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ml version="1.0" encoding="utf-8"?><?xml-stylesheet href="https://blog.aladin.co.kr/blog/rss/rssUserXSL.aspx" type="text/xsl" media="screen"?><rss version="2.0"><channel><title>성근대나무, 책만 보는 바보 (성근대나무 서재)</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language>ko-kr</language><description>바람이 성근 대나무숲을 지나매 바람이 떠나면 대나무숲은 소리를 지니지 않는다. [채근담]</description><copyright /><generator>Aladdin RSS(Alss) v0.9</generator><lastBuildDate>Sat, 04 Apr 2026 20:55:45 +0900</lastBuildDate><image><title>성근대나무</title><url>http://image.aladdin.co.kr/Community/myface/PA_005.gif</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link><width>100</width><height>100</height><description>성근대나무</description></image><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안녕이라 그랬어 (김애란/문학동네) - [안녕이라 그랬어]</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5304</link><pubDate>Tue, 31 Mar 2026 00: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530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8530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off/s632135953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62039240&TPaperId=1718530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안녕이라 그랬어</a><br/>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06월<br/></td></tr></table><br/>&lt;수록작품&gt;홈 파티숲속 작은 집좋은 이웃이물감레몬케이크안녕이라 그랬어빗방울처럼  &nbsp;  신자유주의가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상황에서 소시민의 삶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시장과 자본의 신성성은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고, 경제적 여유의 수준은 인간적, 사회적 가치판단의 척도로 자리매김하였다. 더더구나 부동산 불패의 신화는 소시민이 재산 증식을 극적으로 도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하고 마지막 수단이 되었다.   &nbsp;  세상사를 지배하는 기본 원리를 경제적 이해관계가 차지함에 따라 재산의 많고 적음, 그리고 부동산, 특히 아파트의 소유 여부에 따라 사회계층이 구분되기 시작하였다. 친척과 친구의 부동산 무용담에 이제 우리는 너무나 당연하게 부러움과 시기심을 품을뿐더러 왠지 모를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었다. 사회의 경제적 흐름에 발맞추지 못한 루저로서의 낭패감이랄까.  &nbsp;  김애란 작가는 등단 때부터 유달리 소시민의 삶에 천착하였는데, 그것은 삶의 어둡고 괴로움을 묘사하면서도 한줄기 유머로서 빛을 잃지 않았기에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언제부터일지 김애란의 작풍은 변모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작품에서 밝음과 유머는 찾기 어려워졌다. 중견 작가인 그는 이제 세상과 삶의 파고에 지치고 싫증이 났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현실을 그 자체로서 냉엄하게 인식하게 되었을 수도 있다.   &nbsp;  &lt;좋은 이웃&gt;과 &lt;빗방울처럼&gt;은 내 집 마련의 사회적 파장을 다룬다. 내 집, 나아가서 빌라보다는 아파트, 아파트도 구축이 아니라 신축으로 경제적 가치를 범접할 수 없는 계급으로 나뉘는 우리네 현실에서 내 집은 단순한 자가의 의미가 아니다. 사회적 위상과 신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상이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게 살았을 뿐인데, 남에게 뒤처지는 패배감과 열등감. 게다가 나만 못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은 사람이 일거에 의기양양하는 장면. 그것은 삶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나아간다.  &nbsp;  시기니 질투니 하는 말도 모욕적이었지만, 무지니 게으름이니 하는 말도 부당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힘들게 한 건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었다. (P.120, &lt;좋은 이웃&gt;)  &nbsp;  젊은 윗집 부부와 시우 어머니를 향한 화자의 양가적 감정은 전세 사기로 일순간 풍비박산 난 가정으로 전락한 지수의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빌라 전세 후 아파트 청약 당첨으로 희망찬 내일을 꿈꾸던 찰나 모든 것이 무너지고 남편 수호는 스트레스로 세상을 떠난다. 지수와 수호 부부가 성실하지 못하였던가, 그들이 무모한 꿈을 꾸었던가. 그녀에게 삶은 더 이상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데, 외국인 도배 여자의 어눌한 한마디가 모국인보다 살갑게 다가온 건 차라리 웃픈 현실이다.  &nbsp;  평범한 소시민의 패배감은 &lt;이물감&gt;에서도 여전하다. 기득권층으로 분류되는 연령대이지만, 기태는 자신의 삶이 부정당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헤어진 희주를 놓지 못해 그녀의 SNS를 뒤적거리며 잠재적 연인에게 질투심을 느끼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 분별없는 우쭐감을 내보인다. 파트너 지수와도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다가 멀어진다. 그의 되새김질은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 실패한 소시민의 전형으로서 기태의 처지를 한마디로 압축한다. 뱉지도 못하고 삼키지도 못하는 그것은 신체적 병증이 아니라 마음의 나아가 삶 자체의 증상일 것이다.  &nbsp;  &lt;레몬케이크&gt; 속 기진은 엄마 선주와 다른 삶을 선택한다. 굳이 장사가 잘될 리 없는 책방을 개업했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실패를 암시한다. 손님도 들지 않는 책방에서 무시했던 돈과 노후는 그녀에게 현실로 다가온다. 돈은 있을 때는 잘 모르지만, 없고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치사한 존재다. 기진의 꿈과 낭만은 현실 앞에서 좌초 지경이다. 돌파구가 될 것으로 믿었던 유명 여행 작가의 행사마저 어처구니없이 취소되자 무력감에 빠진 기진의 눈에 세상사가 전혀 다른 결로 다가온다.  &nbsp;  ‘나만 겪는 일은 아닐 텐데. 누군가는 진작 감내해온 일일 텐데.’ 다들 대체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가는지 감도 오지 않았다. ‘어쩌면 다들 날마다 아무 내색 않고 일터에 나와 있는 걸까?’ (P.214, &lt;레몬케이크&gt;)  &nbsp;  경제적 승자와 패자의 현실과 인식이 절묘하게 엇갈리는 현장이 &lt;홈 파티&gt;다. 홈 파티의 주최자와 참여자는 최고경영자과정 동기 출신 모임이므로 사회적으로 나름 한가락 하는 신분이다. 여기에 가난한 여배우 이연의 참가는 사실 처음부터 어울리지 않는 등장이다. 젊었던 한때 연극에도 관심을 기울였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의 상류층으로 경제력이라는 단일한 기준으로 세상을 판별하는 모습이 이연의 눈에는 역겹고 위선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nbsp;  술의 힘을 빌린 이연의 결연한 한마디로 끝났다면 이 작품의 결말은 매우 밋밋하였으리라. 이연의 행동 실수 하나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꾸어놓는데, 이연의 연기와 오대표의 만족감의 근원은 다르다. 전자는 홈 파티에서 무사히 빠져나오기 위한 가장된 액션이며, 후자는 루저가 잘난 체해봤자 결국 그럴 뿐이라는 확신의 미소다.  &nbsp;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었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P.41, &lt;홈 파티&gt;)  &nbsp;  &lt;홈 파티&gt;와 반대되는 상황에 놓인 소시민 부부의 난처함이 잘 드러난 작품이 &lt;숲속 작은 집&gt;이다. 외국 휴양지에서 한달살이는 하나의 로망이다. 문제는 주택 메이드에게 팁을 주어야 하는지, 준다면 얼마나 주어야 하는지의 사소한 사안으로 불거진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자란 화자는 자기 부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는 엄마와의 관계 설정도 골치 아픈데, 여기서 메이드를 어떻게 대할지도 결코 편하지 않다. 상대적으로 유복한 집안 출신인 남편의 덤덤한 태도와 달리 팁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메이드를 대하는 화자의 시시각각 변하는 감정 양태는 결국 금전이 인간관계에 미치는 미묘한 영향을 예리하게 감지하는 화자의 감수성 덕분이라고 하겠다.   &nbsp;  평소에도 여러 번 들은, 눈 깜짝할 사이 폭삭 늙어버린 엄마가 내게 보낸 ‘고맙다’는 문자를 보자, 이상하게 그 말을 받은 게 아니라 언젠가 내가 상대에 준 무언가를, 아니 오랜 시간 상대가 내게 주었다 생각한 무언가를 도로 빼앗은 기분이 들었다. (P.86, &lt;숲속 작은 집&gt;)  &nbsp;  우리는 자주 착각한다. 나의 삶은 다른 사람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빛나고 아름다우며 의미 있고 보람찬, 한마디로 행복한 삶이 될 것이라고. 청춘을 지나 중년에 접어들면 우리는 깨닫는다. 세상이 그렇게 녹록하지 않음을. 내가 제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다람쥐 쳇바퀴 돌게 되고, 우물 안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는 게 엄혹한 현실임을. &lt;안녕이라 그랬어&gt;의 화자도 연하의 애인과 헤어진 후 어머니의 죽음으로 고향집에 주저앉아 나날을 소비한다.   &nbsp;  삶의 진부한 현상을 돌파하기 위해 원어민 화상영어 수업을 듣는 화자는 화면 속 강사 로버트와 대화를 주고받는다. 세상과 단절되어 고립된 화자에게 있어 로버트와 대화는 세상을 이어주는 유일한 끈이나 다름없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보다는 차라리 낯선 타인에게 진심을 털어놓는 경우가 있다. 세상에 다시 보지 못할 존재이므로 마치 나의 내밀하고 부끄러운 모습을 드러내도 덜 창피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화자와 로버트의 대화가 갖는 은근한 따스함은 이와 마찬가지가 아닐까. 우리는 화자의 앞날을 알지 못한다. 다만 ‘안녕’이라는 말의 또 다른 의미처럼 그저 평안하길 바랄 뿐이다. 진부한 말이지만 삶이 아무리 곤궁하더라도 그냥 버텨내길 바라면서.  &nbsp;  ‘삶은 대체로 진부하지만 그 진부함의 어쩔 수 없음, 그 빤함, 그 통속, 그 속수무책까지 부정하기는 어려운 것 같다’고. ‘인생의 어두운 시기에 생각나는 건 결국 그 어떤 세련도 첨단도 아닌 그런 말들인 듯하다’고 했다. (P.249)  &nbsp;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작품 해설은 사회학적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병리적 현상을 예리하게 짚어내는 작가를 포착한다. 금전적인 부라는 경제적 관점에서 사회, 윤리, 문화의 모든 영역을 재단하는 오늘날 세태. 기회에 재빨리 편승해서 안락과 우월감을 누리는 계층과 묵묵히 성실하게 자기 앞길만 걸었을 뿐인데 둘러보니 사회 밑바닥으로 가라앉은 계층의 대비. 소수의 성공자보다는 다수의 실패자가 대다수를 구성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서 우리네 대부분은 실패자, 패배자, 열등한 사람이기 마련이다.   &nbsp;  김애란의 작품은 그러한 사회병리 현상을 날카로운 시선과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그려 보인다. 작가는 화자와 독자에게 분명히 이 현상이 잘못임을 말하지만, 섣부른 위로를 더하지 않는다. 안녕이라 말하지만 거기에는 명시적 희망을 드러내지 않는다. 빛을 이야기하기에는 아직 날이 밝지 않았고, 어두운 동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6566/52/cover150/s632135953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6566521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금강반야바라밀경 - 조계종 표준 주석본 (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조계종출판사) - [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경 : 주석본]</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2116</link><pubDate>Sun, 29 Mar 2026 22:13: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8211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29021&TPaperId=1718211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57/coveroff/8993629021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3629021&TPaperId=1718211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조계종 표준 금강반야바라밀경 : 주석본</a><br/>대한불교조계종 교육원 불학연구소 엮음 / 조계종출판사 / 2009년 01월<br/></td></tr></table><br/>한 달여 전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만큼 다니시던 절에서 49재를 치르기로 하였다. 이때 가족이 경전을 필사하여 49재 당일에 소각하면 고인을 위해 좋다고 스님이 말씀하였다. 이에 따라 불교 경전 수업 겸 한문 공부를 위해 사경하기로 하였다.  &nbsp;  이 책을 고른 까닭은 어쨌든 금강반야바라밀경이 조계종의 소의경전이므로 종단 차원에서 공식 인정한 판본이 표준이라는 판단에서다. 한자 원문에 한글 독음이 실려 있고, 해석이 이어지는 형식이다. 일단 번잡한 해설이 없어 깔끔하고 두껍지 않다. 가끔 각주가 있지만 많지 않을뿐더러 건너뛰더라도 경전 이해에 큰 어려움은 없다. 맨 뒤에 미주와 색인이 있다.  &nbsp;  여래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을 얻은 법이 실제로 없다.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에는 진실도 없고 거짓도 없다. 그러므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다.’라고 설한다. 수보리여! 일체법이라 말한 것은 일체법이 아닌 까닭에 일체법이라 말한다. (P.64, 구경무아분)  &nbsp;  대충 이해한 바에 따르면 일체의 관념, 의식, 집착(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을 벗어나 보시를 행하되, 보시한다는 의식마저 존재하지 않을 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아누다라삼먁삼보리)에 이를 수 있다. 이때 가장 높고 바른 깨달음은 실체를 지니고 있지 않으며 어떤 정해진 법도 아니다. 말장난 같으면서 굉장히 심오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데, 정과 반을 모두 긍정하므로 변증법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nbsp;  이 얄팍한 경전이 조계종에서 그토록 중시되는 이유는 몇 장만 읽어보면 금방 알 수 있다. 부처가 수보리 장로를 비롯한 대중 앞에서 설한 내용으로 요지는 오히려 간단명료하다. 비구를 비롯한 중생들이 오해하지 않고 명확히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부처는 같은 얘기를 몇 차례 반복하여 들려준다. 부처 자신이 이 경전의 중요성을 직접 설파하는 것은 그만큼 여기 실린 내용이 가르침과 깨달음의 핵심이기 때문이리라.   &nbsp;  수보리여! 간단하게 말하면 이 경에는 생각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한없는 공덕이 있다. 여래는 대승에 나아가는 이를 위해 설하며 최상승에 나아가는 이를 위해 설한다. (P.55, 지경공덕분)  &nbsp;  이 경전은 다른 불경과 달리 분량이 짧고, 쉬운 어휘를 사용하며, 반복되는 내용도 많다. 그것은 독송용으로 최적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실제로 많은 불자가 즐겨 독송한다고 간행사에서도 밝힌 바 있다. 부처 또한 이 경전을 받고 지니고 읽고 외우는(受持讀誦) 행위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며, 하다못해 사구게만이라도 설하도록 권장한다.  &nbsp;  이 책은 매우 함축적이고 단정적인 문장으로 구성되었기에 솔직히 뜻풀이만으로는 부처의 가르침이 정확히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충분히 알기는 어렵다. 해설본이 불가피하게 필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nbsp;  일체 모든 유위법은 / 꿈.허깨비.물거품.그림자이슬.번개 같으니 / 이렇게 관찰할지라. (P.88, 응화비진분)]]></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2/57/cover150/8993629021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2576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이영신 피아노 독주회 (2026.3.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9983</link><pubDate>Sat, 28 Mar 2026 22:2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9983</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이영신 피아노 독주회 "루드비히 반 베토벤, 1826!"일시 : 2026년 3월 26일(목) 19:30장소 : 세종문화회관 체임버홀연주 : 이영신 (피아노)프로그램&nbsp;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4번 F#장조 Op.78&nbsp; - 베토벤,&nbsp;피아노 소나타 25번 G장조 Op.79&nbsp; - 베토벤,&nbsp;피아노 소나타 21번 C장조 Op.53 '발트슈타인'&nbsp; - 베토벤,&nbsp;피아노 소나타 22번 F장조 Op.54&nbsp; - 베토벤,&nbsp;피아노 소나타 23번 F단조 Op.57 '열정'<br>* 세줄평베토벤의 중기 소나타로만 꾸민 프로그램이다. 21번과 23번은 워낙 유명한 곡목이지만, 나머지는 솔직히 머릿속에 별다른 반향이 없다. 대중적인 작품은 기존 연주와 차별점이 포인트이며, 마이너 작품은 곡의 아름다움과 존재가치를 각인시키는 게 핵심일 것이다. 연주는 무난한 듯한데, 이날 몸상태가 좋지 않아 음악에 오롯이 집중하기 어려워 아쉬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28/pimg_7093891535074439.