추억과 회상, 나아가 그리움과 슬픔의 정조다.  &nbsp;  이처럼 인생무상과 회한에 사로잡히다 보면 우리는 자연스레 노쇠와 죽음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구름에 자욱하게 뒤덮인 흐린 하늘은 사람의 마음마저 착 가라앉힌다. 젊은 시절의 방랑과 들뜸도 어느덧 사라지고 열정과 활기마저 쇠진하게 된다. 하늘 높이 흰 구름에서 기쁨을 찾기보다 덧없음에 사로잡히기 쉬우며, 석양의 지는 노을에 오히려 철렁하게 공감하게 되는 때. 헤세는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만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자 한다. 그러면서 힘들지만 소소한 기쁨을 구하자고 말한다.  &nbsp;  나는 늙어 가고 생명이 시들어 가는 과정의 계단을 하나씩 내려가는 것이 몹시 힘들고 고통스럽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독서나 음악, 자연 속에서 소소한 기쁨을 누립니다. (P.148, 1951년 2월 이름가르트 샤비키에게 보낸 전언에서 발췌)  &nbsp;  헤세의 시, 산문, 편지, 단편과 장편소설 등에서 구름과 연관된 글만을 폴커 미헬스가 편집한 게 이 책이다. 색다르면서도 흥미로운 기획이 아닐 수 없다. 비록 구름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안개와 호수, 석양, 푄 같은 온갖 자연 현상을 함께 다루는 자연 에세이다. 몇 편의 시와 산문에 그치지 않고 &lt;페터 카멘친트&gt;와 &lt;유리알 유희&gt; 같은 소설에도 구름에 연관한 대목을 들어가 있더니 헤세의 구름 사랑은 참말이 아닐 수 없다.  &nbsp;  헤르만 헤세의 서정적인 문장을 오랜만에 접할 수 있었다. 아울러 구름과 자연, 그리고 풍요로운 상념에 젖어 들 수 있는 드문 기회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031/45/cover150/k28203083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031451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고야, 영혼의 거울 (프란시스코 데 고야,올더스 헉슬리 외/이은희,최지영/다빈치) - [고야, 영혼의 거울 - 개정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70106</link><pubDate>Tue, 13 Oct 2026 19: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701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5781&TPaperId=175701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206/59/coveroff/899098578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0985781&TPaperId=175701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고야, 영혼의 거울 - 개정판</a><br/>프란시스코 데 고야 지음, 이은희.최지영 옮김 / 다빈치 / 2011년 06월<br/></td></tr></table><br/>이 책은 2001년 출판본의 개정판이다. 처음부터 개정판을 펼쳤다면 다행이고, 혹시라도 구판을 읽을 생각이라면 한시라도 빨리 책장을 덮고 이 책을 읽기를 추천한다. 내가 꼭 그러했다. 구판과 개정판은 전혀 다른 책이라고 보면 된다. 기본 콘텐츠는 동일하지만, 판형도 훨씬 커졌고 편집도 완전히 새로 하였다. 구판은 독자의 이해력과 인내력을 테스트하는 의도가 있는 게 아니었을까 할 정도로 독서에 무척이나 불편하였다.  &nbsp;  이 책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누어지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네 개의 본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고야의 주요 회화 작품이 한 영역을 별도로 차지한다.  &nbsp;  첫 번째 본문은 ‘고야의 삶과, 그리고 예술’로 고야에 대한 약사에 해당한다. 구판에는 이탈리아 미술평론가 마게리타 아부르체세의 글이라고 소개되어 있는데, 개정판에는 이 대목이 생략되어 어떤 게 맞는 건지 알 수 없다. 고야의 일생과 예술세계는 앞서 몇 권의 책을 읽었기에 새삼스럽지 않다. 다만 새로운 작품으로 여섯 점의 연작 &lt;산적 엘 마라가토의 체포&gt;를 소개(P.21)하고 있어 관심이 쏠렸다. 후기작으로 &lt;호세 데 칼라산스 성인, 최후의 만찬&gt;과 &lt;겟세마네 동산의 기도&gt;의 현대성을 부각하고 있는 점(P.24)도 흥미로웠다.  &nbsp;  두 번째는 고야 자신의 육성을 들어볼 수 있는 귀한 자리다. 그가 절친 사파테르에게 보낸 편지를 수록하고 있는데, 100페이지 정도 되므로 꽤 많은 분량이다. 서신 교환은 사파테르가 사망한 1800년대 초반까지 계속되었으며, 온갖 시시콜콜한 개인사부터 자신의 작품에 대한 고충과 세간의 평판에 대한 의식까지 전반적으로 담고 있다. 산 프란시스코 엘 그란데 대성당의 작업에 매달려 있음을 알 수 있고,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lt;산 이시드로 평원&gt;을 그리느라 고야가 쏟는 에너지와 스트레스가 굉장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nbsp;  게다가 그 주제가 &lt;산 이시드로 평원&gt;으로, 너무나도 어렵고 까다롭다네. 산 이시드로 축일에 왕궁에서 이 그림을 공개할 걸세. 사랑하는 벗이여, 솔직히 이 문제가 끝날 때까지 난 살아 있다고 말할 수 없을 걸세. 잠도 자지 못하고 쉬지도 못하지. (P.107, 1788년 5월 31일)  &nbsp;  고야 자신의 말처럼 아내보다도 더 친근하고 솔직하게 토로하는 표현은 단순한 우정을 넘어설 정도의 끈끈하고 농밀한 느낌마저 자아낸다. 그토록 사적인 편지가 후대인들에게 공개되었을 것을 알았다면 고야가 이토록 무람없이 문장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nbsp;  그림을 그리지 않아도 된다면 자네와 함께 있고 싶네. 난 자네를 깊이 사랑하고 있네. 자네처럼 아름다운 사람은 이 세상에 또 없을 걸세. (P.51, 날짜 없음)  &nbsp;  아! 잠깐만, 자넬 그리워하는 나를 천 번만 안아주게나.내가 자네에게 줄 수 없는 것을 갖게나[여성의 성기 그림]. (P.127, 1797년 10월 10일)  &nbsp;  세 번째는 고야의 주요 회화 작품 소개다. 이 부분은 일종의 컬러 도록에 해당하므로 용지를 달리하고 있다. 1772년 필라르 바실리카의 프레스코화에서 시작하여 최후기작인 &lt;보르도의 우유 파는 아가씨&gt;에 이르기까지 60면에 걸쳐 연대순으로 그의 주요 작품을 순서대로 보여준다. 판형이 커진 만큼 그림 감상에 제격이며, &lt;산 이시드로 평원&gt;, &lt;종교 재판소&gt;, &lt;카를로스 4세 가족&gt;, 1808년 5월 역사화 2편과 &lt;결투&gt; 등은 양면에 걸쳐 시원스레 보여준다. 유명한 마하 작품 2편도 그러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nbsp;  개인적으로 이 책의 핵심은 네 번째 본문에 있다고 본다. 고야의 유명한 판화 연작인 &lt;카프리초스&gt; 80편을 모두 수록하고 있다. 각 면에 한 편씩 판화 작품을 싣고 아래에 판화의 제목과 간단한 설명을 소개한다. 얼마 전에 그의 판화전을 관람하였는데, 전시회 도록보다 이 책을 더욱 추천할 만하다.   &nbsp;  고야가 인간 정신의 어두운 측면과 다양한 삶의 양상들을 관찰하여 그려낸 이 작품들은 영원히 존재하는 부조리와 강박관념과 동시에 즉각적이며 보기 드문 현실 감각을 드러낸다. (P.199-200)  &nbsp;  유독 마음에 끌리는 작품은 6번 ‘아무도 모른다’, 12번 ‘이빨을 찾아서’, 24번 ‘구원은 없었다’, 37번 ‘제자가 더 많이 아는 건 아닐까?’, 52번 ‘재단사의 재주’, 80번 ‘때가 되었다’이다. 23번과 24번은 무고한 여인을 등장시키며, 37번에서 42번까지는 소위 당나귀 시리즈라고 하겠다. 한편 &lt;카프리초스&gt;를 상징하는 43번 ‘이성의 꿈은 괴물을 낳는다’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해석보다는 그림 설명 자체가 다른 해석의 여지를 준다는 점에서 곱씹고 싶다.  &nbsp;  이성으로부터 버림받은 환상은 절대 불가능할 것 같던 끔찍한 괴물을 만들어낸다. 그러나 환상이 이성과 결합하면 예술의 모체가 되고, 모든 경이로움의 원천이 된다. (P.247)  &nbsp;  마지막 다섯 번째 글은 작가 올더스 헉슬리의 미술 평론이다. 맞다, &lt;멋진 신세계&gt;로 유명한 소설가다. 그는 고야 작품 전반을 다루지 않고, 후기작에 집중한다. ‘검은 그림’ 연작과 판화집 &lt;카프리초스&gt;, &lt;전쟁의 참화&gt;, 그리고 &lt;어리석음&gt;이 갖는 의미에 주목한다. 이 글은 앞에 실린 &lt;카프리초스&gt; 이해를 위한 해설 성격을 지니고 있어 매우 유익하다.   &nbsp;  고야가 그림에 나타난 것처럼 날카로운 현실 인식과 시대 감각을 지닌 사상가적 면모로서 세상의 미신과 무지, 광기와 폭력, 야만성의 시각으로 정말로 역사와 사회를 인식했는지 알 수 없지만, 그의 판화집 내용은 이를 반박하지 못한다. &lt;전쟁의 참화&gt;에서 고야는 전쟁의 영광과 위세를 배제하고, 전쟁의 이면에 가려진 인간 일반의 비인간성과 인간 개개인의 고통에 집중한다. &lt;카프리초스&gt;에 비해 덜 알려진 &lt;어리석음&gt;을 한층 주목하는 것 또한 흥미롭다.  &nbsp;  더욱 침울하고 불가사의해진 &lt;어리석음&gt;에 나오는 풍자는 전체적으로 &lt;카프리초스&gt;보다 덜 직접적이다. 거기에 등장하는 비유는 훨씬 더 일반적이고 신비하다. (P.299)  &nbsp;  이 책을 프란시스코 고야의 입문서로 삼기에는 적절치 않다. 그의 삶과 예술세계에 대해 기초적인 지식을 지닌 독자가 한층 심화한 이해를 원할 경우에 적합하다. 무엇보다 판화집 &lt;카프리초스&gt;에 크나큰 관심을 지닌 독자라면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절판된 게 아쉽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206/59/cover150/899098578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206599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2026 일신 프리즘 콘서트 시리즈 - 카잘스 콰르텟 (2026.10.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69852</link><pubDate>Tue, 13 Oct 2026 16: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69852</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2026 일신 프리즘 콘서트 시리즈 - 카잘스 콰르텟일시 : 2026년 10월 12일(월) 19:30장소 : 일신홀연주 : 카잘스 콰르텟 (Cuarteto Casals)&nbsp; &nbsp; &nbsp; &nbsp;- Vera Matrinez Mehner, Abel Thomas (바이올린)&nbsp; &nbsp; &nbsp; &nbsp;- Cristina Cordero (비올라)&nbsp; &nbsp; &nbsp; &nbsp;- Arnau Tomas (첼로)프로그램&nbsp; - 쇼스타코비치, 현악사중주 4번 D장조 Op.83&nbsp; - 엘리센다 파브레가스, 현악사중주 "격렬한 대지"&nbsp; &nbsp; &nbsp;* 한국 초연&nbsp; - 슈베르트, 현악사중주 14번 D단조 D.810 '죽음과 소녀'<br>* 세줄평일찌감치 줄을 서서 나름 좋은 자리를 골랐다. 현악사중주 실연 경험이 많지 않지만, 이처럼 개별 악기와 전체 앙상블이 또렷하게 들리는 연주는 처음이다. 온화함과 격렬함이 상존하는 가운데 의외로 템포는 빠르지 않다. 3명의 연륜과 비올라의 젊음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죽음과 소녀'도 물론 뛰어났지만, 익숙치 않은 쇼스타코비치 곡이 흥미로웠다. 국내 초연인 파브레가스의 곡도 난해하지 않아 감상하기에 괜찮았다.&nbsp;다부지게 중심을 잡아가는 첼로가 인상적이었는데, 앵콜곡 중 카잘스의 '새의 노래'를 연주해서 특히 좋았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13/pimg_63927506137820556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6985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바이올리니스트 옥유아 바흐 무반주 전곡 시리즈 Ⅰ(2026.10.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50224</link><pubDate>Fri, 02 Oct 2026 09:5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50224</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nbsp;바이올리니스트 옥유아 바흐 무반주 전곡 시리즈 Ⅰ일시 : 2026년 10월 1일(목) 19:30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연주 : 옥유아 (바이올린)프로그램&nbsp; - 바흐,&nbsp;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단조 BWV 1001&nbsp;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단조 BWV 1003&nbsp;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 1004<br>* 세줄평바흐 무반주 바이올린 독주회는 처음이다. 부드럽고 섬세한 연주다. 피곤해서 중간에 살짝 고비가 있었는데, 소나타 3번의 3악장 안단테부터 갑자기 귀가 확 열리고 음악이 가슴속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좋았다. 샤콘느는 유연함에 강렬함마저 추가되어&nbsp;나무랄 데 없는 대미를 장식하였다.&nbsp;<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1002/pimg_63926530912921964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5022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남원고사 (작자미상/이윤석,최기숙/서해문집) - [남원고사 - 19세기 베스트셀러, 서울의 춘향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31045</link><pubDate>Tue, 22 Sep 2026 16:1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310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3484&TPaperId=175310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22/25/coveroff/897483348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4833484&TPaperId=175310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남원고사 - 19세기 베스트셀러, 서울의 춘향전</a><br/>이윤석.최기숙 지음 / 서해문집 / 2008년 06월<br/></td></tr></table><br/>경판본과 완판본이 &lt;춘향전&gt;의 대표적인 판본이라면, &lt;남원고사&gt;는 근래 들어 주목받는 이본이다. 다만 입소문에 비해 실제로 접하기는 쉽지 않은 판본이기도 하다. 이는 대중적으로 쉽게 구할 수 있는 번역본이 부재한 까닭이다. 현시점에 알라딘에서 ‘남원고사’로 검색해 보면 연구서를 제외하면 모두 세 종류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그마저도 서해문집 판은 품절로 사실상 절판이나 다름없다. 결국 설성경 번역본과 정길수 번역본만이 독자에게 접근 가능하다. 도서관에서 두 가지 번역본을 살펴보았는데,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한 게 아님을 단번에 알 수 있다. 두 책 모두 교주본으로 전문적 주석을 달고 있고, 원문과 번역문을 나란히 수록하여 전문 학술 도서에 가깝다.  &nbsp;  서해문집의 이윤석과 최기숙 번역본은 필요한 최소한의 주석과 해설을 곁들이고 &lt;남원고사&gt; 본래의 콘텐츠가 지닌 맛을 살리기 위해 깔끔한 번역문을 지향한다. 원문에의 충실성은 헤아릴 수 없지만 적어도 소설로서 가독성과 흥미성의 전달에는 성공하였다.  &nbsp;  &lt;남원고사&gt;는 주류 판본과 여러 가지 설정과 대목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먼저 춘향의 성씨는 성씨가 아니라 김씨다. 신분이 기생이라는 점은 경판본과 마찬가지다. ‘사랑가’ 대목이 첫날밤이 아니라 광한루의 첫 만남에서 등장하며, ‘십장가’도 실제 매를 맞기 직전에 불린다. 