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나의 자서전 - 김혜진 소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24
김혜진 지음 / 현대문학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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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기댈 곳 없던 두 인물이 켜켜이 쌓은 우정도 동이라는 이름으로 갈라버리는 세계의 서늘함. 따뜻한 것을 동원해 세계를 바꾸고 싶었지만 어느새 동화되어 버리는 과정을 바라보는 안타까움. 미묘한 관계를 다루는 솜씨가 놀랍지만 말미에 이르면 신경향파가 자꾸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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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
정지돈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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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에 대한 책에서 우리가 떠올리는 것, 또는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가벼운 거닐음, 걸으면서 만난 대상에 대한 성찰, 한가로운 여행의 산책길?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은 이와 같은 독자의 기대를 가볍게 벗어나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간다. 산책은 각각의 글의 실마리로 기능하거나 아예 등장하지 않고, 굳이 연관성을 찾자면 그는 거리보다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텍스트를 산책하는 일에 더욱 주력한다. '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에서 정지돈이 강점을 둔 곳은 '서울과 파리'가 아니라 '생각한 것들'인 것이고, 생각은 그의 소설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텍스트들의 인용으로 이어진다.

 

  언제나처럼 온갖 텍스트들과 자신의 지인들(실제 혹은 허구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글쓰기이건만, 왜 하필 산책일까? 그것은 "서서 쓴 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일 것이라고 짐작된다. 정지돈은 글쓰기를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하는데, "앉아서 쓴 글"은 리얼리즘, "누워서 쓴 글"은 모더니즘이다. "서서 쓴 글""앉아서 쓴 글""누워서 쓴 글"의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그는 말하지만, 이런 글쓰기가 그의 지향점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강해졌다.


서서 쓰니까 앉아 있을 때처럼 긴 시간 집중하거나 계획을 세울 수 없으므로 글의 구조는 임의적이고 즉흥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워 있을 때처럼 편안하지도 않으니 내면 깊숙이 들어갈 수도 없다. 조금 더 설명하면 서서 쓴 글은 걸으면서 쓴 글이라고 할 수 있다. 무언가에 쫓기듯이, 의식 깊숙이 들어가는 게 아니라 표층에 머물면서, 전체의 구조나 다음 챕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태에서 글쓰기. 기억과 관찰을 토대로 하지만 부정확하고 우연적이며 가볍고 산만한 글쓰기. (173, 강조는 인용자)


  글을 읽다보면 종종 인용된 텍스트나 그의 발화에서 단도와 같은 통찰을 만나기도 하지만, 그는 거기에서 더 들어가지 않고 다른 텍스트를 끌어오거나 지인들의 이야기로 빠진다. 김빠지는 웃음을 주는 지인들의 이야기는 유머의 기능에서 끝나지 않고 과속방지턱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일까. 끝없는 텍스트의 인용 역시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표층에 머무는 글쓰기를 위한 것으로 보인다. 깊이보다 넓이를 지향하는 듯한. 이 두 가지 요소가 "걸으면서 쓴 글"이 흔히 도달하는 '아포리즘'과의 구별점일까.


  "임의적이고 즉흥적"이며 "부정확하고 우연적이며 가볍고 산만한 글쓰기"에 대한 정지돈의 지향은 리베카 솔닛을 통해 소환되는 버지니아 울프의 런던 산책에서도 만날 수 있다. "수동성이자 불확실성이고 정체성으로부터의 탈출". "훌륭한 시민, 단일한 자아, 사회로부터 주어진 역할에서 벗어나는 것, 비환원적이고 주관적인 상태로 돌입하는 것, 책임을 방기하고 의미를 지연시키는 것."(91) 그래서 그가 발터 벤야민의 '플라뇌르'나 구보에 눈길을 돌리는 것도 납득이 된다. "현란한 소비문화"에 정신이 팔려 목적지를 잃고 방황하는 도시 산책자. 그로 인한 "지각의 산만"(101)은 불확실성과 정체성 잃기를 닮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산책-글쓰기'가 플라뇌르라는 개념에 갇히기를 거부한다. "사실 플라뇌르는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파리라는 도시에서 난립했던 특정한 종류의 걷기와 걷기를 기록한 텍스트에서 발견한 아이디어를 작가들이 재창조한 것뿐"(83)이라면서. 플라뇌르라고 규정되었던 남성들의 이중성1)을 비판하는 것은 정체성 형성과 개념화를 거부하고 목적으로부터 탈주하는 글쓰기를 지향하는 그에게 당연한 귀결일까. 이런 '산책하듯 글쓰기'는 책의 말미에 가면 "에라스뮈스-분위기"와 만난다.