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998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이현지 바이올린 독주회 - 브람스의 밤 (2026.3.24)</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1174</link><pubDate>Tue, 24 Mar 2026 23: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1174</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이현지 바이올린 독주회 - 브람스의 밤일시 : 2026년 3월 24일(화) 19:30장소 : 금호아트홀 연세연주 : 이현지 (바이올린), 권효진 (피아노)프로그램&nbsp;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1번 G장조 Op.78&nbsp;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2번 A장조 Op.100&nbsp; -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3번 D단조 Op.108<br>* 세줄평소슬하고 스산하다. 역시 브람스는 가을에 어울린다. 아직 본격적인 봄이 아니라 충분히 음미할 수 있어 다행이다. 연주자는 브람스의 음색 구현에 성공하였다. 조심스러운 가운데 충분히 열정적인 악구에서도 눈부신 비상과는 거리를 둔 내향적인 울림. 화려하지 않지만 매우 음악적인 공연이었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24/pimg_7093891535069413.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7117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비잔티움의 역사 (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최하늘/더숲) - [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8451</link><pubDate>Mon, 23 Mar 2026 19:2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845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1424&TPaperId=1716845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56/82/coveroff/k992831424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992831424&TPaperId=1716845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비잔티움의 역사 - 천년의 제국, 동서양이 충돌하는 문명의 용광로에 세운 그리스도교 세계의 정점</a><br/>디오니시오스 스타타코풀로스 지음, 최하늘 옮김 / 더숲 / 2023년 02월<br/></td></tr></table><br/>비잔티움 제국, 즉 동로마 제국의 역사 개설서다. 동로마 제국은 서양 중심의 세계사에서 주역으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국가다. 대다수의 서양인은 로마 제국의 최후를, 서로마 제국의 멸망으로 간주한다. 로마 제국, 서로마 제국, 프랑크 왕국, 신성 로마 제국으로 이어지는 계보를 로마의 적통으로 본다. 그리스어와 정교가 중심인 동로마 제국은 로마의 후손이지만 방계 정도로만 여길 뿐이다.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노플 함락 정도가 일반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수준이 아닐까.  &nbsp;  동로마 제국의 출발을 395년 또는 476년으로 볼지 관점은 다를 수 있다. 다만 동로마 제국의 멸망을 일단 1453년 콘스탄티노플 함락과 황제의 죽음으로 기준 삼는다면, 길게는 천 년 이상, 짧게는 천년 가까이 존속하였음은 확실하다. 역사상 일국의 정체가 천년을 버틴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므로 역사적으로 보기 드문 사례가 아닐 수 없다.  &nbsp;  이 책의 장점은 일단 저자가 그리스인이므로 동로마 제국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서구 주류와 다른 새로운 시각을 보여 줄 수 있음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이 책에서 사용하는 비잔티움의 이름과 지명을 기존의 라틴어식, 영어식 표현이 아니라 그리스어식으로 표기했다는 점이다. 비잔티움인들의 주체적 인식을 존중한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또 하나 독자의 쉬운 이해를 위해 관례상 비잔티움이라는 어휘를 사용했지만, 문제가 있는 용어임을 주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비잔티움 제국 또는 문명 표현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비잔티움 제국이 로마 제국과 구별되는 별개의 국가라는 인식을 유발해서다. 비잔티움 사람들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자신들이 로마인임을 한 치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런 면에서 차라리 동로마 제국이 더 낫다.  &nbsp;  동로마 제국의 영토는 동서 문화와 민족의 교차 지역이기에 안정된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서쪽으로는 게르만족과 슬라브족의 계속된 침입, 동쪽으로는 이슬람과 페르시아, 셀주크와 오스만 등이 호시탐탐 아나톨리아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노렸다. 저자에 따르면 장기간의 역병 발생과 지진의 빈발 등 환경적 어려움도 커서 심각한 인구 통계적 위기에 직면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아나톨리아와 발칸반도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마케도니아 왕조 시절을 영토적으로도 문화적으로도 제국의 중세 전성기라고 평하는 점이 새롭고 흥미롭다.   &nbsp;  마케도니아 르네상스는 새로이 피어난 강력한 로마 제국 자체인 비잔티움 제국이 지성 세계에서도 서방을 압도할 수 있음을 보여 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P.223-224, 5장)  &nbsp;  동로마 제국과 관련하여 종교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로마 교회와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사이의 교리를 둘러싼 차이는 교회 간 상호 파문으로 이어졌고, 이는 끝내 가톨릭교와 정교로 기독교가 분파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게다가 정교 내부에서도 성상 인정과 파괴를 둘러싼 치열한 종교적 갈등이 제국을 뒤흔들었으니, 가톨릭교와는 달리 정교는 황제가 총주교보다 우위를 점하는 일종의 제정일치 사회여서다.  &nbsp;  1204년 4월에 일어난 십자군의 콘스탄티노폴리스 정복과 약탈은 비잔티움 제국의 역사를 결정지었다. 도시 자체는 1261년에 탈환되었지만, 함락에 비롯된 정치적.경제적.인구적.문화적 여파는 중세 이후 비잔티움 세계에 남아 있었다. (P.261, 7장)  &nbsp;  이처럼 언어와 종교가 다르니 동일한 문명권이라고 인정하기 어렵게 된 상황에서, 서구와 동로마를 결정적으로 틀어지게 만들고 동로마의 멸망을 재촉하게 만든 사건이 바로 십자군 전쟁, 특히 콘스탄티노폴리스를 공략하여 무너뜨린 4차 십자군이다. 이슬람 적국이 아니라 어쨌든 같은 기독교 문명권인 동로마 제국이 한순간 무너지면서 60년 가까이 지나서야 겨우 후속 국가인 니케아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되찾았지만, 이후 동로마 제국은 다시는 예전의 세력을 회복하지 못하였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동로마 제국을 멸망으로 이끈 결정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nbsp;  이후 동로마 제국인들은 서방 세계를 믿지 않고 적대시하게 되었고, 쇠퇴한 동로마 제국을 서방 세계는 경시하고 함부로 대하기 시작하여 두 체제의 단합은 요원하게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포위하여 풍전등화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서방 세계의 구원 의지가 강력하지 않았음을 이를 보여 준다. 그들에게 비잔티움은 이미 다른 세계에 속해 있으므로.  &nbsp;  저자는 두 가지 독자적 의견을 제시한다.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이 곧 동로마 제국의 멸망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펠로폰네소스 반도와 에게해 섬 지역에 여전히 비잔티움의 영토가 오랜 기간 존속하였기에. 하지만 제국의 수도와 황제가 종말을 맞이했고 응집력 있는 대안세력이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멸망이라고 간주하는 게 타당하다고 본다.  &nbsp;  십자군 전쟁의 단초가 된 알렉시오스 1세의 구원 요청에 대한 해석이다. 보통은 셀주크 세력에 위협을 느낀 황제의 절박한 구원 요청에 교황이 나서서 호소함에 따라 최초의 십자군이 구성되었다고 본다. 저자는 다른 주장을 펼치는데, 당시 셀주크의 세력은 제국의 명운에 위협을 가져올 정도가 아니었고, 황제는 서방의 용병으로 셀주크와 대적하려는 의도 정도였다는 것이다. 거대한 십자군의 움직임은 황제와 동로마 입장에서도 당혹스러운 사태 전개였다는 점이다. 어쨌든 대규모의 군대가 자국 영토를 통과해 간다는 점은 어느 지배자든지 부담스럽게 여길 것은 자명한 일이다. 흥미로운 사안이다.  &nbsp;  어쨌든 동로마 제국의 멸망에 내부적 책임은 결코 면할 수 없다. 제국이 공국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음에도 지배층은 알량한 권력 다툼으로 국세를 키우기 위한 노력을 등한시한 점은 분명 사실이므로. 다만 그러함에도 동로마 제국의 의의를 과소평가하는 시각은 잘못이다. 비잔티움은 천년을 존속하였다. 저자의 발언처럼 비잔티움 역시 역사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하고자 했지만 이를 잘 수행하지 못하였을 뿐이다. 근대 서구 사상가들이 비잔티움 세계를 폄하한 것은 마치 어린이가 할아버지의 현재 모습만 보고 늙고 병든 존재라고 인식하는 편견에 불과하다. 동로마 제국의 큰 흠결은 너무 오래 살아남았다는 점이다.  &nbsp;  이 책은 그동안 찾아보기 어려웠던 동로마 제국의 역사 전반을 충실히 소개한 점에서 의의가 크다. 정치와 군사적 관점에서만 관심을 쏟지 않고, 사회, 경제, 문화적 측면도 균형 잡고 기술하려는 노력도 엿볼 수 있다. 무엇보다 서방에 편중된 시각에서 탈피하여 보다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천년 제국의 실체를 독자에게 알리고자 한 점이 돋보인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056/82/cover150/k992831424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056825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알폰스 무하 (조명식/재원) - [알폰스 무하]</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6901</link><pubDate>Sun, 22 Mar 2026 23: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6901</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750595&TPaperId=17166901"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5/19/coveroff/8955750595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5750595&TPaperId=17166901"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알폰스 무하</a><br/>조명식 지음 / 재원 / 2005년 03월<br/></td></tr></table><br/>알폰스 무하 관련 글과 작품을 더 감상하고 싶어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이다. 미술 전문 출판사의 아트북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책이므로 일반적인 도서와는 기획과 판형, 구성이 다소 다르다. 판형은 265*220mm로 통상의 신국판, 국판, 46판보다 커서 그림 감상에 유리하다. 특히나 작품 한 점을 한 면 가득 수록한 경우는 눈이 시원할 정도다. 지질과 색상도 아트북답게 신경 쓴 자취가 역력하다. 분량도 79면으로 많지 않아 전체적으로 화보의 느낌이 든다.  &nbsp;  아무래도 보는 책이 주가 되다 보니 단점으로 여길만한 부분도 있다. 알폰스 무하의 생애와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고, 수록된 개개 작품에 대한 소개도 기본 정보 외에는 따로 제공하고 있지 않다. 기획 의도를 볼 때 알폰스 무하라는 예술가를 처음 접하는 독자를 위한 소개서의 성격이 강하다. 화가 연보가 앞부분에 바로 나오는데, 흔히 보던 간략한 연보가 아니라 8면에 걸쳐 세밀하게 내용을 담고 있어 무하의 삶과 주요 작품에 대한 정보를 부족하나마 얻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nbsp;  무하의 주요 작품, 즉 극장 포스터, 광고 포스터, 잡지 표지, 4개의 OOO 시리즈는 물론 무하 스타일을 특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장식집과 장식 자료집의 도안도 일부 보여준다. 대다수의 작품은 앞서 읽은 책과 중첩되는데, 몇몇 새로운 작품이 눈에 띈다. &lt;슬라브 서사시&gt; 연작도 다섯 편을 수록하고 있다. 앞서 읽은 책과 비교하면, 적어도 그림의 품질에서는 이 책이 압도적으로 우위에 있다. 보다 고급지를 사용하고, 색분해도 더 충실하여 동일한 작품을 나란히 비교하면 다른 느낌을 자아낼 정도다. 특히 &lt;살람보&gt;(P.66)는 완전히 다른 그림으로 보일 정도다. 확실히 이 책의 그림은 컬러감이 훨씬 더 살아 있다는 인상이다.  &nbsp;  한편 프라하의 무하박물관 외에 일본의 무하미술관과 사카이 시립문화관에서 그의 작품을 여럿 소장하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체코를 제외하고 무하에게 이렇게 관심을 기울인 곳이 있었나 의외인 동시에 놀라울 따름이다. &lt;르페브르 유틸사의 광고 포스터&gt;(P.14), &lt;사계절&gt; 시리즈(P.16-17), &lt;새벽&gt;과 &lt;황혼&gt;(P.25), &lt;토스카 홍보 포스터&gt;(P.33), &lt;살람보&gt;(P.66), &lt;꽃들&gt;(P.70), &lt;쿼바디스&gt;(P.74) 등이 그러하다. 프라하에 앞서 먼저 일본을 가봐야겠다.  &nbsp;  일단 무하의 작품은 사전 지식 없이 둘러봐도 흥미롭다. 다만 무하의 아르누보 스타일에 대한 추가적 설명과, 그의 후반기 작품세계를 대표하는 &lt;슬라브 서사시&gt;와 슬라브적 제재의 작품에 대한 해설을 덧붙였으면 금상첨화였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nbsp;  이 책은 전체적으로 알폰스 무하가 누군지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짧은 시간에 그를 알리는 데 효과적이다. 본격적인 접근보다는 그림 감상 위주로 무하라는 예술가를 부담 없이 알고 싶어 하는 독자를 위한. 그런 측면에서는 꽤 괜찮은 책이라는 점을 인정해야겠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5/19/cover150/8955750595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5198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88회 아트엠콘서트 - 최송하 무반주 바이올린 리사이틀 (2026.3.19)</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0834</link><pubDate>Thu, 19 Mar 2026 22:5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0834</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88회 아트엠콘서트 - 최송하 무반주 바이올린 리사이틀일시 : 2026년 3월 19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최송하 (바이올린)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크라이슬러, 레치타티보와 스케르초-카프리스 Op.6&nbsp; -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파르티타 2번 D단조 BWV1004&nbsp; - 이자이, 무반주 바이올린을 위한 소나타 3번 D단조 Op.27 No.3<br>* 세줄평바이올린의 음색과 연주자의 실력을 남김없이 드러내는 고독하며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프로그램이다. 연주자는 물론 청중에게도. 바꾼지 한달 남짓 되었다는 스트라디바리 덕분일까 매우 섬세하다. 연주자와 악기가 아직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 있는 듯. 열정으로 휘몰아치거나 강인한 울림을 선사하는 순간에도 미묘한 음색과 여린 듯한 섬세함을 놓치지 않는다. 작년에 들었던 최송하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319/pimg_709389153506435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6083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목성균 수필 전집 : 누비처네 (목성균/연암서가) - [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56114</link><pubDate>Tue, 17 Mar 2026 18:0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561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12X&TPaperId=171561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833/97/coveroff/899405412x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405412X&TPaperId=171561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누비처네 (양장) - 목성균 수필전집</a><br/>목성균 지음 / 연암서가 / 2010년 12월<br/></td></tr></table><br/>수필가 목성균. 소설가 이름도 잘 알지 못하는 마당에 수필가 이름은 어찌 알겠는가. 애초 이 책을 구매하게 된 계기도 불순하다. 온라인 마켓에서 새책 같은 헌책을 몇 권 살 때 싼 맛에 가격대를 맞추기 위해 끼워넣기로 추가하였으니. 가격 대비 두툼한 면수가 최소한 손해는 보지 않을 거라는 얄팍한 계산으로. 막상 사놓고나니 계륵 같은 처지가 되었다. 제법 얄팍해야 부담 없이 손이 갈 텐데, 600면이 넘은 분량이 오히려 부담으로 다가왔다. 한동안 방치해놓고 째려보다가 여하튼 킬링타임용으로 한번 읽어나 보자 하는 심정이 독서의 계기다.  &nbsp;  이 책은 목성균의 수필 전집이다. 그가 평생 발표한 수필 작품을 모두 수록한 책이라는 의미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발간사와 해설을 먼저 살펴보니, 그는 애초부터 전업 수필가의 길을 나선 게 아니라 공직 생활에서 퇴직한 이후, 나이로는 50대 중반이 되어야 비로소 글쓰기를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불과 10년도 못 미친 채 60대 중반에 생을 마쳤으니 달랑 이 책 한 권에 그의 수필 작품 모두가 들어가게 된 셈이다.  &nbsp;  김종완 문학평론가는 그를 ‘수필계의 기형도’(P.5)라고 소개한다. 사망한 나이는 차이가 있지만, 짧은 활동기간과 사후의 높은 평가의 유사점에 주목한 것이리라. 그게 과연 타당한지는 작품집의 독자가 판단한 몫이다. 아무래도 소설에 비해 대중성이 부족한 장르인 수필 특성상, 그가 폭발적인 찬사와 호응을 받는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게다가 개인적으로 수필 작품은 한 번에 쭉 읽어 나가기보다는 몇 편씩 간격을 두고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한다는 선입견을 지니고 있게 이 책의 독서는 감흥과 몰입의 균형을 잡기 힘들었다.  &nbsp;  노년에 글쓰기를 시작한 만큼 작품 소재가 회고와 추억이라는 과거지향성을 지님은 그의 작품세계의 뚜렷한 특징이다. 이 책에 실린 거의 대다수 작품이 여기 유형에 속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의 소년과 청년 시절이 우리나라가 한창 힘들고 어렵던 시기의 농촌이었던지라 오늘날 시각으로 보면 현대와 상당한 시간적, 문화적 간극이 존재한다. 표제 ‘누비처네’만 하더라도 무엇을 뜻하는지 읽기 전까지는 미처 알지 못하였다. 다랑논, 부엌 궁둥이, 사기 등잔, 살포, 부등가리, 돼지불알, 당목수건 등 용어 자체가 생소한 어휘와 거기 얽힌 일화는 우리에게 이미 잊힌 옛 시골 문화를 - 궁핍하지만, 그 속에서 정이 넘치는 - 되새기게 해준다. 