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탄소년단은 아이돌이라는 틀, 편견과 선입견 가득한 곳에는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의 스타다. 우연히 듣고 본 그들의 노래와 영상에 늪에 빠지는 것처럼 빨려들었다. 스타라는 이름의 누군가를 딱히 좋아해본 기억이 없는 건조한 시절을 보냈다. 그래서 힙합을 하는 가수, 소년들의 성장과 고민, 울고 웃는 스토리에, 역동적이며 유려한 춤에 넋을 놓고 보는 일은 기이하고 신비했다. 그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과정이었다. 멤버 한 명 한명의 매력이 보이더니, 어느덧 그들의 모든 것에 의미를 두게 되었다. 그들의 꿈, 삶과 성공을 위한 열정,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를 성찰하는 매 순간 순간들이 모여 쌓아올리는 탑의 끝은 어디일지 궁금했다. 그들의 현재는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하고 빛이 나고 있다. 숨이 찰 정도로 빠르고 멋진 도약이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좋아하여 몰입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은 축복이다. 그것은 무디고 건조한 일상에 소나기처럼 시원하고 달콤한 청량음료다. 노화를 거슬러 젊어지는 듯, 삶이 활력과 기대, 감성으로 차오른다. 예전에는 책과 영화가 그랬다. 새로운 작가, 낯선 소설들을 찾아 읽으며 나 아닌 타인의 인생에 울고 웃었다. 현실이 아닌 저기 어딘가의 세계에서 삶의 고단함을 견뎠다. 삶에 지쳐 무릎 꿇고 포기하는 순간 누군가의 손이 희망과 의지인 것처럼, 불안과 우울로 영혼이 잠식당하는 순간, 무엇보다 빠른 속도로 위안이 되었던 건 책 그리고 영화, 음악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듣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수많은 연주곡들, 해가 뜨기 전의 새벽에 듣는 쇼팽의 야상곡과 해질 무렵 듣는 베토벤의 달빛소나타는 텅 빈 가슴을 무한한 의미들로 가득 채워준다. 하루의 시작과 끝에서 음악은 공허한 세계와 보이지 않는 적들로부터 지켜주는 울타리다. 절망과 불안에 의한 눈물이 아닌, 행복해서 나오는 눈물이 있다. 오늘하루 나를 살게 하고, 내일의 내가 기대되고, 그래서 더 살아보고 싶어지는, 음악은 그런 세계의 언어가 아닐까. 그것은 삶의 중심을 가로지르는 에너지의 원천이 된다. 그리고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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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자의 날답게 거리는 아기와 함께 있는 젊은 아빠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걸음마를 배우는 아가와 아빠는 강아지를 만나면 미소를 숨기지 못한다. 병원 근처에는 아픈 아이를 휠체어에 태운 아빠가 있고, 링거를 매달고 아빠 손을 잡고 걷는 아이도 있다. 그들에게 귀여운 강아지 네 마리는 곡예단의 곡예사마냥 인기가 좋다. 아이가 웃으면 아빠는 행복해 했다. 그들에게는 더할 수 없는 선물인 셈이다. 미소를 짓게 만드는 존재로 태어났다면 그걸로 존재의 이유는 충분한 것 아닐까? 개에 대한 호불호에 울고 웃는 날들이다.

 

프리마켓이 열리는 공원 옆은 사람들로 붐볐다. 새로운 얼굴이 보여 가보니 직접 만든 모기 기피제와 수제 비누를 팔고 있었다. 그녀 앞에 서는 순간 그냥 돌아서지는 못할 것 같은 직감이 왔다. 열정적으로 제품과 필요성을 설명하는데 빠져들었다. 결국 모기퇴치제와 비염에 좋은 스틱과 벌레 물린 곳에 바르는 스틱을 골랐다. 여름이 되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하는데, 화학적 방부제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일반 마켓에서 사는 것 보다는 고가지만 한번은 써보고 평가해 볼 필요를 느꼈다.