 

  정지돈은 "에라스뮈스-분위기""특정한 목적이나 주장, 대의에서 자유로워도 된다는 아이디어"이자, "어느 쪽 편을 들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이며 단지 지식의 즐거움과 삶의 기쁨에 헌신해도 된다는 해방감"(265)이라고 말한다. 에라스뮈스는 애매모호함과 변덕스러움으로 당대 보수와 진보 모두에게 공격받았지만 "빈민의 가련한 처지나 군주의 탐욕 등 세속적 사안들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발표할 기회를 좀처럼 놓치지 않았", "폭력을 혐오하는 사람, 평민에 공감하고 소박한 영혼에 공감하는 사람"2)이었다. 그의 애매모호한 태도는 "확실하게 고정된 모든 것"3)에 대한 두려움이자, 자신이 주장하는 "대의가 대의로 전락하는 것을 차단"(263)하기 위함이었다고 크라카우어는 해석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는 정지돈도 공감하는 사유/생활방식, "우리로 하여금 대의 없이 사유하고 생활할 수 있게 해줄 사유방식 및 생활방식이 있을 가능성"(261)을 찾아낸다. 어떤 식으로도 규정되기를 거부하는 글쓰기. 그것은 자신만의 인장을 글에 새기고 싶은 모든 작가들의 염원이 아닐까. 정지돈은 자기 나름의 방식을 찾아 꾸준히 쓰고 있을 뿐.

 

  픽션과 논픽션을 넘나드는 이 산문에서 누군가는 파리와 서울의 산책에 대한 서술에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목차의 제목부터 유사-지인들의 이야기에 이르는 김새는 유머들에 주목할 것이고, 누군가는 '구보'와 플라뇌르의 이야기에 주목할 것이다. 나로서는 정지돈의 글쓰기론에 대해, 실명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에 대해 힌트를 얻을 수 있었던 독서였다. '남북조 시대의 예술가'를 읽을 때는 문단에서 소위 '너드한' 이들이 동지를 얻지 못해 외로웠겠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앞으로도 내가 그의 소설-산문을 찾아서 읽을 일은 없겠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자유로운 글쓰기를 꾸준히 이어가며 자신만의 자리를 찾기를 바라는 바이다. 목적지 없이 관조하는 산책처럼.






1) "플라뇌르는 한편으로는 상품과 여성을 시각적으로 소비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산업화의 속도를 거부하고 생산자가 되라는 압력을 거부한다는 점에서 새로 생겨난 상업 문화에 저항하는 동시에 매혹되는 양가적 인물이다." (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김정아 옮김, 2017, 323)

2)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역사: 끝에서 두번째 세계, 김정아 옮김, 2012, 25