아예 젊은 세대라면 지나간 세대의 문화를 글로나마 체험할 수 있다고나 할까.  &nbsp;  고향은 사라져 가도 내리는 눈발 속에 내 고향이 남아 있다는 것이 나의 재산인데 누구에게 물려줄 수 없는 무형의 재산일 뿐이다. (P.439, 고향설)  &nbsp;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강만돌 어른, 원규 어르신네, 고모부를 비롯한 선대 가족과 이웃의 삶은 자체로 개인사이자 풍토사의 한 장을 이룬다. 나이가 들수록 점점 사무쳐 가는 옛 추억과 부모님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회고적 감정만이 아니다. 가족과 고향은 단순히 과거의 사람과 유물이 아니라 우리네 삶의 원형과 기초를 이루는 요인이 아니던가. 덕택에 우리는 풍요로운 영혼을 바탕에 깔고 힘차게 현재와 미래로 뻗어나갈 수 있었다. 아무래도 요즘 사람이 아닌 만큼 그의 글에 비치는 문화와 가치관은 전통적인 동시에 자칫 고리타분하고 보수적으로 여겨질 개연성이 있다. 그건 작가 또래가 갖는 무의식적 관습의 세례 결과이므로 비판적으로 보기보다는 시대상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열린 접근이 필요하다.  &nbsp;  작가는 평생을 산림 공무원으로 봉직하였다. 여러 작품에서 이때의 경험과 추억을 드러내고 있는데, &lt;2부 혼효림&gt;에 실린 ‘목도리’, ‘선배의 모습’, ‘어떤 직무유기’, ‘혼효림’, ‘약속’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소나무와 참나무가 조화를 이룬 숲을 예찬한 ‘혼효림’과 함께 산골 소년과의 다시 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자괴감이 마음에 남는다.   &nbsp;  목성균의 글이 그렇다고 죄다 과거지향은 아니다. 도중에 솟구치는 현재성을 여러 군데서 볼 수 있다. 현재 거주지인 청주시에서 열리는 체육대회에 대한 기대감(‘새벽의 거리’), 기러기 떼가 앞자리를 서로 교대하는 행태와 정치 상황을 비유하거나(‘앞자리’), 의료 수가 관련하여 의사가 단체행동을 나선 것에 대한 호소(‘의사 선생님께’), 정치 상황에 대한 우려와 바람(‘봄비와 햇살 속으로’) 등, 그는 현재에도 시선을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nbsp;  현재성의 다른 갈래는 고향과 현재 거주지가 아닌 타지와 타인에 대해 쓴 글이다. &lt;4부 불영사에서&gt;에 실린 몇 편이 주로 여기에 해당하는데, ‘간이역’, ‘거진항의 아침’, ‘불영사에서’, ‘전장포’ 등이다. ‘억수리에서’는 자식과 손주 사랑이 결합되어 있는 점에서 손주를 제재로 삼은 ‘여덟 살의 배신’과 더불어 드물게 보는 가족적 모습이다. 그것은 빛이 나는 따뜻한 사회를 이루게 되는 이웃 간 서로가 상대를 향한 배려의 모습이 빛이 나는 관계와 다를 바 없다.   &nbsp;  그 수족이 불편한 아주머니는 나의 이 행복감에 차질을 주지 않으려고 고구마가 안 팔리는 그 추운 겨울밤에도 몇 시간씩 내가 지나갈 때까지 기다려 준 것이다. (P.489, 행복한 군고구마)  &nbsp;  생계와 가족 부양이라는 생활의 압력에서 작가는 스스로의 인생을 뜻을 이루고 성공한 삶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하급 공무원으로 평생 지내다가 은퇴했으니 물질적 측면에서 풍요롭지 못함은 그의 글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자신의 삶을 쭉정이라고 비판적으로 인식하지만 그의 수필 작품을 읽은 독자로서는 그야말로 ‘올 찬 알밤’(P.200)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리라.   &nbsp;  그의 글은 젠체하지 않아서 좋다. 특별히 대단한 학식을 뽐내거나 심오한 사상을 피력하지도 않는다. 담담하고 평이한 문장 속에서 잔잔한 감흥이 깊게 배어 있어 은근한 묘미와 곱씹는 단맛을 독자에게 제공한다. 아무 반찬 없이 흰 쌀밥을 꼭꼭 씹으면 느낄 수 있는 그런 은은함이랄까.  &nbsp;  나는 통속적인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내 수필도 문학적 테크닉보다 인간의 속성에 기대하는 바 크다. (P.385, 봄비와 햇살 속으로)  &nbsp;  자신의 수필 문학에 대한 작가 자평이다. 그의 수필이 지향하는 인간주의적 성향이 결코 일과성이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아주 다채로운 문학 지평을 보여 주지 않지만 – 그러기에는 작품활동이 길지 않다 – 그의 작품을 통해서 우리는 잃어버린 옛 시절과 풍습과 사람을 정겹게 추억할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되었다. 전혀 내키지 않은 우연한 계기로 그의 글에 접하게 되었지만 무척 행복한 마음으로 독서하게 되어 기쁘게 생각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833/97/cover150/899405412x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833978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로마 제국의 역사 (이경윤/삼양미디어) - [로마 제국의 역사 - 상식으로 꼭 알아야]</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44970</link><pubDate>Wed, 11 Mar 2026 23:40: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4497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972017&TPaperId=1714497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759/19/coveroff/8958972017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58972017&TPaperId=1714497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로마 제국의 역사 - 상식으로 꼭 알아야</a><br/>이경윤 지음 / 삼양미디어 / 2010년 08월<br/></td></tr></table><br/>그동안 로마 제국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책을 여러 권 읽었지만, 로마 제국의 역사는 머릿속에 일목요연한 체계 없이 산발적으로 흩뿌려진 상황이었다. 로마 제국의 초기인 왕정과 공화정 시기, 5현제 이후 혼란스러운 시기가 특히 그러하였다.   &nbsp;  로마 제국 역사 개설서를 찾다가 이 책을 선택한 계기는 일단 너무 두껍지 않아서이다. 1천 쪽이 넘어가는 단권 도서나, 여러 권으로 이루어진 책은 우선 기본 체계가 든든한 이후에나 도전해 볼 일이다. 이 책은 부제처럼 ‘상식으로 꼭 알아야 할’ 핵심적 내용만 쉬운 설명과 풍부한 컬러 사진과 도판으로 구성하여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다. 저자가 역사 전문가가 아닌 만큼 깊이 있는 학문적 통찰을 기대하기 어렵지만 그만큼 보편타당한 기술을 기대할 수 있다.  &nbsp;  흔히 로물루스와 레무스 형제를 로마의 시초로 간주하지만, 로마는 스스로를 트로이의 후손으로 간주하였다. 트로이 멸망 후 아이네이아스가 유랑하다가 로마의 모체가 되는 나라 라비니움을 건설하였고, 그 후손 아스카니우스가 새롭게 세운 나라가 알바롱가라고 한다. 다시 로물루스가 고대 로마를 건국한 해가 기원전 753년이라고 하니 라비니움 이후로는 수백 년이 경과한 시점이다. 신화와 과장이 섞였겠지만 로마의 뿌리가 유서 깊음을 보여준다.  &nbsp;  고대 로마에서 주목할 만한 사건은 먼저 왕정이 무너지고 공화정으로 바뀌게 된 계기인 루크레티아 사건이다. 그리고 코리올라누스 사건은 귀족 중심의 공화정에서 평민의 권리가 크게 강화된 계기가 되었다. 둘 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제재가 되었으니 흥미롭다.  &nbsp;  중부 이탈리아의 일개 소국이었던 로마는 점차 패권주의를 지향했으니, 라틴동맹 전쟁과 삼니움 전쟁을 통해 중부 이탈리아를, 에피루스와 전쟁을 통해 남부 이탈리아마저 장악해 버린다. 그리고 지중해로 눈을 돌리게 된다. 에피루스와 전쟁에서 카르타고와 로마가 동맹국이었음은 중요치 않다. 서부 지중해를 움켜쥐려면 카르타고는 꺾어야 할 적이고, 한니발과 스키피오의 대결로 유명한 역사적 장면은 로마의 승리, 카르타고의 멸망으로 끝난다. 이후 마케도니아와 동부 지중해를 걸고 다시 전쟁을 벌여 지중해를 완전히 로마의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후 로마의 팽창주의는 소아시아, 이집트, 프랑스, 잉글랜드, 독일 등으로 뻗어 나갔으니 제국주의적 침략의 본능이 로마에 꿈틀대었다고 하겠다. 팍스 로마나,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와 같은 문구는 이 당시 로마의 번영과 영광을 잘 드러낸다.  &nbsp;  급격한 팽창은 내부의 체제를 불안정하게 하였고 그라쿠스 형제의 개혁은 실패로 돌아가서 이를 해결할 방안은 강력한 일인 지배만 남게 되었다. 카이사르에 앞서 마리우스와 술라가 있었고, 카이사르의 암살은 옥타비아누스로 이어지는 대세를 결코 막아서지 못하였다. 아우구스투스 이후를 제정 로마라고 부르는 이유다. 마리우스와 술라에서 아우구스투스까지의 급변하는 정치적 격변기는 로마 시대에서 여러 문학과 예술을 통해 일반인에게 널리 알려진 시기다.   &nbsp;  저자는 아우구스투스가 긴축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도나우강-라인강에서 도나우강-엘베강으로 국경선을 단축하고자 무리하게 게르마니아를 침공하였다고 썼는데, 당시 쓸모도 없는 북방 진출의 이유를 밝혀주기에 흥미롭다. 한편 칼리굴라와 네로로 대변되는 로마제정의 위기는 5현제 시대를 거치며 비로소 안정과 번영으로 접어든다. 정말로 인류가 가장 행복했던 시대인지는 알 수 없으나, 피우스에 대한 평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nbsp;  어떤 역사가는 피우스 재위 기간을 역사에 기록할 것이 없는 시대라 평하기도 한다. 피우스는 실로 로마의 평화를 달성한 황제였던 것이다. (P.308-309)  &nbsp;  철학자 아우렐리우스를 마지막으로 5현제 시대는 끝나고 콤모두스를 필두로 무능한 황제를 잇달아 등장하는데 거론된 이름을 기억조차 못 할 정도다. 디오클레티아누스가 사두정치 제제를 도입한 것은 미봉책이었고, 콘스탄티누스가 힘들게 재통합을 이루었는데, 왜 다시 분할하였는지 알 수 없다. 콘스탄티노플의 건립자,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밀라노 칙령으로 역사상 유명한 이 황제는 로마 제국 영구 분할의 단초가 되었다. 서로마제국과 동로마제국은 편의상 구분에서 별개의 통치 체제로 갈라서게 된다.  &nbsp;  서로마제국의 멸망 원인 : 농업 기반, 인구, 인재, 군사력 (P.371)  &nbsp;  저자는 서로마의 멸망 원인을 이렇게 적시한다. 에드워드 기번에게서 비롯한 전통적인 내부 원인론을 따르는데, 로마 제국의 힘이 다해서 외침에 쉽게 무너졌다고 주장한다. 일면 타당하지만 최근의 연구 성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각종 역사적 사실을 고찰해 보면 로마 제국은 멸망하는 순간까지도 사회적, 경제적으로 성장을 거듭하고 있었다고 한다. 즉 내부적 위기 요인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게르만족의 침입이라는 거대한 역사적 물결 앞에서 댐이 무너지듯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는 주장이다.  &nbsp;  이 책의 내용을 따라 간략히 로마사의 흐름을 되짚어 보았다. 대다수의 역사서는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로마제국은 종말을 맞이했다고 서술한다. 이건 매우 서양 편향적인 인식이다. 동로마제국이 라틴어와 라틴족이 아니라 그리스어와 그리스족, 종교도 가톨릭교와 정교로 달라졌기에 로마의 적통이 아니라고 주장함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기원전 753년을 로마 역사의 기점으로 본다면 서로마는 1,200년을, 동로마는 2,200년을 지탱한 것이니 하나의 국가가 이렇게 긴 수명을 영위한 것은 세계사에서 전무후무하다. 게다가 단순한 수명을 넘어 서양문명에서 로마가 차지하는 위상은 대체 불가능할 정도이니 로마 제국은 두고두고 세인들의 관심을 끌 만한 매력적인 역사적 소재가 아니겠는가. 무엇보다 이 장구한 세월을 숱한 위기와 불안정에도 불구하고 힘겹지만 끝끝내 견뎌낸 원동력이 무엇인지를.  &nbsp;  부록으로 최초의 성문법이라고 불리는 고대 로마의 12표법 전문을 수록하고 있어 이채롭다.   &nbsp;  생각 이상으로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이었고, 이를 토대로 향후 동로마제국 역사서를 훑어보고 기회가 되면 몸젠의 로마사, 마키아벨리의 논고, 로마사의 원형인 리비우스의 저작도 도전해 보고 싶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759/19/cover150/8958972017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759192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장우진/알에이치코리아) - [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8714</link><pubDate>Sun, 08 Mar 2026 22:4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8714</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89109&TPaperId=17138714"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30/64/coveroff/8925589109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25589109&TPaperId=17138714"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알폰스 무하, 새로운 스타일의 탄생 - 현대 일러스트 미술의 선구자 무하의 삶과 예술</a><br/>장우진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02월<br/></td></tr></table><br/>우연한 계기로 알폰스 무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전혀 모르던 화가였으나 소개글과 예시 작품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끌렸다. 내가 회화에 대해 무엇을 알겠는가. 다만 초기의 무하가 창시한 독자적인 무하 스타일은 눈길을 끌만큼 화려하였다. 상업적인 포스터와 상품 디자인 등을 한껏 예술적으로 수준을 높여 버렸다. 이렇게 해버리면 매혹당하지 않을 관객이 누가 있겠으며, 후배 상업 화가들은 어떻게 하라는 건지 난감하겠다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나는 잘 몰랐는데, 의외로 아는 사람들이 주변에 있어 놀랐다. 사무실 직원 한 명도 관심을 보였고, 처남 친구는 애호하는 화가라고 하였다.  &nbsp;  알폰스 무하의 삶과 예술을 더 음미하고 싶어져 이 책을 골랐다. 전시회에서도 나름 충실하게 소개가 되어 있었지만, 차분하게 살펴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체코 모라비아 시골 출신의 그가 파리에서 유행을 선도하는 상업 예술가로 큰 인기를 얻었고, 이후 미국과 체코에서 일체의 상업성을 배제한 &lt;슬라브 서사시&gt; 연작 등으로 진정한 예술가로 불후의 영예를 거둔 일생은 그 자체가 극적인 선택의 연속이다.  &nbsp;  무하의 예술적 성취에 있어 우연과도 같은 인연을 제외하기 어렵다. 그의 재능을 높이 평가해 무명의 그를 후원한 벨라시 백작과 에곤 백작 형제가 없었더라면 그는 계속 변방에 머물러야 했으리라. 여배우 사라 베르나르는 배우와 예술가의 성공적인 윈-윈 협력 관계를 보여준다. 사라 베르나르의 포스터 의뢰가 없었다면, 그리고 무하의 장식적인 포스터 작품이 없었더라면 무하와 사라 둘 다 불후의 명성을 남기지 못하였을 것이다. &lt;지스몽다&gt;, &lt;카멜리아&gt;, &lt;메데&gt;, &lt;햄릿&gt;, &lt;토스카&gt;, &lt;로렌자치오&gt; 같은 포스터는 언뜻 유사한 스타일이지만 그 속에 담긴 인물의 표정과 상징, 배경, 장식은 변주를 통해 독자적인 가치를 드러낸다.   &nbsp;  아름다운 백합의 화관, 화려한 장식, 정돈된 윤곽선 안에 굽이치는 머릿결과 사실적인 표정. 그것은 사라 베르나르를 나타내는 전형인 동시에 아르누보의 독특한 여인 이미지로 자리 잡아 갔다. (P.80)  &nbsp;  아내 마리 히틸로바와 그의 자녀의 존재도 무하가 흔들림 없이 자신의 길을 걷도록 지탱해 준 원동력이다. 무하 예술의 보전과 홍보에 지치지 않았던 두 자녀야말로 훗날 무하의 예술이 재평가되는 데 일등 공신이다. 미국인 사업가 크레인은 무하가 생활에 일체 신경 쓰지 않고 &lt;슬라브 서사시&gt; 연작에 몰두할 수 있는 경제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무하는 드물게 보는 행운아다.  &nbsp;  무하는 포스터, 장식 패널, 극장의 무대와 의상, 일러스트, 벽화, 건축, 스테인드글라스, 보석 디자인, 조각, 초상화 이 모든 분야에서 뛰어난 재능을 보여주었다. 태양이 프리즘을 통해 그 아름다운 빛을 드러내듯 세계의 영혼은 무하라는 프리즘을 통해 세상에 아름다운 스펙트럼을 펼쳐 놓았다. (P.335)  &nbsp;  무하는 종합예술가였다. 상업 회화 영역 외에도 무대 예술, 일러스트, 공예, 광고, 디자인 등에서도 뛰어난 성과를 발휘하였고, 삶의 후반기는 순수 회화에 매진하였다. 통상의 미술가가 한두 방면에만 뛰어난 것에 비하면 그의 예술적 재능과 성과는 대단하다고 볼 수 있다.  &nbsp;  당시의 원색적인 다른 포스터들과는 달리 파스텔 톤의 투명한 색채와 명암으로 채워진 포스터는 비잔틴식 모자이크로 이루어진 배경과 화려한 중세풍의 의상으로 이국적이면서도 장식적인 느낌을 주었다. (P.69)  &nbsp;  무하 스타일로 불리는 대표적인 아르누보 양식으로 일세를 풍미한 무하의 작품 특징은 장식적인 화려함에 있다. 풍성하고 화려한 중세풍의 드레스, 길게 늘어뜨린 곱슬곱슬한 머리카락, 관 또는 화관으로 장식한 머리모양, 장식적이고 비의적이고 상징적인 배경이 전형을 이룬다. 주인공 여성은 무심하거나 방심한 자태로, 때로는 유혹적인 눈빛으로 관객을 지그시 응시한다. 개인적으로 전기 작품 중에서는 상업 포스터보다 그의 연작 시리즈가 더 흥미롭다. &lt;사계&gt;, &lt;꽃&gt;, &lt;보석&gt;, &lt;예술&gt;, &lt;별&gt;, &lt;시간&gt; 4부작 말이다. 같은 듯 다르게 차이를 보이기 위해 화가는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상징적 요소를 한껏 추가하였다.  &nbsp;  슬라브 서사시는 잘 짜인 각본처럼 각각의 장면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5개의 알레고리적인 테마와 5개의 종교적 테마, 5개의 전쟁 장면과 슬라브 문화에 관한 5개의 장면. 그 중 10개는 체코의 역사에서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 슬라브 국가의 역사에서 선택된 것이다. (P.254)  &nbsp;  체코 국민과 무하가 생각하는 예술의 본령은 아마도 후기작에 있으리라. &lt;슬라비아&gt;, &lt;사과를 든 크로아티아 여인&gt;, &lt;슬라브 서사시&gt; 20편, &lt;대지를 깨우는 봄&gt;, &lt;황야의 여인&gt;, 그리고 내가 최애하는 &lt;백합의 성모 마리아&gt;. 단지 민족주의와 지역주의라고 치부하지 말라. 그는 슬라브인으로서 정체성을 되새기면서 주체성을 잃지 않되, 평화롭게 공존하는 세계를 지향하였다. 여기서 그는 무하 스타일의 밝고 화려함에서 단순하고 소박하며 색채적인 스타일로 변모하였다. 특히 민족주의를 넘어서서 인류 보편적 사랑을 주제 삼는 작품에서는 신비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그가 양차 세계대전 사이에서 어두운 분위기에서 시대감각을 예민하게 포착하면서도 다가올 세계에 대한 낙관적 전망을 결코 잃지 않았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의 마지막 작품인 미완성에 그친 &lt;이성의 시대&gt;, &lt;지혜의 시대&gt;, &lt;사랑의 시대&gt; 3부작이라는 사실 자체가 웅변적이다.   &nbsp;  1936년부터 인류 보편의 문제를 담고자 시작했던 3부작 &lt;이성의 시대&gt;, &lt;지혜의 시대&gt;, &lt;사랑의 시대&gt;는 결국 미완으로 남았다. 