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간 일을 떠올리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늘 생각했는데, 그것은 노력과는 무관하게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때로는 농담처럼 웃어 넘기고 먼 타인의 가십처럼 안주 삼던 어린 시절의 일화, 추억 조각들이 갑자기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가슴 중앙을 쿡쿡 찌르는 경험을 했다.

그동안 아프지 않아서 멀쩡했던 게 아니었다. 아프지 않은 척 했던 거였다.

드러내고 말하기가 창피했던 모양이다. 대범하게 이해하고 용서하고 극복했다는 믿음이 있었다.


오늘처럼

햇살은 따스하고 어쩐지 훈훈한 바람이 코 끝에 오래 머무는 날에 갑자기 찾아온 그것이다.

어두운 상실의 기억들과 부재로 인한 헐벗음과 눈과 귀가 닫혀 있었던 시간들, 집이었지만 집이라고 부르기가 난감하던 때다. 무언가 애틋하고 사랑스런 기억은 한 조각도 없던 시절이다.

그래서 지금, 오늘이란 얼마나 안온한지. 태어나서 살아있어서 고맙고 다행이라는 생각을 한다.

어ᄄᅠᇂ게 태어나 살아왔는가 는 중요하지 않다고. 귓가에 속삭인다. 너가 너여서 너무 좋았노라고.

 



나는 목소리의 태어남을 결별이라는 말로 부르기를 제안한다. 갓난아기를 호흡하게 만드는 울음 소리는 호흡하지 않던 세계에 영원한 결별을 알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 서약 위반이 최초의 고통이다. 태어남은 집없음이다. 혹은 실향이다. 첫울음이 그러하듯, 최초의 사라짐은 호흡 및 폐의 새로운 리듬 –폐의 리듬에 앞서는 심장의 리듬과 언제 까지나 협력해야만 한다을 작동시킨다. 버림받음은 언제나 기억의 바탕을 이룬다. (은밀한 생/파스칼 키냐르)


모든 강물은 끊임없이 바다로 휩쓸려 들어간다. 나의 삶은 침묵으로 흘러든다. 연기가 하늘로 빨려들 듯 모든 나이는 과거로 흡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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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주정뱅이
권여선 지음 / 창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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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도처럼 내게서 차분한 체념과 적요를 빼앗으려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은은한 알코올 냄새를 풍기면서 내 곁을 맴돌고 내 뒤를 따르는, 새파랗게 젊은 주정뱅이 아가씨는 대체 누굽니까?

신도 없는데 이런 나쁜 친절은 어디서 온 겁니까?
(173페이지)

권여선의 <안녕, 주정뱅이>는 최대한 아끼고 아껴서 느리게 읽고 싶은 읽고 읽는 소설집이다.
글들이 달콤하달지.. 분명 슬프고 우울한 이야기인데도 단어와 문장이 노래처럼 들린다. 깊이 들여다보고 천천히 따라 걸어가고싶은 이런 글이라니.
그것은 마치 겨울이 다 갔다고 생각했는데 느닷없이 내리는 눈발처럼 생경했다.
첫눈의 기억처럼 회색의 짙은 하늘에서 휘날리는 눈은 어쩌면 올 겨울의 마지막 눈이 될 것이다.
이런 날 읽는 소설이라서 더 감성적이 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강물 위에 떨어진 불빛처럼 혁혁한 업적을 바라지 말라.
개가 울고 종이 울리고 달이 떠도
너는 조금도 당황하지 말라.
아둔하고 가난한 마음은 서둘지 말라!
애타도록 마음에 서둘지 말라!
절제여!
나의 귀여운 아들이여!
오오 나의 영감이여!

P33(봄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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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입감이 강한 소설은 일상을 무너뜨린다. 밥을 먹으며 잠을 자며 걷거나 누군가와 대화를 하는 도중에도 끝까지 읽지 못한 소설로 달려간다. 그가 혹은 그녀가 왜, 그랬을지 곰곰히 되세기며 어떤 단어나 문장을 음미한다.

 

사이코패스 중에서도 최고 레벨에 속하는 프레데터, 포식자.

 

마치 불가항력의 사고나 우연처럼 유진은 그렇게 태어난 아이였다. 

뱃속의 자그마한 존재였을 때부터 움직임도, 욕구도 없었던 조용하고 얌전한 아이, 그렇게 엄마의 눈 밖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숨어있던 아이. 

 

엄마는 자신의 아이가 궤도를 이탈하고 남과 다른 행동을 하고 있음을 인지하고 무탈하고 무해한 인간으로 성장하길 기도한다. 심리학을 전공한 동생과 공모하고 악의 근원지를 말살하기 위한 약물을 실험실의 생쥐에게처럼 아이에게 먹인다. 약의 부작용에 고통받는 아이를 바라보는 엄마의 처절한 번뇌와 몸부림은 가엾기도 하지만 때론 사뭇 사악한 폭력으로 보여진다.  

 

그래서 유진의 항변과 폭력성이 타당하다 느껴지기도 했다. 유진의 입장을 이해하듯 변명하는 작가의 설명에 몰입되기도 했고, 롤러코스터를 타고 미끄러지듯 처절한 비극을 암시한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유진을 이해하고 싶어졌다.