3) 같은 책, 26



울프와 발저의 산책이 좋은 이유는 그들이 걷는 일에서 의미를 찾지 않았고 우울해하지도 않았다는 사실 때문이다. 그들의 산책은 정체성을 잃고 헤매는 것이었지만 멜랑콜리해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 그들은 오로지 걸을 때만 진정으로 쾌활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쩌면 산책과 글쓰기가 가진 유일한 공통점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언젠가 집으로 돌아가거나 결말을 맺어야 하지만 그 모든 것을 상실한 어느 지점에서, 주제와 의도, 인과와 의무를 망각한 지점에서만 진정한 글쓰기의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P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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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2-17 21: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 그런 작가였구나 (정지돈이 다시 보이는 글) 왜 이 사람은 지식 자랑 하고 앉아있나, 그래 너 아는 거 많다! 이런 마음이었었는 데.. 제 안의 시큰둥이 좀 변했습니다. (그렇지만 이 책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아무 2022-02-17 21:56   좋아요 1 | URL
제가 읽은 정지돈의 책도 <내가 싸우듯이>와 이 책이 전부입니다ㅎㅎ 읽으면서 큰 기대를 한 건 아니어서 두 권 다 궁금한 책들에 대한 지식을 얻은 것으로 만족한 편..^^

공쟝쟝 2022-02-17 22:57   좋아요 1 | URL
저는 <영화와 시> 보고 좋아서 소설 찾아 읽었는 데 소설이 너무 이상해서 ㅎㅎㅎ 아 나랑 안맞네, 했었거든요! 근데 이런 태도의 글쓰기 였다면! 다른 책 한번 더 찾아보겠어요. 정지돈님아, 만약에 제가 또 찾아 읽게되면 아무님한테 고마워해라!
 

일想 둘. (2022년 1월 16일)


  오랜만에 아무런 일정이 없는 휴일이었다. 약속이 없으면 보통 집콕하며 하루를 보내기 때문에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문득 내가 하루 동안 얼마나 책읽기에 시간을 투자하는지 재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는 열두 시간 동안 책을 읽기도 하는데([링크]겨울서점 유튜브) 나의 집중력은 얼마나 될 것인가..를 테스트해볼 생각이 들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렇게 마음을 먹고 전날 잠이 들었더랬다. 11시가 넘어서야 눈을 떴지만.



  전날 읽고 있던 《므레모사》의 해설과 작가의 말을 읽고, 함께 온 비하인드북의 '20문 20답'과 김겨울의 리뷰까지 다 읽은 뒤 집을 나섰다. 보통은 집에서 5분 걸리는 스벅의 소파의자가 있으면 거기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편이나, 오늘은 조금 더 걸어가 새로 생겼다는 카페로 향했다. 필터커피는 산미가 적당해서 만족스러웠고 빵은 조금 딱딱했지만 맛있게 먹었다. 원래는 샌드위치가 맛있는 카페라고 하는데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걸 시키지는 않았고... 아, 그래서 카페에 가져간 책은 작년에 읽다가 잠시 덮어둔 뒤 새해가 된 뒤에야 이어서 읽기 시작한 《리얼리티 버블》이었다. '맹점'이라는 키워드로 묶일 수 있는, 우리가 보지 (않거나) 못하는 과학적 현실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담겨있는 책이다. 환경과 관련된 주제들도 많이 등장하고(주로 2부가 그렇다), 시간과 공간(주로 측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감시사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다양한 내용이 담겼다. 그럼에도 어렵지 않고 많은 사례들로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책. 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 이 책의 강점 중 하나는 비유를 적재적소에 독자의 시선을 끌 수 있도록 잘 활용 또는 인용한다는 점이다. 몇 개만 보면 이렇다.