춘향 어미는 거지로 분장한 어사를 끝끝내 박대하고, 춘향이가 풀려난 게 변 사또가 아니라 어사의 수청을 허락한 덕분으로 알고 기뻐한다. 어사가 춘향을 풀어주는 장면에서도 춘향을 구박한 기생들에게 칼머리를 이로 물어뜯어 벗기라는 무자비한 명령을 내리는데 아무리 봐도 어사로서 공정한 처분이라기보다는 사적 복수에 치우친 것으로 보인다.   &nbsp;  춘향의 성격도 완판본과 유사하지만 한층 강렬하게 그려진다. 불망기를 달라고 똑 부러지게 요구한다든지, 이별 통보에 미친 듯이 분노를 표출하다가 전별주를 건네는 모습, 자신을 잡으러 오는 패두들을 능수능란하게 접대하는 대목에서 다소곳한 요조숙녀와는 거리가 멀다. 본문에서도 춘향의 성품을 이렇게 기술한다.  &nbsp;  춘향이 본디 사재고 도도하여 매몰차고 꼿꼿한지라 관속들이 꺼리고 싫어하더니 (P.193)  &nbsp;  주류 판본의 &lt;춘향전&gt;을 읽으면서 항상 아쉽게 느꼈던 점은 변 사또가 암행어사에게 파직당한 이유가 석연치 않다는 점이다. 수청을 거부한 춘향을 감옥에 가둔 이유만으로는 애매하다. 일단 춘향의 신분을 기생으로 간주한다면, 수령은 산하 기생에게 관례상 수청을 요구할 수 있다. 춘향과 이 도령의 관계는 흔하디 흔한 일시적 만남에 불과하다. 물론 춘향은 대속을 해서 기생의 신분을 면했다고 하지만, 이게 실제로 법적으로 인정되는지 여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그렇다면 변 사또는 불법 행위를 저지른 셈이니 처벌은 당연하다. 한편 자신의 요구가 확실한 불법 행위임을 알고 있는데도 변 사또가 수청을 강요했을까 반문할 수 있다.   &nbsp;  &lt;남원고사&gt;는 이러한 미비점을 상당 부분 보완하였다. 변 사또가 파직당한 결정적 죄목은 탐관오리라서이다. 어사가 된 이 도령은 전라도를 순행하면서 선비와 농민 등 신분을 물론하고 수령의 정사에 대해 탐문한다. 이 과정에서 남원 부사가 탐학한 인물임을 파악하였고, 생일잔치를 위해 백성을 가렴주구 하는 걸 목도하였으며, 잔칫상에서 변 사또 자신의 목소리로 이를 자랑하도록 조정한다. 어사의 유명한 시구는 이러한 빌드업을 통해 정당성을 인정받는다.  &nbsp;  나는 묘리 있는 일이 있소. 심심한 때면 이방 놈과 세금을 내지 않으려고 일부러 등록하지 않은 토지를 뒤져내어 단둘이서 똑 반으로 나누니, 그런 재미가 또 있는가? (P.369)  &nbsp;  &lt;남원고사&gt;는 완판본에 비해서도 분량이 매우 많다. 번역문만 수록해도 400면에 이르는 본격 장편소설이다. 세책본이라는 특성상 분량 늘리기를 의도함과 아울러, 춘향 이야기라는 줄기에 다양한 이야기를 부가하여 다채로운 읽을거리를 추구했을 것으로 본다. 소설의 첫대목은 화창한 봄날을 예찬하며 시작하는 데 풍광 묘사에 그치지 않고 역사와 문학의 전적을 이것저것 끌어와 길게 인용한다. 이어지는 칠언절구의 나열, 이 도령의 화려한 옷차림, 광한루로 놀러 갈 때 남원 지방의 자연과 만물에 대한 온갖 묘사를 열거하는 등 분량을 늘리는 데 주력한다.  &nbsp;  춘향과 이 도령의 이별 장면에서 정철의 &lt;사미인곡&gt; 전문을 수록하며, 압권은 옥에 갇힌 춘향을 위로한답시고 남원 왈짜들이 와서 벌이는 갖가지 행태다. 이들은 노래를 부르고, 소설을 읽으며, 노름판을 벌이고 놀이를 하다가 끝내 술주정과 싸움으로 이어지는 희화적 장면을 연출하는데, 제법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lt;춘면곡&gt;, &lt;처사가&gt;, &lt;어부사&gt; 거의 전문을 인용하고, &lt;삼국지연의&gt;, &lt;수호지&gt;, &lt;서유기&gt;의 한 대목을 삽입하는 등 독자가 흥미롭게 여길 만하다고 생각되면 차입을 망설이지 않는다.  &nbsp;  &lt;남원고사&gt;의 독자층이 누구일지 생각해 본다. 작중에 상당한 고전과 한문 지식이 필요한 문구와 대목이 많으므로 서민은 읽어도 재미를 느끼기 어렵다. 양반층과 학문을 깨우친 중인 및 부유한 평민층이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게다가 흥미성을 전제로 하는 소설이므로 재미와 해학 요소도 아끼지 않는다. 양반층은 서민의 풍속과 세태를 알 수 있으며, 중인과 평민층은 지배층을 향한 기롱과 본인 계층의 실상을 해학적으로 접할 수 있으니 모두가 좋아할 만한 요소가 아니겠는가.   &nbsp;  이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당대의 풍습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이 도령이 방문했을 때 춘향이 갖가지 담배를 내놓는 대목에서 당시 담배가 일대 유행이었음을 알게 되는 점이 전형적이다. 남원 왈짜의 행태를 통해서는 당대 인기 소설과 노름, 놀이 문화의 일면을 헤아릴 수 있다. 아울러 해학성도 새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방자의 인물됨 묘사, 이별 장면에서 이 도령과 마부의 장난, 변 사또의 말 상대인 이 낭청의 이도 저도 아닌 애매모호한 말투가 유달리 기억에 남는다.  &nbsp;  &lt;남원고사&gt;라고 이본의 이름을 달리했는지가 이 모든 것과 연관되어 있다. 이본의 작자 또는 편자는 널리 알려진 경판본 춘향전의 줄거리를 뼈대로 삼지만, 이 도령과 춘향의 사랑 이야기로만 작품을 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식자층과 서민층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덧붙이는 데 주력한다. 그리고 강압적인 지배층과 무력한 서민층의 대결에서 사필귀정의 해방과 쾌감을 느끼도록 하는 데 관심을 집중한다. 이것이 단지 소설 속 꿈에 그치지 않고 현실에서도 실현될 수 있기를 소망하는 심정 또한 품고 있었으리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22/25/cover150/897483348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22250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광막한 사르가소 바다 (진 리스/윤정길/펭귄클래식코리아) - [광막한 사르가소 바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29345</link><pubDate>Mon, 21 Sep 2026 18: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2934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82101&TPaperId=1752934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9/21/coveroff/89010821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01082101&TPaperId=1752934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광막한 사르가소 바다</a><br/>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 / 2008년 05월<br/></td></tr></table><br/>&lt;제인 에어&gt;를 읽은 후 자연스레 진 리스의 작품을 펼쳐보지 않을 수 없었다.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 간에 맺어짐의 장벽이 되었던 미친 여인 버사. 작가는 그녀가 단지 말 없는 들러리가 아닌 주체적 인간으로서 정당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숨결을 불어 넣는다. 작가는 왜 이러한 시도를 했을까. 먼저 도미니카 출신인 진 리스 자신과 버사 간 지역적, 민족적 동질성을 느껴서이리라. 영국 남자와 결혼한 크리올 여인이 영국 본토에 와서 처한 곤경과 부당한 대우에 분개한 연유도 있다. 경제적 자유의 박탈과 인종적, 문화적 갈등에 따른 광인 취급.  &nbsp;  그렇다고 이 소설을 무조건 &lt;제인 에어&gt;와 연계해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선배 작가의 명작은 오로지 이 작품을 탄생시킨 계기였을 뿐 그녀가 그리는 소설 속 인물과 상황은 완전히 독자적이다. 그렇게 볼 때 사르가소 바다를 경계로 대서양 양 끝에 자리한 서인도 제도와 유럽 간 인종적, 문화적, 심리적, 제도적 격차의 광막함을 비로소 실감할 수 있다.  &nbsp;  그러니 당신들과 이곳 유색인종들 사이에서 나는 내가 누구며, 어디가 내 나라인지, 내가 어디에 속하는지, 내가 왜 태어난 것인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P.149)  &nbsp;  앙투아네트와 그녀의 어머니는 크리올이다. 서인도 제도의 식민지에서 태어난 유럽인의 후손. 그들은 농장주로서 식민지 지배층이지만, 노예해방으로 일거에 전락하고 만다. 백인이지만 본토의 백인과는 동급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백인. 식민지 흑인과 본토 백인 양쪽에서 배척당하는 어중간한 지위. 유럽인이지만 유럽 문화와 정서보다는 식민지 문화와 정서에 가까움과 편안함을 느끼는 사람들. 그것이 크리올이다. 흑인들은 그들을 ‘흰 바퀴벌레’라고 불렀다.  &nbsp;  이 작품은 크게 두 가지의 개인적, 사회적 갈등을 다룬다. 우선 식민지 흑인과 지배층 유럽 백인 간의 식민주의와 제국주의 갈등이다.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신분적, 경제적 위기를 타개하고자 메이슨 씨와 재혼한다. 유럽에서 건너온 신흥 백인 지주인 메이슨 씨는 식민지의 어둡고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알지 못한다. 그네들의 백인 지배층에 대한 은폐된 혐오의 깊이와 세기를 알지 못한 채 아내의 잇따른 경고도 외면하고 순진하고 무심한 언행으로 일관하다 일순간에 저택은 불타버리고 앙투아네트의 남동생은 죽음을 맞이한다. 그리고 앙투아네트의 어머니는 광기에 사로잡힌다.  &nbsp;  다음으로 앙투아네트와, 그녀와 결혼하기 위해 영국에서 건너온 남성 간의 인종적 갈등 그리고 남성우월주의를 다룬다. 양부로부터 막대한 유산을 물려받은 앙투아네트는 가족에 의해 영국 남성과 결혼한다. 이는 상호 간 이해관계가 일치해서인데, 크리올로서는 본토 백인 남성과 혼인으로 인종적 정통성을 보장받고 싶어 했으며, 본토 백인 남성은 신부의 막대한 지참금을 통해 무일푼 처지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실질적 욕망을 지녔다. 여기에 당대 영국 법령은 결혼한 여성의 독립적 법적 권리를 인정하지 않기에 남편의 재산권 독점이 가능하였다.   &nbsp;  나는 내가 하기로 되어 있는 역할을 연기했을 뿐이다. 그녀와 나는 전혀 아무 상관없는 관계이다. 나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다 나의 의지와 노력에 의해 행해진 것이다. (P.114)  &nbsp;  여기까지는 당대 현실이 그러하니까 어쩔 수 없다고 치자. 무슨 연유가 되었든 결혼한 두 사람이 무탈하게 잘 살아가면 모순과 불합리가 그나마 상쇄될 수 있으니. 문제는 결혼한 본토 백인 남성(이 작품에서는 로체스터라는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다)이 신부에 대한 애정이 전혀 없다는 점이다. 서인도 제도에서 자라난 크리올 문화에 대한 존중과 이해의 노력이 전혀 부재하다면 애정이 차차 생길 수 있다고 기대하기도 난망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핵심 포인트다. 남자는 돈을 바라보고 생면부지의 크리올 여성과 결혼했다는 자괴감과, 유럽인이 아닌 타 인종과 결혼했다는 불편감을 시종일관 되새김질한다. 다시 말하면 이 작품 속 앙투아네트의 남편은 다문화에 대한 인식과 이를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nbsp;  내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이 내게 적개심을 품은 것 같았다. [......] 내가 이 장소에 처음 발을 들여놓는 순간부터 나는 그것을 느꼈다. 나를 편안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P.211)  &nbsp;  이것은 그가 앙투아네트를 버사라고 호칭하는 데서 두드러진다.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저 자기가 그렇게 아내를 부르고 싶어서 부를 뿐이다. 이를 애칭이라고 하기도 어려운 게, 애칭은 원래 이름을 귀엽게 표현하는 것이지 이름을 완전히 바꾸는 게 아니다. 이름이 개인의 정체성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음을 염두에 둔다면, 남편의 행위는 아내를 대등한 인격체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명시적 폭력에 해당한다. 더구나 옆방에 아내가 있음에도 일부러 하녀 아멜리와 관계를 맺은 것은 공개적 수치와 모욕주기에 불과하다. 아내를 하녀와 동급으로 취급한다는.   &nbsp;  버사는 내 이름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이름으로 나를 부르는 것은 나를 내가 아닌 다른 사람으로 만들려는 거지요? 그것도 오베아예요. (P.208)  &nbsp;  샬럿 브론테는 그녀의 소설 속에서 똑 부러진 주체적 여성상을 창조하였다. 제인은 로체스터 씨의 일방적 시혜를 거부하고 대등한 관계에서 결합한다. 이처럼 여성주의적 입장을 명료하게 내세운 작가가 버사를 그렇게 괴물 같은 미치광이로 묘사하였다는 점은 의외다. 작가에게 버사는 자신이 주목하고 관심을 둘 여성이 아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면, 그녀 역시 시대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보여준다. 유럽 중심의 제국주의적 시각 말이다. 버사는 식민지의 크리올이기에 토착 흑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는 당대의 어쩌면 보편적 인식을 작가는 무의식적으로 받아들인 셈이다.  &nbsp;  그녀가 아무리 영국 순수 혈통의 크리올이라지만, 크리올을 영국 사람이나 유럽 사람이라고 할 수는 없지. (P.101)  &nbsp;  이 작품에서 광기는 서인도 제도의 크리올인 앙투아네트 혈연 속에 흐르는 유전성으로 설명한다. 본토 유럽 백인이 아니고 서인도 제도의 야만성에 오염된 존재로서 말이다. 작중에 로체스터는 끊임없이 앙투아네트를 불인정하고 의심하며 부정적으로 인식한다. 그가 그녀에게 갖는 건 오로지 육체적 욕망뿐이다. 오죽하면 필요한 재산을 다 챙겼으니 앙투아네트가 자유로이 살아갈 수 있도록 놓아주라는 유모 크리스토핀의 정당한 요청마저 단칼에 거절한다. 그에게 앙투아네트는 미쳤건 아니건 간에 이미 자신의 소유물이기에 절대로 남에게 양도할 수 없는 존재다. 차라리 망가뜨릴지언정 말이다. 이쯤에서 진짜 광인이 누구인지 헷갈린다.  &nbsp;  그녀는 미쳤지만 내 것이야, 내 것이야. 신들도, 악마들도, 운명도 다 관심 없다. 그녀가 웃건 울건 혹 두 가지를 다 하건, 그건 단지 나만을 위한 것이어야 해. (P.233)  &nbsp;  이제 그녀는 단지 유령이다. 구름으로 가려진 잿빛 하늘 아래서 그녀는 단지 유령이야. 그녀에게 남은 건 아무것도 없다. 절망을 빼곤. (P.239)  &nbsp;  &lt;제인 에어&gt;의 버사와 달리 이 작품 속 앙투아네트는 무너지지 않는다. 아니, 원작의 버사가 정말로 광녀였는지는 오로지 로체스터의 진술에 의존할 뿐이다. 낯선 이국땅의 저택에 감금된 그녀의 상황에 대해 작가는 원작과는 달리 더 이상 말하지 않고 앙투아네트의 판단과 독자의 상상에 맡긴다. 로체스터의 바람과는 달리 그녀는 자신에 대한 인식을 명료하게 가져간다. 자신이 누구이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해야만 하는지.   &nbsp;  진 리스는 소설 속 로체스터가 아내 버사에게 행한 은폐된 사고와 행위의 기저 원인을 드러냄으로써 제국주의적 백인 우월주의와 가부장적 남성우월주의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리고 이러한 편향된 이데올로기가 결국 제인 에어의 창조자인 여성 작가 샬럿 브론테마저 당연한 것으로서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한 당대의 현실 인식과 맞닿아 있음을 나아가 보여준다. 종국적으로는 이것이 19세기 당대에 국한한 과거의 유물로 그치지 않고, 작가 당시의 20세기에도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현상임을 유명한 고전에 빗대어 주장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9/21/cover150/89010821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9218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94회 아트엠 콘서트 - 유다윤 바이올린 리사이틀 (2026.9.17)</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25351</link><pubDate>Sat, 19 Sep 2026 11: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25351</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94회 아트엠콘서트 - 유다윤 바이올린 리사이틀일시 : 2026년 9월 17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유다윤 (바이올린), 유성호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바르토크, 랩소디 1번 Sz.86&nbsp; - 카푸스틴, 바이올린 소나타 Op.70&nbsp; -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7번 C단조 Op.30, No.2<br>* 세줄평세 곡 모두 개성이 강하고 저마다의 매력을 발산한다. 