 

비닐, 플라스틱 등의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백해무익한 쓰레기 생산을 줄이자고 마음먹으면서 삶을 대하는 자세도 변해 갔다. 복잡하고 번거로운 건 물건은 물론이고 사람도, 정리하거나 느리게 만남의 횟수를 줄여나가고, 단조로운 일상의 충만함을 기꺼이 즐기는 중이다. 상처받기 쉬웠던 예민함은 둔감하게, 마구 엉켜 시작점을 찾지 못하던 실타래 같은 생각들도 점차 일정한 형태로 정리 중이다.

 

해질녘, 댕댕이 네 마리가 뛰어노는 목가적 오후. 근처 빌라에 사는 달래와 달이가 놀러와 삼십분 정도 놀다가 돌아갔다. 동물과 함께하는 여자사람은 할 말이 넘친다. 산책 코스와 최근 바뀐 동물관련 법 등 나눌 정보도 많다. 안 본 사이 달래는 허리디스크가 재발해서 치료받았고, 달이는 미용 후에 등에 딱지가 앉아 고생 중이다. 예쁘고 착한 주인만큼 발랄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귀염둥이들이다.

 

긴 하루를 쉬게 하는 백그라운드 음악은 드뷔시의 아라베스크다.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 물결치듯 흐르는 음악과 함께 휙휙 지나가며 정리되는 느낌이다. 드뷔시만큼 오월에 어울리는 음악이 또 있을까. 붉고 탐스런 넝쿨장미가 만개하고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이 시작하는 이 오월의 첫날에 딱 어울린다. 오월은 드뷔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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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침, 요가교실에 제일 먼저 도착하면 창가의 롤스크린을 말아 올리고, 잿빛의 하늘을 올려다 본다.  

숭고한 의식처럼 창문을 열어 밤새 갇혀 있어 탁해진 공기도 환기시킨다. 

정적이 흐르는 빈 교실을 가로질러 전등의 스위치를 켜고 공기정화기를 작동한다. 

날씨가 살짝 쌀쌀하니 난방도 하나만 켠다. 몇몇 회원분들은 차가운 공기를 질색하셔서 미리 온도를 높여야 한다. 

 

 겨자색 요가매트를 펴고 겉옷과 양말을 벗어 가방에 넣는다. 요가복은  검은색 레깅스와 소매없는 티셔츠면 충분하다. 몸에 맞는 레깅스의 장점은 군살을 잡아주기도 하지만 흐트러지는 마음을 긴장시키는 역할도 한다. 

준비해간 따뜻한 우엉비트차로 목을 축이고 앞머리와 옆머리를 모아 하나로 묶어 올리면 운동준비 끝이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전신 거울을 보며 홀로 스트레칭하는 이 순간이 좋다. 몸에 쌓인 노폐물과 마음에 쌓인 잡념들을 훌훌 털어내고 씻어낼 시간이다. 

목과 상체를 돌리고 펴는 스트레칭을 하는 동안 다른 회원이 도착한다. 반가움 가득 담은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조용했던 교실 안에, 드디어 낯선 소리들이 떠다닌다.   

하나 둘씩 회원들이 도착하면서 크고 활기찬 아침 인사가 오간다. 날씨와 밤사이 사건 사고에 대한 이야기, 쉬고 싶은 게으름을 극복하는 저마다의 방법을 토로하면서 교실 안은 순식간에 시장바닥처럼 소란스러워진다. 세상사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다채롭다.

 

 오자마자 눕는 사람,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명상하는 사람, 스트레칭을 하는 사람, 오직 수다에만 집중하는 사람 등등 나이도 성격도 다르지만 닮은 게 하나 있다. 운동에 대한 열정, 그리고 건강하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다. 취미를 공유하는 사람들 간의 유대감은 의외로 크다. 처음 만나던 순간의 어색함은 사라지고 친밀감의 밀도가 점점 높아져가고 있다.

 

 운동 시작 10분 전 선생님이 도착하시고, 교실 안의 소음은 시나브로 잦아들며 명상음악이 흐르기 시작한다. 