  구미베어, 사탕, 마시멜로, 젤리 같은 디저트에도 도축장의 부산물이 들어 있다. 핵심 성분인 젤라틴은 도축하고 남은 동물의 껍질, 뼈, 뿔, 연결조직을 석회수에 석 달가량 담가서 그 안에 든 콜라겐을 추출하여 만든다. 이를 끓여서 젤이나 가루로 만들어 틀로 찍어내는 거의 모든 디저트에 사용한다. 그러나 젤라틴의 접착력은 비단 식품에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다. 알약 캡슐에서 종이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상품에 활용된다. 사진용 필름도 젤라틴으로 만든다. 플라스틱 재질에 입히는 '필름'이 바로 젤라틴이다. 빛에 반응하는 할로겐화은 입자를 젤라틴 수용액에 현탁한 것이다. 그 말은 「스타워즈」에서 「반지의 제왕」에 이르기까지 모든 영화들이 도축장의 부산물을 통해 스크린에서 상영된다는 뜻이다. (168~169쪽)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첨단 기술 사회는 태곳적 세상을 직접적인 연료로 삼는다. 우리는 자동차 엔진을 켜고 회전 수를 높일 때마다 고대의 화학적 잔여물에 불을 붙이는 것이다. 그리고 알다시피 생명은 탄소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매번 연소할 때마다 이런 죽은 유기물의 잔여물이 하늘로 날아가 이산화탄소라는 유령이 된다.

  자동차 연료 탱크에는 평균적으로 한때 1,000톤이 넘었던 고대 생물이 들어 있다. 무려 23톤의 고대 생물들이 휘발유 1리터로 변환된다. 자동차를 운행하기 위해 우리는 생물량 40에이커에 상응하는 것을 탱크에 담고 달리는 셈이다. 유타 대학의 생태학자 제프 듀크스에 따르면 "매일 우리 인간들이 사용하는 화석 연료는 육지와 대양에서 1년 동안 꼬박 자란 모든 식물들을 다 합친 것에 해당한다." (202쪽)


  공기, 흙, 물은 결국에는 우리가 된다. 고기후학자 커트 스테이저의 말처럼 궁극적으로 우리는 쓰레기로 이루어진 존재다. "여러분의 손톱을 한번 보라. 탄소가 그 절반을 차지하며 대략 탄소 원자 여덟 개 가운데 하나가 최근에 공장 굴뚝이나 자동차 배기관에서 나온 것이다. … 그러니 [여러분은] 부분적으로는 배기가스로 만들어졌다." (241쪽)


  2시간 정도 카페에 있다가 집으로 돌아와서 읽던 책을 마저 읽다가 덮고, 저녁을 먹은 뒤 커피를 또 내려서 마시고 빈둥거리다가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번에 편 책은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 새해에 생각(만) 했던 독서 목표 중에는 '문학 일반에 대한 책(문학이론이나 문학사 같은)들을 읽자'는 것이 있었고 그 시작으로 고른 책. 한 챕터의 길이가 그렇게 길지 않고 개별 작품이나 사조에 대해 설명할 때도 전문 용어를 최소한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해가 쉽다. 다만 전반부만 읽어보았을 때 영국 쪽으로 기울어진 느낌이 있어 '(영)문학의 역사'로 제목을 고쳐야할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 날은 고대 그리스에서 마무리를 지었고 이후에도 틈날 때마다 한 챕터씩 읽으며 이제 낭만주의까지 읽었다. 다음 챕터는 제인 오스틴이다..















  최승자 시인의 에세이 몇 편을 읽고 하루의 독서는 마무리되었다. 대략 3시간 40분. 휴대폰도 보고 밥도 먹고 멍때리고 딴짓도 하니 하루라는 시간 중에 이 정도의 시간을 쓰는구나라는 것을 느낀 하루였다. 언제 또 마음이 생기면 5시간은 넘기는 걸로 도전해볼까 하는 호승심도 생긴다. 물론 일찍 일어나야 한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하겠지만...




일相 셋. (2022년 1월 18일)


  소전서림에 두 번째로 방문했다. 이번에도 반일권을 결제했고, 오늘은 텀블러를 챙겨왔기에 안에 준비된 커피를 따르고 자리를 잡았다. 오늘 챙겨온 책은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겨울서점에서 연말에 추천했던 책이고 다른 곳에서도 추천하는 걸 많이 봐서 독서모임에서 다룰 수 있을까 싶어 가져온 책이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분류학자의 일생을 다룬 책이면서, 저자가 왜 이 학자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함께 엮이며 내용이 전개된다. 지금까지는 몰입하면서 읽고 있는데, 소개를 보았던 모든 매체에서 추천하는 이유를 이야기하면 스포일러가 된다며 내용에 대한 언급을 자제했던 터라 뒤의 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진다.