이 3부작은 그의 생애를 이끌어 왔던 박애적이고 낙천적인 신념을 담아내고 있다. (P.278)  &nbsp;  이 책은 무하의 삶과 예술세계를 설득력 있고, 충실히 담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그의 주요 작품 대다수의 도판이 가득 실려 있어 어지간한 도록을 능가할 정도로 그림을 보는 재미도 훌륭하다. 1쇄에서 지적되었던 중요한 오류는 2쇄에서 거의 바로잡혔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은 후 상기 오류를 감안하더라도 구매를 결심하였는데, 많은 오류마저 교정되었으니 더 이상 추천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br>* 1쇄와 2쇄 오류 교정 비교내용1쇄2쇄&lt;사계&gt; 연작 중 그림 명칭 오류 (P.94)봄과 여름 그림이 바뀌었음교정 O&lt;네 개의 별&gt; 연작 중 그림 명칭 오류 (P.105-106)달/샛별/금성/북극성교정 O(달/금성/북극성/샛별)욥 담배 종이 회사 광고 포스터 중 연도 오류 (P.131)1986 → 1896교정 X&lt;담쟁이넝쿨&gt;과 &lt;월계수&gt; 중 영문명과 연도 오류 (P.191-192)Lanel, 1899 → Ivy, 1901Ivy, 1899 → Laurel, 1901교정 X &lt;슬라비아&gt;와 &lt;뮤즈&gt;의 색감 (P.268-269)누렇게 되었음교정 O &lt;무하의 딸 야로슬라바&gt;의 색감 (P.330)누렇게 되었음교정 O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6330/64/cover150/8925589109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3306435</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민들레꽃의 살해 – 독일대표단편선 (알프레트 되블린 외/김재혁/현대문학) - [민들레꽃의 살해 - 독일대표단편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5560</link><pubDate>Sat, 07 Mar 2026 13:0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5560</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343&TPaperId=17135560"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59/23/coveroff/8972753343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2753343&TPaperId=17135560"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민들레꽃의 살해 - 독일대표단편선</a><br/>아르투어 슈니츨러 외 지음, 김재혁 편역 / 현대문학 / 2005년 10월<br/></td></tr></table><br/>&lt;수록작품&gt;어떤 이별 - 아르투어 슈니츨러민들레꽃의 살해 - 알프레트 되블린예기치 않았던 재회 - 요한 페터 헤벨사랑 또는 타락 - 토마스 만꿈의 노벨레 - 아르투어 슈니츨러칠레의 지진 -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라라비아타 - 파울 하이제  &nbsp;  책의 구성과는 무관하게 작품의 발표 연대순으로 읽었기에 그 순서에 따라 적는다.  &nbsp;  &lt;칠레의 지진&gt;은 예전에 클라이스트의 작품을 집중적으로 독서할 때 읽은 적 있으며, 최근에도 다른 독일단편문학선 책을 통해 다시 한번 읽었다. 인간 운명의 우연성과 아이러니가 냉엄하게 기술된다. 지진 같은 엄청난 사건을 통해서도 어리석은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음을, 인간의 삶은 기쁨과 고통이 혼재된 형태임을 보여준다.  &nbsp;  &lt;예기치 않았던 재회&gt;는 짧은 분량으로 세월을 초월한 사랑의 힘을 상투적이지만 감동적으로 그려낸다.  &nbsp;  &lt;라라비아타&gt;도 일전에 읽어본 기억이 있다. 다른 번역본에서는 ‘고집쟁이 처녀’라는 표제를 사용하기도 한다. 표면상 말괄량이처럼 구는 여주인공이 자신을 짝사랑하는 뱃사공 안토니노에게 무심하게 굴다가 갑작스레 사랑을 고백하는 행복한 끝맺음이다. 그녀의 격렬한 고백이 워낙 급작스러운 데다, 높은 자존감을 내세우던 그녀의 비굴에 가까운 태도 전환이 당혹스러울 정도다. 더욱이 그녀가 아픈 추억으로 갖게 된 결혼과 남자에 대한 냉소적 시각이 일순간에 뒤바뀐다니 여성주의 시각에서는 탐탁지 않게 여길 게 분명하다.  &nbsp;  “이제 아시겠죠, 신부님. 왜 제가 그냥 처녀로 살겠다고 하는 건지. 저를 마구 두들겨 패다가 애무를 퍼붓는 인간에게 예속되기 싫어서예요. [......]” (P.359)  &nbsp;  &lt;사랑 또는 타락&gt;에서 토마스 만은 남녀의 순결 또는 정조에 대한 세간의 편향적 인식, 사랑의 순수성과 현실성에 대한 기대와 착각의 귀결을 그린다. 순진한 대학생과 아름다운 여배우의 사랑은 순수성을 대변한다. 대학생은 이상 속을 살아가지만, 가난한 여배우는 현실 속을 걸어가야 한다. 배우로서, 여성으로서 생계를 영위하기 위한 경제적 필요를 그녀는 스폰서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윤리적 기준으로 분명 타락이지만, 대학생을 향한 그녀의 사랑이 순수하지 못하다고 비난할 수 있을까.   &nbsp;  남의 이야기인 듯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는 화자의 목소리는 애잔하다. 그는 여전히 과거에 분노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의 당시 선택을 뼈저리게 후회하는가. 작가는 이렇게 기술할 따름이다.  &nbsp;  그렇게 말하는 그의 말투와 절망과 슬픔에 겨워 라일락을 잡아뜯는 그의 거친 행동은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러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그 좋은 녀석’의 모습은 그에게서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P.143)  &nbsp;  이 책은 슈니츨러의 작품을 두 편이나 수록하고 있다. &lt;어떤 이별&gt;은 초기작이고, &lt;꿈의 노벨레&gt;는 후기작으로서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다.   &nbsp;  &lt;어떤 이별&gt;은 남성 화자의 의식의 흐름을 따라간다. 그는 유부녀와 밀회를 즐기는 중인데, 남편의 외출을 틈타 그녀가 뛰어 들어올 때만 사랑을 누릴 수 있다. 그는 언제나 기다리는 처지에 놓여있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은 의심할 수 없다. 작품은 그녀가 오지 않는 상황에서 요동친다. 그는 점점 초조해진다. 이건 필시 그녀가 병에 걸린 탓이라는 그의 짐작이 맞아떨어졌고 게다가 중병이란다. 그녀의 집 주변을 서성거리다가 그녀의 죽음 소식을 듣게 된다.   &nbsp;  그녀의 시신 곁에는 애도하는 남편이 있다. 자신이야말로 그녀가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며, 그녀를 누구보다 사랑함에도, 그는 당당하게 나설 수 없다. 죽은 여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그는 깨닫는다. 죽음 앞에서 그의 사랑은 유효하지 않음을, 그가 사랑한 건 그녀의 살아있는 육신뿐이었음을.   &nbsp;  그는 마음 깊이 수치심을 느끼면서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왜냐하면 그는 다른 사람들처럼 슬퍼할 자격도 없었고, 또 죽은 애인이 그를 그곳에서 쫓아버린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가 그녀를 부인했다고. (P.44)  &nbsp;  작가는 사람의 외면과 내면이 얼마나 모순되고 이율배반적인지를 선명하게 드러낸다. 불륜을 무릅쓸 정도로 열렬한 사랑조차도 한 껍질 벗겨보면 얄팍하고 이기적인 감정에 불과함을.  &nbsp;  &lt;민들레꽃의 살해&gt;는 개인적으로 그다지 공감하지 않는다.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모르는바 아니나 지나치다고 할까. 지팡이로 민들레꽃을 난도질한 것에 죄의식을 느끼고 죄책감에 절절매는 주인공. 어릴 적 괜스레 개미를 밟아 죽이고, 개미집에 물을 붓고, 지렁이에게 소금을 뿌려 꿈틀거리는 모습을 즐기던 나. 작중의 피셔 씨에 비하면 나는 천인공노할 범죄를 자행한 셈이 아니겠는가.   &nbsp;  몸통은 뻣뻣하게 굳어 하늘을 향해 있고, 목줄기에서는 하얀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을 것이다. (P.53)  &nbsp;  작가는 민들레꽃을 의인화하여 잘려 나간 모습을 사람의 그것으로 간주한다. 진동하는 시체 썩는 냄새에 그는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온 세상이 자신을 비난하는 양 양심에 괴로워한다. 이제 그는 과거처럼 살아갈 수 없다. 그의 안팎에서 그 꽃이 양심의 화신인 것처럼 그를 엿보고 간섭하고 판결 내리므로.  &nbsp;  그 꽃은 하나의 양심처럼 아주 중요한 일부터 일상의 자잘한 일들에 이르기까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P.66)  &nbsp;  이 책에서 분량과 작품 밀도 면에서 단연 핵심적인 작품이 &lt;꿈의 노벨레&gt;다. 모두가 단편 문학인데 이 작품만이 중편이니 일면 불공평하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화로도 유명해진 이 소설에서 슈니츨러는 작중에서 벌어진 모든 사건을 꿈으로 간주하도록 유도한다. 모범적인 가정, 이성적인 부부라는 외형에 숨겨진 무의식과 본능에의 충동, 그것은 낮이 아니라 밤에 꾸는 한 바탕 꿈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정과 사회는 평화와 질서를 유지할 수 없으므로. 끝 대목은 따라서 상징적이다.  &nbsp;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 부부는 어떤 꿈을 꾸었는가. 알베르티네가 품은 욕망은 무엇이고, 프리돌린이 밤에 겪은 모험은 무엇인가를 살펴보는 게 이 작품의 감상 포인트다. 부부 간의 대화를 통해 그들이 “마음속에 숨겨진 자신도 모르는 욕망들”(P.151)을 드러내는 순간 프리돌린은 아내에게 배신감을 느낀다. 자신이 사랑하고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알베르티네와 전혀 상반된 실체를 봐서다.  &nbsp;  그 사람이 나를 불렀다면-그건 내게 분명했어요-나는 거역하지 못했을 거예요. 무엇이든 다 할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당신과 아이, 나의 미래까지도 희생할 결심을 거의 굳힌 것이나 다름없었죠. (P.153)  &nbsp;  프리돌린도 숨은 욕망이 있지만 아내처럼 적극적이고 분명하지 못하였기에 이후 내내 배신감으로 귀가하여 아내를 마주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의 밤의 방황이 시작된 셈이다. 그의 방황은 아내의 솔직한 토로에서 자극받아 각성한 그의 내밀한 욕망이 불러온 것이기에 이전에는 미처 깨닫지 못하였던 타인의 욕망을 민감하게 된다. 마리안네의 고백, 매춘부와의 만남, 가면 가게의 여자애, 그리고 나흐티갈을 통해 알게 된 비밀스러운 모임.  &nbsp;  이성의 통제를 벗어난 성적 욕망이 가면 아래 무자비하게 활개를 치는 세상. 여기서 가면은 익명성을 보장하는 최후의 장치다. 정체가 탄로 난 프리돌린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가면을 벗어던지는 수녀의 선택은 그리하여 죽음을 감수하는 헌신이다. 프리돌린은 이성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비밀 모임의 세계로 들어간 건 무의식과 욕망의 강력하며 무한한 힘을 나타낸다. 그것이 비록 죽음을 가져올지라도.  &nbsp;  가면무도회와 이어지는 부부간 대화 이전에 프리돌린과 알베르티네는 흠잡을 데 없는 완벽한 부부의 전형이었다. 그들에게 과연 부족한 점이 있을까 의심될 정도로. 이제 프리돌린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의심한다. 겉보기에 행복한 결혼 생활의 얄팍한 껍질 아래 근간을 뒤흔드는 불안정한 욕망이 얼마나 잠재되어 있는지를.   &nbsp;  계단에 올라섰을 때 비로소 이 모든 질서와 이 모든 균형과 그의 삶의 이 모든 안정감이 가상이요 거짓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번 의식되었다. (P.274-275)  &nbsp;  하지만 우리는 이를 거짓이라 단언하기 어렵다. 꿈은 결코 현실이 될 수 없다. 무의식이 의식 아래 숨겨져 있는 것은 그것이 의식으로 올라오기 어렵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인식하고 있어서다. 무의식의 거리낌 없는 발현은 개인 스스로와 사회가 용납하지 않는다. 지구가 지각과 맨틀로 이루어져 있듯이, 우리네 마음도 밑바닥에 꿈과 무의식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고 있으면 된다. 프리돌린은 잃어버린 가면을 통해 알베르티네가 그것을 알고 있기에 자신 역시 그러한 사실을 자연스레 받아들인다.  &nbsp;  “그럼요 확실하게 믿어요. 하룻밤의 현실, 그래요, 한 사람의 인생 전체의 현실도 그 사람의 가장 내면 깊은 곳에 담겨진 진리를 뜻하지는 않는다고 어렴풋이나마 느끼고 있으니까요.” (P.308)]]></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59/23/cover150/8972753343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9231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책들의 전쟁 (조나단 스위프트/류경희/미래사) - [책들의 전쟁]</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2278</link><pubDate>Thu, 05 Mar 2026 20:05: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322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872744&TPaperId=171322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42/91/coveroff/8970872744_1.gif"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70872744&TPaperId=171322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책들의 전쟁</a><br/>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미래사 / 2003년 08월<br/></td></tr></table><br/>&lt;책들의 전쟁&gt;과 &lt;영혼의 기계적 조작에 관한 담론&gt;은 앞서 읽은 &lt;통 이야기&gt;와 부분적으로 주장하려는 요지가 중첩한다. 해당 내용에 대해서 조금 더 집중적으로 다루려고 하는 작가의 의도가 드러난다. &lt;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gt;은 영국과 아일랜드의 종교 상황에 대한, &lt;아일랜드의 현 상황에 대한 소고&gt;와 &lt;겸손한 제안&gt;은 정치 상황에 대한 풍자적 글이다. 스위프트의 처절한 상황 인식과, 좌절감과 아이러니가 수록 작품 전반에 걸쳐 배어 나온다.  &nbsp;  &lt;책들의 전쟁&gt;  &nbsp;  우화의 형식을 빌린 산문 작품이다. 주제 의식이 너무나 명료하여 작품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그리스·로마의 고전학문과 현대학문 간 우열 논쟁을 다룬다. 도서관에서 해당 책들이 전쟁을 벌인다는 설정이다. 당대로서는 현대학문이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이들 또한 고전학문이다. 데카르트, 베이컨 같은 저자가 이 범주에 포함된다.   &nbsp;  이제 이런 논쟁은 무용하다. 21세기의 현시점에서 과학기술의 엄청난 발전은 지고의 선으로 인정받는다. 당장 국가와 사회의 경제발전과 개인의 부귀영화를 우선시하는 우리에게 현대학문은 무조건 우월하다. 물론 고전의 가르침과 재인식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게 현대학문을 대체하지 못하므로.  &nbsp;  이 작품은 고전작가를 추켜세우고, 현대작가를 맹렬히 비판한다. 전자는 꿀을 모으는 벌이요, 후자는 독거미다. 전자는 머리가 아주 가벼운 사람이며, 비평이라고 불리는 악독한 여신의 비호를 받고 있다. 그네들의 대변자인 워튼과 벤트리는 잡종 똥개로 묘사되며, 고전작가의 옹호자인 템플은 그리스 신들이 함께하는 당당한 기사로 묘사한다.   &nbsp;  스위프트는 시류의 변화를 재빨리 읽어내는 인물이다. 그의 작품을 보면 고전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다, 작풍은 오히려 현대학문에 가깝다. 그런 그가 고전학문을 현대학문에 비해 우위를 둔다는 점은 언뜻 이해되지 않는다. 그의 글을 찬찬히 살펴보면 묘하다. 그렇게 열렬히 지키고자 하는 고전학문 자체에 대한 장점과 유익함을 설파하는 대목은 찾기 어렵다. 상대적으로 현대작가들의 병폐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nbsp;  스위프트는 애초에 고전학문의 우열 또는 옹호에 관심이 없었던 게 아닐까. 동시대 작가들의 지적 얕음과 가벼움, 비판만을 능사로 여기는 태도, 저작 관습의 타락 등을 풍자하려는 게 그의 원래 의도였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접근하면 이 작품은 더욱 흥미롭게 이해할 수 있다.  &nbsp;  그곳에는 또한 그녀[비평]와 자매 사이인 평판이 가벼운 발걸음으로, 눈을 가리고, 고집스럽게, 현기증이 날 정도로 끊임없이 몸을 돌려대고 있었다.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의 자식들인 소음, 몰염치, 우둔, 허영, 현학, 무례가 놀고 있었다. (P.47)  &nbsp;  &lt;영혼의 기계적 조작에 관한 담론&gt;  &nbsp;  종교적 열광주의 혹은 광신주의는 예나 지금이나 유사한 행태인 듯하다. 어쩌면 자체가 종교의 내재적 속성일지도. 종교사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종교 간 갈등과 유혈 분쟁, 같은 종교 내에서 종파 간 다툼 등은 결국 특정 가르침을 절대 선으로 여기기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그나마 개인이 신앙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자연스럽게 열광에 빠진다면 그것을 개인적 사안으로 간주할 수 있지만, 이것이 누군가의 인위적 조작에 의한 결과라면 전혀 다르다.  &nbsp;  이 유명한 기술(즉 종교적 열광을 인위적으로 조작해내는 기술)을 시행하는 업자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원칙에 입각하여 일을 진행시켜 나간다. 즉 “우리 지각 기관들의 몰락이 성령을 불러들인다”는 것이다. (P.97)  &nbsp;  스위프트는 영국 국교회 입장에서 열광적 행태를 보이는 청교도 등의 비국교도와 신비주의 종파를 대상으로 삼는다. 그의 분석은 흥미롭다. 조작자들은 사람들의 이성과 지각을 서서히 마비시킴으로써 광신을 불어넣는다고 한다. 여기에는 내용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음성, 행동 모두가 한가지 목적으로 결부되어 있다. 숙련된 조작자라면, 고도의 이성을 지닌 일부를 제외하면 대다수의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하는 것을 보면, 사이비종교에 무지각적으로 빠져든 사람들의 예를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nbsp;  문제는 이러한 수단이 종교에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신앙을 넘어 정치, 이념, 사회적 사안은 물론 학문적 영역까지도 효과적으로 침해할 수 있는데, 조작을 통해 영혼 자체를 변화시킬 수 있어서다. 나치와 파쇼를 용인하고 지지한 독일과 이탈리아 국민이 형편없이 무지몽매한 것은 아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 갈등으로 혈연 간에 죽음이 난무했던 역사적 경험은 오래되지 않았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스위프트의 지적은 예사로 넘기기 어렵다.  &nbsp;  성령이라는 선물을 팔아먹는 이 신비라는 것이 사실은 다른 여타 장사꾼들의 행위들과 똑같이 연습과 노력에 의해 숙달될 수 있고, 또 똑같은 훈련에 의해 습득될 수 있는 장사 행위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P.107)  &nbsp;  &lt;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gt;  &nbsp;  기독교 사회에서 기독교 철폐론이 가당키나 한 주장인지 모르겠다. 합리와 이성의 인식이 성장하면서 기독교에서 불합리성과 신비성을 배제하고자 하는 목소리가 당대에 등장하여 제법 세력을 형성하였던 듯하다. 스위프트는 영국 국교회 사제이므로, 여기에 반대하는 논의를 전개하였음은 당연할 것이다.   &nbsp;  그런데 이 산문 작품도 분위기가 묘하다. 정통주의라면 기독교를 옹호하기 위해서 기독교 교리의 본질과 요지, 그것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선한 영향력에 대해 피력해야 할 것이다. 저자는 그렇지 않다. 저자의 진의가 표제 그대로 기독교 철폐론에 대한 반론인지 아니면 찬론인지 헷갈린다. 표피와 행간 사이의 엇박자와 묘한 긴장감은 스위프트 특유의 풍자와 아이러니로 인해 발생한다.   &nbsp;  저자는 우선 자신의 글이 명목상의 기독교를 옹호하는 것이지, 진정한 기독교 옹호는 아니라고 선언한다. 진정한 기독교는 초기 기독교의 순수하고 소박한 신앙을 가리키는데, 그게 아니라면 당대의 기독교는 무엇이란 말인가.  &nbsp;  진정한 모습의 초기 기독교는 이미 현재 우리 나라의 모든 부와 권력의 구도들과 너무나도 맞지 않아 모든 사람들의 동의하에 이미 완전히 포기되어 버리고 말았다. (P.141-142)  &nbsp;  이후 그는 실용주의적으로 접근하는데, 기독교를 철폐할 경우 발생하는 실제적인 이익과 손해를 비교할 때 철폐에 반대한다는 논의를 전개한다. 일요일에 노동할 수 있으니 이익이라는 의견, 각종 파벌과 파당을 없앨 기회라는 점, 인간은 누구나 비난과 멸시의 대상을 필요로 한다는 점 등이 제기되고, 철폐할 때 교역과 주식의 경제적 측면에서 손해가 크다는 점을 근거로 한다. 나아가 저자는 기독교 철폐를 확장하여 종교 철폐에 더 본질에 접근하는 용어라고 제안한다.  &nbsp;  기독교를 철폐하자는 건가 아니가. 스위프트의 속내는 당대의 기독교는 초심을 잃은 명목상의 기독교로 악폐에 찌들어 있으니, 진정한 모습의 초기 기독교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있다. 열광에 빠져들고자 하는 인간의 속성상 종교 자체를 없앨 수 없으므로 철폐론에 대한 반론으로 기독교 개혁론을 내세운 게 아니겠는가.  &nbsp;  &lt;아일랜드의 현 상황에 대한 소고&gt;&lt;겸손한 제안&gt;  &nbsp;  이 두 산문은 한 쌍으로 간주하는 게 옳다. 영국인이지만 아일랜드에서 태어났기에 스위프트는 비참하고 차별받는 아일랜드에 동정심을 품었다. 영국의 식민지로 전락하여 온갖 불공평과 탄압에 신음하는 아일랜드의 상황에 대한 고찰과 함께 이 글에서 잔혹하면서 겸손한 제안을 아일랜드 당국과 영국에 제기한다.  &nbsp;  아일랜드 사람은 나면서부터 가난과 기아, 탄압에 시달리고 있으므로 굳이 이렇게 아이를 낳고 키울 필요가 없다. 아기들을 목장의 돼지와 소처럼 사육하고 도축하여 고가의 식용 고기로 제공하자는 것이다. 어차피 태어나느니 못할 불행한 운명의 처지에 놓이게 되는데 남은 가족의 삶이나 개선하고, 국가적으로도 효용성을 높이자는 제안이다. 지극히 잔인하며 냉소적인 주장인데 저자는 굉장히 담담하고 실용적으로 접근하여 은근히 설득력 있는 게 아이러니다.  &nbsp;  어떤 사람도 내게 이 방법 이외에, 우리 나라를 구제하는 다른 방법들에 대해서 더 이상 이야기하지 말아 주기 바란다. 예를 들면, 우리의 부재 지주들에게 1파운드당 5실링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법, [......] (P.206)  &nbsp;  다른 개선 방안을 언급할까 봐, 저자는 사전에 차단한다. 보다 실천적이고 효과적이며 합리적인 방안을 죽 나열하면서 이따위 방법은 논외로 하라면서. 일견 허무적이기도 한데, 합리적 제안은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되었다는 통렬한 자기 인식의 반증이 아니겠는가.&nbsp;]]></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42/91/cover150/8970872744_1.gif</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42919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하인들에게 주는 지침 (조나단 스위프트/류경희/평사리) -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02689</link><pubDate>Fri, 20 Feb 2026 10:2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02689</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56196&TPaperId=17102689"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65/91/coveroff/899555619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5556196&TPaperId=17102689"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하인들에게 주는 지침</a><br/>조나단 스위프트 지음, 류경희 옮김 / 평사리 / 2006년 06월<br/></td></tr></table><br/>&lt;걸리버 여행기&gt;를 포함한 풍자문학의 대가 스위프트가 만년에 수년에 걸쳐 쓴 글이다. 최종적으로 그의 사후에 출판되었다고 한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가난했던 작가는 먼 친척뻘인 귀족의 집에서 식객 겸 비서관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눈칫밥 먹는 처지에서 목격했던 하인들의 행태, 훗날 그가 고용했던 하인들의 경험에서 이런 예리한 탐구가 가능했을 것이다.  &nbsp;  글은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과 개별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들로 구성되었는데, 우선 18세기 하인들의 종류가 이렇게나 다양한지 놀랐다. 집사, 요리사, 정복 착용 하인, 마차꾼, 말구종, 재산관리 집사, 문지기, 침실 담당 하녀, 몸종 하녀, 청소 담당 하녀, 버터 제조 담당 하녀, 보모, 유모, 세탁부, 하녀장, 여자 가정교사. 모든 귀족계층이나 중산층이 이들을 다 고용하지는 못하였을 테고, 부의 수준에 따라 전부 또는 일부만을 채용하였을 것으로 짐작한다.   &nbsp;  당대 사회와 인간 본성에 대해 삐딱한 시선을 지닌 작가이니만치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이 교과서적이고 모범적인 안내가 되지 못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대단히 해학적이고 우회적인 표현으로 시종일관하는 그의 지침은 한마디로 최대한 주인의 등골을 빼먹고 철저히 이기적으로 되라는 것이다.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의 몇 대목만 봐도 금방 알 수 있다.  &nbsp;  잘못을 저질렀을 땐 뻔뻔하게 적반하장으로 나가라. 그리고 마치 피해자인 양 행동하라. (P.9)  &nbsp;  당신에게 특별히 할당된 고유 업무 외에는 그 어떤 업무에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마라. (P.14)  &nbsp;  이상하지 않은가? 현대 우리네들의 조언과도 그다지 다르지 않다. 목소리 큰 게 임자라며, 자기 잘못을 무조건 부인하는 풍조와 유사하다. 내 업무와 타인의 업무는 칼같이 구분하여 절대로 맡고자 하지 않는 게 요즘 세태가 아닌가. 이처럼 18세기라는 시간적 간극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은 여전하다는 것을 이 글을 보여준다.   &nbsp;  그렇다고 하인들만 나무랄 수는 없다. 이기적인 하인을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게 현명하지 못한 주인이다. 고용주로서 피고용인인 하인들을 인격적으로 무시하고 홀대하며, 그들이 눈치를 보며 행동을 정할 수 있도록 모범적인 언행을 갖추지 못한 주인들. 결국 하인은 주인의 눈에 들도록 애쓰기 마련이기에 사소한 말, 행동 하나하나를 관찰하고 이에 따라 반응한다.  &nbsp;  상전의 본을 따라 누구보다도 이런 자들은 더 홀대하는 것이 당신 같은 집사나 식탁 서비스를 담당하는 정복 착용 하인의 임무다. (P.34, 집사)  &nbsp;  마님께서 도박을 좋아하신다면 당신의 행운은 영원히 정해진 것이나 마찬가지다. 적절한 도박은 당신에게 일주일에 10실링 정도의 부수입을 가져다 줄 테니까. 그런 집이라면 나는 가정목사나 재산관리인이 되는 것보다도 오히려 집사가 되는 편을 택하겠다. (P.53, 집사)  &nbsp;  몸종 하녀 편에 이르러서는 주인의 성적 유혹을 조심하고 사리를 잘 살펴서 선택적으로 대응하라고 조언한다. 당시 하녀들을 대상으로 유사한 사례가 빈발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마님의 연애사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nbsp;  작가가 유독 되풀이하여 강조하는 지침은 하인들 간의 단결과 협력이다. 외란 중에는 내홍은 덮어두는 것처럼, 공공의 적인 주인으로부터 이익을 최대한 쟁취하고 수호하기 위해서는 무조건적으로 단합하라는 의미다.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고 중요한 조언이 아닐 수 없다.  &nbsp;  당신들끼리는 서로 싸워도 된다. 내 말은, 당신들에게는 공공의 적인 주인님과 마님이 있으며 공통으로 수호해야 할 공공의 목적이 있다는 걸 명심하란 소리다. (P.20, 모든 하인들에게 주는 일반적인 지침)  &nbsp;  모두의 공익을 위하여 그 내용을 엿들어라. 그리고 모든 하인들이 일치단결하여, 하인 사회를 해칠 수 있는 개혁조치들을 막기 위해 적절한 조치들을 취하라. (P.100, 정복 착용 하인)  &nbsp;  이 작품은 여러 관점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선 표제 그대로 하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간주할 수 있다. 하인들의 이익 극대화를 위한 처신 요령의 집대성이라는. 역으로 주인들에게 주는 지침으로 볼 수 있다. 하인들의 다양하고 불합리한 행동의 현상과 원인을 간파하여 이들을 적절히 부리고 통제할 수 있도록 하는.   &nbsp;  이 글을 실용적인 지침서로 보지 않을 수 있다. 스위프트가 젊은 시절이 아닌 최만년에 이르러 쓴 글에서 굳이 실용성을 염두에 두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결국 그의 여타 작품처럼 이 또한 인간과 사회를 향한 우스꽝스러운 풍자가 본령이라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을 보면 18세기의 당대와 21세기의 현대에도 근본적인 인간 본성은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된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65/91/cover150/899555619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65917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마틸다 (메리 셸리/정미현/다빈치 노벨라) - [마틸다]</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101368</link><pubDate>Thu, 19 Feb 2026 19: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10136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2916&TPaperId=1710136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36/coveroff/k402032916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402032916&TPaperId=1710136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마틸다</a><br/>메리 셸리 지음, 정미현 옮김 / 다빈치 노벨라 / 2023년 11월<br/></td></tr></table><br/>메리 셸리가 이 작품을 집필한 해는 1820년이고, 아버지 고드윈에게 보낸 건 1821년이니 그의 나이 23세, 24세 무렵이다. 아버지는 출간을 거부했고, 백 년 넘게 묻혀 있다가 1959년이 되어서야 출간이 이루어졌다.   &nbsp;  마틸다가 남긴 수기 형식으로 작성된 작품의 서사는 외형상 단순하다. 아내를 헌신적으로 사랑한 마틸다의 아버지는 출산 직후 사망한 아내를 못 잊어 가출한다. 마틸다는 외톨이가 되어 냉담한 고모와 시골에서 16세가 될 때까지 고독하고 적막하게 자란다. 다시 돌아온 아버지와 재회의 기쁨을 한껏 누리는 마틸다, 딸에게서 죽은 아내의 모습을 발견하고 솟구치는 감정에 번민하는 아버지. 아버지의 달라진 태도에 원인을 알고자 다그치는 마틸다와 그가 듣게 된 진실. 죄책감에 사로잡힌 아버지의 가출과 이어진 자살. 이중의 정신적 충격으로 오지에서 홀로 은둔의 삶을 꾸려가다 결국 병으로 죽게 되는 마틸다.  &nbsp;  메리는 무슨 까닭으로 이런 소설을 쓰게 되었을까? 작중에서 마틸다의 아버지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고, 마틸다 또한 사회적, 윤리적 금기를 저촉한 게 두려워 고립을 선택하고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친구 우드빌의 따스한 조언도 그녀를 절망에서 끌어내는데 결국 성공하지 못하였다. 당시 잉글랜드의 사회 윤리적 기준으로서는 그들의 죽음은 불가피하고 정당한 수순이었을 것이다.   &nbsp;  메리가 단지 윤리적으로 부적절한 사랑에 대한 도덕적 단죄를 위해 이 작품을, 그것도 자신의 처지와 흡사한 배경의,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험을 무릅쓴다면, 혹시 메리와 고드윈 사이의 감정이, 마틸다와 그의 아버지와 동일 선상에 놓여있는 게 아니었을까. 다만 전자는 후자와 달리 이성적 틀을 허물지 않고 마틸다의 아버지가 원하였듯이 시간이 해결해 준 지나간 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이처럼 작품 외면과 내면의 이야기는 전혀 상반된다.  &nbsp;  그제야 내 삶이 시작되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무미건조하고 단조롭던 모습에서 기쁨과 환희로 가득한 눈부신 풍경으로 바뀌었다. 아버지와 함께 있을 때 내가 느끼는 행복은 내가 장담했던 기대치보다 훨씬 컸다. (P.32)  &nbsp;  딸이 아버지에게 끌리는 감정을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할 때, 대개의 아버지는 딸에게서 제2의 아내를 찾고자 한다. 너무나 사랑하던 아내가 갑자기 죽었고, 훗날 거의 성인에 다다른 딸에게서 아내의 모습을 발견할 때 격렬한 감수성을 지닌 마틸다의 아버지는 딸을 이성으로서 사랑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성을 통해 거부하려는 내적인 고뇌와 번민과 투쟁이 벌어진다. 마틸다는 아버지와 재회하기 전에는 철저한 고독자의 처지였다. 이제 세상의 모든 사랑을 한꺼번에 쏟아부을 수 있는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를 향한 사랑의 깊이와 강도는 독자가 섣불리 추측하기 어려울 정도다. 교육받고 똑똑한 마틸다지만, 자신의 추궁으로 아버지를 상실하자 죄책감과 한편으로는 되돌릴 길 없는 그리움에 자신을 가두고 만다.  &nbsp;  내 심장은 죽음의 상처로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렇게 사는 수밖에 없었다. 겉보기로는 평온한 가운데에도 절망과 우울이 찾아올 때가 많았다. 무엇으로도 쫓아버리거나 극복할 수 없는 어둠이 드리웠다. 삶이 혐오스러웠다. 아름다운 것에 무심해졌다. (P.107)  &nbsp;  마틸다는 끝내 죽음을 소망하는 단계에 이른다. 우드빌의 부드러운 위로와 친절한 격려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죽음에서 오히려 기쁨과 희망을 찾고자 한다. 그것은 이미 죽은 아버지와 저승에서 재회하여 못다 한 사랑을 완성하려는 바람이 아니겠는가. 마틸다의 글 속에서 죽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는 문장은 찾을 수 없다. 그녀에게는 아버지가 세상 전부였던 것이다.  &nbsp;  수의가 나의 웨딩드레스 아니겠는가. 그것만이 아버지와 내가 영원히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될 때 우리를 결합시켜줄 것이다. (P.160)  &nbsp;  이 중편소설을 읽고 나면 고드윈이 출간을 거부한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주인공 마틸다와 작가 메리는 너무나 비슷하다. 작중 화자인 마틸다처럼 작가 메리도 탄생 직후 어머니를 여의었다. 그리고 아버지 슬하에서 홀로 자랐다. 게다가 소설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한다는 비도덕적인 근친상간의 내용을 담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독자는 소설에서 작가의 삶을 비교하고 유추하기 마련이다. 고드윈으로서는 그런 불쾌한 시선을 견딜 수 없었으리라.  &nbsp;  마틸다의 짙은 회한과 상념 속에 드리워진 어둡고 고통스러움이 독서를 어렵게 한다. 두껍지 않은 책임에도 한 번에 쭉쭉 읽어 나가지 못하고 조금 읽다가 책장을 덮고 한참 후에 다시금 책을 펴 들기를 반복하였다. 갓 스무 살을 넘긴 젊은 여성작가가 &lt;프랑켄슈타인&gt;과 더불어 이러한 소설을 썼다는 게 자못 대단함과 동시에 어쩌면 그 나이대가 아니면 쓸 수 없는 지극히 도전적인 작품이라는 생각이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7480/36/cover150/k402032916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7480363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알폰스 무하 : 빛과 꿈 (2026.1.23)</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7364</link><pubDate>Tue, 17 Feb 2026 16:24: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7364</guid><description><![CDATA[https://tickets.interpark.com/goods/25016334<br><br><br>전시회명 : 알폰스 무하 : 빛과 꿈기간 : 2025.11.8-2026.3.4장소 : 더현대 서울 ALT.1<br>관람일자 : 2026년 1월 23일(금)<br>* 관람평충동적으로 관람한 전시다. 알폰스 무하를 이전에는 전혀 알지 못하였다. 이번 전시에서는 체코의 국보 11점을 포함하여 총 143점을 선보인다고 한다. 상업 포스터와 상품 디자인 등을 예술적으로 발전시켜 독자적인 화풍을 만들어낸 점이 돋보인다. 무엇보다 대중들에게 높은 장벽을 세우지 않고 더불어 호흡할 수 있도록 한 점이 훌륭하다. &lt;지스몽다&gt;에서 시작하여 &lt;사계&gt;, &lt;꽃&gt;, &lt;예술&gt; 시리즈가 흥미로운 가운데 &lt;백합의 성모&gt;가 가슴 속을 휘젓는다. &lt;슬라비아&gt;를 비롯한 몇 편의 민속적 작품은 &lt;슬라브 서사시&gt; 연작을 실제로 보고 싶다는 강한 욕구를 유발한다. 언젠가 프라하에 가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lt;촛불을 응시하는 여성&gt;과 &lt;희망의 빛&gt;은 예언적이다.이번 전시는 사진촬영을 자유롭게 허용하고, 인파로 북적거리지 않아 여유롭게 찬찬히 작품과 설명을 관람할 수 있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알폰스 무하에 대해 좀 더 알아봐야겠다.<br><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17/pimg_7093891535032538.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7364</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2025.12.26)</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58</link><pubDate>Mon, 16 Feb 2026 17:36: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58</guid><description><![CDATA[https://www.sejongpac.or.kr/portal/performance/performance/performTicket.do?menuNo=200558&amp;performIdx=36656#none<br><br><br>전시회명 : 샌디에이고 미술관 특별전 -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기간 : 2025.11.5. - 2026.2.22.장소 :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br>관람일자 : 2025년 12월 26일(금)<br>* 세줄평100주년을 맞이하는 샌디에이고 미술관의 국내 최초 전시회다. 안내에 따르면 60명의 거장과 65점의 걸작이 소개된다고 한다. 공연명과 같이 르네상스 시기에서 인상주의에 이르기까지 서양 미술사를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아는 화가는 엘 그레코, 루벤스, 고야, 쿠르베, 로트렉, 드가, 모네, 로랑생, 모딜리아니 등이 전부다.&nbsp;개인사로 마음이 심란한 가운데 기록도, 촬영도 하지 않았기에 기억에만 의존한다면, 히에로니무스 보스의 작품이 인물묘사의 특이함으로 인상을 남겼다. 프란시스코 데 수르바란의 희생양 그림은 음반 표지에서 봤기에 반갑고 신가하였다. 벨로토의 베네치아 풍경, 모딜리아니와 로랑생 작품도 흥미롭게 보았다. 전시회의 표지그림으로 사용된 호아킨 소로야와 부그로의 그림은 그림 자체의 순수한 아름다움이 돋보였다. 수년 만의 미술전 관람인데 앞으로도 종종 관심을 기울여야겠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16/pimg_7093891535031981.