회원들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잡는다. 다리를 모아 편하게 앉으며  두 손은 무릎 위에 가볍게 올린다. 턱은 쇄골 쪽으로 당기고 등은 기립근을 세워 꼿꼿하게 만든다. 그리고 호흡이 시작된다. 복식호흡, 혹은 흉식호흡 자신에게 맞는 편한 호흡을 하며 눈을 감으면 각자의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교실 안은 음악과 숨소리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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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4월이 가기 전에 사과대추 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몇 해 전부터 필히 심어야할 나무 품목에 올라있던 것이다. 꼼꼼이 공부를 하고 심어도 모자랄 판에 대충 심어놓고 뒤늦게 후회가 밀려들었다. 부랴부랴 정보를 뒤져보니 심기 두 시간 전에 물올림을 하라는데 빼먹었다. 다행히 접 붙인 부분을 위로 올려 심었다. 비료도 제대로 안주고 물만 얼렁뚱땅 주고 말았다.

 

그러나 살아보니 화초나 나무가 정성만 들인다고 잘 자라는 게 아니었다. 차라리 무심히 대충 심었다고 쑥쑥 자라는 걸 보고 놀랄 때가 많았다. 오히려 비싸게 사서 귀하게 키운다고 난리 피우다가 죽어버리곤 했다. 길에서 줍거나 이사가는 누군가가 던져주고 간 화초는 어찌나 잘 크는지 놀랍고, 시장에서 마음먹고 산 고급진 화초는 시름시름 앓다 죽기 일쑤, 이상한 일이지만 살아가는 일도 화초를 키우는 것과 유사했다.

 

꽃이 피고 지는 것처럼, 계절이 오고 가는 것처럼, 무심하게 심고 물 주고 나머지는 자연의 이치에 맡겨 버리면 백퍼센트는 아닐지라도 대부분 살아남았다. 더하거나 덜하지도 말고 적당히 거름도 주고, 한번 씩 지나가다 바라봐 주면 될 것이다. 햇볕이 잘 드는지 그늘인지 정도는 살펴도 좋다. 잡초가 자라면 뽑아줄 것이다. 딱, 그만큼만 관심을 주련다.

아마도 내년에는 아이 주먹만한 사과대추를 먹는 행운이 오지 않을까, 라는 야무진 꿈에 부풀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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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딜 가든 라일락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밤에 만나는 라일락은 연보랏빛의 소우주다. 봄밤의 고즈넉하고 살랑거리는 바람을 타고 흔들리는 꽃잎을 보노라면 인간세상의 근심과 걱정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라일락의 깊고 진한 향에 취한 탓이다. 하나의 계절이 가고 또 다른 계절을 준비하려고 피었다 지기를 반복하는 거대한 생명들의 향연을 아낌없이 즐기는 밤이다.

 

봄의 밤은 나의 곁을 함께 걷는 그 사람의 상처를 살피고 보듬어 주는 시간이다. 그리하여 내 숨겨둔 상처가 저절로 치유되는 등가교환이 이루어진다. 더이상 삶의 불확실성 앞에서 울지 말기를, 낙관은 할 수 없어도 닥치지 않은 미래 때문에 두려워 도망가지 않기를 기도한다.

 

겨울 지나 봄이 오고, 곧 여름이 밀려들 것이다. 낯설지 않다. 혹서에 묵은 상처가 덫나 붓고 열이 날 수도 있다. 염증을 치료하는 고통에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통증을 외면하거나 놀라 주저앉지 않을 것이다. 상처는 칼로 째고 약을 바른 뒤, 천천히 기다리면 낫는다는 것을 경험으로 배웠다.

 

수없는 봄의 밤을 지나왔다. 이제 여리여리하던 마음은 돌처럼 단단해졌다. 경험과 시간은 무기가 되었고 이기적인 고집은 배려하고 살피는 이타성을 습득했다. 어떤 날, 어떤 계절, 시간이라도 견디고 버틸 준비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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