  앞부분을 읽다가 그래도 도서관에 왔는데 다른 책을 읽어봐야겠다 싶어서 쭉 돌다가 고른 책은 조이스 캐롤 오츠의 《좀비》였다. 제프리 다머라는 연쇄살인범의 이야기를 소재로 쓴 작품으로, 오츠를 검색하면 상단에 올라오는 작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사실 오츠의 작품들 중 내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작품은 《그들》이지만, 워낙 두꺼운 분량을 자랑하기 때문에 모임에서 같이 다뤄보자는 말을 못하고 있다. 오츠의 대표작으로 분류되는 대부분의 책들이 상당한 두께를 가지고 있어서 대안으로 생각했던 책이 《좀비》였었다. 다루기 전에 어떤 책인지 알아보자는 마음으로 뽑아들었는데, 《흉가》를 읽을 때도 느꼈던 것이지만 호러는 내 취향이 아닌 것 같다... 쿠엔틴이라는 살인범의 일기라는 형식을 취한 이 작품은 서술 방식에서 주인공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이러한 서술 방식이 선형적인 전개가 아니라 이리저리로 널을 뛰는 전개를 취하게 한다. 정말로 연쇄살인범의 일기 같다는 점에서 작법의 승리이지만, 이 이야기가 책소개처럼 "탐욕적이고 광적인 사회, 거대한 괴물 같은 미국이라는 집단을 상징"하는지는 의심스럽다...















 


  오늘은 7시 반부터 특강이 예정되어 있었다. 6시 반까지 책을 읽고 저녁을 먹으러 밖으로 나왔다. 거리만 멀지 않다면 정기권을 끊고 자주 오고 싶을 만큼 고요하고 아늑한 공간이다...



잡想 둘. (2022년 1월 19일)


  생각난 김에 새해에 생각했던 독서 목표들도 나열해볼까 싶다. 얼마나 실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1. 한 해 동안 60권 이상 읽기

2. 《서양철학사》 완독하기















3. (집에 쌓아둔) 문학이론, 문학사 관련 책 읽기
















4. 너무 유명해서 누구나 읽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은 책 읽기















5. 《모비 딕》 읽기
















6. (역시 쌓여있는) 과학 책 읽기




























7. 파리에 대한 책들 읽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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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쟝쟝 2022-01-19 02:1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새해 목표 이루시길! 주간 아무르도 자주자주 써주세요 ㅋㅋㅋ 저 이번 주 하루에 매일매일 다섯시간씩 읽기 도전 하다가 (도전 중독) 지금 지쳐서 소파에 드러누워 북플합니다 ㅋㅋ
서울 리뷰오브 북스 1권을 거진다 읽은 참인데요 다가오는 생일에는 2년치 정기구독권을 끊어볼꺼 싶어졌어요. 아무님 덕분입니다 ㅋㅋ

아무 2022-01-19 18:07   좋아요 1 | URL
주간 아무르 요즘 소재가 없습니다^^;;; 그래서 요즘 일상 이야기를 많이 쓰게 돼요 ㅋㅋ 리뷰는 요즘 몇 개 써보고 싶은 게 생겼는데, 조만간 써보려고 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 저 아직 3권에 머물러 있어요. 이미 4권도 나온 지 꽤 되었는데 ㅋㅋ 겨울 중으로는 완독하고 나오는 속도와 발맞추는 것이 희망사항입니다 ㅋㅋ
다섯시간 읽기 도전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한번 재보고 나니 4시간만 읽어도 열심히 한 거라는 생각도 들고 ㅋㅋ 북튜브 콘텐츠로도 볼 수 있겠죠?😁

blanca 2022-02-02 11: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고기의 모든 역사> 담아갑니다. 소전서림에 가보고 싶네요.