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58</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87회 아트엠콘서트 - 문태국 첼로 리사이틀 (2026.2.1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32</link><pubDate>Mon, 16 Feb 2026 17:0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32</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87회 아트엠콘서트 - 문태국 첼로 리사이틀일시 : 2026년 2월 12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문태국 (첼로), 박영성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프로코피에프, 첼로 소나타 C장조 Op.119&nbsp; - 카발레프스키, 첼로 소나타 B-flat장조 Op.71<br>* 세줄평오늘의 연주곡목은 모두 한번이라도 들어본 기억이 없으니 모두 마이너곡이라고 하겠지만, 막상 연주를 듣고난 소회는 오히려 메이저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유난히 묵직한 첼로의 사운드로 깊은 정감과 짙은 비감을 흘뿌리니 연주자의 말대로 아직 현실은 물론 인생의 겨울이 지나지 않았음을 새삼 절감하게 한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16/pimg_7093891535031976.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96032</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금발의 에크베르트 – 독일 대표단편문학선 (루트비히 티크 외/이관우/써네스트) - [금발의 에크베르트 - 독일대표단편문학선]</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87196</link><pubDate>Thu, 12 Feb 2026 10:5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8719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58818&TPaperId=1708719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6/38/coveroff/899195881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91958818&TPaperId=1708719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금발의 에크베르트 - 독일대표단편문학선</a><br/>루이제 린저 외 지음, 이관우 옮김 / 써네스트 / 2013년 09월<br/></td></tr></table><br/>&lt;수록작품&gt;노벨레/ 요한 볼프강 폰 괴테칠레의 지진/ 하인리히 폰 클라이스트금발의 에크베르트/ 루트비히 티크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 클레멘스 브렌타노임멘 호/테오도르 슈토름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르투어 슈니츨러선로지기 틸/ 게르하르트 하우프트만변신 / 프란츠 카프카빵/ 볼프강 보르헤르트붉은 고양이 / 루이제 린저  &nbsp;  독일 근현대의 대표 단편 소설 모음집이다. ‘옮긴이의 말’을 보면 대학생 교재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시대별 문학사조별로 대표적인 명작을 선정하였다고 한다. 대충 수록 작품 표제나 훑어봐도 명작들이 나열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nbsp;  10편의 작품 중에서 &lt;칠레의 지진&gt;과 &lt;임멘 호&gt;는 앞서 읽은 적이 있어 반가웠다. 클라이스트는 섣부른 감상에 빠지지 않는다. 자못 비정할 정도로 직진하는 그의 문장은 인간과 종교, 나아가 인간성의 아이러니 자체에 깊은 질문을 던진다. 슈토름의 단편은 청소년 작품으로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지나가 버린 청춘의 아련한 추억은 누구나 갖고 있기 마련이다. 헤엄쳐도 호수 중심의 수련에 다가갈 수 없듯이 우리는 과거를 추억해야지 얽매여서는 안 된다. 라인하르트도, 엘리자베트도 모두 알고 있듯이 말이다.   &nbsp;  &lt;노벨레&gt;는 괴테의 최후기작으로 표제 자체가 ‘노벨레’다. 중세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리게 하는 배경과 구성인데, 영주 부인의 평화로운 자연 예찬은 마을의 화재로 깨어지고, 예기치 않은 호랑이와 사자의 탈출로 일순간 분위기는 급변한다. 서커스단 아이와 아버지의 노래와 피리 연주는 초자연적 능력을 발휘하는데 사자의 순종을 비현실로 절하해서는 안 될 것이다. 당대에서 음악은 자연의 질서를 반영한 예술로서 우주의 본질에 가깝기에 사자가 공명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nbsp;  그러나 그렇다고 사자가 패배자처럼 보이지도 않았는데, 그의 힘이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기 때문이었다. 사자는 패배자가 아닌 길들여진 자, 스스로의 평화로운 의지에 모든 것을 내맡긴 자처럼 보였다. (P.37)  &nbsp;  &lt;금발의 에크베르트&gt; 역시 중세풍의 민담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인데, 진주나 보석이 들어 있는 알을 낳는 새의 존재가 한층 설화적 분위기를 조성한다. ‘금발의 에크베르트’라고 해서 여주인공으로 생각하였는데, 그가 기사임을 알게 되었고, 내용은 기사 아내 베르타의 어린 시절 이야기로 전개된다. 친구 발터에게 이야기를 들려준 후 부부는 자신들의 비밀이 드러날까 두려움에 빠진다. 베르타가 새를 죽인 행동, 에크베르트가 발터에게 총알을 날리고 후고를 의심하게 된 행동 모두 일종의 원죄와 선택의 잘못으로 귀결된다. 베르타가 영혼 속 싸움에서 유혹을 극복하였다면 결말은 더 행복한 방향으로 바뀌었을 것이다.  &nbsp;  그것은 제 영혼 속의 기이한 싸움이었으며, 제 마음속에 있는 두 개의 적대적인 정신의 싸움과 같은 것이었지요. 한 순간에는 평온한 고요함이 무척 멋지게 여겨지다가 다시 온갖 놀랄 만한 다채로움이 있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상념이 저를 매혹시켰지요. (P.68)  &nbsp;  &lt;착한 카스페를과 어여쁜 안네를의 이야기&gt;도 또한 중세 배경의 민담이자 동화에 가깝다. 중편에 가까운 분량에 상당히 복잡한 이야기 구성을 지녀서 작가가 치밀하게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낭만주의 작품답게 두 주인공을 비롯한 여러 사람의 죽음으로 끝을 맺는데,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어는 명예다. 착한 카스페를이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 까닭은 인륜과 윤리의 충돌에서 비롯됨이다. 어여쁜 안네를의 죽음은 처녀로서 자기 아이를 죽인 죄의 대가인데, 귀족의 유혹에 빠져 명예를 놓친 까닭이다. 손자와 대녀의 명예를 되살리고 헌신하는 노파와 그 이야기를 듣고 사방으로 애쓰는 화자, 비록 안네를의 목숨을 구하지는 못했지만, 두 사람에게 명예로운 무덤을 허락받는 데 성공하였다. 얽힌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고 명예 회복에 성공하였으니 비극적이지만 비극은 아니라고 해야 할 것인가.  &nbsp;  순서를 바꿔 &lt;빵&gt;과 &lt;붉은 고양이&gt;를 먼저 보겠다. 둘 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를 배경으로, 물자 부족으로 굶주림에 시달리는 당대 독일 사회를 그리고 있다. 전자는 콩트에 해당하는 매우 짧은 작품인데, 배급된 빵의 양이 적어 배고픔에 한밤중 몰래 빵을 먹는 늙은 남편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내의 마음이 애절하다. 후자는 굶주림에 여위어가는 가족과 포동포동하게 살이 찌는 고양이의 대조, 이에 분노하는 화자의 고양이 학대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부족한 음식이나마 고양이에게 나누어주고픈 가족들의 마음도, 그런 가족을 보면서 화가 나고 고양이에게 미움과 증오를 품게 되는 화자의 마음 모두 어쩔 수 없다. 이는 시시비비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생과 사의 생존의 사안이므로.  &nbsp;  나는 고양이에게 말했다.“나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어. 내 동생들은 굶주리는데, 너는 살이 찐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나는 그런 모습을 더 이상 가만히 볼 수 없어.” (P.299)  &nbsp;  20세기 전반기의 작가와 작품 세 편이 하이라이트다. &lt;죽은 자는 말이 없다&gt;, &lt;선로지기 틸&gt;, &lt;변신&gt;, 각각 인상주의, 자연주의, 표현주의 사조에 해당한다고 옮긴이는 설명한다. 슈니츨러는 겉으로 드러난 인간의 외면과 행동이 아니라, 내면과 무의식에 중점을 두는 작가다. &lt;죽은 자는 말이 없다&gt;를 보면, 남자는 유부녀와 불륜의 내연 관계를 맺고 있다. 그들은 폭풍우 치는 저녁에 아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도시 외곽으로 마차를 몰아 둘 만의 호젓한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 마차 전복으로 남자는 죽고, 여자는 본능적으로 도망친다. 자신의 정체가 대중에게 드러나서는 안 되는 게 그녀에게 가장 중요하다. 그녀를 비정하다고 욕하지 말자. 누구나 같은 순간에는 동일한 무조건적 반응을 보이게 마련이므로. 위험의 순간에 인간은 철저히 개인주의자 나아가 이기주의자가 된다. 그녀가 마차 주변에 남아 서성거린다고 무엇이 달라지는가, 죽은 남자가 되살아나지 않을 텐데, 그녀는 가족, 명예, 경제적 안정 등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다. 여기서 입에 발린 사랑의 가치는 현저히 위축되고 만다. 그것이 인간의 본질이다.  &nbsp;  그녀는 마주보이는 벽거울 속에서 자신의 얼굴을 보는데, 그것은 잔인하게 미소 짓고 있으며, 일그러진 표정을 하고 있다. 그녀는 그것이 자기 본연의 얼굴이라는 것을 알고 전율한다. (P.186)  &nbsp;  &lt;선로지기 틸&gt;은 잔인한 소설이다. 자연주의 사조 자체가 지향하는 인생의 비극적 단면을 철저하게 헤집고 있다. 남들에게 이상하게 여겨진 틸과 첫 번째 부인의 관계가 정신적, 영혼의 측면에서 틸의 삶을 지탱하고 있었음을 독자는 그녀의 죽음 이후에 비로소 알게 된다. 틸의 서두른 재혼은 전적으로 아들 토비아스를 위한 것인데, 두 번째 부인의 세속적, 물질적 속성은 틸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것을 꾹 참고 외면하는 틸이 안타까운 동시에 계모에게 학대받는 아들의 모습을 목격하는 틸의 비통함은 진퇴양난의 처지에 빠진 절망감마저 자아낸다. 틸에게 결별을 고하는 첫 번째 부인의 환영, 그리고 아들의 철길 사고로 인한 사망으로 그는 생존의 이유를 상실한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틸이 못된 사람이 아님을 이미 독자는 알고 있다. 두 번째 부인이 악독하지만 일방적으로 매도 하기에는 석연치 않다. 첫 번째 부인의 죽음과 어울리지 않는 부인과 재혼, 계모와 전처의 자식 등 온갖 비극적 요소가 충분히 한데 모였다. 비극은 일어나게 마련이다, 다만 그 정도만이 궁금하였을 뿐.  &nbsp;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자 자신이 징그러운 벌레로 변해있는 것을 알았다. (P.227)  &nbsp;  문학사상 가장 강렬하고 충격적인 시작 문장의 대표격이 아닐까. 카프카의 &lt;변신&gt;이다. 오늘날은 워낙 공상과 환상 문학이 유행하고 있기에 이 정도 설정은 평범한 수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만, 시간을 거슬러 백 년 전의 시도다. 카프카는 파격적 개시에 이어 아무렇지 않게 벌레가 된 잠자의 사고와 행동을 풀어나간다. 몸은 서서히 벌레로 퇴화하지만 생각은 여전히 인간인 잠자. 그는 가족의 생계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자신을 안타깝고 부끄럽게 여긴다. 가족들은 타인에게 그의 존재를 철저하게 숨긴다. 그를 드러내봤자 하등 도움이 되지 못하기에. 생계를 위해 하숙을 하고, 여동생은 물론 은퇴한 아버지마저 직업전선에 뛰어들지만 벌레 잠자의 존재는 그들에게 점점 무거운 짐으로 자리한다. 잠자에게 서서히 비우호적이고 적대적으로 되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보게 된다, 특히 그나마 친절했던 여동생의. 여기서 오빠는 괴물로 지위가 완전히 전락한다.  &nbsp;  “엄마 아빠! 더 이상은 안 되겠어요. 두 분은 아마 절 모르시겠지만 저는 잘 알아요. 저는 이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래서 말씀드리는데, 우리는 저것을 없애버려야만 해요. 우리는 저것을 돌보고 참고 견뎌내는 등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해왔다고 믿어요. 그러니 아무도 우리를 비난하지 못할 거예요.” (P.279)  &nbsp;  독자는 비난할 수 없다. 잠자도 자신의 소멸이 필요불가결함을 인정한다. 누구를 위해?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굶주림과 쇠약함으로 인해 벌레 잠자는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는 그의 죽음을 슬퍼해야 할까? 아니다. 마치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막힌 하수도가 뻥 뚫린 듯이 가족은 홀가분함을 느낀다. 새로운 삶의 전망을 꿈꾼다. 하느님께 감사할 따름이다. 이 작품이 실존주의의 선구로 일컬어지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인간은 누구나 한켠에 벌레와도 같은 구석을 품고 있기 마련이다. 우리는 그것을 남들로부터 인정받기 기대하지 못하기에 철저하게 숨기려고 애쓴다. 우리가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한다는 건 지극히 피상적이다, 심지어 사랑하는 사이에 있어서도. 작가는 이처럼 무거운 진실을 아무렇지 않은 듯 가볍게 독자에게 툭 던져놓는다. 마치 알아서 판단하라는 듯이.  &nbsp;  전차가 목적지에 도착하자 딸이 가장 먼저 일어나 싱싱한 젊은 몸을 쭉 폈는데, 그 모습은 부부에게 그들의 새로운 꿈과 멋진 계획이 실현된다는 것을 확인해주는 듯했다. (P.287)]]></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16/38/cover150/899195881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16383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야생의 땅 (존 뮤어/김수진/디자인이음) - [야생의 땅]</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83823</link><pubDate>Tue, 10 Feb 2026 19:09: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83823</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832537&TPaperId=17083823"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31518/14/coveroff/k152832537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152832537&TPaperId=17083823"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야생의 땅</a><br/>존 뮤어 지음, 김수진 옮김 / 디자인이음 / 2023년 04월<br/></td></tr></table><br/>존 뮤어는 미국에서 ‘국립공원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이다. 그의 노력 덕분에 요세미티, 옐로스톤 등이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이 책은 그의 자연 에세이 10편을 수록하고 있다. 20세기 전후에 쓴 글이지만 여전히 신선함과 생동감이 넘친다. 그는 주로 미국 서부 지역에서 활동하였기에 이 책의 지역적 배경도 캘리포니아, 알래스카, 오리건, 워싱턴이 중심이 되며 동쪽으로는 옐로스톤과 유타주 정도까지다.  &nbsp;  그의 글을 읽을 때 미리 유념할 점이 있는데, 일단 이 당시는 관광과 개발 등 인간에 의한 파괴 행위가 제법 있지만 현대처럼 대대적으로 본격화하기 이전이다. 뮤어는 문명이 거의 개입되지 않은 야생 상태의 자연과 동식물을 경험하였다. 알래스카와 요세미티 등과 관련해서 지구온난화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뮤어가 경이롭게 발견하고 찬미하고 감동적으로 기술한 만년설과 빙하의 상당수는 사라지거나 멀찌감치 내륙으로 후퇴하였다. &lt;글레이셔만 발견 이야기&gt;와 &lt;알래스카 여행&gt;의 여정을 구글 지도로 비교해 보면 그 역력함에 아련함을 느끼게 된다.  &nbsp;  만을 둘러싸고 서 있는 산기슭과 다섯 개 거대 빙하의 웅장한 전면도 볼 수 있었다. 그중 가장 가까이 있는 빙하는 바로 내 발아래에 있었다. 내가 글레이셔만 전체를 조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얼음과 눈과 새로 만들어진 바위로 채워진 고독한 풍경. 그 어둠과 적막과 신비. (P.17, &lt;글레이셔만 발견 이야기&gt;)  &nbsp;  다섯 개의 거대 빙하가 한 곳에 몰려드는 글레이셔만을 실제로 조망한다면 압도감에 사로잡히게 될 것 같다. 저자의 이름을 딴 뮤어 빙하가 가장 거대하다는데, 강이 아니라 호수의 느낌을 주는 빙하라니. 그조차도 옛날에는 만 전체가 하나의 거대 빙하였다니 사뭇 상상의 범위를 넘어서는 웅장함. 빙하라면 그린란드나 아이슬란드 이상의 그야말로 극지방에 가야 목도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시애틀 지역을 여행할 기회가 생기면 해안선을 따라 글레이셔만 국립공원까지 올라가는 코스를 꼭 체험하고 싶다.   &nbsp;  일반적으로 사람은 압도적인 자연풍광에 우선 매혹된다. 하지만 경치는 계속 보면 식상해지기 마련이다. 이때 동식물 등의 다채로운 식생이 뒤따른다면 금상첨화다. 요세미티의 곰, 시에라사슴, 더글러스청설모, 줄무늬다람쥐, 마멋. 오리건의 더글러스전나무, 고귀한 소나무 피너스 램버티아나 소개를 보면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이들 지역에서 공통으로 등장하는 주요 동물은 곰과 방울뱀인데, 인간에게 생명의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위험 동물이다. 하지만 뮤어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하며, 그들에 대한 두려움이 과장되었으며 서로 간 존중하면 그다지 위험 요소가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nbsp;  뮤어의 글을 읽다 보면 때로는 여행 에세이 또는 가이드북의 인상을 받는데, 실제로도 그런 식의 뉘앙스를 풍기는 문장도 간혹 있다. 국립공원은 보호와 관광이라는 이중적 목적을 지닐 수밖에 없다. 자연보호의 가치도 중요하지만, 지역경제라든가 산업적 측면도 외면하기에 곤란하기에 적절한 관리 아래 이루어지는 여행 산업 발전을 위해 그가 에세이로 소개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lt;알래스카 여행&gt;, &lt;옐로스톤 국립공원&gt;이 전형적이며, &lt;요세미티의 동물들&gt;과 &lt;오리건의 숲과 동식물&gt;도 다분히 목적성을 띠고 있다. 뮤어는 인간을 배제한 자연보호를 주창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중심의 자연관도 배척한다. &lt;야생 양모&gt;에 피력하였듯이 인간의 효용 관점에서 자연과 야생을 가치 판단하면 왜곡과 편향에 사로잡히기 마련이다.  &nbsp;  현재의 문명이 가르치는 신조를 보면 세상을 특별히 사람이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여기는 경우가 있다. 이런 생각보다 문화와 야생의 관계를 올바로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극복하기 힘든 장애도 없는 것 같다. (P.272-273, &lt;야생 양모&gt;)  &nbsp;  자연 에세이에 인간적 요소가 추가되면 더욱 빛나게 된다. 저자가 &lt;스무고개 골짜기&gt;에서 “자연의 세례를 받은 경험”(P.103)이라든가 리터산 등반 시 암벽에서 운명이 다할 것처럼 꼼짝 못 한 위험담(&lt;가까이에서 바라본 시에라네바다 산맥&gt;), 곰 및 방울뱀과 대치한 이야기 등은 재미와 흥미를 배가한다. ‘풀의 남자’ 데이비드 더글라스 에피소드(&lt;오리건의 숲과 동식물&gt;)도 놓칠 수 없다. 파괴와 약탈의 시기에 그는 존 뮤어와 함께 아메리카 자체를 사랑한 사람이다.  &nbsp;  현대의 문명인에게 자연과 야생이 갖는 의미는 남다르다. 여가와 휴식, 모험과 체험의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문명이 심화할수록 갖게 되는 파편화와 소외감을 치유하는데 자연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인간이 간섭하고 지배하지 않는 자연은 우주의 본원적 질서를 품고 있어서다. 