 

유진은 포식자로 태어났다. 피냄새를 맡으며 징조가 시작되고 잠재된 악의 본능이 깨어난다. 선악도 기쁨도 슬픔도 없다. 약물로 봉인된 세계가 우연찮게 열리고 그 쾌락에 취하여 폭주하는 과정은 음악이나 영화의 클라이막스처럼 보이고 들렸다. 이야기는 이야기일뿐 결코 현실이 아니라고 믿으니까.

 

예전 어떤 범죄 프로파일러가 현실을 살아가는 사이코패스는 일반인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었다. 사이코패스가 주인공이었던 '덱스터'라는 외국소설에서도 주변사람들은 누구도 그가 숨긴 본능을 알아채지 못했다. 단 같은 사이코패스들은 본능적으로 냄새 맡고 알아챘다. 덱스터는 사이코패스를 찾아내 죽이고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일상을 살아갔다. 흥미진진한 이야기였다.

 

유진의 각성은 필요불가결이었을까.

약을 끊지 않았다면 계속 평범한 듯 살아갔을까. 엄마에게 다른 선택은 없었을까. 우리라면 어떤 선택을 해야할까. 악을 대하는 선한 사람들의 판단은 늘 옳은 것일까. 정말 선이 존재할까.

 

소설 속 엄마와 이모라는 어른들은 결코 선이라고 부를 수가 없다. 악과 선의 그 중간 쯤에 걸쳐진 다수의 인간들이라면 모를까. 신이 있다면 답은 거기에 있을 것이다. 선을 선이게 하기 위한 악이라면 유진을 벌할 수 없으니까.          

태양이 은빛으로 탔다. 5월의 여울 같은 하늘 아래로 띠구름이 졸졸 흘러갔다. 성당 안뜰을 에워싼 설유화 꽃가지들 속에선 휘파람새가 울었다.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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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이후 노안이 시작되고 안경이 없이는 더이상 읽기가 불가능해지면서 읽기는 더이상 즐거움만은 아닌 괴로움과 불편을 동반했다. 책을 대신하는 볼거리 읽을 거리는 아이패드와 스마트폰으로 부족함이 없다. 중독이 될 지경이다. 눈을 뜨고 감는 마지막 순간까지 손에서 놓을 수가 없는 존재다. 이대로는 안된다는 걱정과 불안이 들지만 곧 잊혀지고, 반복이다. 편리함과 자극은 언제 어디서나 신속하고도 정확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신세계다. 어쩌면 이렇게 살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든다. 

 

새해가 시작되고부터 절식 끝의 폭식처럼 허겁지겁 읽는 중이다. 여전히 닥치는대로다. 당분간은 그렇다.

 

68년생 11월 생이라는 김영하는 동갑내기다. 태어난 달도 비슷해서 묘한 전우애도 느낀다.

그의 소설 보다는 팟캐스트에서의 듣기 좋은 목소리로 그를 만났다. 그의 낭송은 고즈넉한 밤의 적요를 깊이있게 만들어줘서 한동안 정말 열심히 들었다. 그리고 텔레비젼 속의 박식함과 여유, 보편적 상식,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말하는데 뭔가 특별하게 들리는, 설득과 설명에 능숙한 모습에 나도 모르게 동의하곤 했다.

 

그리고, 여행의 이유라는 소설이 아닌 에세이를 읽었다.

짐작보다 훨씬 더, 그는 여행을 일상처럼 즐기는 정착하여 머물기 보다는 떠나서 방랑하는 유목민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작가라서 저렇게도 사는구나 했다가 아니 태생적으로 저런 사람이구나 납득했다. 일 년, 혹은 몇 개월에 걸쳐 홀로, 때로는 아내와 더불어 살기 위해 떠나는 사람. 돌아오는 여정이 오히려 여행인 사람.

 

여행의 이유는 어디를 가서 이런 곳을 보고 느꼈다는 류의 글과는 달리 김영하는 작가, 사람에 관한 글이다. 떠나는 이유, 떠날 수 밖에 없는, 태생적인 사람이라는 거다. 도시와 도시, 나라와 나라를 훌쩍 떠나 살다가 돌아와 한 권의 소설, 에세이를 쓰는 작가라는 이름의 사람에 관한 고백에 가깝게 읽혔다. 내게는. 단편적으로 조각으로 알던 한 사람을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납득하게 된 셈이다.

 

어떤 작가의 글을 읽든 결국은 그 사람의 정체에 의문과 궁금증을 품곤 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길레 이런 글을 쓰는지 알고싶어진다. 그러면서 읽지 못한 다른 글들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인터넷에는 온갖 인터뷰와 강연들이 있다. 재미있는 세상이다.

 

아쉬움이 있다면 책이 얇다. 그는 기본적으로 수다쟁이는 아니다. 말에서도 글에서도 표현을 아끼고 아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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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뇌를 고칠 수 있다 - 매주 1시간 투자하여 최상의 기억력, 생산성, 수면을 얻는 법
톰 오브라이언 지음, 이시은 옮김 / 브론스테인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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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또렷한 정신을 원한다면 설탕을 피하라

가공 설탕을 먹으면 전신에 염증이 증가한다.
정제된 설탕은 섭취량에 관계없이 가장 많은 염증을 일으키는 식품이다. 소량만 먹으면 건강에 도움되는 설탕이란 세상에 없다. 뇌기능응 유지하거나 향상시키길 원한다면 설탕이 들어간 음식을 완전히 끊어야 한다. 설탕만 암먹어도 불안, 우울증, 과민성 등 많은 정서적 문제가 사라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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