아무 2022-02-03 22:02   좋아요 0 | URL
모두에게 추천할 만한 책이었습니다^^
 
므레모사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38
김초엽 지음 / 현대문학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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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라〉와 《지구 끝의 온실》의 모티프가 극단에 치달아서 발화한 느낌. 디스토피아적 설정은 막연하고, 호러와 스릴러의 문법은 적소에서 빛을 발해 몰입감을 주지만 전형적이다. 주인공의 마지막 선택이 이야기를 변주시켜 특이점이 되고, 세계와 우리에 대한 질문으로 돌아온다. 정과 동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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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지금 읽고 있는 책들 중 하나인 정지돈의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이하 당신)'서울과 파리를 걸으며 생각한 것들'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서울''걷기''파리'에 대한 작가의 일상, 단상, 인용이 나열된다. 이미 그의 소설집을 읽어봤었기에 별다른 기대 없이 보았고 에세이도 역시 나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예술과 삶의 뒤섞임을 인용이라는 방식으로 형상화하는 그의 작법은 에세이에서도 동일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도 절반 가량 읽으면서 내가 얻은 수확이 있다면 '플라뇌르(flâneur)'와 파리에 관련된 책들에 대한 호기심 정도? "솔직히 말하면 플라뇌르는 지겨운 개념"(46)이라고 저자는 한탄하고 백인 이성애자 남성에 한정되었던 것을 비판하기도 하지만, 읽으면서 종종 나는 저자가 21세기적인 의미로 플라뇌르를 재개념화하고 싶은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가졌다. 책에는 산책에 대한 저자의 애정이 드러나기도 하고 쇼핑몰과 소비문화에 비판적인 시선을 보내기도 하지만 더 들어갈 것 같으면 어느새 그는 자신의 '글쓰는 친구들'(오한기, 금정연, 이상우, 그리고 가끔 박솔뫼)의 이야기로 빠진다. "걷는 이야기는 언제나 길을 잃고 헤맨다"(리베카 솔닛, 걷기의 인문학, 25)는 말처럼.

 














의외로 정지돈의 이번 에세이에서 가장 자주 등장했던 인물은 고다르가 아니라 리베카 솔닛이었다.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걷기라는 행위에 대한 두툼한 책을 이미 냈기도 하고, 책의 한 꼭지를 '플라뇌르, 또는 도시를 걷는 남자'라는 이름으로 할애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당신에 종종 등장하는 인용구가 인상 깊게 남아서 주문을 했고, 오늘 첫 꼭지를 읽었다('플라뇌르~'도 궁금하지만 개념어 사전같은 책이 아니면 목차를 구성하는 저자의 의도를 중시하는 편). 솔닛을 읽는 건 남자들은 자꾸 나를 가르치려 든다이후 두 번째인데, 역시 나의 에세이 취향은 당신보다는 이쪽인 듯했다. 솔닛의 에세이가 가진 힘은 아마 글에서도 보이는 행동력과 에너지, 명쾌하면서도 생각의 깊이가 보이는 문체 때문이 아닐까.

 

