뮤어는 이 점을 강조하고 역설한다. 국립공원 지정은 이를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nbsp;  흙과 나무, 바위와 물, 공기와 햇살이라는 형상 안에는 본질적인 영적 세계가 감추어져 있다. 그러니 ‘본질적’이라 불리는 것들을 진정 본질적인 영적 세계로 이렇듯 일시적으로 표현한 것을 자세히 살펴보고, 이곳이 바로 천국이며 천사들이 머무는 곳임을 깨달으라고 말이다. (P.251, &lt;옐로스톤 국립공원&gt;)  &nbsp;  이 책의 최초 정가 책정 근거는 무엇일지 궁금하다. 좋은 책을 독자에게 멀찌감치 떨어뜨리는 최고의 방법이 아니었을까. 반면 재책정된 가격은 가치에 비해 터무니없이 낮다. 지나친 양극단에서 적정성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31518/14/cover150/k152832537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15181486</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아벨 콰르텟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4 (2026.2.5)</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74413</link><pubDate>Fri, 06 Feb 2026 00:1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74413</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아벨 콰르텟 베토벤 현악사중주 전곡연주 4일시 : 2026년 2월 6일(목) 19:30장소 : 예술의전당 IBK기업은행챔버홀연주 : 아벨 콰르텟&nbsp; - 윤은솔 (바이올린)&nbsp; - 박수현 (바이올린)&nbsp; - 박하문 (비올라)&nbsp; - 조형준 (첼로)<br>프로그램&nbsp; - 베토벤, 현악사중주 4번 C단조 Op.18-4&nbsp; - 베토벤, 현악사중주 16번 F장조 Op.135&nbsp; - 베토벤, 현악사중주 13번 Bb장조 Op.130&nbsp; - 베토벤, 현악사중주를 위한 대푸가 Bb장조 Op.133<br>* 세줄평초기곡인 4번에 이어 마지막 현악사중주곡이 바로 연주됨에도 이질적임을 느끼지 못하는데, 16번에서 베토벤은 후기곡에서의 장대함과 심오함을 일부러 벗어던지고 해탈의 느낌을 자아낸다.&nbsp;하이라이트인 13번과 대푸가를 듣고나니 대푸가를 피날레로 교체한 게 타당해 보인다. 맹렬한 현의 질주에서 나타나는 지극한 현대성을 당대 청중은 이해할 수 없었을 테니.개인사로 마지막 여정을 함께할 수 없음이 너무나 아쉬울 뿐이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206/pimg_7093891535020637.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74413</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식물학자의 노트 (신혜우/김영사) - [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31592</link><pubDate>Mon, 19 Jan 2026 18:3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31592</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6948&TPaperId=17031592"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24/60/coveroff/89349869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4986948&TPaperId=17031592"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식물학자의 노트 - 식물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a><br/>신혜우 지음 / 김영사 / 2021년 04월<br/></td></tr></table><br/>이 책이 다른 ‘식물의 세계’ 책들과 차이 나는 지점은 무엇보다 그림에 있다. 대개 글과 사진으로 구성되기 마련인데, 저자는 글과 그림으로 구성하며 해당 그림은 모두 저자가 직접 그렸다고 한다. 이건 저자가 식물 일러스트레이터이기도 하여 가능하다. 그림이라고 해서 간단한 차원이 아니라 식물도감 수준의 정밀한, 그리고 과학적인 도해 작업이다.   &nbsp;  인간의 입장에서 조형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보다 식물의 입장에서 지구에 생존하는 형태, 생태, 진화를 그림에 담습니다. 과학적인 훈련을 통해 식물에 대한 사랑을 조명한 것이 그림이지요. (P.8, 프롤로그)  &nbsp;  예쁘고 세밀하게 그려진 식물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문득 그림이 더 컸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든다. 176면과 177면 사이 펼친 양면 가득 실린 녹나무 그림 같을 수는 없더라도 한 면 가득 커다랗게 그림으로 채웠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건 순전히 개인적 욕심이다. 저자는 식물학자로서 대중이 잘 알지 못하는 식물의 다양한 생태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한층 클 것이기에 글도 놓칠 수 없을 테니.  &nbsp;  식물에 대해 거의 무지에 가까우므로 소개된 식물 이야기는 생소하면서도 신기하다. 그나마 이름이라도 알고 있어 친숙하다고 착각했던 식물에서 전혀 알지 못하는 생경한 면모가 있다는 점은 살짝 놀랄 정도다. 사람은 본성상 동물에 끌린다. 육식에 반대하는 채식주의자는 많지만, 식물은 마구 꺾고 자르고 뽑고 베도 되는 대상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좀처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우리에게 식물은 일상생활에서는 사물 또는 도구이며, 자연 속에서는 자원으로 인식되기 마련이다.  &nbsp;  저자는 식물이 생장과 번식을 위해 기울이는 엄청난 노력을, 한치라도 목적에 유리하도록 치열하게 탐색하고 적응하는 모습을 기술한다. 식물이라고 흔히 통칭하지만, 눈에 겨우 보이는 꽃가루와 작은 식물에서 거대한 나무에 이르기까지, 열대에서 극지방, 땅속과 지상에 걸쳐 생존하는 식물의 폭은 광대하다. 광합성을 하지 않는 기생식물과 식충식물처럼 동물성에 가까운 유형도 생존 가능성을 증가하기 위한 노력의 산물이다. 하물며 식물이 품은 맹독에 이르러서는 말할 나위도 없다.  &nbsp;  제한된 분량에 다양한 식물을 소개하고, 다양한 식물의 면모를 기술하려다 보니 보다 깊숙한 내용을 담고 있지 못한 점은 이 책의 태생적 한계다. 그림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부족한 점과 마찬가지 연유라고 짐작한다. 저자는 단순히 식물의 생태를 독자에게 알리려는 목적보다는 이를 통해 식물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하도록 애쓰고 있다. 그래야 식물이라는 생명체를 무심코 가볍게 취급하는 관행을 줄일 수 있을 테니. 나아가 식물의 생태에서 지혜와 교훈을 얻기를 바라고 있다. 각 장의 매 편 말미에서 저자는 해당 식물들에서 얻을 수 있는 이러저러한 지혜를 우리네 삶에도 유추하고 적용하기를 요청한다. 예를 들면 아래와 같이.  &nbsp;  식물은 각자 자신에게 적합한 시간에 꽃을 피우고, 삶의 다음 고리로 연결해갑니다. 사람도 저마다 꽃을 피우는 시간이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은 일찍 찾아올 수도, 어떤 사람은 늦게 찾아올 수도 있겠죠. 중요한 건 일찍 꽃을 피우는 것보다 나에게 맞는 시간에 꽃을 피우기 위한 부단한 노력이 아닐까요? (P.39, 이제는 꽃을 피울 시간)  &nbsp;  몇몇 재밌고 신기한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현대에도 잘 살아남은 원시식물인 고사리, 미래의 사료와 환경 보전의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르는 개구리밥, 솔방울 가습기의 놀라운 원리, 붉은색을 많이 띠는 가을 열매의 이유 등은 신기하다. 국화과 등에 속하는 식물에서 보이는 로제트 잎, 생태적 특성과 환경 조건 등을 고려해 성을 선택하는 식물, 국화꽃 한 송이가 사실은 작은 꽃다발인 ‘두상화서’라는 사실, 식물의 이타심 등등. 특히 식물이 동물과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환경과 상호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흥미진진한 루트-브레인 가설과 우드 와이드 웹. 게다가 주변에 흔히 보던 은행나무, 소철, 메타세쿼이아가 자연 상태에서는 멸종위기 종이라니 놀랍다. 수국과 수국백당, 장미는 관상용으로 인간이 계속 개조하여 자연번식이 불가능한 품종이라니 씁쓸할 따름이다.   &nbsp;  지구에서 오랫동안 진화해오며 살아온 종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는 주된 이유는 기후변화나 자연선택이 아닙니다. 직간접적인 인간의 활동이 가장 큰 원인이죠. (P.257)  &nbsp;  인간이 살다 보면 많은 식물과 관계를 형성할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어떤 식물은 유용하여 우대받고 다른 식물은 무시되고 멸종되는 사례를 완전히 막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연과 생물을 이용 수단이 아니라 더불어 사는 동반자라고 관점을 바꾼다면 이 책에 실린 식물은 물론 인간 자체의 삶도 한층 풍요로워질 것이다.  &nbsp;  앞서 &lt;이웃집 식물상담소&gt;를 흥미롭게 읽었지만, 식물 이야기의 비중이 좀 더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게 이 책을 선택하게 된 이유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 책이 좀 더 전문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하므로. 확실히 식물학의 더욱 깊고 진지한 내용을 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학술서라고 하기는 어려운데, 저자는 일반 독자에 대한 배려와 교감의 끈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전문 서적류의 건조하고 딱딱함보다는 식물학과 대중의 소통에 무게중심을 두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가 나타난다. 그 결과가 &lt;이웃집 식물상담소&gt;이리라.]]></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7024/60/cover150/89349869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70246047</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또 하나의 일상</category><title>186회 아트엠콘서트 - 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 (2026.1.15)</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25411</link><pubDate>Fri, 16 Jan 2026 15:12: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25411</guid><description><![CDATA[<br>공연명 : 186회 아트엠콘서트 - 김세준 비올라 리사이틀일시 : 2026년 1월 15일(목) 19:30장소 : 신영체임버홀연주 : 김세준 (비올라), 박진형 (피아노)진행 : 바이올리니스트 이수민프로그램&nbsp; -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2번 D단조 BWV 1008&nbsp; - 브루흐, 로망스 F장조 Op.85&nbsp; - 비외탕, 비올라 소나타 B-flat장조 Op.36&nbsp; -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Op.7 [윌리엄 프림로즈 편곡]<br>* 세줄평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비올라로 들으니 바닥에 깔리는 저음 대신 한층 친근한 목소리로 다가온다. 파가니니 곡도 원곡의 화려한 고음이 주는 쨍한 맛과 다른 미감을 보인다. 두 곡 모두 첼로와 바이올린에 친숙하고 특화되다 보니 원곡을 능가하지 못하지만 색다른 별미로 즐길만하다.&nbsp;프로그램의 핵심은 브루흐와 비외탕이다. 중역대에 특화된 코맹맹이 같은 편안한 사운드를 중심으로 비올라가 보여줄 수 있는 서정적이고 기교적이며, 느림과 빠름의 모든 아름다움을 두 곡을 통해 느낄 수 있다. 바이올린 곡으로 유명한 작곡가들인데 이들의 비올라 곡이 소중하다. 2026 아트엠콘서트 메세나 회원으로 첫 공연 참석인데, 대화와 연주가 이어지는 진행이 흥미롭다.<br>]]></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26/0116/pimg_7093891534998565.jpg</url><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2541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룰루 밀러/정지인/곰출판)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21578</link><pubDate>Wed, 14 Jan 2026 22:48: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21578</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5920&TPaperId=17021578"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65/73/coveroff/k092835920_2.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K092835920&TPaperId=17021578"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a><br/>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br/></td></tr></table><br/>작년도 대학 도서관의 대출 상위 도서 목록에서 이 책을 처음 알게 되었다. 과학 에세이라고 하는데, 표제도 독특해서 흥미를 갖게 되었다. 알라딘 서점의 서평을 보니 대체로 높은 평가를 하는 가운데, 극단적으로 낮은 평점을 부여하는 사례도 간혹 볼 수 있다. 아마도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를 다루고 있나 보다.  &nbsp;  이 책은 내용상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전반부에서 생물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과 업적을 다루고 있다. 대중에 잘 알려지지 않은 과학자인 조던의 숨겨진 삶을 드러내어 고양하는 저작 의도로 이해하였다. 그만큼 어린 조던이 분류, 질서, 체계에 예민한 감각과 집착을 드러내는 일화라든가 대지진으로 거의 다 망가져 버린 수많은 어류의 표본과 명칭을 상실할 위험에 처하면서도 굳세게 버텨냈다는 이야기 등은 확실히 저자가 삶의 모범으로 삼아 추구할 가치가 있는 인물로 보인다. 어류 분류학에서 그가 남긴 업적은 워낙 대단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nbsp;  두 번째 부분은 스탠퍼드 대학 총장으로서의 데이비드 스타 조던 이야기다. 그가 오늘날 세계적 명성을 지닌 대학의 초대 총장을 지냈다는 사실은 전혀 몰랐지만 이걸 통해서도 그가 당대 학계의 굉장한 저명인사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이야기가 묘하게 흘러간다. 설립자 부부와 조던 간 갈등, 특히 스탠퍼드 여사의 사망에 얽힌 조던의 혐의점은 그가 직간접적으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겠다는 판단이 나온다. 그가 여사의 사망원인을 독살이 유력한데도 굳이 자연사라고 몰고 가기 위해 애썼다는 점이 특히 그러하다.   &nbsp;  존경받는 과학자 조던의 이미지는 앞에서 이미 큰 흠집이 났는데, 저자는 세 번째 부분에서 쐐기를 박는다. 철저한 우생학자로서 조던을. 그가 우생학을 열렬히 옹호하고 차별을 법제화하기 위해 노력한 대목은 오늘날 기준으로 보면 시대착오적이고 비난받기에 충분한 오점이다. 자연에 질서를 부여하고 체계화하고자 하는 그의 열성은 나아가 모든 생명체를 우열의 기준을 적용하여 사다리 형태로 배치하였다. 신체적 결함, 지적 장애, 인종 편견 등이 결합하여 우수한 인간을 배양하기 위해 소위 부적합자들에 대한 차별을 주창한 것이다.  &nbsp;  이처럼 룰루 밀러의 저작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어류학계 거장의 은폐된 잘못을 파헤치고 세상에 공개함으로써 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지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내용 중 가끔 느껴지는 조던에 대한 저자의 냉소적인 어투를 이제야 짐작할 수 있다. 한편 후기에 따르면 그가 재직하였던 인디애나 대학과 스탠퍼드 대학, 그리고 캘리포니아 지역에 그의 이름을 딴 학교, 건물 등의 명칭이 전부 변경되었다.   &nbsp;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도 무시해버린 남자. (P.201)  &nbsp;  여기까지로 그쳤으면 이 책과 저자는 대단한 갈채를 받는 것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는데, 그렇지 않은 게 논란의 대상이 된다. 군데군데 조금씩 섞어놓은 저자의 개인사다. 과학자인 아버지에게서 인간은 자연에 있어 별다른 의미가 없는 존재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 수면제 복용으로 자살을 시도한 사실, 자신의 동성애로 실망하고 떠나간 연인이 돌아오기만 하염없이 기다리며 삶이 엉망이 되었다는 일종의 푸념. 솔직히 잘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 책에서 굳이 필요한 대목이었을까, 독자가 관심과 흥미를 느낄 만한 내용인가.  &nbsp;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이비드에게 너무나도 소중했던 그 생물의 범주, 그가 역경의 시간이 닥쳐올 때마다 의지했던 범주, 그가 명료히 보기 위해 평생을 바쳤던 그 범주는 결코, 단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 (P.242)  &nbsp;  조던이 일생을 바쳐 동정(identification)한 수많은 물고기가 오늘날 어류라는 학문적 분류가 사라져 헛되게 되었다는 사실은 조롱이 아니라 슬픔과 탄식이며 과학 발전에서 불가피한 사례로 위로받아야 마땅하다. 저자는 인간이 눈앞의 현상에 급급하여 깊은 과학적 인식을 하지 못해 단순히 물속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다른 종을 어류로 묶어놓았다는 점을 빗대어 조던의 우생학 옹호를 같은 선상에서 비판한다. 그러면서 슬그머니 자신의 삶과 선택을 정당화한다. 연인의 복귀 기대를 포기하고 새로운 여성을 만나 동성애 커플로서 살아가는 자신의 모습을 밝고 행복하게 기술한다. 독자는 저자를 감히 비판해서는 안 된다. 그건 어류의 분류학적 통찰에 실패했던 그리고 우생학을 부르짖던 조던과 같은 무리임을 자인하는 것과 똑같으므로. 이제야 비로소 알라딘 서점의 평점이 극단적인 이유를 알게 되었다.   &nbsp;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P.267-268)  &nbsp;  저자가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인물에 대해 정말 몰랐을까? 생물분류학자인 그라는 존재에 맞닥뜨렸고 그의 단호한 의지와 흔들리지 않는 정신에 감명받고 그에 대해 좀 더 알기를 원했다면, 당연히 그의 일생에 대한 개략적 확인에 들어가는 게 당연하다. 저자가 그의 삶과 학문에 관한 책을 쓸 것인지 말 것인지를 가늠해 보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그에 대한 세간의 비판은 스탠퍼드 여사 관련 의혹이 아닌 우생학자로서의 그를 향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우생학 지지자 조던과 스탠퍼드 여사 사망 혐의자 조던을 깡그리 엮어서 그를 악인으로 취급한다. 어류 분류학자로서 그의 열성과 업적은 전혀 비난의 대상이 아님에도 그조차 조롱의 대상으로 삼는다. 표제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틀린 말이다. 어류라는 학문적 분류가 바뀌었을 뿐이다. 물고기라는 실체는 엄연히 존재한다.   &nbsp;  저자의 의도는 자신이 선택한 성소수자의 정당성에 대한 옹호에 불과하다. 그것을 주장하기 위해 저자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우생학자를 선택하였다. 