랩소디의 진한 향토성, 카푸스틴의 현대적 재즈 스타일의 자유분방함이 매우 인상적이다. 잘 듣기 어려운 곡이므로 잔향이 더욱 깊다. 베토벤 곡은 간만에 들으니 새삼스럽게 역시 좋다는 생각뿐이다.&nbsp;젊은 연주자인데, 진지함과 MZ다움을 느낄 수 있다.&nbsp;<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919/pimg_639254137753896192.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2535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루친데 (프리드리히 슐레겔/이영기/문학동네) - [루친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10006</link><pubDate>Fri, 11 Sep 2026 18:5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1000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046&TPaperId=1751000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92/52/coveroff/895467404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4674046&TPaperId=1751000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루친데</a><br/>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이영기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08월<br/></td></tr></table><br/>요즘 프리드리히 슐레겔의 늪에 빠져 있다. 처음 박상화 번역본 &lt;루친데&gt;를 읽었는데, 무슨 내용인지 도대체 이해되지 않는 당혹스러움에 마주쳤다. 혹시 번역 이슈인가 싶어 이영기 번역본을 추가로 읽었다. 처음보다는 좀 낫지만 여전히 개운한 느낌은 없었다. 다만 작가가 무엇을 보여주고자 하는지 작품 해설을 통해 그나마 어렴풋이 다가갈 수 있었다.   &nbsp;  &lt;루친데&gt; 이해를 위해서는 아무래도 슐레겔의 문학 이론에 대한 기초 지식이 필요할 것 같아 &lt;그리스 시문학 연구에 관하여&gt;(박현용 번역본)를 읽었는데 꾸역꾸역 버티다가 3장에 들어가서 완전히 손을 놓아버렸다. 역시 번역 비교를 위해 다시금 이병창 번역본(&lt;그리스문학 연구&gt;)을 펼쳐 든 상황이다. 이마저도 요령부득이라면 적당한 선에서 그만둘 수밖에 없으리라. 가볍게 시작했다가 된통 당하는 느낌이다.   &nbsp;  그런 점에서 &lt;루친데&gt;는 ‘소설 이론에 관한 소설’인 것이다. &lt;루친데&gt;가 갖는 이러한 메타소설적 혹은 초월적 특징은 작가 슐레겔의 자의식적 성찰이 소설 내에서, 그리고 소설을 통해서 작용하면서 작품의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P.184-185)  &nbsp;  슐레겔은 독일 낭만주의 문학사조의 선구자다. &lt;루친데&gt;가 여느 소설과 다른 근본적 이유는 그의 문학관을 그대로 소설로 형상화해서다. 순전한 예술적 동기에 착안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일종의 경향 문학으로 간주할 수 있다. 즉 이 작품에서 문학적 감동을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낭만주의 문학 이론이 작품 속에서 얼마나 어떤 방식으로 충실하게 투영되었는지가 작품 이해의 핵심이다. 참고로 &lt;루친데&gt;는 1권만 집필된 미완성작이다.   &nbsp;  13편의 텍스트들 또한 편지, 환상, 성격 묘사, 알레고리, 목가, 대화, 성찰 등 단편적 성격의 다양한 장르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성은 “인위적으로 잘 정돈된 혼란, 모순들이 만들어내는 매혹적 대칭‘이라는 아라베스크적 특징에 정확히 부합한다. (P.185)  &nbsp;  이 작품은 머리말을 제외하고 총 13편의 텍스트 내지 장으로 이루어졌는데, 크게 남성 율리우스와 여성 루친데 간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각 편은 형식 면에서 자유롭고 독자적이며 율리우스가 루친데를 만나기 전까지의 삶과 루친데를 만나서 사랑을 교감하는 장면으로 이어진다. 각 편은 시간 순서와 무관하게 재배열되어 있고 ‘남성성의 수업시대’ 만이 서사적 성격을 띠고 있어 독자에게 상대적으로 친숙하게 다가온다.   &nbsp;  해설에 따르면 슐레겔은 소설을 서사적 산문 텍스트가 아니라 다양한 장르의 혼합물로 규정한다. 그가 생각하는 문학은 포에지로서 운문과 시적 정신을 지닌 산문 일체를 포괄한다. 이 작품에 다양한 장르 형식이 사용되는 것은 이러한 의도의 반영이라고 하겠다. ‘율리우스가 루친데에게’에서 이러한 다양성과 혼돈을 표방한다. 작가도 독자들의 당혹성을 예상했는지 ‘어린 빌헬미네의 특성’에서 어머니가 어린아이를 바라보는 마음으로 참아달라고 특별히 당부한다.  &nbsp;  슐레겔의 이 작품은 당대 사회적 가치관과 배치되는 주장을 담는다. 감정의 자유로운 발산. ‘몰염치에 관한 알레고리’에서 인간의 특성을 몇몇 여인들의 모습으로 알레고리화한다. 언뜻 보아서 아름다운 여인들이 자세히 보니 천박함이 드러나고, 오히려 몰염치한 여인이 솔직하고 자연스러운 여성성을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인도자 위트는 전자를 관습적인 견해로 가짜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nbsp;  작가는 ‘무위에 대한 목가’에서 무위와 게으름을 예찬한다. 온화한 고요함 속에서 내적 성찰이 가능하기에, 이에 반대되는 성실과 부지런함은 거부한다. 헤라클레스를 찬미하고 프로메테우스를 폄훼한다. 후자 때문에 인간은 세속적 행위에 매진하게 됨으로써 낭만의 정신을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슐레겔에게 있어 진정한 낭만성은 수동성에서만 가능하기에 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식물성에까지 다다른다.  &nbsp;  성실함과 유용함은 인간에게 천국으로의 귀환을 허용하지 않는, 불타는 검을 가진 죽음의 천사들이기 때문이다. 침착하고 온화하게, 진정한 수동성의 성스러운 고요 속에서만 오로지 자신의 전 자아를 기억할 수 있으며 세상과 삶을 관조할 수 있다. (P.53)  &nbsp;  작가는 낭만성의 본질은 사랑에 있다고 본다. 남성은 천성적으로 사랑을 잘 알지 못한 반면에 여성은 사랑을 항상 마음속에 품고 있다. 따라서 여성성을 사랑하고 숭배한다. 율리우스가 삶의 방황을 거듭하다가 루친데를 만남으로써 미숙함과 결핍에서 벗어나 성숙한 삶으로 진입하는 과정이 ‘남성성의 수업시대’에 잘 드러나 있다. ‘변모’에서 율리우스의 변모를 확인할 수 있고, ‘신의와 장난’에서 사랑의 가치를 역설한다. 그리고 모성을 통해 여성성이 완성의 단계에 도달하게 됨을 ‘두 통의 편지’에서 설파한다.   &nbsp;  후반부의 ‘성찰’, ‘율리우스가 안토니오에게’, ‘동경과 평온’, ‘환상의 희롱’은 모호하여 잘 와닿지 않는 대목이다. ‘성찰’은 사유, 성찰을, ‘율리우스가 안토니오에게’는 우정을 다루는 듯한데 무엇을 말하고자 함일까. ‘동경과 평온’은 낮의 눈부심은 헛된 동경이며 밤의 평온이 참됨을 알려주려는 것인지. ‘환상의 희롱’은 공허한 오성보다는 순진한 환상의 가치를 상찬하는 것으로 이해되는데 자신하기 어렵다.  &nbsp;  이 소설을 슐레겔의 삶에 빗대어 그와 도로테아 간 사랑의 여정과 현상 이야기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을 낭만주의의 완결로 이상화하여 포장한다는 것인데, 부분적으로는 그런 면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논거가 미약한 느낌이다.  &nbsp;  사실 문학사에서 슐레겔은 작가로서가 아니라 문학 이론가로서 중요한 위치를 지닌다. 형 아우구스트와 그가 주창하는 낭만주의 이론에 공감하고 문학잡지에 동참하는 여러 작가에 의해 초기 낭만주의 문학은 화려하게 꽃을 피웠다. 예전에 읽었던 노발리스의 &lt;푸른 꽃&gt;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슐레겔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새삼 떠오른다. 노발리스는 슐레겔의 절친이자 그의 사상에 열렬한 동조자였다.  &nbsp;  &lt;루친데&gt;에 담겨 있는 사랑, 섹슈얼리티, 여성(성)과 남성(성)의 성별 관계, 결혼 제도에 관한 언술은 이 소설이 일으킨 충격적인 사회적 파장을 증명하기에 충분하다. (P.195)&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4992/52/cover150/895467404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4992525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싱싱한 밀 이삭처럼 (빈센트 반 고흐/황종민/열림원) - [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507801</link><pubDate>Thu, 10 Sep 2026 18:4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5078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035070&TPaperId=175078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3/83/coveroff/k532035070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532035070&TPaperId=175078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싱싱한 밀 이삭처럼 - 고흐, 살다 그리다 쓰다</a><br/>빈센트 반 고흐 지음, 황종민 옮김 / 열림원 / 2024년 11월<br/></td></tr></table><br/>빈센트 반 고흐는 유명한 화가다. 그의 이름을 어지간한 사람은 누구나 들어봤으리라. 화가이므로 그의 그림에 대한 세간의 관심과 인기는 매우 크지만, 정작 인간 고흐는 잘 알지 못한다. 스스로 귀를 자르고 정신병원에 갇혔다는 정도.  &nbsp;  이 책은 고흐 자신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해준다. 고흐는 평생 동안 동생 테오와 서신을 교환하였다. 거기에서 우리는 화가이자 생활인 고흐의 인간다운 면모를 가감 없이 볼 수 있다. 이 책은 짤막한 문장과 단락을 서신집에서 발췌하였다. 서신을 온전히 수록한 게 아니고, 어떤 서사적 맥락을 갖춘 게 아니므로 고흐가 이런 생각을 했구나 정도를 체감하는 한계를 지닌다. 그러한 가운데 고흐가 무엇을 중시하였고 어떤 점에 집중하였고 무슨 마음을 지녔는지를 단편적이나마 접할 수 있음은 의미를 가진다.  &nbsp;  내가 자연에서 창조한 모든 작품은 불에서 꺼낸 밤처럼 고통을 견디고 완성한 것이다. (P.188)  &nbsp;  고흐는 살아생전에 화가로서 제대로 된 인정을 받지 못하였다. 세인의 정당한 평가와 인정이 없는 가운데, 동생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무명 화가로서 그가 자신감을 지닐 수 있었을까. 자신이 정말 예술가의 재능과 역량을 가졌는지 확신할 수 있을까. 그는 수없이 자문하고 끊임없이 자답한다. 그래서일까 전편을 통틀어 가장 많이 등장하는 문장은 무슨 일이 있더라도 화가의 길을 끝까지 가겠다는 반복적 다짐이다. 그것이 너무 잦아 오히려 연민을 느낄 정도로 말이다.  &nbsp;  내 마음속에 반드시 북돋아야 하는 힘이 들끓는다. 꺼뜨리지 말고 되살려야 하는 불길이 타오른다. 그 불길이 어떠한 결과를 초래할지 모르지만, 설령 암울한 결과를 불러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 (P.13)  &nbsp;  나아가 현세에서는 세속적 성공을 거두지 못할 것이라는 자포자기적 심정도 내비친다. 그래야 실망이라도 덜 할 것이라는 자기 위안 아니겠는가.  &nbsp;  인생은 씨를 맺게 하는 시기일 뿐이며 현세는 열매를 거두는 곳이 아님을 점점 더 뚜렷이 깨닫기 시작한다. (P.73)  &nbsp;  고흐의 화풍은 독특하여 언뜻 보아도 그의 그림임을 금방 알아차리게 된다. 우리는 인상파로 그를 통칭하지만, 정작 고흐 자신이 화가로서 어디에 주안점을 두었는지 알지 못한다. 그의 독특한 화풍은 어떤 계기로 나왔으며 무엇을 표현하고자 함인가. 이 글의 몇 단락을 통해 어렴풋이나마 색상과 작법에 관한 그의 생각을 헤아려 볼 수 있다.  &nbsp;  나는 눈에 보이는 것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개성을 강렬히 표현하기 위해 내 멋대로 색상을 구사한다. (P.122)  &nbsp;  화가 아닌 인간 고흐는 어떤 모습일까. 수입이 없는 그는 동생의 경제적 원조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가운데 그림과 생활 모두를 감당해야 했기에 항상 가난에 시달렸다. 마음의 풍요로움으로 자위하지만 궁핍의 그림자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하나, 성인 남성으로서 갖는 성적 외로움도 무시하지 못한다. 그는 경력 초기에 모두에게 지탄 받는 가정 비스무리한 걸 잠시 영위했을 뿐 이후로는 독신의 삶을 고수하였다. 그것이 자의였을까. 가족과 여성을 향한 그리움과 고독에 대한 사무침이 곳곳에서 배어난다.  &nbsp;  나는 사랑 없이 살 수도 없고 살기도 싫고 살아서도 안 될 것이다. 나는 인간이다. 열정이 있는 인간이다. 나는 여자가 있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얼어 죽거나 돌로 변할 것이다. (P.223)  &nbsp;  가난과 고독 속에서, 화가로서 반신반의의 한 가닥 믿음만을 지닌 채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날마다 오직 그림을 그리는 일뿐이다. 그에게 그림은 삶의 목적이자 수단이며, 자체로서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원동력이다. 그가 화가를 구두장이에게 비유한 건 그만큼 자신이 노동자처럼 그림을 그린다는 것을 뜻함과 동시에 그 외에 달리 할 일이 없음의 방증이리라.  &nbsp;  살아 있음이 느껴지는 유일한 순간은 온 힘을 다해 일할 때뿐이다. (P.41)  &nbsp;  곳곳에 그의 대표작(비록 판형의 한계로 작은 크기지만)도 수록하고 있어 독서에 도움을 주고 있으며, 게다가 읽기 어려운 문장도 아니다. 이상하게도 책장을 휙휙 넘기기가 여의치 않다. 마음 한구석에서 왠지 짠하고 답답한 상념이 계속 독서를 방해한다.  &nbsp;  부록 &lt;고흐의 삶에 대한 짧은 글&gt;은 독자가 고흐의 삶을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세심한 마음 씀씀이다. 인간 고흐를 가까이 대하고 싶지만, 본격적인 서간집은 부담스럽다면 이 책을 통해 그에게 다가가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5303/83/cover150/k532035070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5303839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라셀라스 (새뮤얼 존슨/이인규/민음사) - [라셀라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83797</link><pubDate>Mon, 31 Aug 2026 19: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8379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269&TPaperId=1748379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14/coveroff/8937461269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269&TPaperId=1748379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라셀라스</a><br/>새뮤얼 존슨 지음, 이인규 옮김 / 민음사 / 2005년 10월<br/></td></tr></table><br/>&lt;제인 에어&gt;를 읽을 때 중간에 &lt;라셀라스&gt;가 소개되었다. 이 작품의 존재는 알고 있었지만,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는데, &lt;제인 에어&gt;에서 굳이 언급될 정도면 나름의 가치가 있을 거라는 판단이 들어서 찾아보게 되었다.  &nbsp;  이 작품은 한마디로 ‘철학적 허구’ 또는 ‘철학적 우화’이다. 우리가 소설 작품에서 기대하는 인물의 강렬한 개성과 인물 간의 갈등과 대립, 외부 환경과의 충돌 등의 요소는 여기에서 나타나지 않는다. 인물의 사고와 대화, 행동을 기술하는 작가의 태도는 차분하고 느긋하며, 관점은 지극히 관조적이다. 이 작품을 소설로 분류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지만, 소설이 아니라면 어떤 장르로 간주할 수 있을지 애매하다. 생텍쥐페리의 &lt;어린 왕자&gt;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nbsp;  왕자가 대답하였다. “나에게 아무것도 부족한 게 없다는 것, 아니 나에게 부족한 게 뭔지 모른다는 것, 바로 그것이 내 불만의 원인입니다.” (P.21)  &nbsp;  라셀라스 왕자가 행복의 골짜기에서 탈출하고자 하는 심리는 싯다르타 왕자와 다르지 않다. 자기의 풍요로움에 대비되는 민중의 고통을 구제하고자 하는 해법을 찾기 위해서가 후자라면, 전자는 자신이 누리는 행복이 과연 최고, 최선인지 확인하고 싶다는 욕구를 갖는다. 인간은 상대적 비교를 통해서 자신의 현재를 파악하는 존재다. 불행이 있어야 행복의 가치를 인식할 수 있는 건 양지와 음지, 빛과 어둠, 선과 악처럼 우주의 보편적 원리에 해당한다. 절대적 행복은 오직 깨우친 자에게만 해당할 뿐, 속인들은 이를 알기 어렵다.  &nbsp;  우리네는 왕자의 번민에 쉽사리 공감하기 어렵다. 그건 우리가 완전한 행복을 누린 경험이 전혀 없어서다. 세상 아무것도 모르는 아기 시절에나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때는 올바른 이성을 지니고 있지 않은 처지다. 다만 외관상 더없는 지상천국으로 묘사되는 행복의 골짜기로 들어온 사람들의 내심은 모두 이를 후회하고 있다는 시인 이믈락의 발언은 현실을 드러낸다.  &nbsp;  “진실로 여쭙건대 제가 알기로 왕자님을 모시고 있는 자들 가운데 이 은둔의 처소에 들어온 날을 한탄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P.70-71)  &nbsp;  왕자와 공주, 그리고 이믈락 일행이 골짜기를 벗어나 세상을 돌아다니는데, 주로 머물게 된 곳은 이집트다. 이미 서구 문명이 우위를 점하였음을 인정하고 있는 가운데 아비시니아에서 그나마 가까운 문명의 중심지이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왕자 일행은 다양한 유형과 계층, 직업의 사람을 만나고 그들과 어울리며 관찰함으로써 진정한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탐색한다.   &nbsp;  세상 사람들은 겉보기에 모두 행복하고 즐거워 보인다. 웃음 띤 가면을 벗기면 그 아래 슬픔과 고통, 거짓의 참모습이 드러나기에 위선의 껍데기를 꽁꽁 동여매고 한사코 움켜잡는다. 그것을 건드리는 행위는 일종의 역린(逆鱗)이기에 왕자는 젊은 친구들에게서 내쫓김을 당한다. 쾌활한 젊은이도, 부유한 상인도, 은자도, 철학자도, 모든 것을 겪은 노인도 결코 행복하지 않음을 알게 되고, 궁정의 왕좌나 일반 평민의 가정을 살펴보았지만 권력과 지위도 행복을 담보하지 못함을 발견한다.  &nbsp;  한편 피라미드를 방문하는 도중에 공주의 시녀를 아랍인 도둑에게 납치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유일한 벗인 시녀가 사라지자 공주는 식음을 전폐하고 은둔할 생각마저 품는다. 극도의 슬픔과 절망은 영원히 지속될 것 같음에도 시간의 경과가 마음을 풀어놓게 되는 현상은, 곧 행복의 반대편인 불행마저도 완전하고 절대적인 불행은 존재하지 않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nbsp;  작품의 후반부에 비중 있게 등장하는 인물은 천문학자다. 명망 있는 학자로 소문난 그를 이믈락이 방문하는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서 이성의 분별을 상실한 인물임을 발견한다. 물론 학자 자신은 어릴 때부터 학문에 몰입하여 평생을 바쳤기에 자신의 인식과 믿음을 철석같이 믿기에 자족적인 상태이다. 왕자 일행과 교분을 나누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비교와 판단의 새로운 근거가 생기기 전까지는. 이제야 비로소 그는 자신이 행복하지 않음을, 그리고 학문과 진리의 세계에 몰두한 자신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깨닫는다. 이쯤에서 왕자 일행과 그가 헤어져야 하지만, 착오를 제외하면 고매한 인품과 현명함을 지닌 노인이기에 함께 지낸다.  &nbsp;  진정한 행복을 찾는 왕자 일행의 여정 결말은 마지막 장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결론이 아무것도 없는 결론’이라는 제목이 의미심장하다. 자신들 소망이 현실에서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걸 깨달았기에 그들의 도전은 결과적으로 성과를 거두지 못하였다. 그렇다고 그들이 빈손인 건 아니다. 그들은 행복의 골짜기로 돌아가겠지만 이전처럼 무의미와 권태를 느끼지 않을 것이다. 헛된 욕망을 품고 방황하지도 않을 것이다. 중요한 건 마음의 상태이므로, 원효대사의 해골 물처럼.  &nbsp;  인간은 늙어 죽을 때까지 행복이란 이 세상에서 결코 찾을 수 없는 것임을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마다 다른 사람이 행복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으며 자기도 언젠가는 그런 행복을 얻으리라고 계속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요. (P.89)  &nbsp;  사실 작품의 지향과 결론은 심오하거나 색다르지 않다. 우리네가 역사를 거치면서 반복해서 들어왔던 진리가 바로 이것이다. 근대의 문학에서도 이와 비슷한 주제를 담은 작품이 있는데, &lt;파랑새&gt;가 여기에 해당한다. 파랑새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곳 우리 주변에 있다. 왕자와 공주는 이걸 비로소 깨달은 반면, 이믈락은 행복의 골짜기에 들어오기 전에 겪은 여러 세상사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작중에서 여러 번 그는 절대적인 행복의 부재를 설파한다.   &nbsp;  작가는 작품의 첫 문장에서 이미 결론을 암시한다. 여정이 시작되기에 앞서 결과가 예견된다면 무척이나 김빠지게 마련이지만, 왕자 일행의 세상 체험이 결론에 이르는 구도의 과정임을 다양한 사례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이 우화가 여늬 작품과 성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nbsp;  공상이 속삭이는 소리를 곧이곧대로 들으며 희망의 환영을 열심히 좇아가는 사람들이여, 나이를 먹으면 젊은 날의 기대가 이루어질 것이며 오늘 부족한 것이 내일이 되면 채워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이들이여, 아비시니아의 왕자 라셀라스에 관한 이야기에 한번 귀를 기울여보라. (P.9)]]></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14/cover150/8937461269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148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인상주의를 넘어 -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선 (2026.8.18)</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64368</link><pubDate>Fri, 21 Aug 2026 21: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64368</guid><description><![CDATA[<br>전시회명 : 인상주의를 넘어 - 디트로이트 미술관 걸작선기간 : 2026.5.28-8.23장소 : 세종문화회관 미술관<br>관람일자 : 2026년 8월 18일(화)<br>* 관람평전시회명과 같이 인상주의부터 이후 현대미술까지 회화사를 조망하고 있다. 미국 디트로이트 미술관 컬렉션에서 52점을 가져왔다고 하는데, 전시회 끝부분에 미술관 소개 영상을 상영하고 있다.&nbsp;<br>쿠르베의 '시냇가에서 잠든 목욕하는 여인'을 필두로, 마네, 르누아르, 드가,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귀에 익숙한 유명화가들의 작품이 줄줄이 이어진다. 전시회 포스터에 등장하는 르누아르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과 '앉아 있는 목욕하는 여인'은 역시 르누아르답다. 무용수만 그리는 줄 알았던 드가의 말탄 사람들과 여인의 초상 그림은 신선하다.&nbsp;고흐의 '오베르의 우아즈 강가'는 독무대로 꾸며져 있는데, 해당 미디어아트도 상영한다.<br>개인적으로 마티스와 피카소로부터 표현주의에 이르는 현대회화의 소개가 충실해서 유익하였다. 다리파와 청기사파, 독자적 활동 화가부터 기존에 생소했던 화가와 사조, 특징을 알게 되었다. 무엇보다 피카소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책 읽는 소녀', '앉아 있는 여인'. 더 이른 시기의 '안락의자에 앉은 여인'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다.&nbsp;파리파로 모딜리아니도 나온다. 목이 긴 초상화 '여인'가 전형적이다.<br>유럽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르네상스, 고전 중심의 그림이 아니라 현대회화를 선구적으로 컬렉션한 그들의 혜안이 부럽다.&nbsp;전시작품 수는 그렇게 많은 편은 아니지만,&nbsp;근현대 회회사를 일목요연하게 조망하고 충실한 설명을 덧붙여 이해를 돕는 기획도 좋게 평가하고 싶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21/pimg_63922941554266466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6436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춘향전 (작자미상/송성욱/민음사) - [춘향전]</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58704</link><pubDate>Tue, 18 Aug 2026 23: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587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05&TPaperId=174587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8/1/coveroff/s57293478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1005&TPaperId=174587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춘향전</a><br/>송성욱 풀어 옮김, 백범영 그림 / 민음사 / 2004년 04월<br/></td></tr></table><br/>&lt;춘향전&gt;은 어지간한 국민 모두라면 대강은 그 내용을 알고 있기에 새로울 것이 없다. 나 또한 판소리를 통해 여러 차례 감상했기에 더더욱 친숙하다. 분명 예전에 책으로도 읽었을 테지만 기억이 나지 않아 제대로 된 판본으로, 정식으로 읽는다. 이 책은 두 종류의 &lt;춘향전&gt;을 수록하고 있다. 하나는 경판본 &lt;춘향전&gt;이며, 다른 하나는 완판본 &lt;열녀춘향수절가&gt;다. 굳이 두 종류를 읽을 필요가 있을지 의심을 품을 수 있지만, 등장인물과 사건 및 구성 등 모든 면에서 차이를 보이며 춘향전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짐작하게 해주기에 비교 감상이 필요하다. 학자들은 경판본이 완판보다 앞선 판본이라고 하는데, 몇 줄만 읽어봐도 알아차릴 수 있다. 부록으로 &lt;열녀춘향수절가&gt; 영인본을 실었는데, 실효성에 의문을 표한다.  &nbsp;  &lt;춘향전&gt;의 배경은 판본에 따라 다르다. 경판본은 조선 인조, 완판본은 조선 숙종 시절을 시대 배경으로 한다. 판본이 다르다고 굳이 임금을 바꿀 이유가 있을까마는 아무래도 인조보다는 숙종이 그나마 낫다. 작중에 태평 시절이어서 백성들이 격양가를 부르는 설정이 있는데, 인조 때는 잇따른 내란과 두 차례의 호란으로 나라가 쑥밭이 된 시절이므로 이때를 태평성대라 칭하기에는 낯간지러웠는지 슬그머니 숙종으로 옮긴다.  &nbsp;  &lt;춘향전&gt;의 주인공은 누가 뭐래도 이몽룡과 성춘향이다. 완판본은 주인공의 이름을 분명히 제시한다. 반면 경판본은 분명 춘향의 이름은 밝히는데, 이몽룡은 없다. 단지 사또 자제 이 도령만 시종 등장할 뿐이다.   &nbsp;  무엇보다 차이는 춘향의 신분이다. 경판본에서 춘향은 기생이다. 관기에게 수절이 타당하지 않지만, 후에 대비정속하여 기생 신분에서 벗어났다고 한다. 그렇기에 신관 사또가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엄연한 불법이다. 완판본의 경우 춘향은 퇴기 월매와 양반 성 참판 사이의 딸이다. 춘향 어미는 기생이지만, 춘향이는 기생이 아님을 아전들이 반복하여 신관 사또에게 고한다. 기생이 아닌데도 수청을 강요하는 건 역시 불법이다.  &nbsp;  춘향 어미의 이름도 경판본에 없다. 그냥 춘향 어미일 뿐이다. 방자야 고유명사가 아니므로 논외로 하지만, 향단이의 존재는 경판본에 아예 없다. 완판본에 비로소 나타난다. 춘향이와 일대 대결을 벌이는 신관 사또의 이름, 변학도 역시 완판본에만 이름이 나온다. 경판본은 그냥 신관 사또다. 이처럼 경판본과 완판본은 배경과 인물 설정에서 여러 차이를 보인다. 다시 말하면 우리에게 친숙한 &lt;춘향전&gt;은 완판본을 기준 한 것이며, 판소리 또한 완판본에 가깝다.  &nbsp;  이몽룡과 성춘향은 소설 서두에 군자이자 요조숙녀 그리고 재자가인의 대명사로 설정한다. 하지만 경판본의 이 도령을 보면 군자라고 하기 어렵다. 자칭 타칭으로 이른 나이에 바람둥이임을 부인할 수 없다. 너무했다고 생각했는지 완판본에서는 아예 해당 대목을 빼버렸다.   &nbsp;  네 만일 간다면 우리 도련님이 바로 바람둥이라. (P.192, 방자)  &nbsp;  기생집에서 온갖 좋은 술에 취하고 절대가인과 연분 맺어 맑은 노래 묘한 춤으로 세월을 보냈다. (P.194, 이 도령)  &nbsp;  완판본에는 춘향이를 아예 선녀가 환생한 것으로 설정한다. 그만큼 신분과 인물, 성품이 빼어나다는 뜻이다. 하지만 경판본의 춘향이가 훨씬 의연하고 담대하다. 이 도령과 이별 대목이 판본에 따라 현격한 대조를 보인다. 경판본의 춘향이는 의연하고 담담한 게 이별을 감수한다. 완판본은 전혀 그렇지 않다. 무엇 때문에 자기를 버려두고 가냐고 이 도령을 향해 맹렬하게 퍼붓고 바닥에 주저앉아 신세 한탄을 그치지 않는다. 관점에 따라서는 더 인간적이고 극적인 인간성의 표현으로 상찬할 수 있겠지만, 서두의 칭찬이 머쓱할 따름이다.  &nbsp;  존귀하신 도련님께 그것은 어찌 재앙 아니리오? 사람 대접을 그리 마오. 사람을 대하는 법이 그런 법이 왜 있을꼬. 죽고지고 죽고지고. 애고 애고 설운지고. (P.77)  &nbsp;  &lt;춘향전&gt;은 민중에게서 비롯하였기에 내용에 해학적이거나 외설스러운 대목이 심심찮다. 경판본에서는 사랑가와 허 봉사의 꿈풀이 대목이 그러하다. 상대적으로 분량이 짧은 이유도 있다. 반면 완판본은 이 도령의 천자풀이, 사랑가, 농부가, 기생점고 대목이 대표적이며, 어사출도 대목도 경판본보다 훨씬 극적이다. 해학성 못지않게 비애를 불러일으키는 장면도 있다. 십장가, 옥중가, 이 도령이 춘향의 편지를 보는 장면 등이 여기에 속한다. 모두 다 판소리에서 심혈을 기울이는 대목이기도 하다.  &nbsp;  완판본의 두드러진 특징은 식자층을 독자층으로 의식한 점이다. 곳곳에 등장하는 한시가 그러하며, 유교적 가치와 인물의 언급이 그러하다. 무엇보다 춘향이가 감옥에서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을 방문하는 꿈을 꾼 게 상징적이다. 민중에서 출발한 춘향 이야기의 인기가 양반층에까지 이르렀기에 이에 걸맞은 내용 보강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된다.  &nbsp;  개인적으로 &lt;춘향전&gt;에서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설정은 춘향의 수절과 이 도령의 어사출도 간 시기상 간극이다. 이 도령 부친의 후임이 바로 변학도다. 변학도가 사또가 되어 가장 먼저 한 게 기생점고이고, 춘향이를 붙잡아 온 행동이다. 그렇다면 두 사람의 이별로부터 불과 몇 개월 후에 벌어진 사건인데, 그동안에 이 도령이 공부에 매진하고 과거에 급제하여 암행어사 임명되어 남원으로 내려와 춘향이를 구했다고 하면 너무나 촉박한 설정이 아닐 수 없다.   &nbsp;  하나 더 언급하자면, 변학도가 어사에게 파직당하는데 죄명이 분명치 않다는 점이다. 분명 춘향이를 옥에 가둔 건 잘못이지만, 그것 하나만으로 현직 부사를 파직한다는 건 월권이다. 지나가는 말로 변학도가 가렴주구를 하는 탐관오리의 전형이라고 하는데, 독자가 이를 심정적으로 수용하기에는 변학도의 악행 묘사가 거의 없다.  &nbsp;  경판본 &lt;춘향전&gt;을 문학의 시각에서 보면 빼어나다고 하기 어렵다. 완판본은 내용도 추가되고 훨씬 더 인간적인 면모의 인물과 장면이 있기에 재미는 쏠쏠하지만, 명창의 성음을 통해 오락성과 비극성이 극대화된다. 판소리계 소설의 특징이다. 문학으로서 &lt;춘향전&gt;은 그럼에도 우리 고전소설의 가장 인기 있는 작품임을 부인할 수 없으니, 재자가인의 결합 기대, 신분 상승의 욕구, 탐관오리의 응징, 걸쭉한 해학미 등 작품을 통해 주 독자인 민중층이 일종의 카타르시스와 보상을 구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8/1/cover150/s57293478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8013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스페인의 거장 고야展 (2026.8.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52015</link><pubDate>Sat, 15 Aug 2026 11: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52015</guid><description><![CDATA[<br>전시회명 : 스페인의 거장 고야展 - 이성이 잠들 때, 괴물이 깨어난다기간 : 2026.6.26-9.30장소 :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제7전시실<br>관람일자 : 2026년 8월 11일(화)<br>* 관람평논란이 많은 전시회다. 고야라는 화려한 명성의 화가에게 기대했던 수준의 전시 내용이 아니어서 큰 비판을 받았고, 지금은 각종 안내와 소개에도 회화전이 아니라 판화전과 미디어아트임을 비교적 명확히 밝히고 있다.<br>나로서는 처음부터 이 전시회의 핵심이 판화집 &lt;카프리초스&gt;(변덕)임을 알고 있었기에 즐겁게 관람할 수 있었다. 평일 늦은 오후 시간대여서 관람객도 많지 않아 더욱 좋았다. 한가람미술관 방향으로 직진하느라 제7전시실을 찾아 한참 헤맨 게 아쉬웠을 뿐.<br>개인적으로 고야 예술의 최고봉은 화려한 태피스트리 밑그림과 초상화가 아니라 판화집과 검은 그림처럼 인간과 사회의 어둡고 비이성적인 면을 날카롭고 풍자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lt;카프리초스&gt; 전작을 소상히 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무척 소중하였다. 작은 판형의 판화에 담긴 내용과 의미, 기법 등을 음미하며 작품소개 글을 꼼꼼히 읽어나갔다. 이미 책을 통해서 알고 있는 그림은 물론 처음 보는 판화를 통해 그의 예술에 더욱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계기였다.<br>도록 견본을 보니 기대보다 품질이 좋지 않았다. 내용은 충실하지만, 도록의 메인은 수록 작품의 인쇄와 용지 질이 아니겠는가. 도록을 구입하려던 계획을 접었다.<br><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5/pimg_63922390354484949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5201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세상 모든 것의 기원 (강인욱/흐름출판) - [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9480</link><pubDate>Thu, 13 Aug 2026 22:5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948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5977&TPaperId=1744948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42/5/coveroff/896596597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65965977&TPaperId=1744948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세상 모든 것의 기원 - 어디에도 없는 고고학 이야기</a><br/>강인욱 지음 / 흐름출판 / 2023년 10월<br/></td></tr></table><br/>고고학이라고 하면, 옛날 유적과 무덤을 파헤치는 우리네 일상적인 삶과는 무관한 분야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저자는 고고학이 인간의 삶과 매우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으며 상아탑에 안주하는 현학적인 학문 분과가 아님을 이 책을 통해 보여주고자 한다.   &nbsp;  1부 잔치 편에서 다루는 항목은 막걸리, 소주, 김치, 삼겹살, 소고기, 닭, 상어 고기, 해장국이다. 음식과 관련된 내용이다.   &nbsp;  소주가이 새삼 눈길을 끄는데, 최초의 증류식 소주는 거란에서 만들었고, 세계화에 성공한 것은 몽골제국 시기라고 한다. 추운 지역에서 몸에 열을 내려고 일개 유목민이 마시던 높은 도수의 술이 세계의 술이 된 것은 역시 국력의 힘이 뒷받침되었기에 가능했던 셈이다. 김치와 삼겹살 항목에서 유라시아 각지의 절임 채소 요리의 공통성, 우크라이나와 우리나라의 돼지고기의 유사성을 통해 지역을 막론한 민중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생존 본능을 우선 꼽는다.  &nbsp;  우리나라의 특수성이 반영된 항목도 있는데, 경상도 지역의 상어 고기 문화의 역사성을 예시하며 “신라 문화는 상어(돔베기) 문화권”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언급, 우리나라에서만 ‘도토리묵’과 ‘해장국’이라는 음식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흥미로운 대목이 아닐 수 없다.  &nbsp;  2부 놀이 편에서는 놀이, 고인돌, 씨름, 축구, 여행, 낙서, 개, 고양이 항목을 다룬다.   &nbsp;  고구려의 &lt;수렵도&gt;가 실제 사냥 장면이 아니라 일종의 사냥놀이를 하는 모습이라는 분석은 간과했던 사실인데 매우 설득력 있다. 씨름과 축구처럼 신체가 맞부딪히는 스포츠는 격렬한 만큼 거친 폭력성의 해소와 함께 신체 단련의 의미도 지닌다. 다만 그것이 과도하면 흥분과 폭력으로 확대되는 현상을 자주 보게 된다.   &nbsp;  고인돌이 놀이와 무슨 관계인지 의아했는데, 제의는 엄숙성과 동시에 축제성도 지니고 있다고 하니 이해가 되었다. 현세에서 여행은 인간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내세로의 여행은 영생과 피안에서의 행복을 지향했다는 점은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반려동물의 대표격인 개와 고양이 이야기도 재밌지만, 시대를 초월한 낙서 애호의 흔적은 인간 본성이 한결같음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이기에 해학적이다. 러시아 아이 온핌의 필기 뭉치처럼.  &nbsp;  생물은 생존과 번식을 실현하기 위한 본능적 욕망을 품는다. 3부 명품 편의 석기, 실크, 황금, 신라 금관, 인삼, 기후와 유물, 도굴, 모방 항목은 바로 이 욕망을 얘기한다.   &nbsp;  고급 옷감의 대명사인 실크는 실크로드라는 불후의 유산을 남겼는데, 실크에 열광한 흉노족의 쇠망 원인 중 하나가 실크라는 견해는 참신하다. 물욕하면 바로 황금이 연상되는데, 황금 문화의 역사가 흑해 연안에서 오래전 피어났다는 사실은 뜻밖이다. 우리 고대사도 황금과 무관하지 않다. 신라 금관이 대표적인데, 금관총 발견의 아픈 역사와 함께 복제품 유물 도난 사건의 어처구니없는 시대상이 함께 다루어진다.  &nbsp;  인삼은 고대부터 명품으로 취급되었으며, 특히 고려 인삼이 최고로 인정받았다는 점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인삼과 관련하여 소개된 두 개의 에피소드도 이를 충분히 입증한다. 다만 역사적으로 청나라의 발전이 인삼 파워라는 견해는 놀랍다. 하물며 인삼이 병자호란의 사실상 원인이라는 주장은 어안이 벙벙할 뿐.   &nbsp;  명품은 모방과 도굴과 떼려야 뗄 수 없다. 모방은 방제경처럼 긍정적 의의를 부여할 수 있겠지만 도굴은 재화 욕망에 사로잡힌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 아닐까. 그런 면에서 도굴의 왕이었던 조조의 무덤이 도굴로 발견되었다는 점은 웃어야 하나 울어야 할지 애매하다. 한편, 지구온난화가 현대 인류 사회에만 영향을 미치는 줄 알고 있었지만 확실히 고고학자는 다르다. 동토 지대에 오랜 기간 보존되어 온 유물들이 온난화의 결과로 녹아서 부패하고 소멸하는 현상에 대한 안타까움의 심정은 다만 헤아릴 뿐 충분히 따라잡기 어렵다.  &nbsp;  4부 영원 편의 벽화, 추모, 미라, 발굴 괴담, 마스크, 문신, 점복, 메신저 항목은 결국 죽음과 미래에 관한 항목이다. 인간의 죽음은 필연이며 회피할 수 없지만 누구나 벗어나고자 한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도 마찬가지다. 고인을 추모하고 그네들이 저승에서 현세처럼 부귀영화를 누리기를 기원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거대한 무덤과 화려한 부장품, 제2의 집으로 그려진 벽화를 보라.   &nbsp;  기후로 우연히 된 미라가 아니라 의도적 미라 또한 영생의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 점에서 투탕카멘과 레닌의 미라는 닮았으면서도 전혀 다른 의도를 지닌다. 두 사람은 자신의 시신이 오늘날 이렇게 남아 있는 것에 대해 어떤 심정일지 궁금하다.   &nbsp;  마스크에 관한 얘기도 빼놓을 수 없다. 마스크는 애초에 인간과 신을 중개했던 샤먼의 전유물이었으면서 오늘날 영정 사진의 역할도 했다는 설명은 마스크, 즉 가면의 비일상성을 증명한다. 다만 코로나 시기를 경험했던 만큼 전염병 예방을 위한 마스크는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  &nbsp;  문신의 역사는 오래되었다. 고대에 문신은 부족과 신분을 나타내거나, 훈장처럼 특별한 공적을 드러내기 위한 용도로 사용되었다. 물론 묵형처럼 먹을 새기는 형벌도 있었는데 모두가 문신의 반영구성에 기인한다. 문신에 대한 요즘 세간의 인식은 나쁜 편이다. 우리 사회는 유교적 가치관이 내재화되어 있는데 문신은 소중한 신체를 훼손하는 행위 아니겠는가. ‘문신충’이라는 폄하적 용어도 존재한다. 문신을 개성의 표현으로 인정할지 경계가 참으로 모호하다.  &nbsp;  과거를 발굴하면서 수많은 유물을 발견해나가면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쓸 수밖에 없다고요. 그걸 해내는 학문이 바로 고고학입니다. (P.345)  &nbsp;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고고학의 의의와 자부심을 토로한다. 이 책은 대중을 겨냥한 고고학 입문서다. 새삼 골치 아픈 학문적 얘기는 제쳐두고, 세상의 다양한 사물과 풍습의 기원을 고고학과 결부시켜 의외성과 함께 흥미진진한 내용으로 풀어놓는다. 굳이 고고학이라는 어휘를 일부러 결부시킬 필요도 없다. 인간과 세상에 존재하는 여러 사항의 기원과 유래를 가볍게 읽어 나가다 보면 절로 고고학에 대한 호기심이 생길 것이므로.]]></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2542/5/cover150/896596597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542058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급류 (정대건/민음사) - [급류 (특별판)]</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6960</link><pubDate>Wed, 12 Aug 2026 19:0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69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8636&TPaperId=174469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40/44/coveroff/893742863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28636&TPaperId=174469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급류 (특별판)</a><br/>정대건 지음 / 민음사 / 2025년 06월<br/></td></tr></table><br/>&lt;급류&gt;는 서평이 심히 엇갈리는 소설이다. 한쪽에서는 감동과 극찬이, 다른 쪽에서는 실망과 비판이 날 서게 대립하는 보기 드문 현상이다. 우연한 기회에 이 작품의 존재를 알게 되었으나 처음에는 별로 관심 두지 않았다. 이른바 검증되지 않은 한때의 소설 읽기에 자원을 쏟고 싶지 않았으므로. 양분된 독자평이 오히려 흥미를 끌었다.  &nbsp;  세평에 휩쓸리지 말고 편견 없는 마음으로 작품을 대하리라 다짐하고 책을 읽어 나갔다. 그래야 나중에 어떠한 작품 평을 해도 떳떳할 것 같아서였다. 초반의 흥미진진한 서사에 몰입하였다. 중반부의 도담과 해솔의 사랑과 방랑, 이별에 마음 아팠다. 후반에 가서 그들의 재회와 이해, 그리고 드러난 비밀 장면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시큰해졌다. 독자의 마음과 작품을 연결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좋은 작품이 아니겠는가. 여기에 기법과 구성, 표현 등의 미세한 아쉬움은 별다른 흠결이 되지 않는다.  &nbsp;  “너희는 악연이야. 얽혀서 좋을 게 없어. 절대로 연락하지마.”정미가 거세게 기침하며 도담의 손을 잡아끌었다. (P.84)  &nbsp;  정미의 말마따나 두 사람의 인연은 결과적으로 악연이라고 해도 할 말 없다. 두 사람의 행동이 없었다면 두 가족이 풍비박산 나지 않았을 거라고 확언할 수 없지만, 그처럼 남부끄럽게 목숨을 잃는 결말로 나아가지는 않았을 테니까.  &nbsp;  자신이 구해 주고 자신을 구해 준 사람. 같은 또래, 그리고 첫사랑. 도담과 해솔은 분리될 수 없는 사이다. 두 사람은 남들이 갖지 못한 비밀의 공유자이자 겪지 못한 비극의 주인공이므로. 너무나 가깝고 친밀한 존재이기에 오히려 지긋지긋해하고 다투며 뛰쳐나가지만, 그들의 과거를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다시 있기 어렵다. 자유로워지고 싶지만, 소외되고 싶지는 않으므로. 자기 내면에 가면을 씌운 채 진정한 사랑을 구하는 건 자체로서 가능하지 않은 시도다.   &nbsp;  해솔과 자신을 과연 무슨 사이라고 설명해야 할까. 은인? 친구? 연인? 한마디로 표현할 수 없다. 잊었다고 생각했지만, 잊으려 애썼지만, 사실 한 번도 잊은 적 없는 이름이었다. (P.203)  &nbsp;  승주의 말처럼 도담에게 승주, 해솔에게 선화는 대용품이자 구명환이다. 상대의 부재 속에 홀로서기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그것이 불가능함을 확신하기 전에 필요했던. 그나마 선화는 슬퍼하면서도 그들을 받아들인다. 해솔의 마음속에 자신이 자리할 공간이 없음을 일찌감치 알아차렸기에. 독자로서 선화의 행복을 다만 바랄 뿐이다.  &nbsp;  세월의 때가 묻다 보니 창석과 미영의 관계도 그럴 수 있지 하고 생각하게끔 된다. 세상일이란 게 반드시 나의 뜻과 의지만으로 가능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겪어서일까. 한편 도담과 해솔의 지긋지긋할 정도로 강렬하고 뜨거운 고통과도 같은 사랑에도 공감과 애틋함을 품게 된다. 도담은 사랑의 도덕성을 기대하지만, 사랑이란 애초에 눈먼 존재가 아니던가. 창석의 배신에 치를 떨며 찌그러뜨리려고 마음먹은 것 또한 그가 창석을 너무나 사랑해서다. 이후 도담이 사랑을 갈구하면서도 사랑을 뿌리치는 이유 역시 자신의 사랑관이 무너져서다.  &nbsp;  도담에게 사랑은 급류와 같은 위험한 이름이었다. 휩쓸려 버리는 것이고, 모든 것을 잃게 되는 것, 발가벗은 시체로 떠오르는 것, 다슬기가 온몸을 뒤덮는 것이다. 더는 사랑에 빠지고 싶지 않았다. (P.104)  &nbsp;  이 책의 작가 소개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작가는 영화계 출신이다. 그의 전작을 보면 작가의 배경이 깊게 반영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을 순전한 문학 관점이 아니라 영화 시나리오로서 접근하면 이 소설의 특성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두 주인공의 명확한 성격 대비. 비현실적일 정도로 치열한 만남, 사랑, 다툼과 헤어짐을 반복하는 관계.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기 위한 소설의 여러 장치, 즉 우연성, 주인공의 직업과 사고, 비밀. 주인공을 더 드러내기 위해 필요한 조연의 역할 등.  &nbsp;  우여곡절 끝에 도담과 해솔은 서로의 손을 맞잡았고 다시 놓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린 나이부터 과도할 정도로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맞닥뜨렸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사랑하는 법을 알게 되었으므로.  &nbsp;  둘은 물결을 가로질러 서로를 향해 헤엄치기 시작했다. 해솔과 도담은 손을 뻗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P.298)  &nbsp;  내가 읽은 책은 ‘사랑의 에디션’이라고 한다. 20만 부 돌파를 기념하기 위한 특별판이다. 설명 문구처럼 신진 작가의 구간이 역주행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역주행의 대명사가 되었던 몇몇 아이돌 그룹도 아니고. 감상 후의 소감은 뭐랄까,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내가 근래에 이러한 몰입감을 가지고 소설을 읽어본 게 언제 적이었던가.]]></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640/44/cover150/893742863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640447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손아진 피아노 독주회 (2026.8.1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5526</link><pubDate>Tue, 11 Aug 2026 23:0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5526</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손아진 피아노 독주회 - Die blaue Blume Ⅱ일시 : 2026년 8월 11일(화) 19:30장소 :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연주 : 손아진 (피아노)프로그램&nbsp; - 하이든, 피아노 소나타 C장조 Hob.XVI:50&nbsp; - 라벨, 거울&nbsp; -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C단조 D.958<br>* 세줄평라벨의 연주가 가장 좋았다. 그렇게 애호하는 곡이 아니었는데, 섬세하고 정확한 터치가 곡상에 부합하였다. 하이든 소나타는 분명 잘하는 연주같은데 내가 기대하는 하이든 느낌은 아니었다. 마지막의 슈베르트는 그다운 느낌 외에 미처 간과했던 여러 들을만한 포인트를 짚어주어서 새삼 흥미가 당겼다. 전반적으로 강한 개성을 내세우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집중하는 연주자 같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11/pimg_63922085499872980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552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데데 코르쿠트의 서(書) (작자미상/이재정/계명대학교출판부) - [데데 코르쿠트의 서(書) -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튀르크족 영웅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3814</link><pubDate>Tue, 11 Aug 2026 00: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38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734387&TPaperId=174438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42/46/coveroff/k45273438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52734387&TPaperId=174438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데데 코르쿠트의 서(書) -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튀르크족 영웅이야기</a><br/>이재정 옮김 / 계명대학교출판부 / 2021년 08월<br/></td></tr></table><br/>앞서 &lt;고르구드 아버지의 영웅 서사시&gt;(걷는사람)를 읽었다. 전 12편의 이야기 중 절반인 6편만을 담고 있다는 점과,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평이한 편집에 일말의 아쉬움이 있었다. 다만 국내 초역이라는 점에 만족하기로 하였다. 우연한 기회에 이미 몇 년 전에 완역이 이루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이 바로 이 책이다. 이 작품의 문학적, 역사적 의의를 다시금 되짚어보면 아래와 같다.  &nbsp;  &lt;데데 코르쿠트의 서&gt;는 아제르바이잔뿐만 아니라 터키,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전 튀르크인들이 공통으로 보유하고 있는 구전문학으로써, 고대 튀르크족의 생활 관습, 역사, 지리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뿐만 아니라 이슬람 이전 튀르크 사회의 이념과 정치사상, 튀르크족의 삶의 철학을 담고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P.8, 머리말)  &nbsp;  아무래도 이 책과 걷는사람 판본을 비교하지 않을 수 없다. 고대 오구즈족의 영웅서사시이므로 원서는 오구즈족의 언어, 지금으로 치면 아제르바이잔 또는 중앙아시아 민족의 언어로 기록되었을 것이다. 걷는사람 판본은 아제르바이잔 판본을 처음 번역한 것이고, 이 책은 러시아어 번역본을 우리말로 번역한 중역본이다. 즉 완역본 여부와 원전 번역본 여부가 두 책의 큰 차이점이다.  &nbsp;  번역 저본이 상이하다 보니, 번역 어휘도 같을 수 없다. ‘디르새 칸의 아들, 부가즈 이야기’는 여기서 ‘데르세-칸의 아들, 보가치-잔에 관한 이야기’로, ‘바이배래의 아들, 밤스 배이래크 이야기’는 ‘바이-부라의 아들, 밤시-베이레크에 관한 이야기’로 차이가 있다. 무엇보다 ‘바사트가 외눈박이 테패괴쥐를 물리친 이야기’가 ‘데페-게즈를 죽인 비사트에 관한 이야기’로 큰 차이를 보인다. 다만 이야기의 줄거리와 내용 전개는 대체로 비슷하다.  &nbsp;  걷는사람 판본에 실리지 않고, 이 책에만 실린 6편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칸르이-코드자의 아들, 칸-투랄리에 관한 이야기’, ‘카즐리크-코드자의 아들, 이예켄크에 관한 이야기’, ‘베킬의 아들, 암란에 관한 이야기’, ‘우슌-코드자의 아들, 세크레크에 관한 이야기’, ‘포로로 잡힌 살로르-카잔을 구출한 아들, 우루즈에 관한 이야기’,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  &nbsp;  이들 이야기의 배경과 제재는 솔직히 다른 이야기와 특별한 차별성을 보이지 않는다. 진정한 무사의 조건, 부모.형제와 같은 혈연의 중시, 기독교도 적국과의 갈등과 전쟁 등. 모두가 살로르-카잔과 그의 아들 우루즈를 중심으로 그의 신하들인 여러 베크의 이야기다. 특히 우루즈는 나약하기 이를 데 없는 아들처럼 묘사되다가 다른 이야기에서는 용맹한 기사로 등장하여 적에게 사로잡힌 아버지를 구출하는 등 여러 이야기에 일관성 없이 등장하여 다양한 구전에 근거함을 알게 한다.  &nbsp;  특히 ‘외오구즈족과 내오구즈족의 싸움과 베이레크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와 달리 오구즈족이 내오구즈와 외오구즈로 분열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어쩌면 사소하다고 할 수 있는 행위 하나가 종족의 갈등과 분열로 이어지고 끝내 밤시-베이레크와 아루즈라는 두 걸출한 무사의 죽음으로 귀결되는 비극을 다룬다. 이 작품의 마지막 이야기로 실렸다는 점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nbsp;  “정녕 그 이유를 모르신단 말씀입니까? 일전에 당신이 재산을 나누어 줄 때 외오구즈족은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내오구즈족 베크들만이 있었지요. 바로 그런 이유로 외오구즈족 베크들이 안 온 것이지요.” (P.267)  &nbsp;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언급하지 않거나 생략된 대목, 그리고 해설은 이 책의 미덕이다. 먼저 머리말에 따르면 이 책의 시대적 배경은 14세기에서 15세기에 걸친 백양 왕조(아크 코윤루)라고 하며, 지역적 무대 또한 이란과 이라크, 튀르키예, 그리고 카프카즈에 걸쳐 있음을 알 수 있다. 작품 표제에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등장하는 까닭은 수록된 12편의 이야기를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노래로 지어서 후대에 전수하였기 때문이다.   &nbsp;  걷는사람 판본에서는 완전히 생략된 대목이 우선 서문이다. 몇 페이지에 걸친 서문은 코르쿠트 할아버지를 소개하고 그가 칸에게 한 몇 가지 예언과 신에 대한 영광과, 네 유형의 여인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nbsp;  각 이야기의 마지막 단락도 이 책에만 수록되어 있다. 그것은 코르쿠트 할아버지가 이 노래를 지었음과 함께 그가 말하는 예언 내용이다. 영웅들도 죽음을 맞이하기에 세상은 덧없음을 애상 어린 어조로 일단 말한 후, 그럼에도 칸은 전능하신 신의 은총으로 영원히 번영을 누릴 것이라고 예찬한다. 마지막으로 신을 향한 기도로 이야기를 마친다.  &nbsp;  온 세상이 내 것이라고 말하던 그 베크들은 지금 어디에 있느냐고요? 죽음이 그들을 잡아갔고 땅이 그들을 숨겼습니다. 무상한 세상이 누구에게 남겨졌냐고요? 지상의 삶은 왔다가 가는 것이고, 그 종착점은 죽음입니다. 오랜 삶의 마지막도 죽음과 이별입니다. (P.277)  &nbsp;  비록 러시아어 중역판이지만, 12개의 이야기를 모두 담은 완역본이라는 점, 서문과 코르쿠트 할아버지의 예언 단락도 모두 수록하였다는 점, 그리고 아동 청소년용으로 평이하게 각색하지 않고 원형에 가깝게 유지하였다는 점 등에서 개인적으로 이 책을 높이 평가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842/46/cover150/k45273438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842465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3월 1일의 밤 (권보드래/돌베개) - [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2050</link><pubDate>Mon, 10 Aug 2026 00:3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4205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9276&TPaperId=1744205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18458/19/coveroff/897199927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1999276&TPaperId=1744205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3월 1일의 밤 - 폭력의 세기에 꾸는 평화의 꿈</a><br/>권보드래 지음 / 돌베개 / 2019년 03월<br/></td></tr></table><br/>3.1 운동에 관한 책이다. 저자는 국문학과 교수다. 흠, 뭔가 이상하다. 역사학자 또는 사회과학자도 아닌 인문학자가 3.1 운동을 다룬 책을 쓰다니. 3.1 운동을 문학사적으로 조망하려는 책인가 싶은데 책소개나 서평을 읽어보면 그렇지도 않다.  &nbsp;  누구나 3.1 운동을 알지만 정작 3.1 운동을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무엇이 떠오르는가, 민족 대표 33인, 유관순 열사, 전 국민의 만세운동. 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태어나는 계기가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역사에 비교적 지식이 있는 경우다. 하지만 정작 3.1 운동 자체에 대해서는 머릿속에 확 다가오지 않는다. 태극기와 만세운동, 비폭력 저항운동이라는 추상적 이미지뿐.  &nbsp;  저자가 3.1 운동 백 주년에 맞추어 이 책을 쓴 까닭은 분명하다. 역사 속의 한 장면, 박제된 이미지가 된 3.1 운동을 학술적 차원이 아니라 인간적 온기를 품고 자세히 알아보고 드러내 보이고자 하는 것임을. 3.1 운동이 단지 지나간 역사적 한 사건에 그치지 않고 우리 근현대 역사와 문화에 깊은 족적을 남기고 이른바 판을 뒤흔들어 놓은 세기적 사건이었음을. 나아가 오늘날 우리는 3.1 운동의 지대한 영향 아래 살고 있으면서도 정작 3.1 운동의 본질과 계승에는 여전히 소극적임을 저자는 말하고자 한다.  &nbsp;  주석, 출전 및 찾아보기를 제외하고도 560면에 이르는 두툼한 책의 내용을 쉽사리 이해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1부에서 3.1 운동의 전체적 맥락을, 2부에서는 시대적 흐름을, 3부는 실제 인물과 운동 각론을, 4부는 문학적 연계를 고찰한다. 역사와 대중적으로 유명한 민족 대표 33인과 유관순 열사는 거의 다루지 않는데, 민족 대표의 의미와 비중이 절대적으로 낮다는 점과 유관순으로 전형화된 인물 이면에 가려진 민초들의 생생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nbsp;  3월 1일의 밤을 기술하는 저자의 필치는 세심하며 건조한 객관성에 함몰되지 않는다. 온기를 품은 채 흥분을 배제하면서 최대한 온화하고 담담하게 3.1 운동의 현장과 인물을 그려나간다. 그것은 후대에 비판적 평가 대상이 되는 인물과 사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연유로 역사와 인문을 결합한 한 편의 문학작품을 읽은 것과 같은 깊은 여운을 갖게 됨은 전적으로 저자의 역량이라고 하겠다.  &nbsp;  3.1 운동은 세계사적 맥락에서는 타당하지만, 국내만으로 제한하여 보면 매우 뜬금없고 갑작스러운 출현이었다. 강제 병합 이후 독립투쟁은 국지적 활동을 제외하면 사실상 휴면 상태로 접어들었고, 민족적 역량을 결집할 만한 구심체도 존재하지 않았다. 민족 대표 33인은 독립선언만 하면 그것으로 할 일을 마쳤다고 생각하는 정도였고, 대중적 인식도 독립을 위한 만세인지, 독립에 기뻐한 만세인지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기본적으로 3.1 운동은 태화관 및 탑골공원에서의 작은 해프닝으로 끝나는 게 당연한 수순이었는데, 어찌 된 일인지 전국으로 계층을 불문하고 확산되어 갔다.  &nbsp;  독립의 선언이 곧 독립의 현실을 구성한다는 믿음이야말로 3.1 운동의 비밀이다. ‘와야 할 현실’을 ‘도래한 현실’로 변형시킴으로써, 그러한 정언명령을 표현하고 전달하고 감염시킴으로써, 3.1 운동의 대중은 그 스스로 새로운 현실의 일부가 되었다. (P.52, 1부)  &nbsp;  강화도 은세공업자 유봉진 사례는 이러한 자발적 주체를 예시한다. 저자는 3.1 운동의 거시적 의의만 천착하지 않고 보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재료에도 관심을 보이는데, 다종다기한 선언서의 변형과, 운동에서 태극기의 출현 시기와 그것의 실질적 의미, ‘만세’ 구호가 갖는 비일상적 상징성 등이 그러하다. 또 민초들에게 독립은 추상적 전망이 아닌 토지, 종교 및 기타 현세적 소망과도 밀접하게 결부되어 있음을, 그것은 일제 식민 통치가 그들에게서 빼앗아갔고 통제함으로써 당대 체제에서는 획득하기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재화였음도 빠뜨리지 않는다.  &nbsp;  세계사적으로 볼 때 3.1 운동은 사회진화론이 표방한 제국주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정면으로 반박함으로써 향후 인류 보편주의가 지배적 이념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결정적 계기가 된 사건이다. 약육강식이 불변의 보편적 원리라고 인정될 때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는 사건은 대세 원리에 부합하므로 비난할 명분이 없다. 민족자결주의를 이해했든 곡해했든, 3.1 운동 선언서가 표방하는 인류 보편의 평화와 행복 추구권은 이후 사회진화론을 극복하는 이념적 토대가 되었다.  &nbsp;  ‘세계’와 ‘인류’의 보편주의가 학생과 지식인 사이에서의 동향을 벗어나 일반적인 기류가 된 것은 3.1 운동 이후다. 거꾸로 말하자면 인류 보편주의의 성장에 힘입어 3.1 운동의 이념은 비로소 형성될 수 있었다. (P.211, 2부)  &nbsp;  정신적 차원뿐만 아니라 물리적 기준에서도 3.1 운동의 영향은 지대하다. 3.1 운동의 영향으로 임시정부가 탄생하였으며, 비폭력 평화주의의 한계를 실감한 이후 무장 독립투쟁으로 노선의 큰 방향 전환이 생겼다. 3.1 운동이 외형상 실패하였음은 자명하다. 