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사기도 읽기도 소원하다. 띄엄띄엄 대충 쓰는 일도 마찬가지. 이런 날이 올 줄은 몰랐다. 그것에 대한 집착이 사라져서 기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도 모르겠고. 책장을 보면 비우고, 버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인다. 극단적으론 찢거나 태우거나 하고 싶은데 장소가 여의치 않으니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응시하며 인상만 쓰고 있다. 이렇게 버려져야 할 것들을 왜 그렇게 악착같이 모으고 간직했을까. 그 당시엔 그게 최선이긴 했다.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거다. 버리는 일도 나쁘진 않다. 버려야할 나이에 이르렀다는 거겠지. 근데 책마저 버리기 시작하면 내게 남는 게 뭐지. 아무것도 없이도 살 수 있을지 지금으로선 답이 없다.
껑충 커버린 목련나무를 벴다. 여름 내내 거슬리던 잎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순간의 서늘함이란. 놀라웠다. 봄이 되면 또 우후죽순처럼 올라와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런 놈이다. 뿌리를 말려버리지 않는 이상은. 미안한건 새들이다. 거처 삼아 오다가다 쉬어가고 나들이 나와 놀던 이름도 모르는 다정했던 연인 새들. 우거진 잎이 사라지게 해서 미안.
대국에서는 노란 꽃잎이 벌어지는 중이고, 소국에선 자줏빛 꽃잎이 살포시 잎을 벌리고 있다. 너희들로 해서 가을이 기대된다. 화분에 옮겨 심은 빈카는 잎이 축 늘어져 있다. 살 수 있을까. 아님 그대로 시들어 버릴까. 변덕스런 주인의 도박에 몸살을 앓는 꽃이 불쌍하다. 윗가지를 잘라 땅에 꽂아놓았던 엔젤트럼펫에선 새순이 돋아났다. 강하고 강한 녀석이 대견하다. 마지나타랑 행운목, 스파디필룸은 제일 먼저 집안으로 들였다. 따뜻한 내년 봄까지 동거동락을 위하여.
10월에 시작된 곶감 만들기는 아직 진행중이다. 감의 익은 정도에 따라 곶감의 질이 달라진다는 중요한 사실도 발견했다. 세 번에 걸쳐 곶감을 만들었는데, 마지막 작업은 아무래도 실패다. 군데군데 곰팡이도 피었고, 급기야 투명한 진물 같은 게 흘러나오는 것도 있다. 시큼한 냄새와 함께. 너무 잘 익은 부작용이지 싶다. 가급적이면 단단하고 덜 익은 것들이 쉬이 마르고 형태가 곧다. 떫은 감을 우리는 것도 감의 익은 정도에 따라 시간차가 상당했다. 도합 세 번에 걸쳐 우렸는데 처음은 장장 36시간이 걸렸고, 두번 째는 24시간, 그리고 마지막엔 20시간이었다. 처음 시도한 것치곤 상당히 우수한 성적이 아니었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