저명한 스타 과학자의 화려한 외면 뒤에 숨어있는 어둡고 부정한 측면을 폭로하고 고발하는 행위는 긍정한다. 과학의 발전과 사회 정의라는 관점에서. 다만 그 저격이 개인적 목적-저자의 내밀한 삶과 선택에 억지로 정당성을 부여하려는-을 교묘하게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 또한 비판의 소지가 있다.   &nbsp;  개인적으로 이 책은 어류 분류학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지적 영역을 확장해 준 점에서 의의가 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당대의 저명한 생물학자이자 명문 스탠퍼드 대학의 초대 총장에 대한 영광과 오욕에 대해 알게 된 점도 흥미로웠다. ]]></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8465/73/cover150/k092835920_2.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4657330</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백년의 고독 2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조구호/민음사) - [백년의 고독 2]</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08527</link><pubDate>Thu, 08 Jan 2026 19:27: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08527</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51&TPaperId=17008527"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6/coveroff/8937460351_3.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51&TPaperId=17008527"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년의 고독 2</a><br/>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2000년 01월<br/></td></tr></table><br/>2권은 11장에서 마지막 20장까지를 다룬다. 등장인물 기준으로는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증손인 세군도 형제부터 6대인 아우렐리아노 바빌로니아까지다.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발흥과 쇠락을 그린 연대기라는 성격은 끝까지 유효하다. 이제 실질적 주인공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가 맡는데, 그는 가축의 초자연적 생산성으로 가문에 부귀의 절정을 이끌지만 동시에 자신의 거대한 방탕과 낭비로, 한편으로는 아내 페르난다가 가져온 폐쇄적이고 금욕적인 통제 위주의 생활 방식으로 가문 몰락을 가져오기도 한다.   &nbsp;  1권에서 찾아볼 수 있었던 독특한 요소는 여기에서 더욱 발전한다. 교통의 발전으로 마꼰도 마을은 외부 자본과 물질문명에 개방하면서 과거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혁명이 보수파와 자유파 간 이념의 대립이었다면,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가 참여하고 경험한 갈등은 자본주의 심화에 따른 계급적 성격이다. 정치와 자본이 결탁한 극단적 모습이 바나나 회사 노동자의 파업과 학살 그리고 은폐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nbsp;  “꿈을 꾸신 게 틀림없습니다. 마꼰도에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현재도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앞으로도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긴 살기 좋은 마을입니다” 장교들은 그렇게들 주장하곤 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노조 지도자들을 몰살시킬 수가 있었다. (P.157)  &nbsp;  마술적 측면도 한층 두드러진다. 절대적 유혹성을 지닌 양가적 인물인 미녀 레메디오스의 승천은 그녀가 지닌 천진한 순진성이 종교성의 원리와도 상통함을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아들들 이마에 그려진 지워지지 않는 재의 십자가는 그것이 죽음의 표식이 되었다는 점에서 비극적이다.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와 함께 나타나는 노랑나비 무리 역시 환상적이다. 하지만 마꼰도 마을을 폐허로 만드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장마와 가뭄이 무엇보다 승천과 함께 더없이 비현실적인 면을 드러낸다. 사 년 십일 개월 이틀 동안 내리는 비와 이후 십 년 동안 다시는 내리지 않는 비는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의 기반을 완전히 거덜 낸다. 그와 가족들을 비극으로 치닫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는 점에서 범상하게 넘길 수 없다.  &nbsp;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의 근친결혼에서 비롯한 근친상간적 요소는 삘라르 떼르네라의 형제 간 공유, 아마란따의 부적절한 근친상간적 취향처럼 지속되지만 내면에 잠복하고 있다가, 아우렐리아노와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결합과 돼지꼬리 아기의 출산을 통해 결정적으로 표출되고 이내 파국으로 치닫는다. 일찍이 부엔디아 부부가 마꼰도 마을을 개척하게 된 계기인 동시에 그토록 막고자 애썼던 파멸이 반인반수의 괴물 출현이라는 예고를 거쳐 거대한 운명의 흐름 앞에서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기도 하다.  &nbsp;  프란시스 드레이크가 리오아차를 습격한 것은 단지 이모와 자기가 가장 복잡하게 뒤얽힌 핏줄의 미로 속에서 서로를 찾아, 마침내 가문에 종지부를 찍어야 할 신화적인 동물을 낳도록 하기 위해서였을 뿐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P.305)  &nbsp;  레메디오스의 승천을 제외하면 가문의 식구들은 모두 고독하거나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 우르술라, 아마란따, 레베까, 페르난다, 메메는 수명의 장단에 차이가 있지만 고독함의 기준에서는 동일하다. 고고하고 평온한 죽음을 맞이한 삘라르 떼르네라와 스스로 저택을 떠난 산따 소피아 델 라 삐에닷이 차라리 나을 정도다. 대령의 아들들, 호세 아르까디오, 아마란따 우르술라, 마우리시오 바빌로니아, 돼지꼬리 아우렐리아노의 죽음은 회한과 비참 그 자체다. 이런 점에서 호세 아르까디오 세군도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형제의 죽음은 오히려 행복하다고 해야 할까.  &nbsp;  개인과 가문과 마을의 장대한 비극인 이 작품에 작가는 환상적 요소와 함께 희화적 요소를 곳곳에 집어넣음으로써 분위기를 전환하고 무게감을 한층 덜어내고 있다. 세군도 형제의 시신을 술 취한 조객들이 착각하여 다른 무덤에 묻었다는 대목은 희화성과 동시에 쌍둥이 형제가 죽음을 통해 비로소 본성을 되찾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무적의 대식가 아우렐리아노 세군도와 ‘암꼬끼리’ 별명의 거대한 여자 사이에 벌어진 음식 많이 먹기 대결, 메메가 방학 때 학교에서 수녀와 급우를 떼거리로 데려옴으로써 벌어진 일대 혼란, 여러 면에 걸쳐 단 하나의 문장으로 길게 이어진 남편을 향한 페르난다의 불평 등은 해당 인물의 성격을 드러내는 동시에 해학미를 삽입하여 심각한 작중 분위기를 가볍게 하려는 작가의 의도가 분명하다.  &nbsp;  부엔디아 가문의 전통이라고 할 만한 반복적으로 동일한 이름 사용하기는 이미 언급하였듯이 인물 간 성격의 유사성을 보여준다. 호세 아르까디오의 충동적, 외향적 성격과, 아우렐리아노의 이성적, 내향적 성격 대비는 두드러진다. 우르술라의 근친결혼과, 아마란따의 근친상간 성향을 겸비하였다는 점에서 아마란따 우르술라의 행보는 숙명적이다. 이러한 이름 짓기는 결국 시간과 세대가 지나도 예언된 운명은 흘러 사라지지 않고 되돌아오다가 어느 때에 이르러 발현된다는 운명론적 인식에서 비롯함이다.  &nbsp;  그녀[삘라르 떼르네라]에게는, 비록 뚫고 들어갈 수는 없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부엔디아 가문 남자의 마음속에는 신비한 것이 단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그 가문의 역사는 끝없이 반복되는 하나의 톱니바퀴이며, 그 축이 서서히, 고칠 수 없을 정도로 마모되지 않는다면 영원히 계속해서 회전하는 하나의 바퀴라는 사실을 한 세기에 걸친 카드 점과 경험을 통해 배웠기 때문이었다. (P.277)  &nbsp;  이 장엄한 연대기가 부엔디아 가문과 마꼰도 마을의 일개 차원을 넘어섬은 작가가 문명적, 사회적 이념을 투입하면서 확실해진다. 이들은 작가의 출신국인 콜롬비아,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전체를 가리킨다고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고유한 전통과 가치를 지니고 살다가 서양 문명의 세례를 받았지만 그것이 발전과 번영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쇠퇴와 파멸, 독재와 폭력으로 점철되는 사례를 반복하는 슬픈 현실. 그것은 비현실과 환상과 마술의 등장 없이는 도저히 이해와 설명이 불가능하다는 뼈저린 자기 인식의 산물이 아니겠는가.  &nbsp;  마꼰도는 서양 세계와의 진정한 족외혼적 관계를 설정하기 위한 시도에서 번번이 실패하고서 수세기 전부터 지속된 고독 속에 갇힌 채 아직까지도 확실하고 완전하게 알지 못하는 자신들의 근본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라틴아메리카의 은유적 표현인 것이다. (P.323, 작품 해설)  &nbsp;  오랫동안 이 작가와 이 작품에 대해 들었지만, 선뜻 손이 나가지 않았다. 명성이 높은 만큼 과대평가되거나 개인적 기대와 취향에 충족하지 못할 거에 대한 우려라고나 할까. 만시지탄이다. 이러한 주제 의식과 구성, 서사와 표현 기법, 무엇보다 이야기로서의 재미까지 고루 갖춘 작품을 1960년대에 서구가 아닌 라틴아메리카에서 써냈다니 대단하다고 할 밖에.]]></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6/cover150/8937460351_3.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601</link></image></item><item><author>성근대나무</author><category>책이 나에게 말하는 것들</category><title>백년의 고독 1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조구호/민음사) - [백년의 고독 1]</title><link>https://blog.aladin.co.kr/anaudeh/17001876</link><pubDate>Mon, 05 Jan 2026 19:11:00 +0900</pubDate><guid isPermaLink="false">https://blog.aladin.co.kr/anaudeh/17001876</guid><description><![CDATA[<table width="100%" height="30" border="0" align="center" cellpadding="0" cellspacing="0"><tr><td width="14"><img src="http://image.aladdin.co.kr/img/blog/trans.gif" width="14"></td><td width="85"><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43&TPaperId=17001876" target="_blank"><img src="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6/coveroff/s172933848_1.jpg" width="75" border="0" class="box1"></a></td><td valign="top"><A href="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SBN=8937460343&TPaperId=17001876" target="_blank" style="color:#386DA1;font-weight:bold">백년의 고독 1</a><br/>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민음사 / 1999년 10월<br/></td></tr></table><br/>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가 마꼰도를 개척하고 가문을 일구어내고 자손에 이르는 일종의 연대기다. 전 20장 중 1권은 1장에서 10장을 다룬다. 인물로 보면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에서 증손인 아우렐리아노 세군도까지 차례차례 나타난다. 삼백 면에 못 미치는 분량에 4대를 다루고 있으므로 진행 속도가 제법 빠르다.  &nbsp;  등장인물의 이름이 반복적으로 사용된다. ‘호세 아르까디오’는 부엔디아 본인, 첫째 아들, 증손자까지 계속 사용하며, 중간에 단명한 손자 이름도 ‘아르까디오’를 쓴다. ‘아우렐리아노’도 마찬가지다. 둘째 아들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와 그의 많은 아들들, 증손에도 아우렐리아노가 있다. 여자 인물의 이름에는 우르술라, 레메디오스, 아마란따를 붙인다. 이 소설을 읽으면 가끔씩 가계도를 들여다봐야 헷갈리지 않는다. 작가는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이름 간에 뚜렷한 성격 차이를 부여한다. 전자는 감각적이며 충동적이고, 후자는 내성적이며 강한 의지력을 소유한다. 둘 다 고독한 면모를 보인다는 점은 공통이다.  &nbsp;  우르술라는 막연한 불안감을 숨기지 못했다. 가문의 긴 역사를 통해 똑같은 이름들을 집요하게 되풀이해 씀으로써 확실해 보이는 결론들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P.269)  &nbsp;  그들이 보존했던 유일한 공통점은 그 집안 식구들이 지닌 고독한 기질이었다. (P.271)  &nbsp;  작가는 마술적 사실주의로 유명하다.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 아직 알 수 없지만, 기본적으로 부엔디아 가문의 연대기이므로 사실주의에 기반하여 전개하고 있다. 이따금씩 판타지적 요소가 아무렇지 않은 듯 개입하는데, 이것이 마술적 측면을 가리키는지도 모르겠다. 요즘에야 워낙 환상 문학 계열이 득세하고 있으므로 별거 아니게 보이지만, 이 소설이 발표된 1960년대라면 수용성의 관점에서 전혀 다를 수 있겠다 싶다. 니까노르 레이나 신부의 공중 부양,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의 죽음에 맞춰 호우처럼 내리는 꽃비, 아우렐리아노 세군도 소유 가축의 초자연적인 생산성 등등.  &nbsp;  너무나 많은 꽃들이 하늘에서 쏟아졌기 때문에 아침이 되자 거리가 폭신폭신한 요를 깔아 놓은 것처럼 되어버려서 장례 행렬이 지나갈 수 있도록 삽과 갈퀴로 치워야 했다. (P.212)   &nbsp;  한국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윤리적 기준에서 불편하게 다가오는 건 사실이다. 서양에서는 근친 간 결혼이 비교적 자유롭지만 우리네는 그러하지 않으므로. 가문의 창시자 부엔디아 부부는 사촌간이다. 근친결혼은 돼지꼬리 자손을 낳는다는 미신을 무릅쓰고 그들은 결혼한다. 호세 아르까디오가 여동생과도 같은 레베까와 결합하는 건 그렇다 치자. 아우렐리아노 호세와 고모 아마란따는 아슬아슬한 선을 넘을 뻔한다. 호세 아르까디오와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형제는 삘라르 떼르네라를 정부(情婦)로 공유하여 각자 아들을 둔다. 1부에서는 부정적 영향이 드러나지 않지만, 가계도를 보면 2부에는 분명히 중대한 문제로 불거지는 게 보인다.  &nbsp;  남성 인물이 온갖 사고와 방탕, 모험을 무릅쓰면서 끊임없이 부엔디아 가문을 몰락시킬 위험에 노출시키는 가운데 가문을 지탱하는 역할을 우르술라와 딸 아마란따가 도맡고 있다. 어찌 보면 소설 속 실질적 주인공은 그네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있다. 우르술라는 고손주까지 태어날 때까지도 장수하며 가문을 발전시키고 저택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기독교적 신념은 미약하지만 인륜을 존중하고 상식에 근거하여 삶과 가문을 꾸려나가는 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마란따는 어머니와 전혀 다르다. 레베까와 삐에뜨로 끄레스삐의 결혼을 깨기 위해 집요하게 애썼는데, 정작 끄레스삐가 본인에게 빠져들자 그와의 결혼을 단호하게 거부하여 죽음에 이르게 한다. 훗날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과 사랑하면서도 마찬가지로 결혼을 거부한다. 실수지만 레메디오스를 죽게끔 하고, 조카와 부적절한 행각을 벌이는 등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여지가 크지만 어쨌든 독신으로 살면서 가문을 지킨다.  &nbsp;  정치와 혁명 얘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다. 중남미의 정치적 혼란은 이 작품에도 깊숙이 반영되어 있는데, 자유파와 보수파 간 이념 다툼과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의 지칠 줄 모르는 군사 봉기가 그러하다. 번영하던 마꼰도 마을은 전세의 상황에 따라 자유파와 보수파가 교차로 지배한다. 잔혹한 통치자의 면모를 보이다가 총살당한 아르까디오와, 부엔디아 가문과 우호적이며 관용적 통치를 하지만 결국 친구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에게 총살형을 당하는 몬까다 장군이 이념의 헛됨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작중에서 비중이 크고 가문의 실제적 리더인 아우렐리아노 부엔디아 대령이 혁명군 군권을 장악하기 위한 비윤리적 처사와 권력욕에 빠질뻔한 위험, 수십 번의 봉기와 갑작스러운 타협 등은 개인의 성격뿐만 아니라 전쟁의 무의미함과 중남미 정치적 해법이 녹록지 않음을 나타내는 측면으로 해석할 수 있다.  &nbsp;  헤리넬도 마르께스 대령은 결국 전쟁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게 되었다. 과거에는 실제적인 행동이었고, 젊음의 거부할 수 없는 열정이었던 전쟁이 이제는 막연한 개념, 다시 말하면, 공허한 그 무엇으로 변모되어 버렸던 것이다. (P.242)  &nbsp;  마지막으로 집시 멜키아데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벗의 관계인 그는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와 문명의 새로운 문물을 소개하는 동시에 마법사, 연금술사와도 같은 면모를 보인다. 그와 부엔디아 저택에 자리잡은 그의 작업실은 이 작품에서 가장 마술적 요소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치인 동시에, 부엔디아 가문의 미래에 관한 예언은 작품 전체와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상징하게 된다.  &nbsp;  그러던 어느 날 밤, 그[멜키아데스]는 마꼰도의 미래에 관한 예언 하나를 발견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꼰도가 부엔디아 가문의 흔적은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유리로 지은 거대한 집들로 이루어진 번쩍거리는 도시가 될 거라는 것이었다. (P.87)  &nbsp;  작가 마르께스는 대단한 이야기꾼이다. 호세 아르까디오 부엔디아와 우르술라 부부에서 비롯하여 후대 자손에까지 소설의 전개는 물 흐르듯 막힌 곳이 없다. 부엔디아 가문의 세대 간 흐름이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각 세대와 인물의 상세한 특성과 두드러진 사건을 빼놓지 않고 기술함으로써 종횡으로 풍성한 이야기가 계속 이어진다. 안으로는 인물의 심리와 내면에서 밖으로는 군사혁명과 정세에 이르기까지 다루는 스케일도 크다. 무엇보다 난해하고 개인적인 심리 묘사를 지양하고 이야기의 흐름 자체를 중시하는 태도가 두드러진다. 2권에서 소설이 어떻게 전개될지 알 수 없지만, 1권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로움을 안겨준다.]]></description><image><url>https://image.aladin.co.kr/product/21/76/cover150/s172933848_1.jpg</url><link>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17600</link></image></item></channel></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