당신에서 등장하는 서울 얘기보다 파리 얘기에 눈길이 가는 것은, 읽으면서 내가 잠시 보았던 파리를 떠올리며 비교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5년째 서울시민으로 살아가고 있지만 뚜벅이로 살고 있는 나에게는 각종 도로들(이를테면 차를 타야 제대로 느낄 수 있다는 강변북로)도 낯설고, 의외로 '서울로7017'도 낯설다. 오히려 파리를 이야기할 때 나는 처음 드골 공항에 내려서 TER을 탔을 때 보았던 더러운 좌석, 맡았던 악취, 소매치기를 당하지 않을까 싶었던 두려움을 떠올리고, 지하철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닐 때 역에서 맡은 악취를 떠올리고, 넓은 광장과 돌길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사람들과 오래되어 보이는 정경을 보며 부풀었던 마음을 떠올리는 것이다. 이런 파리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정지돈이 내용에 포함되어 있다고 밝히는 책에는 메리 매콜리프의 예술가들의 파리시리즈와 아녜스 푸아리에의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파리 좌안 1940-50이 있었다. 전자는 예전부터 모아놓고() 있었고(4권을 마저 사야 한다), 후자는 일기日記에서도 언급된 책이어서 구비해놓고 있다. 새해를 막 넘길 무렵 내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독서 목표 중에는 '파리와 관련된 책들이 좀 모였으니 몰아서 읽어보자'라는 것도 있었다. 정지돈의 책이 생각만 하고 있던 목표를 다시 떠올려줬다고 해야 하나. 파리에 유독 관심을 두는 건 3년 전의 여행에서 가장 많은 인상을 남겼고, 꼭 다시 가보고 싶은 도시로 남아있는 까닭이다. 하지만 나는 정지돈처럼 스탕달 신드롬이 오지는 않았다...

 

소설이든 에세이든 정지돈의 책을 읽는 의의는 몰랐던 작가나 책들에 대해 알게 되는 것이라고 나는 나름대로 정리한다. 그만큼 사고 싶은 책에 대한 욕구가 늘어나는 것이 흠이지만. 이번에 끌린 솔닛의 책은 이미 내가 좋아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으니 나름 성공적이었다. 다만 남은 절반에서 당신에 대한 나의 평가가 달라질지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독서모임에서 다루려면 완주해야 한다. 차차 읽어 나가는 걸로 하고, 오늘의 발견인 걷기의 인문학으로 마무리하자. 이 책의 아래에는 '걸어가는 인용문'이 있다. 본문의 아래쪽에 한 줄로 쭉 이어지는 걷기에 대한 인용문의 연속. 오늘 나의 눈길을 끌었던 인용문은 개리 스나이더라는 사람의 것이었다. "어릴 때 우리가 한 장소에 대해 알게 되는 방법, 공간 속의 관계들을 시각화하는 방법은 걸으면서 떠올리는 것뿐이다. 장소를 가늠하고 장소의 크기를 가늠하는 방법은 우리 육체와 우리 육체의 역량뿐이다."(블루마운틴스의 쉼 없는 발걸음) 그리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처음으로 표시를 한 부분은 이것이었다.


 

다시 말해걷기를 주제로 삼는 것은 어떻게 보자면 보편적 행동에 특수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음식을 먹는 일숨을 쉬는 일과 마찬가지로 걷는 일에도 성애적 의미에서 영적 의미까지혁명적 의미에서 예술적 의미까지 어마어마하게 다양한 문화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그때야 비로소 걷기의 역사가 생각과 문화의 역사(다양한 보행다양한 보행자들이 저마다 자기의 시대에 추구한 다양한 기쁨과 자유와 의미의 역사)의 일부가 되기 시작한다그런 생각이 두 발로 지나간 곳에 장소가 만들어졌고그렇게 만들어진 장소가 다시 그런 생각을 만들어냈다걸었기에 골목과 도로와 무역로가 뚫린 것이고걸었기에 현지의 공간 감각과 대륙 횡단의 공간 감각이 생겨난 것이고걸었기에 도시들공원들이 만들어진 것이고걸었기에 지도와 여행안내서와 여행 장비가 생긴 것이다멀리까지 걸어갔으니 걷는 이야기책들과 시들이 쓰인 것이며순례와 등산과 배회와 소풍을 기록한 방대한 분량의 책들이 쓰인 것이다역사의 풍경에는 이야기가 깃들어 있다우리를 역사의 현장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바로 그 이야기다. (리베카 솔닛걷기의 인문학,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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