다만 이것을 독립 쟁취 여부로써만 판단하는 것은 단견이며, 향후 독립운동의 시발점 역할을 하였고 민중 인식을 근대화시켰다는 점을 유념하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nbsp;  3.1 운동 직후 무력투쟁이 극렬해졌다는 사실은 3.1 운동기, 특히 초기의 비폭력주의가 결코 불가피한 전략이 아니었음을 알려준다. 3.1 운동의 비폭력은 체계적이거나 수미일관하지는 않았을지언정 의식적인 선택이었다. (P.332, 3부)  &nbsp;  3.1 운동의 장소라고 하면 태화관과 탑골공원, 그리고 아우내장터가 우선 연상된다. 저자는 운동이 전국적이고 거국적이었음을 보여주기 위해 각 지역 사례를 예시한다. 통일된 중심 조직이 없는 만큼 운동의 양상은 지역별로 제각기 달랐고 전개 과정도 상이하였다. 대체로 비폭력 평화운동이었지만 평남 성천처럼 유혈 충돌이 빚어진 사례도 발생하였다. 장터 같은 번화가, 산꼭대기는 물론 다수의 군중집회, 한두 명의 격문과 태극기와 같이 규모도 천차만별이었다. 지방은 유림, 농민, 천도교도, 도시는 학생과 노동자가 만세를 불렀으며, 신분으로는 양반과 평민, 기생 같은 하층민을 포함하여 진주에서는 백정 아낙들도 참여하였다고 한다. 저자도 언급했듯이 수년 뒤 백정해방운동인 형평사 운동이 진주에서 일어난 게 전혀 의외는 아니다.  &nbsp;  아산보통학교 교사 박경순, 서울 기생 정금죽, 개성 교회전도사 어윤희 사례는 평범한 여성들이 3.1 운동 참여를 통해 정치, 사상적으로 얼마큼 변화하고 발전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경우라고 하겠다.   &nbsp;  국문학자인 저자로서는 3.1 운동이 문화계, 특히 문학에 끼친 영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4부는 일제강점기 개괄적 국문학사라고 해도 무방하다. 헤이그 밀사 이위종과 몽골 어의 이태준, 김필순 일가, 홍명희의 방랑 등 3.1 운동 이전에 식민 지배에 좌절하여 탈출을 모색하던 청년층은 운동을 통해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 또는 대한인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하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강용흘과 이미륵의 망명 문학은 3.1 운동 후 해외에서 고유성을 기억하고 알리는 역할을 하였다.   &nbsp;  무단통치 시기 강력하게 억눌렀던 국문학이 급격하게 발전하기 시작한 계기는 일제의 문화통치 덕분이다. 3.1 운동으로 놀란 일제가 지배 방침을 변경하여 제한적이나마 우리말 교육과 출판을 허용하였기 때문이다. 역으로 말한다면 3.1 운동이 없었다면 일본의 통치 기조는 변함이 없었을 것이고 우리말은 끝내 말살되고 민족의식조차 미구에 소멸되었을 것이란 뜻이다.   &nbsp;  3.1 운동 과정에서 민중은 일제의 유혈 진압과 핍박, 고문 등의 참상을 겪었다. 이로 인한 트라우마를 부정하지 못한다. 게다가 외형상 운동의 실패는 실망과 좌절, 패배 의식을 고취시켰다. 여기서 절망의 나락에 빠질 것인가, 어두운 현실을 명철하게 진단하고 분석함으로써 개선과 발전의 여지를 찾으려고 노력할 것인가, 현재 상태가 어둠의 밑바닥임을 깨닫고 희망의 빛을 확신할 것인가에 따라 문학적 입장은 달라진다. 저자는 김동인과 이광수, 심훈, 염상섭을 전형으로 제시한다. 운동 이전 동인지 문학에서 주도적 역량을 발휘하였던 김동인과 이광수는 오히려 3.1 운동 이후 타협의 길을 걷는다. 그들에게 3.1 운동은 민족의 독립 역량을 결집하고 표방한 긍정이 아니라 죽음 직전 마지막 비명으로 인식되었다. 이광수의 &lt;민족개조론&gt;이 대표적이다.  &nbsp;  염상섭의 시각마따나 3.1 운동은 종착점보다 출발점이라는 시각에서 바라볼 때 적극적 의의를 갖는다. 3.1 운동은 개인적.민족적 층위에서 공히 불회귀적 사건인 동시, 실패냐 성공이냐의 질문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종류의 사건이다. (P.543-544, 4부)  &nbsp;  저자가 4부에 걸쳐 3.1 운동을 조사하고 분석하고 해석하는 목적은 무엇일까. 그것은 3.1 운동의 중대한 의의에도 불구하고 단지 역사적 사실, 현재와는 무관한 과거의 사건으로 치부하는 시각을 일신하기 위함이다. 역사성의 거대 담론에만 치우쳐 간과하는, 우리네 민중 개개인의 삶과 행동과 선택이 그 속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를 드러내고자 함이다.   &nbsp;  3.1 운동을 그 세계사적 맥락으로 되돌리고 3.1 운동에서 토의된 정치.경제.문화적 쟁점들을 오늘에 되살려 보자는 것이다. 3.1 운동은 빛나는 경험이다. 그러나 그 빛은 천상의 순일성이 아니라 지상의 악전고투로 물들어 있다. (P.555, 나가는 글)  &nbsp;  3.1 운동을 자세히 알고 싶은 호기심과, 국문학자가 3.1 운동을 어떻게 풀어냈을까의 궁금증이 이 책을 읽게 된 동력이었다. 3.1 운동을 다층 다면적으로 이해하고, 개별 인간 차원에서 3.1 운동의 현장을 접근하고 싶다면 읽은 보람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단언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18458/19/cover150/897199927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84581909</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GV 빌런 고태경 (정대건/은행나무) - [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32955</link><pubDate>Tue, 04 Aug 2026 23:4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32955</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639085&TPaperId=17432955"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3800/67/coveroff/k84263908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842639085&TPaperId=17432955"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GV 빌런 고태경 - 2020 한경신춘문예 당선작</a><br/>정대건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04월<br/></td></tr></table><br/>&lt;급류&gt;로 역주행 각광 받는 작가의 데뷔작이다. 표제만 보고 어떤 유형의 작품인지 알기 어려웠다. 영어가 등장하고, ‘빌런’이라는 어휘가 사용되었으니 일종의 SF 소설일 거라고 지레짐작하였다. 막상 소설을 읽기 시작하니 완전히 잘못 짚었다.  &nbsp;  작가는 영화 연출을 전공하였고 다큐멘터리와 극영화를 연출한 이력도 지니고 있다. 자신의 영화 현장 경험이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 하면 지나칠까. 이 소설은 일반 독자가 알지 못하였던 영화 제작과 연출의 생생한 이면이 담겨 있다.   &nbsp;  GV 빌런은 결코 좋은 의미는 아니다. 성공한 감독과 배우라면 웃어넘길 수 있겠으나 화자처럼 무명의, 실패하고 영화인이라면 전혀 다르다. 그들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비수처럼 예리하게 가슴 속에 파고든다. 화자가 GV 빌런 다큐멘터리에 착안한 계기도 분명 그에 대한 복수심을 무시할 수 없다.   &nbsp;  어렵사리 빌런의 동의를 구하고 다큐멘터리 촬영을 시작하는 나. 이후 소설의 축은 나와 빌런 고태경의 촬영이 축을 이루는 가운데, 나와 종현의 남녀 관계, 나와 승호의 우정 관계가 주변을 장식한다. 처음에는 단지 빌런으로만 생각했던 고태경의 여러 행동이 영화인의 꿈을 버리지 못하고 이의 실현을 위한 끊임없는 준비와 공부 과정임을 알게 되면서 서사는 크게 방향을 전환한다.  &nbsp;  “나 아직 영화인이오.”고태경이 서늘한 목소리로 내 말을 잘랐다. (P.58)  &nbsp;  관객은 영화 자체를 중시한다.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 그리고 제작진처럼 스크린 뒤의 세계는 잘 알지 못할뿐더러 관심도 약하다. 중요한 건 결과로써의 작품이다. 과정에 연출자의 어떤 고충과 한계가 자리 잡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 않는다. 단지 성공한 영화와 영화인,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영화와 실패자로 낙인찍힌 영화인. 현재의 고태경과 화자 조혜나도 엄밀히 말하면 이 부류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풍자처럼 촬영을 시작하였지만, 인간 고태경을 알아가면서 화자는 점차 그를 지지하고 응원하게 된다. 그렇다고 그와 같은 처지가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는 게 사실이다.  &nbsp;  두 사람의 다큐멘터리 촬영이 별 볼 일 없는 결과로 이어진다면 그들은 계속 그 상태에 머물게 될 것이다. 그렇더라도 화자 조혜나 감독은 독립영화지만 어쨌든 영화를 찍었지만 고태경은 불운의 중첩으로 한편도 찍지 못하였다. 그런 그에게 영화 촬영은 우리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게 된다.  &nbsp;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P.138)  &nbsp;  여기서 작가는 이들을 양지로 끌어낸다. 망한 작품으로 평가받던 이전 연출작이 뜬금없이 해외 영화제에 초청받고 특별상을 받는다. 우여곡절 끝에 상영한 다큐멘터리는 세간의 화제를 모으며 성공적인 평가를 받는다. GV 빌런으로 비난의 대상이었던 고태경은 졸지에 유명 인사가 되어 관객들의 주목과 응원을 받게 된다. 무엇보다 고태경의 그녀가 뜻밖의 인물이었던 거 하며.   &nbsp;  소설의 끝 장면에 이르러서도 그들의 처지는 크게 바뀌지 않는다. 화자 조혜나 감독은 여전히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다만 보다 확실한 삶의 목표는 생겼다. 친구 승호 역시 영화판을 떠났지만 자신의 꿈에 매달린다. 고태경은 이제 빌런 짓을 그만두었을까, 아니다. 그는 자신의 영화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놓지 않았기에 여전히 영화관을 들락거린다.  &nbsp;  작가는 과장된 인위적 수사를 최대한 자제하고 담담하게 소설을 전개한다. 굳이 큰 웃음, 사건, 극적 효과를 노리지 않아도 서사 자체의 자연스러운 힘으로 소설은 꽤나 가독성 있다. 은근하고 잔잔하지만 계속 책을 들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독자는 누구나 고태경과 조혜나, 승호를 응원하게 될 수밖에 없다. 화자와 헤어졌지만 종현을 우리가 미워할 수 있을까. 작중에서 비교적 악인 역할로 나오는 조병훈 교수 또한 영화에 대해서는 진심이지 않았는가. 박원호 교수와는 결이 다르지만.  &nbsp;  자기가 좋아한 것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너무 많았다. 우리가 추구하던 꿈과 기대하던 삶이 전부 무너진 다음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P.168)  &nbsp;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작가가 참으로 영화에 대한 애정이 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화자가 생활에 쩔쩔매면서도 영화를 놓지 못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소망이 투영된 것이 아니겠는가. 현재는 소설가로 활동하지만 언제라도 기회만 되면 영화인으로 복귀하겠다는. 고태경이 시나리오를 무수히 쓰고 고치고를 반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nbsp;  자칫 진부하고 순진한 교훈을 반복하는 유형으로 전락할 수 있는 작품의 구성이다. 독자가 고태경과 채화영의 만남에 긴장과 스릴을 느끼는 심정은 동일하다. GV 빌런이었던 고태경이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무대에 서서 관객들에게 들려주는 발언 또한 상식적이다. 어려운 가운데서도 영화에의 끈을 놓지 않는 화자가 서서히 영화계에 자리 잡을 전망을 보여준다는 설정도 그렇지 않은가. 이 여러 요소가 소설의 재미와 멋을 흠집 내지 않는 이유는 작가가 보여주는 성실한 애정일 것이다.  &nbsp;  화해와 성장. GV 빌런 고태경은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으로서 자신의 삶과 세상과 화해하게 되었다. 화자 조혜나 감독은 다큐멘터리의 연출자로서 영화와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서 한층 성장하였다. 단단하게 자신의 길을 나아가는 승호도 계속적인 성장을 기대하게 된다. 중간에 비록 실패와 좌절을 겪겠지만 포기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이런 요소들이 우리가 이 소설을 다 읽고 났을 때 갖게 되는 흐뭇한 정서의 기반이 아니겠는가. 나도 그 집 단팥죽을 한 그릇 먹고 싶다.  &nbsp;  나는 앞으로도 실수하고 후회하고 반복하겠지만, 적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미워하지는 않을 거다. (P.256)]]></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3800/67/cover150/k84263908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3800670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앙상블 드 로즈마리 기획 초청 연주회 (2026.8.3)</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31028</link><pubDate>Mon, 03 Aug 2026 23:3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31028</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페리지 홀 기획 초청 연주회 - 앙상블 드 로즈마리 : 'The Treasure Box'일시 : 2026년 8월 3일(월) 19:30장소 : 페리지 홀연주 : 앙상블 드 로즈마리&nbsp; &nbsp; &nbsp; &nbsp;- 권요안 (피아노)&nbsp; &nbsp; &nbsp; &nbsp;- 박지영 (바이올린)&nbsp; &nbsp; &nbsp; &nbsp;- 임재성 (첼로)프로그램&nbsp; - 드뷔시, 피아노 트리오 G장조&nbsp; - 포레, 피아노 트리오 D단조 Op.120&nbsp; - 라벨, 피아노 트리오 A단조<br>* 세줄평페리지 홀 첫 방문이다. 기획도 좋다. 인상주의 세 대가가 남긴 유일한 트리오. 연주도 좋다. 세 곡 모두 친숙한 곡은 아니다. 젊은 드뷔시의 열정과 나이 든 포레의 강렬한 사색이 불꽃을 튀긴다. 라벨의 곡은 보다 현대적이다. 3악장에서 그의 비명이 들리는 듯하다. 피아노 트리오가 이렇게나 맹렬한 조합이었던가 놀랍다.<br><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803/pimg_639213964581948044.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3102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조선의 세계명작, 완월회맹연 (정창권/월인) - [조선의 세계명작 완월회맹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28226</link><pubDate>Sun, 02 Aug 2026 14: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2822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775401&TPaperId=1742822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573/36/coveroff/8984775401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4775401&TPaperId=1742822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선의 세계명작 완월회맹연</a><br/>정창권 지음 / 월인 / 2013년 04월<br/></td></tr></table><br/>예전에 &lt;완월회맹연&gt;이라고 하는 조선시대 대하소설의 존재를 알게 된 적이 있다. 무슨 내용인지 알고 읽고 싶었으나 현대어본이 없어 아쉽게 생각하고 훗날로 미루어 두었다.   &nbsp;  장장 180권 180책의 대하소설인 만큼 모 출판사에서 간행 중인 완역본이 완성된다면 18권에 이르게 될 것이다. 아무래도 일반 독자가 다가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분량인 건 사실이다. 이 책은 &lt;완월회맹연&gt;을 독자에게 소개하기 위하여 한 권으로 압축하였다.   &nbsp;  허허, 완월대에 올라 달빛이나 구경할까 했더니 뜻밖에도 자녀들의 정혼이라.... (P.17)  &nbsp;  &lt;완월회맹연&gt;의 표제는 완월대 연회에서 맺은 약속의 의미를 지닌다. 정씨 집안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완월대에서 정씨와 장씨, 이씨 친우가 서로 자식을 결혼시키기로 맹세한다.   &nbsp;  정씨 집안의 적장자 정잠은 대를 잇기 위해 아우 정삼의 장남인 조카 인성을 양자로 들인다. 후처 교완은 자신의 소생인 아들 인중이 인성에게 밀리자 분개하여 어떤 수단으로든 인성을 제거하려고 한다. 교완과 시녀, 하인들이 처음에 시작하였지만 나중에는 인중도 적극적으로 나선다. 전처소생과 계모 간 갈등은 고전소설의 단골 소재이지만, 근본적으로 집안의 후계 구도와 맞물려 있기에 계모는 더욱 치열하게 노릴 수밖에 없음도 또한 당대의 현실이다. 처음에는 인성을 목표로 하는데, 인성이 자염과 혼인하고 아이를 낳게 되자 아이마저 제거하는 것으로 목표를 확대한다.   &nbsp;  “인성이 정부의 계후가 되어 인중으로 하여금 무용지물이 되게 했도다. 내 반드시 인성을 없애고 인중으로서 계후가 되게 하고 말리라!” (P.66, 교완)  &nbsp;  인중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 남매 간의 우애는 돈독하다. 심지어 인중의 아우 인웅마저 어머니와 형의 그릇된 행동에 반대하고 바로잡으려고 애쓸 정도다. 이 소설에서 인성은 거의 성인군자에 가깝다. 충과 효에 지극하고, 탁월한 풍모에 반한 뭇 미인의 구애에도 한눈팔지 않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안타까운 여성인 만초란과 석순영의 슬픔과, 해릉공주의 비극은 인성과 무관하지 않다.   &nbsp;  정씨 집안이 모범적인 인덕의 표본이라면, 정잠의 친우인 장헌은 범인 또는 소인배의 전형이다. 출세를 위해 권력자에게 빌붙고 정혼을 약속한 딸을 왕족의 첩으로 기꺼이 내주려고 할 정도다. 예비 사위인 인광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 상황에서 짐짓 외면하고 여색을 탐하여 월염을 첩으로 취하려고 시도한다. 변장한 인광에게 두드려 맞고 나중에는 계단에서 실족하여 해괴망측한 행동으로 체면을 구기고 사위를 난처하게 만든다. 부인 박씨 또한 남편 못지않아 혼인 후 정씨 집안을 향해 온갖 욕설과 창피한 행동을 서슴지 않을 정도다.  &nbsp;  이런 상황에서 인광이 부인 성완을 아낄 리 없다. 마지못해 혼인하였지만, 처가의 실덕에 질린 인광은 부인을 박대하고 내쫓으려고 하며 심지어 자결을 요구할 정도다. 이 소설에서 가장 안쓰럽고 딱한 대목이 바로 흠잡을 데 없이 고결한 성완이 친정과 남편 사이에서 어찌할 방안을 몰라서 고통받는 장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인광이 너무한 건 사실이다.  &nbsp;  장헌의 아들 세린과 부인 여씨의 관계 역시 봉건시대의 풍습이 낳은 안타까운 사례다. 자식의 의사는 안중에 없고 오로지 종실과 인척 관계를 맺기만을 바라면서 추녀 여씨와 강제 결혼시키는 장헌의 선택은 비참한 결말로 이어졌을 따름이다. 세린과 여씨 중 누구를 탓하겠는가. 미인을 갈망하는 세린에게 어쨌든 결혼했으니 여씨에게 만족하라고 하겠는가. 여씨는 무슨 잘못으로 시집와서 이리 박대와 수모를 견디라고 하겠는가. 여씨의 언행이 거칠어진 건 결과적으로 잘못된 혼인에 귀인하게 된다. 부부는 등 돌리면 남이라고 하지만, 그들은 차라리 원수다. 대체로 해피 엔딩으로 끝나는 이 소설에서 대표적인 새드 엔딩이다.  &nbsp;  “소녀 장부와 더불어 무슨 원수를 지었길래, 이십 년도 못 살고 몸을 마치게 되었나이까? 죽으나 사나 장부와 원수가 되었으니 더 이상 이에 머물 바 없습니다. 빨리 소녀를 집으로 데려가 모친이나 보고 죽게 하소서.” (P.176, 여씨)  &nbsp;  조선시대 대하소설은 가문 소설의 구성을 지닌다. 이 소설 역시 정씨 집안의 4대를 축으로 진행되는데, 90세 넘어까지 장수하는 태부인이 집안의 중심을 이룬다. 주요 사건이 큰며느리 교완의 시기와 질투, 음모. 그럼에도 교완을 친모처럼 극진히 섬기는 인성과 자염 부부. 친정과 남편 인광 사이에서 괴로움과 슬픔을 견뎌내는 성완. 이러한 구도로 소설은 진행되기에 작중인물이 다수 등장하지만 전체적 작품구도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다.   &nbsp;  우리네 고전소설의 특징인 중국을 배경으로 하여 위로는 몽골과 아래로는 안남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중국 전역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교완과 인중은 마침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개과천선하며, 장헌 또한 실덕을 깨닫고 친우와 가족에게 사죄하며 훈훈한 마무리를 한다.  &nbsp;  &lt;완월회맹연&gt;의 저자는 18세기 초중반 이씨부인으로 추정하고 있다. 방대한 작품을 혼자 창작한 건 아니고 시작은 이씨부인이 하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계속 뼈를 늘리고 살을 보태어 오늘날 이처럼 방대한 소설로 남게 된 것이다. &lt;완월회맹연&gt;, 그리고 유사한 장편 가문 소설의 존재는 우리네 현대문학에서 여성이 중심이 되는 대하소설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는 저자의 논평은 새로운 인식이다.  &nbsp;  어쩌면 이 작품은 17세기부터 싹트기 시작한 가문의식을 집대성하여 완성시킨 작품이라고도 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가문의식과 여성 가장의 모습은 &lt;토지&gt;나 &lt;미망&gt;, &lt;혼불&gt; 같은 오늘날의 대하소설에까지 이어져 오는 등 우리 소설사에서도 큰 맥을 형성하고 있다. (P.193, 해제)  &nbsp;  언제가 될지 솔직히 장담하기 어렵지만 &lt;완월회맹연&gt; 전권을 꼭 읽어보고 싶다. 아마 두 번은 읽지 못할 테니 단순한 버킷 리스트가 아니라 필생의 과업이라고 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573/36/cover150/8984775401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573364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송수진/e비즈북스) - [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26666</link><pubDate>Sat, 01 Aug 2026 1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2666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s://image.ala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833802&TPaperId=1742666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40/57/coveroff/k252833802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252833802&TPaperId=1742666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소비자의 마음을 읽어드립니다 - 2023 세종도서 교양부문</a><br/>송수진 지음 / e비즈북스 / 2023년 05월<br/></td></tr></table><br/>&lt;경험수집가의 시대&gt;보다 앞서 저술한 책이다. 이 책을 먼저 읽었더라면 굉장히 신선한 감흥을 얻었을 테지만, 이미 차기작을 읽었다면 그보다는 저자의 개념 정립이 출발한 지점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차기작과 이 책의 차이라면, 소비자의 새로운 속성으로 인식된 개념이 MZ세대의 특성과 부합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다.  &nbsp;  프롤로그에서 저자는 이 책의 요지를 명시한다. 소비자가 느끼는 불편, 불안, 낭비를 해결하면 성공적인 기업으로 올라설 수 있지만, 한 걸음 나아가 소비자에게 의미, 재미, 상징을 제공할 수 있다면 그 기업은 브랜드 자체가 하나의 아이콘이 되는 수준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이 왜 중요하냐면 특정 제품과 서비스로 기업을 판단하지 않고, 브랜드 자체가 기업의 가치와 경쟁력을 대변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nbsp;  1부에서 저자는 근년 들어 변화하기 시작한 소비자의 심리를 분석한다. 사실 소비자의 욕구는 예나 지금이나 크게 다를 바 없다. 내가 지불한 비용의 대가로 동급 또는 그 이상의 편익을 제공받기를 희망한다. 과거에는 전체적 틀에서 욕구 충족을 판단하였다면, 점차 개인화, 개성화가 중시되는 근년에서는 개인별로 차별화된 욕구의 중요성이 크게 증가하였다. 남이 만족스러워한다고 해서 내가 무조건 추종하지는 않는다. 나아가 개인의 욕구 자체도 전일적이지 않고 분화하기 시작하여 각 지점, 단계마다 원하는 욕구의 유형이나 수준이 같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런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하고 여기에 맞출 수 있어야 기업은 성공할 수 있다. 저자는 이를 ‘감시관’으로 요약한다.  &nbsp;  이 시대 소비자들의 심리를 요약해 이를 붙이자면 ‘감시관(감정 낭비 싫어요.시간 낭비 싫어요.관심 낭비 싫어요)’이라 하겠다. (P.41)  &nbsp;  이러한 심리적 불편은 획기적인 신기술이나 새로운 서비스의 제공으로 해결될 수 있지만, 기업이 소비자를 바라보는 태도와 관점만 바꿔도 크게 해소할 수 있다고 하며, 소비자들의 소비활동, 즉 고객 경험 여정을 세밀하게 분석함으로써 각 단계에서 불편 사항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고 성공적인 대안 제시로 급성장을 이룬 기업 사례를 제시한다. 아마존을 집중적으로 분석하고, 국내 기업 중에서 당근마켓, 런드리고, 삼성과 LG의 냉장고 전쟁, 김갑생할머니김, 해외 사례로는 토니스 초코론리, 하인즈 케첩, 태양의서커스를 예시한다.  &nbsp;  이들의 공통점은 감시관을 싫어하는 고객의 심리를 포착하고 적합한 불편, 불안, 낭비 해법을 제시하여 고객 경험을 부정적에서 긍정적으로 변화하도록 유도한다. 소비자는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뭔가가 긍정적 방향으로 달라졌음을 체감하는 순간 해당 기업의 제품이나 서비스를 선택하게 된다. 기업으로서는 여기까지 올라서기도 용이하지 않기에 불불낭을 해결하는 기업은 성공적인 기업으로 자리매김한다.   &nbsp;  소비자가 팬이 되는 브랜드에는 특징이 있다. 소비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보다 소비자가 열망하게 만든다. 이런 브랜드는 소비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문제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된다. (P.111)  &nbsp;  애플은 열렬한 추종자를 지닌다. 기술적, 가격적, 편의성 등에서 경쟁 제품에 취약점이 있더라도 고객은 이에 신경 쓰지 않는다. 영역은 다르지만 스타벅스, 테슬라도 유사하다. 고객은 애플, 스타벅스, 테슬라라는 브랜드 자체를 향유함에 자부심을 지닌다. 그들 브랜드는 더 이상 남의 것이 아니라 바로 고객 자신을 상징한다. 그들은 소비자에게 의미, 재미, 상징을 제공하여 고객이 브랜드를 내재화한 대표적인 사례다. 따라서 그들의 브랜드 로열티는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어느 기업이라도 그렇게 되기를 열렬히 바라지만 쉽지 않다. 그것은 기업의 일방적 바람과 노력만으로 되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그것을 경험하고 자신의 것으로 수용해야만 가능하다.   &nbsp;  2부에서 소비자 마음을 얻기 위한 몇 가지 전략을 제시하는데, 이는 성공적 사례에서 역추적하여 추출한 요인이므로 이를 그대로 따라 했다고 해서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다. 오레오와 블록버스터의 노스탤지어 마케팅은 장수 기업에서 관심 가질만한 전략이다. 포켓몬빵 열풍은 해당 게임에 대한 공통적인 향수를 지닌 세대를 겨냥하였다. 레트로는 과거 복제와 변용 사이의 절묘한 균형감이 중요할 것이다.   &nbsp;  근년에 급성장한 스타트업으로서는 젠틀몬스터와 트레바리 사례를 다루는데, 젠틀몬스터는 현시점에서 이미 이 단계를 넘어섰다고 봐야 하리라. 나는 가보지 않았지만, 성수동의 사옥은 자체로서 구경거리라고 한다. 유료 독서클럽 트레바리 이름도 여러 차례 들었다. 서비스 특성상 대중적으로 폭발적 각인이 어려움에도 꾸준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양자의 경우 고객은 해당 기업과 서비스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지위를 부여해 주는 상징을 발견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nbsp;  기업의 성장에는 기술적 요인이 중요하지만, 모든 기업이 기술 경쟁만 하는 건 불가능하다. 기술과 기술 사이의 간극에 잠복해 있는 페인 포인트의 해소, 기술 또는 서비스 경험의 새로운 차원 접근에서 고객이 갖는 만족스러운 구매 경험은 고객이 해당 기업과 브랜드에 무조건적 동질성을 촉진한다. 이러한 단계까지 이를 수 있다면 소비자의 마음을 얻는 브랜드는 영속성을 추구할 수 있게 된다.  &nbsp;  이렇게 브랜드에 몰이하고 결속된 소비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더 많이 더 기꺼이 제공할 것이다. 데이터와 고객 경험, 브랜드 가치가 서로 연결되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것이다. (P.247)  &nbsp;  원체 경영학 분야에 과문하여 변화하는 소비자의 심리를 저자처럼 명쾌하게 파헤친 경우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우연한 계기에 저자에 대해 알게 되어 그의 책 두 권을 연달아 읽었는데, 경영학도가 아니더라도 그리고 기업체 마케팅 담당자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저자가 계속해서 언급하고 분석하는 소비자의 특성은 특정 부류가 아니라 최근에 이슈가 되었던 MZ세대의 행동 특성을 대변하기 때문이다. 독자가 MZ세대라면 나의 선택과 행동 기저에는 이런 요인이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소위 기성세대라면 자신의 자녀와 후배들의 이해하기 어려운 심리와 행동 요인을 새롭게 인식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 상당히 흥미롭고 유익한 독서 경험이었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740/57/cover150/k252833802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740576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이안아 피콜로 &amp; 플루트 리사이틀 (2026.7.27)</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18787</link><pubDate>Wed, 29 Jul 2026 11:1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418787</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이안아 피콜로 &amp; 플루트 리사이틀일시 : 2026년 7월 27일(월) 19:30장소 :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연주 : 이안아 (피콜로/플루트), 문재원 (피아노)프로그램&nbsp; - 모차르트, 플루트 소나타 C장조 k.14 op.3, No.5 (피콜로)&nbsp; - G.Schocker, 피콜로 소나타 1번&nbsp; - 라이네케, "운디네" 소나타 Op.167&nbsp; - A.Rosenblatt, 카르멘 환상곡<br>* 세줄평실연으로 피콜로 연주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모차르트의 경쾌, 발랄과 쇼커의 현대곡다운 날카로움이 대비된다. 라이네케의 소나타는 근래에 알게 되어 차츰 좋아지게 된 곡인데, 물 흐르듯 넘실대는 플루트 선율이 아름답다. 로젠블랫의 카르멘은 친숙하면서 생소한 스타일이다. 연주 자체는 성실, 진지, 몰입으로 말할 것이 없는데, 거의 매 악장마다 끊이지 않는 박수소리를 포함한 청중 태도는 매우 아쉽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729/pimg_63920919594699666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418787</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